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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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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아면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화순군에 위치한 면으로,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한 시대에는 벽비리국의 일부였고, 백제 시대를 거쳐 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며 행정 구역 명칭과 소속이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1932년 내북면과 외북면이 합쳐져 북면이 되었고, 2020년 1월 1일 현재의 백아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6개의 법정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사무소는 이천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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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면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백아면
한자 표기白鵝面
영문 표기Baega-myeon
면사무소 위치백아면 학천길 26 (이천리)
홈페이지백아면사무소
행정 구역
광역시/도전라남도
시/군/구화순군
통계 정보
면적85.4
세대988
세대 조사 기준일2016년 6월 30일
인구1578
인구 조사 기준일2022년 3월
법정리 수16
행정리 수21
반 수62

2. 역사

청동기 시대부터 백아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증거는 면내에 분포하는 62기의 고인돌 유적을 통해 알 수 있다. 마한 시대에는 벽비리국(벽卑里國)의 일부인 두부지현(豆夫只縣)의 중심지였으며, 백제 시대에도 두부지현의 일부로 존재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두부지현이 동복현(同福縣)으로 개칭되어 곡성군에 편입되었고, 1018년(고려 현종 9년)에는 보성군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1280년(고려 충렬왕 6년) 승려 조염의 관향이라 하여 동복현에 감무(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파견되었으며, 1396년(조선 태조 5년)에는 동복감무가 화순현을 겸임하기도 했다. 1405년(조선 태조 5년) 동복현의 감무가 화순현으로 옮겨졌고, 1407년(조선 태조 7년) 동복현과 화순현이 합쳐져 복순현(福順縣)이 되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년) 복순현은 화순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416년(조선 태종 16년) 화순현과 동복현이 다시 분리되면서 동복현에 현감이 파견되었다. 1655년(조선 효종 6년) 동복현 객사에 불이 나 동복현이 폐지되고 화순현에 합쳐졌으나, 1664년(조선 현종 5년) 다시 화순현과 동복현으로 분리되었다.

1759년 발간된 여지도서(與地圖書)와 1789년(조선 정조 13년)의 호구총수에 따르면, 동복현은 내북면(內北面)과 외북면(外北面)으로 나뉘어 있었다. 1864년(조선 고종 1년)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동복현이 내북면과 외북면으로 분할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895년(조선 고종 32년)에는 나주부 동복군 내북면, 외북면이 되었고, 1896년(조선 고종 33년) 13도제 실시에 따라 전라남도 동복군 내북면(20리), 외북면(20리)이 되었다. 1910년 10월 1일, 면사무소가 설치되기 시작하면서 내북면은 약수리에, 외북면은 원리에 면사무소를 두었다.

1914년 3월 1일, 부군면 통폐합으로 동복군이 폐지되고 화순군에 편입되면서 내북면(8개리)과 외북면(8개리)이 되었다. 1932년 11월 1일, 내북면과 외북면을 합하여 북면으로 칭하고 면사무소를 이천리에 설치하였다.

1950년 11월, 한국 전쟁으로 면사무소가 소실되어 이서면 월산리로 대피하였다가 1952년 봄에 와천리로 옮겼다. 1954년 이천리 학천마을에 면사무소 청사를 신축하였고, 1983년 2월 16일에는 단층으로, 1990년 8월 23일에는 2층으로 증축하였다.

1984년, 동복수원지 확장공사로 와천리 일부가 수몰되어 지와몰마을과 모릿내마을이 폐촌되었다. 1988년 3월 26일, 주민 의견 수렴을 통해 외애리(外艾里)를 임곡리(林谷里)로 개칭하였다.

2020년 1월 1일, 북면에서 백아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1]

2. 1. 청동기 시대 ~ 조선 초기

청동기 시대 면내에 고인돌 62기가 분포하고 있어, 이 시기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1] 마한 시대에는 벽비리국(벽卑里國)의 일부인 두부지현(豆夫只縣)의 중심지였다.[1] 백제 시대에는 두부지현(豆夫只縣)의 일부로 존재하였다.[1]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두부지현이 동복현(同福縣)으로 개칭되어 곡성군에 속하게 되었다.[1] 1018년(고려 현종 9년) 동복현이 보성군 소속으로 변경되었다.[1] 1280년(고려 충렬왕 6년) 승려 조염의 관향이라 하여 동복현에 감무가 파견되었다.[1] 1396년(조선 태조 5년) 동복감무가 화순현을 겸임하였다.[1] 1405년(조선 태조 5년) 동복현의 감무가 화순현으로 옮겨졌다.[1] 1407년(조선 태조 7년) 동복현과 화순현이 합쳐져 복순현(福順縣)이 되었다.[1]

2. 2. 조선 중기 ~ 일제강점기


  • 1413년 (조선 태종 13년): 복순현이 화순현으로 개칭되었다.
  • 1416년 (조선 태종 16년): 화순현과 동복현이 분리되어 동복현에 현감이 파견되었다.
  • 1655년 (조선 효종 6년): 동복현 객사의 화재로 동복현이 폐현되고 화순현에 합쳐졌다.
  • 1664년 (조선 현종 5년): 화순현과 동복현이 다시 분리되었다.
  • 1759년: 여지도서에 따르면 동복현은 내북면(內北面)과 외북면(外北面)으로 나뉘어 있었다.
  • 1789년: 호구총수에 따르면 내북면은 15개 리, 외북면은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789년 당시 내북면과 외북면의 관할 리
내북면(內北面)외북면(外北面)


  • 1864년: 대동지지에 따르면 동복현은 내북면과 외북면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 1895년 (조선 고종 32년): 나주부 동복군 내북면, 외북면이 되었다.
  • 1896년 (조선 고종 33년): 13도제 실시에 따라 전라남도 동복군 내북면(20리), 외북면(20리)이 되었다.

1896년 당시 내북면과 외북면의 관할 리
내북면(內北面)외북면(外北面)


  • 1910년 10월 1일: 면사무소가 설치되기 시작하여, 내북면은 약수리에, 외북면은 원리에 면사무소를 설치하였다.
  • 1914년 3월 1일: 부군면 통폐합으로 동복군이 폐지되고 화순군에 편입되어 내북면(8개리)과 외북면(8개리)이 되었다.

1914년 당시 내북면과 외북면의 관할 리
내북면(內北面)외북면(外北面)

[1]

2. 3. 1932년 이후 ~ 현재

1932년 11월 1일, 내북면과 외북면이 합쳐져 북면이 되었고, 면사무소는 이천리에 설치되었다.[1] 1950년 11월, 한국 전쟁으로 면사무소가 소실되어 이서면 월산리로 대피하였다.[1] 1952년 봄, 이서면 월산리에서 와천리로 면사무소를 이전하였다.[1] 1954년, 이천리 학천마을에 면사무소 청사를 신축하였다.[1]

1983년 2월 16일, 면사무소 청사를 단층으로 신축하였다.[1] 1984년, 동복수원지 확장공사로 와천리 일부가 수몰되어 지와몰마을과 모릿내마을이 폐촌되었다.[1] 1988년 3월 26일, 외애리(外艾里)가 임곡리(林谷里)로 개칭되었다.[1] 1990년 8월 23일, 면사무소 청사를 2층으로 증축하였다.[1]

2020년 1월 1일, 북면에서 백아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1]

3. 행정 구역

법정리한자명행정리비고
길성리吉星里길성리
남치리藍峙里남치리
노기리蘆基里노기리
노치리蘆峙里노치리
다곡리多谷里다곡리
맹리孟里맹리
방리芳里방리
서유리西酉里서유1귀, 서유2귀
송단리松坍里송단1귀, 송단2귀
수리水里수리
옥리玉里옥리1귀, 옥리2귀
와천리瓦川里와천리
용곡리龍谷里용곡리
원리院里원리
이천리二川里이천1귀, 이천2귀면사무소 소재지
임곡리林谷里임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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