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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 에이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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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약해 에이즈 사건은 1980년대 일본에서 HIV에 오염된 혈액 제제 투여로 인해 발생한 사건으로, 혈우병 환자들을 중심으로 감염이 확산되었다. 198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에서 에이즈가 처음 보고된 이후, 일본에서도 1985년 첫 사례가 보고되었으며, 후생성은 열처리되지 않은 혈액 제제의 안전성 문제를 인지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피해자들이 후생성과 제약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간 나오토 후생대신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화해로 마무리되었다. 관련자들의 기소와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731부대와의 연관성도 드러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의약품 안전 관리, 정부와 제약회사의 책임, 정보 공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본 외 다른 국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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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 에이즈 사건
사건 개요
사건명약해 에이즈 사건
발생 국가일본
관련 질병에이즈
원인 물질비가열 혈액 제제 (제조 과정에서 HIV 바이러스 오염)
주요 관련 기업미도리 십자 (현 미쓰비시 다나베 파마)
베네딕스
체리아
피해자 수약 1,800명 (HIV 감염)
사망자 수약 600명 이상
사건 발생 시기1980년대
배경
당시 상황혈우병 환자 치료에 혈액 응고 인자 제제 널리 사용
비가열 혈액 제제의 HIV 감염 위험성 인지
일본 정부 및 제약 회사의 대응가열 혈액 제제로의 전환 늦어짐
안전성 미흡한 비가열 제제 계속 사용
주요 인물
아베 다케시전 미도리 십자 부사장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
가와다 류헤이피해자 중 한 명, 사회 운동가 및 정치인으로 활동
사건 경과
1980년대 초일본 내 HIV 감염 환자 발생 시작
1983년미국에서 비가열 혈액 제제의 위험성 경고
1985년일본 정부, 가열 혈액 제제 승인 (전환 지연)
1990년대 초피해자들이 제약 회사와 정부 상대로 소송 제기
1996년아베 다케시 구속
2000년대법정 공방 지속
정부와 제약 회사, 피해자들에게 배상 합의
결과 및 영향
법적 책임제약 회사와 정부의 책임 인정
관련자 형사 처벌
배상피해자들에게 막대한 배상금 지급
사회적 영향의약품 안전 관리 시스템 강화
환자 권익 보호 중요성 부각
사회적 인식 변화
참고 자료
관련 문서약해 에이즈 소송
관련 인물렌호 (약해 에이즈 소송 변호단 참여)
외부 링크

2. 배경

1980년대 초, 미국에서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AIDS, 에이즈)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하면서, 혈액 제제를 통한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감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983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에이즈 연구반을 조직하여 에이즈 환자 조사에 착수했다. 연구반장으로는 혈우병 치료 전문가인 제경대학 교수 아베 타케시(安部英)가 임명되었다. 아베는 처음에는 비가열 혈액 제제의 사용 금지를 주장했지만, 이후 비가열 제제 사용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1] 당시 일본은 혈액 제제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특히 미국의 비가열 혈액 제제가 HIV에 오염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 계속 유통되었다.[2]

3. 일본 내 HIV/AIDS 확산

일본에서 HIV 감염이 처음 확인된 것은 1979년으로, 혈액제제를 처방받은 혈우병 환자였다.[27] 1980년대 초, 혈우병 환자 외에도 동성애 경험자 등 HIV 감염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이성 간 성관계를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HIV 양성 여성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일본 사회에서 이 질병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고, 일본 정부는 혈액 제제 안전성 문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1985년 안전한 가열 혈액 제제가 승인되었지만, 미도리 십자(녹십자) 등 제약회사는 비가열 제제의 회수를 즉시 실시하지 않아 HIV 감염이 더욱 확산되었다.[27]

4. 소송 및 기소

1989년 5월과 10월, 오사카도쿄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혈우병 환자들은 후생성과 5개의 일본 제약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27] 1994년에는 1983년 후생성 에이즈 연구팀장을 맡았던 아베 다케시 박사를 상대로 살인미수 혐의로 두 건의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2005년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아베 다케시는 데이쿄 대학 부총장직을 사임했다.

1996년 1월, 간 나오토가 후생 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스캔들을 조사하기 위해 팀을 구성했고, 후생성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한 달 만에 스캔들과 관련된 9개의 문서 파일이 발견되었다.[28] 간 나오토는 즉시 후생성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원고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간 나오토 팀이 밝혀낸 보고서는 오염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 이후 일본 수입업자에 의해 비가열 혈액제제가 회수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입업자가 후생성에 보고서를 제출하려고 했을 때 그러한 보고서는 불필요하다고 들었다. 후생성은 "HIV에 대한 감염과 가열되지 않은 혈액제제의 사용 사이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증거 부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환자들 사이에서 불안을 조장할 수 있는 사실을 공개할 수 없었다"고 한다.

파일에 따르면, 후생성은 1983년에 비가열 혈액 및 혈액 제제의 수입을 금지하고 열처리된 제품의 긴급 수입을 허용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이 권고는 비가열 혈액 제품을 판매하는 일본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충격을 줄 것"이기 때문에 철회되었다.

마쓰시타 렌조 전 후생성 제약국장과 그의 동료 2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마쓰시타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은퇴 후 미도리 십자 회장이 된 마쓰시타는 1980년대 이후 일본 혈액 산업에서 임원으로 은퇴한 최소 9명의 전 후생성 관료 중 한 명이다. 그 여파로 1998년 미도리주지사는 요시도미제약과 합병했다.[29]

4. 1. 민사 소송

1989년 5월과 10월, 오사카도쿄에서 HIV 감염 혈우병 환자들이 후생성과 5개 제약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27] 이후 원고단은 조기 해결을 요구하며 지방 재판소에 화해 권고 상신서를 제출했다.[7]

1995년 10월, 도쿄 지방 재판소와 오사카 지방 재판소는 원고 1인당 4,500만 엔의 일시금 지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1차 화해안을 제시했지만, 후생성은 구제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가해 책임은 부인했다.

1996년 2월 9일, 간 나오토 후생 대신은 자신이 독자적으로 명명한 통칭 "군지 파일"이 1월 26일에 발견되었음을 발표하고, 2월 16일에 원고단에 사죄했다. 3월 7일, 도쿄 및 오사카 지방법원은 발병자에게 월 15만 엔을 지급하는 2차 화해안을 제시했고, 5개 제약회사는 3월 14일에, 일본 정부도 다음 날인 15일에 화해 수용을 발표했다. 원고 측도 3월 20일에 수용을 결정, 3월 29일에 양 지방법원에서 화해가 성립되었다.

이때 제조 및 판매로 제소된 제약 회사는 미도리 십자와 화학 및 혈청 요법 연구소이며, 수입 및 판매로 제소된 제약 회사는 박스터 재팬(일본 트래버놀), 일본 장기 제약, 커터 재팬을 합병 승계한 바이엘 약품이다.

4. 2. 형사 소송

1996년 8월부터 10월에 걸쳐 데이쿄 대학 의학부 부속 병원 제1내과 책임자였던 아베 히데[8], 미도리 십자의 대표 이사였던 마쓰시타 렌조, 스야마 다다카즈, 가와노 다케히코, 후생성 관료였던 마쓰무라 아키히토가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체포 및 기소되었다.[8] 아베의 혐의는 자신이 담당한 환자에게 HIV에 오염된 비가열 제제를 투여하여 사망하게 한 것이며, HIV에 오염된 비가열 제제를 유통시킨 것은 아니었다.

2000년 미도리 십자 관계자 3명에게 실형 판결이 내려졌고, 2001년 3월 28일 아베 히데에게 1심 무죄 판결, 9월 28일 마쓰무라 아키히토에게 금고 1년 집행 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2004년부터 치매공판이 중지되었던 아베는 상소 중 2005년 4월 25일에 사망했다.

아베에 대한 무죄 판결에 대해, 의료 형법 전문 게이오기주쿠 대학 교수 가토 히사오는 "약해 에이즈 재판 무죄 판결"이라는 제목으로 HIV뿐만 아니라 약해의 전체상을 파악한 후 무죄 판결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재판소가 모리나가 유독 분유 사건이나 탈리도마이드 사건 등 많은 희생을 낸 의료 과오 소송의 교훈을 배우지 않고, 해외의 약해 에이즈 사건 처리도 시야에 넣지 않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9][10]

2008년 3월 3일, 최고 재판소는 미도리 십자 루트에 대해 마쓰무라에게, 공무원의 부작위가 복무상의 책임이나 국가의 배상 책임을 초과하는 형사법상의 책임을 즉시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마쓰무라 자신이 가열 제Ⅷ인자 제제 및 가열 제Ⅸ인자 제제의 조기 승인을 도모하는 방침을 제시한 것을 근거로 "비가열 제제의 지속 사용으로 에이즈를 발병시켜 사망시킬 우려가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인정했다.

또한, 약무 행정상 필요하고 충분한 대응을 강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하여, 1986년 1월 일본에서 판매가 개시된 가열 제제의 충분한 공급량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가열 제제의 판매 중단과 회수 지시를 게을리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하여 상고를 기각했다.[6] 마쓰무라에 대해서는 데이쿄 대학 루트에 대해서는 고등 법원 단계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5. 731부대와의 연관성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도리 십자 창립자들의 731부대 복무 사실이 밝혀져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나이토 료이치는 731부대에서 세균 무기 개발과 연구, 심지어 인체실험에도 관여한 인물이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731부대가 주도한 세균전 및 인체 실험에 관한 중요 참고인으로서 GHQ의 심문을 받기도 했다.

미도리 십자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기타노 마사지이시이 시로의 뒤를 이은 731부대 제2대 부대장이었다. 그는 1959년에는 일본혈액은행 최고 이사이자 도쿄 공장 책임자를 지냈고, 같은 해 이시이 시로의 장례위원장까지 맡았으며, 제1기 남극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아베 다케시 역시 731부대에 복무한 사실이 드러났다.[30]

6. 관련자들의 입장 및 주장

1989년, HIV에 감염된 혈우병 환자들은 후생성과 5개의 일본 제약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27] 1983년 후생성 에이즈 연구팀장을 맡았던 아베 다케시 박사는 1994년 살인미수 혐의로 두 건의 소송을 당했고, 2005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아베 다케시는 데이쿄 대학 부총장직을 사임했다.

후생성은 "HIV 감염과 가열되지 않은 혈액제제의 사용 사이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비가열 혈액제제 사용을 지속하였다. 또한, 환자들의 불안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관련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1983년, 후생성은 비가열 혈액제제 수입 금지 및 열처리 제품 긴급 수입을 권고했으나, 일주일 후 비가열 혈액 제품 판매자들에게 "충격을 줄 것"이라는 이유로 철회했다.

아베 다케시는 처음에는 비가열 제제 사용 금지를 주장했으나, 이후 비가열 제제 사용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7. 일본 및 다른 국가들의 사례

1980년대 프랑스에서도 '감염 혈액 사건'이라 불리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프랑스에서는 혈우병 환자의 약 45%가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에 감염되어 일본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캐나다에서는 수형자로부터 모은 혈액으로 인한 감염 문제가 있었지만, 형사 사건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영국에서는 2024년 조사 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감염된 혈액 및 혈액 제제로 인해 3,0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정부와 NHS의 대응 지연 및 조직 방어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8. 검증 및 교훈

이 사건은 의약품 안전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 정부와 제약회사의 책임, 그리고 정보 공개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사 결정, 위기 관리 시스템 구축, 그리고 피해자 구제 및 보상 체계 마련의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 의약품 안전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 약해 에이즈 사건은 HIV에 오염된 비가열 혈액제제가 유통되어 수많은 혈우병 환자들이 HIV에 감염되고, 에이즈로 사망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이는 의약품의 제조, 유통, 판매 과정에서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결과를 보여준다. 특히, 미도리 십자와 같은 제약회사가 가열 제제 승인 후에도 비가열 제제의 판매를 지속하고, 즉각적인 회수를 실시하지 않은 점은 의약품 안전 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냈다.[27]
  • 정부와 제약회사의 책임: 후생성은 1983년에 비가열 혈액제제의 수입 금지 및 가열 제제의 긴급 수입을 권고했지만, 일주일 만에 이를 철회했다. 이는 비가열 혈액제제 판매자들에게 "충격을 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후생성은 HIV 감염과 비가열 혈액제제 사용 사이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환자들의 불안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관련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안일한 대응과 제약회사의 이윤 추구는 피해를 더욱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28]
  • 정보 공개의 투명성: 1984년 초, 일본 혈우병 환자들이 비가열 혈액제제 사용으로 HIV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 사실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환자들은 혈액제제를 통해 HIV에 감염될 위험을 축소하고 안전성을 보장한다는 "의도적인 선전"을 계속 받았다. 이는 정보 공개의 불투명성이 얼마나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사 결정: 아베 다케시 박사는 처음에 비가열 제제의 사용 금지를 주장했지만, 이후 비가열 제제의 사용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사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 언론의 역할: 언론은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하지만, 때로는 '범인 찾기'식 보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약해 에이즈 사건 보도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이 드러났으며, 언론은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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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Castration, the HIV Scandal and the Japanese Bureaucracy" http://www.nancho.ne[...]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1996-04-10
[3] 웹사이트 A Study of Awareness and Attitudes toward AIDS Among Adolescents http://ir.kagoshima-[...] Kagoshima University 2011-07-18
[4] 서적 日本の薬害事件 -薬事規制と社会的要因からの考察 薬事日報社 2013
[5] 서적 日本の薬害事件 -薬事規制と社会的要因からの考察 薬事日報社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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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서적 菅直人の一歩 KKベストセラーズ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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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뉴스 [보건]혈액제제 에이즈 감염,9억円손배소송 https://n.news.naver[...] 1991-11-17
[28] 뉴스 <박스>日 藥害에이즈사건 파문 확산 https://n.news.naver[...] 1996-03-01
[29] 뉴스 녹십자, 생체실험 집단 '731 부대' 연루 의혹…진실은? http://www.sisaon.co[...] 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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