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766년에 제작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이다. 법승과 법연 두 승려가 두온애랑의 원을 위해 조성했으며,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함께 석남암수 관음암에 봉안되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불상은 동아시아에서 명문이 밝혀진 최초의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으로, 불교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8세기 중엽 불상 복장의 시원적 형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불상의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가 국보로 지정된 만큼,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역시 국보 승격의 가치가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경상남도의 국보 -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은 고려 시대에 제작된 불교 경전 등을 담은 총 54종 2,835판의 목판으로,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해인사 대장경판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한국 목판 인쇄술과 서각예술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 경상남도의 국보 -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15세기 후반에 팔만대장경 판목 보관을 목적으로 건립된 수다라장과 법보전으로 구성된 목조 건축물로서, 팔만대장경 보존을 위한 과학적인 설계가 돋보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현대 건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 비로자나불상 -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그 안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들로, 불상의 조형성과 조각적 완성도가 뛰어나며 조선 후기 복장 의례 연구, 불상 연대 추정, 직물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비로자나불상 -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1634년에서 1635년 사이 조성된 현존 최대 크기의 목조불상으로, 삼신불 도상으로는 유일한 사례이며, 17세기 불상 양식의 기준이 되고 불교 미술 부흥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2021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이름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한자 표기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유형국보
지정 번호233-1
지정일2016년 1월 7일
주소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하내원로 256, 내원사
시대남북국 시대 766년
소유자내원사
참고 규격 (cm)불상높이 102, 어깨너비 52.5, 무릎높이 15.3, 무릎너비 85.2, 광배높이 118, 광배너비 80, 대좌높이 79.5
문화재청 ID11,02330100,38

2. 역사

(요약 및 원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았고, 이전 결과물도 없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3. 특징

지리산 중턱 석남암사지에 있다가 현재 내원사로 옮겨 놓은 돌로 만든 비로자나불상이다. 비바람에 의한 마멸로 세부 표현은 명확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대좌 중앙의 구멍에 있었던 사리호(舍利壺) 표면에 기록된 글에는 신라 혜공왕 2년(766)에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석남암사에 모신다는 내용이 있다. 이 불상은 비로자나불상의 가장 빠른 조성 예로 조각사 편년 및 사상사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3. 1. 형태

지리산 중턱 석남암사지에 있다가 현재 내원사로 옮겨 놓은 돌로 만든 비로자나불상이다.

비바람에 의한 마멸 때문에 세부 표현은 명확하지 않지만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머리 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는 높고 큼직한 편이나 약간 파손되었으며, 둥근 얼굴은 부피감이 풍부하여 8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상체는 건장한 모습으로 자연스러운 가슴, 허리의 굴곡, 어깨나 팔의 부피감 등에서 사실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옷은 얇아서 신체의 굴곡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옷주름 역시 촘촘하고 부드럽게 표현하여 8세기 불상의 옷주름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손모양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모습으로 이 불상이 비로자나불임을 알려주고 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졌는데, 8각의 하대에는 아래를 향한 연꽃무늬를 새겼다. 중대는 8각의 각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으며, 상대에는 2겹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위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하단까지 깨져 약 3분의 1정도가 없어져 버렸다.

3. 2. 옷 주름

전신을 감싸고 있는 옷은 얇아서 신체의 굴곡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옷주름 역시 촘촘하고 부드럽게 표현하여 8세기 불상의 옷주름 특징을 보여준다.

3. 3. 수인 (手印)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손모양은 이 불상이 비로자나불임을 알려준다.[1]

3. 4. 대좌와 광배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상대, 중대, 하대로 이루어졌는데, 8각의 하대에는 아래를 향한 연꽃무늬를 새겼다. 중대는 8각의 각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으며, 상대에는 2겹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위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하단까지 깨져 약 3분의 1정도가 없어져 버렸다.

4. 학술적 의의

이 불상은 납석사리호 명문을 통해 조성 배경과 시기가 명확히 밝혀진,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으로, 불교 미술사 연구에 있어 도상 및 양식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2] 특히, 불상 내부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납입한 것은 우리나라 불상 복장(腹藏) 양식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2]

납석사리호는 이미 국보 제233호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이를 봉안했던 석불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어, 현재의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2]

4. 1. 한국 최고(最古) 지권인 비로자나불상

이 비로자나불상은 불상의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의 명문을 통해, 766년(혜공왕 2)에 법승(法勝)과 법연(法緣) 두 승려가 받들어 돌아가신 두온애랑(豆溫哀郞)의 원을 위해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와 함께 석남암수 관음암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을 가진 중요한 불상이다.[2] 이 불상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기년명(紀年銘)이 있는 지권인(智拳印) 비로자나불상으로서 중요하며, 편년자료가 부족한 고대 조각사 연구에도 절대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더불어 지권인을 한 여래형(如來形)의 비로자나불 형식이 766년에 정립되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불교 사상과 새로운 불교사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서 주목된다.[2]

따라서 이 비로자나불상은 동아시아를 통틀어 명문이 밝혀진 최초의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으로서 도상적․양식적으로 불교미술사 연구에 매우 귀중하고 획기적인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이 불상을 통해 8세기 중엽경에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불상에도 납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불상 복장의 시원적 형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2]

4. 2. 불교 사상 연구

이 비로자나불상은 불상의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의 명문을 통해 766년(혜공왕 2)에 법승(法勝)과 법연(法緣) 두 승려가 받들어 돌아가신 두온애랑(豆溫哀郞)의 원을 위해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와 함께 석남암수 관음암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을 가진 중요한 불상이다.[2]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년명(紀年銘)이 있는 지권인(智拳印) 비로자나불상으로서 중요하며, 편년자료가 부족한 고대 조각사 연구에도 절대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더불어 지권인을 한 여래형(如來形)의 비로자나불 형식이 766년에 정립되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불교 사상과 새로운 불교사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서 주목된다.[2]

따라서 이 비로자나불상은 동아시아를 통틀어 명문이 밝혀진 최초의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으로서 도상적․양식적으로 불교미술사 연구에 매우 귀중하고 획기적인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이 불상을 통해 8세기 중엽경에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불상에도 납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불상 복장의 시원적 형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2]

4. 3. 복장 유물 연구

이 비로자나불상은 불상의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의 명문을 통해, 766년(혜공왕 2)에 법승(法勝)과 법연(法緣) 두 승려가 받들어 돌아가신 두온애랑(豆溫哀郞)의 원을 위해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와 함께 석남암수 관음암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을 가진 중요한 불상이다.[2] 이 불상을 통해 8세기 중엽경에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불상에도 납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불상 복장의 시원적 형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2]

5. 국보 승격

이 비로자나불상은 동아시아에서 명문이 밝혀진 최초의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으로, 불교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8세기 중엽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불상에 납입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불상 복장의 초기 형태를 알 수 있다.[2] 납석사리호가 이미 국보 제233호로 지정되었으므로, 이를 봉안했던 석불은 국보로 승격될 가치가 충분하다.[2]

5. 1. 국보 승격 사유

이 비로자나불상은 불상의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 명문에 766년(혜공왕 2) 법승(法勝)과 법연(法緣) 두 승려가 돌아가신 두온애랑(豆溫哀郞)의 원을 위해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와 함께 석남암수 관음암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중요한 불상이다.[2]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년명(紀年銘) 지권인(智拳印) 비로자나불상으로 중요하며, 편년 자료가 부족한 고대 조각사 연구에 절대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지권인을 한 여래형(如來形)의 비로자나불 형식이 766년에 정립되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불교 사상과 불교사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주목된다.[2]

따라서 이 비로자나불상은 동아시아를 통틀어 명문이 밝혀진 최초의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으로서 도상적, 양식적으로 불교미술사 연구에 매우 귀중하고 획기적인 자료이다. 또한 이 불상을 통해 8세기 중엽경에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불상에도 납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불상 복장의 시원적 형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2]

이미 불상의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가 국보 제233호로 지정되어 국보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만큼, 이를 봉안했던 석불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때, 현재의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된다.[2]

참조

[1] 간행물 문화재청고시제2010-89호(국가지정문화재 보물지정) http://gwanbo.mois.g[...] 관보(정호) 2010-08-25
[2]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국보, 보물) 지정 및 보물 지정 해제 문화재청 2016-01-0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