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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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손(朝臣)은 684년 덴무 천황 시대에 제정된 일본의 가바네(姓) 시스템 중 하나로, 2번째로 높은 계급이었다. 본래 황족 혈통을 가진 귀족에게 수여되었으나, 헤이안 시대 이후에는 8개의 가바네 중 최고 지위가 되었고, 점차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칭호로 사용되었다. 주요 성씨로는 미나모토노 아손, 다이라노 아손, 후지와라노 아손, 다치바나노 아손 등이 있으며, 이들은 4대 성씨로 꼽힌다. 아손은 공경(公卿) 등의 존칭으로도 사용되었으며,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 아리와라노 나리히라 등과 같은 유명 인물들이 이 칭호를 사용했다.
684년(덴무 천황 시대)에 8가지 가바네 제도 중 하나로 아손이 제정되었다. 아손은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이었다.[2] 처음에는 조상이 황족이라고 주장하는 최고위 귀족 가문에게 주어졌다.
2. 역사
게이타이 천황의 후손처럼 황실과 가까운 가문은 원래 8가지 가바네 제도에서 첫 번째 등급인 마히토로 승진할 예정이었지만, 귀족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지 못했다. 802년, 간무 천황의 아들 야스요 친왕은 요시미네노 아손 야스요로 명명되었는데, 이는 황족 신분을 포기하고 화족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헤이안 시대 이후, 아손은 8가지 가바네 중 최고 등급이 되었고, 황족과 그 후손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3]
결국, 귀족 가문은 모두 아손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고, 다른 칭호들은 쇠퇴했으며, 아손은 단순히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칭호가 되었다.[1]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귀족이나 무사는 후지와라 아손, 귤 아손, 미나모토 아손, 타이라 아손 등의 자손으로 채워졌다. 무가의 대두로 하급 귀족이 몰락하면서, 아손은 서열을 매기기 위한 성으로서의 의미를 잃고, 공식 문서에서 사용하는 형식적인 것이 되었다.
헤이안 시대 이후, 공경(3위 이상 및 참의)은 씨(氏) 아래에 아손, 휘(諱) 아래에 공(公)(대신) 혹은 경(卿)이라는 존칭을 붙여 칭했다. 4위 이하인 자는 씨, 휘 아래에 성을 붙여 호칭했다. 씨가 아닌 휘 아래에 아손을 붙인 자를 특히 '''이름 아손'''이라고 한다.2. 1. 제정 배경
덴무 천황 시대에 선포된 8개의 가바네 시스템의 일부로, 두 번째로 높은 계급으로 창설되었다. 따라서, ''아손''은 처음에는 조상의 혈통이 황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하는 최고위 귀족 가문에게 주어졌다.[2]
황실과 가장 가까운 가문, 즉 게이타이 천황의 후손들이 원래 8개의 ''가바네'' 시스템에서 첫 번째 계급인 ''마히토''로 승진할 예정이었지만, 이는 귀족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지 못했다. 802년, 간무 천황의 아들이었던 야스요 친왕은 요시미네노 아손 야스요로 명명되었는데, 이는 그가 황족 신분을 포기하고 화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헤이안 시대 이후, ''아손''은 8개의 ''가바네'' 중 최고가 되었고, 황족과 그 후손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3]
결국, 귀족 가문의 모든 가문이 ''아손''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고, 다른 칭호들은 쇠퇴했으며, ''아손''은 단순히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칭호가 되었다.[1]
이 '''아손'''은 종래의 신(오미), 무라지, 수(오비토), 아타이 등의 성씨보다 상위에 위치하는 성씨를 만듦으로써, 성씨에 우열과 대우의 차이를 두어, 천황에 대한 충성이 두터운 씨(우지)를 우대하고, 황실에 대한 권력 장악을 꾀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2. 2. 초기 수여 대상
684년 (덴무 천황 13년) 11월 1일에 처음으로 아손(朝臣)을 하사받은 52개 씨(氏)는 다음과 같다.[1]
아손(朝臣)을 하사받은 씨(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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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와씨(大三輪氏), 오오카스가씨(大春日氏), 아베씨(阿倍氏), 거세씨(巨瀬氏), 선씨(膳氏), 기씨(紀氏), 하타씨(波多氏), 물부씨(物部氏), 평군씨(平群氏), 작부씨(雀部氏), 중신씨(中臣氏), 대택씨(大宅氏), 속전씨(粟田氏), 석천씨(石川氏), 앵정씨(桜井氏), 채녀씨(采女氏), 전중씨(田中氏), 소간전씨(小墾田氏), 수적씨(穂積氏), 산배씨(山背氏), 압씨(鴨氏), 소야씨(小野氏), 천변씨(川辺氏), 율정씨(櫟井氏), 시본씨(柿本氏), 경부씨(軽部氏), 약앵부씨(若桜部氏), 안전씨(岸田氏), 고향씨(高向氏), 육인씨(宍人氏), 래목씨(来目氏), 견상씨(犬上氏), 상모야씨(上毛野氏), 각씨(角氏), 성천씨(星川氏), 다씨(多氏), 흉방씨(胸方氏), 차지씨(車持氏), 능씨(綾氏), 하도씨(下道氏), 이가씨(伊賀氏), 아폐씨(阿閉氏), 림씨(林氏), 파미씨(波弥氏), 하모야씨(下毛野氏), 좌미씨(佐味氏), 도수씨(道守氏), 대야씨(大野氏), 판본씨(坂本氏), 지전씨(池田氏), 옥수씨(玉手氏), 립씨(笠氏) |
아손은 주로 임신의 난에서 공적이 있던 신(臣)의 성을 가진 씨족(오래된 시대에 황실에서 분가한 경우가 많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졌다. 그 다음 위치에 있는 주로 무라지(連)의 성을 가진 씨족에게는 스쿠네의 성을 하사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조정에 공적이 있는 씨족에게 아손의 성을 하사하여 나라 시대에는 대부분의 씨가 아손의 성을 가지게 되었다.[1]
2. 3. 변화 과정
덴무 천황 시대인 684년에 8개의 가바네 시스템의 일부로 아손이 선포되었는데, 이는 두 번째로 높은 계급이었다. 처음에는 조상의 혈통이 황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하는 최고위 귀족 가문에게 주어졌다.[2]게이타이 천황의 후손과 같이 황실과 가장 가까운 가문은 원래 8개의 가바네 시스템에서 첫 번째 계급인 마히토로 승진할 예정이었으나, 귀족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지 못했다. 802년, 간무 천황의 아들이었던 야스요 친왕은 요시미네노 아손 야스요로 명명되었는데, 이는 그가 황족 신분을 포기하고 화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헤이안 시대 이후, 아손은 8개의 가바네 중 최고가 되었고, 황족과 그 후손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3]
결국, 귀족 가문의 모든 가문이 아손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고, 다른 칭호들은 쇠퇴했으며, 아손은 단순히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칭호가 되었다.[1]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귀족이나 무사는 후지와라 아손, 귤 아손, 미나모토 아손, 타이라 아손 등의 자손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또한 무가의 대두로 하급 귀족이 몰락하면서, 아손은 서열을 매기기 위한 성으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공식 문서에서 사용하는 형식적인 것이 되었다.
헤이안 시대 이후, 공경(3위 이상 및 참의)은 씨(氏) 아래에 아손, 휘(諱) 아래에 공(公)(대신) 혹은 경(卿)이라는 존칭을 붙여 칭했다. 4위 이하인 자는 씨, 휘 아래에 성을 붙여 호칭했다. 씨가 아닌 휘 아래에 아손을 붙인 자를 특히 '''이름 아손'''이라고 한다.
- 예: 아시카가 내대신 정2위 미나모토 아손 요시마사 공(아시카가 요시마사)
- 예: 호소카와 우쿄노다이후 종4위하 미나모토 아손 카츠모토(호소카와 카츠모토)
3. 주요 아손 성씨
- 스가와라노 아손(菅原朝臣)은 노미노 스쿠네를 시조로 하며,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이후 문장도(文章道)를 이끌었다. 도소케에 여러 가문이 남아 있다.
- 오에노 아손(大江朝臣)은 하제노 모로카미를 시조로 하며, 오에노 히로모토 등 학자를 많이 배출하였다. 무가로는 모리 씨 등이 있다.
- 나카하라노 아손(中原朝臣)은 도오치노 아리조와 도오치노 이타다를 시조로 하며, 명법도(明法道)와 명경도(明経道)를 다루었다. 적류는 국무(局務)와 시정(市正) 등을 세습하며 조정 실무와 교토 행정에 관여했다.
- 도요토미노 아손(豊臣朝臣)은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에 간파쿠(関白)가 된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하사되었으며, 히데요시에 의해 많은 다이묘에게 하사되기도 했다.[5]
아손(朝臣)을 칭했던 주목할 만한 인물은 다음과 같다.
- 가키노모토노 아손 히토마로, 시인 (662년경 ~ 710년경)
- 이소노카미노 아손 마로, 정치가, 다카마츠즈카 고분에 묻혔을 가능성 있음 (640년 ~ 717년)
- 가사노 아손 마로, 사미 만세이로 더 잘 알려진 시인 (720년경 활동)
- 아리와라노 나리히라 아손, 시인 (825년 ~ 880년)
- 미야모토노 킨타다 아손, 시인 (889년 ~ 948년)
- 후지와라노 토시유키 아손, 시인 (900년경 활동)
- 오나카토미노 요시노부 아손, 시인 (921년 ~ 991년)
- 미나모토노 무네유키 아손, 시인 ( ~ 983년)
- 후지와라노 아손 사다이에, 시인 및 학자 (1162년 ~ 1241년)
- 다이간닌 덴 다이라노 아손 이가노 카미 라이도 혼 다이코지, 덴신쇼덴 가토리 신토류 창시자 (1387년 ~ 1488년)
- 오오가 아손 - 568년(긴메이 천황 29년, 고분 시대)에 우사 신궁의 전신인 타카이노야시로를 건립한 오오가노 히요시의 후손.
3. 1. 4대 성씨
- 미나모토노 아손(源朝臣): 황족에서 분리된 씨족(황별)이다. 구게(조정의 귀족)에서는 겐지 쵸자의 지위를 오랫동안 누렸던 고가 가 등의 무라카미 겐지가 대표적이다. 무가(무사 가문)에서는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이후 세이와 겐지가 세력을 넓혔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이후 무가에게 특별한 씨성이 되었다. 아시카가 씨는 그 대표적인 예시이며, 도쿠가와 씨도 세이와 겐지를 칭했다.
- 다이라노 아손(平朝臣): 황별 씨족으로, 간무 헤이시가 가장 유명하다. 구게로는 도소 헤이시로서 여러 유파가 남았다. 무가로는 헤이케가 유명하며, 오다 씨도 다이라노 아손을 칭했다.
- 후지와라노 아손(藤朝臣): 나카토미노 가마타리의 자손이다. 오랫동안 일본 조정의 중요한 직책들을 독점했으며, 셋케(섭정과 관백을 배출하는 가문)를 필두로 하는 도소케(조정에 출사할 수 있는 가문)의 대부분을 점하였다. 무가로는 이토 씨, 오야마 씨, 우에스기 씨, 다테 씨 등이 알려져 있다.
- 다치바나노 아손(橘朝臣): 황별 씨족으로, 아가타노 이누카이노 미치요, 다치바나노 모로에, 다치바나노 사이 세 모자를 시조로 한다. 앞의 세 씨족과 함께 4대 대성(四大姓)으로 꼽힌다.
3. 2. 기타 주요 성씨
- 미나모토노 아손(源朝臣)은 황족에서 갈라져 나온 씨족으로, 구게(公家, 조정의 귀족) 가문 중에서는 겐지 쵸자(源氏長者)의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고가 가(久我家) 등의 무라카미 겐지(村上源氏)가 있다. 무가(武家, 무사 가문) 중에서는 미나모토노 요시이에(源義家) 이후 세이와 겐지(清和源氏)가 세력을 넓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 이후 무가에게 특별한 성씨가 되었으며, 아시카가 씨(足利氏)가 대표적이다. 도쿠가와 씨(徳川氏)도 세이와 겐지를 칭했다.
- 다이라노 아손(平朝臣)은 황족에서 갈라져 나온 씨족으로, 간무 헤이시(桓武平氏)가 가장 유명하다. 구게 가문 중에서는 도소 헤이시(堂上平氏)로서 여러 유파가 남았고, 무가 가문 중에서는 헤이케(平家)가 유명하며, 오다 씨(織田氏)도 다이라노 아손을 칭했다.
- 후지와라노 아손(藤原朝臣)은 나카토미노 가마타리(中臣鎌足)의 자손으로, 오랫동안 일본 조정의 중요한 직책을 독점했다. 셋케(摂家, 섭정과 관백을 배출하는 가문)를 필두로 하는 도소케(堂上家, 조정에 출사할 수 있는 가문)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무가 가문 중에서는 이토 씨(伊東氏), 오야마 씨(小山氏), 우에스기 씨(上杉氏), 다테 씨(伊達氏) 등이 알려져 있다.
- 다치바나노 아손(橘朝臣)은 황족에서 갈라져 나온 씨족으로, 아가타노 이누카이노 미치요(県犬養三千代), 다치바나노 모로에(橘諸兄), 다치바나노 사이(橘佐為) 세 모자를 시조로 하며, 앞의 세 씨족과 함께 4대 대성(四大姓)으로 꼽힌다.
- 스가와라노 아손(菅原朝臣)은 전설적인 인물 노미노 스쿠네(野見宿禰)를 시조로 하며,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이후 문장도(文章道, 문장을 짓는 학문)를 장악했고, 도소케(堂上家) 가문이 여러 개 남아 있다.
- 오에노 아손(大江朝臣)은 나라 시대 말기에서 헤이안 시대 초기에 걸쳐 생존했던 인물 하제노 모로카미(土師諸上)를 시조로 한다. 오에노 히로모토(大江広元) 등 학자를 많이 배출했으며, 무가 가문 중에서는 모리 씨(毛利氏) 등을 배출했다.
- 나카하라노 아손(中原朝臣)은 헤이안 시대 중기 인물 도오치노 아리카타(十市有象)와 도오치노 고레타다(十市以忠)를 시조로 하며, 명법도(明法道, 법률학)와 명경도(明経道, 유교 경전학)를 다루는 가계이다. 적류(嫡流, 정통 계승자)는 국무(局務, 조정의 실무 담당), 시정(市正, 시장 관리) 등을 세습하며 조정의 실무와 교토(京都)의 행정에 깊이 관여했다.
- 도요토미노 아손(豊臣朝臣)은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에 간파쿠(関白, 천황을 보좌하는 최고위 관직)가 된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에게 하사되었으며, 히데요시에 의해 많은 다이묘(大名, 지방 영주)들에게 하사되기도 했다.
4. 아손과 관련된 인물
- 덴지 천황이 668년 나카토미노 카마타리에게 수여한 후지와라 씨의 시조인 후지와라노 아손
- 사가 천황(786–842)이 자신의 상속자가 아닌 아들에게 처음 수여한 미나모토 씨의 시조인 미나모토노 아손
- 간무 천황 (737–806)이 그의 손자에게 수여한 다이라노 아손 ( 다이라 씨 참조)
- 가키노모토노 아손 히토마로, 시인 (c. 662–710)
- 이소노카미노 아손 마로, 정치가, 다카마츠즈카 고분에 묻혔을 가능성 있음 (640–717)
- 가사노 아손 마로, 사미 만세이로 더 잘 알려진 시인 (fl. 720)
- 아리와라노 나리히라 아손, 시인 (825–880)
- 미야모토노 킨타다 아손, 시인 (889–948)
- 후지와라노 토시유키 아손, 시인 (fl. 900)
- 오나카토미노 요시노부 아손, 시인 (921–991)
- 미나모토노 무네유키 아손, 시인 (d. 983)
- 후지와라노 아손 사다이에, 시인 및 학자 (1162–1241)
- 다이간닌 덴 다이라노 아손 이가노 카미 라이도 혼 다이코지, 덴신쇼덴 가토리 신토류의 창시자 (1387–1488)
참조
[1]
서적
Britannica international encyclopaedia
TBS-BRITANNICA
[2]
서적
Britannica international encyclopaedia
TBS-BRITANNICA.
[3]
서적
Daijisen
Shōgakkan
[4]
서적
日本書紀
[5]
문서
1848-01-22
[6]
서적
일본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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