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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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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조음은 강소성 우현 출신의 청나라 관료이자 서예가이다. 1852년 진사가 된 후 시독학사, 군기대신 등을 역임했으며, 좌종당을 변호했다. 책과 금석 비문의 수장가이자 감정가로 명성이 높았으며, '반신안'으로 불렸다. 저서로 『방희재총서』, 『반고루이기관식』 등이 있으며, 1890년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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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조음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판조음의 초상
본명판조음
보이인(伯寅)
룽웨이둥톈주(龍威洞天主)
시호원친(文勤)
출생1830년
사망1890년
국적청나라
직업관리, 예술품 수집가
관직
문과 급제진사
군기대신1882년 ~ 1883년
공부상서1886년 ~ 1891년
병부상서 대리1879년
형부상서 대리1879년 ~ 1883년
가계
조부반시은
가족반조년 (동생)

2. 생애

반조음은 강소성 우현(현재의 쑤저우시) 출신으로 장원 반세은의 손자이다. 1852년 탐화로 진사가 되어 편수가 되었다. 이후 시독학사, 광록사경, 좌부도어사, 공부시랑, 형부시랑, 대리사경, 예부우랑, 공부상서, 형부상서, 병부상서를 거쳐 1882년 군기대신이 되었다.

1860년 좌종당이 탄핵당하자 "국가에게 호남이 없는 것은 하루도 없어야 하고, 호남에게 종당이 없는 것도 하루도 없어야 한다"고 변호했다.

책과 금석비문의 수장가이자 감정가로 이름이 높아 '반신안'(潘神眼)이라 불렸다. 금석 컬렉션은 진개기와 함께 이름을 떨쳤다.

아들을 얻지 못한 반조음은 1883년 부친상으로 은퇴했고, 1890년 베이징에서 세상을 떠났다. 동생 반조년(潘祖年; 1870–1925)이 가산을 상속했다. 사후 태자태부(太子太傅)와 문근(文勤)의 시호가 주어졌다.

2. 1. 출생과 가계

강소성 우현 (현재의 쑤저우시) 출신으로 장원 반세은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반증위(潘曾瑋)이다.

2. 2. 관직 생활

1852년 탐화로 진사가 되어 편수가 되었다. 이후 시독학사, 광록사경, 좌부도어사, 공부시랑, 형부시랑, 대리사경, 예부우시랑, 공부상서, 형부상서, 병부상서를 역임하였고, 1882년 군기대신에 취임했다. 사후 태자태부(太子太傅)와 문근(文勤)의 시호가 주어졌다.

2. 3. 좌종당 변호

1860년, 좌종당이 탄핵당하자 "국가에게 호남이 없는 것은 하루도 없어야 하고, 호남에게 종당이 없는 것도 하루도 없어야 한다"고 변호했다.

2. 4. 금석문 수집과 감정

책과 금석비문의 수장가이자 감정가로 널리 이름이 알려져 '반신안'(潘神眼)이라 불렸다. 진개기와 함께 금석 컬렉션으로 이름을 떨쳤다.

2. 5. 말년

반조음은 대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했다. 1883년, 부친상으로 은퇴했다. 1890년에 베이징에서 세상을 떴다. 그의 동생 반조년(潘祖年; 1870–1925)이 가산을 상속했다. 사후 태자태부(太子太傅)와 문근(文勤)의 시호가 주어졌다.

3. 저서

반조음은 滂喜斎叢書|방희재총서중국어, 攀古楼彝器款識|반고루이기관식중국어을 저술하였다.

3. 1. 주요 저서 목록


  • 滂喜斎叢書|방희재총서중국어
  • 攀古楼彝器款識|반고루이기관식중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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