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릉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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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릉은 효명세자와 신정왕후를 모신 조선의 능이다. 효명세자는 순조의 아들로 1830년에 사망하여 처음에는 연경묘로 조성되었다가, 이후 익종으로 추존되었다. 신정왕후는 효명세자의 부인으로, 1890년에 수릉에 합장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수릉은 여러 차례 이장되었으며, 현재는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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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 (조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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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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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사적 |
이름 | 동구릉(東九陵) |
지정 번호 | 193 |
소재지 |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인창동 산7-1) |
제작 시기 | 조선 1718년 |
지정 연월일 | 1970년 5월 26일 |
비고 | 조선 문조 신정왕후 |
2. 효명세자
수릉은 조선의 추존왕 익종(翼宗)과 그의 비 신정왕후 조씨가 함께 묻힌 능이다.[2][3] 익종은 순조와 순원왕후의 맏아들로 태어난 효명세자이다.[1] 왕세자 시절 아버지 순조를 도와 대리청정을 하기도 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1830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1] 사후 아들인 헌종에 의해 익종으로 추존되었으며, 훗날 대한제국 고종 황제는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다시 추존하였다.[1]
2. 1. 생애
효명세자는 1809년 9월 18일 순조와 순원왕후의 장자로 태어났다.[1] 1812년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819년 음력 10월에는 훗날 신정왕후가 되는 풍양 조씨 조만영의 딸과 가례를 올렸다.[1][2]1827년, 아버지 순조의 명을 받아 대리청정을 시작하였다. 이 시기 효명세자는 당시 세도 정치의 중심이던 외척 안동 김씨 세력을 견제하고, 자신의 처가인 풍양 조씨 인물들을 중용하며 왕권 강화를 시도하는 등 개혁적인 면모를 보였다.[1]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리청정을 시작한 지 4년 만인 1830년 5월 6일, 22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1][3] 효명세자가 승하한 후 아들인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으며, 훗날 1899년 대한제국 고종 황제에 의해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다시 추존되었다.[1]
한편, 효명세자의 부인인 신정왕후 조씨(1808년 ~ 1890년)는 1830년 남편 효명세자와 사별하고, 1834년 아들 헌종이 즉위하자 왕대비(王大妃)가 되었다.[2] 오랜 시간 왕실의 어른으로 지내다 1890년 음력 4월 17일 83세의 나이로 경복궁 흥복전에서 승하하였다. 이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있는 남편 익종의 능인 수릉에 합장되어, 이로써 수릉은 단릉이 아닌 합장릉이 되었다.[2][3]
2. 2. 사후
효명세자는 1830년에 서거하였다. 그의 아들인 헌종이 왕위에 오른 후, 효명세자를 익종으로 추존하였다. 이후 1899년에는 고종에 의해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다시 추존되었다.[1]3. 신정왕후
수릉은 효명세자(익종)의 능으로, 왕후인 신정왕후 조씨가 함께 묻혀 있는 합장릉이다.[2][3] 신정왕후는 사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 이곳 수릉에 합장되었다.[2]
3. 1. 생애
효명세자는 1809년 9월 18일 순조와 순원왕후의 장자로 태어났다.[1] 1812년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1819년 음력 10월에는 신정왕후 조씨와 가례(嘉禮)를 올렸다.[1][2] 1827년, 아버지 순조의 명을 받아 대리청정을 시작했으며, 당시 세도 정치의 중심이던 안동 김씨를 견제하고 처가인 풍양 조씨 인물을 중용하는 등 개혁 정치를 시도했다.[1] 그러나 대리청정 4년 만인 1830년 5월 6일, 22세의 이른 나이에 승하하였다.[1][3] 아들 헌종이 즉위한 후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고,[1][3] 1899년에는 고종에 의해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다시 추존되었다.[1]신정왕후 조씨는 1808년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딸로 태어나 1819년 효명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다.[2] 1830년 남편 효명세자와 사별하였고,[2] 1834년 시아버지인 순조가 승하하고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王大妃)가 되었다.[2] 이후 왕실의 어른으로 지내다가 1890년 음력 4월 17일, 83세의 나이로 경복궁 흥복전에서 승하하였다.[2] 신정왕후는 사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 남편 익종의 능인 수릉에 합장되었다.[2][3] 이로써 수릉은 단릉이 아닌 합장릉이 되었다.[2]
4. 수릉
수릉은 조선의 제23대 왕 순조의 맏아들인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 훗날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재추존)와 그의 비 신정왕후 조씨의 합장릉이다.[1][2] 효명세자는 1827년부터 아버지 순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며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견제하고 처가인 풍양 조씨 세력을 중용하는 등 정치적 역량을 보였으나,[1] 1830년 젊은 나이에 승하하였다.
효명세자가 승하하자 처음에는 1830년 경기도 양주군 천장산(현재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의릉 부근)에 세자의 무덤 형식인 원(園)으로 '연경묘(延慶墓)'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었다.[3] 이후 아들 헌종이 즉위하여 효명세자를 익종으로 추존하면서 능의 이름도 '수릉(綏陵)'으로 격상되었다.[3] 그러나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1846년과 1855년 두 차례에 걸쳐 능을 옮기는 과정을 거쳤으며, 최종적으로 현재의 위치인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 건원릉 좌측 언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3]
1890년 신정왕후가 83세로 승하하자 이곳 수릉에 합장되어,[2][3] 이로써 수릉은 합장릉이 되었다.[2]
4. 1. 연경묘
1830년 5월 6일 효명세자가 승하하자, 같은 해 8월 4일 경기도 양주군 천장산(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의릉 왼쪽 언덕)에 세자의 무덤 형식인 원(園)으로 묘를 조성하였다.[3] 이때 묘의 이름은 연경묘(延慶墓)라고 하였다.[3] 이후 1835년 아들 헌종이 즉위하여 효명세자를 익종(翼宗)으로 추존하면서, 묘의 이름도 수릉으로 격상하였다.[3]4. 2. 이장 역사
1830년 5월 6일 (순조 30년) 효명세자가 승하하자, 그해 8월 4일 경기도 양주군 천장산(현재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의릉 왼쪽 언덕)에 세자 무덤 형식인 원(園)으로 능을 조성하고 '연경묘(延慶墓)'라 하였다.[3] 이후 아들 헌종이 1835년 즉위하여 효명세자를 익종(翼宗)으로 추존하면서 능의 이름도 '수릉(綏陵)'으로 바꾸었다.[3]1846년 (헌종 13년)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기로 결정하여, 현궁을 발굴하고 정자각에 잠시 모신 뒤 그해 5월 19일 발인하여 20일 양주 용마산 아래로 천장하였다.[3] 이후 1855년 (철종 6년) 8월에 다시 능을 옮겨 현재 위치인 동구릉 내 건원릉 좌측 언덕으로 천장하였다.[3] 1890년(고종 27년) 음력 4월 17일 신정왕후가 83세로 승하하자[2] 수릉에 합장하여[3] 오늘날과 같은 합장릉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2][3]
4. 3. 현재의 수릉
1830년 5월 6일 효명세자가 승하하자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군 천장산 (현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의릉 좌측 언덕)에 세자 무덤 형식인 원(園)으로 조성하고 연경묘(延慶墓)라 하였다.[3] 이후 아들 헌종이 1835년 즉위하여 효명세자를 익종(翼宗)으로 추존하면서 묘의 이름을 수릉(綏陵)으로 격상시켰다.[1][3]1846년(헌종 13년)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논의에 따라 천장(遷葬: 능을 옮김)이 결정되어, 같은 해 5월 19일 양주 용마산 아래로 옮겨졌다.[3] 이후 1855년(철종 6년) 8월에 다시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 건원릉 좌측 언덕, 현재의 위치로 재차 천장하였다.[3]
1890년(고종 27년) 4월 17일 신정왕후가 83세로 승하하자, 같은 해 8월 30일 이곳 수릉에 남편 익종과 합장하였다.[2][3] 이로써 수릉은 익종과 신정왕후를 합장한 능이 되었다.[2]
참조
[1]
문서
조선 문조
[2]
문서
신정왕후 (조선)
[3]
웹인용
추존왕 문조(文祖)
http://donggu.cha.go[...]
문화재청
200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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