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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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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사동은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행정동이다. 부용꽃을 닮은 지형에서 유래된 지명이며, 부용과 사득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부사칠석놀이는 부사동에서 전승되어 온 민속놀이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1990년대에 부활하여 대전광역시 중구 민속놀이로 지정되었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교육 시설로는 초, 중, 고등학교가 위치해 있으며, 한밭종합운동장, 충무체육관과 같은 주요 체육 시설과 부사동우체국, 부사소방파출소 등의 주요 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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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동 - [지명]에 관한 문서
부사동 기본 정보
이름부사동
한자 표기芙沙洞
영문 표기Busa-dong
광역시도대전광역시
시군구중구
면적1.14
세대3,238
세대 조사2012년 12월 31일
인구6,704
인구 조사2022년 3월
법정동부사동
14
91
동주민센터대전광역시 중구 보문로68번길 20
홈페이지부사동 행정복지센터

2. 지명 유래

이 부근은 땅이 층을 이루는데, 조금 높은 지대인 고전평(高田坪) 위에 산비탈을 깎고 마을을 형성한 곳이 부사리이다. 고전평에 연화부수형으로 되어 꼭 부용꽃과 같다 해서 ‘부사리’라고 부르며, 부사리 아래에 있는 마을은 아래부사리라고 부른다. 부사동은 부용과 사득의 설화에서 비롯된 마을 이름이다.[2]

3. 역사

부사동은 백제 시대에는 우술군, 신라 시대에는 비풍군, 고려 초기에는 회덕현, 1018년(고려 현종 9년) 이후에는 공주부에 속했다. 조선 시대에는 공주군 산내면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남면의 일부를 통합하여 대전군 유천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되면서 대덕군 유천면에 속하게 되었고, 1963년 대전시로 편입되어 부사동이 되었다.[1]

부사(扶社)라는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이 있다. 왕건이 후백제 신검과 싸우기 위해 황산으로 가던 중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왕건을 정성껏 도왔다고 한다. 이에 왕건이 마을 이름을 '부사'라 칭하고, 베 8필을 하사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1]

부사동에서는 전통 민속놀이인 부사칠석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3. 1. 부사칠석놀이의 역사

부사칠석놀이는 부사동에서 전승되어 온 민속놀이로, 여름 세시명절과 관련된 놀이가 빈약한 상황에서 이를 보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명 설화에 뿌리를 둔 이 놀이는 향토 신앙과 결합하여 여름 세시풍속으로 발전했다.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인해 1938년 이후 중단되었다.[3]

1945년 광복 후 다시 계승되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동네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다시 중단되었다. 1990년 마을 주민 장택수 씨가 동네 어른들의 증언을 토대로 발굴하고, 1993년 대전대학 국문학 교수 한상수 씨의 고증을 거쳐 부활했다.[3]

부활 이후의 주요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3]

연도내용
1992년대전직할시 중구 민속놀이로 선정
1993년 10월대전직할시 민속예술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1994년 10월 21일제3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최우수 대통령상 수상 (강원도 춘천 종합경연장 개최)



1994년 10월부터 현재까지 부사칠석놀이 보존회(회장 : 김준헌)를 구성하여 매년 칠월칠석날 본 놀이를 재현하여 계승 보존하고 있으며 후손에게 전승하려 노력하고 있다.[3]

4. 부사칠석놀이

부사칠석놀이는 여름 세시 명절과 관련된 민속놀이로, 백중놀이와 함께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놀이는 선바위 치성, 부사샘치기, 부용·사득 합궁놀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3]


  • 지명 설화에 뿌리를 둔 마을 고유의 향토 신앙이 여름 세시 풍속과 결합하여 놀이에 반영되었다.
  • 두 마을 사람들이 오작교를 통해 만나 화합과 상부상조의 정신을 강조하며, 부용·사득 합궁놀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요소이다. 특히 농악과 함께 부르는 《샘치기 노래》, 《부용·사득이의 노래》는 대전 지역 웃다리 농악의 독특한 가락을 보여준다.
  • 칠석 세시에 얽힌 농경 관습과 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 놀이이다. 줄다리기나 놋다리 밟기와 같이 농경의 생장 의례를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부사칠석놀이는 오랜 역사 동안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으나, 1938년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중단되었다.[3] 1945년 광복 후 다시 계승되었지만,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다시 중단되었다. 1990년 마을 주민 장택수 씨가 동네 어른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발굴하였고, 1993년 대전대학 국문학 교수 한상수 씨의 고증을 거쳐 부활하였다.[3]

연도내용
1992년대전직할시 중구 민속놀이로 선정
1993년 10월대전직할시 민속예술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1994년 10월 21일제3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최우수 대통령상 수상
1994년 10월 ~ 현재부사칠석놀이 보존회(회장 : 김준헌)를 구성하여 매년 칠월칠석날 본 놀이를 재현, 계승, 보존하고 있으며 후손에게 전승하려 노력 중[3]


5. 설화

부사동은 부용과 사득의 설화에서 비롯된 마을 이름이다.[2] 이 부근은 땅이 층을 이루는데, 조금 높은 지대인 고전평(高田坪) 위에 산비탈을 깎고 마을을 형성한 곳이 부사리이다. 고전평이 연화부수형으로 되어 꼭 부용꽃과 같다 하여 ‘부사리’라고 부르며, 부사리 아래에 있는 마을은 아래부사리라고 부른다.

5. 1. 부용과 사득

윗마을에는 총명하고 예쁜 부용이라는 처녀가, 아랫마을에는 건장한 사득이라는 총각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에 있는 바가지샘(부사샘)에 홀어머니 대신 물을 길러 다니다가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을 약속하였다.[3]

그러나 결혼 전에 신라백제를 침략하자, 사득은 홀어머니 걱정에도 불구하고 백제 백성으로서 나라에 충성하고자 백제군으로 참전하였다. 부용은 사득이 전쟁터에 나간 후, 우물가에서 사득의 모습을 그리며 무사 귀환을 빌었다.[3]

전쟁이 끝나고 함께 갔던 사람들은 돌아왔으나, 사득은 전사하여 돌아오지 못했다. 부용은 슬픔에 빠졌고, 사득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뒷산 선바위(아들바위)에서 매일같이 사득이 돌아오기를 빌었다. 윗마을로 오는 길목을 보기 위해 높은 선바위에 올라가 기다렸다.[3]

어느 날 새벽, 부용은 선바위에서 치성을 드리고 동녘 해가 뜰 무렵, 쇠약해진 몸으로 사득을 보려고 선바위에 올랐다가 아침 이슬에 미끄러져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렇게 부용과 사득의 못다 이룬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3]

5. 2. 부사 샘치기

해마다 물 때문에 고생이 많던 두 마을에 부용이 마저 죽고 몇 해가 지난 어느 해 여름, 극심한 가뭄이 들어 바가지샘까지 말라 물이 나오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물을 길러 멀리 황새샘까지 다녀야 했는데 이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마을사람들은 고생이 많아 기우제를 정성껏 지냈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3] 그러던 어느 날 밤, 아랫마을에 사는 좌상 노인의 꿈에 부용이가 나타나서 자기와 사득이가 처녀 총각의 영혼으로 아직 있으니 며칠 후 칠석날에 백설기떡을 만들고 자기들 모습을 만들어 영혼 결혼식을 시켜주고 합궁을 시켜주면 물을 주겠다고 말했다. 윗마을에 사는 어느 노인에게도 사득이가 꿈속에 나타나 똑같은 말로 영혼 결혼을 시켜주면 물을 주겠다고 현몽하였다.[3] 이를 기이하게 여긴 노인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윗말과 아랫말 사람들은 동네 노인들이 꿈을 똑같이 꾸었으니 부용이와 사득이의 영혼결혼식을 사흘 뒤인 칠석날에 치르도록 상의하였다. 부용이와 사득이가 시킨 대로 샘을 깨끗하게 치고 백설기와 여러 음식을 정성껏 차려 고사를 지내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짚으로 부용이와 사득이 모습을 만들어 영혼 혼례 후 합궁을 시켜주었는데, 그러자 말랐던 샘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으며 이 물로 농사일까지 하게 되었다.[3] 그 뒤 이 샘을 윗말 사람들은 ‘부용이샘’, 아랫말 사람들은 ‘사득이샘’이라고 불렀으나 이후 두 마을 사람들은 사이가 좋아져 두 이름 첫 자를 따서 ‘부사샘’이라고 불렀다. 부사샘의 고마움을 기리고 부사샘이 있는 곳이라 하여 윗말을 ‘상부사리’, 아랫말은 ‘하부사리’라고 불렀다고 하며 이를 합쳐 ‘부사동’이 되었다.[3]

6. 교육

부사동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모두 있어 교육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문창초등학교, 보운초등학교, 신일여자중학교, 청란여자중학교, 신일여자고등학교, 청란여자고등학교, 남대전고등학교가 부사동에 위치해 있다.

6. 1. 초등학교

6. 2. 중학교

6. 3. 고등학교

7. 주요 시설 및 기관

부사동에는 한밭종합운동장(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충무체육관 등 스포츠 시설과 부사동우체국, 부사소방파출소, 남대전등기소 등 행정 및 생활 편의 시설이 있다.

7. 1. 주요 시설

7. 2. 주요 기관


  • 부사동우체국
  • 부사소방파출소
  • 남대전등기소

참조

[1] 웹사이트 부사동 지역특성 http://www.djjunggu.[...] 2012-09-02
[2] 웹사이트 부사동 지명 유래 http://www.djjunggu.[...] 2012-09-02
[3] 웹사이트 부사칠석놀이 http://www.djjunggu.[...] 201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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