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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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탐은 한중군 출신으로, 후한 말 조조에게 귀순하여 상용도위를 지냈다. 유비가 한중을 점령하자 유비에게 항복하여 정북장군과 상용태수를 겸임했으나, 맹달과 아우 신의의 배반으로 위나라에 투항했다. 이후 위나라에서 회집장군을 지냈으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맹달을 배신하고 위나라에 충성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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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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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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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 신(申) |
이름 | 신탐(申耽) |
자 | 의거(義擧) |
생몰년도 | 미상 |
소속 | |
초기 소속 | 장로 |
최종 소속 | 조위 |
가족 관계 | |
형 | 신의 |
아들 | 신의(申儀) |
주요 활동 | |
주요 활동 | 상관 지역 통치 |
2. 생애
한중군 출신이다. 처음에는 서평과 상용 사이에서 수천 가를 모았으며, 나중에는 장로와 통하고 또 조조에게 사자를 보내 장군이 되고, 상용도위를 겸했다. 219년, 유비가 조조를 한중에서 쫓아내자 이 일대가 유비에게로 기울어졌으며, 맹달이 방릉태수 괴기를 죽이고, 유봉이 맹달을 지휘하여 상용으로 진격해 오자, 신탐은 유봉에게 항복하고 처자와 종족을 성도로 보냈다. 유비는 신탐에게 정북장군을 더하고, 상용태수를 겸임하게 했으며 이전과 같이 향후에 두었다.
황초 원년(220년), 맹달이 유봉을 배반하고 위나라에 붙었으며, 하후상, 서황이 맹달을 거느리고 상용을 치자, 아우 신의가 유봉을 배반하여 유봉은 싸움에 져 성도로 쫓겨났다. 신탐은 항복하여, 임시로 회집장군이 되었고 남양으로 이주했다. 신탐의 옛 칭호는 아우 신의에게 넘겨졌다.
2. 1. 초기 활동
한중군 출신이다. 처음에는 서평군·상용군 일대에서 수천 가구를 거느린 호족이었으며, 장로와 통하고 또 조조에게 사자를 보내 장군이 되고 상용도위를 겸했다. 219년, 유비가 조조를 한중에서 쫓아내자 맹달이 방릉태수 괴기를 죽이고, 유봉이 맹달을 지휘하여 상용으로 진격해 오자, 신탐은 유봉에게 항복하고 처자와 종족을 성도로 보냈다. 유비는 신탐에게 정북장군을 더하고, 상용태수를 겸임하게 했으며 이전과 같이 향후에 두었다.220년[1], 맹달과 신의가 조위로 배반하여 유봉을 패주하게 했다. 조위는 신의에게 신탐의 지위를 이어받게 했다. 후에 신탐 또한 위나라에 항복하여 회집장군의 관직을 받고, 남양군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신의는 그 후, 촉한에 붙었던 맹달의 반란을 막는 데에도 기여했지만, 신탐의 그 후 행적은 불명확하다.
2. 2. 유비 귀순과 배신
한중군 출신이다. 처음에는 서평과 상용 사이에서 수천 가를 모았으며, 장로와 통하고 또 조조에게 사자를 보내 장군이 되고, 상용도위를 겸했다.[1] 219년, 유비가 조조를 한중에서 쫓아내자 이 일대가 유비에게로 기울어졌으며, 맹달이 방릉태수 괴기를 죽이고, 유봉이 맹달을 지휘하여 상용으로 진격해 오자, 신탐은 유봉에게 항복하고 처자와 종족을 성도로 보냈다.[1] 유비는 신탐에게 정북장군을 더하고, 상용태수를 겸임하게 했으며 이전과 같이 향후에 두었다.[1]황초 원년(220년)[1], 맹달과 아우 신의가 조위로 배반하여 유봉을 패주하게 했다. 조위는 신의에게 신탐의 지위를 이어받게 했다. 후에 신탐 또한 위나라에 항복하여 회집장군의 관직을 받고, 남양군으로 이주하게 되었다.[1] 신의는 그 후, 촉한에 붙었던 맹달의 반란을 막는 데에도 기여했지만, 신탐의 그 후 행적은 불명확하다.
2. 3. 위나라 귀순 이후
한중군 출신이다. 처음에는 서평과 상용 사이에서 수천 가를 모았으며, 나중에는 장로와 통하고 또 조조에게 사자를 보내 장군이 되고, 상용도위를 겸했다. 219년, 유비가 조조를 한중에서 쫓아내자 이 일대가 유비에게로 기울어졌으며, 맹달이 방릉태수 괴기를 죽이고, 유봉이 맹달을 지휘하여 상용으로 진격해 오자, 신탐은 유봉에게 항복하고 처자와 종족을 성도로 보냈다. 유비는 신탐에게 정북장군을 더하고, 상용태수를 겸임하게 했으며 이전과 같이 향후에 두었다.황초 원년(220년)[1], 맹달과 신의가 조위로 배반하여 유봉을 패주하게 했다. 조위는 신의에게 신탐의 지위를 이어받게 했다. 후에 신탐 또한 위나라에 항복하여 회집장군의 관직을 받고, 남양군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신탐
맹달이 유봉을 배반하고 위나라로 붙었을 때, 아우 신의와 함께 맹달의 편에 서 위나라로 귀순했다. 나중에 맹달이 위나라를 배반하고 다시 촉나라로 돌아가려 하자, 아우인 신의와, 심복인 이보, 생질 등현과 함께 맹달을 배반하였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사적과 마찬가지로 조조 휘하의 상용 태수의 관직에 있었지만, 유봉과 맹달의 진군을 받고 이에 항복한다. 유비 휘하의 상용 도위가 되지만, 관우를 구원하지 않은 것으로 유비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맹달의 상담을 받자, 다시 위나라에 항복할 것을 권한다. 맹달 토벌에 실패한 유봉이 상용으로 귀환하자 반기를 들고, 유봉을 격퇴하고 그대로 위나라에 항복했다.
그 후, 위나라의 상용 태수로 재등장하여, 맹달의 반란에 가담하는 척을 한다. 신성에 갇힌 맹달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고, 성 밖으로 나온 맹달을 공격한다. 마지막에는 申耽(신탐)이 스스로 맹달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그 공적으로 승진한다.
4. 친족 관계
- 신의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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