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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프리드 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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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그프리드 서순은 유대인 아버지와 성공회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의 시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반전 시를 썼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으며, 크리켓 선수로도 활동했다. 전쟁 중에는 용감한 군인으로 무공 십자 훈장을 받았지만, 전쟁의 참혹함에 반대하며 복무를 거부하고 정신 치료를 받았다. 그는 윌프레드 오웬을 만나 시 창작에 영향을 주었으며, 전후에는 문학 편집자와 작가로 활동하며 자서전을 집필했다. 서순은 동성애자였으며, 여러 남성들과 연애했다. 1951년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으며, 1967년 위암으로 사망하여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의 코너에 기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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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프리드 서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조지 찰스 베레스포드가 1915년에 촬영한 시그프리드 사순
조지 찰스 베레스포드가 1915년에 촬영
본명시그프리트 로레인 사순
출생1886년 9월 8일
출생지매트필드, 켄트, 잉글랜드
사망1967년 9월 1일
사망지헤이츠베리, 윌트셔, 잉글랜드
필명사울 카인
핀치베크 리어
학력
교육클레어 칼리지, 케임브리지
말버러 칼리지
뉴 비컨 스쿨
직업
직업군인
전쟁 시인
작가
장르
소설
전기
대표작《조지 셔스턴의 완전한 회고록》
개인사
배우자헤스터 개티 (1933년 결혼, 1945년 별거)
자녀조지
친척사순 가문
군사 경력
소속영국
군종영국 육군
복무 기간1914년–1919년
계급대위
부대서식스 요먼리
로열 웰치 퓨질리어
참전제1차 세계 대전
훈장군사 십자 훈장
서훈
훈장대영 제국 훈장

2. 초기 생애

서순(앞줄)과 그의 형제 하모, 그리고 1906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5월 무도회 다음 날 아침 다른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서순은 켄트주 세븐오크스의 뉴 비콘 학교, 윌트셔주의 말보로 칼리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클레어 칼리지에서 교육받았으며, 1905년부터 1907년까지 역사학을 공부했다. 학위를 받지 않고 케임브리지를 떠난 후, 몇 년 동안 사냥과 크리켓을 즐기고 개인적으로 시를 출판했다.[3]

아버지가 유대교 신앙 밖의 사람과 결혼하여 서순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했지만,[3] 적은 개인 수입이 있었다. 이후 이모 레이첼 비어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아 윌트셔의 헤이츠베리 하우스를 구입할 수 있었다.[4]

그의 첫 출판 성공작인 "수선화 살인자"(1913)는 존 메이스필드의 ''영원한 자비''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그 모든 것에 안녕''에서 이를 "패러디가 중간에 패러디하는 것을 잊고 오히려 꽤 괜찮은 메이스필드로 변한 작품"이라고 묘사했다.

2. 1. 가족 배경



시그프리드 서순은 유대인 아버지와 성공회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켄트주 매트필드에 있는 고딕 양식의 저택인 웨어레이(건축가 해리슨 웨어의 이름을 따서 지음)에서 자랐다.[2] 그의 아버지 알프레드 에즈라 서순(1861–1895)은 사순 데이비드 서순의 아들이자, 부유한 바그다드 유대인 사순 상인 가문의 일원이었다. 시그프리드의 어머니 테레사는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상들을 제작한 조각가 집안인 손이크로프트 가문 출신이었으며, 그녀의 오빠인 경 하모 손이크로프트도 그중 한 명이었다.

서순의 가족에게는 독일 혈통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좋아해서 그에게 지크프리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의 중간 이름인 로레인은 그녀가 존경했던 목사의 성이었다.

시그프리드는 세 아들 중 둘째였으며, 다른 아들들은 마이클과 하모였다. 그가 네 살 때 부모님은 별거했다. 그의 아버지가 매주 아들들을 방문하는 동안 테레사는 응접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1895년, 알프레드 서순은 결핵으로 사망했다.[3]

2. 2. 유년 시절



지크프리드 서순은 유대인 아버지와 성공회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켄트주 매트필드에 있는 고딕 양식의 저택인 웨어레이(건축가 해리슨 웨어의 이름을 따서 지음)에서 자랐다.[2] 그의 아버지 알프레드 에즈라 서순(1861–1895)은 사순 데이비드 서순의 아들이자, 부유한 바그다드 유대인 사순 상인 가문의 일원이었다. 지크프리드의 어머니 테레사는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상들을 제작한 조각가 집안인 손이크로프트 가문 출신이었으며, 그녀의 오빠인 하모 손이크로프트 경도 그중 한 명이었다.

서순 가족에게는 독일 혈통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좋아해서 그에게 지크프리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의 중간 이름인 로레인은 그녀가 존경했던 목사의 성이었다.

지크프리드는 세 아들 중 둘째였으며, 다른 아들들은 마이클과 하모였다. 그가 네 살 때 부모님은 별거했다. 그의 아버지가 매주 아들들을 방문하는 동안 테레사는 응접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1895년, 알프레드 서순은 결핵으로 사망했다.[3]

서순은 켄트주 세븐오크스의 뉴 비콘 학교, 윌트셔주의 말보로 칼리지, 그리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클레어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05년부터 1907년까지 역사학을 공부했다. 그는 학위를 받지 않고 케임브리지를 떠났으며, 1907년 이후 몇 년 동안 사냥, 크리켓을 하고, 개인적으로 출판한 시를 썼다.[3]

그의 아버지는 유대교 신앙 밖의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에 서순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했지만,[3] 지크프리드는 적은 개인 수입이 있어서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고도 검소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는 이모 레이첼 비어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아 윌트셔에 있는 헤이츠베리 하우스라는 대저택을 구입할 수 있었다.[4]

그의 첫 번째 출판 성공작인 "수선화 살인자"(1913)는 존 메이스필드의 ''영원한 자비''를 패러디한 작품이었다.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그 모든 것에 안녕''에서 이 작품을 "패러디가 중간에 패러디하는 것을 잊고 오히려 꽤 괜찮은 메이스필드로 변한 작품"이라고 묘사했다.

2. 3. 크리켓 선수 경력

서순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을 크리켓 팀에서 활동했으며, 그의 형제들과 세 명의 가정교사 또한 크리켓광이었다. 마찬트 가문은 인접한 토지 소유주였으며, 프랭크 마찬트는 1890년부터 1897년까지 카운티 팀의 주장이었다. 서순은 말보로 칼리지에서 자신의 기숙사 팀에서 활동했는데, 한 번은 18런을 내주고 7개의 위켓을 잡았다. 이 시기에 그는 세 편의 시를 ''크리켓'' 잡지에 기고했다.[5]

1910년경 몇 년 동안 그는 툰브리지 웰스의 네빌 그라운드에서 종종 블루맨틀스 크리켓 클럽에서 활동했으며, 때로는 아서 코난 도일과 함께하기도 했다. 그는 나중에 "더 레이븐스"라는 다운사이드 수도원 팀에서 활동했으며, 70대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2][5]

3.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글린 워렌 필팟의 1917년 사순 초상 (피츠윌리엄 박물관)


시그프리드 서순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여러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으나,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전쟁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반전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1916년 8월, 사순은 위장열로 옥스퍼드의 소머빌 칼리지에 요양을 가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낙원과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로버트 그레이브스도 소머빌에 오게 되었는데, 1917년 사순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크레이그록하트 전쟁 병원에서 사순은 윌프레드 오웬을 만났다.[15] 사순은 오웬의 시 창작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오웬의 ''운명의 청춘을 위한 찬가'' 원고에는 사순의 수정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 이 원고는 런던의 제국 전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오웬은 사순을 "키츠와 그리스도, 엘리야"와 같다고 표현하며 존경심을 드러냈다.[15] 두 사람은 프랑스 전선으로 복귀했지만, 오웬은 휴전 1주일 전인 1918년에 전사했다.

사순은 중위로 진급하여 팔레스타인에서 복무하다가 1918년 6월 20일 프랑스로 돌아왔다.[16] 그러나 1918년 7월 13일, 아라스 근처에서 영국군의 오인 사격으로 머리에 부상을 입고(아군 오사),[17] 남은 전쟁 기간 동안 영국에서 지냈다. 이후 임시 대위로 진급했고, 1919년 3월 12일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지만 대위 계급은 유지했다.[19]

전쟁 후, 사순은 오웬의 작품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의 관계는 스티븐 맥도날드의 연극 ''영웅에 관하여''의 소재가 되었다.[20]

1917년 말, 사순은 아일랜드 리머릭의 뉴 병영에서 신병 훈련을 도왔다. 그는 이 시기를 휴식과 사냥을 즐겼던 시기로 회상했다. 훗날 그는 아일랜드 독립 전쟁이 일어나기 몇 년 전 아일랜드에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리머릭에 잠시 머문 후 이집트로 배치되었다.[13]

3. 1. 입대와 초기 복무

사순은 유럽에서 전쟁의 위협이 커지자 1914년 8월 4일, 영국이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한 날 서식스 요먼리에 입대했다.[6] 그러나 승마 사고로 팔이 심하게 부러져 1915년 봄까지 요양해야 했다.[6] 이후 1915년 5월 29일, 로열 웰치 퓨질리어스 제3대대(특수 예비대)에 소위로 임관했다.[6]

1915년 11월 1일, 사순의 남동생 하모는 갈리폴리 전역에서 전사했다.[7] 같은 달, 사순은 프랑스 주둔 로열 웰치 퓨질리어스 제1대대로 파견되어 로버트 그레이브스를 만났고, 둘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시를 통해 교류하며 서로의 작품을 읽고 토론했는데, 이는 사순의 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초기 시에서 낭만적인 경향을 보였던 사순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경험하면서 어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의 전쟁 시는 참호의 추악한 진실을 전달하며 모더니즘 시로의 전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 대전 서부 전선에서 복무하는 동안 사순은 용감한 행동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독일 참호를 단독으로 점령하는 등의 공을 세웠다.[9] 그의 용기는 부대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미친 잭"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16년 7월 27일, 사순은 적의 참호 습격 중 보여준 용맹으로 무공 십자 훈장을 받았다.[10] 훈장 수여 이유는 다음과 같다.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사순의 이러한 용맹을 자살적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사순은 빅토리아 십자 훈장 후보로도 추천되었다.[11]

3. 2. 무공 십자 훈장

사순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서부 전선에서 복무하며 뛰어난 용맹을 보여주었다. 특히 독일 참호 단독 점령을 포함,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60명의 독일 군인을 흩뜨린 사건이 유명하다.[9] 그는 낮에 폭탄을 들고 나가 소총 엄호를 받으며 적들을 쫓아냈는데, 증원을 요청하는 대신 독일 참호에 앉아 시집을 읽는 무모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9]

병사들이 겪는 공포와 비참함에 대한 깊은 우울증은 역설적으로 사순에게 광적인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거의 자살에 가까운 행위로 인해 부하들에게 "미친 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16년 7월 27일, 사순은 무공 십자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사순의 이러한 용맹을 자살적이라고 묘사했다. 사순은 빅토리아 십자 훈장 후보로도 추천되었다.[11]

3. 3. 반전 운동

1917년, 훈장과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순은 전쟁 수행 방식에 반대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격렬한 반전 감정의 한 가지 이유는 그의 친구 데이비드 커스버트 토마스의 죽음이었다. 그는 셔스톤 3부작에서 "딕 틸트우드"로 등장한다. 서순은 수년간 슬픔을 극복하려 애썼다.

요양 휴가가 끝날 무렵, 서순은 복귀를 거부했다. 버트란드 러셀과 오톨린 모렐 부인과 같은 평화주의자 친구들의 격려를 받아 그는 지휘관에게 "전쟁 종결: 한 병사의 선언"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냈다. 언론에 전달되어 동정적인 국회의원이 하원에서 낭독한 이 편지는 일부 사람들에게 반역("나는 군 권위에 대한 고의적인 반항의 행위로서 이 성명을 발표한다")으로 여겨지거나, 기껏해야 전쟁 정부의 동기를 비난하는 것("나는 방어와 해방의 전쟁으로 시작했던 전쟁이 이제 침략과 정복의 전쟁이 되었다고 믿는다"[12])으로 여겨졌다.

전쟁 차관 이언 맥퍼슨은 서순을 군사 재판에 회부하는 대신 그가 복무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에든버러 근처의 크레이그록하트 전쟁 병원으로 보냈다. 그는 공식적으로 신경쇠약("셸 쇼크") 치료를 받았다.[11]

서순은 현역 복귀를 거부하기 전에 폼비 해변에서 그의 MC 리본을 바다에 던졌다. 몇몇 사람들은 그의 저서 ''보병 장교의 회고록''에서 이 사건에 대한 그의 묘사를 잘못 해석하여 그가 메달 자체를 버렸다고 믿었지만, 이것은 보존되어 그의 가족에게 넘어갔다. 그는 이것을 군국주의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거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정화 작용으로서 어떤 파괴적인 행위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손에 들고 있었다면, 그의 전전 스포츠 트로피 중 하나도 그의 목적을 똑같이 잘 수행했을 것이다.

4. 전후 활동

서순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학 친구들과 교류하며 노동 운동 정치에 잠시 관여했다. 1918년 11월, 전쟁 중 평화주의자였던 노동당 후보 필립 스노든을 지원하기 위해 블랙번에 가서 선거 연설을 했다. 그는 "국회에서 [스노든의] 반전 태도에 감사함을 느꼈고, 그에게 쏟아진 비난에 분노했다. 나의 모든 정치적 공감은 그와 함께했다."라고 썼다.[21]

이후 정치에 대한 헌신은 약해졌지만, 노동당을 지지했다. 1929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의석을 얻은 것과 1945년 노동당의 압도적인 승리는 그를 기쁘게 했다.[22]

1919년, 서순은 사회주의 신문 ''데일리 헤럴드''의 문학 편집자를 맡아 E. M. 포스터, 샬럿 묘 등을 평론가로, 아놀드 베넷, 오스버트 시트웰 같은 작가들에게 원고를 의뢰했다.

그는 "화해"(1918)와 같은 시에서 독일 군인에 대한 동일시 감정을 표현했으며,[24] 전쟁 후 독일을 여러 번 방문했다. 1921년 로마에서 카이저의 조카인 헤세의 필립 왕자를 만나 연인이 되었으나, 1920년대 중반에 관계가 멀어졌다. 1927년 그는 오스버트, 사체베렐 시트웰과 함께 베를린과 드레스덴을 여행했고, 1929년에는 스티븐 테넌트와 함께 바이에른 시골에 있는 요양소로 여행했다.[26]

1928년, 서순은 가명으로 자전적 소설 《사냥꾼의 회고록》을 출간하여 제임스 테이트 블랙 상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이 책은 곧바로 고전으로 인정받아 그에게 산문 작가로서의 새로운 명성을 안겨주었다.[24] 소설 속 주인공은 크리켓, 승마, 여우 사냥을 즐기는 한가로운 시골 신사로, 전쟁 시기의 작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그의 유머러스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후 서순은 《보병 장교의 회고록》(1930)과 《셔스턴의 성장》(1936)을 썼다. 노년에는 자신의 청춘과 젊은 시절을 다룬 자서전 3부작 《옛 세기》, 《젊음의 숲》, 《지크프리트의 여정》을 집필하여 호평을 받았다.

4. 1. 문학 편집자 및 작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학 친구들과 교류하며 시간을 보낸 서순은 노동 운동 정치에 잠시 관여했다. 1918년 11월, 전쟁 중 평화주의자였던 노동당 후보 필립 스노든을 지원하기 위해 블랙번으로 갔다. 그는 스노든을 위해 선거 연설을 했고, "국회에서 [스노든의] 반전 태도에 감사함을 느꼈고, 그에게 쏟아진 비난에 분노했다. 나의 모든 정치적 공감은 그와 함께했다."라고 썼다.[21]

이후 정치에 대한 헌신은 약해졌지만, 노동당 지지자로 남았고, 1929년에는 '[그들이] 영국 총선에서 의석을 얻은 것을 기뻐했다.'[22] 1945년 노동당의 압도적인 승리 소식은 1차 세계 대전 동안 그가 혐오했던 많은 보수당원들이 물러났기 때문에 그를 기쁘게 했다.[22]

1919년, 서순은 사회주의 신문 ''데일리 헤럴드''의 문학 편집자 자리를 맡았다. 1919년부터 1925년까지 웨스트민스터 터프턴 스트리트 54번지에 살았는데, 이 집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기념 명판으로 표시되어 있다.[23]

''헤럴드''에서 E. M. 포스터, 샬럿 묘 등을 평론가로 고용하고, 아놀드 베넷, 오스버트 시트웰과 같은 작가들에게 원고를 의뢰했다. 그의 예술적 관심은 음악으로 확장되어, 옥스퍼드에서 젊은 윌리엄 월튼을 소개받고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월튼은 나중에 그의 재정적, 도덕적 지원을 기리기 위해 서곡 ''포츠머스 포인트(Portsmouth Point)''를 서순에게 헌정했다.

아서 퀼러쿠치(Arthur Quiller-Couch)가 서순에게 ''The Daily Herald''에 기고하도록 보낸 동의서


이후 미국 강연 투어를 시작했고, 유럽과 영국 전역을 여행했다. 출판업자 프랭키 슈스터에게 차를 선물받았지만, 운전 실력이 부족하여 친구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었다.

"화해"(1918)와 같은 시에서 독일 군인에 대한 동일시 감정을 표현했으며,[24] 전쟁 후 독일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다음 10년 동안 여러 번 방문했다.

1921년 로마에서 카이저의 조카인 헤세의 필립 왕자를 만나 한동안 연인이 되었고, 뮌헨에서 함께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지리적 거리와 서순이 필립의 우익 정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면서 1920년대 중반에 관계가 멀어졌다.

서순은 계속해서 독일을 방문했다.[25] 1927년 오스버트, 사체베렐 시트웰과 함께 베를린과 드레스덴을 여행했고, 1929년에는 스티븐 테넌트와 함께 바이에른 시골에 있는 요양소로 여행했다.[26]

서순은 웨일스 시인 헨리 본을 존경하여, 1924년 웨일스 방문에서 포위스주 란산트프라에드에 있는 본의 무덤을 순례했고, 그곳에서 그의 평화 시대 시 중 하나인 "헨리 본의 무덤에서"를 썼다. 에드먼드 고스, 토머스 하디, 프랭키 슈스터가 짧은 시간 안에 사망한 것은 그의 개인적인 행복에 차질을 가져왔다.

동시에 서순은 새로운 방향을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소설을 실험했었고, 1928년 가명으로 출판된 자전적 소설의 첫 번째 권인 ''사냥꾼의 회고록''으로 산문을 시작하여 고전으로 받아들여져 작가에게 산문 작가로서의 새로운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소설 속 온순한 주인공은 크리켓을 하고, 말을 타고, 여우를 사냥하면서 한가한 시골 신사로 지내는 데 만족하는데, 이는 종종 유머러스하며, 전쟁 기간 동안 그의 작품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서순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 책은 1928년 제임스 테이트 블랙 상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서순은 이어서 ''보병 장교의 회고록''(1930)과 ''셔스턴의 성장''(1936)을 썼다. 후년에 그는 자신의 청춘과 젊은 시절을 진정한 자서전 세 권(''옛 세기'', ''젊음의 숲'', ''지크프리트의 여정'')으로 다시 썼으며, 이들은 호평을 받았다.

4. 2. 평화주의 활동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학 친구들을 만나고 노동 운동 정치에 잠시 관여했던 서순은, 1918년 11월 전쟁 중 평화주의자였던 노동당 후보 필립 스노든을 지원하기 위해 블랙번에 갔다.[21] 그는 스노든을 위해 선거 연설을 했고, "국회에서 [스노든의] 반전 태도에 감사함을 느꼈고, 그에게 쏟아진 비난에 분노했다. 나의 모든 정치적 공감은 그와 함께했다."라고 썼다.[21]

이후 정치에 대한 그의 헌신은 약해졌지만, 노동당을 지지했으며, 1929년에는 '[그들이] 영국 총선에서 의석을 얻은 것을 기뻐했다.' 1945년 노동당의 압도적인 승리 소식은 1차 세계 대전 동안 그가 혐오했던 많은 보수당원들이 물러났기 때문에 그를 기쁘게 했다.[22]

1919년, 서순은 사회주의 신문 ''데일리 헤럴드''의 문학 편집자를 맡았다. E. M. 포스터와 샬럿 묘 등을 평론가로 고용하고, 아놀드 베넷과 오스버트 시트웰 같은 작가들에게 원고를 의뢰했다.

그는 "화해"(1918)와 같은 시에서 독일 군인에 대한 동일시 감정을 표현했으며,[24] 전쟁 후 독일을 여행하고, 이후 10년 동안 여러 번 방문했다. 1921년 로마에서 카이저의 조카인 헤세의 필립 왕자를 만나 연인이 되었으나, 1920년대 중반에 관계가 멀어졌다. 서순은 계속해서 독일을 방문했다.[25] 1927년 그는 오스버트, 사체베렐 시트웰과 함께 베를린과 드레스덴을 여행했고, 1929년에는 스티븐 테넌트와 함께 바이에른 시골에 있는 요양소로 여행했다.[26]

4. 3. 자서전 집필

1928년, 서순은 가명으로 자전적 소설 《사냥꾼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이 책은 곧바로 고전으로 인정받아 작가에게 산문 작가로서의 새로운 명성을 안겨주었다.[24] 소설 속 주인공은 크리켓, 승마, 여우 사냥을 즐기는 한가로운 시골 신사로, 전쟁 시기의 작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그의 유머러스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 책은 1928년 제임스 테이트 블랙 상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이후 서순은 《보병 장교의 회고록》(1930)과 《셔스턴의 성장》(1936)을 썼다. 노년에는 자신의 청춘과 젊은 시절을 다룬 자서전 3부작 《옛 세기》, 《젊음의 숲》, 《지크프리트의 여정》을 집필하여 호평을 받았다.

5. 개인적인 삶

크레이글록하트에서 서순은 윌프레드 오웬을 만났다. 오웬이 죽은 후, 서순은 "W의 죽음은 아물지 않는 상처였고, 그 아픔은 그 이후로 항상 내게 있었다. 나는 그의 시가 아니라 그를 다시 원했다."라고 회고했다.[27]

세인트 앤드류 교회, 멜스의 시그프리드 서순 묘비

5. 1. 동성애

윌프레드 오웬과의 만남은 서순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오웬이 죽은 후, 서순은 "W의 죽음은 아물지 않는 상처였고, 그 아픔은 그 이후로 항상 내게 있었다. 나는 그의 시가 아니라 그를 다시 원했다."라고 회고했다.[27] 두 사람 사이에 육체적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주고받은 편지에는 깊은 애정과 존경이 담겨 있었다.[15]

전쟁 후, 서순은 여러 남성들과 연애를 했다.

이름직업비고
윌리엄 파크 "가브리엘" 앳킨조경 건축가, 화가[28]
이보 노벨로배우[29]
글렌 비엄 쇼배우노벨로의 전 연인, 서순의 평생 친구
헤세의 필리프 공독일 귀족[29]
베벌리 니콜스작가[29]
스티븐 테넌트귀족[29], 서순에게 깊은 인상을 남김



1927년 시트웰 가문의 소개로 만난 서순과 스티븐 테넌트는 6년 가까이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테넌트의 반복되는 결핵 발병으로 관계에 어려움이 생겼고, 1933년 테넌트는 서순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했다. 서순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미래의 아내 헤스터 개티를 만나 테넌트와의 관계를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이후 서순과 테넌트는 편지와 전화, 만남을 이어갔지만,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5. 2. 결혼과 가정

1931년 9월, 서순은 윌트셔주 테폰트 마그나에 있는 피츠 하우스를 임대하여 그곳에서 살았다.[1] 1933년 12월, 그는 20살 연하의 스티븐 개티 경의 딸인 헤스터 개티와 결혼했고, 곧바로 헤이츠베리 하우스로 이사했다.

결혼 후 그들은 아이를 가졌고, 서순은 오랫동안 아이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그프리드의 아들 조지 서순(1936–2006)은 과학자, 언어학자, 작가가 되었고, 지그프리드는 그에게 여러 편의 시를 헌정하며 사랑했다. 서순의 결혼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파경을 맞았는데, 서순은 자신이 즐겼던 고독과 필요로 했던 동반자 관계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945년에 아내와 별거한 서순은 윌트셔주 헤이츠베리에서 은둔 생활을 했지만, E. M. 포스터와 J. R. 애클리를 포함한 지인들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은 나중에 래들리 칼리지의 교장(교장)이 된 크리켓 선수 데니스 실크였다. 그는 또한 당시 그의 아들 조지가 학생이었던 윌트셔주 애슈턴 기포드 하우스의 그린웨이스 학교 교장이었던 비비안 핸콕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 관계는 헤스터가 핸콕에게 강한 비난을 퍼붓게 했고, 핸콕은 법적 조치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했다.[2]

5. 3. 종교적 귀의

평생 동안 신앙과 영성에 대한 질문과 씨름해 온 서순은 1957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로 결정했다.[30] 그의 개종 동기는 많은 추측과 분석의 대상이 되어 왔다.[11] 지적 탐구, 심미적 매력, 영적 추구, 그리고 로널드 녹스와 같은 인물들의 영향이 서순의 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작용했다.

6. 죽음과 유산

시그프리드 서순은 1951년 신년 명예 훈장에서 대영 제국 훈장 사령관(CBE)으로 임명되었고, 위암으로 사망한 후 서머싯 주 멜스에 있는 성 안드레 교회에 안장되었다.[31][32][33] 그의 유품인 CBE, MC 및 종군 메달은 카에르나본 성에 있는 로열 웰치 퓨질리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34] 그의 외아들 조지 서순은 2006년 암으로 사망했으며, 조지의 세 자녀 중 두 명은 1996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조지의 첫 번째 결혼을 통해 얻은 딸 켄달 서순은 2001년에 설립된 지크프리드 서순 펠로우십의 대표이다.[38]

6. 1. 죽음

서순은 1951년 신년 명예 훈장에서 대영 제국 훈장 사령관(CBE)으로 임명되었다.[31] 그는 81번째 생일 일주일 전인 1967년 9월 1일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그는 그가 매우 존경했던 로널드 녹스 신부의 묘소에서 멀지 않은 서머싯 주 멜스에 있는 성 안드레 교회에 묻혔다.[32][33] 그의 CBE, MC 및 종군 메달은 카에르나본 성에 있는 로열 웰치 퓨질리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34]

6. 2. 서훈

1951년 신년 명예 훈장에서 대영 제국 훈장 사령관(CBE)으로 임명되었다.[31][59] 그의 CBE, MC 및 종군 메달은 카에르나본 성에 있는 로열 웰치 퓨질리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34]

6. 3. 문학적 유산

1985년 11월 11일, 서순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코너에 공개된 슬레이트 석재에 기념된 16명의 제1차 세계 대전 시인 중 한 명이었다.[35] 석재의 비문은 윌프레드 오웬의 시 "서문"에서 가져온 것으로 "내 주제는 전쟁이고, 전쟁의 비극이다. 시는 그 비극 속에 있다."라고 적혀있다.[36]

2003년에는 서순이 1950년대 후반에 녹음한 내용을 담은 공인 오디오 CD인 ''기념 명판''이 출판되었다. 여기에는 ''보병 장교의 회고록''과 ''청춘의 윌드''의 발췌문뿐만 아니라 "공격", "참호", "카르노이에서", "부상으로 사망"과 같은 여러 전쟁 시와 전후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이 CD에는 에드먼드 블런든, 에젤 릭워드, 헨리 윌리엄슨 등 세 명의 제1차 세계 대전 동시대 인물들의 서순에 대한 논평도 포함되어 있다.[37]

청색 명판, 23 캠던 힐 스퀘어, 런던


2007년 5월, 서순의 무공 십자 훈장은 그의 가족에 의해 재발견되어 판매에 부쳐졌다.[39] 이 훈장은 로열 웰치 퓨질리어에 의해 카나번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구매되었다.[40] 1985년까지 청구되지 않았던 서순의 다른 복무 메달은 그의 아들 조지가 드루이트치에 있던 육군 메달 사무소에서 받았다. "늦게 청구된" 메달은 1914–15 성, 승리 메달, 영국 전쟁 메달과 서순의 CBE 및 임명장을 포함하여 2008년 소더비에서 경매에 부쳐졌다.[41]

2009년 6월,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서순의 가족으로부터 서순의 문서 보관소를 구매하여 대학교 도서관의 서순 컬렉션에 추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42] 2009년 11월 4일, 이 구매는 국립 유산 기념 기금으로부터 55만파운드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되었으며, 이는 대학교가 이미 받은 금액 외에 총 125만파운드의 요구 가격을 충족하기 위해 11만파운드를 더 모금해야 함을 의미했다.[43] 2009년 12월, 기금이 모금되어 대학교가 서류를 받았다고 발표되었다. 이 컬렉션에는 서순이 서부 전선과 팔레스타인에서 복무하는 동안 보관한 전쟁 일기, "전쟁을 끝내다: 병사의 선언"(1917)의 초고, 학창 시절의 공책 및 전후 저널이 포함되어 있다.[44] 컬렉션의 다른 항목에는 아내 헤스터에게 보낸 러브레터와 다른 작가들의 사진과 편지가 포함되어 있다. 서순은 대학교 학부생이었고, 클레어 칼리지의 명예 펠로우이기도 했다. 컬렉션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45] 자금은 개인뿐만 아니라 모뉴먼트 트러스트, JP 게티 주니어 트러스트 및 지크문트 워버그 경의 자발적 정착금에서 지원되었다.[46]

2010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서순의 삶과 기록 보관소를 전시한 주요 전시회인 ''꿈의 목소리: 지크프리드 서순, 기억과 전쟁''이 개최되었다.[47] 서순의 시 중 일부는 작가와 협력한 시릴 루섬에 의해 그의 생전에 음악으로 작곡되었다.[48][49]

2013년, 서순의 가장 잘 알려진 반전 시 중 하나인 초기 초고가 발견되면서 한 전기 작가가 시인에 대한 자신의 작품의 일부를 다시 쓸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군 병사들에 의한 독일 전쟁 포로 살해에 관한 시 "만행"에서 초기 초고는 일부 구절이 삭제되고 다른 구절이 희석되었음을 보여준다. 시인의 출판사는 시를 출판하는 것을 불안해했고, 나중에 삭제된 버전으로 출판하기 위해 보류했다. 서순 전기 작가 진 무어크로프트 윌슨은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저는 제 전기를 다시 쓰고 싶고 아마 그 일부를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보물 창고입니다."라고 말했다.[50]

2019년 초, ''가디언''은 워릭 대학교의 한 학생이 셰익스피어 생가 신탁의 글렌 바얌 쇼의 기록을 살펴보던 중, 이전에는 전체가 출판되지 않은 서순의 시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발표했다.[51]

6. 4. 대중문화 속 서순

1985년 11월 11일, 서순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의 코너에 기념된 16명의 제1차 세계 대전 시인 중 한 명이었다.[35] 기념비에는 윌프레드 오웬의 시에서 가져온 "내 주제는 전쟁이고, 전쟁의 비극이다. 시는 그 비극 속에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36]

2003년에는 서순이 1950년대 후반에 녹음한 내용을 담은 ''기념 명판''이라는 오디오 CD가 출판되었다. 여기에는 ''보병 장교의 회고록''과 ''청춘의 윌드'' 발췌문, "공격", "참호" 등 여러 전쟁 시와 전후 작품이 포함되었다. 이 CD에는 에드먼드 블런든 등 세 명의 제1차 세계 대전 동시대 인물들의 서순에 대한 논평도 포함되어 있다.[37]

서순의 무공 십자 훈장은 2007년 5월 그의 가족에 의해 재발견되어 판매에 부쳐졌고,[39] 로열 웰치 퓨질리어가 카나번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구매했다.[40]

2009년 6월,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서순의 가족으로부터 서순의 문서 보관소를 구매하여 대학교 도서관의 서순 컬렉션에 추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42] 2009년 11월 4일, 이 구매는 국립 유산 기념 기금으로부터 55만 파운드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43] 기금 모금 후, 2009년 12월 대학교는 서류를 받았다. 이 컬렉션에는 서순이 서부 전선 등에서 복무하는 동안 보관한 전쟁 일기, "전쟁을 끝내다: 병사의 선언"(1917)의 초고 등이 포함되어 있다.[44]

2010년, 서순의 삶과 기록 보관소를 전시한 ''꿈의 목소리: 지크프리드 서순, 기억과 전쟁'' 전시회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47]

2013년, 서순의 반전 시 "만행"의 초기 초고가 발견되었다. 초기 초고는 일부 구절이 삭제되고 다른 구절이 희석되었음을 보여준다. 서순 전기 작가 진 무어크로프트 윌슨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전기를 다시 쓸 것이라고 말했다.[50]

1970년 더 웨드스데이 플레이의 '매드 잭'은 서순의 전쟁 경험과 무공 훈장 포기 과정을 다루었으며, 마이클 제이슨이 서순 역을 맡았다.

팻 바커의 소설 ''재생''은 서순의 삶을 허구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제임스 윌비가 서순 역을 맡아 영화로 제작되었다.

2014년, 존 허트는 노년의 서순을, 모건 왓킨스는 젊은 서순을 BBC 드라마 다큐멘터리 ''전쟁의 비극''에서 연기했다.[52]

윌프레드 오웬의 마지막 해를 그린 영화 ''더 베리잉 파티''가 2018년 8월에 개봉되었다. 시드 피닉스가 서순 역을 맡았다.[53][54]

피터 카팔디와 잭 로든은 테렌스 데이비스의 2021년 영화 ''축복''에서 서순을 연기했다.[55]

티모시 레누프는 로버트 그레이브스에 관한 2021년 전기 영화 ''더 로리에이트''에서 서순을 연기했다.[56]

스테반 림커스는 ''영 인디아나 존스 연대기'' 에피소드 ''솜, 1916년 8월 초''에서 서순을 연기했다.[57]

7. 작품 목록

서순의 작품은 크게 시집과 산문집으로 나뉜다. 시집은 주로 전쟁의 참혹함과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산문집은 자전적 회고록과 조지 메러디스의 전기가 있다.

하위 섹션에서 이미 시집과 산문집을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일기만 간략하게 언급한다.


  • ''지크프리트 서순 일기'' (편집: 루퍼트 하트 데이비스)
  • * ''일기 1915-1918'' (Faber and Faber: 1983)
  • * ''일기 1920-1922'' (Faber and Faber: 1981)
  • * ''일기 1923-1925'' (Faber and Faber: 1985)


Diaries 1915-1918영어, Diaries 1920-1922영어, Diaries 1923-1925영어는 루퍼트 하트 데이비스에 의해 편집되었다.

7. 1. 시집

헤이그 벽에 적힌 시그프리드 서순의 시 "모두가 노래했다"

  • ''수선화 살인자'' (존 리치몬드: 1913)
  • ''늙은 사냥꾼'' (하이네만: 1917)
  • ''장군'' (덴마크힐 병원, 1917년 4월)
  • ''그게 중요한가?'' (작성: 1917)
  • ''반격과 다른 시들'' (하이네만: 1918)
  • ''영웅'' (헨리 홀트, 1918)
  • ''사진 쇼'' (하이네만: 1919)
  • ''전쟁 시'' (하이네만: 1919)
  • ''여파'' (하이네만: 1920)
  • ''재창조'' (사적으로 인쇄: 1923)
  • ''고급 어휘 사용자를 위한 언어 연습'' (사적으로 인쇄: 1925)
  • ''선집'' (하이네만: 1925)
  • ''풍자 시'' (하이네만: 1926)
  • ''마음의 여정'' (하이네만: 1928)
  • ''핀치백 리어의 시'' (덕워스: 1931)
  • ''파멸로 가는 길'' (페이버 앤 페이버: 1933)
  • ''철야 기도'' (하이네만: 1935)
  • ''운율 있는 묵상'' (페이버 앤 페이버: 1940)
  • ''새롭게 선정된 시'' (페이버 앤 페이버: 1940)
  • ''선집'' (페이버 앤 페이버: 1947)
  • ''공통 화음'' (사적으로 인쇄: 1950/1951)
  • ''경험의 상징'' (사적으로 인쇄: 1951)
  • ''임무'' (사적으로 인쇄: 1954)
  • ''연작시'' (페이버 앤 페이버: 1956)
  • ''사순절 조명'' (다운사이드 수도원: 1959)
  • ''평화로 가는 길'' (스탠브룩 수도원 출판사: 1960)
  • ''1908-1956년 선집'' (페이버 앤 페이버: 1961)
  • ''전쟁 시'' 편집. 루퍼트 하트-데이비스 (페이버 앤 페이버: 1983)

7. 2. 산문집


  • ''사냥꾼의 회고록'' (Faber & Gwyer: 1928)
  • ''보병 장교의 회고록'' (Faber and Faber: 1930)
  • ''셔스턴의 진보'' (Faber and Faber: 1936)
  • ''조지 셔스턴의 완전한 회고록'' (Faber and Faber: 1937)
  • ''구세기와 7년 더'' (Faber and Faber: 1938)
  • ''젊음의 숲'' (Faber and Faber: 1942)
  • ''지크프리트의 여정, 1916–1920'' (Faber and Faber: 1945)
  • ''메러디스'' (Constable: 1948) – 조지 메러디스의 전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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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웹사이트 Siegfried Sassoon https://war.web.ox.a[...] University of Oxford 2024-07-23
[4] 웹사이트 Heytesbury House http://siegfried-sas[...] 201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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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London Gazette 191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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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서적 Science Fiction, Horror & Fantasy Film and Television Credits: Supplement 2 McFa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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