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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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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빈 교향악단은 1900년 페르디난트 뢰베에 의해 창단된 오스트리아의 관현악단이다. 1919년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와 합병, 1933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나치스 점령기에는 독일 문화 오케스트라에 편입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요제프 크립스의 지휘로 활동을 재개했으며, 볼프강 자발리슈를 초대 상임 지휘자로 맞이하여 국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거쳐갔으며, 2024년부터 페트르 포펠카가 수석 지휘자로 활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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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교향악단
기본 정보
이름 (독일어)Wiener Symphoniker
이름 (영어)Vienna Symphony Orchestra (VSO)
이전 이름Wiener Concertverein (비너 콘서트페라인)
Tonkünstler Orchestra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
창립1900년
콘서트 홀Wiener Konzerthaus (비너 콘체르트하우스)
공식 웹사이트비엔나 심포니 공식 웹사이트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고
공식 로고마크
지휘자
수석 지휘자Petr Popelka (페트르 포펠카)

2. 역사

빈 교향악단은 1900년 페르디난트 뢰베에 의해 '빈 음악협회 관현악단'(Wiener Concertverein Orchesterde)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이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이어 빈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연주회 전문 관현악단이었다.[1] 초기에는 빈 음악협회(Musikverein) 소속으로, 특정 상임 지휘자 없이 페르디난트 뢰베, 프란츠 샬크, 한스 피츠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여러 객원 지휘자들이 악단을 이끌었다.[1] 1903년에는 뢰베의 지휘로 안톤 브루크너교향곡 제9번을 초연하기도 했다.[1][3]

1913년, 악단은 새로 건립된 빈 콘체르트하우스로 상주지를 옮겼다.[1][2] 제1차 세계 대전과 경제 공황으로 재정난을 겪자 1919년(또는 1922년[1]) 빈 톤퀸스틀러 관현악단(Wiener Tonkünstler-Orchester)과 합병하여 규모를 확장했다.[1][2][3] 1933년, 악단 명칭을 현재의 '빈 교향악단'(Wiener Symphonikerde)으로 공식 변경하고 빈 시의 지원을 받는 시립 관현악단(Stadtorchesterde)이 되었다.[1][2][3]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안슐루스) 이후인 1938년부터는 나치 정권 하에서 제국 관현악단으로 인정받아 활동을 이어갔으나, 선전 활동 등에 동원되기도 했다.[1][2][3]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4년 9월, 전황 악화로 인해 활동 정지 조치를 당했다.[1][2][3]

종전 후인 1945년 9월 16일, 요제프 크립스의 지휘 아래 구스타프 말러교향곡 3번을 연주하며 활동을 재개했다.[2][3] 이후 크립스는 악단의 현대 레퍼토리 재건에 힘썼으며, 1946년에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에 처음 참가했다.[2][3] 1948년부터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정기적으로 지휘하며 '카라얀 치클루스(Karajan-Zyklus)' 연주회를 열고 해외 투어를 이끄는 등 악단의 국제적 명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1][2][3]

1960년, 볼프강 자발리슈가 초대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면서 상임 지휘자 체제가 시작되었다.[1][2] 자발리슈 이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파비오 루이지, 필리프 조르당,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 등이 차례로 수석 지휘자 또는 상임 지휘자 직책을 맡았다.[1][2][3] 이 과정에서 조르주 프레트르와 같은 수석 객원 지휘자들의 활동을 통해 프랑스 음악 등 레퍼토리가 확장되었으며, 페도세예프는 러시아 음악을, 프뤼벡 데 부르고스는 스페인 음악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1][3] 2023년에는 마리 자코가 악단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되었고,[2] 2024-2025 시즌부터는 페트르 포펠카가 수석 지휘자로 활동할 예정이다.[2][3] 이처럼 빈 교향악단은 다양한 국적의 지휘자들을 영입하며 국제적인 악단으로 발전해왔다.[3]

2. 1. 창단 초기 (1900-1933)

1900년, 페르디난트 뢰베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이어 두 번째 연주회 전문 관현악단을 목표로 '빈 음악협회 관현악단'(Wiener Concertverein Orchesterde)을 창단했다. 이 악단은 이름처럼 빈 음악협회(Musikverein) 소속이었으며, 처음부터 특정 음악 감독이나 상임 지휘자 없이 객원 지휘자 체제로 운영되었다. 창단 초기에는 페르디난트 뢰베, 프란츠 샬크, 한스 피츠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구스타프 말러, 에리히 클라이버, 브루노 발터, 한스 크나퍼츠부쉬 등 당대 유명 지휘자들이 객원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1903년 2월 11일, 뢰베의 지휘로 안톤 브루크너의 유작인 교향곡 제9번을 무지크페라인잘에서 초연하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초기에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마찬가지로 빈 음악협회 대강당을 주요 연주회장으로 사용했으나, 1913년 새로운 공연장인 빈 콘체르트하우스가 완공되면서 이곳으로 상주지를 옮겼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이후 닥친 세계 경제 공황 시기에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1919년에는 빈 톤퀸스틀러 관현악단(Wiener Tonkünstler-Orchester)과 합병하여 악단의 규모를 키웠다. 1920년대에는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면서 콘서트 관객 수가 감소하는 등 사회 변화의 영향도 받았다.

1933년, 악단은 공식적으로 현재의 이름인 '빈 교향악단'(Wiener Symphonikerde)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빈 시의 보조금을 받는 시립 관현악단(Stadtorchester)이 되었다.

2. 2. 나치 합병기 (1933-1945)

1933년, 악단은 명칭을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Wiener Symphonikerde)로 공식 변경하고, 시의 보조금을 받는 시립 관현악단(Stadtorchesterde)이 되었다.[1][2] 나치 독일오스트리아를 병합(안슐루스)한 1938년 이후, 악단은 나치 정권 하에서 제국 관현악단으로 인정받아 존속할 수 있었다.[1] 그러나 독일 문화 오케스트라 정책(Kulturorchester)에 편입되어[3] 나치의 선전 목적으로 활용되었으며,[2][3] 다른 악단들과 마찬가지로 군수공장 위문 공연이나 정치 행사 참여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했다.[1][3]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황이 악화되자, 1944년 9월 1일 활동 정지 조치를 당하며 사실상 해산되었다.[1][2][3]

2. 3. 2차 세계대전 이후 (1945-1960)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5년 9월 16일, 악단은 첫 콘서트를 열며 활동을 재개했다. 이 연주회에서는 요제프 크립스의 지휘로 구스타프 말러교향곡 3번이 연주되었다. 크립스의 지도 아래, 악단은 10년간의 고립 기간 동안 뒤처졌던 현대 음악 레퍼토리를 빠르게 회복해 나갔으며, 1946년 여름에는 처음으로 브레겐츠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1948년부터는 당시 빈 악우협회(Gesellschaft der Musikfreunde) 음악 감독으로 재직하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정기적으로 악단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카라얀은 공식적인 수석 지휘자는 아니었지만, 라이벌이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빈 필의 경쟁 상대로 악단을 부각시키기 위해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연속 연주회인 '카라얀 치클루스(Karajan-Zyklus)'를 개최하고, 유럽과 북미 등지로 광범위한 투어를 이끌었다.

1950년대에는 헤르만 셰르헨과 F. 찰스 아들러 같은 지휘자들과 함께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의 초기 녹음을 포함한 여러 음반 작업을 진행했다. 1959년에는 볼프강 자발리슈가 지휘하여 바티칸 시국에서 교황 요한 23세를 위한 공연을 열었다.

2. 4. 자발리슈 시대 이후 (1960-현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1955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빈 교향악단과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악단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60년에 볼프강 자발리슈를 초대 상임 지휘자로 초빙했다. 자발리슈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는 1962년 빈 안 데어 빈 극장의 재개관 기념 공연을 열었으며, 1964년 미국 투어와 1967년 미국-일본 합동 투어(이때 한국 첫 내한 공연도 이루어졌다)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자발리슈는 이후 명예 지휘자(Ehrendirigent|에렌디리겐트de) 칭호를 받았다.

자발리슈가 물러난 후에는 요제프 크립스가 잠시 예술 고문으로 복귀했고, 이어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수석 지휘자로 취임했다. 1980년대에는 조르주 프레트르가 수석 객원 지휘자(1986년 취임)를 맡아 프랑스 음악 레퍼토리를 적극적으로 선보이며 콘서트 횟수를 늘렸고, 그 역시 훗날 명예 지휘자(Ehrendirigent|에렌디리겐트de)가 되었다. 1991년부터는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가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며 스페인 음악을 레퍼토리에 많이 도입했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는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가 수석 지휘자를 맡아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한 러시아와 구 소련 작곡가들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는 이탈리아 출신의 파비오 루이지가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다. 2011년 10월, 스위스 출신의 필리프 조르당이 2014-2015 시즌부터 5년 임기의 차기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었고, 2016년 12월 계약이 2020-2021 시즌까지 연장되었다. 조르당은 임기 동안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교향곡 전곡의 첫 상업적 CD 녹음 사이클을 진행했으며, 2020-2021 시즌 종료와 함께 임기를 마쳤다.

2018년 3월,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가 2021-2022 시즌부터 5년 계약의 차기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2020-2021 시즌 동안 수석 지휘자 지명자 신분이었으나, 오케스트라 경영진과의 갈등 및 계약 연장 불가 방침이 보도된 후 2022년 4월 12일 수석 지휘자직에서 즉시 사임했다.

2020년에 처음 객원 지휘를 맡았던 마리 자코는 2023년 3월, 2023-2024 시즌부터 오케스트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석 객원 지휘자(Erste Gastdirigentin|에르스테 가스트디리겐틴de)로 임명되었다. 이어서 2023년 6월에는 페트르 포펠카가 2024-2025 시즌부터 초기 5시즌 계약의 차기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크립스 이후 빈 교향악단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지휘자들을 영입하는 국제적인 인선을 통해 레퍼토리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3. 주요 활동

설립 당시의 목적이 연주회 전문 악단이었던 만큼, 빈 국립오페라 관현악단 활동을 겸하는 라이벌 악단인 빈 필보다 연주회 개최 횟수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정기 연주회 외에도 오스트리아 방송 협회(ORF)가 주관하는 현대음악 연주회나 청소년 음악회 등의 특별 연주회에도 출연하고 있다. 또한 여름에는 브레겐츠에서 개최되는 브레겐츠 음악제의 상설 관현악단 자격으로 참가해 오페라나 발레 등 무대 작품의 반주도 담당한다.

녹음 활동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상임 지휘자에 준하는 활동을 했던 카라얀도 몇 종류의 녹음과 영상물을 남겼다. 줄리니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와 함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세 곡을 텔레비전 실황 방송 연주회 형식으로 녹음했으며, 로제스트벤스키는 아내인 피아니스트 빅토리아 포스트니코바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자발리슈필립스 레이블에 상당량의 관현악 작품을 녹음하거나, 엘리아후 인발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경우 등을 제외하면, 관현악 전문 연주 단체임에도 협주곡이나 오페라, 합창 반주 등의 녹음이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방송국의 실황 음원도 음반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오르페오(Orfeo)나 헨슬러(Hänssler) 등의 레이블에서 발매되고 있다.

활동은 활발하지만 명성은 항상 빈 필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빈 필과 달리 대중 친화적인 면모를 보이며, 레퍼토리의 폭도 현대 음악을 포함해 상당히 넓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여성 단원 모집에 관해서도 상대적으로 유연한 편이다.

4. 녹음 활동

녹음 활동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활발히 진행되었다. 상임 지휘자에 준하는 활동을 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몇 종류의 녹음과 영상물을 남겼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와 함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세 곡을 텔레비전 실황 방송 연주회 형식으로 녹음했다.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는 아내인 피아니스트 빅토리아 포스트니코바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볼프강 자발리슈는 필립스 레이블에 상당량의 관현악 작품을 녹음했으며, 엘리아후 인발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했다. 이처럼 관현악 전문 연주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협주곡이나 오페라, 합창 반주 등의 녹음이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방송국의 실황 음원도 음반으로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오르페오나 헨슬러 같은 레이블에서 발매되고 있다.

5. 특징 및 평가

설립 당시 연주회 전문 악단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빈 국립오페라 관현악단 활동을 겸하는 라이벌 악단인 빈 필보다 연주회 개최 횟수가 많다. 정기 연주회 외에도 오스트리아 방송 협회(ORF)가 주관하는 현대음악 연주회나 청소년 음악회 같은 특별 연주회에도 출연한다. 여름에는 브레겐츠에서 열리는 브레겐츠 음악제의 상설 관현악단으로 참가하여 오페라나 발레 등 무대 작품 반주도 맡는다.

녹음 활동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활발히 진행했으며, 상임 지휘자에 준하는 활동을 했던 카라얀도 여러 녹음과 영상물을 남겼다. 줄리니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와 함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세 곡을 텔레비전 실황 중계 연주회 형태로 녹음했고, 로제스트벤스키는 아내인 빅토리아 포스트니코바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했다. 자발리슈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엘리아후 인발 등을 제외하면, 관현악 전문 연주 단체임에도 협주곡이나 오페라, 합창 반주 등의 녹음이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방송국의 실황 음원도 오르페오(Orfeo), 헨슬러(Hänssler) 등의 레이블을 통해 음반으로 발매되고 있다.

활동은 활발하지만 명성은 항상 빈 필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빈 필과 달리 대중 친화적인 면모를 보이며, 현대 음악을 포함한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한다는 강점이 있다. 여성 단원 모집에 대해서도 빈 필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6. 역대 지휘자

빈 교향악단은 창단 이후 페르디난트 뢰베를 시작으로 여러 뛰어난 지휘자들과 함께 발전해왔다. 초기에는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브루노 발터 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이 객원 지휘를 맡아 악단의 수준을 높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요제프 크립스가 악단 재건을 이끌었으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비록 상임 지휘자는 아니었지만 1948년부터 악단과 긴밀히 협력하며 국제적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1960년 볼프강 자발리슈가 초대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상임 지휘자 시대가 열렸다. 그의 뒤를 이어 요제프 크립스(예술 고문),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조르주 프레트르(수석 객원 지휘자),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파비오 루이지, 필리프 조르당,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상임(수석) 지휘자직을 맡아왔다. 특히 후기로 갈수록 독일계 외에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지휘자들이 임명되면서 레퍼토리의 폭이 넓어지고 국제적인 악단으로서의 면모를 강화했다.[18]

최근에는 마리 자코가 악단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되었으며, 2024년부터는 페트르 포펠카가 상임 지휘자를 맡아 악단을 이끌고 있다.[18]

6. 1. 상임/수석 지휘자

초대 상임 지휘자인 볼프강 자발리슈 이전에 준상임 격으로 활동한 주요 지휘자로는 페르디난트 뢰베(1900–1925),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927–1930, 빈 악우협회 음악 감독), 오스발트 카바스타(1931–1944), 한스 스바로프스키(1946–1948),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48–1960, 빈 악우협회 음악 감독) 등이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1948년부터 공식적인 수석 지휘자는 아니었지만, Karajan Zyklus|카라얀 치클루스de 콘서트를 통해 오케스트라와 긴밀히 협력하며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 광범위한 투어를 진행했다. 그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는 전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다만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등 그가 이끌었던 다른 오케스트라에 비해 빈 교향악단과의 녹음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와 협연한 차이콥스키피아노 협주곡 1번 녹음은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볼프강 자발리슈는 1960년부터 1970년까지 초대 상임 지휘자를 맡았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오케스트라는 1962년 안 데어 빈 극장 재개관 기념 연주, 1964년 미국 투어, 1967년 미국-일본 합동 투어 등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자발리슈 퇴임 후에는 요제프 크립스가 1970년부터 1973년까지 예술 고문으로 활동하며 과도기를 이끌었고, 이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1973–1976), 에리히 라인스도르프(1976–1978),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1980–1982), 크리스토프 에센바흐(1982–1986) 등이 상임 지휘자직을 이어받았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는 조르주 프레트르가 수석 객원 지휘자를 맡아 프랑스 음악 레퍼토리를 강화했으며, 이후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1991–1996),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1997–2005), 파비오 루이지(2005–2013) 등이 상임 지휘자직을 계승하며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폭을 넓혔다. 특히 크립스 이후로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지휘자들이 임명되어 국제적인 면모를 강화하고 레퍼토리 확장에 기여했다. 프레트르와 자발리슈는 타계할 때까지 오케스트라의 명예 지휘자(Ehrendirigent|에렌디리겐트de) 칭호를 유지했다.

필리프 조르당은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상임 지휘자를 역임하며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녹음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후임으로는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가 2021년에 취임했으나, 오케스트라 경영진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1년 만인 2022년 4월 사임했다.

2023년 3월, 마리 자코가 오케스트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석 객원 지휘자(Erste Gastdirigentin|에르스테 가스트디리겐틴de)로 임명되어 2023–2024 시즌부터 활동하고 있다. 2024–2025 시즌부터는 페트르 포펠카가 새로운 상임 지휘자로 활동할 예정이다.[18]

임기이름직책
1900–1925페르디난트 뢰베수석 지휘자
1927–1930빌헬름 푸르트벵글러빈 악우협회 음악 감독
1931–1944오스발트 카바스타수석 지휘자
1946–1948한스 스바로프스키수석 지휘자
1948–1960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빈 악우협회 음악 감독
1960–1970볼프강 자발리슈상임 지휘자
1970–1973요제프 크립스예술 고문
1973–1976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상임 지휘자
1976–1978에리히 라인스도르프상임 지휘자
1980–1982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상임 지휘자
1982–1986크리스토프 에센바흐상임 지휘자
1986–1991조르주 프레트르수석 객원 지휘자
1991–1996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상임 지휘자
1997–2005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상임 지휘자
2005–2013파비오 루이지상임 지휘자
2014–2021필리프 조르당상임 지휘자
2021–2022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상임 지휘자
2024–현재페트르 포펠카상임 지휘자[18]



빈 콘체르트하우스

6. 2. 수석 객원 지휘자

1986년, 조르주 프레트르가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되어 1991년 라파엘 프뤼베크 데 부르고스가 상임 지휘자로 취임할 때까지 활동했다.

2020년 빈 교향악단을 처음 객원 지휘했던 마리 자코는 2023년 3월, 2023-2024 시즌부터 차기 수석 객원 지휘자(Erste Gastdirigentindeu)로 임명되었다. 이는 빈 교향악단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석 객원 지휘자이다.[15]

6. 3. 명예 지휘자

6. 4. 기타 주요 지휘자

상임 지휘자 제도가 확립되기 전이나 상임 지휘자 외의 역할로 빈 교향악단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지휘자들이 있다.

초기 악단의 기틀을 마련한 주요 지휘자들은 다음과 같다.

  • 페르디난트 뢰베: 1900년 악단의 전신인 '빈 콘체르트페라인'(Wiener Concertvereinde)을 창단하고 1925년까지 활동하며 악단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1903년 무지크페라인잘에서 브루크너교향곡 9번을 초연 지휘하기도 했다.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활동했으며, 특히 1927년부터 1930년까지는 음악 애호가 협회(Musikverein)의 지휘자를 맡았다.
  • 오스발트 카바스타: 1933년부터 1940년대까지 활동했다.
  • 한스 스바로프스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악단을 이끌었다.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1948년부터 1964년까지 음악 애호가 협회(Musikverein)의 지휘자로 활동하며 악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상임 지휘자는 아니었지만, "카라얀 치클루스"(Karajan-Zyklusde)라는 정기 연주회를 통해 악단의 국제적 명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유럽과 북미 투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소련 출신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와 협연하여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녹음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오랫동안 명반으로 사랑받고 있다.[15]


상임 지휘자 외의 직책으로 악단에 기여한 지휘자들도 있다.

  • 요제프 크립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악단 재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1970년부터 1973년까지는 음악 고문(Musikalischer Beraterde)으로 활동하며 볼프강 자발리슈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사이의 과도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 조르주 프레트르: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수석 객원 지휘자(Erster Gastdirigentde)를 맡아 프랑스 음악 레퍼토리를 풍부하게 했으며, 이후 명예 지휘자(Ehrendirigentde) 칭호를 받았다.
  • 마리 자코: 2023년부터 수석 객원 지휘자(Erste Gastdirigentinde)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는 악단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휘자 임명이다.[15]


또한, 초대 상임 지휘자였던 볼프강 자발리슈 역시 퇴임 후 조르주 프레트르와 함께 명예 지휘자(Ehrendirigentde)로 추대되어 악단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참조

[1] 뉴스 Umzug nach New York http://www.kleinezei[...] 2020-06-07
[2] 뉴스 On Deck, the Met's Pinch-Hitter https://www.nytimes.[...] 2011-04-23
[3] 간행물 Philippe Jordan new Chief Conductor in 2014–15 http://www.wienersym[...] Vienna Symphony 2020-06-07
[4] 뉴스 A High-Profile Podium for a Rising Star: Philippe Jordan to Head Vienna Symphony Orchestra https://playbill.com[...] 2020-06-07
[5] 간행물 Music Director extends contract https://www.wienersy[...] Vienna Symphony 2020-06-07
[6] 뉴스 Wiener Symphoniker: Beethoven Symphonies 1, 3 CD review – persuasive and buoyant https://www.theguard[...] 2018-03-31
[7] 간행물 Andrés Orozco-Estrada has been appointed Music Director Designate of the Wiener Symphoniker as of the 2021–2022 season https://www.wienersy[...] Vienna Symphony 2020-06-07
[8] 뉴스 Petr Popelka wird neuer Chefdirigent der Wiener Symphoniker https://www.diepress[...] 2022-06-12
[9] 뉴스 Orozco-Estrada tritt als Chefdirigent der Wiener Symphoniker zurück https://www.derstand[...] 2022-04-18
[10] 간행물 Marie Jacquot becomes Principal Guest Conductor of the Vienna Symphony Orchestra https://www.rbartist[...] Künstleragentur Dr. Raab & Dr. Böhm 2023-04-24
[11] 간행물 Petr Popelka wird neuer Chefdirigent ab der Saison 2024/25 https://www.wienersy[...] Vienna Symphony 2023-06-12
[12] 웹사이트 The History of the Wiener Symphoniker : Development Work of the Chief Conductors https://www.wienersy[...] 2024-10-25
[13] 웹사이트 Petr Popelka wird neuer Chefdirigent der Wiener Symphoniker – neue musikzeitung https://www.nmz.de/k[...] 2023-06-12
[14] 웹사이트 Ehrendirigenten https://www.wienersy[...] 2024-01-15
[15] 웹사이트 Wiener Symphoniker ernennen Erste Gastdirigentin http://www.musik-heu[...] 2024-09-16
[16] 서적 Duden Das Aussprachewörterbuch Dudenverlag
[17] 서적 Duden Das Aussprachewörterbuch Dudenverlag
[18] 웹사이트 위ーン発 〓 ウィーン響の首席指揮者にペトル・ポペルカ、アンドレス・オロスコ=エストラーダの後任 https://m-festival.b[...]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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