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 (수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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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춘은 소설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주무, 진달과 의형제를 맺고 소화산에서 산적 활동을 하였으며, 사진을 두령으로 모셨다. 이후 노지심과 함께 사진을 구출하고 양산박에 합류하여 기병군 소표장 겸 척후로 활약했으나, 방랍의 난 토벌 중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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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전 - 양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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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 (수호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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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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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백화사 (白花蛇) |
출신지 | 포주 계량 (蒲州 解梁, 현재의 산시 성윈청 시옌후 구지에저우 진) |
등장 시기 | 제2장 |
수호전 | |
별명 | 백화사 (白花蛇) |
지위 | 73위, 지은성 (地隱星) |
소속 | 양산박 |
역할 | 표범자두령 (虎豹子頭領) |
무기 | 도 |
인물 정보 | |
간체자 | 양춘 (杨春) |
정체자 | 양춘 (楊春) |
병음 | Yáng Chūn |
웨이드-자일스 | Yang Ch'un |
기타 | |
근거지 | 소화산 |
2. 생애
주무(朱武), 진달과 의형제를 맺고 소화산(少華山)에서 산적 노릇을 했다. 진달이 사가촌(史家村)을 습격하다 사진에게 붙잡히자, 주무와 함께 진달을 구출하기 위해 아무런 무기 없이 사진에게 가서 석방을 요청했다. 이들의 의협심에 감복한 사진은 진달을 풀어주고 이들과 친분을 맺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가 관원에게 발각되어 싸움이 벌어졌고, 이후 주무, 진달과 함께 사진을 두령으로 삼으려 했으나 사진은 방랑길을 택했다.
나중에 방랑에서 돌아온 사진을 두령으로 맞이한 양춘은 사진에게 양산박(梁山泊) 합류를 권유하러 온 노지심(魯智深)을 만났다. 하지만 사진이 화주(華州) 태수(太守)에게 붙잡혀 있었기 때문에, 노지심 등과 함께 사진을 구출하고, 사진, 주무, 진달과 함께 양산박에 합류했다.
108성 집결 후 양춘은 기병군(騎兵軍) 소표장(小彪將) 겸 척후(斥候)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으며, 방랍(方臘)의 난 토벌 도중 전사했다.
2. 1. 소화산 산적 시절
양춘은 주무, 진달과 의형제를 맺고 소화산(少華山)에서 산적 노릇을 했다. 진달이 사가촌(史家村)을 습격하다 사진에게 붙잡히자, 주무와 함께 진달을 구출하기 위해 사진에게 자수한다. 이들의 의협심에 감복한 사진은 진달을 풀어주고, 이후 이들과 친분을 맺는다.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관에 발각되어 관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고, 주무, 진달과 함께 사진을 두령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사진은 이를 거부하고 방랑길에 나선다. 이후 방랑에서 돌아온 사진을 두령으로 맞이한다.
어느 날, 사진에게 양산박(梁山泊) 합류를 권유하러 온 노지심(魯智深)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사진이 화주(華州) 태수(太守)에게 붙잡혀 있었기 때문에, 노지심 등 양산박 호걸들과 함께 사진을 구출하고, 사진, 주무, 진달과 함께 양산박에 합류한다.
양춘은 가늘고 긴 팔을 가진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백화사(白花蛇)'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긴 검을 사용하는 훌륭한 싸움꾼이었다.
2. 2. 양산박 합류
양춘은 주무(朱武), 진달(陳達)과 의형제를 맺고 소화산(少華山)에서 산적 노릇을 했다. 진달이 사가촌(史家村)을 습격하다 사진(史進)에게 붙잡히자, 주무와 함께 진달을 구출하기 위해 아무런 무기 없이 사진에게 가서 석방을 요청했다. 이들의 의협심에 감복한 사진은 진달을 풀어주고 이들과 친분을 맺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가 관원에게 발각되어 싸움이 벌어졌고, 이후 주무, 진달과 함께 사진을 두령으로 삼으려 했으나 사진은 방랑길을 택했다.나중에 방랑에서 돌아온 사진을 두령으로 맞이한 양춘은 사진에게 양산박(梁山泊) 합류를 권유하러 온 노지심(魯智深)을 만났다. 하지만 사진이 화주(華州) 태수(太守)에게 붙잡혀 있었기 때문에, 노지심 등과 함께 사진을 구출하고, 사진, 주무, 진달과 함께 양산박에 합류했다.
108성 집결 후 양춘은 기병군(騎兵軍) 소표장(小彪將) 겸 척후(斥候)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으며, 방랍(方臘)의 난 토벌 도중 전사했다.
2. 3. 방랍의 난과 죽음
양춘은 양산박 기병군(騎兵軍) 소표장(小彪將) 겸 척후(斥候) 중 한 명으로 임명되어, 방랍(方臘)의 난 토벌에 참전했다. 방랍을 토벌하기 위한 여령관(昱嶺關, 현재 안휘성 서현 주포촌 부근) 공략전에서 양춘은 사진, 진달 등 5명의 두령들과 함께 정찰을 나갔다가, 적장 방만춘과 맞선다. 방만춘은 석진을 화살로 죽이고, 그의 궁병들은 양춘과 다른 이들에게 화살을 쏘아 모두 죽였다.3. 평가
4. 대중문화 속 양춘
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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