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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청화 칠보화훼문 사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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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자청화 칠보화훼문 사각병은 19세기 분원 관요에서 제작된 고급 청화백자 사각병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밝은 백색의 태토에 담청색 유약을 입히고, 매화, 칠보문, 화훼, 수류문을 청화로 그렸다. 특히 일본 에도 시대 유행했던 송피릉 화창과 화류문이 사용되어 한일 도자 양식 교류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굽 바닥에 "무신 경슈궁三" 명문이 음각되어 1848년 경수궁 궁묘에서 사용된 의례용기로 추정된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유태의 품질과 조형적 완성도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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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청화 칠보화훼문 사각병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백자청화 칠보화훼문 사각병
한자 표기白磁靑畵 七寶花卉文 四角甁
지정 종류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지정 번호402
지정일2017년 4월 13일
소재지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시대조선시대
소유자이화여자대학교

2. 지정 사유

19세기 분원 관요에서 제작된 고급 청화백자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유태(釉胎)의 품질과 조형적 완성도가 뛰어나다. 일본 에도 시대에 유행한 송피릉(松皮菱) 화창과 화류문이 사용되어 조선과 일본의 도자 양식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굽 바닥 중앙에 "무신 경슈궁三"이라는 음각 명문이 있어 1848년 전후 경수궁(慶壽宮) 궁묘에서 사용된 의례용기로 추정된다. 이러한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할 가치가 있다.[1]

3. 조사 보고서

조선 19세기 전반 분원가마에서 제작된 청화백자 사각병으로, 문양 중에는 일본에서 유행한 송피릉(松皮菱)이 표현되어 있어 한일 도자 양식 교류의 일면을 보여준다. 굽 바닥면에는 "무신 경슈궁三"이라는 한글명이 음각되어 있어 제작 시기와 사용처를 추정할 수 있다.[1]

이 유물은 19세기 분원 관요에서 제작된 고급품 각병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유태(釉胎)의 품질은 물론 조형적으로도 뛰어나다. 특히 송피릉 화창과 화류문은 일본 에도 시대에 유행한 문양으로, 외래적 요소를 수용한 19세기 조선 백자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 굽 바닥에 새겨진 "무신경슈궁三" 명문을 통해 1848년 전후 경수궁 궁묘에서 사용된 의례용기임을 추정할 수 있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

3. 1. 제작 기법 및 특징

밝은 백색의 정선된 태토(도자기를 만드는 흙)를 사용하였으며, 표면에는 엷은 푸른색을 띠는 반투명 유약을 고르게 발랐다. 유약 층에는 미세한 기포가 있지만 투명도가 높고, 유약이 잘 녹아 표면에 빙열(미세한 금)이 없으며 은은한 광택이 난다.[1]

몸체는 판 모양으로 만들거나 속을 파낸 후 밑판을 붙여 만들고, 물레로 만든 주둥이를 붙여 만든 병이다. 어깨 부분은 모서리를 비스듬하게 깎아내어 조형적인 완성도를 높였다.[1]

3. 2. 문양

몸체 4면에는 매화, 칠보, 화훼, 수류문을 번갈아 청화로 그렸는데, 특히 모든 면에 일본에서 송피릉이라고 부르는 지그재그형 화창을 구성하여 그 안에 칠보와 화훼를 표현하였다.[1] 이러한 송피릉과 화류문은 에도 시대에 유행했던 것으로, 조선 백자에서는 이 유물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1]

3. 3. 명문

굽 바닥면 중앙에는 사용자가 새긴 "무신 경슈궁三"이라는 한글명이 음각되어 있다. 경수궁(慶壽宮)은 정조의 후궁인 화빈 윤씨(1765~1824)의 궁호이며, 사후에 그녀의 신위를 모신 사당 이름이기도 하다.[1] 무신년은 1788년, 또는 1848년으로 좁혀볼 수 있는데, 유물의 양식을 보면 1848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된다.[1]

이 명문의 진위는 단정하기 어려우나, 유물의 품격이나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당시의 명문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따라서 이 유물은 19세기 전반(1848년 이전) 분원가마에서 제작되어 경수궁 궁묘(宮廟)에서 사용된 의례용기로 볼 수 있다.[1]

3. 4. 보존 상태

구연부 외면 일부(약 1cm)가 결손되었으나, 그 외 훼손 및 수리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1] 굽 바닥면의 모래를 갈아낸 사용 흔적과 몸체 곳곳에 미세하게 긁힌 흔적이 남아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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