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노코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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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야노코지는 미나모토노 마사자네의 후손인 아야노코지 노부아리(1269년 ~ 1324년)를 시조로 하는 일본의 씨족이다. 가문의 최고 관직은 곤다이나곤이었으며, 가가쿠, 특히 요곡, 와곤, 고토, 피리 등에 대한 지식을 전수하며 가가쿠의 사범 가문으로 조정에 봉사했다. 센고쿠 시대에 일시적으로 단절되었다가 게이초 18년(1613년)에 재흥되었고,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화족에 편입되어 자작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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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노코지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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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정보 | |
가문명 | 아야노코지가 |
가몬 | 사사린도 (笹竜胆) |
본성 | 우다 겐지 |
시조 | 아야노코지 노부아리 |
종별 | 공가 (우림가) |
신분 | 화족 (자작) |
출신지 | 야마시로국 |
근거지 | 야마시로국 |
근거지 | 도쿄시시부야구하타가야 |
2. 역사
좌대신 미나모토노 마사자네의 후손인 아야노코지 노부아리 (정2위 곤츄나곤. 1269년 - 1324년)를 선조로 한다. 형은 니와타가의 선조인 니와타 츠네스케 (정2위 곤츄나곤, 친아버지는 후지와라노 킨나오, 1241년 - 몰년 미상)이다.
당초에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은 곤츄나곤이었다. 센고쿠 시대의 아야노코지 토시카즈 (정2위 곤츄나곤. 1451년 - 1518년) 이후, 일시 단절되었다. 게이초 18년 (1613년)에 이츠츠지가에서 아야노코지 타카아리 (정3위 참의, 1595년 - 1644년)이 들어와 가명이 재흥되었다. 그리고 아야노코지 토시무네 (1690년 - 1770년) 이후에는 곤다이나곤을 최고위관직으로 하였다.
가가쿠 가운데 요곡이나 와곤, 고토, 피리에 대한 지식은 니와타가가 아닌 아야노코지가에 전해졌기 때문에, 이후에는 가가쿠의 사범가로 조정을 섬기게 되었다.
에도 시대의 가록은 200석이었다. 메이지 시대 후에는 아리카즈가 자작의 작위를 받았다.
2. 1. 가문의 기원과 초기 역사
미나모토노 마사자네의 후손인 아야노코지 노부아리(1269년 - 1324년)를 시조로 한다. 형은 니와타가의 선조인 니와타 츠네스케(1241년 - 몰년 미상)이다.당초에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은 곤츄나곤이었다. 센고쿠 시대의 아야노코지 토시카즈(1451년 - 1518년) 이후 가문이 일시 단절되었다가, 게이초 18년(1613년) 이츠츠지가에서 아야노코지 타카아리(1595년 - 1644년)가 들어와 가문을 재흥시켰다. 아야노코지 토시무네(1690년 - 1770년) 이후에는 곤다이나곤을 최고위관직으로 하였다.
가가쿠 가운데 요곡이나 와곤, 고토, 피리에 대한 지식은 니와타가가 아닌 아야노코지가에 전해졌기 때문에, 이후에는 가가쿠의 사범가로 조정을 섬기게 되었다.
에도 시대의 가록은 200석이었다. 메이지 시대 후에는 아리카즈가 자작의 작위를 받았다.
2. 2. 센고쿠 시대와 가문의 단절
2. 3. 에도 시대와 가문의 재흥
2. 4. 메이지 시대 이후
메이지 유신 이후 아야노코지 가문은 화족에 편입되었다. 1884년 7월 7일 화족령 시행으로 화족이 오작제가 되면서, 7월 8일에 아리요시가 자작 작위를 받았다. 아리요시는 궁내성에 근무하며 시종, 아악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의 양자인 아야노코지 마모루는 15은행 근무를 거쳐 귀족원 자작 의원에 당선되어 연구회에 소속되었다. 아야노코지 자작가 저택은 도쿄시 시부야구 하타가야에 있었다.3. 가가쿠
4. 계보
(니와타가)
(오오하라 시게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