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재무부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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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연방재무부는 독일의 "고전적 부처" 중 하나로, 1871년 독일 통일 이후부터 존재해 왔다. 1879년 제국 재무부로 설립되었으며,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독일 재무부로 개편되었다. 나치 독일 시대에는 전쟁 경제와 유대인 재산 아리아화에 관여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독의 연방 재무부로 재설립되었다. 현재는 베를린에 위치하며, 세금 및 수입 정책, 유럽 연합 정책 등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한다. 연방 중앙 세무청, 연방 관세청 등을 포함한 여러 하위 기관을 관리하며, 재무장관은 정부 지출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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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내무부는 1879년 독일 제국 시대부터 시작된 독일 행정의 핵심 부처로, 국가 사회주의 시기와 서독 시대를 거쳐 독일 재통일 이후 독일 전체의 행정을 담당하며 국내 치안 유지, 헌법 질서 수호, 재해 및 테러로부터의 시민 보호를 주요 임무로 하고 낭시 페저가 장관으로 있다.
연방재무부 (독일) - [정부기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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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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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 연방 재무부 |
독일어 명칭 | Bundesministerium der Finanzen (BMF) |
설립일 | 1879년 7월 14일 (Reichsschatzamt) |
관할 | 독일 연방 공화국 |
본부 | Detlev-Rohwedder-Haus, Wilhelmstraße 97, 10117 베를린 |
직원 수 | 1,965명 (부처) |
예산 | 87억 4,200만 유로(2021년) |
상위 기관 | 독일 내각 |
웹사이트 | 연방 재무부 |
지도부 | |
연방 재무 장관 | 크리스티안 린드너 |
정무 차관 | 카티아 헤셀 |
정무 차관 | 플로리안 톤카 |
국무 장관 | 스테펜 새비쉬 |
국무 장관 | 베르너 가처 |
역사 | |
이전 명칭 | Reichsschatzamt (제국 재무청) |
위치 정보 |
2. 역사
독일 연방재무부는 내무부, 외무부, 법무부, 국방부와 함께 "고전적 부처" 중 하나로, 1871년 통일 이후 오토 폰 비스마르크 아래 첫 번째 독일 정부의 일부였다.[2]
1879년 7월 14일 Reichsschatzamtde으로 설립되었고,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발족하면서 Reichsfinanzministeriumde과 Reichsschatzministeriumde으로 개편되었다가 1923년에 통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9년에 재설립되어 서독의 Bundesministerium der Finanzende로 개칭되었다.[2] 1990년 독일 재통일에 따라 동독의 Ministerium der Finanzen der DDR|label=재무성de과 통합되었다. 1999년부터 베를린의 데틀레프-로베더-하우스(구 항공부 청사)가 이 부처의 본부이다.
1990년대 통일 기간 동안, 테오 바이겔이 이끄는 재무부는 6명의 오스트리아 유대인 시민/나치 희생자에게 속한 동독의 8개 건물을 반환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 1. 초기 역사 (1879년 ~ 1918년)
독일 제국의 재정 정책은 1833년 관세 동맹 조약에 따라 모든 직접세에 대한 책임을 지는 다양한 국가의 영역이었다. 연방 정부는 단순히 국가로부터 간접적인 기여를 받았다. 연방 차원의 재정 정책 문제는 처음에 독일 총리실에서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독점적으로 책임졌다. 그러나 1877년 특별 재무 부서가 설립되었고, 1879년 7월 14일부터 총리실에서 분리되어 자체 연방 기관인 제국 재무부(''Reichsschatzamt'')가 되었다.[2] 베를린의 빌헬름플라츠 맞은편에 위치했으며, 처음에는 차관이 이끌었고 1880년부터는 총리에게만 답변하는 국무장관이 이끌었다.2. 2.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1919년 ~ 1933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 설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은 막대한 제1차 세계 대전 배상금과 재정 비상 사태에 직면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1919년 이전의 ''Reichsschatzamt''는 연방 장관이 이끄는 최고 재정 당국인 연방 부처, ''Reichsministerium der Finanzen''로 재구성되었다. 그 외에 연방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제국 재무부(''Reichsschatzministerium'')가 설립되었으며, 두 기관은 1923년에 통합되었다.[2]프란츠 폰 파펜 총리의 독일 내각에서 차관 루츠 그라프 슈베린 폰 크로지크가 1932년에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는 1945년까지 나치 독일 시대 내내 이 직책을 유지했다.
대수 | 성명 | 재임기간 | 정당 | 총리 | |||
---|---|---|---|---|---|---|---|
- | 루돌프 힐퍼딩 (1877~1941) | 1928년 6월 28일 | 1929년 12월 21일 | 사민당 | rowspan="2" 헤르만 뮐러 (사민당) | ||
rowspan="2" - | rowspan="2" 파울 몰덴하워 (1876~1947) | rowspan="2" 1929년 12월 21일 | rowspan="2" 1930년 6월 20일 | rowspan="2" 인민당 | |||
rowspan="3" 하인리히 브뤼닝 (중앙당) | |||||||
- | 하인리히 브뤼닝 (1885~1970) | 1930년 6월 20일 | 1930년 6월 26일 | 중앙당 | |||
- | 헤르만 디트리히 (1879~1954) | 1930년 6월 26일 | 1932년 6월 1일 | 민주당 |
2. 3. 나치 독일 시대 (1933년 ~ 1945년)

프란츠 폰 파펜 총리의 독일 내각에서 차관 루츠 그라프 슈베린 폰 크로지크가 1932년에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는 1945년까지 나치 독일 시대 내내 이 직책을 유지했다. 이 부처는 독일 재무장, 유대인 재산 아리아화("제국 탈세"), 독일 전쟁 경제 및 제2차 세계 대전 중 점령 국가 약탈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 예산 균형은 이미 전쟁 직전에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숨겨진 메포 청구서와 오페 청구서 자금 조달에 의해 더욱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저축 은행 및 신용 기관은 전쟁 채권에 서명해야 했으며, 가격 안정성은 경제 개입에 의해 시행되었고, 독일 국민은 잉여 자금을 예치하도록 요구받았다.[2]
2. 4. 전후 재건과 연방재무부 (1949년 ~ 현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 부처는 1949년에 재설립되어 서독의 ''Bundesministerium der Finanzen''로 개칭되었다.[2] 1999년부터 베를린의 데틀레프-로베더-하우스(구 항공부 청사)가 이 부처의 본부이다.
독일 정치에서 재무부는 내무부, 외무부, 법무부, 국방부와 함께 "고전적 부처" (정관사 ''der''로 표시됨)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이는 1871년 통일 이후 오토 폰 비스마르크 아래 첫 번째 독일 정부의 일부이기도 했다.
독일 제국의 재정 정책은 1833년 ''관세 동맹'' 조약에 따라 모든 직접세에 대한 책임을 지는 다양한 국가의 영역이었다. 연방 정부는 단순히 국가로부터 간접적인 기여를 받았다. 연방 차원의 재정 정책 문제는 처음에 독일 총리실이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독점적인 책임이었다. 그러나 1877년 특별 재무 부서가 설립되었고, 1879년 7월 14일부터 총리실에서 분리되어 자체 연방 기관인 제국 재무부(''Reichsschatzamt'')가 되었다. 베를린의 빌헬름플라츠 맞은편에 위치했으며, 처음에는 차관, 1880년부터는 총리에게만 답변하는 국무장관이 이끌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 설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은 막대한 제1차 세계 대전 배상금과 재정 비상 사태에 직면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1919년 이전의 ''Reichsschatzamt''는 연방 장관이 이끄는 최고 재정 당국인 연방 부처, ''Reichsministerium der Finanzen''로 재구성되었다. 그 외에 연방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제국 재무부(''Reichsschatzministerium'')가 설립되었으며, 두 기관은 1923년에 통합되었다.
이미 프란츠 폰 파펜 총리의 독일 내각에서 차관 루츠 그라프 슈베린 폰 크로지크가 1932년에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는 1945년까지 나치 독일 시대 내내 이 직책을 유지했다. 이 부처는 독일 재무장관, 유대인 재산 아리아화("제국 탈세"), 독일 전쟁 경제 및 제2차 세계 대전 중 점령 국가 약탈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 예산 균형은 이미 전쟁 직전에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숨겨진 메포 청구서와 오페 청구서 자금 조달에 의해 더욱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저축 은행 및 신용 기관은 전쟁 채권에 서명해야 했으며, 가격 안정성은 경제 개입에 의해 시행되었고, 독일 국민은 잉여 자금을 예치하도록 요구받았다.
1990년대 통일 기간 동안, 테오 바이겔이 이끄는 재무부는 6명의 오스트리아 유대인 시민/나치 희생자에게 속한 동독의 8개 건물을 반환하는 것을 거부했다.
연방재무부 장관의 역대 목록은 다음과 같다.
대수 | 이름 (출생~사망) | 정당 | 재임기간 | 날수 | 총리 |
---|---|---|---|---|---|
1 | 프리츠 셰퍼 (1888~1967) | 기사련 | 1949년 9월 20일 ~ 1957년 10월 29일 | 아데나워 (1949~1963) | |
2 | 프란츠 에첼 (1902~1970) | 기민련 | 1957년 10월 29일 ~ 1961년 11월 14일 | ||
3 | 하인트 슈타크 (1911~2001) | 자민당 | 1961년 11월 14일 ~ 1962년 11월 19일 | ||
4 | 롤프 달그륀 (1908~1969) | 자민당 | 1962년 12월 14일 ~ 1966년 10월 28일 | ||
에르하르트 (1963~1966) | |||||
5 | 쿠르트 슈뮈커 (1919~1996) | 기민련 | 1966년 11월 8일 ~ 1966년 11월 30일 | ||
6 |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1915~1988) | 기사련 | 1966년 12월 1일 ~ 1969년 10월 21일 | 키징거 (1966~1969) | |
19 | 올라프 숄츠 (1958~현재) | 사민당 | 2018년 3월 14일 ~ 2021년 12월 8일 | 앙겔라 메르켈 (2005~2021) | |
20 | 크리스티안 린트너 (1979~) | 자민당 | 2021년 12월 8일 ~ 현재 | 올라프 숄츠 (2021~) |
연방재무부는 독일의 모든 세금 및 수입 정책을 담당하며, 유럽 연합 정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재무장관은 정부 결정이 추가 지출로 이어질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무 장관이다.[3] 독일 신문 FAZ는 재무부가 독일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라고 언급했다.[3] 연방재무부는 9개의 국(局)과 10개의 총국(Directorate-General: DG)으로 구성되어 있다.[4][7] 총국 명칭에는 로마 숫자와 독일어 머리글자를 사용한다.[7]
3. 조직
3. 1. 산하 기관
다음은 연방재무부의 산하 기관이다.[5]
구분 | 기관명 |
---|---|
상위 연방 당국 | |
중간 및 지방 당국 | |
기타 기관 |
연방재무부의 광범위한 포트폴리오에 속하는 법적으로 독립적인 기관은 다음과 같다.
- 연방 금융 감독청 (BaFin)
- 금융 시장 안정화 기금 (SoFFin)
- 연방 금융 시장 안정화 기관 (FMSA)
- 연방 부동산 연구소 (BImA)
- 통일에서 발생하는 특별 업무를 위한 연방 연구소 (BvS)
- 연방 우편 및 통신청 (BAnst PT)
- * 우편 및 통신 연방 연금 서비스 (BPS-PT)
- * 우편 및 통신 사고 기금 (UKPT)
- * 우편 및 통신 박물관 재단 (MusStiftPT)
4. 역대 장관
(출생-사망)
(내각)
(1888–1967)

(I • II)
(1902–1970)

(III)
(1911–2001)
(IV)
(1908–1969)

에르하르트 (I • II)
(1919–1996)

(II)
(1915–1988)

(I)
(1903–1985)

(I)
(1911–1994)

(1918–2015)

(I • II)
(1932–2011)

(I • II)
(1925–2009)

(II • III)
(1937년 출생)

(III)
(1928–2001)

(I • II • III)
(1939년 출생)

(III • IV • V)
(1943년 출생)

(I)
(1941년 출생)

(I • II)
(1947년 출생)

(I)
(1942–2023)

(II • III)
(1958년 출생)

(IV)
(1979년 출생)

(I)
(1968년 출생)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