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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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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희동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국군 최초의 전투기 조종사이자 지휘관이다. 1924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나 일본군 소년비행병 과정을 거쳐 조종술을 익혔고, 1948년 조선경비대 항공부대에 입대하여 국군 최초의 항공기를 조종했다. 한국 전쟁 발발 직후 F-51D 전투기 인수요원으로 선발되어 북한군 남하 지연 작전에 참여했고, 이후 편대장, 대대장, 전대장 등을 역임하며 낙동강 방어 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휴전 후에는 공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지냈으며, 1968년 준장으로 예편했다. 을지무공훈장과 미국 비행훈장을 받았으며, 1989년 65세의 나이로 별세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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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동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박희동 장군
이름박희동
현지어 표기朴熙東
출생1924년 3월 7일
출생지충청남도 논산
사망일1989년 7월 19일
국적대한민국
성별
묘소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
군 경력
임관1948년 10월 25일 공군소위 (사관후보생 제3기)
복무 기간1948년 ~ 1968년
최종 계급대한민국 공군 준장
주요 참전 전투/전쟁남하 지연작전
낙동강 방어 전투
북진 반격작전
서훈
서훈 내역을지무공훈장
미국 비행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2. 생애

1924년 3월 7일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일본군 소년비행병 과정을 통해 조종술을 익혔으며, 해방 후 대한민국 공군 창설 초기 조종사로 활동했다. 한국전쟁 당시 F-51D 무스탕 전투기 도입과 운용에 기여하며 주요 전투에 참전하였다. 전쟁 이후 제1전투비행단장, 공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고, 1968년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을지무공훈장 등을 수훈하였으며, 1989년 7월 19일 별세하여 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2]

2. 1. 군 경력

1924년 3월 7일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났다. 1940년 일본군 소년비행병 과정을 통해 조종술을 익혔다. 해방 후, 1948년 7월 조선경비대 항공부대에 항공병 제1기로 입대하여 국군 최초의 항공기인 L-4 연락기를 조종하였다. 조종 경력과 기량을 인정받아 같은 해 10월 25일 공군 소위(사관후보생 제3기)로 임관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공군 최초의 전투기인 F-51D 인수요원으로 선발되어 북한군 남하 지연작전에 참여하는 등 전쟁 초기부터 활약하였다. 전쟁 기간과 휴전 이후에는 제1전투비행대대장, 기술교육단장, 공군사관학교 교장, 공군대학 총장 등 주요 지휘관 및 교육 관련 보직을 역임했다. 1968년 준장으로 예편하였으며, 국군의 초기 전투 조종사이자 지휘관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을지무공훈장과 미국 비행훈장(Air Medal)을 수여받았다. 1989년 7월 19일, 향년 65세를 일기로 별세하여 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2]

2. 1. 1. 한국전쟁 참전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한민국 공군 최초의 전투기인 F-51D 인수요원 10명에 선발되었다. 그는 주일 미 공군의 이타즈케 기지에서 단 며칠간의 훈련만 받고 바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후 편대장으로서 지연작전과 낙동강 방어 전투, 북진 반격작전 등에서 근접항공지원 임무를 수행하며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전쟁 중에는 풍부한 전투비행 경험을 바탕으로 제1전투비행대대장(소령), 제1전투비행전대 작전처장 및 제1교육비행대장(중령), 제10전투비행전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을지무공훈장과 미국 비행훈장(Air Medal)을 수여받았다.[2]

2. 1. 2. 전후 활동

전쟁 중 풍부한 전투비행 경험을 토대로 휴전 이후에는 기술교육단장, 공군사관학교 교장, 공군대학 총장을 역임하였다. 1968년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박희동 준장은 국군의 첫 전투기조종사이자 지휘관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을지무공훈장과 미국 비행훈장(Air Medal)을 수여받았다. 1989년 7월 19일, 향년 65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으며 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2].

3. 낙동강 방어 전투

1950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인민군은 초반 지상군 전력의 우세를 이용하여 낙동강 외곽에 대한 포위망을 형성하여 한국군을 낙동강 이남의 좁은 공간에서 섬멸하고자 하였다.[3] 이에 한국군과 유엔군낙동강 선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설정하며 북한군의 공세에 대응하고자 했다.[3]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방어선을 성공적으로 지키고 역공세로 전환하는 데 항공전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3] 주된 전력은 미국 극동공군의 항공전력이었으나, 한국공군 역시 같은 작전에 참여하여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3]

3. 1. 근접항공지원작전

한미 지상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한국공군과 극동공군은 근접항공지원작전을 주로 사용하였다. 한국군의 작전적 후퇴와 미 지상군 전투부대 투입을 지원하기 위한 본격적인 항공작전은 1950년 6월 29일부터 시작되어 휴전까지 이어졌다.[3] 근접항공지원작전은 사전전투지시임무, 긴급출동임무, 공중대기임무의 세 가지 형태로 운용되었다.[3]

3. 1. 1. 긴급출동임무

1950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인민군은 초반 지상군 전력의 우세를 이용해 낙동강 외곽 포위망을 형성, 한국군을 낙동강 이남의 좁은 공간에서 섬멸하고자 했다. 이에 한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선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설정하고 북한군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 낙동강 방어선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역공세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항공전력이었다. 주력은 미국 극동공군이었으나, 한국공군도 같은 작전에 참여하여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3]

한미 지상군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공군과 극동공군이 주로 사용한 것은 근접항공지원작전이다. 한국군의 작전적 후퇴와 미 지상군 전투부대 투입을 지원하기 위한 본격적인 항공작전은 6월 29일부터 시작되어 휴전까지 이어졌다. 근접항공지원작전은 세 가지 형태(사전전투지시임무, 긴급출동임무, 공중대기임무)로 운용되었다. 이 세 가지 임무 중 가장 많이 활용된 것이 긴급출동임무였다. 이는 조종사가 항공기에 미리 연료와 탄약을 탑재하고 대기하다가, 전선으로부터 항공 지원 요청이 오면 지정된 지역으로 급파되어 특정 목표물을 공격하는 방식이었다.[3]

참조

[1] 뉴스 공군의 최초 전투기 F-51 인수.출격 재연식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21-11-09
[2] 웹인용 전쟁·군사정보 > 이달의 호국인물 {{!}} 전쟁기념관 https://www.warmemo.[...] 2021-11-07
[3] 간행물 안보논단 : 낙동강방어작전의 항공작전 한국군사학회 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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