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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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봉원사는 신라 말기인 889년에 도선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사찰이다. 고려 시대 보우의 중창과 조선 태조의 불사, 갑신정변의 요람으로 사용되는 등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재건되었으며, 1748년 현재 위치로 이전한 후 '새절'로 불리기도 했다. 1954년부터 시작된 불교계 분규로 태고종이 사찰을, 조계종이 토지 소유권을 갖게 되었으며, 한국 전쟁 중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다. 현재는 삼천불전, 16 나한상 등 주요 시설과 영산재, 단청 등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회 공헌 활동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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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 | |
---|---|
기본 정보 | |
![]() | |
위치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동 |
종파 | 태고종 |
상세 정보 | |
창건 시기 | 신라 경문왕대 |
창건자 | 도선국사 |
주요 문화재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1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2호 |
문화재 명칭 | 봉원사 대웅전 봉원사 미타전 |
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사길 120 (봉원동) |
역사 | |
창건 | 신라 경문왕 대,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 |
원래 위치 | 현재의 연세대학교 자리 |
이전 | 1748년(영조 24년) 현재 위치로 이전 |
역할 |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위패 봉안 왕실의 비호 |
사찰 명칭 변경 | 반야사(般若寺)에서 봉원사(奉元寺)로 변경 |
교육 기관 역할 | 경성제국대학의 전신인 관립한성외국어학교의 교사(校舍)로 사용 불교 강습소 개설 (1912년) 중앙불교전문학교 설립 (1930년) |
정화 운동 | 한국 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비호 아래 비구승 중심의 정화 운동 본거지 태고종의 중심 사찰 역할 |
주요 행사 | |
영산재 | 유네스코 지정 무형문화재 |
소장 문화재 |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1호 | 봉원사 대웅전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2호 | 봉원사 미타전 |
기타 |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목조관음보살좌상 감로도 칠성도 독성도 신중도 지장탱 현왕탱 청헌당 요사채 |
교통 | |
지하철 | 수도권 전철 2호선 아현역 또는 수도권 전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하차 후 버스 환승 |
2. 역사
신라 말기 889년(진성여왕 3년)에 도선이 반야사(般若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고려 공민왕 때 보우가 크게 중창하였다. 조선 태조는 삼존불을 조성해 봉원사에 봉안했고, 사후 태조의 초상이 봉안되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어졌고, 조선 영조 때까지 연세대학교 자리인 연희궁 터에 있었다. 1748년(영조 24년)에 지금의 터로 이전하면서 영조가 친필로 쓴 봉원사 현판을 내렸으나, 한국 전쟁 때 소실되었다. 이때부터 '새절'이라고 불렸다. 정조 때 8도승풍규정소(八道僧風糾正所)가 세워질 정도로 사세가 컸다.
조선 말기 이동인이 머물며 갑신정변의 요람이 되었다. 이동인은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 개화파 청년들과 교류하며 일본을 오가며 개화 문물을 전했다.
1954년부터 불교계 분규로 사찰 운영은 태고종이, 토지 소유권은 대한불교조계종이 갖게 되어 선암사와 함께 대표적인 분규 사찰로 꼽힌다.[2] 안산 기슭에 위치한 한국 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이다.[1] 50명이 넘는 승려들이 교육과 사회 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0년 일부가 파괴되었고,[1] 1966년 새 전각이 건립되었으나 서울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었다. 1991년 삼천불전 신축 중 화재로 대웅전이 소실되었다가 1994년 재건되었다.
2004년 여름, 연쇄 살인범 유영철이 봉원사 인근에 희생자 11구의 시신을 암매장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2. 1. 창건과 고려시대
신라 말기 진성여왕 3년인 889년에 도선이 처음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당시의 이름은 반야사(般若寺)였다.[2] 고려 공민왕 때 보우가 크게 중창하였다. 조선 태조는 불교에 심취하여 삼존불을 조성해 봉원사에 봉안하였고, 사후에는 태조의 초상이 봉안되기도 했다.2. 2. 조선시대
신라 말기 진성여왕 3년인 889년에 도선이 처음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의 이름은 반야사(般若寺)였다. 이후 고려 공민왕 때 보우가 크게 중창하였다. 조선 태조가 불교에 심취했을 때 삼존불을 조성해 봉원사에 봉안하였고, 사후에는 태조의 초상이 봉안되기도 했다.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어졌으며, 조선 영조 때까지 지금의 연세대학교 자리인 연희궁 터에 있었다.[1] 1748년 (영조 24년)에 지금의 터로 이전하였고, 영조는 친필로 봉원사라는 글씨를 쓴 현판을 내렸다.[1] 영조의 친필 현판은 한국 전쟁 때 소실되었다. 이때부터 새로 지은 절이라 하여 신도들 사이에서는 '''새절'''이라 불렀다. 정조 때 전국 승려의 풍기를 바로잡기 위한 8도승풍규정소(八道僧風糾正所)가 세워질 정도로 사세가 컸다.
조선 말기에는 승려 이동인이 머물러 갑신정변의 요람이 되었다. 이동인은 이 곳에서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 개화파 청년들과 교류하였고, 일본을 내왕하면서 이들에게 개화 문물을 전해주었다.
2. 3. 근현대
조선 말기에는 승려 이동인이 머물러 갑신정변의 요람이 되었다. 이동인은 이 곳에서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 개화파 청년들과 교류하였고, 일본을 내왕하면서 이들에게 개화 문물을 전해주었다.1954년부터 시작된 오랜 불교계 분규 과정에서 사찰 운영은 태고종이, 토지 소유권은 대한불교조계종이 갖게 되어 순천 선암사와 함께 대표적인 분규 사찰로 꼽힌다.[2] 안산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 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이다.[1] 50명이 넘는 승려들이 사찰에 거주하며 교육과 사회 복지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 전쟁 중인 1950년, 봉원사의 일부가 파괴되었다.[1] 1966년에 새로운 전각이 건립되었으나, 이후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었다. 1991년, 삼천불전을 신축하던 중 화재로 대웅전이 소실되었고, 1994년에 재건되었다.
2004년 여름, 연쇄 살인범 유영철이 봉원사 인근에 희생자 11구의 시신을 암매장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3. 주요 시설
안산 기슭에 있는 봉원사는 한국 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이다.[1] 50명이 넘는 승려들이 이곳에서 교육과 사회 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3. 1. 16 나한상

봉원사 경내에는 16개의 흰색 나한 조각상이 있다. 이들은 깨달음을 얻은 존재인 16명의 나한을 나타낸다. 테라바다 불교와 대승 불교에서 나한은 깨달음을 얻은 성자로, 다른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4. 문화재 및 활동
이만봉은 단청 분야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1]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영산재도 해마다 시연된다.[2] 문화재 지정 단체는 영산재보존회이며, 보유자는 범패 부분 김인식(법명 구해)이다.[2] 옥천범음대학을 함께 두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2]
4. 1. 영산재
이만봉은 단청 분야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1]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영산재는 해마다 시연된다.[2] 문화재 지정 단체는 영산재보존회이며, 보유자는 범패 부분 김인식(법명 구해)이다.[2] 옥천범음대학을 함께 두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2]
4. 2. 단청
이만봉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 기능보유자로, 단청 분야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4. 3. 기타 문화재
이만봉은 단청 분야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1]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영산재(靈山齋)도 해마다 시연된다.[1] 문화재 지정 단체는 영산재보존회이며, 보유자는 범패 부분 김인식(법명 구해)이다.[1] 옥천범음대학을 함께 두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1]
5. 사회 공헌 활동
안산 기슭에 있는 봉원사는 한국 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으로, 50명이 넘는 승려들이 이곳에서 교육과 사회 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1]
참조
[1]
간행물
봉원사 (奉元寺)
https://encykorea.ak[...]
Academy of Korean Studies
2024-06-18
[2]
뉴스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스님 기자회견 - 사찰지역 사회밀착형으로 운영
http://www.ccdailyne[...]
충청일보
2007-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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