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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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국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528년(법흥왕)에 작은 사찰로 창건된 이후 여러 차례 중건과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751년(경덕왕) 김대성이 불국사 중창을 시작하여 석가탑, 다보탑 등 주요 건축물들을 조성했으며,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주요 구조물로는 대웅전, 다보탑(국보 제20호), 석가탑(국보 제21호), 청운교 및 백운교(국보 제23호) 등이 있으며, 석가탑과 다보탑 건립을 소재로 한 현진건의 소설은 영화 '무영탑'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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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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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불국사 |
한자 표기 | 佛國寺 |
로마자 표기 | Bulguksa |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
좌표 | 35°47′24″N 129°19′56″E |
웹사이트 | 불국사 공식 웹사이트 |
역사 | |
창건 연도 | 528년(신라 법흥왕 15년) |
창건자 |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迎帝夫人) |
중건 연도 | 774년 신라 (혜공왕 10년) |
창건자 | 김대성 |
종교 | |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
이전 종파 | 화엄종 |
본존 | 석가삼존불 |
이전 본존 | 비로자나불 |
사격 | 조계종 제11교구 본사 |
문화재 | |
대한민국 지정 국보 | 다보탑 (국보 제20호) 석가탑 (국보 제21호) 연화교·칠보교 (국보 제22호) 청운교·백운교 (국보 제23호)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26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27호) |
대한민국 지정 보물 | 사리탑 (보물 제61호) 대웅전 (보물 제1744호) 가구식 석축 (보물 제1745호) 석조 (보물 제1523호) 영산회상도와 사천왕 벽화 (보물 제1797호) 삼장보살도 (보물 제1933호) |
세계유산 | 석굴암과 불국사 |
추가 정보 | |
별칭 | 화엄불국사, 법류사 |
사적 지정 | 사적 제502호 |
지정일 | 2009년 12월 21일 |
소유 | 국유 및 사유 |
면적 | 409,315m² |
문화재청 번호 | 13,05020000,37 |
2. 역사
불국사는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이다. 각 시대별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 삼국시대: 528년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 부인이 창건하고, 574년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부인이 중건하였다. 670년에는 무설전이 건립되었다.
- 남북국시대: 751년 김대성이 대규모 중창을 시작하여 774년에 완료하였다. 8세기에는 약 60동의 목조 건축물로 구성된 대규모 사찰이었다.
- 조선시대: 임진왜란 중인 1593년에 왜군에 의해 모든 목조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1604년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1805년까지 약 40차례의 보수가 이루어졌다.
- 일제강점기: 1918년부터 1925년 사이 다보탑과 대웅전이 보수되었으나, 경주 불국사 사리탑과 다보탑 석물(사자) 일부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1924년부터 192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재건 공사로 주요 구조물이 수리되었다.
- 대한민국: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대대적인 복원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10년에는 일본에서 기증받은 불상들이 불국사·성보박물관에 전시되었다.[13]
2. 1. 삼국시대
신라인들은 경주 토함산을 호국의 산으로 신성시 했기에[15], 안개를 토하듯 뱉어내는 토함산에 최고의 사찰을 짓고 싶어 했다.[16] 그 결과물이 바로 불국사와 석굴암이다.흔히 재상 김대성이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 부인이 528년에 창건하였고, 삼국통일 후에 재상 김대성이 크게 중창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은 토함산을 둘러서 석굴암으로 바로 가는 도로가 있지만, 아주 옛날에는 경주 시민들이 소풍을 가면 불국사 등산로로 석굴암을 갔었다.
사찰 기록에 따르면 528년 법흥왕 때 이곳에 작은 사찰이 세워졌다고 한다.[7] 삼국유사에는 751년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이 부모의 혼을 달래기 위해 현재의 사찰을 건립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대성의 사후 신라 왕실에 의해 774년 건축이 완료되었고, 현재의 이름인 불국사(佛國寺, Temple of the Buddha Land)를 얻게 되었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건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삼국유사』권5·효선·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12]).
연도 | 내용 |
---|---|
528년 (법흥왕 15년) |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 부인이 창건하였다. |
574년 (진흥왕 35년) |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중건하였다. 이때,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해 봉안하였다. |
670년 (문무왕 10년) | 무설전을 지어, 화엄경을 가르쳤다. |
751년 (경덕왕 10년) | 김대성에 의해 건립이 시작되었다. |
774년 (혜공왕 10년) | 완공되었다. |
전성기였던 8세기에는 약 60동의 목조 건축물로 사찰이 구성되었다.
2. 2. 남북국시대
신라인들은 경주 토함산을 호국의 산으로 신성시했으며[15], 안개를 토하듯 뱉어내는 토함산에 최고의 사찰을 짓고 싶어 했다.[16] 그 결과물이 바로 불국사와 석굴암이다.흔히 재상 김대성이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이 528년에 창건하였고, 삼국통일 후에 재상 김대성이 크게 중창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751년(통일신라 경덕왕 10년)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에 의해 대규모로 중창하기 시작했다. 석가탑과 다보탑, 석교(경주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등을 축조하여, 오늘날 불국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불국사의 대규모 중창은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 김대성은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창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석불사가 암자인 석굴암이 되었다. 774년(혜공왕 10년) 재상 김대성이 죽고, 통일신라에서 불국사의 대규모 중창을 마무리지었다.[18] 80종의 건물에, 총 2,000여 칸 규모의 대사찰이 되었다.
사찰 기록에 따르면 528년 법흥왕 때 이곳에 작은 사찰이 세워졌다고 하며[7], 삼국유사에는 751년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이 부모의 혼을 달래기 위해 현재의 사찰을 건립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대성의 사후 신라 왕실에 의해 774년 건축이 완료되었고, 현재의 이름인 불국사(佛國寺)를 얻게 되었다.
2. 3. 조선시대
1593년 5월(선조 23년)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 제2군에 의해 불국사의 대가람이 전소되는 방화와 파괴가 발생하였다.[7] 임진왜란 직전에는 《동경유록》, 《간재집》 등에 1,000여 칸이 남아있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으나, 전쟁으로 인해 모든 목조 건물이 소실되었다.[8]1604년(선조 37년)부터 임진왜란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 중건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8] 1765년(영조 41년)에는 대웅전이 재건되었고,[7] 1779년(정조 3년)에는 경주 유림의 지원을 받아 불국사를 중창하였다.[7] 1805년(순조 5년)에는 비로전을 마지막으로 40여 차례에 걸친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마무리되었다.[7]
이후 조선의 국운이 쇠퇴하면서 불국사의 사운도 함께 쇠퇴하기 시작했다.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보물이 도난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7]
2. 4. 일제강점기
1924년 4월부터 1925년 8월까지 조선총독부의 재건 공사로 석단·석랑을 포함한 주요 구조물이 수리되었다. 그 전인 1904년부터 1905년에 걸쳐 자하문 좌우의 행랑은 붕괴되고, 석단도 매몰된 상태였다.[13] 1918년부터 1925년 사이에는 다보탑과 대웅전이 보수되었으나, 경주 불국사 사리탑과 다보탑 석물(사자) 일부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2. 5. 대한민국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총 8억원을 들여 회랑과 난간 등을 복원하였다.[7]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 이후 1966년 부분적인 복원이 이루어졌고, 광범위한 고고학적 조사를 거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대대적인 복원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때 복원된 유명한 석조 구조물들은 신라 건축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경덕왕 10년), 재상이었던 김대성에 의해 건립이 시작되었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건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삼국유사』권5·효선·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12]). 774년 신라(혜공왕 10년)에 완공되었다. 전성기였던 8세기에는 약 60동의 목조 건축물로 사찰이 구성되었다.
조선 태종 (조선)이 1407년(태종 7년) 불교 탄압 당시 존속이 허락된 88개의 사찰 중, 이름 없는 사찰들은 이미 폐허가 되어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국사는 별도로 계속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의 학자 이덕홍(1541년 - 1596년)이 경주를 여행하며 작성한 『동경유록』에 따르면, 16세기에도 여전히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593년 5월, 불국사는 임진왜란 중 모든 목조 건물이 소실되었다. 불국사의 역사를 기록한 『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르면, 불국사를 구경하러 온 가토 기요마사의 병사들이 숨겨진 무기를 보고 흥분하여 불을 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17세기 초부터 여러 차례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1765년에는 불국사 대웅전을 재건하였다. 그러나 결국 쇠락하여 폐사가 되었고, 석굴암과 함께 방치되었다.
1904년부터 1905년에 걸쳐 자하문 좌우의 행랑도 붕괴되고, 석단도 매몰된 상태가 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4년 4월부터 1925년 8월까지 조선총독부의 재건 공사로 석단·석랑을 포함한 주요 구조물이 수리되었다. 전후인 1973년 발굴 조사 후, 개수 공사로 무설전, 관음전 등이 재건되었다.
2010년에 일본 불상 장인 후쿠이 쇼메이가 제작한 사천왕상 등 12체의 불상이 기증되어 불국사·성보박물관에 상설 전시되었다[13].
3. 중창자 김대성에 대한 논란
삼국유사의 내용에 따르면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하고 석굴암을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국사와 석굴암의 규모는 한 나라의 국력을 쏟아부어야 할 정도이기에, 왕이 아닌 재상이 건축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견해가 있다.[19]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불국사를 중창하였고, 석굴암도 같은 이유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 혜공왕이 시해당하면서 통일신라의 왕위는 순수한 진골 혈통과 단절되었다. 후에 왕위에 오른 원성왕은 성덕왕과 경덕왕의 사당을 없애고, 자신과 혈통이 다른 왕들을 추모하는 절을 그대로 둘 수 없었기에 창건자를 재상 김대성으로 만들어 소문을 내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이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하던 고려 시대는 물론,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설이다.[19]
4. 주요 구조 및 특징
신라는 경주 토함산을 호국의 산으로 신성시하여[15], 안개를 토하듯 뱉어내는 토함산에 최고의 사찰을 짓고 싶어 했다.[16] 그 결과물이 바로 불국사와 석굴암이다. 흔히 재상 김대성이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이 528년에 창건하였고, 삼국통일 후에 재상 김대성이 크게 중창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 751년(통일신라 경덕왕 10년):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에 의해 대규모로 중창하기 시작했다. 석가탑, 다보탑, 석교(경주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등을 축조하여, 오늘날 불국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불국사의 대규모 중창은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한 것이었다.
- 774년(혜공왕 10년): 재상 김대성이 죽고, 통일신라에서 불국사의 대규모 중창을 마무리지었다.[18] 80종의 건물에, 총 2,000여 칸 규모의 대사찰이 되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국보 제23호로, 불국사로 이어지는 계단의 일부를 이루는 두 개의 다리이다. 원래 불국사는 토함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주위를 호수로 만들어 놓아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배를 백운교에 매어놓고, 절로 올라갔었다. 현재는 물을 모으지 않고 바로 흘려보내므로 흔적만 남아있다.[23] 불국사 왼쪽 주변을 둘러보면 땅을 깊게 파서 콘크리트로 마감한 크고 깊은 배수로를 볼 수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을 통해 석가모니가 있는 대웅전이 나오고, 연화교와 칠보교를 오르면 안양문을 통해 아미타여래가 있는 극락전이 나온다. 4개의 다리 사이에 있는 범영루는 원래 범종이 걸려있던 곳이다. 현재는 범종각을 따로 만들어 종을 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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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에는 지상과 두 개의 천상의 세계가 나타나 있다. 지상의 세계는 석가모니의 법화경으로, 천상의 세계는 아미타불의 화엄경으로 나타나 있다. 넓은 사찰 경내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마당과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마당, 두 개의 마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설전(無說殿)은 경전을 강의하는 장소이다. 무설은 말이 없다는 뜻인데, 부처의 가르침의 본질과 진리의 깊이는 말로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670년(통일신라 문무왕 10년)에 의상대사가 처음 이곳에서 강의하였다. 조선 후기 양식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1973년까지 여러 번 중수와 수리를 거듭했다. 관음전(觀音殿)에는 완전한 자비의 보살인 관세음보살의 형상을 모시고 있으며, 사찰 단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10]
나한전은 석가모니와 16명의 제자인 십육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제1나한은 빈두로존자 또는 나반존자라고 부른다.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문이다. 불국사 천왕문 앞에 연못이 있다.[28]
원래 불국사의 범종은 범영루에 걸려있었다. 범영루의 옛 이름은 수미(須彌) 범종각(梵鐘閣)이었다. 현재는 범종각을 새로 만들어 범종을 걸어놓았다.[29] 사찰에서 법회와 같은 행사를 할 때 사용하는 깃발을 "당"이라고 하며, "당"의 깃대(기둥) 역할을 하는 것이 당간이다. 당간은 보통 쇠기둥으로 길고 높게 만든다. 이 당간을 고정하고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당간지주이다.[30]
1970~1972년에 정부 보조비를 포함한 총공사비 3억여 원을 들여 불국사를 복원시켰다.
4. 1. 대웅전 구역
대웅전을 마주보고 섰을 때, 가운데는 통일신라시대 석등이 있고, 좌측에는 석가탑, 우측에는 다보탑이 있다. 대웅전 내부에 주불은 석가모니불이고, 좌측에는 제화갈라보살, 우측에는 미륵보살이 있다. 가장 끝 양쪽에는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존자와 마하가섭존자가 있다.[20]석가탑과 다보탑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일명, 법화경)의 「견보탑품(見寶塔品)」내용을 보여주는 탑이다. 『법화경』에서 "이를 설법하는 석가모니를 찬양하기 위해 다보여래가 보탑의 형상으로 솟아나 공중에 머물며 찬양한 후, 탑내의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나란히 앉았다."는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무진의보살이 관세음보살에게 영락을 보시하자, 관세음보살이 이를 반으로 나눈다. 그리고 반은 석가모니부처에게, 나머지 반은 다보부처님 탑에 공양을 하는 장면 또한 나타낸 것이다. 석가모니부처가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설하시기 전에 다보부처는 탑만 남기고 자리를 뜨셨기 때문에, 다보탑에 공양한 것이 맞다.[21]
석가탑은 석가모니여래를 상징하며, 『불국사 사적기』에는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說法塔)으로 적혀있다.[22] 또한 석가탑의 또 다른 이름은 무영탑으로 그림자가 없는 탑이라는 뜻이다. 아사달과 아사녀 그리고 영지(그림자 호수)에 얽힌 전설이 반영된 별명이다. 다보탑은 다보여래를 상징하며, 『불국사 사적기』에는 다보여래상주증명탑(多寶如來常住證明塔)으로 적혀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을 통해 석가모니예래가 있는 대웅전이 나온다. 이곳은 현생세계를 의미한다. 즉, 사람들은 청운교와 백운교로 올라 현세의 석가모니불에게 간다.


대웅전은 불국사의 본전으로, 681년경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건물은 1765년에 재건되었다.[10]
4. 2. 극락전 구역
연화교와 칠보교를 오르면 아미타여래가 있는 극락전이 나온다. 이곳은 내생세계(극락정토)를 의미한다. 즉, 영가(죽은 사람)들은 연화교 및 칠보교로 올라 내세(극락정토)의 아미타불에게 간다.[24]연화교와 칠보교는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상징적인 다리이다. 형식은 청운교와 백운교와 같으나,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신라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중건할 때, 주조하여 봉안한 아미타불이 있다.
2007년에는 한 관광객이 극락전 처마 밑의 현판 아래에 가려져 있던, 나무로 만들어진 50cm가량 되는 황금 돼지 목조 조형물을 발견하였다.[26] 이후 극락전 복돼지를 아예 황금 복돼지상으로 만들어 극락전 앞에 설치해두었다.
4. 3. 비로전 구역
비로전(毘盧殿)은 관음전 아래에 있으며, 국보 제26호를 모시고 있다.[10]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중건할 때, 주조하여 봉안한 비로자나불이 있다.대한제국 시기에 일본 건축가였던 세키노 다다시는 불국사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펴내 일본인 지인에게 선물하였다. 세키노 다다시는 불국사 비로전 사리탑을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석등"이라고 널리 알렸고, 이것이 밀반출의 원인이 되었다.[25] 1905년 어떤 일본인이 사리탑을 일본으로 불법 반출하여 도쿄의 우에노(上野)공원에 세워놓았다. 세키노 다다시가 사리탑을 찾으러 우에노 공원으로 갔으나, 탑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이후 다다시는 20여 년 동안 사리탑의 행방을 추적하여 일본의 한 제약회사 사장의 집 정원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고, 1933년 불국사로 반환시켜 비로전 앞에 다시 세워놓았다.
국보 제26호(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慶州 佛國寺 金銅毘盧遮那佛坐像)는 1962년 12월 20일에 지정되었으며, 불국사에 있는 금동 비로자나불 좌상이다. 깨달음의 부처는 비로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높이 1.77m의 금동으로 만들어졌다. 부처의 머리에는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우산이 있다. 머리는 두 개의 껍질을 서로 융합하여 만들었으며, 얼굴은 길고 부드럽다. 법의는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어깨에서 무릎까지 흘러내리는 주름진 천의 표현은 높은 기술로 이루어졌다. 부처의 손은 오른쪽 검지가 왼손으로 덮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흔히 깨달음의 부처를 상징하는 자세이다. 법의의 너무 넓은 무릎과 법의, 얼굴 묘사의 긴장감 부족 등의 양식적 증거를 통해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4. 4. 기타
신라인들은 경주 토함산을 호국의 산으로 신성시 했기에[15], 안개를 토하듯 뱉어내는 토함산에 최고의 사찰을 짓고 싶어 했다.[16] 그 결과물이 바로 불국사와 석굴암이다.흔히 재상 김대성이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이 528년에 창건하였고, 삼국통일 후에 재상 김대성이 크게 중창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은 토함산을 둘러서 석굴암으로 바로 가는 도로가 있지만, 아주 옛날에는 경주 시민들이 소풍을 가면 불국사 등산로로 석굴암을 갔었다.
- 751년(통일신라 경덕왕 10년) :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에 의해 대규모로 중창하기 시작했다. 석가탑과 다보탑, 석교(경주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등을 축조하여, 오늘날 불국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불국사의 대규모 중창은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 김대성은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창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석불사가 암자인 석굴암이 되었다.
- 774년(혜공왕 10년) : 재상 김대성이 죽고, 통일신라에서 불국사의 대규모 중창을 마무리지었다.[18] 80종의 건물에, 총 2,000여칸 규모의 대사찰이 되었다.
불국사에는 지상과 두 개의 천상의 세계가 나타나 있다. 지상의 세계는 석가모니 부처의 법화경으로, 천상의 세계는 아미타불 부처의 화엄경으로 나타나 있다. 넓은 사찰 경내는 두 개의 마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마당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大雄殿)을 중심으로 하고, 다른 하나의 마당은 칠보교(七寶橋)를 모신 극락전(極樂殿)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사리탑은 돌로 만든 등롱처럼 생겼다. 높이 2.1미터이며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 왼쪽에 있다. 이 유물은 1906년 한때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1933년에 반환되었다. 고려 시대 유물이지만 신라 시대 예술의 영향을 보여준다.
사리는 유명한 승려나 왕족의 유골이나 유품을 보관하는 용기이다. 이 사리탑에는 여덟 명의 승려 또는 한 명의 왕비의 유골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 유물의 세 가지 주요 특징은 기단석, 탑신, 상륜부이다. 기단은 조각으로 장식된 팔각형 돌이다. 이 기단 위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진 원형 돌이 있다. 탑신의 기둥은 구름 무늬로 조각되어 있으며, 탑신은 원통형으로 부처와 보살의 양각이 네 곳에 새겨져 있고 꽃 무늬가 함께 있다. 탑의 꼭대기는 12면이 육각형으로 만나는 모양이다.
5. 아사달과 아사녀 전설
백제의 석공 아사달은 불국사의 석탑을 짓기 위해 아내 아사녀를 고국에 남겨두고 신라로 향했다.[1] 3년 후, 남편을 기다리다 못한 아사녀는 불국사를 찾아가 승려에게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승려는 "석탑이 완성되면 영지에 석탑의 그림자가 비칠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아사녀는 매일 영지에서 남편을 기다렸지만, 어느 달밤 영지에 몸을 던졌다.[1] 석탑을 완성한 아사달은 영지에서 아내의 시신을 발견하고, 슬픔에 잠겨 자신도 영지에 몸을 던졌다.[1]
6. 소속 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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