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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짓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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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모짓카 촌은 1889년 10월 1일에 노자키 촌, 오키 촌, 이시바시 촌, 니시노호 촌, 나카노고 촌이 합병하여 발족했으며, 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군에 속했다. 1906년 7월 16일 구노쓰보 촌, 가미짓카 촌과 합병하여 니시하루 촌이 되면서 폐지되었다. 1880년대 와인 양조를 위해 포도 재배가 활발했으며, 특히 나카노고 지역에서 포도 재배가 이루어졌으나,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쇠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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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짓카촌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기본 정보
폐지일1906년 7월 16일
폐지 이유합병
폐지 상세시모짓카촌, 가미짓카촌, 구노쓰보촌 → 니시하루촌
현재 자치체기타나고야시
읽는 법시모짓카무라
구분
도도부현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군
소재지니시카스가이군 시모짓카촌

2. 역사

1880년(메이지 13년) 2월 5일, 아이치현 카스가이군이 히가시카스가이군과 니시카스가이군으로 분할되어 이 지역은 니시카스가이군이 되었다.[1]

2. 1. 시모짓카 촌의 성립

1889년(메이지 22년) 10월 1일, 노자키 촌, 오키 촌, 이시바시 촌, 니시노호 촌, 나카노고 촌이 합병하여 '''시모짓카 촌'''이 발족했다.[1]

2. 2. 니시하루 촌으로의 합병

1906년(메이지 39년) 7월 16일, 시모짓카 촌은 구노쓰보 촌, 카미짓카 촌과 합병하여 니시하루 촌이 되었다.[1] 같은 날 시모짓카 촌은 폐지되었다.[1]

3. 산업

1880년(메이지 13년) 일본에서 와인 양조를 목적으로 포도 재배가 급증했고[2], 1882년(메이지 15년) 나고야시에 와인 양조 회사가 설립되어 나카노고에서 포도를 재배했다.[3] 1885년(메이지 18년) 아이치현은 일본 전체 포도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2] 1902년(메이지 35년) 나카노고에는 총 4ha의 포도밭이 있었고[3], 재배된 포도는 대부분 시마바타에 심어졌다.[3]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야마나시현산 포도 등에 밀려 나카노고 포도는 쇠퇴하였다.[3]

3. 1. 포도 재배

1880년(메이지 13년) 일본에서 와인 양조를 목적으로 포도 재배가 급증했고[2], 1882년(메이지 15년) 나고야시에 와인 양조 회사가 설립되어 나카노고에서 포도를 재배했다.[3] 1885년(메이지 18년) 아이치현은 일본 전체 포도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2] 1902년(메이지 35년) 나카노고에는 총 4ha의 포도밭이 있었고[3], 재배된 포도는 대부분 시마바타에 심어졌다.[3]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야마나시현산 포도 등에 밀려 나카노고 포도는 쇠퇴하였다.[3]

3. 1. 1. 메이지 시대 포도 재배의 붐

1880년(메이지 13년)에는 일본에서 와인 양조를 목적으로 하는 포도 재배가 급증했다.[2] 1882년(메이지 15년)에는 나고야시에 와인 양조 회사(포도조상회 제4분사)가 설립되었고, 이 회사는 나카노고에서 카토바 품종의 포도를 재배했다.[3] 1885년(메이지 18년) 일본에는 포도 재배자가 945명 있었는데, 그중 아이치현에서는 일본 전체의 27%에 해당하는 262명이 일본 전체의 약 50%에 해당하는 33만 그루를 재배했다.[2]

3. 1. 2. 나카노고 지역의 포도 재배

1902년(메이지 35년) 나카노고에는 전성기의 포도밭 2ha와 심은 지 2~3년 된 포도밭 2ha을 합쳐 총 4ha의 포도밭이 있었다.[3] 나카노고의 포도는 대부분 시마바타에 심어졌다.[3]

3. 1. 3. 쇼와 시대의 쇠퇴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야마나시현산 포도 등에 밀려 나카노고 포도 재배는 쇠퇴하였다.[3]

참조

[1] 서적 角川日本地名大辞典 23 愛知県 角川書店 1989
[2] 서적 日本ワインの夜明け 葡萄酒造りを拓く 創森社 2020
[3] 서적 西春町史 民俗編 1 西春町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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