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쿠즈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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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이먼 쿠즈네츠는 1901년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한 경제학자이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전미 경제 연구소에서 국민 소득을 연구했으며,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쿠즈네츠는 경제 성장과 경제 발전에 대한 연구를 주로 진행했으며, 경제 시계열 데이터에서 20년 주기의 변동을 발견하여 '쿠즈네츠 사이클'을 제시했다. 또한 소득 불평등과 경제 성장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쿠즈네츠 곡선'을 제시하여 경제학에 기여했으며, 케인스 경제학에 실증적인 자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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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쿠즈네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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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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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01년 4월 30일 |
출생지 | 러시아 제국 핀스크 (현재 벨라루스) |
사망일 | 1985년 7월 8일 |
사망지 |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
국적 | 미국 |
묻힌 곳 | 샤론 기념 공원 |
학력 | |
모교 | 하르키우 상업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BS, MA, PhD) |
박사 지도 교수 | 웨슬리 클레어 미첼 |
박사 학위 제자 | 바이디아나트 미스라 밀턴 프리드먼 리처드 이스털린 스탠리 엥거먼 로버트 포겔 수브라마니안 스와미 랜스 테일러 |
경력 | |
소속 기관 | NBER 컬럼비아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1960–1971) 존스 홉킨스 대학교 (1954–1960)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1930–1954) |
연구 분야 및 업적 | |
연구 분야 | 계량 경제학 개발 경제학 |
기여 | 국민 소득 데이터 경험적 경기 순환 연구 경제 성장의 특징 |
수상 | |
수상 내역 | 노벨 경제학상 (1971) |
경제학 정보 | |
학파 | 제도 경제학 |
영향 | 웨슬리 클레어 미첼 |
영향을 준 인물 | 로버트 포겔 밀턴 프리드먼 토마 피케티 수브라마니안 스와미 |
기타 | |
RePEc | |
접두사 | e |
ID | pku10 |
2. 생애와 경력
1901년 러시아 제국 핀스크에서 태어난 쿠즈네츠는 유태인인 아버지를 따라 1922년 미국으로 이민 후, 1923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과학학사학위를, 1924년 동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1926년 소매 및 도매 거래의 변동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지도교수인 미첼(W. Mitchell)이 이끄는 전미 경제 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에서 국민소득을 연구하였다.[26]
쿠즈네츠는 1949년과 1968년 사이 경제적 성장에 대한 사회과학위원회(The 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 Committee on Economic Growth)의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49년 미국 통계 학회 회장, 1954년 미국 경제 학회 회장, 1953-63년 머리스포크 경제연구회(Maurice Falk Project for Economic Research) 회장을 지냈다.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77년 미국 경제 학회의 프란시스 워커스 메달을 수상했다.[26]
쿠즈네츠는 경제학, 통계학 교수로서 미국의 인적 자본형성에 힘써왔다. 1931년부터 1936년까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시간제 조교수로, 그 후 1954년까지 동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1954년부터 1960년까지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교수를 지냈으며, 1960년부터 1971년까지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다.[26]
연구자, 학자로서 쿠즈네츠는 제도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철저하게 통계와 이론모델을 이용하여 경제를 과학적으로 해석하였으며, 경제학의 과학성을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쿠즈네츠의 연구는 케인스 학파 경제학에 경험적 자료를 제공하여 케인스의 일반이론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당시로서는 미숙한 수준에 머무르던 계량경제학 역시 쿠즈네츠의 자료에 많이 의존하였다.[26]
쿠즈네츠는 주로 경제성장과 경제발전 연구에 몰두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쿠즈네츠는 초기 미국의 여러 경제적 시계열에서 약 20년간 지속되는 변동을 밝혀냈다. 이를 그의 이름을 따서 ‘쿠즈네츠 사이클(Kuznets Cycle)’이라 부르는데, 이 연구에서 쿠즈네츠는 인구이동의 원인이 소득격차에 있음을 전제하고, 인구이동의 원인보다는 인구이동의 영향을 규명했다. 또한 시장구조와 시장형태를 내생변수로 보고 이를 순환적 현상에 조리 있게 연결했다. 쿠즈네츠 사이클은 유럽에서 아메리카로의 이민에 따른 신대륙의 경기순환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호주 및 남미 등 여타 신대륙에서도 쿠즈네츠 순환은 발견되었다.[26]
쿠즈네츠는 저축과 자본형성 영역에 있어서 케인스 경제학에 직접적인 자료를 제공하였다. 그는 순환적 변동에 관한 그의 첫 저서에서, 소득형성과정에서 산출량과 지출한 소득의 관계 및 투자와 소비, 저축 간의 관계를 고찰하고 그것을 장기 시계열자료를 이용하여 실증적으로 밝혀주었다. 쿠즈네츠는 케인스에 앞서 투자와 소비 및 소득 간의 관계가 누적적 과정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실증분석을 통해 밝혀냈으며 여러 가지 모델을 가지고 저축과정의 장기적 안정성을 찾는 데 주력하였다.[26]
1960년대에 들어 쿠즈네츠는 다른 국가들의 경제성장유형 비교연구로 연구영역을 확장했다. 특히 그는 저발전 국가들에 관해 실증적인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이들 국가들이 갖는 실증적인 특징들과 선진국들이 과거 저발전상태였을 때의 특징들 간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쿠즈네츠의 이러한 연구결과는 모든 국가들의 경제발전과정에 동일한 선형적 단계가 존재한다는 단순 논리적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경제발전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26]
쿠즈네츠는 또한 1인당 국민소득과 지니 계수에 따라 측정한 소득분배의 불평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가난한 국가에서는 소득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불평등도가 증가하는 반면 부유한 국가에서는 소득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불평등도가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하였다(쿠즈네츠의 역U자 가설). 그는 경제발전과 소득불평등 사이의 관계를 각 국가의 수준과 한 나라의 경제활동부문 수준에서 각각 분석하였으며, 부유한 국가에서 개인소득분포의 왜곡도가 동태적으로 어떻게 감소하는지를 보여주는 한편 이러한 균등화 현상이 어떻게 자동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지 밝히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 결과 1970년대에 이르러 소득분배에 대한 실증분석이 하나의 경제학 조류로 자리잡게 되었다.[26]
이 밖에도 쿠즈네츠는 구조변화와 생산성 향상의 관계 측면에서 생산요소 투입에 따른 성장모형의 한계를 지적하고 혁신과 기술진보, 구조변화와 소비 그리고 노동력의 질에 따른 경제성장모형을 연구했다. 또한 1940년대 후반 미국의 GNP계측방법이 갖는 한계 - 무임금 가사노동의 가치 추정 - 를 비판하고 국민소득계측을 통해 경제적 후생 변화를 설명하고자 하였으며 전 세계에 ‘GNP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국제소득연구학회를 창설하였다.[26]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사이먼 쿠즈네츠는 1901년 현재 벨라루스에 속하는 핀스크에서[5]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솔로몬과 조지라는 두 형제가 있었다.[6] 그는 로브네와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실과학교에서 학교 교육을 마쳤다.[7] 1918년, 쿠즈네츠는 하르키우 상업 연구소에 입학하여 경제학, 통계학, 역사, 수학 등을 공부했다. 연구소의 학문 과정은 그가 경제학뿐만 아니라 역사, 인구 통계학, 통계학, 자연 과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지식을 습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7] 그는 그곳에서 요제프 슘페터의 혁신과 경기 순환 이론을 접하게 되었다.[8][9][10][11][12][13]1920년대 초, 내전과 소비에트 당국의 고등 교육 재편성으로 인해 연구소의 정상적인 업무가 중단되었다. 쿠즈네츠는 중앙 노동조합 평의회의 UZHBURO(남부 국) 노동부에 합류하여, 1920년 하르코프 공장 노동자의 임금과 급여를 연구한 첫 과학 논문을 발표했다.[14]
2. 2. 미국 이민과 학문 활동
1922년, 쿠즈네츠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9] 쿠즈네츠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웨슬리 클레어 미첼의 지도를 받으며 1923년 이학사(B.S.) 학위, 1924년 문학석사(M.A.) 학위, 1926년 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했다.[9] 석사 논문으로 그는 하르키우에서 작성한 슈페터 박사의 경제 시스템에 관한 논문을 옹호하고 분석했다. 1925년부터 1926년까지 사회과학 연구 위원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가격의 경제적 패턴을 연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1930년 박사 학위 논문 "생산과 가격의 장기 변동(Secular Movements in Production and Prices)"을 출판했다.1927년,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합류하여 1961년까지 근무하며 국민 소득 연구를 시작했다.[9] 1931년부터 1934년까지 미첼의 요청으로 NBER의 미국 국민 소득 계정 관련 업무를 담당하여 미국 국민 소득에 대한 최초의 공식 추정치를 제시했다. 1936년에는 국민 소득 및 생산 계정 개발에 참여한 학자들을 모으는 연구, 소득 및 부에 관한 회의를 주도했고, 1947년에는 소득 및 부 연구 국제 협회를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1931년부터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1930년 ~ 1954년)하는 동안,[9]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1942년 ~ 1944년) 전쟁 생산 위원회 기획 및 통계국의 부국장을 역임하며 군사 생산 확대를 위한 국가 역량을 평가했다.[17] 그는 국민 소득 회계와 선형 계획법을 사용하여 생산 증가 가능성과 자원 제약을 측정했다.[17]
1949년 미국 통계 학회 회장[16], 1954년 미국 경제 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 외에도 존스 홉킨스 대학교(1954년 ~ 1960년), 하버드 대학교(1961년 ~ 1970년)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영국 학사원의 통신 회원을 포함, 여러 학회의 회원이었다. 1977년 프란시스 워커 메달을 수상했다.
2. 3. 정부 및 국제기구 활동
사이먼 쿠즈네츠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전시생산위원회 기획 및 통계국 부국장으로 2년간 활동하며 군수 생산 확대를 위한 국가 역량 평가에 참여했다. 전후에는 여러 국가의 경제 정보 시스템 구축에 자문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소득 및 부 연구 국제 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Research in Income and Wealth)를 창설하여 국제적인 협력 기구 설립에 기여했다.3. 주요 연구 업적
쿠즈네츠는 주로 경제성장과 경제발전 연구에 몰두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국민소득계정 확립 ==
사이먼 쿠즈네츠는 1930년대 초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에서 미국의 국민 소득 계정 관련 업무를 담당하여, 1934년 1929년부터 1932년까지의 미국 국민 소득에 대한 최초의 공식 추정치를 제시했다.[26] 이후 이 추정치는 1919년부터 1938년까지, 그리고 1869년까지 확장되었다.[26] 쿠즈네츠는 정보 부족, 편향된 평가, 국민 소득의 이론적 개념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높은 정밀도의 계산을 달성하여 이 분야의 표준을 세웠다.[26] 그는 자신의 연구가 W. I. 킹의 1930년 저서 "국민 소득과 구매력"의 업데이트임을 명시했다. 그의 연구는 국민 소득 구조 분석과 국민 경제 문제 연구에 기여했으며, 개선된 국민 소득 및 관련 지표 계산 방법은 현대 국민 계정 시스템의 기초가 되었다.[26]
쿠즈네츠는 미국 상무부가 GNP 측정을 표준화하는 데 기여했으나, 국민 소득을 일반적인 복지 지표로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하며 "국민의 복지는 국민 소득 측정에서 추론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21][22] 1940년대 후반에는 미국의 GNP 계측 방법이 무임금 가사노동의 가치를 추정하지 못하는 한계를 비판하고, 국민소득 계측을 통해 경제적 후생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다.[26]
국민 소득 형성을 탐구하면서 쿠즈네츠는 산출량과 소득, 소비와 저축 간의 비율 등을 연구했다. 20개국의 장기적인 경제 상황 데이터를 분석하여 자본/산출량 비율, 순자본 형성, 순투자 등의 장기적 추세를 밝혀냈다. 이는 기존 가설, 특히 케인스 이론의 경험적 테스트를 가능하게 했다. 쿠즈네츠는 전미경제연구소에서 발행한 1942년 저서 ''평화와 전쟁에서 국민 소득의 사용''에서 절대 소득 가설이 장기적으로 부정확한 예측을 제공한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주었다. 그는 장기간(1870년대 – 1940년대) 소득 변화에도 불구하고 저축률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주어, 밀턴 프리드먼의 항상 소득 가설과 생애주기 가설 등 현대적 대안 이론의 길을 열었다.
== 쿠즈네츠 순환 (장기 파동) ==
사이먼 쿠즈네츠는 1930년 저서 "생산과 가격의 장기 변동"(Secular Movements in Production and Prices)에서 미국의 경제 시계열 데이터에 15~25년 주기의 변동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쿠즈네츠 순환'이라고 명명했다.[26] 쿠즈네츠는 1865년부터 1925년까지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일부 지표는 17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분석했다.[19][20] 곰페르츠 함수와 로지스틱 곡선에 근접하는 시계열 분석을 적용하여, 이러한 순환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인구 이동, 건설 산업 실적, 자본, 국민 소득 데이터 등을 분석하여 장기 파동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26][19][20]
이러한 움직임은 경제학자와 경제 사학자들 사이에서 '쿠즈네츠 순환'으로 알려졌으며, 모세 아브라모비츠의 연구에 따라 경제 성장률의 "장기 파동"으로도 불렸다.[19][20] 쿠즈네츠 순환은 유럽에서 아메리카로의 이민에 따른 신대륙의 경기순환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호주 및 남미 등 여타 신대륙에서도 발견되었다.[26]
== 경제성장과 소득 불평등 (쿠즈네츠 곡선) ==
사이먼 쿠즈네츠는 경제 성장과 소득 불평등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특히 '쿠즈네츠 곡선'으로 알려진 역U자 가설을 제시하여 경제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26] 쿠즈네츠는 가난한 국가에서는 소득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불평등도가 증가하는 반면, 부유한 국가에서는 소득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불평등도가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하였다.[26] 그는 경제 발전과 소득 불평등 사이의 관계를 각 국가 및 경제 활동 부문 수준에서 분석하여, 부유한 국가에서 개인 소득 분포의 왜곡도가 동태적으로 감소하는 현상과 그 자동 발생 원리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26]
쿠즈네츠는 1955년과 1963년 연구에서 소득 불평등과 경제 성장 간의 반전된 U자형 관계, 즉 쿠즈네츠 곡선을 제시했다.[24] 그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소득 불평등 패턴을 관찰하여, 국가가 경제 성장을 경험함에 따라 소득 불평등이 처음에는 증가했다가 감소한다고 제안했다.[26] 이는 농업에서 산업 부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산업화로 인한 소득 격차가 발생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중 교육이 확대되어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불평등을 감소시키며, 인구의 저소득층이 정부 정책을 변경할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26]
쿠즈네츠의 이러한 연구는 1970년대 소득 분배에 대한 실증 분석이 경제학의 한 조류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26] 그는 또한 저축-소득 행동 패턴을 발견하여 모딜리아니와 프리드먼의 생애주기-항상 소득 가설 제시에 영향을 주었다.[26]
==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기여 ==
사이먼 쿠즈네츠는 저축과 자본형성 영역에 있어서 케인스 경제학에 직접적인 자료를 제공하였다.[26] 그는 소득형성과정에서 산출량과 지출한 소득의 관계 및 투자와 소비, 저축 간의 관계를 고찰하고 그것을 장기 시계열자료를 이용하여 실증적으로 밝혀주었다.[26] 쿠즈네츠는 케인스에 앞서 투자와 소비 및 소득 간의 관계가 누적적 과정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실증분석을 통해 밝혀냈으며 여러 가지 모델을 가지고 저축과정의 장기적 안정성을 찾는 데 주력하였다.[26]
쿠즈네츠는 계량경제학에 큰 변혁을 가져왔고, 케인즈주의 거시 경제 이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로서는 미숙한 수준에 머무르던 계량경제학 역시 쿠즈네츠의 자료에 많이 의존하였다.[26] 그는 1930년에 간행된 『Secular Movements in Production and Prices(생산과 가격의 추세)』에서, 미국 경제 시계열 데이터에 15년에서 20년의 주기적 변동(현재, 쿠즈네츠 순환으로 알려져 있다)이 있음을 보였다.
== 기타 연구 ==
쿠즈네츠는 저발전 국가들의 경제성장 유형을 비교 연구하고, 생산성 향상과 구조 변화의 관계를 분석했다.[26] 그는 생산요소 투입에 따른 성장모형의 한계를 지적하고 혁신, 기술 진보, 구조 변화, 소비, 노동력의 질에 따른 경제성장모형을 연구했다.[26] 또한 1940년대 후반 미국의 GNP 계측 방법의 한계(무임금 가사노동의 가치 추정)를 비판하고, 국민소득 계측을 통해 경제적 후생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다.[26]
1960년대에 쿠즈네츠는 여러 국가의 경제성장 유형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26] 특히 저발전 국가의 실증적 자료를 수집, 분석하여 이들 국가와 선진국의 과거 저발전 상태 간의 차이를 밝혀냈다. 이는 모든 국가의 경제발전 과정에 동일한 선형적 단계가 존재한다는 단순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경제발전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26]
쿠즈네츠는 경제 성장의 네 가지 핵심 요소(인구 증가, 지식 성장, 성장 요인에 대한 국내 적응, 국가 간의 대외 경제 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실증 연구를 제안했다. 그는 유럽, 미국, 일본의 14개 국가의 경제 성과에 대한 통계 지표를 60년 동안 수집하고 분석하여, 경제 성장의 메커니즘에 관련된 여러 가설을 발전시켰다. 그는 역사적 근거를 둔 경제 성장 이론을 창시했으며, 국가의 총 생산량 증가는 필연적으로 전체 경제 구조의 심오한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 구조, 고용, 소득 구조, 인구, 산업 조직 등 경제 생활의 여러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1970년대에 쿠즈네츠는 과학과 기술(혁신) 사이의 상호 작용, 제도적 변화, 그리고 사회의 도덕적, 정치적 분위기와 같은 경제 외적 요인들의 역할과 이것이 경제 성장의 진전과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3. 1. 국민소득계정 확립
사이먼 쿠즈네츠는 1930년대 초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에서 미국의 국민 소득 계정 관련 업무를 담당하여, 1934년 1929년부터 1932년까지의 미국 국민 소득에 대한 최초의 공식 추정치를 제시했다.[26] 이후 이 추정치는 1919년부터 1938년까지, 그리고 1869년까지 확장되었다.[26] 쿠즈네츠는 정보 부족, 편향된 평가, 국민 소득의 이론적 개념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높은 정밀도의 계산을 달성하여 이 분야의 표준을 세웠다.[26] 그는 자신의 연구가 W. I. 킹의 1930년 저서 "국민 소득과 구매력"의 업데이트임을 명시했다. 그의 연구는 국민 소득 구조 분석과 국민 경제 문제 연구에 기여했으며, 개선된 국민 소득 및 관련 지표 계산 방법은 현대 국민 계정 시스템의 기초가 되었다.[26]쿠즈네츠는 미국 상무부가 GNP 측정을 표준화하는 데 기여했으나, 국민 소득을 일반적인 복지 지표로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하며 "국민의 복지는 국민 소득 측정에서 추론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21][22] 1940년대 후반에는 미국의 GNP 계측 방법이 무임금 가사노동의 가치를 추정하지 못하는 한계를 비판하고, 국민소득 계측을 통해 경제적 후생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다.[26]
국민 소득 형성을 탐구하면서 쿠즈네츠는 산출량과 소득, 소비와 저축 간의 비율 등을 연구했다. 20개국의 장기적인 경제 상황 데이터를 분석하여 자본/산출량 비율, 순자본 형성, 순투자 등의 장기적 추세를 밝혀냈다. 이는 기존 가설, 특히 케인스 이론의 경험적 테스트를 가능하게 했다. 쿠즈네츠는 전미경제연구소에서 발행한 1942년 저서 ''평화와 전쟁에서 국민 소득의 사용''에서 절대 소득 가설이 장기적으로 부정확한 예측을 제공한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주었다. 그는 장기간(1870년대 – 1940년대) 소득 변화에도 불구하고 저축률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주어, 밀턴 프리드먼의 항상 소득 가설과 생애주기 가설 등 현대적 대안 이론의 길을 열었다.
3. 2. 쿠즈네츠 순환 (장기 파동)
사이먼 쿠즈네츠는 1930년 저서 "생산과 가격의 장기 변동"(Secular Movements in Production and Prices)에서 미국의 경제 시계열 데이터에 15~25년 주기의 변동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쿠즈네츠 순환'이라고 명명했다.[26] 쿠즈네츠는 1865년부터 1925년까지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일부 지표는 17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분석했다.[19][20] 곰페르츠 함수와 로지스틱 곡선에 근접하는 시계열 분석을 적용하여, 이러한 순환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인구 이동, 건설 산업 실적, 자본, 국민 소득 데이터 등을 분석하여 장기 파동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26][19][20]이러한 움직임은 경제학자와 경제 사학자들 사이에서 '쿠즈네츠 순환'으로 알려졌으며, 모세 아브라모비츠의 연구에 따라 경제 성장률의 "장기 파동"으로도 불렸다.[19][20] 쿠즈네츠 순환은 유럽에서 아메리카로의 이민에 따른 신대륙의 경기순환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호주 및 남미 등 여타 신대륙에서도 발견되었다.[26]
3. 3. 경제성장과 소득 불평등 (쿠즈네츠 곡선)
사이먼 쿠즈네츠는 경제 성장과 소득 불평등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특히 '쿠즈네츠 곡선'으로 알려진 역U자 가설을 제시하여 경제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26] 쿠즈네츠는 가난한 국가에서는 소득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불평등도가 증가하는 반면, 부유한 국가에서는 소득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불평등도가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하였다.[26] 그는 경제 발전과 소득 불평등 사이의 관계를 각 국가 및 경제 활동 부문 수준에서 분석하여, 부유한 국가에서 개인 소득 분포의 왜곡도가 동태적으로 감소하는 현상과 그 자동 발생 원리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26]쿠즈네츠는 1955년과 1963년 연구에서 소득 불평등과 경제 성장 간의 반전된 U자형 관계, 즉 쿠즈네츠 곡선을 제시했다.[24] 그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소득 불평등 패턴을 관찰하여, 국가가 경제 성장을 경험함에 따라 소득 불평등이 처음에는 증가했다가 감소한다고 제안했다.[26] 이는 농업에서 산업 부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산업화로 인한 소득 격차가 발생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중 교육이 확대되어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불평등을 감소시키며, 인구의 저소득층이 정부 정책을 변경할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26]
쿠즈네츠의 이러한 연구는 1970년대 소득 분배에 대한 실증 분석이 경제학의 한 조류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26] 그는 또한 저축-소득 행동 패턴을 발견하여 모딜리아니와 프리드먼의 생애주기-항상 소득 가설 제시에 영향을 주었다.[26]
3. 4.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기여
사이먼 쿠즈네츠는 저축과 자본형성 영역에 있어서 케인스 경제학에 직접적인 자료를 제공하였다.[26] 그는 소득형성과정에서 산출량과 지출한 소득의 관계 및 투자와 소비, 저축 간의 관계를 고찰하고 그것을 장기 시계열자료를 이용하여 실증적으로 밝혀주었다.[26] 쿠즈네츠는 케인스에 앞서 투자와 소비 및 소득 간의 관계가 누적적 과정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실증분석을 통해 밝혀냈으며 여러 가지 모델을 가지고 저축과정의 장기적 안정성을 찾는 데 주력하였다.[26]쿠즈네츠는 계량경제학에 큰 변혁을 가져왔고, 케인즈주의 거시 경제 이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로서는 미숙한 수준에 머무르던 계량경제학 역시 쿠즈네츠의 자료에 많이 의존하였다.[26] 그는 1930년에 간행된 『Secular Movements in Production and Prices(생산과 가격의 추세)』에서, 미국 경제 시계열 데이터에 15년에서 20년의 주기적 변동(현재, 쿠즈네츠 순환으로 알려져 있다)이 있음을 보였다.
3. 5. 기타 연구
쿠즈네츠는 저발전 국가들의 경제성장 유형을 비교 연구하고, 생산성 향상과 구조 변화의 관계를 분석했다.[26] 그는 생산요소 투입에 따른 성장모형의 한계를 지적하고 혁신, 기술 진보, 구조 변화, 소비, 노동력의 질에 따른 경제성장모형을 연구했다.[26] 또한 1940년대 후반 미국의 GNP 계측 방법의 한계(무임금 가사노동의 가치 추정)를 비판하고, 국민소득 계측을 통해 경제적 후생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다.[26]1960년대에 쿠즈네츠는 여러 국가의 경제성장 유형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26] 특히 저발전 국가의 실증적 자료를 수집, 분석하여 이들 국가와 선진국의 과거 저발전 상태 간의 차이를 밝혀냈다. 이는 모든 국가의 경제발전 과정에 동일한 선형적 단계가 존재한다는 단순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경제발전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26]
쿠즈네츠는 경제 성장의 네 가지 핵심 요소(인구 증가, 지식 성장, 성장 요인에 대한 국내 적응, 국가 간의 대외 경제 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실증 연구를 제안했다. 그는 유럽, 미국, 일본의 14개 국가의 경제 성과에 대한 통계 지표를 60년 동안 수집하고 분석하여, 경제 성장의 메커니즘에 관련된 여러 가설을 발전시켰다. 그는 역사적 근거를 둔 경제 성장 이론을 창시했으며, 국가의 총 생산량 증가는 필연적으로 전체 경제 구조의 심오한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 구조, 고용, 소득 구조, 인구, 산업 조직 등 경제 생활의 여러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1970년대에 쿠즈네츠는 과학과 기술(혁신) 사이의 상호 작용, 제도적 변화, 그리고 사회의 도덕적, 정치적 분위기와 같은 경제 외적 요인들의 역할과 이것이 경제 성장의 진전과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4. 비판과 논쟁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2015)에서 국민소득이 증가하면 불평등이 감소한다는 쿠즈네츠의 역 U자 가설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27] 피케티는 미국의 소득 집중도 분석을 통해, 과도한 불평등 심화는 성장에 해가 되며,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이 높아지는 세습사회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27]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쿠즈네츠의 이론이 21세기에 새롭게 해석 및 적용될 여지가 있어, 인구와 사회에 대한 그의 기여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27]
대한민국에서도 쿠즈네츠 곡선을 둘러싼 논쟁이 존재하며, 특히 진보 진영은 소득 불평등 완화 정책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5. 수상 및 영예
사이먼 쿠즈네츠는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으며,[26] 1977년에는 미국 경제학회에서 프랜시스 워커 메달을 수상했다.[26] 또한 1949년 미국통계학회 회장[26], 1954년 미국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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