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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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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대사가 창건한 길상사에서 시작되어,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한국 불교의 중심 사찰로 자리 잡았다. 고려 시대에는 수선사로 불렸으며, 조선 시대 불교 탄압과 여러 차례의 재난을 겪었지만, 지속적인 중창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국보 4점, 보물 19점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승려들의 수행과 부처님 오신 날, 설날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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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지도
기본 정보
송광사
송광사
종교불교
종파조계종
사찰 이름송광사
로마자 표기Songgwangsa
국가대한민국
조계산
완공 년도867년
일본어 이름松広寺
일본어 가나しょうこうじ
일본어 가타카나ソングァンサ
문화재 지정사적 506호
지정 날짜2009년 12월 21일
주소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등 (신평리)
면적44,297 m2
소유송광사
관리송광사
문화재청 번호13,05060000,36
사적 및 명승 지정 번호8 (1998년 12월 23일 지정, 2009년 12월 9일 해제)
명승 지정 번호5 (1975년 9월 2일 지정, 1998년 12월 23일 해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43 (1984년 2월 29일 지정, 1998년 12월 23일 해제)
문화재 관람료 면제2023년 5월 4일부터 조계종 산하 사찰 문화재 관람료 면제
불교 정보
한국 불교 사찰 대표한국의 대표적인 불교 사찰
사찰 소개학이 보석을 낳다
공식 웹사이트송광사
사찰 체험송광사 소개
역사
창건 시기신라 시대 말기
창건자혜린 (길상사 창건)
사찰 변천사화엄종 -> 조계종 -> 선종 -> 조계종
문화재
목조 삼존불 감실국보 제42호
고려 고종 제서국보 제43호
국사전국보 제56호
기타
5대 총림조계종 5대 총림 (조계총림)
교구 본사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조선 31본산일본 통치 시대
본존불삼세불 (연등불, 석가불, 미륵불)
명승지
명승지 이름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
명승 지정 번호65
명승 지정 날짜2009년 12월 9일
명승 면적22,340,612 m2
명승 주소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산48번지, 송광면 산평리 1번지 등
명승 소유국유·사유
명승 관리순천시

2. 역사

신라 말 혜린대사(慧璘大師)가 길상사(吉祥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24][14] 이후 고려 인종 때 석조대사(釋照大師)가 확장을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했고,[24][13] 한동안 폐사 상태였다.[24][13]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중심지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중창되었고,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으로 부상하였다.[24][13] 고려 희종 때 절 이름이 수선사(修禪社)를 거쳐 현재의 송광사(松廣寺)로 바뀌었으며, 산 이름도 조계산(曹溪山)으로 개명되었다.[25] 지눌 이후 조선 초기까지 16명의 국사(國師)를 배출하며 삼보사찰 중 하나인 승보사찰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26]

그러나 송광사는 이후 여러 차례의 시련을 겪었다. 조선 시대에는 불교 탄압 정책으로 폐사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1] 정유재란, 1842년의 대화재, 근현대에 들어서는 1948년 여수·순천 사건과 1951년 한국 전쟁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였다.[24][13] 일제강점기에는 사찰령에 의해 조선삼십일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수많은 재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중창 불사를 통해,[24] 특히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대규모 복원 사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11]

송광사 전경

2. 1. 창건과 중창

신라 말 혜린대사(慧璘大師)가 창건하였다.[24] 혜린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14] 창건 당시의 이름은 길상사(吉祥寺)였으며, 약 100칸 규모(약 약 37.16m2)[7]에 승려 30~40명이 머무는 작은 절이었다.[13] 조계종에서는 이 길상사 창건을 송광사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당시 길상사는 화엄종 사찰이었다. 이후 고려 인종 때 석조대사(釋照大師)가 절을 확장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계하였다.[24][13]

그 후 50여 년간 폐사 상태였던 길상사는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창되면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으로 부상하였다.[24][13] 1190년대에 9년에 걸쳐 중건되었으며,[13] 1200년 지눌은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중심지를 이곳으로 옮겼다. 지눌이 날린 연이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13] 고려 희종은 길상사를 수선사(修禪社)로, 송광산을 조계산(曹溪山)으로 개명하였으며,[25] 1208년(희종 4년)에는 다시 절 이름을 현재의 송광사(松廣寺)로 바꾸었다.

지눌의 법맥을 이은 진각국사(眞覺國師)의 중창 이후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國師)를 배출하며 승보사찰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26]

그러나 송광사는 이후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다. 조선 태종 7년(1407년)과 세종 6년(1424년)의 불교 탄압 정책 당시 존속이 허가된 사찰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폐사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조선의 불교#이씨조선시대의 불교탄압). 또한 정유재란,[24] 1842년(헌종 8년)의 대화재, 1948년 여수·순천 사건, 1951년 한국 전쟁 중의 피해 등으로 인해 8차례나 중건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는 사찰령 시행규칙에 따라 조선 31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현재의 모습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진행된 대규모 복원 불사의 결과로, 이때 대웅전을 포함한 33개의 건물이 원래의 터를 기반으로 재건되었다.[11]

2. 2. 16국사와 승보사찰

신라혜린대사(慧璘大師)가 작은 규모의 절인 길상사(吉祥寺)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24][14] 이후 고려 인종 때 석조대사(釋照大師)가 절을 확장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계했다.[24][13]

길상사는 약 50여 년간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중심지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중창되어 한국 불교의 중요한 터전으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24][13] 지눌은 1200년경 당시 화엄종 사찰이던 길상사를 정혜결사의 거점으로 삼았으며[6][15][16], 고려 희종은 길상사의 이름을 수선사(修禪社)로 바꾸고 산 이름도 조계산(曹溪山)으로 개명하였다.[25] 이후 1208년(희종 4년)에는 절 이름이 현재의 송광사로 다시 바뀌었다.

지눌의 법맥을 이은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절을 더욱 크게 중창한 이후,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송광사에서는 16명의 국사(國師)가 배출되었다.[26] 이로 인해 송광사는 삼보사찰 중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26]

이후 송광사는 정유재란과 한국 전쟁 등 여러 차례의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인 중창 불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24][13]

2. 3. 시련과 복원

고려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를 옮겨와 한국 불교의 중심지로 만들기 전, 길상사(송광사의 옛 이름)는 약 50여 년간 버려져 폐허 상태에 있었다.[24][13]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불교 탄압 정책으로 인해 다시 시련을 겪었다. 태종 7년(1407년)과 세종 6년(1424년)에 단행된 정책 당시, 국가에서 존속을 인정한 사찰 명단에 송광사의 이름이 없어 폐사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1] 그러나 불교가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17세기에 중건되었다.[1]

이후에도 송광사는 여러 차례 큰 재난을 겪었다. 정유재란 때 피해를 입었으며,[24][13] 헌종 8년(1842년)에는 큰 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1948년 여수·순천 사건과 1951년 한국 전쟁 중의 피해로 또다시 큰 손실을 보았다.[13]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는 사찰령 시행규칙에 따라 조선 31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반복되는 소실과 재건을 거치며 송광사는 현재까지 총 8번 중창되었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대규모 복원 불사가 이루어져, 대웅전을 포함한 14개 건물[11] 등 총 33개의 건물이 새로 지어지거나 복원되어 현재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24] 이러한 지속적인 중창 불사를 통해 송광사는 오랜 역사 속 시련을 극복하고 오늘날 한국 불교의 중요한 사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24]

2. 4.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인 1911년, 조선총독부가 공포한 사찰령 시행규칙(7월 8일자)에 의해 송광사는 조선 내 주요 사찰 31곳을 지정한 조선삼십일본산 중 하나로 포함되었다. 이 지정은 1924년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이 시기 송광사에서는 여러 스님들이 활동했다. 전임 방장 중 한 명인 석진은 1932년에 송광사 역사에 대한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문집을 저술했다. 또한 혜봉의 중요한 제자였던 구산 스님(1901~1983)은 1940년대에 송광사에서 수도하였다.[17]

3. 이름의 유래

고려 희종 이래로 수선사(修禪社)였던 절 이름이 언제 송광사로 바뀌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26]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설이 전해진다.


  • 첫째, '송(松)' 자를 파자(破字)하여 '십팔공(十八公)', 즉 18명의 승려를 뜻하고, '광(廣)' 자는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편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18명의 위대한 승려가 불법(佛法)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으로 보는 설이다.[24][13]
  • 둘째, 지눌이 정혜결사를 옮길 터를 찾기 위해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는데, 그 솔개가 지금의 국사전 뒤편 언덕에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최남선은 '송광'을 솔개의 사투리인 '솔갱이'로 보아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고 풀이했다는 설이다.[24]
  • 셋째, 예부터 절이 위치한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고 불렸고, 이것이 산 이름인 송광산(松廣山)이 되었으며, 다시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설이다.[24]

4. 주요 문화재

송광사는 목조 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경내에는 약 80여 동의 건물과 부도, 비석 등이 자리하고 있다. 국보, 보물, 천연기념물 등 다수의 국가 지정 및 지방 지정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22]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어 장엄한 기상을 나타낸다.[22]

사찰에는 자체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세 가지 귀중한 보물, 이른바 '송광사 삼보(三寶)'가 있다. 이는 '비사리구시', '쌍향수', '능견온나사'이다. '비사리구시'는 나무로 만든 거대한 쌀독으로, 한 번에 4000명의 승려가 먹을 수 있는 양의 쌀을 담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6]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쌍향수'와 정교하게 디자인된 접시인 '능견온나사'도 여기에 포함된다.[6]

4. 1. 국보

송광사는 목조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국보 4점을 비롯하여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22] 송광사가 소장하고 있는 국보 목록은 아래와 같다.

지정번호문화재명
국보 제42호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국보 제43호혜심고신제서
국보 제56호순천 송광사 국사전
국보 제314호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4. 2. 보물

송광사에는 국보 외에도 다수의 문화재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22]

지정번호명칭
보물 제90호대반열반경소 권9~10
보물 제134호순천 송광사 경질
보물 제175호순천 송광사 경패
보물 제176호순천 송광사 금동요령
보물 제204호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
보물 제205호대승아비달마잡론소
보물 제206호묘법연화경찬술
보물 제207호금강반야경소개현초
보물 제263호순천 송광사 하사당
보물 제302호순천 송광사 약사전
보물 제303호순천 송광사 영산전
보물 제572호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
보물 제1043호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보물 제1367호송광사 응진당 석가모니 후불탱·십육나한탱
보물 제1368호송광사 영산전 후불탱·팔상탱
보물 제1376호순천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
보물 제1467호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보물 제1468호순천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 복장유물
보물 제1549호순천 송광사 목조석가여래 삼존상 및 소조 16나한상 일괄
보물 제1660호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보물 제1661호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주불전 주변에는 여러 불상이 있으며, 주불 뒤에는 불교의 여러 신들을 묘사한 거대한 다채로운 탱화가 걸려 있다. 나무 제단에 모셔진 주불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채울 정도로 크다. 또한 측면 벽에는 불교의 수호신인 비타(Skanda)의 초상화가 있는데, 이는 16세기 중국의 초상화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이 외에도 송광사에는 사찰 자체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세 가지 귀중한 보물이 있다. 이는 '비사리구시', '쌍향수', '능견온나사'이다. '비사리구시'는 나무로 만든 거대한 쌀독으로, 한 번에 4000명의 승려가 먹을 수 있는 양의 쌀을 담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6] '쌍향수'는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된 두 그루의 매우 큰 곱향나무이며, '능견온나사'는 정교하게 디자인된 접시이다.[6]

4. 3. 천연기념물

송광사에는 국보, 보물 등 다양한 국가 및 지방 문화재와 함께 천연기념물도 보존되어 있다.[22] 대표적인 것으로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된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곱향나무이며, '쌍향수'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5. 건축 및 배치

송광사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조계산 동쪽에는 선암사가 위치한다.[3] 목조 문화재가 풍부한 사찰로, 경내에는 약 80여 동의 건물과 부도, 비석 등이 있다. 국사전 등 국보 4점을 비롯하여 보물 13점, 천연기념물 쌍향수 등 국가문화재 17점과 지방문화재 10점을 포함하여 총 27점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22]

송광사로 향하는 길에는 큰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으며, 계곡을 건너는 곳에는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둥근 정자 형태의 다리인 청량각이 있다.[11][6][12] 절 입구에는 개울이 흐르고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중 하나는 독특한 아치 형태를 지니고 있다.[11]

사찰의 전체적인 배치는 한국 화엄 사상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도표로 알려진 '해인도(海印圖)' 또는 '법계도(法界圖)'와 매우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18]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여 장엄한 기상을 나타낸다. 경내에서는 향 연기와 은은한 목탁 소리, 낭랑한 독경 소리가 울려 퍼지며, 수행하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경건함을 느낄 수 있다.[22]

5. 1. 주요 건물

목조 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경내에는 약 80여 동의 건물과 부도, 비석 등이 있다. 국사전을 포함한 국보 4점,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등 보물 13점, 천연기념물인 쌍향수 등 국가문화재 17점과 정혜국사사리합 등 지방문화재 10점을 포함하여 총 27점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여 장엄한 모습을 보여준다.[22]

송광사 입구


송광사 대웅보전


사찰의 전체적인 배치는 한국 화엄 사상을 보여주는 도표로 알려진 '해인도(海印圖)' 또는 '법계도(法界圖)'와 매우 유사하다.[18]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이중 지붕 형태를 하고 있으며[6], 일주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전통적인 목조 구조로 지어졌으며, 내부에는 비로자나불, 법신불, 그리고 화엄 불교 사상과 관련된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어 한국 불교에서 화엄 사상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대웅보전의 주 불단에는 과거불인 연등불, 현재불인 석가모니 부처님, 미래불인 미륵불의 세 부처상이 모셔져 있다. 중앙 불단은 목조 제단 위에 약 약 7.62m 높이로 설치되어 있으며, 참배객들이 불단 주위를 돌며 예배할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입구에는 악귀를 물리치는 호법신사천왕상이 있다.

본당 옆에는 불상이 모셔진 지장전과 선(禪)과의 관련성과 중요성을 나타내는 승보전이 있다.[6] 목조 본당 아래에는 높이 약 약 2.44m의 석비들이 모여 있는데, 이는 사찰의 역사를 보여준다.[19] 이 근처의 옛 마구간은 과거 정부 관리나 다른 주요 방문객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근처의 북·종루(鐘鼓樓)에는 사찰 역사에서 사용된 여러 도구들이 보관되어 있다. 강당, 조사전, 그리고 주지 스님의 거처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11] 또한 주지 스님 거처 근처에는 1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전통적인 굴뚝이 있는 작은 집이 있는데, 이는 주지 스님의 부관이 머물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 건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11]

5. 2. 기타 시설

경내에는 약 80여 동의 건물과 부도·비석 등이 있다.[22] 송광사로 가는 길에는 거대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으며, 계곡을 건너는 곳에는 휴식을 위해 설계된 둥근 정자 형태의 다리인 청량각이 있다.[11][6][12]

절 입구에는 개울이 흐르며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그중 하나는 독특한 건축 양식의 아치를 가지고 있다.[11] 다리 근처에는 본당 건물과 떨어진 두 개의 작은 독립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들의 용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해진다. 죽은 이의 유해를 일정 기간 보관하던 창고였다는 설과, 왕족이 혼례 전 목욕 후 옷을 갈아입던 탈의실이었다는 설이 있다.[11]

본당 아래에는 사찰의 역사를 기록한 약 약 2.44m 높이의 석비들이 모여 있다.[19] 경내에는 과거 정부 관리나 저명한 방문객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마구간도 남아 있다. 북·종루(鐘鼓樓)에는 사찰 역사 속에서 사용된 여러 도구들이 보관되어 있다.

강당, 조사전, 그리고 주지 스님의 거처는 본당은 아니지만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11] 주지 스님 거처 근처에는 1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전통 굴뚝이 있는 작은 집이 있는데, 이는 주지 스님의 부관이 머물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11]

6. 수행 및 행사

송광사에서는 한국 불교의 전통에 따라 승려들의 수행 정진과 함께 여러 중요한 행사가 연중 열린다. 대표적으로 여름과 겨울에 각각 3개월씩 집중 수행 기간인 안거를 가지며, 많은 승려들이 참여하여 깨달음을 향한 정진을 이어간다. 또한, 부처님 오신 날설날과 같은 주요 명절에는 다채로운 봉축 행사가 열려 사찰의 중요한 연례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수행과 행사는 송광사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6. 1. 수행

절기 행사 외에, 한국 불교 전통에 따라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 기간을 두 차례 가진다. 겨울과 여름에 각각 3개월씩이며, 일정은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이 수행은 한국 불교에서 이어져 오는 전통으로, 보통 120여 명의 승려가 참여한다. 수행 기간에는 약 120명, 그 외 기간에는 약 70명의 승려가 머무르며 수행에 참여하는 인원은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수행 기간 동안 승려들은 하루 12시간 동안 수행에 정진한다. 때로는 깨달음을 향한 정진을 위해 24시간 연속 수행과 같은 더욱 엄격한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5]

6. 2. 주요 행사

송광사 사찰에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 중 등롱 장식.


부처님 오신 날 축제는 한국의 모든 불교 사찰에서 음력 4월 8일(보통 양력 5월 초, 하안거 시작 2주 전)에 열리는 연례 행사이다. 이날에는 종이 등롱이나 촛불이 켜진 등불이 사찰 내 모든 사당 주변과 중정에 여러 줄로 걸린다. 가장 화려한 종류는 연꽃 모양의 등불인데, 이는 보통 송광사의 말사에서 승려들이 전문적으로 만든다. 등불은 사찰 정문에서 판매되기도 한다. 송광사의 한 승려에 따르면, 등불을 밝히는 풍습은 부처의 전생을 묘사한 자타카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대웅전 안의 가장 큰 등불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 봉헌한 것이다. 임시 제단에서 점심과 저녁 공양을 올리고, 법회를 여는 것도 이날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송광사는 이날 대중에게 개방되어, 승려들이 사찰의 모든 사당과 전각을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다만, 대중의 출입이 제한되는 대중 수행장과 승려들의 개인 방은 제외된다. 등불을 봉헌하는 것은 공덕을 쌓는 일로 여겨지는데, “만약 누군가 공덕을 쌓고자 탑이나 사찰 안에 모셔진 부처님 상 앞에 밝은 등불이나 작은 촛불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봉헌한다면… 그 공덕은 어떤 수다원이나 독각불도 헤아릴 수 없으며, 오직 부처님, 여래만이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20]

저녁 7시 30분경에는 시민들이 등롱 안에 촛불을 넣어 등불을 밝히는 점등식이 거행된다. 불을 밝힌 등불은 사찰을 거닐거나 근처 언덕에서 바라볼 때 장관을 이룬다. 행사가 끝나면 등불의 불은 꺼진다.[20]

대웅전의 참선 그림


또 다른 주요 축제는 설날이다. 음력 1월 말이나 2월 초에 태양력에 따라 해마다 경건하고 흥겹게 지낸다. 축제는 전날 저녁부터 시작하여 사흘간 지속된다.[5][21]

7. 사진

승보전과 대웅보전


송광사 전경


송광사 전경


참조

[1] 서적 World and Its Peoples: Eastern and Southern Asia https://books.google[...] Marshall Cavendish 2010-12-31
[2] 서적 What's the use of art?: Asian visual and material culture in context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0-12-30
[3] 서적 Korea https://archive.org/[...] Lonely Planet 2010-12-30
[4] 웹사이트 Representative Korean Buddhist Temples http://english.visit[...] Visit Korea 2010-12-30
[5] 웹사이트 Songgwangsa Temple: A Crane Gives Birth to a Jewel http://www.tomcoyner[...] tomcoyner.com 2010-12-30
[6] 웹사이트 Songgwangsa Temple http://www.visitkore[...] Official website of Korea: visitkorea.or.kr/ 2010-12-29
[7] 서적 The Zen Monastic Experience: Buddhist Practice in Contemporary Korea https://books.googl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12-30
[8] 웹사이트 Songgwangsa: Introduction http://eng.koreatemp[...] eng.Koreatemle.net 2010-12-30
[9] 서적 Being Buddhist in a Christian world: gender and community in a Korean American temple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10-12-31
[10] 서적 Korea https://books.google[...] APA Publications 2010-12-31
[11] 웹사이트 The Temple of the Followers:Songgwangsa http://www.buddhapia[...] Buddhapia.com 2010-12-30
[12] 서적 The Zen Monastic Experience: Buddhist Practice in Contemporary Korea 1993
[13] 웹사이트 Overview of Songgwangsa http://songgwangsa.o[...] Songgwangsa.org 2010-12-29
[14] 서적 Tracing back the radiance: Chinul's Korean way of Zen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0-12-30
[15] 서적 Buddhism: introducing the Buddhist experience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10-12-30
[16] 서적 Korea: a religious history https://books.google[...] Clarendon Press 2010-12-30
[17] 서적 Korea: a religious history https://books.google[...] Psychology Press 2010-12-29
[18] 서적 The Zen Monastic Experience: Buddhist Practice in Contemporary Korea 1993
[19] 서적 The Zen Monastic Experience: Buddhist Practice in Contemporary Korea 1993
[20] 서적 The Zen Monastic Experience: Buddhist Practice in Contemporary Korea 1993
[21] 서적 The Zen Monastic Experience: Buddhist Practice in Contemporary Korea 1993
[22] 웹사이트 구석구석여행지찾기 > 송광사 http://korean.visitk[...]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23] 웹인용 4일부터 조계종 산하 사찰 문화재 관람료 면제 https://www.korea.kr[...] 문화체육관광부 2023-05-02
[24] 웹사이트 송광사 안내 > 창건 및 연혁 http://www.songgwang[...] 송광사
[25] 백과사전 지눌
[26] 백과사전 순천 송광사 https://terms.naver.[...]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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