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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너드 케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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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 투자자, 예술 후원가였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경제학으로 전향한 그는, 1906년 인도사무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여 킹스 칼리지 연구원을 거쳐 경제학 저널 편집장, 영국 재무부 공무원, 재무장관 고문 등을 역임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파리 강화 회의에 참여했으나, 독일 배상 문제로 재무부를 사임하고 《평화의 경제적 귀결》을 저술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케인스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을 주장하며, 대표작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1936)을 통해 '케인스 혁명'을 이끌었다. 그는 유효 수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불확실성, '애니멀 스피릿'과 같은 심리적 요인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브레튼우즈 협정에 참여하여 국제 통화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으며, 전쟁 이후 영국 경제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

케인스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정치, 예술 분야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자유당 활동, 우생학 지지, 예술 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경제 이론은 20세기 후반 서구 경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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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너드 케인스 - [인물]에 관한 문서
지도
기본 정보
이름존 메이너드 케인스
로마자 표기Jon Meinodeu Keinseu
경칭The Right Honourable
작위제1대 케인스 남작
출생일1883년 6월 5일
출생지잉글랜드, 케임브리지
사망일1946년 4월 21일
사망지잉글랜드, 서식스, 틸턴 ( 파얼 근교 )
배우자리디아 로포코바 (1925년 결혼)
아버지존 네빌 케인스
어머니플로렌스 에이다 브라운
서명
학력
교육이튼 칼리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
정치
정당자유당
작위상원 의원
임기 시작1942년 7월 7일
임기 종료1946년 4월 21일
신분세습 귀족
직업
직업경제학자
소속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
학문 분야
학파케인스 경제학
분야정치경제학
확률론
영향벤담
버크
요한센
케인스 시니어
맬서스
마셜
뉴턴
빅셀
러셀
무어
스라파
주요 기여거시경제학
케인스 경제학
유동성 선호설
지출 승수
총수요-총공급 모형
수요 측면 경제학
영향 받은 학자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윌리엄 어니스트 존슨
제자데이비드 챔퍼나운
조앤 로빈슨
영향 받은 사람T.K. 휘태커
패트릭 린치
사이먼 쿠즈네츠
폴 새뮤얼슨
존 힉스
조지 섀클
윌리엄 빅리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하이먼 민스키
로버트 실러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누리엘 루비니
로이 해로드
조앤 로빈슨
오스틴 로빈슨
리처드 칸
제임스 미드
피에로 스라파
반대한 사람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앨프리드 마셜
아서 피구
관련 정보
참고






















of Tilton in the Country of Sussex}}

2. 생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883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경제학자인 아버지 존 네빌 케인스와 사회 개혁가인 어머니 플로렌스 아다 케인스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232] 유복한 지적 환경에서 성장하며 부모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19][276]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 칼리지를 거쳐 1902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 입학하여 수학을 전공했다.[233] 그는 알프레드 마셜의 권유로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22][279] 비밀 결사 케임브리지 사도들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1906년 대학 졸업 후 인도사무국에서 잠시 공직 생활을 했으나,[28] 1908년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킹스 칼리지 연구원이 되어 경제학 연구와 강의에 매진했다.[29][234] 1912년에는 권위 있는 경제학 학술지인 이코노믹 저널 편집장이 되어 1945년까지 활동했으며, 1913년 첫 저서 『인도 통화와 재정』을 출간했다.[30]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영국 재무부에서 근무하며 전쟁 관련 경제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234]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 재무부 대표로 참가했으나, 패전국 독일에 대한 가혹한 배상 요구에 반대하여 사임하고, 회의의 문제점을 비판한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출간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38]

1920년대 케인스는 『확률론』(1921), 『화폐개혁론』(1923) 등을 발표했으며, 특히 1925년에는 윈스턴 처칠 재무장관의 금본위제 복귀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는 『처칠 씨의 경제적 귀결』을 발표했다. 1925년 러시아 발레리나 리디아 로포코바와 결혼했고,[146][163] 1930년에는 『화폐론』을 발표했다.

대공황의 충격 속에서 케인스는 1936년 그의 대표작인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을 발표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유방임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재정 정책 등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펼쳐 거시경제학의 기초를 닦았다. 이는 '케인스 혁명'이라 불리며 이후 수십 년간 각국 경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케인스는 다시 정부에 참여하여 재무부 고문으로 활동했으며,[40] 1942년에는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에 영국 대표단 단장으로 참가하여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설립 등 전후 국제 경제 질서 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전후 국제기구 설립 등 격무에 시달리던 케인스는 건강이 악화되어, 1946년 4월 21일 서식스주 틸턴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킹스 칼리지. 케인스의 할머니는 그가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영리하다고 여길 것이라고 편지를 썼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883년 6월 영국 케임브리지의 상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존 네빌 케인스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경제학자이자 도덕과학 강사였으며, 어머니 플로렌스 아다 케인스는 지역 사회 개혁가였다. 케인스는 장남으로, 여동생 마가렛 네빌 케인스(1885년생)와 남동생 제프리 케인스(1887년생)가 있었다. 제프리는 외과의가 되었고, 마가렛은 노벨상 수상자인 생리학자 아치볼드 힐과 결혼했다.

경제학자이자 전기 작가인 로버트 스키델스키에 따르면, 케인스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애정이 많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평생 같은 집에서 살며 자녀들이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케인스는 아버지로부터 학업(특히 장학금 시험 준비)과 재정적인 면에서 상당한 지원을 받았는데, 이는 1929년 대공황으로 자산을 거의 잃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플로렌스는 자녀들의 관심사를 자신의 관심사로 삼으며 그들과 함께 성장하려 노력했다.[19][276]

케인스는 1889년 1월, 다섯 살 반의 나이에 퍼스 여자학교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결석이 잦았다. 이후 가정교사와 어머니에게 가정교육을 받았다. 1892년 1월, 여덟 살 반에 세인트 페이스 예비학교에 주간 학생으로 입학하여 수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1894년에는 반에서 1등을 차지했다.[20] 당시 교장은 케인스가 다른 학생들보다 월등히 뛰어나 이튼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20][277]

1897년, 케인스는 이튼 칼리지에 킹스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여 수학, 고전, 역사 등 다양한 과목에서 재능을 보였다. 1901년에는 수학으로 톰라인 상을 수상했다. 이튼 시절, 케인스는 미래의 영국 수상이 될 해럴드 맥밀런의 형인 댄 맥밀런에게서 인생 최초의 "사랑"을 경험했다.[21][278] 그는 중산층 출신이었음에도 상류층 학생들과 쉽게 어울렸다.

1902년, 케인스는 이튼을 떠나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장학금을 받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 입학했다.[233] 알프레드 마셜은 케인스에게 경제학자가 될 것을 권유했지만,[22][279] 케인스 자신은 G. E. 무어의 윤리 체계와 같은 철학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그는 뛰어난 학생들이 모여 토론하는 비밀 결사 케임브리지 사도들(Apostles Society)의 활동적인 회원이 되었고, 졸업 후에도 클럽과의 유대감을 유지하며 평생 모임에 참여했다.[23] 또한 케임브리지 유니온 소사이어티와 케임브리지 대학교 자유주의 클럽의 회장을 역임했다.

1904년 5월, 케인스는 수학에서 1등으로 학사 학위(BA)를 받았다. 이후 2년 동안 대학에 남아 토론에 참여하고 철학을 공부했으며, 대학원생 신분으로 비공식적으로 경제학 강의를 들었다. 이는 그가 경제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유일한 경험이었다. 그는 1906년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경제학자 해리 존슨은 케인스의 낙관적인 성향이 그의 초기 생애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했다.[26][280] 케인스는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면 어떤 문제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선한 일을 하는 공무원의 능력에 대한 깊은 신뢰를 평생 유지했다.[27][281] 이러한 낙관주의는 그가 대영 제국의 국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이자, 전문 지식보다는 문화적 소양을 바탕으로 통치할 자격이 있다고 느낀 마지막 세대라는 문화적 배경에서도 영향을 받았다.[19]

2. 2. 경력

1906년 10월, 케인스는 영국 공무원으로서 인도사무국 서기로 경력을 시작했다.[28] 처음에는 자신의 일을 즐겼지만, 1908년에는 지루함을 느껴 사직하고 케임브리지로 돌아가 확률론 연구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과 아서 피구의 사비로 지원받은 경제학 강의직을 맡았다. 그는 1909년 킹스 칼리지 펠로우가 되었다.[29]

1909년까지 케인스는 최근의 세계 경제 불황이 인도에 미친 영향에 대한 논문을 ''경제저널''에 발표하며 그의 첫 번째 전문 경제학 논문을 출판했다. 그는 매주 토론 모임인 정치경제 클럽을 설립했다. 케인스는 개인 과외를 시작하면서 수입이 더욱 증가했다.

1911년 케인스는 ''경제저널''의 편집장이 되었고, 1945년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1913년에는 그의 첫 번째 저서인 ''인도 통화와 재정''을 출판했다.[30] 그는 이어 왕립 위원회 인도 통화 및 재정 위원회에 임명되어[31] 경제 이론을 실제 문제에 적용하는 데 상당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저술은 "J. M. 케인스"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지만,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메이나드로 알려져 있었다. (그의 아버지인 존 네빌 케인스 또한 항상 그의 중간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177]

1915년에는 영국 재무부로 옮겨 공무원 생활을 했다.[234]

1919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을 위한 파리 강화 회의에 영국 재무부 대표로 참가했다. 케인스의 주된 관심사는 독일의 배상금 지급이 과도하게 설정되어 독일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국가의 지불 능력과 다른 국가로부터의 수입 능력을 손상시켜 결국 세계 경제 전체에 해를 끼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1918년 영국 총선 이후 등장한 연립 정부 내 보수 세력은 케인스와 재무부가 배상금 관련 고위급 회담에서 배제되도록 만들었다. 그 자리는 판사 서머너 경과 은행가 커널리프 경이 차지했는데, 이들은 독일에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요구하여 "천상의 쌍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로 인해 케인스는 주로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노력해야 했다.

파리 회의의 세 주요 인물은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었다.[35] 케인스가 직접 접근할 수 있었던 로이드 조지는 처음에는 케인스의 견해에 공감했으나, 선거 과정에서 독일을 엄벌하겠다는 약속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자 입장을 바꾸어 높은 배상금을 추진했다. 다만, 로이드 조지는 파리 회의에서 프랑스에 맞서 독일 민간인에게 식량 공급을 보장하도록 개입하여 케인스로부터 어느 정도 지지를 얻기도 했다. 클레망소 역시 상당한 배상금을 요구했고, 윌슨은 처음에는 독일에 비교적 관대한 처우를 선호했으나 결국 로이드 조지와 클레망소의 압력에 굴복하여 배상금 청구서에 연금을 포함하는 데 동의했다.

회의 막바지에 케인스는 전쟁 부채를 과감히 감면하여 독일과 다른 중부 유럽 국가들을 돕고 국제 무역을 증진시키자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 계획은 유럽 재건 비용의 상당 부분을 미국이 부담하는 것이었기에 미국의 반대에 부딪혔다.[36] 결국 회의 결과는 케인스가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조약이었고, 이에 반발하여 그는 1919년 6월 재무부를 사임했다.[37] 같은 해 6월, 그는 주당 하루 근무에 대해 2000GBP의 급여를 약속한 영국 북부 상업 은행 회장직 제안을 거절했다.

사임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돌아온[234] 케인스는 1919년 12월, 파리 강화 회의의 경험과 조약의 문제점을 분석한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출판했다.[38] 이 책은 케인스의 열정과 경제학자로서의 기술이 집약된 저서로 평가받으며, 경제 분석 외에도 인도주의적 호소를 담고 있다. 책에서 케인스는 과도한 배상금이 독일을 빈곤하게 만들고 결국 더 큰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케인스의 예측대로 독일 경제는 1923년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었고,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이어졌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일부 역사가들은 조약 자체가 독일에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았으며, 배상금 지불 방식 수정 등 지원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39][40] 실제로 독일이 지불한 배상금은 일부에 불과했고, 오히려 미국의 차관 유입이 배상액을 훨씬 초과했다는 연구도 있다.[41] 그럼에도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케인스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그를 주류에서 벗어난 반체제 인사로 만들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주요 은행 이사직이나 정부 공식 직책 제안을 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인맥, 출판물, 정부 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37]

화가 던컨 그랜트(왼쪽)와 1912년의 케인스


1921년에는 오랜 연구를 정리한 『확률론』을 발표했고, 1923년에는 『화폐개혁론』을 발표했다. 1925년에는 당시 보수당 정권의 재무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금본위제 복귀 정책에 반대하여 『처칠 씨의 경제적 귀결』(The Economic Consequences of Mr. Churchill)을 발표하며 금본위제 복귀 논쟁을 일으켰다. 이는 당시 영국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보수적인 정책 결정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후 1926년 『자유방임주의의 종말』, 1930년 『화폐론』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 케임브리지의 젊은 경제학자들(리처드 칸, 피에로 스라파, 제임스 미드, 오스틴 로빈슨, 조안 로빈슨)은 케인스 서클(케임브리지 서클)을 결성하여 『화폐론』을 논의하며 승수 효과 개념 발전에 기여했다.

1936년, 케인스는 그의 대표작인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을 발표했다. 이 책은 대공황 이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경제 이론을 제시하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케인스 경제학은 경제학의 주류가 되었다. 1937년 여름 심장마비를 겪어 잠시 활동을 줄였으나, 1940년 재무장관의 경제 고문으로 21년 만에 재무부에 복귀했다. 같은 해 6월, 재무부와 영국 은행 직원으로 구성된 환율 관리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에는 재무장관 고문이 되었고, 9월에는 영국 중앙은행 이사가 되었다.

1942년 6월, 티턴의 케인스 남작(Baron Keynes of Tilton) 작위를 받고 상원의 자유당 의석에 앉았다.

1944년에는 브레턴우즈 회의에 영국 대표로 참가하여 전후 국제 경제 질서 구축에 참여했다. 그는 밴콜(Bancor)이라는 국제 통화 창설을 제안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미국의 해리 덱스터 화이트가 제안한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IBRD) 설립안이 채택되어 브레턴우즈 체제가 구축되었다.

1945년에는 자신의 제자였던 영국 노동당의 휴 돌턴 재무장관의 고문을 8개월간 역임했고, 같은 해 계량 경제 학회 회장에 취임했다.

1946년 2월, 브레턴우즈에서 설립된 국제통화기금과 국제부흥개발은행의 이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격무는 그의 건강을 악화시켰고, 1946년 4월 21일 서섹스주 틸턴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 3. 대공황과 일반 이론

경제학에 관한 케인스의 초기 관심은 주로 화폐와 외환 문제에 집중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사회의 고용 및 생산 수준 결정 요인에 대해 기존 경제 이론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1920년대에 저널리스트 및 금융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1922년 『조약의 개정』(A Revision of the Treaty)에서 독일 배상금 감면을 주장하고, 1923년 『통화 개혁 논고』(A Tract on Monetary Reform)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후의 디플레이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37] 이 책에서 그는 각국이 통화 가치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디플레이션을 피하고 국내 물가 안정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던 영국 상황을 고려하여, 케인스는 수출품 가격 경쟁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파운드화 평가절하를 권고했으며, 1924년부터는 정부의 공공 사업 지출을 통한 일자리 창출, 즉 재정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37] 그러나 그의 경기 부양 주장은 당시 정책 입안자나 주류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데, 이론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다.

케인스는 『통화 개혁 논고』에서 금본위제 폐지도 주장했다. 그는 금본위제가 국내 정책의 자율성을 제약하며, 특히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확장 정책이 필요할 때 오히려 디플레이션 정책을 강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재무부와 영란은행은 금본위제를 지지했고, 1925년 당시 재무장관 윈스턴 처칠은 금본위제 복귀를 결정했으나 이는 영국 산업에 불황을 초래했다. 케인스는 『처칠 씨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Mr. Churchill)를 통해 이를 비판하며 영국이 1931년 금본위제를 최종 폐지할 때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37]

이러한 배경 속에서 케인스는 그의 대표작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eng, 1936)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고전파 경제학의 핵심 원리였던 세이의 법칙(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법칙)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케인스는 자본주의 경제가 완전고용 상태에 미치지 못하는 불완전 고용 상태에서도 균형을 이룰 수 있으며, 이는 시장 메커니즘에만 맡겨둘 경우 유효수요(실제로 구매력으로 이어지는 수요)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실업, 특히 비자발적 실업의 근본 원인을 유효수요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케인스는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비투자로 구성된 유효수요를 늘리기 위해 정부가 감세나 공공 투자와 같은 재정 정책을 통해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고 보았다. 특히 투자가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승수 효과 이론에 근거하여 공공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케인스는 생산자들이 가격을 조정하기보다 총수요 변화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으며,[235] 따라서 총수요를 직접 늘리는 재정 지출 정책이 대공황과 같은 심각한 경기 침체기에는 통화 정책보다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236] 케인스가 제시한 공공 투자는 단순히 유효수요를 보충하는 것을 넘어, 정부 지출이 기업가들의 심리를 개선하여 경제 전반의 투자 수준을 높이는 효과를 목표로 한 것이며, 생산 수단의 국유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케인스의 이러한 이론과 정책 제안은 기존 경제학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으며, 이후 '케인스 혁명'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의 사상은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후 수십 년간 많은 국가의 경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흔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케인스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을 뿐 초기에는 상호 영향이 거의 없었다. 다만, 이후 뉴딜 정책의 이론적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케인스의 이론이 활용되었다.

2. 4. 제2차 세계 대전과 브레튼우즈 체제

케인스는 1937년 심장마비를 겪은 후 건강 문제로 일반 이론 발표 이후의 이론적 논쟁에는 제한적으로 참여했다.[85] 1939년 건강을 회복한 이후, 그의 남은 생애 동안 전문적인 에너지는 주로 경제의 실질적인 측면, 즉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쟁 노력을 위한 자원의 최적 배분 문제, 전후 미국과의 협상, 그리고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제시될 새로운 국제 금융 질서 구상에 집중되었다.

케인스는 자본주의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관리된다면(조정된 국제 케인스주의 정책, 국가의 이익을 서로 대립시키지 않는 국제 통화 시스템, 그리고 높은 수준의 무역 자유) 평화를 증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자본주의가 전쟁을 일으킨다는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그가 구상한 전후 국제 경제 기구와 정책 계획은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계획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핵심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설립에 크게 기여했으며, 나아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및 결국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54] 케인스는 브레튼우즈 체제 구상 과정에서 미국 측 대표인 해리 화이트와 함께 주요 방안을 제시하며 전후 세계 경제 질서 재편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 5. 사망

케인스가 사망한 틸턴 하우스, 2021


케인스는 평생 동안 공적인 활동과 친구들과의 교류를 활발히 이어갔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의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며,[213] 브레튼우즈 체제 설립에 기여하며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될 국제 통화 시스템을 만들고자 힘썼다.

1946년, 케인스는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일련의 심장마비를 겪었다. 심장마비는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진행된 영국-미국 차관 협상 중에 시작되었는데, 그는 이 협상에서 영국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려 애썼으며, 그 과정을 "지옥과 같다"고 묘사할 정도로 힘겨워했다.[214][215] 미국에서 돌아온 지 몇 주 후인 1946년 4월 21일, 케인스는 영국 이스트서식스주 퍼일 근처에 있는 그의 농가인 틸턴에서 심장마비로 62세의 나이에 사망했다.[19][216] 그의 유언은 자신의 유골을 킹스 칼리지 지하실에 안치해달라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틸턴 위 언덕에 뿌려졌다.[217]

케인스의 부모님은 모두 그보다 오래 살았다. 아버지 존 네빌 케인스(1852-1949)는 3년, 어머니 플로렌스 아다 케인스(1861-1958)는 12년을 더 살았다. 케인스의 형제인 제프리 케인스 경(1887-1982)은 저명한 외과의사였으며, 여동생 마가렛 힐(1885-1970)은 사회 개혁가였다. 그의 조카로는 생리학자 리처드 케인스(1919-2010)와 모험가 퀸틴 케인스(1921-2003)가 있으며, 조카딸 폴리 힐(1914-2005)은 경제 인류학자였다.

3. 경제 이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227][228][229], 그의 경제 이론은 현대 거시경제학의 성립과 각국 정부의 경제 정책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227] 영국 케임브리지 출신으로, 처음에는 수학확률론을 연구했으며, 그의 첫 저서인 『확률론 논고』(A Treatise on Probability영어, 1921)는 확률과 불확실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37][237]

케인스의 경제학적 관심은 초기에 화폐와 외환 문제에 집중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경제가 겪는 실업경기순환 문제로 옮겨갔다. 그는 1920년대 영국의 높은 실업률을 해결하기 위해 파운드화 평가절하와 공공 사업 지출 확대를 주장했으며[37], 특히 『통화 개혁 논고』(A Tract on Monetary Reform영어, 1923)를 통해 경직된 금본위제를 비판하고 국내 경제 안정을 위한 정책 자율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37] 당시 재무장관 윈스턴 처칠의 금본위제 복귀 결정을 『처칠 씨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Mr. Churchill영어)에서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37]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영어, 1936)은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책에서 그는 고전파 경제학의 세이의 법칙과 시장의 자동적인 완전고용 달성 능력을 비판하고, 불완전 고용 상태의 균형 가능성과 비자발적 실업의 원인이 유효수요 부족에 있음을 밝혔다. 따라서 완전고용 달성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통한 유효수요 관리가 필요함을 역설했다.[235][236] 이러한 그의 주장은 케인스 혁명으로 불리며, 이후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이론은 대공황 극복을 위한 미국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 정책에 강력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236] 다만 뉴딜 정책이 시작될 당시에는 케인스 이론의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측면이 있다.

케인스는 유효수요 이론 외에도 투자가 소득 증가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설명하는 승수 이론 (R. F. 칸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킴)[94],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기업가들의 심리적 요인을 설명하는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s) 등의 개념을 제시하며 경제 현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238]

케인스는 자유방임주의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 관찰』(1925)에서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공산주의를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현실성이 부족하며, 자본론을 시대에 뒤떨어진 교과서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산주의가 경제적 개선 수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고 보았으며, 혁명과 같은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사회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자유방임의 종언」(1926)에서는 애덤 스미스 이래의 자유방임 원칙 역시 맹목적으로 추종할 대상이 아님을 지적했다.[244][245]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 문제에 있어서는, 둘 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디플레이션보다는 인플레이션이 낫다고 보았다. 이는 디플레이션이 실업을 심화시켜 노동 계급에게 더 큰 고통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84]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성, 특히 통화 가치 훼손이 가져올 사회적 혼란에 대해서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83][85]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악화된 건강에도 불구하고 브레턴우즈 체제 설계 논의에 참여하여 국제통화기금(IMF) 창설에 기여했으며, 영국의 전후 경제 재건을 위한 대미 협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63]

케인스 경제학은 1970년대 통화주의의 도전을 받으며 잠시 주류에서 밀려나기도 했으나, 2007년-2010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그의 이론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신케인스주의의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231]

3. 1. 케인스 혁명

경제학에 관한 케인스의 초기 관심은 주로 화폐와 외환 문제에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용 및 생산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에 대해 기존 경제 이론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대표 저서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 완전고용을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주의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소비투자, 즉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공공지출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론과 정책, 그리고 그 바탕을 이루는 사상적 전환을 '케인스 혁명'이라고 부른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1935년-1936년)에서 케인스는 불완전 고용 상태에서도 경제 균형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완전 고용 달성을 위해 세이의 법칙을 비판하고, 생산 수준이 소비투자의 합인 유효수요에 의해 결정된다는 원리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비자발적 실업의 주요 원인이 유효수요 부족에 있다고 설명했다.[235]

케인스는 유효수요가 시장 메커니즘에만 의존할 경우 부족 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투자 증가가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승수 이론에 근거하여, 정부가 감세나 공공 투자 같은 재정 정책을 통해 인위적으로 유효수요를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236] 특히 대공황과 같은 불황기에는 금융 정책보다 소비를 직접 늘리는 재정 지출 정책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았다.[236] 생산자들은 가격 조정보다는 총수요 변화에 맞춰 공급량을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235] 이때 공공 투자 정책이나 투자의 국가 관리는 생산 수단의 국유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투자가 기업가의 심리를 개선하여 경제 전체의 투자 수준을 높이는 데 본질이 있다고 보았다.

케인스가 제시한 이러한 이론과 정책 방향은 이후 케인스 경제학(케인스주의)으로 체계화되었으며, 경제학계를 고전파 경제학과 케인지언(케인스학파)으로 나누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때문에 케인스 이론의 등장을 '케인스 혁명'이라고 평가한다.

흔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케인스의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을 뿐 초기에는 서로 독립적이었다. 다만 이후 케인스의 이론은 뉴딜 정책과 같은 정부 개입 정책의 강력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게 되었다.[236]

3. 2. 유효 수요 이론

경제학에 대한 케인스의 초기 관심은 주로 화폐와 외환 문제에 집중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사회의 고용 및 생산 수준 결정 요인에 대해 기존 경제 이론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대표적인 저서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을 통해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닌, 소비투자를 합한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특히 공공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226] 이러한 그의 이론과 정책 제안, 그리고 그 기반을 이루는 사상적 전환은 '케인스 혁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에서 불완전 고용 상태에서도 경제 균형이 성립될 수 있음을 보이며, 완전 고용 달성을 위한 이론적 기반으로 세이의 법칙을 비판했다. 그는 "생산량은 소비와 투자로 구성된다"는 유효 수요 원리를 제시하고, 비자발적 실업의 근본 원인을 유효 수요의 부족에서 찾았다. 유효 수요는 단순히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둘 경우 부족 상태에 빠질 수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케인스는 투자가 소득 증가를 이끄는 승수 효과 이론에 기반하여 감세나 공공 투자와 같은 재정 정책을 통해 유효 수요를 인위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산자들은 가격을 조정하기보다는 총수요 변화에 맞춰 공급량을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235] 특히 케인스는 총수요 증대를 위해 재정 정책, 그중에서도 정부 지출 확대 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236]

케인스가 제시한 공공 투자 정책이나 투자의 국가 관리는 단순히 유효 수요를 보충하는 것을 넘어, 정부의 투자가 기업가들의 심리를 개선하여 경제 전체의 투자 수준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목표로 하는 것이지, 생산 수단의 국유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케인스의 이러한 이론 체계는 이후 케인스 경제학(또는 케인스주의)으로 불리며, 경제학을 고전파 경제학과 케인지언으로 나누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이러한 케인스 이론의 제시는 후에 '''케인스 혁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대공황 시기에는 금융 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이며, 소비를 직접 늘리는 재정 지출 정책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236]

흔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케인스의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뉴딜 정책과 케인스의 이론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을 뿐 초기에는 서로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다. 다만, 이후 케인스의 유효 수요 창출 이론은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 정책의 강력한 이론적 뒷받침이 되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케인스는 기존 자유무역 모델의 기본 가정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신고전학파의 임금 조정 가정 등을 비판했으며,[9][68] 완전 고용과 시장의 자동적인 균형 회복이라는 가정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며 비교 우위론의 한계를 지적했다.[9][10] 그는 1933년 ''뉴 스테이츠먼 앤 네이션''에 기고한 "국가적 자급자족"이라는 글에서 자유무역의 근간인 경제 특화 논리를 비판하고, 일정 수준의 국가적 자급자족 추구를 제안했다. 그는 리카도의 비교 우위론에 따른 경제 특화보다는 국가 내 다양한 산업 활동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했으며,[10] 무역이 항상 평화를 가져온다는 생각에도 회의적이었다. 케인스는 "가능하고 편리한 경우에는 항상 자국산 제품을 사용하고, 무엇보다도 재정은 주로 국내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호무역주의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69][11][9] 이는 외부 충격으로부터 국내 고용과 생산을 보호하고 유효 수요를 안정시키려는 그의 정책 방향과 맥을 같이 한다. 대공황 이후 그는 무역 적자를 피하기 위해 통화 평가절하만으로는 부족하며 보호무역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고 보았다.[9]

3. 3. 승수 효과

승수 개념은 R. F. 칸[92]이 1931년 6월 이코노믹 저널에 발표한 논문 "고정자산 투자와 실업의 관계"(The relation of home investment to unemploymenteng)[93]에서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칸의 승수는 고용 승수였으며, 케인스는 칸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투자 승수를 공식화했다.[94]

3. 4. 불확실성과 애니멀 스피릿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발표한 다음 해인 1937년에 발표한 보충 논문 『고용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에서 경제 활동에 대한 불확실성의 영향을 강조했다.[237] 그는 원래 케임브리지 대학교 수학과 출신으로, 박사 논문이기도 한 그의 첫 저서 『확률론』(A Treatise on Probability, 1921)에서 이미 확률과 불확실성 문제를 다루었다.[237] 이 책에서 케인스는 확률을 수학이 아니라 논리학의 한 분야로 보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며, 확률과 불확실성에 관한 철학적 문제들을 깊이 탐구했다.[237]

최근 케인스 연구에서는 이 시기 그가 개진한 개연성과 불확실성 전반에 대한 고찰이 후대 케인스 경제학 사상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238] 케인스가 사용한 유명한 용어인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s, 血気)"은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과감하게 투자 활동에 나서는 투자자들의 심리적 동인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다.[238]

3. 5. 재정 정책과 금융 정책

경제학에 관한 케인스의 초기 관심은 주로 화폐와 외환 문제에 집중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용 및 생산 수준 결정 요인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그의 대표 저서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는 완전고용을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해 자유방임주의 대신 소비투자, 즉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공공지출 등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론과 정책 제안은 '케인스 혁명'이라 불리며 현대 거시경제학의 기초를 마련했다.[226][230]

1920년대 영국은 높은 실업률에 시달렸고, 케인스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양한 정책을 제안했다. 1923년 『통화 개혁 논고』(en)에서는 디플레이션 정책을 비판하며, 국가들이 통화 가치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국내 물가 안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7] 또한 영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를 권고했으며, 1924년부터는 정부가 공공 사업에 지출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재정 정책을 주장했다.[37] 그러나 당시 그의 이론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평가 등으로 인해 정책 입안자나 주류 학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케인스는 금본위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금본위제가 국내 정책의 자율성을 제약하며, 특히 실업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적 조치가 필요할 때 오히려 국가들에게 디플레이션 정책을 강요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금본위제의 폐지를 촉구했다.[37] 당시 재무부와 영란은행은 금본위제를 지지했고, 1925년 재무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금본위제 복귀를 결정했는데, 이는 영국 산업에 불황을 초래했다. 케인스는 『처칠 씨의 경제적 결과』(en)를 통해 이를 강하게 비판했으며, 영국이 1931년 금본위제를 최종적으로 폐지할 때까지 반대 입장을 유지했다.[37]

대공황 이후 케인스의 생각은 변화를 겪었다. 초기에는 알프레드 마셜의 영향 아래 자유무역을 지지했으나, 1929년 경제 위기 이후 영국 당국이 파운드화의 금본위제 유지에 집착하고 명목 임금이 경직된 상황을 목격하면서 점차 보호무역 조치를 지지하게 되었다.[67] 1929년 11월, 맥밀런 위원회 청문회에서 그는 수입 관세 도입이 무역 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9] 1930년 경제 자문 위원회에서는 수입 감소를 위한 보호 체제 도입을 제안했고, 같은 해 가을에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단일 관세를 부과하고 모든 수출품에 동일 비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9] 그의 저서 『화폐론』(en, 1930)에서도 수입량을 줄이고 무역 수지를 재균형하기 위한 관세 또는 기타 무역 제한 조치를 언급했다.[9] 1931년에는 『뉴 스테이츠먼 앤 네이션』 기고를 통해 임금 삭감이 국내 수요를 위축시킨다고 지적하며, 확장적 재정 정책과 관세 제도를 결합하여 무역 수지 균형을 맞추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관세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보았으며, 구체적으로 제조품 및 반제품에 15%, 특정 식품 및 원자재에 5%의 관세를 부과하고 수출 필수품은 면제하는 안을 제안했다.[9] 1932년에는 영국에 필수적인 농업, 자동차, 철강 산업 등에 대한 보호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9]

케인스는 무역 적자가 실업률 상승과 국내총생산(GDP) 감소를 유발하는 해로운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무역 흑자국이 교역 상대국에 "부정적 외부 효과"를 행사하며 부유해지는 반면, 상대국의 생산량을 감소시킨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흑자국 제품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66]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경제 질서 재편 과정에서도 케인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소위 '케인스 계획'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연합 설립을 제안했다. 이 계획의 핵심은 국제 통화인 '반코르'(Bancor)를 창설하여 국가 간 결제에 사용하고, 무역 불균형 문제에 대해 채무국과 채권국 모두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었다.[70] 그는 특히 흑자국이 세계 총수요를 약화시키고 교역 상대국에게 부담을 주므로, 적자국 못지않게 세계 경제 번영에 위협이 된다고 보았다.[74] 케인스의 계획은 채권국(주로 미국)의 반대로 완전히 채택되지는 못했지만[70], 그의 아이디어는 브레턴우즈 체제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해리 화이트와 함께 브레턴우즈 체제 설계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케인스는 자유 무역보다는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국제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흑자국이 흑자를 줄이도록 유도하여 자동적으로 다른 국가들의 적자를 해소하는 시스템을 구상했다.[73] 이러한 생각은 대공황 이전, 국제 대출이 비생산적인 용도로 사용되어 결국 채무 불이행과 금융 위기를 초래했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78]

케인스는 특히 대공황과 같은 심각한 경기 침체기에는 통화량을 조절하는 금융 정책만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고, 정부 지출을 늘려 소비를 직접적으로 진작시키는 재정 정책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236] 그의 유효 수요 창출 이론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강력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뉴딜 정책이 케인스 이론에 직접 입각하여 시작된 것은 아니며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측면이 있다.

4. 정치 사상

케인스는 경미한 인플레이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긍정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83] 그는 디플레이션보다 인플레이션을 선호했으며, 두 가지 악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노동 계급 가정에 고통을 주는 것보다 "지대 수입자를 실망시키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84] 그러나 케인스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성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85] 그는 자신의 저서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다음과 같이 쓰며 인플레이션의 파괴력을 경고했다.

레닌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화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과정을 통해 정부는 비밀리에,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시민들의 부의 중요한 부분을 몰수할 수 있다. 기존 사회의 기반을 전복하는 것보다 더 미묘하고 확실한 방법은 통화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파괴의 측면에서 경제 법칙의 모든 숨겨진 힘을 활용하며, 백만 명 중 한 명도 진단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83]


한편, 케인스는 우생학을 지지했으며,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영국 우생학 협회(Galton Institute) 이사를 역임했다.[256][257] 1946년 강연에서는 우생학을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로 언급하기도 했다.[256]

4. 1. 자유주의

케인스는 『러시아 관찰』(1925년)에서 공산주의가 정치적으로 잘못되었고 잘못된 이론적 기반에 근거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오류일 뿐 아니라 현대 세계에는 흥미롭지도 않고 적용할 수도 없는 시대에 뒤떨어진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성서처럼 숭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볼셰비키가 종교를 비판하면서도 스스로 종교적인 행태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로츠키는 종교 등이 억압받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환영이며 사회주의 혁명이 이를 벗겨낼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케인스는 볼셰비키가 종교를 경멸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종교적 신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보았다. 케인스에 따르면, 레닌주의는 유럽이 분리해 놓았던 종교와 사업(정치경제 활동)을 결합했지만, 그 사업은 종교적 신념에 종속되어 비효율적이라고 평가했다. 레닌주의는 소수의 열렬한 개종자들에게 의존하며, 종교적 불관용으로 일상생활의 자유를 억압하고, 저항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한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레닌주의는 단순한 정당이 아니라, 위선자들이 이끄는 광신적 종교이며, 레닌은 비스마르크가 아니라 마호메트와 같다고 평가했다.

케인스는 자본주의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이미 종교를 가졌거나 종교가 필요 없다고 보았다. 그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이상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실의 적색 러시아는 혐오스러운 점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일상적인 자유와 안전의 파괴, 박해와 파괴의 의도적 이용, 국내외에서의 스파이 활동과 분쟁 조장을 비판했다.

또한 케인스는 러시아 공산주의가 사람들의 금전적 동기를 바꾸려는 시도를 비판적으로 보았다. 소련에서는 돈벌이가 경멸받는 활동으로 취급되고 검소함이나 저축조차 가치 없게 여겨지도록 계획되었지만, 실제로는 인민위원이나 교수, 공무원 등이 여전히 높은 소득과 특권을 누리며 소득 격차가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물가 상승과 과도한 누진세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으며, 이윤을 추구하는 사영 상인들은 불안정하고 수치스러운 존재로 취급받는다고 보았다.

케인스는 공산주의가 만약 성공한다면, 그것은 개선된 경제 운영 기술 때문이 아니라 종교적인 힘 때문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공산주의의 경제 운영 방식이 서구 사회에 적용될 경우 성공하기 어렵다고 보았으며,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혁명이 필수적인 수단이 되는 것 같은 경제적 개선법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급격한 변화를 수반하는 방법에 의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서유럽 각국의 산업 상태에서는 적색 혁명의 전술은 국민 전체를 빈곤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로서의 공산주의의 힘은 강력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평범한 사람을 찬양하는 교리는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으며, 신자들을 결속시키는 힘은 무종교적인 자본주의의 이기적인 원자론에 대항할 수 있다고 보았다. 케인스는 자본주의가 절대적으로 비종교적이며 내적인 결속이나 강한 공공심 없이 부를 추구하는 개인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케인스는 우생학을 지지했다. 그는 초기 경력부터 우생학에 관심을 보였으며,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영국 우생학 협회(Galton Institute)의 이사를 역임했다.[256][257] 1946년 강연에서는 우생학을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로 언급하기도 했다.[256] 이러한 그의 생각은 현대적 관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케인스는 자신의 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저널리즘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1912년 이코노믹 저널 편집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영국 재무성 수석 대표로 참석했다가 독일에 대한 과도한 배상금 요구에 반대하며 사임한 후, 『평화의 경제적 귀결』을 출판하여 베르사유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후 가디언, 이브닝 스탠더드, 타임스 등 여러 언론에 글을 기고했다. 1923년에는 자유당 성향의 주간지 네이션(Nation)을 인수하여 운영했으며, 이 잡지가 1931년 New Statesman|뉴 스테이츠먼eng지와 합병하여 뉴 스테이츠먼 앤드 네이션(New Statesman and Nation)이 된 후에도 정기적으로 기고 활동을 이어갔다.

4. 2. 반공주의

케인스러시아 혁명 초기에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제1차 세계 대전이 가져온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결과로 보기도 했다. 1919년 2월, 러시아 혁명 정부는 케인스에게 훈장을 수여하려 했으나, 케인스는 자신이 볼셰비키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알렉산드르 콜차크가 패배하고 처형되자, 케인스는 생각을 바꾸어 러시아 혁명이 실패했다고 선언했다.[239] 그는 1921년에 노동자들이 잠시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를 품었으나 곧 환멸을 느꼈으며, "유럽 노동 계급은 지난 몇 년간 마르크스주의 혁명이라는 궁극적인 희망을 품고 살아왔다. 그들에게 볼셰비키 실험의 실패는 파괴적이었다"고 평가했다.[240]

1922년, 케인스는 러시아 혁명에서 권력을 잡은 세력을 토지를 빼앗은 농민들, 혁명 신화에 심취한 공산주의 교조의 광신자들, 그리고 구체제를 증오하는 파괴주의 열광자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레닌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공산주의 경제 시스템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으며, 모호한 개념이 그 잔혹성을 가리고 있는 공산주의 교조주의자들은 매우 저급하다고 지적했다.[241] 또한, 그들이 경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체제 내에서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1921년까지 비효율적인 교조주의 체제는 붕괴했다고 주장했다.[241] 레닌이 이후 도입한 NEP(신경제정책)는 이러한 상황에서의 "타협"이라고 보았다.[241] 케인스는 볼셰비즘을 과장된 이상주의와 슬라브인 및 유대인의 고난, 그리고 그들 특유의 기질에서 비롯된 지적인 오류가 만들어낸 일종의 정신적 고양 상태나 망상으로 간주했다.[242]

1925년, 아내 리디아 로포코바와 함께 신혼여행으로 소련을 방문했을 때, 케인스는 강연에서 화폐에 대한 애착을 인간 행동의 동기에서 배제하려 한 것을 러시아 혁명의 공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귀국 후 발표한 『러시아 단견』(A Short View of Russia, 1925)에서는 소련이 광신적인 소수자에 의해 지도되며, 그 정책은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채택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레닌주의를 종교, 신비주의, 관념론이 혼합된 것으로 보았다. 케인스는 소련이 화폐를 폐지할 수 없다는 사실과 가격 문제에 "부르주아 경제학"이 적용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으며, 메시아적이고 박해적인 종교성에 의존하고 레닌처럼 신념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243]

같은 책에서 케인스는 공산주의가 정치적으로 잘못되었고 잘못된 이론적 기반 위에 서 있다고 지적하며,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오류일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에는 적용할 수 없는 시대에 뒤떨어진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성서처럼 숭배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케인스는 볼셰비키가 종교를 비판하면서도 스스로 종교적인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트로츠키는 종교, 시, 도덕 등이 억압받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사회적 환영이며, 사회주의 혁명은 이러한 환영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케인스는 볼셰비키가 종교를 경멸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종교'를 만들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레닌주의가 유럽이 분리해 온 종교와 사업(경제)을 결합했지만, 종교적 신념이 사업(경제 운영)의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레닌주의는 소수의 열렬한 신봉자들에게 의존하며, 종교적 불관용으로 일상생활의 자유와 즐거움을 억압하고,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박해한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이유로 케인스는 레닌주의가 단순한 정당이 아니라, 위선적인 소수 광신자들이 이끄는 종교와 같으며, 레닌은 비스마르크 같은 정치 지도자라기보다는 마호메트 같은 종교 지도자에 가깝다고 말했다.

케인스는 자본주의가 절대적으로 비종교적이며 내적인 결속도 없고 강한 공공심도 없이, 부를 가질 수 있는 자와 추구하는 자의 집합일 뿐이라고 보았다. 반면, 공산주의는 평범한 사람을 칭찬하는 교리는 지금까지의 종교가 대중을 사로잡아 온 것이며, 종교에는 신자들을 결속시키는 유대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무종교자의 이기적인 원자론에 충분히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케인스는 소련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았다. 공산주의는 사람들의 행동의 금전적 동기의 중요성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기준을 바꾼다고 주장했지만, 영국에서는 기업가가 되어 재산을 축적하는 것이 공무원이 되거나 학문 세계에 종사하는 것과 비교하여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큰 존경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소련에서는 돈벌이에 종사하는 것이 가능한 취업처로 여겨지지 않고, 강도, 위조, 횡령 기술을 습득하는 것으로 간주되도록 계획되어 있으며, 검소함이나 저축, 가계를 안정시키는 것조차 가치가 낮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비판했다. 실제 소련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는 성공자가 있으며, 인민위원은 매주 5파운드를 얻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무료 서비스, 자동차, 아파트, 극장의 박스석 등도 지급되었다. 교수나 공무원은 하급 노동자의 3배, 빈농의 6배의 소득을 얻고 있으며, 격차는 해소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과 터무니없는 누진세제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은 고달팠다.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하면 뇌물이나 횡령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낭비벽이 있는 자는 수색과 사형을 포함한 형벌을 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이윤을 노린 매매는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한 직업을 불안정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만들려고 했으며, 사영 상인은 중세의 유대인처럼 공인된 무법자로 여겨지며 특권이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케인스는 공산주의가 만약 승리를 거둔다면, 개선된 경제 운영 기술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로서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형식적인 비판은 공산주의를 종교로 간주하고 너무 증오하기 때문에 그 경제적 비효율성을 과장하고, 반면에 경제적 비효율성의 인상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종교로서의 측면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인스는 공산주의의 경제 운영 기술이 영국의 부르주아적 이상을 남긴 사회(19세기의 개인주의적 자본주의가 아닌)에 적용해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혁명이 필수적인 수단이 되는 것 같은 경제적 개선법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급격한 변화를 수반하는 방법에 의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서유럽 각국의 산업 상태에서는 적색 혁명의 전술은 국민 전체를 빈곤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로서의 공산주의의 힘은 상당히 강력할 것이라고 보았다. 평범한 사람을 칭찬하는 교리는 지금까지의 종교가 대중을 사로잡아 온 것이며, 종교에는 신자들을 결속시키는 유대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무종교자의 이기적인 원자론에 충분히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자본주의는 절대적으로 비종교적이며 내적인 결속도 없고 강한 공공심도 없이, 부를 가질 수 있는 자와 추구하는 자의 집합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4. 3. 우생학

케인스는 우생학을 지지했다.[206][256] 그는 초기 경력부터 우생학에 관심을 보였으며,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영국 우생학 협회의 이사로 활동했다.[206][257] 사망 직전인 1946년 한 강연에서는 우생학을 "존재하는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으며, 덧붙여 진정한 사회학 분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207][256]

5. 기타 활동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통화금융 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브레턴우즈 체제 구상 과정에 참여하여 해리 화이트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학문적으로는 경제학의 거장 알프레드 마셜의 제자였으며, 동료 경제학자이자 논객인 아서 피구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함께 활동하며 때로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나 작가, 예술가들이 모인 블룸즈베리 그룹과의 지적, 개인적 교류를 통해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5. 1. 저널리즘

케인스는 학술적인 저작 외에도 당대의 경제 및 정치 문제에 대해 신문 기고나 에세이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주요 기고 및 에세이는 다음과 같다.

  • 1915년: 독일의 전쟁 경제 (The Economics of War in Germanyeng)
  • 1922년: 인플레이션, 세금 부과의 한 방법으로 (Inflation as a Method of Taxationeng)
  • 1925년: 나는 자유주의자인가? (Am I a Liberal?eng)
  • 1926년: 자유방임공산주의 (Laissez-Faire and Communismeng)
  • 1929년: 로이드 조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Can Lloyd George Do It?eng)
  • 1930년: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eng)
  • 1931년: 금본위제의 종말 (The End of the Gold Standardeng) (선데이 익스프레스)
  • 1931년: 1930년대 대공황 (The Great Slump of 1930eng)
  • 1933년: 번영을 위한 수단 (The Means to Prosperityeng)
  •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께 보내는 공개 서한 (An Open Letter to President Roosevelteng) (뉴욕 타임즈)
  • 1933년: 전기 에세이 (Essays in Biographyeng)
  • 1937년: 고용 일반 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eng)

5. 2. 투자

케인스는 성공적인 투자자였으며, 상당한 개인 자산을 축적했다.[195] 1929년 월가 대폭락 이후 그의 자산 대부분이 사라졌지만(그는 이를 예측하지 못했다), 곧 회복했다.[195] 1946년 사망 당시 그의 순자산은 50만파운드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는 다양한 자선 단체와 사업에 대한 관대한 지원, 그리고 시장 침체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윤리적 이유로 하락장에서 매도를 꺼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룬 성과였다.[195]

케인스는 1920년대부터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의 기금을 운용했다. 초기에는 시장 타이밍에 기반한 전략을 사용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높은 배당금을 지급하는 중소기업의 상장 주식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196] 당시 주식은 위험 자산으로 여겨졌고, 수 세기 동안 운영된 기금은 전통적으로 토지나 채권 같은 고정소득 자산에 투자했기 때문에, 케인스의 주식 투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정이었다.[197] 케인스는 소규모 자산을 주식에 투자할 허가를 얻었고, 그의 능숙한 운용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기금 자산의 대부분을 주식이 차지하게 되었다.[197] 그의 포트폴리오 중 적극적으로 운용한 부분은 25년 이상 영국 주식 지수를 연평균 6%[196]에서 8%까지 초과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워렌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와 같은 후대의 유명 투자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198]

피델리티 투자의 조엘 틸링하스트는 케인스를 가치 투자의 초기 실천가로 평가했다. 가치 투자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국 컬럼비아 경영대학원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에 의해 체계화된 투자 방식이다.[196] 그러나 케인스는 독자적으로 자신의 투자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197] 케인스는 또한 "전체적인 변동 속에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자산, 즉 "상반된 위험"을 가진 자산을 보유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함으로써 분산투자의 선구자로 여겨진다.[200] 그는 영국 외 주식에도 상당 부분 투자하며 자국 편향을 피한 초기 국제 투자자 중 한 명이기도 했다.[199] 투자 전문가 켄 피셔는 케인스를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형편없는 투자자"라는 통념의 예외적인 사례로 언급했다.[200]

케인스는 1919년 내셔널 뮤추얼 생명보험 협회 이사회에 합류하여 1921년부터 1938년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주식 투자와 더불어 고정금리 증권의 적극적인 거래 정책을 도입했다. "케인스는 [투자 거래]에 존경심을 부여하고 이를 생명보험 기금에 적용한 최초의 인물이다."[201][202]

올리비에 아코미노티와 데이비드 체임버스는 케인스가 자신의 투자에 외환 거래나 캐리 트레이드를 활용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203] 케인스는 이러한 전략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1930년 맥밀런 위원회에서 설명했듯이 당시에는 금을 운송하는 비용을 감당할 만큼 국가 간 금리 차이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204][205]

5. 3. 예술 후원



케인스는 케임브리지 시절부터 리튼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등과 친분을 쌓았고, 이를 계기로 버지니아 울프, 바네사 벨, 던컨 그랜트 등이 속한 블룸즈베리 그룹의 주요 일원이 되었다.[261] 그는 그룹 내 친구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예술적 안목을 키웠다. 이는 이후 그의 그림 수집과 예술 분야에 대한 공적 지원 활동으로 이어졌다.[263][264]

케인스는 소년 시절부터 고서 수집에 취미가 있었고, 블룸즈베리 그룹의 영향으로 1908년부터는 회화 수집을 시작했다.[263] 그의 회화 컬렉션은 사후 135점에 달했으며, 폴 세잔, 조르주 쇠라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블룸즈베리 그룹 친구들과 그가 후원했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264] 그는 뛰어난 안목을 가진 수집가로 평가받았고, 소장한 그림들은 사망 당시 가치가 크게 상승하여 재산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했다.[264]

또한 케인스는 축적한 자산을 바탕으로 예술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1936년 케임브리지 아트 시어터를 설립했다.[263] 그는 예술 분야에 대한 국가 지원을 지지했으며, 1942년 음악예술장려평의회(CEMA, Council for the Encouragement of Music and the Arts) 회장에 취임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중 생활고를 겪는 전문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쳤다.[265] 1946년 CEMA가 개편되어 영국예술협의회(Arts Council of Great Britain)가 설립되자 초대 회장을 맡았다.[266]

6. 비판 및 논쟁

케인스 경제학은 1970년대 들어 통화주의의 도전을 받았다. 통화주의자들은 경기 침체 대책으로 화폐 공급량 조절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케인스주의적 접근에 비판을 제기했고, 이로 인해 케인스 경제학은 한때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그러나 2007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케인스 이론에 기반한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케인스주의적 해법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신케인즈주의의 부상으로 이어졌다.[231]

7. 영향 및 유산

영국 케임브리지 출신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자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꼽힌다. 그의 업적은 현대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케인스는 실업의 원인에 대한 경제 이론을 새롭게 정립했으며, 그의 대표작인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는 완전고용 정책에 기반한 경기침체 구제책을 제시했다.[226] 이를 통해 거시경제학 이론과 실제, 그리고 각국 정부의 경제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227][228][229]

케인스는 수학 연구를 바탕으로 경기순환 이론을 발전시켰고, 유효수요 개념을 중심으로 케인스 학파를 이끌며 거시경제학 분야를 확립했다.[230] 그의 이론은 케인즈 경제학으로 알려진 학파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외환 체제인 브레턴우즈 체제를 설계하는 데 해리 화이트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케인즈 경제학은 1970년대에 들어 밀턴 프리드먼 등을 중심으로 한 통화주의가 부상하면서 잠시 영향력이 약화되기도 했다. 통화주의자들은 경기침체 대책으로 통화 공급량 조절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7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케인스 이론에 기반한 적극적인 재정 정책통화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그의 사상은 신케인즈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231]

케인스는 학문적 업적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매력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때때로 날카로운 비판으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에게 악감정을 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143] 브레튼우즈 협상을 마무리하는 연설에서는 그의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이룬 업적에 대한 경의로 이례적으로 긴 기립 박수를 받았다.[27]

경제학적으로 상반된 견해를 가졌던 대표적인 비판가인 오스트리아 학파프리드리히 하이에크조차 케인스 사후 "그는 내가 알았던 유일한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었고, 내가 무한한 존경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며 "세상은 그가 없으면 훨씬 더 가난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144] 동료 니콜라스 데이븐포트는 케인스에게 "깊은 감정적 힘"과 "인간성"이 있었다고 회상했다.[145]

1930년대 케인스와 여러 차례 논쟁을 벌였던 런던정경대의 라이오넬 로빈스는 브레튼우즈 계획 수립 과정에서 케인스의 협상 능력을 보고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50]

: 이것은 정말 잘 진행되었습니다. 케인스는 가장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분위기였고, 그 효과는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순간에 저는 종종 케인스가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 중 한 명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빠른 논리, 직관의 날카로운 통찰력, 생생한 상상력, 넓은 시야, 무엇보다도 말의 적절성에 대한 비할 데 없는 감각은 모두 평범한 인간의 업적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캐나다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부의 관리였던 더글러스 르판은 케인스를 만난 경험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50]

: 저는 마법에 걸렸습니다. 제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그는 우리 종에 속합니까? 아니면 다른 계급에서 온 것일까요? 그에게는 신화적이고 멋진 무언가가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서 거대하고 스핑크스 같은 무언가를 감지하지만, 날개의 힌트도 감지합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케인스를 자신이 아는 가장 지적인 사람 중 한 명으로 꼽았으며,[146] 다음과 같이 말했다.[147]

: 케인스의 지성은 제가 알았던 것 중 가장 날카롭고 명료했습니다. 제가 그와 논쟁할 때, 저는 제 목숨이 위험에 처했다고 느꼈고, 바보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고 빠져나온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타임스는 케인스의 부고 기사에서 그를 "빛나는, 훌륭한, 활기찬, 쾌활한, 장난기 많은 농담으로 가득 찬... 공공선에 진정으로 헌신적인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묘사했다.[52]

8. 저서


  • 1913년 Indian Currency and Financeeng (인도 통화 및 재정)
  • 1919년 평화의 경제적 결과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eng)
  • 1921년 확률론 (A Treatise on Probabilityeng)
  • 1922년 Revision of the Treatyeng (조약 개정)
  • 1923년 A Tract on Monetary Reformeng (통화 개혁 논고)
  • 1926년 The End of Laissez-Faireeng (자유방임의 종말)
  • 1930년 화폐론 (A Treatise on Moneyeng)
  • 1931년 Essays in Persuasioneng (설득의 에세이)
  • 1933년 Essays in Biographyeng (전기 에세이)
  •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 일반 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eng)
  • 1940년 전쟁 비용 지불 방법 (How to Pay for the War: A radical plan for the Chancellor of the Exchequereng)
  • 1949년 Two Memoirseng (두 개의 회상) - 데이비드 가넷 편집. "칼 멜키오르 박사: 패배한 적"과 "나의 초기 신념" 두 개의 자서전적 에세이 포함.


'''주요 논문 및 기사'''

  • 1915년 독일의 전쟁 경제 (The Economic Journal)
  • 1922년 세금 부과 방식으로서의 인플레이션 (Manchester Guardian Commercial Reconstruction Supplement)
  • 1925년 나는 자유주의자인가? (Nation & Athenaeum)
  • 1926년 자유방임과 공산주의 (New Republic)
  • 1929년 로이드 조지는 할 수 있을까? (Nation and Athenaeum)
  • 1930년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 (Nation and Athenaeum)
  • 1930년 1930년대 대공황 (Nation and Athenæum)
  • 1931년 금본위제의 종말 (Sunday Express)
  • 1933년 번영의 수단 (Macmillan and Co.)
  •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께 보내는 공개 서한 (New York Times)
  • 1937년 고용에 관한 일반 이론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전집'''

  • The Collected Writings of John Maynard Keyneseng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전집), 30권 양장본, 캠브리지 대학교 출판부(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참조

[1] 서적 The Return to Keynes https://books.google[...] Harvard University Press 2017-04-21
[2]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Twentieth-Century Political Thought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12-04
[3] ODNB Keynes, John Maynard, Baron Keynes (1883–1946)
[4] 뉴스 How to kick-start a faltering economy the Keynes way http://news.bbc.co.u[...] BBC 2008-10-22
[5] 서적 Reintroducing Macroeconomics: A Critical Approach https://books.google[...] Taylor & Francis
[6] 학술지 Economic Professors' Favorite Economic Thinkers, Journals, and Blogs https://econjwatch.o[...] 2011-05
[7] 서적 Keynes: The Return of the Master Public affairs 2010-10-26
[8] 뉴스 Keynes offers us the best way to think about the financial crisis 2008-12-23
[9] 학술지 J.M. Keynes, le libre-échange et le protectionnisme https://www.erudit.o[...]
[10] 논문 Les fondements non neoclassiques du protectionnisme http://www.sudoc.abe[...] Université Bordeaux-IV
[11] 학술지 National Self-Sufficiency http://www.mtholyoke[...] 1933-06
[12] 서적 Peddling Prosperity: Economic Sense and Nonsense in the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s https://books.google[...] W.W. Norton
[13] 뉴스 To Set the Economy Right http://www.time.com/[...] 1979-08-27
[14] 뉴스 The undeniable shift to Keynes https://www.ft.com/c[...]
[15] 뉴스 The Time 100: John Maynard Keynes http://content.time.[...] 1999-03-29
[16] 뉴스 The IMF in Britain: Toothless truth tellers https://www.economis[...] 2013-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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