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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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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용백은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를 한 인물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관료로 근무했다. 1941년에는 친일 논설을 기고하여 내선일체를 주장했으며, 친일 논설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광복 후에는 경남고등학교 교장,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전라남도 교육감을 역임하며 교육계에 종사했고, 제4대 총선에서 자유당 후보로 당선되었으나 닭죽 사건으로 당선이 무효 처리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광주광역시 어린이대공원에 흉상이 세워져 친일 행적 논란이 있다.

2. 일제강점기 활동

안용백은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윤리학과를 졸업했다. 경상남도 하동군 군수와 조선총독부 학무국 관리 등으로 약 15년간 근무했다. 1941년 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창씨명으로 〈유도정신 진흥의 의의〉라는 글을 투고해 일본 정신을 체득함으로써 내선일체를 이루자는 주장을 폈다.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녹기》에 글을 실었을 정도로 친일 논설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1]

2. 1. 관료 생활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이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윤리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남도 하동군 군수와 조선총독부 학무국 관리 등으로 약 15년간 근무했다. 1941년 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창씨명으로 〈유도정신 진흥의 의의〉라는 글을 투고해 일본 정신을 체득함으로써 내선일체를 이루자는 주장을 편 바 있다. 안용백은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녹기》에 글을 실었을 정도로 친일 논설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1]

광복 후 경남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고[2],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제2대 전라남도 교육감(1964년 ~ 1968년)을 역임했다. 대한교육연합회 상임이사 등으로 교육 분야에서 활동했다. 경남고 교장 시절에는 후에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 된 김영삼의 스승이었고, 김영삼이 대학에서 철학 전공을 선택하게 된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 교육을 위해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실례했습니다'라는 말을 생활화하자는 '미고안실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총선에 자유당 후보로 고향 보성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개표 과정에서 야당측 참관인들에게 수면제를 탄 닭죽을 먹인 뒤 이들이 잠든 사이에 표를 조작한 이른바 '닭죽 사건'이 발각되어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2. 2. 친일 행적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윤리학과를 졸업했다. 경상남도 하동군 군수와 조선총독부 학무국 관리 등을 약 15년간 역임했다. 1941년 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창씨명으로 〈유도정신 진흥의 의의〉라는 글을 투고하여 일본 정신을 체득함으로써 내선일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안용백은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녹기》에 글을 실을 정도로 친일 논설 분야에서 인정받았다.[1]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수록되었다. 광주광역시 어린이대공원에 안용백의 흉상이 세워져 있어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3. 광복 후 활동

경남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고[2],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제2대 전라남도 교육감(1964년 ~ 1968년)을 역임했다. 대한교육연합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며 교육 분야에서 활동했다.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자유당 후보로 고향 보성군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이른바 '닭죽 사건'이 발각되어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1]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수록되었다. 광주광역시 어린이대공원에 안용백의 흉상이 세워져 있어 친일 행적 논란이 있었다.

3. 1. 교육계 활동

경남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고[2],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제2대 전라남도 교육감(1964년 ~ 1968년)을 역임했다. 대한교육연합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며 교육 분야에서 활동했다. 경남고 교장 시절 김영삼의 스승이었고, 김영삼이 대학에서 철학 전공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 교육을 위해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실례했습니다'라는 말을 생활화하자는 '미고안실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3. 2. 미고안실 운동

안용백은 경남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낼 당시, 훗날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 되는 김영삼의 스승이었다. 김영삼이 대학교에서 철학 전공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안용백은 어린이 교육을 위해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실례했습니다'라는 말을 생활화하자는 '미고안실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2]

3. 3. 정치 활동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자유당 후보로 고향 보성군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개표 과정에서 야당측 참관인들에게 수면제를 탄 닭죽을 먹인 뒤 이들이 잠든 사이에 표를 조작한 이른바 '닭죽 사건'이 발각되어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1]

선거명직책명대수정당득표율득표수결과비고
제4대 총선국회의원4대자유당57.00%34,990표당선초선


4. 친일 논란 및 평가

안용백은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윤리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학무국 관리 등으로 약 15년간 근무했다. 1941년 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창씨명으로 〈유도정신 진흥의 의의〉라는 글을 투고해 일본 정신을 체득함으로써 내선일체를 이루자는 주장을 폈다.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녹기》에 글을 실었을 정도로 친일 논설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1]

광복 후 경남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고[2],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제2대 전라남도 교육감(1964년 ~ 1968년)을 역임했다. 대한교육연합회 상임이사 등으로 교육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김영삼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고안실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총선에 자유당 후보로 고향 보성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이른바 '닭죽 사건'이 발각되어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4. 1. 친일인명사전 등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수록을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과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안용백이 수록되었다.[1] 광주광역시 어린이대공원에 안용백의 흉상이 세워져 있어 친일 행적 논란이 있었다.

4. 2. 흉상 논란

민족문제연구소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에 안용백을 포함시켰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안용백을 수록했다. 광주광역시 어린이대공원에 안용백의 흉상이 세워져 있어 친일 행적 논란이 있었다.

5.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직책명대수정당득표수득표율(%)순위당락비고
제4대 총선국회의원4대자유당34,990표57.001위당선초선


참조

[1] 서적 친일파 99인 2 돌베개 1993-03-01
[2] 웹사이트 https://school.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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