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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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년) 고구려 승려 아도가 해천사로 창건한 사찰로, 통일신라 시대 도선이 중창하여 선암사로 개칭했다. 고려 시대 의천에 의해 천태종의 본거지로 번성했으나, 조선 시대 불교 탄압으로 폐사 위기를 겪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201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승선교, 삼층석탑, 매화 등 다양한 문화재와 특징적인 야생 차밭, 석조 등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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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 |
---|---|
기본 정보 | |
![]() | |
한글 | 선암사 |
한자 | 仙巖寺 |
로마자 표기 | Seonam-sa |
위치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 |
상세 정보 | |
산 이름 | 청량산 |
종파 | 태고종 (천태종 ⇒ 선종 ⇒ 조계종 ⇒ 태고종) |
사찰 격 | 태고종 총본산 태고종 태고총림 조선 31본산 (일제강점기) |
창건 연도 | 529년 (백제 성왕 7년) |
창건자 | 아도 |
중창 연도 | 875년 (신라 경문왕 15년) |
중창자 | 도선국사 |
별칭 | 해천사(海川寺) |
문화재 정보 | |
지정 종류 | 사적 |
지정 번호 | 507 |
지정일 | 2009년 12월 21일 |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
세계 유산 정보 | |
이름 |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
영문명 |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
지정 기준 | III |
등록 구분 | 문화유산 |
지정 번호 | 1562-6 |
지역 | 아시아·태평양 |
등재 연도 | 2018년 |
사이트 |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
2. 역사
529년 (백제 성왕 7년) 아도화상이 '''해천사'''를 창건한 것이 선암사의 기원이라고 전해지며, 이후 861년 (신라 경문왕 1년) 도선이 선암사를 창건하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다. 고려 시대에는 의천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천태종의 본거지로 삼아 번창했으나, 조선 선조 때 정유재란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복구는 늦어져 1660년에야 중창되었다.[8] 임진왜란으로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으나, 전쟁 이후 복구가 이루어졌고 1992년부터는 11세기 모습으로 복원하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5]
1407년 (조선 태종 7년)과 1424년 (조선 세종 6년)의 불교 탄압 당시에도 선암사는 폐사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복구되어 1540년 (조선 중종 35년) 일주문을 중수했고,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1660년부터 8년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다. 1798년 (조선 순조 22년)과 1823년 (조선 순조 23년)에 다시 중창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는 조선 31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었으며, 한국전쟁 때 전각 9동을 비롯한 총 65동의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현재 대웅전, 원통전 등 20여 동의 건물이 남아있다.[8] 현재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이며,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되었다.
2. 1. 고대
529년 (백제 성왕 7년)에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절을 짓고 '''해천사'''(海川寺)라고 부른 것이 선암사의 기원이라고 전해진다.[7] 875년 (신라 경문왕 15년)에 도선국사가 현재의 가람 위치에 절을 중창하고, 절 이름을 '''선암사'''로 개명했다.2. 2. 남북국 시대
861년(경문왕 1년) 도선이 선암사를 창건하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다고 전해진다.[8] 875년 (신라 경문왕 15년)에는 도선국사가 현재의 가람 위치에 절을 중창하고, 절 이름을 '''선암사'''로 개명했다.[7] 도선은 이곳에 대규모 사찰을 세우고 선암사(仙巖寺)라고 명명했는데, 운암사(雲岩) 및 용암사(龍岩)와 함께 "삼암사(三岩寺)"(세 개의 '바위' 절)의 으뜸 사찰로서 선불교 발전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2. 3. 고려 시대
529년(백제 성왕 7년)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절을 짓고 '''해천사'''(海川寺)라고 부른 것이 선암사의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고려 시대에 의천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천태종의 본거지로 번창했으나, 조선 선조 때 정유재란으로 큰 피해를 입어 절이 거의 소실되었다.[8]천태종의 중흥조로 알려진 의천(1055년 - 1101년)이 선암사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했다.
2. 4. 조선 시대
529년 (백제 성왕 7년)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절을 짓고 '''해천사'''(海川寺)라고 부른 것이 선암사의 기원이라고 전해진다.조선 선조 때 정유재란으로 큰 피해를 입어 절이 거의 소실되었다. 복구는 늦어져 1660년에야 중창되었다.[8] 임진왜란으로 선암사의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으나, 전쟁 이후 복구가 이루어졌다.[5]
1407년 (조선 태종 7년) 불교 탄압 당시 존속을 허가받은 88개 사찰 안에 선암사의 이름은 없어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1424년 (조선 세종 6년) 불교 탄압 때에도 존속을 허가받은 36개 사찰 안에 선암사의 이름은 없어 계속 폐사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복구되어, 1540년 (조선 중종 35년)에 일주문을 중수했다. 임진왜란 때 철불, 보탑, 부도, 문수전, 조계문, 변소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복구는 늦어져, 1660년 경준, 경잠, 문정에 의해 8년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다.
1798년 (조선 순조 22년) 해붕전령 등 7개의 전각이 중창되었다. 1823년 (조선 순조 23년) 본당 등이 소실되었다. 해붕, 눌암, 익종 등에 의해 다음 해부터 중창을 시작했다. 현재 건물의 대부분은 이때 건립된 것이다.
2. 5. 일제 강점기
1911년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사찰령 시행 규칙(7월 8일)에 의해 선암사는 조선 31본산으로 지정되었다.[7]2. 6. 현대
한국전쟁 이전에는 전각 9동을 비롯한 총 65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전쟁 중에 불에 타서 소실되었다. 현재는 대웅전, 원통전, 팔상전, 불조전(佛祖殿), 강선루(降仙樓) 등 크고 작은 20여 동의 건물이 남아있다.[8]태고보우 조사의 가풍을 이어받아 현재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2018년 6월 세계문화유산(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되었다.
순천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봄에는 매화,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동백꽃이 피어 사시사철 관광객이 많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사찰령 시행 규칙(7월 8일)에 의해 조선 31본산으로 지정되었다(1924년 이후는 조선 31본산).
조계종과는 노선 투쟁 (결혼 문제 등)과 재산 투쟁을 오랫동안 벌여 왔으며, 폭력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3. 문화재
wikitext
2001년에 개관된 성보박물관에는 대한민국의 보물 4점과 전라남도 지정 유형 문화재 5점, 불교 회화, 조각, 공예품 등 약 1천 8백여 점의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9]
종류 | 이름 | 비고 |
---|---|---|
대한민국의 보물 | 선암사 3층 석탑 | 보물 제395호, 대웅전 앞에 좌우로 서 있는 두 탑 |
대한민국의 보물 | 선암사 승선교 | 보물 제400호, 절 입구의 무지개다리 |
기타 | 삼인당(三印塘) | 불교 사상을 구현한 독특한 양식의 연못 |
기타 | 선암사 금동향로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 |
기타 | 팔상전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 |
기타 | 원통전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9호 |
기타 | 해우소 | 문화재자료 제214호 |
기타 | 각황전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7호 |
기타 | 중창비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
기타 | 선암사 백매 | 천연기념물 제488호 |
기타 | 일주문 | |
기타 | 마애여래입상 |
3. 1. 주요 문화재
2001년에 개관된 성보박물관에는 대한민국의 보물 4점과 전라남도 지정 유형 문화재 5점, 불교 회화, 조각, 공예품 등 약 1천 8백여 점의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9]- 대한민국의 보물
- 선암사 3층 석탑 (보물 제395호): 대웅전 앞에 좌우로 서 있는 두 탑이다.
- 선암사 승선교 (보물 제400호): 절 입구의 무지개다리이다.
- 기타
- 삼인당(三印塘): 불교 사상을 구현한 독특한 양식의 연못이다.
- 선암사 금동향로(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
- 팔상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
- 원통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9호)
- 해우소 (문화재자료 제214호)
- 각황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7호)
- 중창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 선암사 백매 (천연기념물 제488호)
- 일주문
- 마애여래입상
3. 1. 1.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順天 仙巖寺 東·西 三層石塔)은 승선교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대웅전 앞에 좌우로 서 있는 2기의 삼층석탑으로 보물 제395호이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규모와 수법이 서로 같아서 같은 사람의 솜씨로 동시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9]대웅전 앞마당 동쪽과 서쪽에 있는 이 삼층 석탑 한 쌍은 크기와 디자인이 거의 같으며, 같은 해에 건립되었다.
9세기 신라 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예로, 사리 (영적 스승의 화장 후 남은 진주 또는 수정 모양의 구슬)를 봉안한다. 탑의 주된 몸체와 지붕돌은 하나의 돌로 잘라냈다. 이중 기단에는 세 개의 기둥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주된 몸체의 각 면에는 두 개의 단순한 기둥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평평하고 넓으며 네 층의 받침대에 올려져 있으며, 모서리가 들려있다.
이 석탑은 보물 제395호로 지정되었다.[2]
3. 1. 2. 선암사 승선교
선암사 승선교(仙岩寺 昇仙橋)는 대한민국의 보물 제400호로, 조선 숙종 39년(1713년) 호암화상이 6년에 걸쳐 완공한 다리이다. 길이 14m, 높이 4.7m, 폭 4m이다.[10] 기저부에 별다른 가설이 없고 홍예(虹預) 전체의 문양은 반원형을 이루고 한 개의 아치로 이루어졌다. 다리 중심석 아래에는 석재가 조그맣게 돌출되어 있는데,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는 중생들을 보호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10]승선교는 길이 14m, 너비 3.5m의 반원 아치 형태의 화강암 다리이다. '승선(昇仙)'은 '신선이 승천한다'는 뜻이다. 조선 시대인 1713년부터 6년에 걸쳐 승려 환안(Hoan)이 건설했다. 한국의 오래된 석교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힌다.[2] 다리 중앙 하단부 아래에 조각된 용머리는 물의 흐름을 거슬러 위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악귀를 물리치려는 의도이다. 다리 아치는 아래 개울에 마법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강선루(정자)의 모습이 멀지 않은 곳에서 비쳐 보인다. 이 매력적인 다리는 아래 계곡과 조화를 이루어 영화 및 TV 프로그램 촬영 장소로 자주 사용된다.[2]
3. 1. 3.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선암사에서 대각암으로 올라가는 중간의 바위면에 새긴 불상으로, 약 7m 높이의 바위면에 옴폭 들어가게 새겼다.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솟아 있다. 눈·코·입이 균형 잡힌 얼굴은 원만하며 얼굴에 비해 귀가 크게 새겨져 《법주사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의 귀와 비슷하다.[9]
3. 1. 4. 일주문
일주문은 한국 불교 사찰 입구에 있는 첫 번째 문으로, 옆에서 보면 기둥 하나로 지탱하는 것처럼 보여 "일주(一柱)문"이라고 불린다. 이는 세상을 지탱하는 깨달음의 유일한 참된 길을 상징하며, 사찰과 세속의 경계를 나타낸다. 일주문은 의례적 정화를 상징하여, 사찰에 들어가기 전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도록 한다.
선암사 일주문은 조선 시대에 건립되었다. "조계문 상량식(上樑式) 고유문"에 따르면, 원래 일주문은 화재로 소실되어 1540년에 재건되었다. 병자호란 때 다시 파괴되었다가 1719년에 재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암사 일주문은 주변 숲과 조화를 이루며 부드러운 우아함을 발산한다. 입구 양쪽에 벽이 있고 앞에는 돌계단이 있다. 정교한 목공예는 독특하고 웅장함을 더한다.[2]
선암사 일주문은 보물 제96호이다.[4]
3. 1. 5. 팔상전
팔상전은 한국 불교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예배당으로, 석가모니의 생애 8단계를 묘사한 그림인 "팔상"이 있는 곳이다.선암사 팔상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둥에만 공포가 있고 맞배지붕을 가진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18세기 이전에 지어졌으며, 1704년과 1707년에 보수되었다.
선암사 팔상전은 유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되었다.
3. 1. 6. 원통전
원통전(圓通殿)은 관세음보살이 봉안된 곳이다. "원통"은 "주원융통(周圓融通)"(진리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모든 것을 관통한다)을 의미한다.
선암사 원통전은 1660년에 건립되었다. 이 건물은 다른 한국 불교 사찰의 원통전과는 다르게, 세 개의 구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쪽의 한 구획과 양쪽의 두 구획이 "T"자 형태를 이룬다. 1698년과 1824년에 두 차례 보수되었다.
원통전 내부에는 정조 (1752-1800)가 직접 쓴 "대복전(大福殿)" 현판이 걸려 있다. 정조는 선암사의 고승 눌암에게 100일 동안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기도를 부탁했다. 기도는 정조의 아들 순조 (1790-1834)의 탄생으로 응답되었다. 정조는 감사의 표시로 이 현판을 직접 써서 선암사에 하사했다.[2]
선암사 원통전은 유형문화재 제169호이다.
3. 1. 7. 선암사 해우소
선암사 해우소는 북쪽에 개방된 입구를 가진 직사각형의 목조 건물로, 지면보다 높은 곳에 지어졌다. 한쪽은 남성이 사용하고, 다른 쪽은 여성이 사용한다. 이 목조 건물에는 벽 상단에 환기 격자창이 설치되어 있다. 전형적인 야외 화장실이지만, 잘 관리되어 있으며, 흔한 악취가 나지 않는다. 해우소 입구에는 손 씻기를 위한 돌로 만든 세면대가 있다.
선암사 해우소의 기원을 나타내는 문서는 없지만, 임진왜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암사 해우소는 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되었으며, 화장실이 문화재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2]
3. 1. 8. 각황전
각황전(覺皇殿)은 장육전(長六殿)이라고도 하며, 정면에 있는 현판에는 "각황"이 석가모니불을 가리키며, "평균 키의 사람보다 두 배나 크다"고 적혀 있다.[1]이 전각이 처음 건립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861년에 대각선사에 의해 중수되었다.[1]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1660년에 재건되었다.[1] 1760년과 1801년에 다시 고쳐 지어졌다.[1]
각황전은 앞면과 옆면에 각각 공간이 있는 작은 전각이다.[1] 기단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큼직한 모서리 돌이 건물의 기둥을 받치고 있다.[1] 지붕은 우진각이며, 이중 처마를 가지고 있고, 기둥 사이에는 세 개의 공포가 놓여 있다.[1]
선암사 각황전은 유형문화재 제177호이다.[1]
3. 1. 9. 선암사 중창비
임진왜란(1592~1598)으로 선암사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이 비는 1707년 승려 약휴가 주도한 선암사 중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1]
비는 거북 모양 받침대를 가지고 있으며, 받침대 몸통과 머리 부분에는 용의 장식이 새겨져 있다.[1] 이 비는 조선 시대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며, 그 스타일의 가장 훌륭한 예 중 하나로 여겨진다.[1] 비 크기는 높이 5m, 너비 1.25m, 깊이 0.3m이다.[1]
비문에 "두 번째 일본의 침략으로 불에 탄 선암사를 승려 약휴 등이 중수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1]
선암사 중창비는 유형문화재 제92호이다.[1]
3. 1. 10. 선암사 매화
선암사 매화(梅, 매화)는 약 50그루에 달하며, 운수암, 원통전, 각황전으로 이어지는 기와지붕 울타리 길을 따라 심어져 있다.정확한 기록이 없어 나무의 정확한 수령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찰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나무들은 천불전 앞에 있는 와송과 함께 약 600년 전에 심어졌다고 한다.
원통전 뒤편과 각황전으로 이어지는 기와 울타리 길을 따라 심어진 이 선암사 백매는 매화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암사 백매는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3. 1. 11. 삼인당
강선루를 지나 일주문으로 가기 전에 있는 작은 타원형 연못인 삼인당(三印塘)은 "세 가지 특징의 연못"을 의미한다. 연못 가운데에는 풀로 덮인 작은 섬이 있다. 선암사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삼인당은 862년에 도선 국사에 의해 조성되었다.[6]
연못의 현판에는 "세 가지 특징은 불교적 이상을 나타낸다. '모든 것은 변하며 실체가 없다. 사람들이 이를 깨달을 때 열반에 들어선다.'"라고 적혀 있다.
선암사 삼인당은 독특한 사찰 구조물로, 기념물 제46호이다.
4. 특징
선암사는 야생 차밭과 석조(石槽)로 유명하다. 야생 차밭은 18km2가 넘는 넓이에 300~400년 된 차나무가 자생하며, 승려들이 직접 찻잎을 수확한다. 석조는 네 개의 물통을 통해 사찰에 물을 공급하며, 2003년 영화 《동승》에 등장하기도 했다.[2]
4. 1. 야생 차밭
선암사에는 18km2가 넘는 야생 차밭이 있다. 이 야생 차밭에는 300~400년 된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비료나 화학 물질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으며, 수년 동안 자연 상태를 유지해 왔다.승려들은 4월부터 시작하여 소량의 찻잎을 손으로 수확한다. 찻잎은 달콤한 향이 풍부하여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전설에 따르면, 오래전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는 딸에게 이 차 씨앗을 향료 삼아 주었다고 한다.[2]
4. 2. 석조
선암사의 석조는 네모난 물통 하나와 둥근 물통 셋, 총 네 개의 물통을 이용하여 사찰에 물을 공급한다. 이 석조들은 대나무로 만든 관을 통해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네 개의 물통은 물의 흐름 순서에 따라 각각 다른 기능을 한다. 첫 번째 물통은 부처님께 바치는 물, 두 번째 물통은 부처님께 올리는 음식을 씻는 물, 세 번째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 네 번째는 그 밖의 용도로 사용된다.
이 석조들은 2003년 영화 《동승》에 등장하여 유명해졌다.[2]
5. 사진
6. 기타
참조
[1]
뉴스
Yonhap
2018-01-29
[2]
웹사이트
visitkorea.or.kr
http://english.visit[...]
2012-07-20
[3]
웹사이트
english.visitkorea.or.k
http://english.visit[...]
2012-07-20
[4]
웹사이트
travelwireasia.com
http://www.travelwir[...]
2012-07-20
[5]
웹사이트
san-shin.net
http://san-shin.net/[...]
2012-07-20
[6]
웹사이트
.pleasetakemeto.com
http://www.pleasetak[...]
2012-07-20
[7]
웹사이트
仙巌寺紹介
http://www.seonammus[...]
[8]
뉴스인용
순천 선암사
http://www.ibulgyo.c[...]
2022-10-04
[9]
뉴스인용
순천 선암사 성보박물관 개관
http://news.buddhapi[...]
붓다뉴스 (연합뉴스 인용)
2008-05-02
[10]
간행물
선암사 승선교
글로벌 세계 대백과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2025 순천 세계유산 축전, 선암사·순천만갯벌서 9월 12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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