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백년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백년설은 경상북도 성주 출신의 가수로, 1938년 일본에서 데뷔하여 1940년대 대표적인 남성 가수로 활동했다. 그는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었으나, 일제강점기 말 친일 가요를 부른 행적으로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해방 이후에는 대한가수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1963년 은퇴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1980년 사망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성주고등학교 동문 - 서석준
    서석준은 대한민국의 경제 관료로, 경제기획원 장관과 부총리를 역임하며 물가정책에 기여하고 상공부 장관 시절에는 중화학공업 투자 조정과 수출 증대에 기여했으나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으로 순국하였다.
  • 성주고등학교 동문 - 유성환
    유성환은 사회대중당 추천으로 경상북도 도의원을 지냈고 신민당 소속으로 제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국회의원 재임 중 국시 관련 발언으로 구속 기소되었으나 면책특권으로 공소 기각된 정치인이다.
  • 일제강점기의 작사가 - 윤석중
    윤석중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아동문학 운동을 이끌고 수많은 동요와 동시집을 발표하며 한국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 일제강점기의 작사가 - 김억
    김억은 평안북도 곽산 출신의 시인이자 번역가, 문학 평론가로, 《오뇌의 무도》와 《해파리의 노래》를 통해 한국 현대시의 기반을 다졌으며, 김소월의 스승이자 '김포몽'이라는 예명으로 대중가요 작사가로도 활동했지만, 친일 행적과 납북으로 인해 행적이 불분명한 인물이다.
  • 일제강점기의 트로트 가수 - 반야월 (작사가)
    반야월(본명 박창오)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에 활동한 작사가이자 가수로,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여 <불효자는 웁니다>를 불러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작사가로 전향하여 서민들의 애환과 향토적인 정서를 담은 수많은 곡을 작사하며 한국 대중가요사에 큰 영향을 남겼다.
  • 일제강점기의 트로트 가수 - 황금심
    황금심은 1936년 오케레코드 전속가수 선발 1등으로 데뷔하여 〈알뜰한 당신〉, 〈울산 큰애기〉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활동하다가 1996년 파킨슨병으로 투병, 2001년 사망한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백년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백년설
본명이창민
백년설 인터뷰 사진
출생일1914년 1월 19일
출생지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사망일1980년 12월 6일
사망지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장르트로트
배우자심연옥
종교불교 → 여호와의 증인
활동 시기1934년 ~ 1963년
직업가수
본명 (한자)李昌民

2. 생애

백년설은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나 성주농업보습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문학과 연극에 관심을 가졌으며, 1934년 우연한 기회로 데뷔했다. 1938년 일본에서 〈유랑극단〉을 취입하며 가수로 데뷔한 후,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등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며 194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활동했다. 그의 창법은 구수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1]

1941년 지원병제가 실시되면서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그대와 나〉 등 친일 가요를 불러 친일파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당시 대중가수의 사회적 위상이 낮았다는 점이 인정되어 기각되었다.[1]

1958년 대한가수협회를 창설하고 회장을 역임했으며, 1961년 한국연예협회 기획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1963년 은퇴 후 심연옥과 결혼[2]하고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 종교 활동에 전념했다. 197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간 후, 1980년 그곳에서 별세했다.[1]

고향 성주에는 〈나그네 설움〉 노래비가 건립되어 있다. 그의 전기로는 이상희가 저술한 《오늘도 걷는다마는》이 있다.

2. 1. 유년 시절과 데뷔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나 성주농업보습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문학과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1]

1934년에 우연한 기회로 처음 데뷔한 그는 1938년 일본에서 〈유랑극단〉을 취입하여 가수로 데뷔하였고 〈두견화 사랑〉, 〈마도로스 수기〉 등을 연속 유행시켰다. 1940년 발표되어 이후 오랫동안 널리 불린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이 대표곡이며, 이 밖에도 〈삼각산 손님〉, 〈고향 길 부모길〉, 〈남포불 역사〉, 〈눈물의 백년화〉, 〈산팔자 물팔자〉, 〈천리정처〉, 〈아주까리 수첩〉 등 히트곡이 많다.[1]

〈유랑극단〉 취입과 관련된 일화로, 처음 이 곡을 받아 연습할 때 가사는 단지 1소절만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활용하여 즉석에서 그 노래의 작사를 완성하고 노래연습을 마쳐 취입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독보적인 가수의 행보를 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1]

2. 2. 1940년대 대표 가수

1940년대를 대표하는 남자 가수였다.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모은 남인수, 김정구, 진방남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한 편이라면, 백년설은 음정을 흔들어 구수하면서도 듣는 이에게 절규하는 듯한 독창적인 호소력이 특징이었다. 듣는 이에게 친근한 한국의 얼을 담은 맛을 주는 백년설의 창법은 서민적인 취향의 노래와 잘 어울려 오랫동안 절대적인 인기를 유지했다.[1]

2. 3. 친일 행적 논란

1941년 일제 강점기에 지원병제가 실시되면서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그대와 나〉와 같이 지원병으로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친일 가요를 불러 친일파 논란이 일었다. 당시 최고 가수였던 백년설은 남인수, 박향림과 함께 이 노래를 불렀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백년설을 남인수와 함께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명시된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심의 대상자 명단에 올렸지만, 당시 대중 가수의 사회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기각되었다.[1]

2. 4. 해방 이후 활동과 은퇴

1958년 대한가수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을 지냈으며, 1961년 한국연예협회 기획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1963년 은퇴 후 가수 심연옥과 결혼[2]하고 여호와의 증인에 귀의하여 연예계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이후 국제 무역을 운영하다 1979년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갔으며, 약 2년 후인 1980년 미국에서 별세했다.[1]

3. 평가 및 영향

백년설은 1940년대를 대표하는 남자 가수로, 남인수, 김정구, 진방남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가진 반면, 백년설은 음정을 흔들어 구수하면서도 절규하는 듯한 독창적인 호소력이 특징이었다.[1] 이러한 창법은 서민적인 노래와 잘 어울려 오랫동안 큰 인기를 누렸다.

1941년 지원병제가 실시되면서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그대와 나〉 등 지원병 참전을 독려하는 친일 가요를 불러 친일파 논란이 있었다.[1]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백년설을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심의 대상자 명단에 올렸으나, 당시 대중 가수의 낮은 사회적 위상을 고려하여 기각했다.[1]

4. 주요 작품

1938년 일본에서 〈유랑극단〉을 취입하여 가수 데뷔하였고 〈두견화 사랑〉, 〈마도로스 수기〉 등을 연속 유행시켰다. 〈유랑극단〉과 관련된 일화는 취입을 위해 이곡을 받아 처음으로 연습을 할 때 가사는 단지 1소절만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활용하여 즉석에서 그 노래의 작사를 완성하고 노래연습을 마쳐 취입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독보적인 가수의 행보를 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1]

1940년 발표되어 이후 오랫동안 널리 불린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이며, 이 밖에도 〈삼각산 손님〉, 〈고향 길 부모길〉, 〈남포불 역사〉, 〈눈물의 백년화〉, 〈산팔자 물팔자〉, 〈천리정처〉, 〈아주까리 수첩〉 등 히트곡이 많이 있다.

5. 기념

경상북도 성주에는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로 시작되는 〈나그네 설움〉의 가사를 새긴 노래비가 건립되어 있다.

참조

[1] 서적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Ⅱ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
[2] 뉴스 "[이야기로 듣는 옛노래] 전화통신 ① - 전화 첫 등장 … 애틋한 사랑 고백" http://www.cctoday.c[...] 충청투데이 2007-06-09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