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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 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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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클라호마 룬석은 오클라호마 주에서 발견된 여러 비문을 지칭하며, 헤브너 룬석, 포토 룬석, 쇼니 룬석 등이 포함된다. 이 룬석들은 바이킹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었으나, 고고학적, 언어학적 연구 결과 대부분 현대에 제작되었거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암각화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헤브너 룬석은 룬 문자의 해석, 주변 지역의 바이킹 유물 부재, 룬 문자의 부자연스러운 특징 등으로 인해 진위 논쟁이 있으며, 전문가들은 19세기 제작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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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 룬석
개요
헤브너 룬스톤
헤브너 룬스톤
종류
발견된 룬스톤헤브너 룬스톤
파인 크리크 룬스톤
페이즐리 룬스톤
쇼니 룬스톤
특징
비판적 견해대부분의 학자들은 룬스톤이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함.
지질학적 증거룬 문자가 새겨진 암석의 풍화 정도가 자연적인 풍화 속도와 일치하지 않음.
룬 문자새겨진 룬 문자가 고대 노르드어와 일치하지 않거나,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음.
역사적 증거19세기 후반 이전에는 오클라호마에 바이킹이 왔었다는 기록이 없음.
옹호론일부 아마추어 역사학자들은 룬스톤이 바이킹의 오클라호마 방문 증거라고 주장함.
쇼니 룬스톤1960년대에 발견
암석 표면에 새겨진 룬 문자가 희미하고 불분명함.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음.
헤브너 룬스톤
발견 장소오클라호마주 르플로어 카운티 헤브너 근처
비문 내용"Gnomon 만든이", "계곡", "G.N." 등으로 해석됨.
크기큰 사암 바위
보존 상태헤브너 룬스톤 주립공원에 보존되어 있음.
파인 크리크 룬스톤
발견 장소오클라호마 남동부 파인 크리크
특징작은 사암 조각에 룬 문자가 새겨져 있음.
현재 위치오클라호마 역사학회 소장.
페이즐리 룬스톤
발견 장소오클라호마주 페이즐리 근처
특징작은 암석에 룬 문자가 새겨져 있음.
논란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음.

2. 헤브너 룬스톤 (Heavener Runestone)

헤브너 룬석


헤브너 룬석(Heavener Runestone)은 오클라호마주 르플로어 군의 헤브너 근처 헤브너 룬석 공원에 위치한 유물이다. 돌에는 ᚷᛆᛟᛗᛖᛞᚨᛐ 형태의 룬 문자가 새겨져 있으며,[1] 그 정확한 의미와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존재한다.

이 룬석의 진위 여부는 학계에서 주요 논쟁거리이다. 고고학자 켄 페더는 란스 오 멕스와 같은 명확한 바이킹 정착 증거가 미국 중서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의문을 제기했다.[2] 고고학자 라일 톰프슨 역시 헤브너 지역의 바이킹 관련 고고학적 증거 부족, 불명확한 번역 가능성 등을 이유로 현대의 창작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3] 웁살라 대학교의 헨릭 윌리엄스 교수 또한 룬 문자의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바이킹 시대의 특징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하며, 19세기의 것일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4]

이러한 학술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헤브너 룬석은 지역 사회에서 중요한 상징물로 여겨진다. 1991년에는 인근 포토(Poteau)에 위치한 칼 알버트 주립 칼리지가 이 룬석을 기념하여 학교 마스코트를 바이킹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2. 1. 룬 문자와 해독



헤브너 룬석은 오클라호마주 르플로어 군의 헤브너 근처 헤브너 룬석 공원에 위치해 있다.

돌에는 ᚷᛆᛟᛗᛖᛞᚨᛐ 문자가 새겨져 있다.[1] 이 문자 대부분은 고대 푸트르크에 속하지만, 마지막 'L'(ᚨ)은 마지막 'A'(ᛐ)와 반전되어 있고, 두 번째 문자(ᛆ)는 젊은 푸트르크의 짧은 가지 'A'이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 읽으면 gaomedal이 되지만, 일반적으로 두 번째 문자는 반전된 고대 푸트르크 'N'(ᚾ)을 의도한 것으로 여겨져 gnomedal로 해독된다. 이는 "노움 계곡" 또는 개인 이름 "G. Nomedal"을 의미할 수 있다. 한편, 공원 방문자 센터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두 번째 문자(ᛆ)를 'L'로 해석하여, 비문이 "Glome에 속한 계곡" 또는 "Glome의 계곡"을 의미하는 표지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룬석의 진위와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인 견해가 있다. 고고학자 켄 페더는 캐나다 동부에서 바이킹 정착 증거가 발견된 것과 달리, 헤브너 근처나 미국 중서부에서는 유사한 고고학적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2]

고고학자 라일 톰프슨은 2007년 발표한 연구에서 헤브너 룬석 주변에 바이킹 관련 문화적 증거가 없고, 새겨진 문자를 고대 노르드어로 명확하게 번역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가장 그럴듯한 번역으로 'Gnome Dale'(노움의 계곡)을 제시하면서도, 돌을 새긴 주체는 헤브너 인근에 초기 정착했던 스칸디나비아 이주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또한, 이 지역의 다른 유사 룬석들은 현대에 만들어졌거나 아메리카 원주민 암각화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분석하며,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헤브너 룬석 역시 현대의 창작물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지었다.[3]

웁살라 대학교의 북유럽 언어학 교수인 헨릭 윌리엄스는 2015년 오클라호마 방문 당시, 헤브너 룬석이 크기와 인상적인 모습만으로는 주목할 만하지만, 연대는 19세기로 보이며 10~11세기 바이킹 시대의 것일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그는 비문에 단어 끝맺음이 없고, 바이킹 시대 비문에서 흔히 보이는 레이아웃이나 장식이 전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아이슬란드나 그린란드에도 바이킹 시대 이전의 룬 비문이 없다는 점을 들어, 스칸디나비아에서 오클라호마까지 바이킹이 직접 건너와 비문을 남겼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언급했다.[4]

2. 2. 진위 논쟁

헤브너 룬석의 진위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다. 고고학자 켄 페더는 캐나다 동부에서는 바이킹의 존재를 증명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었지만, 헤브너 근처나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는 유사한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노르드인들이 오클라호마에 그들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거를 남기는 데에 더 까다로웠을 것 같지는 않다"고 언급하며, 고고학적 증거 부족을 근거로 룬석의 진위성에 의문을 제기했다.[2]

고고학자 라일 톰프슨(Lyle Tompsen) 역시 2007년 발표한 연구에서 헤브너 룬석의 진위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했다.[3]

  • 헤브너 지역 안이나 근처에서 바이킹과 관련된 문화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 돌에 새겨진 문자를 고대 노르드어로 명확하게 번역할 방법이 없다.
  • 가장 가능성 있는 번역은 'Gnome Dale'(노움의 계곡)인데, 이는 바이킹 시대의 전형적인 비문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 19세기 이후 헤브너 근처에 정착한 스칸디나비아 출신 이주민들이 이 돌을 새겼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 이 지역에서 발견된 다른 소위 '룬석'들은 현대에 만들어졌거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암각화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톰프슨은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 이 돌은 현대의 창작물로 간주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결론지었다.[3]

웁살라 대학교의 북유럽 언어학 교수인 헨릭 윌리엄스(Henrik Williams) 또한 2015년 오클라호마 방문 당시 헤브너 룬석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룬석의 크기와 인상적인 모습은 인정하면서도,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19세기의 것으로 보이며, 바이킹 시대인 10~11세기의 것일 가능성은 20% 정도로 낮게 평가했다. 윌리엄스는 비문에 단어 끝맺음이 없고, 바이킹 시대 비문에서 흔히 보이는 레이아웃이나 장식이 전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발견된 미국 비문 중 어떤 것도 레이아웃이나 장식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패턴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아이슬란드그린란드에도 바이킹 시대 이전의 룬 문자가 없다는 점을 언급하며, "스웨덴에서 헤브너까지는 큰 도약입니다"라고 지적하여 지리적 개연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4]

이러한 학계의 비판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헤브너 룬석은 지역 사회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1991년 인근 포토(Poteau)에 있는 칼 알버트 주립 칼리지는 룬석을 기념하여 학교 마스코트를 바이킹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2. 3. 헨릭 윌리엄스 교수의 견해

웁살라 대학교의 북유럽 언어학 교수인 헨릭 윌리엄스(Henrik Williams)는 2015년, 웁살라 대학교 및 웁살라 대학교 미국 친구들과 협력하여 미국 룬 연구 협회가 후원하는 투어의 일환으로 오클라호마를 방문했다.[4] 그는 포토(Poteau) 상공 회의소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헤브너 룬석에 대해 "단지 그 크기와 인상적인 특성만으로도 제가 세계에서 본 것 중 20위 안에 들 것"이라고 언급하며 그 가치를 인정했다.[4]

그러나 윌리엄스는 이 룬석이 실제 바이킹 시대의 유물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헤브너 룬석이 19세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으며,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의 것일 확률은 20%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았다.[4] 윌리엄스가 이러한 판단을 내린 근거는 다음과 같다.

  • 비문의 끝맺음 방식: 그는 "모든 단어에는 끝맺음이 있으며, 1,000년 전과 500년 전에는 그러했는데, (헤브너 룬석의 비문에는) 그것이 없어 우리가 불안해하는 점 중 하나"라고 지적하며, 고대 노르드어 비문의 일반적인 형식과 다르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4]
  • 배치 및 장식의 부재: 윌리엄스는 "발견된 미국 내 (룬 문자로 추정되는) 비문 중 어떤 것도 레이아웃이나 장식이 전혀 없다"고 언급하며, 이는 진정한 바이킹 룬스톤에서 발견되는 특징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4]
  • 지리적 개연성 부족: 그는 "아이슬란드나 그린란드에는 바이킹 시대나 그 이전 시대의 비문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바이킹의 주요 활동 지역이었던 곳에서도 룬 비문이 발견되지 않는데, "스웨덴에서 헤브너까지는 너무 큰 (지리적) 도약"이라고 설명하며 오클라호마에서 바이킹 룬석이 발견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았다.[4]

3. 포토 스톤 (Poteau Stone)

1967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러플로어 군 포토 근처에서 초등학생들이 또 다른 룬석인 포토 석(Poteau Stone)을 발견했다. 이 돌은 사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는 약 약 38.10cm이고, 비교적 풍화의 흔적이 적은 편이다. 돌에는 ᚷᛆᛟᛁᛖᚨᛚᚦ 라는 8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고고학자 라일 톰슨(Lyle Tompsen)은 이 문자들이 고대 푸타르크와 젊은 푸타르크, 심지어 '가짜' 문자가 섞여 있으며, 헤브너 룬석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3] 반면, 스웨덴의 룬 문자 전문가 헨리크 윌리엄스(Henrik Williams) 교수는 돌과 새겨진 자국의 풍화 정도로 볼 때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진위 논란이 있다.[5]

3. 1. 발견과 특징

1967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러플로어 군 포토 근처에서 초등학생들이 포토 석(Poteau Stone)을 발견했다.

톰슨(Thompson)도 이 돌을 조사했는데, 재질은 사암이며 길이는 약 38.10cm이고 풍화된 흔적이 거의 없다고 기록했다. 돌에는 ᚷᛆᛟᛁᛖᚨᛚᚦ 라는 8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톰슨은 "이 돌에는 다양한 시대의 글자와 알파벳이 섞여 있다"고 언급하며, 이를 GLOIEA(?)(?)로 해독했다.

톰슨은 8개의 문자 중 5개는 고대 푸타르크, 1개는 소 푸타르크이며, 나머지 2개는 "가짜" 문자라고 분석했다. 그는 "마지막 두 문자를 가짜로 본다면, 5개는 헤브너 룬석에도 있는 문자이다. 남은 하나는 직선 형태이다. 따라서 포토 석은 헤브너 룬석을 모방하고 가짜 룬 문자 3개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3]

스웨덴의 헨리크 윌리엄스(Henrik Williams) 교수는 이 비문이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 그는 돌과 도구를 사용한 자국이 바이킹 시대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풍화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5]

3. 2. 진위 논쟁

1967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러플로어 군의 포토 인근에서 초등학생들이 포토 룬석을 발견했다.

고고학자 라일 톰슨(Lyle Tompsen)은 이 돌을 조사한 후, 사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는 약 38.10cm이고 풍화의 흔적이 거의 없다고 기록했다. 돌에는 ᚷᛆᛟᛁᛖᚨᛚᚦ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톰슨은 이를 "GLOIEA(?)(?)"로 잠정적으로 번역하며 "다양한 시대의 글자와 알파벳이 혼합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8개의 문자 중 5개는 고대 푸타르크, 1개는 젊은 푸타르크이며 나머지 두 개는 "가짜" 룬 문자라고 분석했다. 톰슨은 "마지막 두 문자를 제외하면, 5개의 룬 문자는 헤브너 룬석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남은 하나는 단순한 직선 형태이다. 따라서 포토 룬석은 헤브너 룬석을 모방하면서 세 개의 가짜 룬 문자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3]

한편,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의 룬 문자 전문가인 헨리크 윌리엄스(Henrik Williams) 교수는 포토 룬석의 비문이 현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는 돌 자체와 글자를 새긴 도구 자국이 바이킹 시대의 유물이라면 당연히 보여야 할 만큼의 풍화 작용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5]

4. 쇼니 스톤 및 포니 스톤 (Shawnee and Pawnee Stones)

1969년 오클라호마 주 쇼니에서 발견된 쇼니 룬석과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포니 룬석은 오클라호마에서 발견된 여러 룬석들 중 일부이다.[6] 오클라호마 대학교 고고학 교수 돈 G. 와이코프(Don G. Wyckoff)는 이 룬석들을 조사한 후, 비교적 최근에 새겨진 현대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7]

4. 1. 발견과 특징

쇼니 룬석


쇼니 룬석은 1969년 오클라호마 주 쇼니에서 세 명의 아이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 장소는 아칸소 강의 지류인 노스 캐나디안 강에서 약 약 1.61km 떨어진 곳이다.[6]

오클라호마 대학교 고고학 교수인 돈 G. 와이코프는 쇼니 룬석을 조사한 결과, 부드러운 붉은색 페름기 사암으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비문이 놀랍도록 신선하며 돌의 자연 표면만큼 마모되거나 풍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와이코프는 1957년에 새겨진 글자가 있는 다른 페름기 사암 노출부가 더 마모되고 풍화된 것을 근거로, 쇼니 룬석이 비교적 최근에 새겨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7] 쇼니 룬석과 포니 룬석은 모두 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비문은 룬 문자 ᛗᛚᛞᛟᚲ로 쓰여 있으며, 이는 표준 Elder Futhark 문자로 "mldok" 또는 "midok"으로 읽힌다.

4. 2. 진위 논쟁



오클라호마 대학교 고고학 교수인 돈 G. 와이코프(Don G. Wyckoff)는 쇼니 룬석을 조사한 결과, 이것이 현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룬석이 부드러운 붉은색 페름기 사암으로 만들어졌다고 언급하며, 새겨진 비문이 "놀랍도록 신선하며 돌의 자연 표면만큼 마모되거나 풍화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와이코프는 조사팀이 1957년에 새겨진 글자가 있는 다른 페름기 사암 노출부를 확인했는데, 오히려 그 글자들이 쇼니 룬석의 비문보다 더 마모되고 풍화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7]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와이코프는 쇼니 룬석과 포니 룬석 모두 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결론지었다.[7] 쇼니 룬석의 비문은 룬 문자 ᛗᛚᛞᛟᚲ로, 이는 "mldok" 또는 "midok"으로 읽힐 수 있다.

5. 한국과의 연관성 (추가)

오클라호마 룬석과 한국 사이에 직접적인 역사적 또는 문화적 연결 고리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 없다. 이 유물은 주로 북유럽 바이킹의 미주 대륙 탐험 가능성과 관련된 논쟁의 중심에 있으며, 한반도 역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 어렵다.[1]

그러나 오클라호마 룬석을 둘러싼 진위 논쟁과 다양한 해석은 역사 유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유물의 발견과 해석 과정에서 과학적 검증과 객관적인 분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때로는 성급한 결론이나 민족주의적 열망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참고할 수 있다.[2] 역사학 연구와 해석에 있어 열린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엄밀한 고증과 비판적 사고를 통해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상기시킨다. 이는 한국의 고대사 연구나 문화유산 해석에서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3]

참조

[1] 웹사이트 The Heavener Runestone http://www.midwester[...]
[2] 서적 Encyclopedia of Dubious Archaeology: From Atlantis To The Walam Olum Greenwood 2010
[3] 간행물 An Archaeologist Looks at the Oklahoma Runestones ESOP 29, 2011: 5-43 | Lyle Tompsen https://www.academia[...] Academia.edu 2011-01
[4] 뉴스 Swedish Runologist Studies Heavener Runestone 'For Truth' http://swtimes.com/b[...] 2015-05-03
[5] 뉴스 Oklahoma runestone is impressive but not from Vikings, Swedish scholar says http://newsok.com/ar[...] NewsOK 2015-05-04
[6] 서적 Oklahoma Treasures and Treasure Tales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7] 문서 No Stones Unturned:Differing Views of Oklahoma's Runestones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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