박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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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한상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도박 빚과 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해 1994년 5월 19일 새벽 부모를 살해하고 방화한 혐의로 구속된 인물이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도박에 빠져 2만 3천 달러를 잃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으며,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했다. 범행 후 체포되어 재판을 거쳐 1995년 8월 26일 사형이 확정되었다. 사건 이후, 가족들은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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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상 - [인물]에 관한 문서 | |
---|---|
범죄자 정보 | |
이름 | 박한상 |
출생일 | 1971년 |
출생지 | 대한민국 충청남도 천안시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형량 | 사형 |
범행동기 | 부모의 전 재산을 상속받기 위함 |
현황 | 수감 중 |
피해자 수 | 2 |
사망자 수 | 2 |
부상자 수 | 0 |
사용한 흉기 | 칼 |
체포일자 | 1994년 5월 19일 |
2. 사건 이전
2. 1. 성장 배경
박한상은 1971년 '고려한약'을 운영하던 아버지 박순태(1947 ~ 1994)와 어머니 조순희(1948 ~ 1994) 사이의 장남으로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1] 어릴 때부터 이기적이고 무계획적인 성격에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으며, 가벼운 신경증으로 인해 성격이 좋지 않아 학교와 병원을 자주 옮겨 다녔고 가정불화도 겪었다.[1] 이러한 신경증은 훗날 그의 수감 생활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1] 1990년 압구정 현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1991년 11월 휴학 후 군에 입대했다.[1] 1993년 7월 제대 후 복학하지 않았다.[1]2. 2. 미국 유학
1993년 8월, 박한상은 부모의 권유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한 어학원에 등록하여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2] 그러나 영어 실력 부족과 외로움으로 인해 학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단결석을 일삼았다.[2] 아파트에 틀어박혀 폭력 영화를 보던 그는 비슷한 처지의 유학생들을 만나 도박에 빠지게 되었다.[2] 처음에는 학교 주변에서 호기심으로 도박을 하다 점점 대담해져 라스베이거스까지 가게 되었으며, 전혀 모르는 미국인과 도박을 하다 하루아침에 1,300달러를 잃는 등 총 23,000달러(당시 대한민국 화폐로 약 2,000만 원)를 잃었다.[2] 1994년 1월에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차량 구입비 약 18,000달러까지 도박으로 전부 날린 뒤 친구에게 보증을 서게 하고 약 2,100달러 상당의 혼다 어코드를 샀다.[2] 1994년 4월 20일 돈이 필요해 보호자 몰래 귀국하여 신용카드를 만들어 사채업자에게 할인받아 약 200만 원을 가지고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다 친척에게 발각되어 3일 후인 4월 23일에 미국으로 도피했다.[2]2. 3. 도박 중독과 사치
박한상은 미국 유학 시절부터 도박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학교 주변에서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라스베이거스까지 가서 도박을 할 정도로 심각해졌다.[2] 하루아침에 1,300달러를 잃는 등 총 23,000달러(당시 대한민국 화폐로 약 2,000만 원)를 잃기도 했다.[2] 1994년 1월에는 아버지에게 받은 차량 구입비 18,000달러를 도박으로 탕진하고, 친구에게 보증을 서게 하여 약 2,100달러 상당의 혼다 어코드를 구입했다.[2] 1994년 4월 20일에는 몰래 귀국하여 신용카드로 현금을 마련해 유흥업소를 전전하다 친척에게 발각되어 4월 23일에 미국으로 도피했다.[2]3. 범행
1994년 5월 19일 새벽 0시 경, 박한상은 옷을 모두 벗은 채 잠든 아버지를 흉기로 수 차례 찔러 살해하고, 부엌으로 달아나는 어머니를 쫓아가 살해했다.[4][5] 증거 인멸을 위해 집에 불을 질렀으나,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사촌 동생 이석규(당시 12세)는 탈출하여 가벼운 화상만 입었다.[4][5] 경찰은 한 집에 있었음에도 박한상만 상처가 없고 머리에 타인의 혈흔과 이빨 자국이 있는 점을 근거로 추궁하여 자백을 받아냈다. 5월 26일 경찰은 박한상을 살인 및 방화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6] 박한상은 처음에는 단독 범행을 주장했다가 공범과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을 번복하여 5월 29일 친구 이모 씨(당시 23세)가 체포되었으나, 5월 31일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려졌다.[7]
3. 1. 범행 동기
박한상은 도박 빚과 사치스러운 생활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4][5][6][7][8][9][10]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했으며, 아버지로부터 "호적을 파가라", "너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놈이다"라는 말을 듣고 격분하여 범행을 결심했다고 알려져 있다.3. 2. 범행 과정
1994년 5월 19일 새벽 0시 경, 박한상은 옷을 모두 벗은 채 잠든 아버지를 흉기로 수 차례 찔러 살해하고, 부엌으로 달아나는 어머니를 쫓아가 살해했다.[4][5] 증거 인멸을 위해 집에 불을 질렀으나,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사촌 동생 이석규(당시 12세)는 탈출하여 가벼운 화상만 입었다.[4][5] 경찰은 한 집에 있었음에도 박한상만 상처가 없고 머리에 타인의 혈흔과 이빨 자국이 있는 점을 근거로 추궁하여 자백을 받아냈다. 5월 26일 경찰은 박한상을 살인 및 방화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6] 박한상은 처음에는 단독 범행을 주장했다가 공범과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을 번복하여 5월 29일 친구 이모 씨(당시 23세)가 체포되었으나, 5월 31일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려졌다.[7]3. 3. 체포 및 재판
경찰은 박한상의 몸에 난 상처와 혈흔 등을 근거로 그를 추궁하여 범행 사실을 자백받았다.[4][5] 1994년 5월 26일, 박한상은 살인 및 방화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6] 그는 처음에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다가 공범과 같이 범행을 저질렀다며 번복하여 5월 29일 그의 친구 이모 씨(당시 23세)를 붙잡아 조사를 벌였다.[6] 그러나 5월 31일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났다.[7] 1994년 11월 5일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고,[8]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사형이 확정되어[9][10] 1995년 8월 26일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다.[10]4. 사건 이후
박한상의 아버지 박순태가 사장이었던 '고려한약'의 사장 자리는 다른 출자자에게 넘어갔고, 박순태가 소유한 주식은 1994년 당시 대학교 1학년인 그의 차남에게 돌아갔다. 박순태가 운영하던 덕인당이라는 한의원은 폐업하고 다른 한의원이 들어섰다. 박한상의 동생 박영상(당시 21세)은 한의대생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혼자 자취하며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박한상의 백부이자 박순태의 친형인 박순영(당시 50세)도 조카인 박한상의 동생에게만 안부 전화를 걸 뿐이다.[11][12]
4. 1. 가족 및 주변 상황
박한상의 아버지 박순태가 사장이었던 '고려한약'의 사장 자리는 다른 출자자에게 넘어갔고, 박순태가 소유한 주식은 1994년 당시 대학교 1학년인 그의 차남에게 돌아갔다. 박순태가 운영하던 덕인당이라는 한의원은 폐업하고 다른 한의원이 들어섰다. 박한상의 동생 박영상(당시 21세)은 한의대생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혼자 자취하며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박한상의 백부이자 박순태의 친형인 박순영(당시 50세)도 조카인 박한상의 동생에게만 안부 전화를 걸 뿐이다.[11][12]4. 2. 사회적 영향
참조
[1]
뉴스
동거 동서부부,여행떠나 화면해/한약상부부 피살 현장 스케치
https://www.seoul.co[...]
서울신문
1994-05-20
[2]
뉴스
도박으로 3千(천) 4百萬(백만)원 날려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1994-05-27
[3]
뉴스
범인 일문일답 ''호적 파가라''에 犯行(범행) 결심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94-05-27
[4]
뉴스
수십億(억)재산 한약업자 부부 온몸 찔린채 불타 숨져
https://newslibrary.[...]
매일경제
1994-05-20
[5]
뉴스
韓藥商(한약상)(대한韓藥協(한약협)서울지부장)부부 난자·放火(방화)살해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94-05-20
[6]
뉴스
유력한 공범 검거
http://newslibrary.n[...]
한겨레
1994-05-29
[7]
뉴스
박씨 단독범행 결론 부모살해사건
http://newslibrary.n[...]
한겨레
1994-06-01
[8]
뉴스
朴漢相(박한상) 사형선고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94-11-05
[9]
뉴스
부친살해 朴漢相(박한상) 항소심서도 사형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95-04-25
[10]
뉴스
朴漢相(박한상) 사형확정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1995-08-26
[11]
뉴스
94 부끄러운 年(년) (1)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1994-12-12
[12]
뉴스
도피성 留學(유학)이 방탕 부른다 한약업사부부 피살로 본 실태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199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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