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서울특별시의 문화재자료 제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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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는 물과 땅에서 죽은 고혼을 달래기 위한 수륙재 의식 절차를 요약한 의례서로, 1593년 전라도 담양의 용천사에서 간행된 목판본이다. 총 54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시기에 간행된 판본이라는 점과 용천사 본으로는 처음 공개된다는 점에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판본은 1593년 3월에 용천사에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무량사 판본과 계통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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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서울특별시의 문화재자료 제67호)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
한자 | 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
위치 | 서울 운가암 |
문화재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서울특별시 강북구 4.19로28길 101 (수유동, 운가암) |
유형 | 문화재자료 |
지정번호 | 67 |
지정일 | 2016년 10월 6일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운가사 |
수량 | 1책 |
2. 지정 사유
물과 땅에서 죽은 고혼(孤魂)들을 달래기 위한 수륙재의 의식 절차를 요약한 의례서로, 보통 '중례문'(中禮文)이라고도 한다.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는 물과 땅에서 죽은 고혼(孤魂)들을 달래기 위한 수륙재(水陸齋)의 의식 절차를 요약한 의례서로, 보통 『중례문(中禮文)』이라고도 불린다. 이 책은 1593년(선조 26년) 전라남도 담양의 용천사(龍泉寺)에서 간행된 목판본이다. 총 54편의 수륙재 의식 절차가 수록되어 있으며, 실제 책으로 인쇄된 시기는 17세기로 추정된다.
1593년(선조 26년) 전라남도 담양군에 있는 용천사에서 간행한 목판본이다. 총 54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인쇄 시기는 17세기로 보인다. 최근 원래 표지 위에 새 표지를 덧대어 다시 장정하였고, 표지부터 제8장까지 가운데 아랫부분이 손상되어 있다.
이 용천사 간행 판본은 임진왜란 중인 1593년 3월 상순에 완성된 것이다. 비록 보존 상태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전란 중에 간행된 판본이라는 점과 용천사 본으로는 처음 공개된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3. 판본 및 내용
현재 전해지는 이 판본은 원래의 표지 위에 새로운 표지를 덧대어 다시 장정한 상태이며, 표지부터 제8장까지 책의 가운데 아랫부분이 손상되어 있다. 이 용천사 간행본은 임진왜란이라는 전란 속에서 완성된 판본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며, 용천사 판본으로는 처음 공개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비록 보존 상태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점들이 고려되어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3. 1. 수록 내용
이 책은 수륙재(水陸齋)의 의식 절차를 총 54편으로 나누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각 편은 수륙재의 진행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으며, 의식에 사용되는 주문, 기도문, 찬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수록된 54편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번호 | 편명 (한글) | 편명 (한자) |
---|---|---|
1 | 설회인유편 | 設會因由篇 |
2 | 엄정팔방편 | 嚴淨八方篇 |
3 | 주향통서편 | 呪香通序篇 |
4 | 주향공양편 | 呪香供養篇 |
5 | 소청사자편 | 召請使者篇 |
6 | 안위공양편 제6 | 安位供養篇 第六 |
7 | 봉송사자편 | 奉送使者篇 |
8 | 개벽오방편 | 開闢五方篇 |
9 | 안위공양편 제9 | 安位供養篇 第九 |
10 | 소청상위편 | 召請上位篇 |
11 | 봉영부욕편 제11 | 奉迎赴浴篇 第十一 |
12 | 찬탄관욕편 | 讚歎灌浴篇 |
13 | 인성귀위편 | 引聖歸位篇 |
14 | 헌좌안위편 제14 | 獻座安危篇 第十四 |
15 | 찬례삼보편 | 讚禮三寶篇 |
16 | 소청중위편 | 召請中位篇 |
17 | 봉영부욕 제17 | 奉迎赴浴 第十七 |
18 | 가지조욕편 제18 | 加持澡浴篇 第十八 |
19 | 출욕참성편 제19 | 出浴參聖篇 第十九 |
20 | 천선예성편 | 天仙禮聖篇 |
21 | 헌좌안위편 제21 | 獻座安危篇 第廿一 |
22 | 소청하위편 | 召請下位篇 |
23 | 인예향욕편 | 引詣香浴篇 |
24 | 가지조욕편 제24 | 加持澡浴篇 第廿四 |
25 | 가지화의편 | 加持化衣篇 |
26 | 수의복식편 | 授衣服飾篇 |
27 | 출욕참성편 제27 | 出浴參聖篇 第廿七 |
28 | 고혼예성편 | 孤魂禮聖篇 |
29 | 수위안좌편 | 受位安座篇 |
30 | 기성가지편 | 祈聖加持篇 |
31 | 보신배헌편 | 普伸拜獻篇 |
32 | 공성회향편 | 供聖廻向篇 |
33 | 선밀가지편 | 宣蜜加持篇 |
34 | 가지멸죄편 | 加持滅罪篇 |
35 | 주식현절편 | 呪食現切篇 |
36 | 고혼수향편 | 孤魂受饗篇 |
37 | 설시인연편 | 說示因緣篇 |
38 | 원성수은편 | 願聖垂恩篇 |
39 | 청성수계편 | 請聖受戒篇 |
40 | 참제업장편 | 懺除業障篇 |
41 | 발홍서원편 | 發弘誓願篇 |
42 | 사사귀정편 | 捨邪皈正篇 |
43 | 석상호지편 | 釋相護持篇 |
44 | 득계소요편 | 得戒逍遙篇 |
45 | 득성십도편 | 修成十度篇 |
46 | 의십획과편 | 依十獲果篇 |
47 | 관행게찬편 | 觀行偈讚篇 |
48 | 회향게찬편 | 廻向偈讚篇 |
49 | 화재수용편 | 化財受用篇 |
50 | 경신봉송편 | 敬伸奉送篇 |
51 | 보신회향편 | 普伸廻向篇 |
3. 2. 간행 기록
이 책은 1593년(선조 26년) 전라남도 담양에 위치했던 용천사에서 간행한 목판본이다. 본문 마지막 부분에 "萬曆二十一年癸巳(1593)三月上旬{畢全羅道潭陽地秋[月]山龍泉寺開"라는 간기(刊記)가 남아 있어, 1593년 3월 상순에 간행이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간행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용천사는 임진왜란 중에도 불서 간행이 활발했던 사찰로 추정된다. 당시 용천사에서 간행되어 현재까지 전해지는 불서만 해도 약 20종에 이른다. 이 판본의 실제 인쇄 시기는 17세기로 추정된다.
판본의 형식은 행과 글자 수가 8행 14자로, 이는 1529년 충청도 홍산의 무량사에서 간행된 판본과 동일한 형식이다. 다른 판본들이 대부분 7행 17자인 점을 고려할 때, 이 용천사 판본은 인근 무량사 판본의 계통을 잇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이 끝난 뒤 간행 기록이 있는 장의 일부(1~2행)가 남아 있어 이 판본의 간행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4. 다른 판본과의 비교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중에서 1529년 충청도 홍산의 무량사 판본과 이 용천사 판본은 행과 글자 수가 8행 14자인 형식을 따른다. 이는 다른 판본들이 대부분 7행 17자 형식을 따르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형식적 유사성으로 볼 때, 용천사 판본은 인근 무량사 판본의 계통을 이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용천사 판본 이전에 간행된 판본으로는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된 15세기 합천 해인사 판본(1469년 김수온 발문)부터 1580년에 간행된 용인의 서봉사 판본까지 15종 이상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용천사 간행 판본은 임진왜란이라는 전란 중인 1593년 3월 상순에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록 보존 상태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국난 속에서도 불교 문화 간행이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고, 용천사에서 간행된 판본으로는 처음 공개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5. 추가 기록
앞표지 안쪽 면에는 "人生如幻又如夢, 樂日終時苦日長, 若也心頭無正慧, 死將何物答冥王"이라는 글귀가 먹으로 쓰여 있다. 이는 『청허집』 권3에 실린 「계쌍인소사(誡雙印小師)」(쌓인 소사에게 훈계함)의 내용이다. 뒤표지 안쪽 면에도 칠언시가 먹으로 쓰여 있으나,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글귀들은 이전 소장자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표지는 최근에 원래의 표지 위에 새로운 표지를 덧대어 다시 꾸몄다. 이전의 앞뒤 표지에는 『중례문(中礼文)』이라는 서명이 먹으로 쓰여 있었다. 이 표지부터 제8장까지는 가운데 아랫부분의 손상이 제법 큰데, 이는 복장(腹藏)되어 있을 때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6. 의의와 평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는 물과 땅에서 죽은 외로운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한 불교 의식인 수륙재의 절차를 요약한 책으로, 흔히 『중례문』이라고도 불린다. 이 책은 1593년(선조 26년) 전라도 담양에 위치했던 용천사(龍泉寺)에서 간행한 목판본이다. 총 54편의 내용이 실려 있으며, 인쇄된 시기는 17세기로 추정된다. 근자에 원래 표지 위에 새 표지를 덧대어 놓았고, 표지부터 제8장까지 책의 가운데 아랫부분이 손상되어 있다.
이 용천사 간행 판본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도 1593년 3월 상순에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록 일부 손상되었지만, 전란 중에도 불교 의례와 신앙 활동이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이며, 용천사에서 간행된 판본으로는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는 희귀성을 인정받아 서울특별시의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자료는 조선 시대 불교 의례, 특히 수륙재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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