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타인 베블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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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스타인 베블런은 노르웨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공부한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그는 다윈주의와 제도주의 경제학을 바탕으로 진화 경제학을 발전시켰으며, 사회 제도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독창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 개념을 통해 부유층의 소비 행태를 비판했고, 《영리 기업의 이론》에서는 사업과 산업을 구분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유한계급론》, 《사업기업론》, 《기술자와 가격 체제》 등이 있으며, 과시적 소비, 숙련된 무능, 베블런의 이분법과 같은 개념은 현대 사회 분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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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타인 베블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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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소스타인 베블런 |
원어 이름 | Thorstein Veblen |
출생일 | 1857년 7월 30일 |
출생지 | 위스콘신주, 카토 |
사망일 | 1929년 8월 3일 |
사망지 | 캘리포니아주, 멘로 파크, 샌드힐 로드 |
학문 분야 | |
전공 | 경제학, 사회경제학 |
학파 | 제도학파 경제학 |
교육 및 경력 | |
모교 | 칼턴 대학교 존스 홉킨스 대학교 예일 대학교 코넬 대학교 |
소속 기관 | 코넬 대학교 시카고 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 미주리 대학교 뉴스쿨 |
사상적 영향 | |
영향을 준 인물 | 허버트 스펜서 토머스 페인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 레스터 프랭크 워드 윌리엄 제임스 조르주 바셰르 드 라푸주 에드워드 벨러미 존 듀이 구스타프 폰 슈몰러 존 베이츠 클라크 앙리 드 생시몽 샤를 푸리에 |
반대한 학파 및 인물 | 카를 마르크스 신고전파 경제학 독일 역사학파 |
영향을 받은 인물 | 웨슬리 클레어 미첼 클래런스 에드윈 아이어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라이트 밀스 로버트 브레이디 해럴드 이니스 에디스 펜로즈 조나단 니찬 |
주요 업적 | |
기여 | 과시적 소비 과시적 여가 훈련된 무능 베블런적 이분법 |
2. 생애
베블런은 1857년 교육 수준이 높은 노르웨이 이주농의 네 번째 자녀로 위스콘신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네소타의 노스필드에 있는 칼턴 칼리지에 입학하여 저명한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인 존 베이츠 클라크의 지도 아래 경제학과 철학을 공부했다.[35] 그 후 예일 대학교에서 노아 포터와 윌리엄 섬너 아래서 공부하면서 1884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블런은 포터로부터 칸트 철학을 배웠으며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섬너로부터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 섬너는 당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지지하고 있었다.[35]
불가지론자로서의 입장 때문에 그는 종교 단체와 관련된 학교생활을 소홀히 했다. 그 때문에 경제학에 대한 명성은 구축되지 않았다. 마침내 1891년 그는 코넬 대학교에서 제임스 로플린 교수의 관심을 얻었다.[35] 새로 설립된 시카고 대학교로 옮겼을 때 그는 베블런을 동행시켰다. 거기서 베블런은 군집 생태학자 로이드 모건 및 문화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와 지적 교류를 가졌다. 또, 거기서 그는 존 듀이와의 교류를 통해 그의 프래그머티즘을 접했다. 베블런은 이윽고 <정치경제학회지(Journal of Political Economy)>의 편집인이 되어 경제학 분야에서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6] 그 과정에서 1899년 ≪유한계급론≫을 출간하여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그의 나이 마흔두 살이던 당시 상황은 록펠러, 카네기, 밴더빌트 등 탐욕스런 ‘강도 귀족’이 독점적 수탈, 사치와 향락으로 미국 경제를 주무르던 시대였다.[6]
독특한 성격으로 인해 시카고 대학교와 마찰을 일으켜 그는 학교를 떠나야만 했으며, 그 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도 그러했다. 다시금 그는 미주리 대학교로 자리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뒤늦게 미국 경제학회가 회장직의 수락을 요청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6]
<경제학은 왜 진화적 학문이 아닌가?>(1898)라는 논문을 통해 경제학과 진화론의 관계를 제기했는데, 아래에 언급된 거의 모든 저술을 통해 그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기초하여 경제를 이해하는 입장을 옹호했다. 스스로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간주하는 ≪제작 본능론≫(1914)을 포함하여, ≪영리기업론≫(1904), ≪기술자와 가격체계≫(1921), ≪부재 소유권과 영리기업≫(1923)을 출간하여 제작 본능과 한가한 호기심 본능에 따라 기술적 효율성과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기술자나 산업 계급(industrial class)과 달리 편법, 교활함을 통해 영리를 추구하며 금융 구조를 교란하는 영리기업가들을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클라크 교수의 경제학≫(1919), ≪자본의 성질에 관하여≫(1908), ≪한계효용의 한계≫(1909)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비판하는 동시에 ≪카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학과 그의 추종자들≫(1906, 1907)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또, ≪독일 제국과 산업혁명≫(1915), ≪평화의 본질과 그 존속기간에 관한 연구≫(1917) 등을 통해 평화를 위협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연구했다. 약탈, 지배, 낭비로 얼룩진 자본주의 체제가 세계 대공황을 맞이하는 시점을 앞둔 1929년 8월 3일, 위대한 진화적 제도 경제학자 베블런은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6]
베블런의 주요 관계는 두 아내와의 관계였다. 반대되는 평판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여성들과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칼턴 칼리지 재직 시절, 베블런은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엘렌 롤프(Ellen Rolfe)를 만났는데, 그녀는 대학 총장의 조카였다. 그들은 1888년에 결혼했다. 일부 학자들은 부부의 여러 차례의 별거와 1911년 최종 이혼의 원인을 베블런의 여성 편력으로 돌렸지만, 다른 학자들은 관계 파탄의 근본 원인이 엘렌이 아이를 낳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1926년 그녀가 사망한 후, 그녀가 전 남편인 베블런에게 자신의 부검 결과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부검 결과 엘렌의 생식기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베블런의 계모녀가 쓴 책에서는 "이것이 그녀가 토르슈타인과의 정상적인 부부 관계에 무관심했던 것을 설명한다"고 주장하며, 그가 "그녀를 아내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자매처럼 대했다"고 밝히고 있다.
베블런은 1914년에 전 학생이었던 앤 브래들리 비반스(Ann Bradley Bevans)와 결혼하여 그녀의 두 딸, 베키와 앤의 계부가 되었다. 대체로 그들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앤은 그녀의 딸에 의해 여권 운동가, 사회주의자, 그리고 노동 조합과 노동자 권리의 확고한 옹호자로 묘사되었다. 앤과 결혼한 지 1년 후, 그들은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유산을 겪었다. 베블런은 자녀가 없었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소스타인 베블런은 1857년 7월 30일 위스콘신주 카토에서 노르웨이계 미국인 이민자 부모인 토마스 베블런과 카리 룬데 사이에서 태어났다.[1] 그는 12명의 자녀 중 여섯째였다.[2] 그의 부모는 1847년 9월 16일 노르웨이 발드레스에서 위스콘신주 밀워키로 이주했는데, 돈이 거의 없었고 영어도 할 줄 몰랐다.[1] 이민자로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토마스 베블런의 목수 및 건축 기술과 그의 아내의 끈기 있는 지원 덕분에 그들은 1864년에 이주한 미네소타주 라이스 카운티에 가족 농장을 세울 수 있었다.[2][1]베블런은 다섯 살에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모국어는 노르웨이어였지만, 이웃과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 1874년, 17세의 베블런은 칼레톤 대학교에 입학하여 존 베이츠 클라크의 지도 아래 경제학과 철학을 공부했다.[35] 칼레톤 대학교에서 그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기초를 다졌다. 1880년 칼레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찰스 샌더스 피어스[5]의 지도하에 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예일 대학교로 옮겨 1884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의 제목은 "응보의 교리에 대한 윤리적 근거"였다. 예일 대학교에서는 노아 포터에게서 칸트 철학을, 윌리엄 그레이엄 서머에게서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35]
베블런은 불가지론자였기 때문에, 종교적 배경과 학문적 명성이 부족하여 대학교에 취업하지 못했다.[35] 그는 1891년 코넬 대학교에서 제임스 로플린 교수의 관심을 얻기 전까지 농장에서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2. 2. 학문적 경력
1857년 노르웨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베블런은 칼턴 칼리지에서 존 베이츠 클라크의 지도 아래 경제학과 철학을 공부했다.[35] 예일 대학교에서 노아 포터에게서 칸트 철학을, 윌리엄 섬너에게서 사회진화론을 배우고 1884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6] 졸업 후 7년간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아이오와주 스테이시빌에서 생활하다가,[35] 1891년 코넬 대학교에서 제임스 로플린 교수의 도움으로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6]1892년 베블런은 제임스 로플린 교수를 따라 새로 설립된 시카고 대학교로 옮겨 연구원이 되었다.[6] 시카고 대학교에서 베블런은 군집 생태학자 로이드 모건, 문화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 존 듀이 등과 지적 교류를 가졌다.[6] 그는 정치경제학 저널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경제학 분야에서 저술 활동을 시작했고,[6] 1899년 《유한계급론》을 출간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6]
하지만, 베블런은 독특한 성격과 여성 편력으로 인해 시카고 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 등에서 마찰을 겪었다.[6] 1909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사임해야 했고, 다른 학문적 직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6] 1911년, 허버트 J. 데이븐포트의 도움으로 미주리 대학교에서 직책을 수락했지만, 낮은 급여와 콜럼비아(미주리주)라는 도시에 대한 불만족으로 인해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지 못했다.[6]
1917년 워싱턴 D.C.로 이주하여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위임한 제1차 세계 대전의 평화 협정을 분석하는 그룹에서 일했고, 이후 미국 식품 관리국에서 잠시 일했다.[9] 뉴욕시로 이사하여 더 다이얼 잡지의 편집자로 일했지만, 잡지의 방향 변화로 인해 곧 편집자 직책을 잃었다.[6]
1919년부터 1926년까지 찰스 A. 비어드, 제임스 하비 로빈슨, 존 듀이 등과 함께 뉴스쿨 포 소셜 리서치 설립에 참여하고, 이곳에서 강의하며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10] 베블런은 미국 경제학회의 회장직 제안을 거절했다.[6]
2. 3. 주요 저술 활동
2. 4. 말년
1920년 아내 앤이 사망한 후, 베블런은 계딸들을 돌보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베키는 그가 캘리포니아로 이주할 때 함께 갔고, 그곳에서 그를 돌보았으며, 1929년 8월 그의 죽음까지 함께했다. 사망 전, 베블런은 뉴스쿨에서 비교적 높은 급여를 받았으나 검소하게 살았다. 그는 캘리포니아 건포도 농장과 주식 시장에 돈을 투자했지만, 북캘리포니아로 돌아온 후 투자금을 잃고 샌드힐 로드(Sand Hill Road)의 멘로파크에 있는 집에서 살았다. 그는 인세와 시카고의 전 학생이 보낸 돈으로 생활하며, 1929년 8월 3일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3. 주요 이론 및 개념
쏜튼 빈블렌의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비판은 마르크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현대 산업 사회를 분석한 것이다.
1899년 그의 첫 저서 《유한계급의 이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는 소위 "황금기"의 부유층의 생활 방식이 인류학적 용어로 설명되며, 그들의 저택, 사치스러운 가구와 파티, 화려한 의상은 야만인들의 포틀래치, 깃털 장식, 사냥, 제사와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이 당시 독서계에 반향을 일으킨 것은 '과시적 소비(현시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 '과시적 여가(현시여가, Conspicuous Leisure)', '금전적 경쟁(Pecuniary Emulation)', '대리 소비(Vicarious Consumption)' 등의 참신하고 인상적인 용어와 함께, 이러한 특이한 문체에 크게 기인한다. 더욱이 베블런이 "과시"라고 단정 지은 사치와 여가는 저속함과 나태의 오명을 쓰고 미국에서는 공공연하게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베블런은 《영리 기업의 이론》(1904년)에서 현대 산업을 이분하여 분석한다. 즉, 물건을 만드는 목적의 산업(Industry)과 돈벌이의 수단으로서의 영리 기업(Business)으로 이분하는 것이다. 비즈니스는 산업을 추진하기는커녕 오히려 산업을 침식해 간다는 것이 베블런의 자본주의론이다.
《기술자와 가격 체제》(1921년)에서는 더 나아가 기술자 집단(Technocrat)의 소비에트에 의해 생산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 자본은 결코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서 시장의 조건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 자본의 각 부문은 전문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관리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제안은 베블런이 품고 있던 급진적인 개혁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낸다. 더욱이 후에 아돌프 벌리와 가디너 민즈에 의해 제기된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1932년)가 이미 이 책에서 제시되고 있다.
베블런은 제도주의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사유 재산보다 "사회 자본"을 고려하고, 영리 기업은 산업 체제를 관리하고 소비자에게 소비재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점에서 그의 학설은 공인된 경제학자들의 그것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베블런의 지식은 대공황과 미국에서의 케인스 학파의 수용 이후에 재발견되었다고 하는 편이 낫다. 가장 초기(1936년)에 베블런을 긍정적으로 소개한 것은 역시 이단의 경제학자로 여겨졌던 홉슨이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베블런의 영향은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등에 미치고 있지만, 학파를 만들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3. 1. 제도경제학
소스타인 베블런은 전통적인 정태적 경제 이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제도경제학의 관점에 대한 기초를 마련했다. 베블런은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경제를 자율적이고 안정적이며 정적인 실체로 보는 당대의 동료들을 거부했다. 그는 경제가 사회 제도에 깊이 嵌入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경제와 사회 및 문화 현상 간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고찰했다. 베블런은 경제를 제한된 합리성의 진화하는 실체로 간주했다.베블런은 마르크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현대 산업 사회를 분석했다. 1899년 저서 《유한계급의 이론》에서는 황금기 부유층의 생활 방식을 인류학적 용어로 설명하며, 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야만인들의 포틀래치와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이 책은 '과시적 소비', '과시적 여가' 등 참신한 용어로 당시 독서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베블런은 《영리 기업의 이론》(1904년)에서 현대 산업을 물건을 만드는 산업과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영리 기업으로 이분했다. 그는 비즈니스가 산업을 침식해 간다고 주장했다. 《기술자와 가격 체제》(1921년)에서는 기술자 집단에 의한 생산 통제를 주장했다. 그는 사회 자본이 이윤 추구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전문 지식에 근거하여 관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아돌프 벌리와 가디너 민즈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1932년)를 이미 제시한 것이다.
베블런은 제도주의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는 사유 재산보다 "사회 자본"을 고려하고, 영리 기업이 산업 체제를 관리하고 소비자에게 소비재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베블런의 지식은 대공황과 케인스 학파 수용 이후 재발견되었다. 그의 영향은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등에게 이어졌지만, 학파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3. 2. 과시적 소비와 유한계급
'''소스타인 베블런'''은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1899)》에서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14] 이는 재화의 가치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하여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베블런은 제2차 산업혁명 시대에 자본 부의 축적으로 인해 등장한 새로운 부유층인 ''누보리슈'' 계층이 자신의 사회적 권력과 위신을 과시하기 위해 과시적 소비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 지위가 개인의 재정적 수입이 아닌 소비 패턴에 따라 얻어지고 과시된다고 보았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이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를 통해 자신의 부와 지위를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과시적 여가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비생산적인 시간 사용을 의미한다. 과시적 여가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는데, 생산적인 활동은 경제적 능력의 부재를 의미하며 약점의 표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도시화는 과시적 여가가 더 이상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는 충분한 수단이 아니게 만들었고, 도시 생활에서는 지위, 부, 권력을 더욱 명확하게 과시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것이 바로 과시적 소비가 두드러지는 이유였다.
베블런은 "조너스네 따라잡기"로 알려진 사치적 모방(Pecuniary emulation)을 언급하며, 이는 부와 지위의 상징을 과시함으로써 경쟁하려는 개인의 경향을 말한다. 그는 개인이 더 높은 사회적 또는 경제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모방하려고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소유한 사치품을 얻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결국 과시적 소비 행위 자체가 개인이 아닌 지위의 상징이 된다. 이러한 사치적 모방은 소비자들이 더 유용한 상품이 아닌, 부와 지위의 상징을 과시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쓰도록 부추긴다.
베블런은 노동 분업의 시작, 즉 부족 시대에 고위층 개인들은 사냥과 전쟁에 종사했는데, 이는 현저히 노동 집약적이지 않고 경제적으로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었다고 설명한다. 반면 저위층 개인들은 농업과 요리와 같이 경제적으로 더 생산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활동을 했다. 그는 고위층 개인들은 상징적 경제적 참여에 참여하면서 여유롭게 삶을 살 수 있었고, 이들은 장기간에 걸쳐 과시적인 유한 활동에 참여하여 단순히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불러일으키는 일들을 추구했다고 설명한다. 유한 계급은 과시적 소비에 참여하기보다는 높은 사회적 지위의 표식으로서 과시적인 유한한 삶을 살았다.
베블런은 애덤 스미스의 부유층에 대한 평가를 확장하여, "부유층은 자선 활동을 최고 수준의 삶의 궁극적인 척도 중 하나로 사용했다."고 말했다.[16]
3. 3. 소비자 만들기 (Fabricating consumers)
다큐멘터리 영화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레퀴엠''에서 노엄 촘스키는 베블런이 만든 "소비자 만들기(Fabricating consumers)"라는 표현을 인용했다.[15] 촘스키는 사람들이 욕구를 만들어내어 삶의 본질을 소비에 갇히도록 만드는 것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15]베블런은 ''유한계급의 이론''에서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부유층의 소비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영리 기업의 이론''에서 현대 산업을 물건을 만드는 산업(Industry)과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영리 기업(Business)으로 이분하고, 비즈니스가 산업을 침식한다고 보았다. 또한 ''기술자와 가격 체제''에서는 기술자 집단에 의한 생산 통제를 주장하며, 사회 자본이 이윤 추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3. 4. 사업(Business)과 산업(Industry)의 구분
베블런은 "사업"과 "산업" 사이의 마찰을 중요한 문제로 보았다.베블런은 ''사업''을 회사의 이윤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소유주와 경영진으로 규정했는데, 이들은 이윤을 높게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생산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방식으로 산업 시스템의 운영을 방해함으로써 "사업"은 (예를 들어 높은 실업률을 통해) 전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베블런은 사회의 많은 문제의 원인을 사업 경영진으로 규정했으며, 사회는 산업 시스템과 그 운영을 이해하고 더불어 전 사회의 일반적인 복지에도 관심이 있는 엔지니어와 같은 사람들이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블런은 『영리 기업의 이론』(1904년)에서 현대를 이분하여 분석하였는데, 물건을 만드는 목적의 산업(Industry)과 돈벌이의 수단으로서의 영리 기업(Business)으로 이분하는 것이다. 비즈니스는 산업을 추진하기는커녕 오히려 산업을 침식해 간다는 것이 베블런의 자본주의론이다.
3. 5. 숙련된 무능 (Trained incapacity)
사회학에서 '''숙련된 무능(trained incapacity)'''은 "자신의 능력이 부적절함이나 사각지대로 작용하는 상황"을 의미한다.[17] 즉, 과거의 경험이 상황 변화에 따라 잘못된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8]베블런은 1914년 저서 『장인정신과 산업예술(The Instinct of Workmanship and the Industrial Arts)』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수필가 케네스 버크는 이후 자신의 저서 『영속과 변화(Permanence and Change)』(1935)를 비롯한 후속 저서 두 권에서 숙련된 무능 이론을 더욱 확장했다.[19]
3. 6. 베블런의 이분법 (Veblenian dichotomy)
'''베블런의 이분법'''은 소스타인 베블런이 처음으로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1899)에서 제시하고, 『사업기업론(The Theory of Business Enterprise)』(1904)에서 완전한 분석 원리로 발전시킨 개념이다.[21] 베블런에 따르면, 제도는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결정한다. 어떤 제도는 다른 제도보다 더 "의례적"이다.[22] 베블렌은 "의례적인" 것을 과거와 관련된 것으로, "부족 전설"이나 전통적인 보수적인 태도와 행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반면, "도구적인" 것은 기술적 필연성에 초점을 맞추고 미래의 결과를 통제하는 능력으로 가치를 판단한다.[22]베블런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제학자의 과제는 지나치게 낭비적인 제도를 파악하고, 제도적으로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을 더 "도구적인" 방식으로 만들기 위해 제도적 "조정"을 추구하는 것이다.[22]
이 이론은 모든 사회가 생명 과정을 유지하기 위해 도구와 기술에 의존하지만, 모든 사회는 또한 집단 생활의 "도구적인"(기술적인) 측면의 필요성과 반대되는 "의례적인" 계층적 지위 구조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시사한다.[23] 베블렌의 이분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우 중요하며 디지털 전환에 대한 사고에 적용될 수 있다.[24]
4. 베블런의 경제학 및 정치 사상
베블런과 다른 미국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은 특히 독일 역사학파의 구스타프 폰 슈몰러에게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강조, 그들의 경험주의, 그리고 특히 광범위한 진화적 연구 틀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베블런은 슈몰러를 존경했지만, 설명 과다, 긴 수치 데이터 제시, 그리고 기저 경제 이론이 없는 산업 발전에 대한 서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독일 학파의 다른 지도자들을 비판했다. 베블런은 자신의 이론을 추가하여 동일한 접근 방식을 사용하려고 했다.
베블런은 다윈주의 원칙과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20세기 진화 경제학을 발전시켰다. 같은 시기에 등장한 신고전 경제학과 달리, 베블런은 경제 행위를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묘사했으며 경제 조직을 지속적인 진화 과정으로 보았다. 베블런은 개인적 행동에 기반한 이론이나 내적 개인적 동기의 어떤 요인을 강조하는 이론을 거부했다. 그는 그러한 이론을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진화는 모방, 포식, 기술, 부모적 성향, 그리고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본능에 의해 추진되었다. 베블런은 경제학자들이 사회적, 문화적 변화가 경제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를 원했다. "유한계급론"에서 모방과 포식의 본능은 주요 역할을 한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베블런이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유한"이라고 부른 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이 저서에서 베블런은 소비가 지위를 얻고 신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과시적 소비"를 통해 종종 "과시적 낭비"가 발생했는데, 베블런은 이를 혐오했다. 그는 또한 포식적 태도가 개인의 습관적인 정신적 태도가 된다는 의미에서 문화의 "포식 단계"에 대해 언급했다.
- 쏜튼 빈블렌의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비판은 마르크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현대 산업 사회를 분석한 것이다.
- 1899년 그의 첫 저서 『유한계급의 이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는 소위 "황금기"(Gilded Age)의 부유층의 생활 방식이 인류학적 용어로 설명되며, 그들의 저택, 사치스러운 가구와 파티, 화려한 의상은 야만인들의 포틀래치, 깃털 장식, 사냥, 제사와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이 당시 독서계에 반향을 일으킨 것은 『과시적 소비(현시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과시적 여가(현시여가, Conspicuous Leisure)』『금전적 경쟁(Pecuniary Emulation)』『대리 소비(Vicarious Consumption)』등의 참신하고 인상적인 용어와 함께, 이러한 특이한 문체에 크게 기인한다. 더욱이 빈블렌이 "과시"라고 단정 지은 사치와 여가는 저속함과 나태의 오명을 쓰고 미국에서는 공공연하게 누릴 수 없게 되었다.
- 빈블렌은 『영리 기업의 이론』(1904년)에서 현대 산업을 이분하여 분석한다. 즉, 물건을 만드는 목적의 산업(Industry)과 돈벌이의 수단으로서의 영리 기업(Business)으로 이분하는 것이다. 비즈니스는 산업을 추진하기는커녕 오히려 산업을 침식해 간다는 것이 빈블렌의 자본주의론이다.
- 『기술자와 가격 체제』(1921년)에서는 더 나아가 기술자 집단(Technocrat)의 소비에트에 의해 생산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 자본은 결코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서 시장의 조건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 자본의 각 부문은 전문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관리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제안은 빈블렌이 품고 있던 급진적인 개혁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낸다. 더욱이 후에 아돌프 버리와 가디너 미인스에 의해 제기된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1932년)가 이미 이 책에서 제시되고 있다.
- 빈블렌은 제도주의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사유 재산보다 "사회 자본"을 고려하고, 영리 기업은 산업 체제를 관리하고 소비자에게 소비재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점에서 그의 학설은 공인된 경제학자들의 그것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 빈블렌의 지식은 대공황과 미국에서의 케인스 학파의 수용 이후에 재발견되었다고 하는 편이 낫다. 가장 초기(1936년)에 빈블렌을 긍정적으로 소개한 것은 역시 이단의 경제학자로 여겨졌던 호브슨이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빈블렌의 영향은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등에 미치고 있지만, まとまった학파를 만들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4. 1. 진화 경제학
마르크스와 다른 관점에서 현대 산업 사회를 분석한 소스타인 베블런은 제도주의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사유 재산보다 "사회 자본"을 고려하고, 영리 기업은 산업 체제를 관리하고 소비자에게 소비재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점에서 그의 학설은 공인된 경제학자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베블런은 다윈주의 원칙,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20세기 진화 경제학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경제 행위를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경제 조직을 지속적인 진화 과정으로 간주했다.4. 2. 정치적 성향
정치적으로 베블런은 국유화에 동조적이었다.[20] 학자들은 베블런의 견해가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또는 무정부주의와 어느 정도까지 호환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20] 쏜튼 베블런은 마르크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현대 산업 사회를 분석하였다. 그는 『유한계급의 이론』에서 "황금기" 부유층의 생활 방식을 인류학적 용어로 설명하며, 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야만인들의 행동과 같다고 보았다. 베블런은 『영리 기업의 이론』에서 현대 산업을 물건을 만드는 산업과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영리 기업으로 나누고, 영리 기업이 산업을 침식해 간다고 주장했다. 『기술자와 가격 체제』에서는 기술자 집단에 의한 생산 통제를 주장했다. 그는 사회 자본이 이윤 추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전문 지식에 근거하여 관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블런은 제도주의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며, 그의 학설은 공인된 경제학자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의 지식은 대공황과 케인스 학파 수용 이후 재발견되었다.5. 한국 사회에 대한 시사점
소스타인 베블런의 이론은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도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라는 개념을 통해 물질만능주의와 과시욕을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경쟁과 서열 문화를 성찰하게 한다. 특히, 고가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는 경향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개인의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베블런의 관점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관련하여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소득 불평등 완화,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사회적 이동성 확대 등은 베블런의 이론에 기반한 정책적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베블런은 기업의 이윤 추구가 사회 전체의 이익과 상충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는 기업 윤리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현대 사회의 요구와 맞닿아 있다. 기업은 이윤 극대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기여해야 하며, 이를 통해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베블런의 비판적 시각을 참고하여 경제 정책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사회적 형평성을 제고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정책은 베블런의 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6. 평가 및 유산
소스타인 베블런은 존 R. 코먼스, 웨슬리 클레어 미첼과 함께 미국 제도경제학 학파의 공동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제도경제학회(AFIT)는 이 학파에 속하는 경제학자들의 모임이다. 진화경제학회(AFEE)는 제도경제학 분야의 업적에 대해 매년 베블런-코먼스 상을 수여하고, ''경제 이슈 저널''(Journal of Economic Issues)을 발행한다.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 개념은 현대 소비 사회 분석에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그의 진화론적 경제 시스템 연구는 현대 경제학에서 재조명되고 있다.[28] 특히, 그가 연구한 도금 시대와 현대의 봉건화 과정을 비교하며 새로운 세계적 유한계급과 독특한 사치 소비를 주장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29]
베블런은 여성주의 경제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30] 그는 산업 시대의 여성들이 "야만적인 지위"의 희생자로 남았다고 이론화하여, 현대 여성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30]
존 도스 파소스의 ''빅 머니'', 카슨 매컬러스의 ''심장은 외로운 사냥꾼'', 신클레어 루이스의 ''메인 스트리트'' 등 미국 문학 작품에서도 베블런의 작품이 자주 인용되었다.[31] 그의 제자 중에는 산업 조직 경제학의 선구자인 조지 W. 스토킹 시니어와 맥길 대학교 교수이자 작가인 스티븐 리콕이 있다.[31] 리콕의 풍자 소설 ''빈둥빈둥 부자들과의 아르카디아 모험''에는 ''유한계급의 이론''의 영향이 나타난다.[31]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이론』(1899)에서 "과시적 소비", "과시적 여가" 등의 개념을 제시하며, 황금기 부유층의 생활 방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그의 비판은 마르크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현대 산업사회를 분석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영리 기업의 이론』(1904)에서 현대 산업을 물건을 만드는 산업(Industry)과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영리 기업(Business)으로 이분하고, 비즈니스가 산업을 침식해 간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술자와 가격 체제』(1921)에서는 기술자 집단에 의한 생산 통제를 주장하며,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케인스 학파의 수용 이후 베블런의 지식은 재발견되었으며,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베블런 재라는 용어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7. 저작 목록
-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1899)
:: 오노 신조(大野信三) 번역, 지립사(而立社), 1924년, 도쿄
:: 오하라 케이지(小原敬士) 번역, 이와나미 쇼텐(岩波書店), 1961년, 도쿄, ISBN 4-003-42081-0
:: 타카 테츠오(高哲男) 번역, 치쿠마 쇼보(筑摩書房), 1998년, 도쿄, ISBN 4-480-08416-9
:: 타카 테츠오(高哲男) 번역, 《유한계급론 : 부론 경제학은 왜 진화론적 과학이 아닌가》, 코단샤(講談社), 2015년, 도쿄, ISBN 4-062-92308-4
:: 무라이 아키코(村井章子) 번역, 치쿠마 쇼보(筑摩書房), 2016년, 도쿄, ISBN 4-480-09750-3
- 사업기업이론(''The Theory of Business Enterprise'', 1904)
:: 이나모리 요시오(稲森佳夫) 번역, 《기업의 이론》, 남북 서원(南北書院), 1931년, 도쿄
:: 오하라 케이지(小原敬士) 번역, 《기업의 이론》, 경초서방(勁草書房), 1965년, 도쿄, ISBN 4-326-50011-5
- 장인기술 본능과 산업기술의 발전: 벤블렌 경제적 문명론(''The Instincts of Worksmanship and the State of the Industrial Arts'', 1914)
:: 마츠오 히로시(松尾博) 번역, 《벤블렌 경제적 문명론 : 장인기술 본능과 산업기술의 발전》, 미네르바 쇼보(ミネルヴァ書房), 1997년, 교토, ISBN 4-623-02816-X
- 독일 제국과 산업혁명(''Imperial Germany and the Industrial Revolution'', 1915)
- 평화의 본질에 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Of Peace And The Terms Of Its Perpetuation by Veblen'', 1917)
- 미국의 고등학술(''The Higher Learning In America: A Memorandum On the Conduct of Universities By Business Men'', 1918)
- 특권계급론(''The Vested Interests and the Common Man'', 1919)
:: 이나마타 쓰나오(猪俣津南雄) 번역, 《특권계급론》, 신광사(新光社), 1925년, 도쿄
- 근대문명에서 과학의 위치 그리고 다른 에세이(''The Place of Science in Modern Civilization and other essays'', 1919)
- 기술자와 가격체제(''The Engineers and the Price System'', 1921)
:: 오하라 케이지(小原敬士) 번역, 《기술자와 가격체제》, 미래사(未来社), 1962년, 도쿄
- 원격 소유와 근래의 기업 활동: 미국의 경우(''Absentee Ownership and Business Enterprise in Recent Times: the case of America'', 1923)
:: 하시모토 카츠히코(橋本勝彦) 번역, 《세계 전체주의 대계. 제11 미국 자본주의 비판》, 백양사(白揚社), 1940년, 도쿄
- 변화하는 현대의 질서(''Essays in Our Changing Order'', 1927)
소스타인 베블런은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여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유한계급론》(1899), 《사업기업이론》(1904), 《장인정신과 산업예술의 상태》(1914), 《독일 제국과 산업혁명》(1915), 《평화의 본질과 그 존속기간에 관한 연구》(1917), 《미국의 고등교육》(1918), 《현대 문명에서 과학의 위치 및 기타 에세이》(1919), 《기득권과 평범한 사람들》(1919), 《기술자와 가격 체계》(1921), 《부재 소유권과 영리기업》(1923) 등이 있다.[33]
7. 1. 단행본
소스타인 베블런은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여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유한계급론》(1899), 《사업기업이론》(1904), 《장인정신과 산업예술의 상태》(1914), 《독일 제국과 산업혁명》(1915), 《평화의 본질과 그 존속기간에 관한 연구》(1917), 《미국의 고등교육》(1918), 《현대 문명에서 과학의 위치 및 기타 에세이》(1919), 《기득권과 평범한 사람들》(1919), 《기술자와 가격 체계》(1921), 《부재 소유권과 영리기업》(1923) 등이 있다.[33]7. 2. 주요 논문
소스타인 베블런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1884년에는 《철학적 사색 저널》에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발표했다. 1898년에는 《분기별 경제학 저널》에 〈경제학은 왜 진화 과학이 아닌가?〉, 《미국 사회학 저널》에 〈소유의 시작〉, 〈여성의 야만적인 지위〉를 발표했다. 1906년에는 《미국 사회학 저널》에 〈현대 문명에서 과학의 위치〉를 발표했고, 1908년에는 《분기별 경제학 저널》에 〈자본의 본질에 관하여〉, 1909년에는 《정치경제학 저널》에 〈한계 효용의 한계〉를 발표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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