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닉 엑스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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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닉 엑스트림은 세가가 1990년대 중반 세가 새턴용으로 개발하다가 취소된 3D 소닉 더 헤지혹 게임이다. 1991년 출시된 소닉 더 헤지혹의 성공 이후 세가 테크니컬 연구소(STI)가 개발을 시작했으나, 개발 과정에서 여러 차례 플랫폼이 변경되고 개발팀 내부의 갈등과 기술적 문제, 그리고 세가 내부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결국 개발이 중단되었다. 소닉 엑스트림은 3D 게임 플레이, 어안 렌즈 카메라 시스템, 그리고 새로운 액션을 특징으로 했으며, 만약 출시되었다면 세가 새턴의 라인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평가받지만, 취소로 인해 세가 새턴의 실패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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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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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제목 | 소닉 X-트림 |
원제 | Sonic X-treme |
개발사 | 세가 테크니컬 인스티튜트 |
배급사 | 세가 |
감독 | 미정 |
프로그래머 | 크리스 코핀 오페르 알론 |
디자이너 | 크리스 센 리처드 휠러 제이슨 쿠오 |
아티스트 | 로스 해리스 페이 청 앤드루 프로버트 |
작곡가 | 하워드 드로신 |
프로듀서 | 마이크 월리스 |
출시일 | 취소됨 |
시리즈 | 소닉 더 헤지혹 |
장르 | 플랫폼 |
모드 | 싱글 플레이어 |
플랫폼 | 세가 새턴 윈도우 |
2. 배경
1991년에 출시된 오리지널 ''소닉 더 헤지혹''은 일본의 소닉 팀에서 개발했다. 이 게임은 북미 지역에서 세가 제네시스의 인기를 크게 끌어올렸다.[8] 출시 후 개발자인 나카 유지와 다른 일본인 직원들은 마크 체르니가 이끄는 개발 부서인 세가 테크니컬 연구소(STI)에 합류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9][10] 체르니는 미국과 일본 개발자들의 디자인 철학을 결합하여 엘리트 개발 스튜디오를 설립하고자 했다.[10]
1991년, STI는 이듬해 출시된 ''소닉 더 헤지혹 2''(1992)를 포함한 여러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소닉 더 헤지혹 2''는 성공했지만,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일본과 미국 개발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10] 개발이 끝나자 체르니는 STI를 떠났고, 전 아타리 직원인 로저 헥터가 그를 대신했다. 미국인 직원들은 ''소닉 스핀볼''(1993)을 개발했고, 일본인 직원들은 ''소닉 더 헤지혹 3''(1994)와 ''소닉 & 너클즈''(1994)를 개발했다.[10] 개발자인 이이즈카 타카시에 따르면, 일본 팀은 ''소닉 3''에 3D 컴퓨터 그래픽스를 실험했지만, 제네시스의 제한된 성능으로 인해 이를 구현할 수 없었다.[11] ''소닉 & 너클즈''가 완성된 후 나카는 소닉 팀과 함께 ''나이츠 인투 드림스''(1996)를 작업하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갔다.[9]
당시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독립적인 법인으로 운영되었으며, 일본과의 관계는 항상 원만하지 않았다.[17] 이러한 갈등의 일부는 세가 사장 나카야마 하야오와 그의 세가 오브 아메리카에 대한 존경심 때문일 수 있다. 전 세가 오브 아메리카 CEO인 톰 칼린스키에 따르면, 일부 임원들은 나카야마가 미국 임원들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싫어했고, "많은 일본 임원들이 약간 질투심을 느꼈으며, 나는 그중 일부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12] 반면에 작가 스티븐 L. 켄트는 나카야마가 미국 임원들을 괴롭혔고 일본 임원들이 최고의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13] 헥터에 따르면, 1994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출시된 후, 세가의 분위기는 정치적으로 변했으며, "많은 비난"이 오갔다.[14]
2. 1. 초기 소닉 시리즈의 성공
소닉 더 헤지혹''은 1991년에 일본의 소닉 팀에서 개발되었으며, 북미 지역에서 세가 제네시스의 인기를 크게 끌어올렸다.[8] 출시 후 개발자인 나카 유지와 다른 일본인 직원들은 마크 체르니가 이끄는 개발 부서인 세가 테크니컬 연구소(STI)에 합류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9][10] 체르니는 미국과 일본 개발자들의 디자인 철학을 결합하여 엘리트 개발 스튜디오를 설립하고자 했다.[10]1991년, STI는 이듬해 출시된 ''소닉 더 헤지혹 2''(1992)를 포함한 여러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소닉 더 헤지혹 2''는 성공했지만,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일본과 미국 개발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10] 개발이 끝나자 체르니는 STI를 떠났고, 전 아타리 직원인 로저 헥터가 그를 대신했다. 미국인 직원들은 ''소닉 스핀볼''(1993)을 개발했고, 일본인 직원들은 ''소닉 더 헤지혹 3''(1994)와 ''소닉 & 너클즈''(1994)를 개발했다.[10] 개발자인 이이즈카 타카시에 따르면, 일본 팀은 ''소닉 3''에 3D 컴퓨터 그래픽스를 실험했지만, 제네시스의 제한된 성능으로 인해 이를 구현할 수 없었다.[11] ''소닉 & 너클즈''가 완성된 후 나카는 소닉 팀과 함께 ''나이츠 인투 드림스''(1996)를 작업하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갔다.[9]
당시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독립적인 법인으로 운영되었으며, 일본과의 관계는 항상 원만하지 않았다.[17] 전 세가 오브 아메리카 CEO인 톰 칼린스키에 따르면, 일부 임원들은 나카야마 하야오 사장이 미국 임원들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싫어했고, "많은 일본 임원들이 약간 질투심을 느꼈으며, 나는 그중 일부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12] 반면에 작가 스티븐 L. 켄트는 나카야마가 미국 임원들을 괴롭혔고 일본 임원들이 최고의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13] 1994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출시된 후, 세가의 분위기는 정치적으로 변했으며, "많은 비난"이 오갔다고 헥터는 회고했다.[14]
2. 2. 세가 기술 연구소 (STI) 설립과 갈등
1991년에 출시된 오리지널 ''소닉 더 헤지혹''은 일본의 소닉 팀에서 개발했다. 이 게임은 북미 지역에서 세가 제네시스의 인기를 크게 끌어올렸다.[8] 출시 후 개발자인 나카 유지와 다른 일본인 직원들은 마크 체르니가 이끄는 개발 부서인 세가 테크니컬 연구소(STI)에 합류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9][10] 체르니는 미국과 일본 개발자들의 디자인 철학을 결합하여 엘리트 개발 스튜디오를 설립하고자 했다.[10]1991년, STI는 이듬해 출시된 ''소닉 더 헤지혹 2''(1992)를 포함한 여러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소닉 더 헤지혹 2''는 성공했지만,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일본과 미국 개발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10] 개발이 끝나자 체르니는 STI를 떠났고, 전 아타리 직원인 로저 헥터가 그를 대신했다. 미국인 직원들은 ''소닉 스핀볼''(1993)을 개발했고, 일본인 직원들은 ''소닉 더 헤지혹 3''(1994)와 ''소닉 & 너클즈''(1994)를 개발했다.[10] 개발자인 이이즈카 타카시에 따르면, 일본 팀은 ''소닉 3''에 3D 컴퓨터 그래픽스를 실험했지만, 제네시스의 제한된 성능으로 인해 이를 구현할 수 없었다.[11] ''소닉 & 너클즈''가 완성된 후 나카는 소닉 팀과 함께 ''나이츠 인투 드림스''(1996)를 작업하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갔다.[9]
당시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독립적인 법인으로 운영되었으며, 일본과의 관계는 항상 원만하지 않았다.[17] 이러한 갈등의 일부는 세가 사장 나카야마 하야오와 그의 세가 오브 아메리카에 대한 존경심 때문일 수 있다. 전 세가 오브 아메리카 CEO인 톰 칼린스키에 따르면, 일부 임원들은 나카야마가 미국 임원들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싫어했고, "많은 일본 임원들이 약간 질투심을 느꼈으며, 나는 그중 일부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12] 반면에 작가 스티븐 L. 켄트는 나카야마가 미국 임원들을 괴롭혔고 일본 임원들이 최고의 결정을 내린다고 믿었다고 말했다.[13] 헥터에 따르면, 1994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출시된 후, 세가의 분위기는 정치적으로 변했으며, "많은 비난"이 오갔다.[14]
2. 3. 32비트 시대의 도래와 세가의 고민
1991년에 출시된 오리지널 ''소닉 더 헤지혹''은 일본의 소닉 팀에서 개발했다. 이 게임은 북미 지역에서 세가 제네시스의 인기를 크게 끌어올렸다.[8] 출시 후 개발자인 나카 유지와 다른 일본인 직원들은 마크 체르니가 이끄는 개발 부서인 세가 테크니컬 연구소(STI)에 합류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9][10] 체르니는 미국과 일본 개발자들의 디자인 철학을 결합하여 엘리트 개발 스튜디오를 설립하고자 했다.[10]1991년, STI는 이듬해 출시된 ''소닉 더 헤지혹 2''(1992)를 포함한 여러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소닉 더 헤지혹 2''는 성공했지만,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일본과 미국 개발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개발이 끝나자 체르니는 STI를 떠났고, 전 아타리 직원인 로저 헥터가 그를 대신했다. 미국인 직원들은 ''소닉 스핀볼''(1993)을 개발했고, 일본인 직원들은 ''소닉 더 헤지혹 3''(1994)와 ''소닉 & 너클즈''(1994)를 개발했다.[10] 개발자인 이이즈카 타카시에 따르면, 일본 팀은 ''소닉 3''에 3D 컴퓨터 그래픽스를 실험했지만, 제네시스의 제한된 성능으로 인해 이를 구현할 수 없었다.[11] ''소닉 & 너클즈''가 완성된 후 나카는 소닉 팀과 함께 ''나이츠 인투 드림스''(1996)를 작업하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갔다.[9]
당시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독립적인 법인으로 운영되었으며, 일본과의 관계는 항상 원만하지 않았다.[17] 이러한 갈등의 일부는 세가 사장 나카야마 하야오와 그의 세가 오브 아메리카에 대한 존경심 때문일 수 있다. 전 세가 오브 아메리카 CEO인 톰 칼린스키에 따르면, 일부 임원들은 나카야마가 미국 임원들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싫어했고, "많은 일본 임원들이 약간 질투심을 느꼈으며, 나는 그중 일부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12] 반면에 작가 스티븐 L. 켄트는 나카야마가 미국 임원들을 괴롭혔고 일본 임원들이 최고의 결정을 내린다고 믿었다고 말했다.[13] 헥터에 따르면, 1994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출시된 후, 세가의 분위기는 정치적으로 변했으며, "많은 비난"이 오갔다.[14]
3. 개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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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말, 나카 유지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STI에는 대부분 미국인 직원들만 남게 되었다.[14] 다음 ''소닉'' 게임에 대한 초기 아이디어에는 실험적인 ''소닉 크래커즈''가 포함되었으며, 이는 32X 게임 ''너클즈 차오틱스''(1995)가 되었다.[2] 또 다른 컨셉은 STI의 책임자 로저 헥터가 제시한 것으로, 토요일 아침 ''소닉 더 헤지혹'' 만화를 기반으로 한 게임을 개발하고자 했다. STI 개발자 피터 모라비에츠는 이 컨셉을 기반으로 이전 ''소닉'' 게임보다 스토리에 더 중점을 둔 횡스크롤 비디오 게임 방식의 게임 플레이를 설계했다. 그는 이 기획을 제네시스용으로 제작할 의도로 ''소닉-16''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세가 경영진은 스핀오프에 관심이 없었고, 이 아이디어가 소닉에게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다. 대신 모라비에츠는 ''코믹스 존''(1995) 작업으로 옮겨갔다.[6]
''소닉 엑스트림''의 개발은 1994년 말 STI에서 시작되었다.[15] 새로운 콘솔과 32비트 시대가 다가오면서, 게임은 32X로 옮겨졌고, 가제는 "32X용 소닉"[15]과 32X의 코드명 "프로젝트 마스"를 따서 "소닉 마스"[2]로 변경되었다.[16] 초기 32X 디자인은 등각 투영 횡스크롤이었지만, 떠다니는 평면을 배경으로 하는 완전한 3D 게임이 되었다.[2] 마이클 코사카는 32X가 출시되기 전에 하드웨어에 대한 명확한 그림 없이 설계 문서를 완성했다.[2] 코사카의 컨셉 중 일부는 두 번째 플레이어가 테일즈가 아닌 다른 캐릭터로 플레이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하여 게임 플레이에 새로운 역동성을 더했다.
1995년 중반, 코사카는 사임했다.[15] 1995년 후반에 사임한 딘 레스터의 자리는 매니 그라닐로가 채웠다. ''디 우즈''(1995)와 ''코믹스 존'' 작업을 했던 왈리스가 ''소닉 엑스트림''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6] 디자인이 크게 변경되었고 32X가 상업적으로 고전하면서 개발은 nVidia 3D 하드웨어를 탑재하여 닌텐도 64와 경쟁하도록 설계된 세가 카트리지 콘솔로 옮겨졌다.[2] 세가가 새턴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발표한 후, 개발은 다시 변경되어[17] 팀에 몇 주간의 손실을 입혔다.[6]
3. 1. 초기 기획과 플랫폼 변경
1994년 말, 나카 유지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STI에는 대부분 미국인 직원들만 남게 되었다.[14] 다음 ''소닉'' 게임에 대한 초기 아이디어에는 실험적인 ''소닉 크래커즈''가 포함되었으며, 이는 32X 게임 ''너클즈 차오틱스''(1995)가 되었다.[2] 또 다른 컨셉은 STI의 책임자 로저 헥터가 제시한 것으로, 토요일 아침 ''소닉 더 헤지혹'' 만화를 기반으로 한 게임을 개발하고자 했다. STI 개발자 피터 모라비에츠는 이 컨셉을 기반으로 이전 ''소닉'' 게임보다 스토리에 더 중점을 둔 횡스크롤 비디오 게임 방식의 게임 플레이를 설계했다. 그는 이 기획을 제네시스용으로 제작할 의도로 ''소닉-16''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세가 경영진은 스핀오프에 관심이 없었고, 이 아이디어가 소닉에게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다. 대신 모라비에츠는 ''코믹스 존''(1995) 작업으로 옮겨갔다.[6]''소닉 엑스트림''의 개발은 1994년 말 STI에서 시작되었다.[15] 새로운 콘솔과 32비트 시대가 다가오면서, 게임은 32X로 옮겨졌고, 가제는 "32X용 소닉"[15]과 32X의 코드명 "프로젝트 마스"를 따서 "소닉 마스"[2]로 변경되었다.[16] 초기 32X 디자인은 등각 투영 횡스크롤이었지만, 떠다니는 평면을 배경으로 하는 완전한 3D 게임이 되었다.[2] 코사카는 32X가 출시되기 전에 하드웨어에 대한 명확한 그림 없이 설계 문서를 완성했다.[2] 코사카의 컨셉 중 일부는 두 번째 플레이어가 테일즈가 아닌 다른 캐릭터로 플레이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하여 게임 플레이에 새로운 역동성을 더했다.
1995년 중반, 코사카는 사임했다.[15] 1995년 후반에 사임한 레스터의 자리는 매니 그라닐로가 채웠다. ''디 우즈''(1995)와 ''코믹스 존'' 작업을 했던 왈리스가 ''소닉 엑스트림''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6] 디자인이 크게 변경되었고 32X가 상업적으로 고전하면서 개발은 nVidia 3D 하드웨어를 탑재하여 닌텐도 64와 경쟁하도록 설계된 세가 카트리지 콘솔로 옮겨졌다.[2] 세가가 새턴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발표한 후, 개발은 다시 변경되어[17] 팀에 몇 주간의 손실을 입혔다.[6]
3. 2. 두 개의 개발팀과 엔진 문제
새턴 버전은 1995년 하반기부터 두 개의 서로 다른 게임 엔진을 가진 두 팀에 의해 개발되었다.[19] 모건이 이끄는 팀은 프로그래머 크리스 코핀을 포함하여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보스 레벨을 개발했다.[19] 이 엔진은 ''판저 드래군 II 쯔바이''와 같은 새턴 게임에서 사용되는 도구를 사용했으며 보스를 완전히 폴리곤 캐릭터로 렌더링했다.[3] 다른 팀은 센과 알론이 이끌었으며, PC에서 작업을 진행하여 새턴으로 포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메인 레벨을 개발했다.[19] 알론과 센은 메인 레벨을 구축하기 위한 에디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음악과 배경은 에디터에서 코딩할 수 없었고, 각 레벨마다 수동으로 코딩해야 했다. 적들은 사전 렌더링된 스프라이트로 제작되었다.[3] 센은 ''X-treme''에서 과로로 인해 11kg을 감량했고 심각한 병을 앓았다.[6]
다른 스태프에는 작곡가 하워드 드로신, 수석 아티스트 로스 해리스, 아티스트/디자이너 페이 청과 앤드류 프로버트, 디자이너 제이슨 쿠오와 리처드 휠러가 있었다.[1] 야스하라 히로카즈는 제네시스 ''소닉'' 게임을 디자인했으며, 또한 기여했다.[18] 센에 따르면, 그의 팀은 나카가 이끄는 STI 팀과 완전히 달랐으며, 이는 그들의 미숙함과 결합되어 "우리가 빠르게 놀라운 결과를 내지 못하면 터질 수 있는 의심의 씨앗과 정치적 지뢰를 심었다".[19] 월리스는 팀 구조에 불만을 표시했고, 내부 정치가 개발을 방해했다고 느꼈다.[6] 코핀은 책임 분담이 모든 요소가 완벽해지도록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3]
설계에서 어려움이 발생했다. 월리스에 따르면, 이 게임은 2D 횡스크롤과 "소닉이 화면 안팎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결합하여 구현에 예상치 못한 문제를 야기했다.[19] 센은 ''소닉''의 단순하고 빠른 컨트롤을 3D 환경으로 전환하는 것이 주요 문제였다고 말했다. "특히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움직임의 단순함이 사라졌습니다. 충분히 멀리 보이지 않고, 장애물에 걸리지 않으며, 자유로운 속도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20] 3D 그래픽은 새로운 기술이었고, 개발자들은 그것이 컨트롤과 게임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배우고 있었다.[19] 새턴을 위한 프로그래밍은 어려웠다. 알론이 PC에서 개발한 자신의 엔진을 새턴에서 충분히 빠르게 실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건은 포팅 작업을 포인트 오브 뷰 소프트웨어(Point of View Software)라는 제3자 회사에 아웃소싱했다.[6]
3. 3. 세가 내부 갈등과 나카 유지의 위협
1996년 3월, 일본 세가의 대표자들이 STI를 방문하여 진행 상황을 평가했을 때, ''소닉 엑스트림''은 이미 일정보다 지연되고 있었다.[6] 대표자들은 센과 알론의 작업에 감명을 받지 못했는데, 그들이 본 PC에서 세턴으로 이식된 버전은 형편없는 프레임 속도로 실행되었다.[2] 방문객은 코핀의 보스 엔진에 감명을 받고 ''소닉 엑스트림''을 그것을 중심으로 재작업할 것을 요청했다.[19]4월에 세가 아메리카의 전무 이사 버니 스톨러는 STI에 ''Nights into Dreams''의 도구와 소스 코드를 제공했지만,[15] 2주 후, 나카 유지가 엔진 사용에 반발하며 세가를 떠나겠다고 위협하여 제공이 중단되었다.[15][22] 소닉 팀은 ''Nights'' 엔진을 사용하여 자체 3D ''소닉''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나카의 위협에 동기를 부여했을 수 있다.[21] ''Nights'' 엔진의 손실은 ''소닉 엑스트림'' 팀의 개발에 몇 주를 낭비하게 했다.[2][6] 2022년 7월, 나카는 ''소닉 엑스트림'''s의 ''Nights'' 엔진 사용에 대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부인하며 개발자들이 실패를 합리화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말했다.[22]
디자이너 크리스 센은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제가 본 것 중 최악이었습니다... 좋지 않은 정치… 이 모든 것이 프로젝트의 불가피한 종말에 기여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17]
3. 4. 개발 취소와 그 영향

엑스트림의 취소로 인해 메가 드라이브 기반의 소닉 3D 블래스트에 온 시선을 집중시켰고 이후 나이츠 인투 드림즈를 소개 시켰다.[17] 이후 드림캐스트 기반의 소닉 어드벤처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엑스트림의 그래픽은 소닉 잼으로 옮겨갔다.[26][27]
1996년 5월, 세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E3에서 ''소닉 엑스트림''의 플레이 가능한 데모를 공개했고, 코핀의 엔진 버전을 선보였다.[23][7][2] 이 당시 팀의 사기는 떨어졌고, 고용 변화가 심했다.[17] 8월까지, 코핀은 심각한 보행성 폐렴에 걸렸다.[2] 윌리스는 코핀의 노력을 칭찬했지만, 코핀 없이는 팀이 마감일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같은 시기에, 센은 너무 아파서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살아남았다.[15] 마감일 두 달 전에 두 팀 모두 어려움을 겪자, 윌리스는 게임을 취소했다.[2]
세가는 처음에는 ''소닉 엑스트림''이 지연되었다고 밝혔지만, 1997년 초, 세가는 게임이 취소되었다고 발표했다.[24][19] 1996년 휴가 시즌을 위해, 세가는 대신 소닉 팀의 ''나이츠 인투 드림즈''와 트래블러스 테일스에서 제작하고 윌리스가 기여한 소닉 3D 블래스트에 집중했다.[17] 모라비에츠는 ''소닉 엑스트림''을 ''3D 블래스트''의 보너스 스테이지로 재작업할 것을 요청했지만, 트래블러스 테일스는 소닉의 모델을 제대로 옮길 수 없었다.[25]
센은 자신과 알론이 개발하던 ''소닉 엑스트림'' 버전이 6개월에서 12개월 정도 더 있으면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세가의 PC 부서는 개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고, 엔진이 ''소닉 엑스트림''에 대해 거부된 후 주저했을 수도 있다.[15][2] 프로젝트가 거부된 후, 알론은 세가를 떠났다.[17] 세가 아메리카는 경영진 변경 이후 1996년에 STI를 해산했다. 헥터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이 세가 내의 기업 혼란으로 이어져 STI가 해체된 원인이 되었다고 믿었다.[10] 윌리스에 따르면, STI는 이전 제품 개발 부서가 세가소프트가 된 후 세가 아메리카의 제품 개발 부서로 재편되었다.[14]
4. 게임 플레이 특징
''소닉 엑스트림''은 플레이어가 소닉 더 헤지혹을 3인칭 시점에서 조작하는 플랫폼 게임이었다.[1] 이 게임은 1998년의 ''소닉 어드벤처''보다 먼저 3D 게임 플레이를 특징으로 하는 최초의 ''소닉 더 헤지혹'' 게임이 될 뻔했다.[40] 게임 플레이는 세가 새턴 플랫폼 게임인 ''Bug!''(1995)과 유사했지만, 프로듀서 마이크 왈리스는 ''X-treme''은 소닉이 선형적인 경로에 얽매이지 않고 레벨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1]
''X-treme''은 플레이어에게 광각 시야를 제공하는 "Reflex Lens"라는 어안 렌즈 카메라 시스템을 특징으로 하여 레벨이 소닉 주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2] 레벨은 고정된 중력을 중심으로 회전하여 소닉이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게 했고,[5] 이전에는 천장이었던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소닉은 움직이면서 화면 안으로 들어가고 나갈 수도 있었다.[5] 보스 전투는 열린 아레나 스타일의 레벨에서 진행되었으며,[17] 보스는 스프라이트 대신 폴리곤으로 렌더링되었다. 이 레벨들은 새턴의 기술적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해 음영 처리, 투명도, 조명 효과를 사용했다.[3]
개발자들은 성공을 기반으로 ''소닉''을 3D 시대로 가져가기를 원했다.[15][19] 1996년, 왈리스는 ''X-treme''이 익숙한 ''소닉'' 게임 플레이를 특징으로 하지만, "[w]우리는 소닉에게 새로운 동작을 부여하고 있으며, 소닉은 시대에 맞는 고슴도치이므로 속도를 높이고 있다."[4]고 말했다. 이전의 ''소닉'' 게임과 마찬가지로, ''X-treme''은 속도와 물리를 강조했으며, 특수 스테이지와 수집 가능한 링을 특징으로 했다.[1][15] 추가된 기능으로는 적에게 링을 던지고, 링으로 방어막을 만들고, 공중에서 회전 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 "파워 볼" 공격으로 아래에서 적을 공격하고, 평소보다 통제력이 약한 상태에서 더 높이 점프하고, 방어막과 함께 360도로 공격하는 "소닉 붐" 공격을 실행하는 능력이 포함되었다.[5] 당시 서핑과 번지 점프는 멋지다고 여겨지는 활동으로 포함되었다.[15]
전직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마이클 코사카의 디자인 문서에는 각각 3개의 레벨로 구성된 6개의 구역이 구상되었다.[6] 최소 4개의 스테이지가 취소되기 전에 개발되었다: 제이드 굴리, 레드 샌즈, 갤럭시 포트리스,[5] 그리고 크리스탈 프로스트.[1]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 젠은 4명의 주요 캐릭터를 모델링하고 텍스처 처리했으며, 50명의 적과 1시간 분량의 음악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15] 팡 더 스나이퍼와 메탈 소닉이 보스로 계획되었다.[3]
4. 1. 어안 렌즈 카메라 시스템
''소닉 엑스트림''은 플레이어에게 광각 시야를 제공하는 "Reflex Lens"라는 어안 렌즈 카메라 시스템을 특징으로 했다.[2] 이 시스템은 레벨이 소닉 주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2] 레벨은 고정된 중력을 중심으로 회전하여 소닉이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게 했고,[5] 이전에는 천장이었던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5] 소닉은 움직이면서 화면 안으로 들어가고 나갈 수도 있었다.[5]4. 2. 3D 환경에서의 새로운 액션
''소닉 엑스트림''은 3인칭 시점의 플랫폼 게임으로, 1998년 ''소닉 어드벤처''보다 먼저 3D 게임 플레이를 특징으로 하는 최초의 ''소닉 더 헤지혹'' 게임이 될 예정이었다.[40] 플레이어는 소닉 더 헤지혹을 조작하며, 세가 새턴 플랫폼 게임인 ''Bug!''(1995)과 유사한 게임 플레이를 제공하지만, 프로듀서 마이크 왈리스는 ''소닉 엑스트림''은 소닉이 선형적인 경로에 얽매이지 않고 레벨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언급했다.[1]''소닉 엑스트림''은 "Reflex Lens"라는 어안 렌즈 카메라 시스템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광각 시야를 제공하여 레벨이 소닉 주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2] 고정된 중력을 중심으로 레벨이 회전하여 소닉이 벽을 타고 올라가 이전에는 천장이었던 곳에 도달할 수 있었고,[5] 소닉은 움직이면서 화면 안으로 들어가고 나갈 수도 있었다.[5] 보스 전투는 열린 아레나 스타일의 레벨에서 진행되었으며, 보스는 스프라이트 대신 폴리곤으로 렌더링되었다.[17] 이러한 레벨들은 새턴의 기술적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해 음영 처리, 투명도, 조명 효과를 사용했다.[3]
개발자들은 ''소닉''을 3D 시대로 가져가기를 원했으며,[15][19] 1996년, 왈리스는 ''소닉 엑스트림''이 익숙한 ''소닉'' 게임 플레이를 특징으로 하지만, "소닉에게 새로운 동작을 부여하고 있으며, 소닉은 시대에 맞는 고슴도치이므로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4] 이전 ''소닉'' 게임과 마찬가지로, 속도와 물리를 강조했으며, 특수 스테이지와 수집 가능한 링을 특징으로 했다.[1][15] 추가된 기능으로는 적에게 링을 던지고, 링으로 방어막을 만들고, 공중에서 회전 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 "파워 볼" 공격으로 아래에서 적을 공격하고, 평소보다 통제력이 약한 상태에서 더 높이 점프하고, 방어막과 함께 360도로 공격하는 "소닉 붐" 공격을 실행하는 능력이 포함되었다.[5] 당시 서핑과 번지 점프는 멋지다고 여겨지는 활동으로 포함되었다.[15]
전직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마이클 코사카의 디자인 문서에는 각각 3개의 레벨로 구성된 6개의 구역이 구상되었다.[6] 최소 4개의 스테이지(제이드 굴리, 레드 샌즈, 갤럭시 포트리스,[5] 그리고 크리스탈 프로스트[1])가 취소되기 전에 개발되었다.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 젠은 4명의 주요 캐릭터를 모델링하고 텍스처 처리했으며, 50명의 적과 1시간 분량의 음악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15] 팡 더 스나이퍼와 메탈 소닉이 보스로 계획되었다.[3]
4. 3. 보스전
5. 등장인물 및 스토리
6. 취소 이후
엑스트림의 취소로 인해 메가 드라이브 기반의 소닉 3D 블래스트에 온 시선을 집중시켰고 이후 나이츠 인투 드림즈를 소개 시켰다.[2] 이후 드림캐스트 기반의 소닉 어드벤처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엑스트림의 그래픽은 소닉 잼으로 옮겨갔다.
수년 동안, "소닉 엑스트림"의 홍보용 스크린샷 외에는 콘텐츠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2008년, 파스는 "엑스트림" 개발자 대부분이 게임에 대해 언급하려 하지 않았으며, 이는 "그 고난이 상상할 수 없는 스트레스, 압박, 궁극적인 실망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2] 2006년, 초기 테스트 엔진 사본이 익명의 수집가에게 2,500달러에 경매로 판매되었다.[15][37] 게임 플레이의 GIF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공개되었고, "Assemblergames" 웹사이트 커뮤니티의 자금 모금 프로젝트를 통해 수집가로부터 디스크를 구입한 후, 2007년 7월 17일에 디스크 이미지가 유출되었다.[38] 센은 초기 영상,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 티아라, 컨셉 음악을 포함한 개발 역사를 담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센은 "엑스트림"을 직접 완성하는 것을 고려하여 "소닉" 팬 게임에 일부 컨셉을 사용했지만, 그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17][40]
2015년 2월, 팬사이트 "Sonic Retro"는 "엑스트림" 소스 코드를 확보하여 1996년 E3 데모에 공개된 레벨을 특징으로 하는 플레이 가능한 빌드를 만들었다.[39] 이 빌드를 검토하면서, ''Hardcore Gamer''의 작가들은 거칠지만 창의적이며, 속도는 부족하지만 "소닉" 디자인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만약 완성이 되었다면 프랜차이즈에 튼튼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세턴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40] "Sonic Retro"의 한 사용자는 2017년 3월에 "엑스트림"을 기반으로 한 홈브루 세턴 게임인 "Sonic Z-treme"을 개발하기 시작하여 2018년 9월에 빌드를 출시했다. ''Eurogamer''는 "Z-treme"이 "엑스트림" 스타일의 아이디어와 레벨을 개발자의 새로운 컨셉과 결합한 것이며, 인상적인 노력이라고 평가했다.[41]
7. 유산
세가는 ''소닉 엑스트림'' 대신, 이식작인 메가 드라이브 게임 ''소닉 3D 블라스트''와 제네시스 ''소닉'' 게임을 추가 3D 레벨과 함께 묶은 컴필레이션 게임인 ''소닉 잼''을 출시했다.[2] ''소닉 엑스트림''의 취소는 세가 새턴의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16][29][30] 세가는 1994년에 최대 55%의 콘솔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지만,[31] 1997년 8월에는 소니가 47%, 닌텐도가 40%, 세가는 12%에 불과했다.[32]
언론인과 팬들은 ''소닉 엑스트림''이 미쳤을 영향에 대해 추측했다. ''GamesRadar+''의 데이비드 호튼은 세가 새턴에서 "훌륭한 3D ''소닉'' 게임"이 나올 가능성을 공룡의 멸종 생존과 같은 "만약 그랬더라면..." 시나리오라고 묘사했다.[17] ''IGN''의 트래비스 파스는 ''소닉 엑스트림''을 "세가의 야망과 팬들의 희망을 담은 빈 그릇"이라고 묘사하며, 세가, 마스코트, 그리고 새턴에게 중요한 변화였다고 말했다.[2] 또한, ''IGN''에 기고한 레비 부캐넌은 새턴에 진정한 ''소닉'' 속편이 없었던 것이 새턴의 성공 가능성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29] 유명한 새턴 팬 사이트를 운영했던 데이브 즈디르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닉 엑스트림'']이 새턴을 구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 ''소닉''은 메가 드라이브를 만들었고, [새턴] 출시 시점 또는 그 근처에 훌륭한 새로운 ''소닉'' 타이틀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았다."[33]
2007년 회고에서 프로듀서 윌리스는 ''소닉 엑스트림''이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64''와 경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19] 센은 알론의 엔진으로 그가 개발한 ''소닉 엑스트림'' 버전이 잘 팔렸을 것이라고 믿었다.[15] ''Next Generation''은 ''소닉 엑스트림''이 ''슈퍼 마리오 64''나 ''크래시 밴디쿳''과 같은 경쟁작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면 세가의 평판에 손상을 입혔을 것이라고 말했다.[34] 나카는 이 게임에 불만을 품었고, 2012년에는 취소 소식을 듣고 안도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27] 언론인들은 ''소닉 엑스트림''과 2013년 게임 ''소닉 로스트 월드'' 사이의 레벨 테마와 메커니즘의 유사점을 언급했지만,[35] 소닉 팀의 책임자 이이즈카는 그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다.[36] 센은 2014년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출시된 Wii U ''소닉'' 게임 ''소닉 붐: 라이즈 오브 리릭'' 작업에 참여했다.[20]
7. 1. 팬 게임 및 재창조
수년 동안, "소닉 엑스트림"의 홍보용 스크린샷 외에는 콘텐츠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2008년, 파스는 "엑스트림" 개발자 대부분이 게임에 대해 언급하려 하지 않았으며, 이는 "그 고난이 상상할 수 없는 스트레스, 압박, 궁극적인 실망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2] 2006년, 초기 테스트 엔진 사본이 익명의 수집가에게 2,500달러에 경매로 판매되었다.[15][37] 게임 플레이의 GIF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공개되었고, "Assemblergames" 웹사이트 커뮤니티의 자금 모금 프로젝트를 통해 수집가로부터 디스크를 구입한 후, 2007년 7월 17일에 디스크 이미지가 유출되었다.[38] 센은 초기 영상,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 티아라, 컨셉 음악을 포함한 개발 역사를 담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센은 "엑스트림"을 직접 완성하는 것을 고려하여 "소닉" 팬 게임에 일부 컨셉을 사용했지만,[17] 그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40]2015년 2월, 팬사이트 "Sonic Retro"는 "엑스트림" 소스 코드를 확보하여 1996년 E3 데모에 공개된 레벨을 특징으로 하는 플레이 가능한 빌드를 만들었다.[39] 이 빌드를 검토하면서, ''Hardcore Gamer''의 작가들은 거칠지만 창의적이며, 속도는 부족하지만 "소닉" 디자인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만약 완성이 되었다면 프랜차이즈에 튼튼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세턴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40] "Sonic Retro"의 한 사용자는 "엑스트림"을 기반으로 한 홈브루 세턴 게임 개발을 시작했고, ''Eurogamer''는 이 게임이 "엑스트림" 스타일의 아이디어와 레벨을 개발자의 새로운 컨셉과 결합한 것이며, 인상적인 노력이라고 평가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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