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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아나 팔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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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반파시즘 활동을 했으며, 베트남 전쟁, 인도-파키스탄 전쟁 등 종군 기자로 활동했다. 1960년대부터 헨리 키신저,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루홀라 호메이니 등 세계 지도자 및 유명 인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후 이슬람과 유럽의 무슬림에 대한 비판적인 글과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으며, 2006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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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아나 팔라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60년의 팔라치
1960년의 팔라치
출생일1929년 6월 29일
출생지피렌체, 이탈리아
사망일2006년 9월 15일
사망지피렌체, 이탈리아
안장 장소알로리 묘지, 피렌체
직업저널리스트
작가
인터뷰 진행자
웹사이트오리아나 팔라치 공식 웹사이트
영향
영향

2. 생애와 직업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탈리아 왕국 피렌체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반파시즘 활동을 했다.[54] 1946년, 신문 ''Il mattino dell'Italia centrale''의 특파원이 되어 10대부터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54] 1967년 초부터 종군 기자베트남 전쟁, 인도-파키스탄 전쟁 등을 취재했다.

페르치오 데 볼트리(코리에레 델라 세라 전 편집장)는 그녀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작가"라고 불렀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사실상 세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저널리스트"라고 평가했다.

팔라치는 헨리 키신저,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루홀라 호메이니, 레흐 바웬사, 빌리 브란트, 줄피카르 알리 부토, 월터 크롱카이트, 무암마르 알 카다피, 페데리코 펠리니, 사미 데이비스 주니어, 덩샤오핑, 응우옌 반 티에우, 야세르 아라파트, 인디라 간디,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 베르너 폰 브라운, 마카리오스 3세, 골다 메이어, 응우옌 반 치우, 하일레 셀라시에 1세, 숀 코네리 등 많은 국제적인 지도자들과 유명인들을 인터뷰했다.

호메이니 종교 지도자를 인터뷰한 후에는 ''Ayatollah''라는 책을 출판했지만, 이 책은 이란에서 금서가 되었다.

말년에는 뉴욕에서 폐암 투병 생활을 했으며, 2006년 9월 14일 이탈리아로 귀국하여 다음 날 피렌체에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와 레지스탕스 활동

오리아나 팔라치는 1929년 6월 29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3] 그녀의 아버지 에도아르도 팔라치는 피렌체의 가구 제작자였으며, 베니토 무솔리니파시즘 독재 종식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 활동가였다.[4]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이탈리아 반파시즘 저항 운동인 '주스티치아 에 리베르타'(이탈리아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후 이탈리아 왕립군으로부터 공훈 증명서를 받았다.[4]

2. 2. 언론인으로서의 경력

중등 교육을 마친 후, 팔라치는 피렌체 대학교에 잠시 다니며 의학과 화학을 공부했다. 이후 문학으로 전과했지만 곧 중퇴하여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 그녀의 삼촌이자 언론인이었던 브루노 팔라치는 팔라치에게 언론인의 길을 걷는 것을 제안했다.[6] 팔라치는 10대 시절부터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여, 1946년 이탈리아 신문 ''일 마티노 델리탈리아 첸트랄레''(Il mattino dell'Italia centrale)의 특파원이 되었다.[7] 1967년부터 베트남 전쟁, 인도-파키스탄 전쟁, 중동, 남아메리카를 취재하는 전쟁 특파원으로 일했다.

오리아나 팔라치(1987년)


페르치오 데 볼트리(코리에레 델라 세라 전 편집장)는 그녀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작가"라고 불렀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그녀를 "사실상 세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저널리스트"라고 평가했다.

젊은 시절 그녀는 헨리 키신저,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루홀라 호메이니, 레흐 바웬사, 빌리 브란트, 줄피카르 알리 부토, 월터 크롱카이트, 무암마르 알 카다피, 페데리코 펠리니, 사미 데이비스 주니어, 덩샤오핑, 응우옌 반 티에우, 야세르 아라파트, 인디라 간디,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 베르너 폰 브라운, 마카리오스 3세, 골다 메이어, 응우옌 반 치우, 하일레 셀라시에 1세, 숀 코네리 등 많은 국제적인 지도자들과 유명인들을 인터뷰했다.

그녀는 호메이니 종교 지도자에 대한 인터뷰 후에 Ayatollah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지만, 이 책은 이란에서 금서가 되었다.

2. 3. 1960년대: 명성

1960년대에 팔라치는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문학과 영화계 인물들을 인터뷰했고(1963년 『Gli antipatici』로 출판), 나중에는 세계 지도자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1973년 『Intervista con la storia』로 출판). 이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그녀를 "1970년대와 80년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두려움을 주는 인터뷰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9][10][11]

팔라치는 오랫동안 정치 잡지 『L'Europeo』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여러 주요 신문과 잡지 『Epoca』에 기고했다. 1967년 초, 종군 기자베트남 전쟁을 취재했고, 인도-파키스탄 전쟁에도 파견되었다. 1968년 멕시코시티의 트라테롤코 학살 당시 멕시코 군인들에게 세 발의 총격을 받고 머리채를 잡힌 채 계단 아래로 끌려 내려가 죽을 뻔했다. 그녀의 목격자 증언은 멕시코 정부의 학살 부인을 반박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8]

2. 4. 1970년대: 전성기

1970년대 초, 팔라치는 인터뷰 대상 중 한 명이자 그리스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홀로 저항한 인물인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와 관계를 맺었다. 파나굴리스는 독재자 게오르기오스 파파도풀로스에 대한 암살 시도 실패로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다. 파나굴리스는 1976년 논란 속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팔라치는 그리스 군사 쿠데타 잔당이 민주주의로의 이행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고"를 조작했다고 주장했으며, 그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Un Uomo'' (''A Man'')를 집필했다.

1972년 헨리 키신저와의 인터뷰에서 키신저는 베트남 전쟁을 "쓸모없는 전쟁"이라고 언급하며 자신을 "혼자 말을 타고 앞장서서 마차 행렬을 이끄는 카우보이"에 비유했다.[12] 키신저는 나중에 이것을 "언론인과 나눈 대화 중 가장 비참한 대화"라고 주장했다.[13] 1973년에는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를 인터뷰했다.[14] 그녀는 나중에 "그는 여성을 단순히 우아한 장식으로 여기며, 남자처럼 생각할 수 없다고 여기면서도 동시에 완전한 권리와 의무의 평등을 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14]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을 인터뷰한 후에는 그를 "내 인생에서 만난 가장 어리석은 사람 중 한 명, 어쩌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묘사했다.[15]

팔라치 테헤란 (1979). 호메이니를 인터뷰하기 위해 차도르를 착용해야 했다. 인터뷰 도중 그녀는 차도르를 벗고 여성의 차도르 착용 의무에 대해 비판했다.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그를 "폭군"이라고 부르며 차도르를 벗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의 일부이다.

'''OF:''' 아직도 많은 것을 여쭤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을 인터뷰하기 위해 착용해야 했던, 그리고 당신이 이란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차도르"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는 단순히 옷차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 즉 혁명 이후 이란 여성들이 강요받고 있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자들과 함께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고, 남자들과 함께 일할 수 없으며, 남자들과 함께 바다나 수영장에서 수영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차도르를 입고 모든 것을 따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차도르를 입고 어떻게 수영을 할 수 있습니까?

'''AK:''' 그런 것은 당신과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관습은 당신과 상관없습니다. 이슬람 의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젊은 여성과 존경받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므로, 착용할 의무가 없습니다.

'''OF:''' 매우 친절하시군요(당신은).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이 어리석은 중세 시대의 누더기를 즉시 벗어던지겠습니다. 자![16]

2. 5. 1980년대: 덩샤오핑 인터뷰

1980년 팔라치는 덩샤오핑과 인터뷰를 진행했다.[17][18] 마이클 랭크는 이 인터뷰를 "서구 언론인이 중국 지도자와 가진 인터뷰 중 가장 많은 것을 보여주는 인터뷰"라고 묘사했는데, 덩샤오핑은 이 인터뷰에서 중국 기준으로 볼 때 "매우 솔직하게" 마오쩌둥에 대해 이야기했고, 서구 언론인이 중국 지도자와 가진 대부분의 인터뷰는 "밋밋하고 지루했다"고 평가했다.[19]

2. 6. 은퇴 이후와 9.11 테러

팔라치는 뉴욕시와 자신이 소유한 토스카나의 집에서 거주하며 시카고 대학교, 예일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20] 9.11 테러 이후, 팔라치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이슬람 전반을 비판하는 세 권의 책을 썼다. 글과 인터뷰를 통해 유럽이 "무슬림들에게 너무 관대하다"고 경고했다. 첫 번째 책은 《분노와 자존심》(The Rage and the Pride)으로,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에 처음 게재된 4페이지짜리 기사였다. 이 책에서 그녀는 현재 이슬람이라고 불리는 것을 파괴할 것을 촉구했다.[21]

팔라치는 "알라의 아들들은 쥐처럼 번식한다"고 썼으며, 2005년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은 더 이상 유럽이 아니라 "유라비아"(Eurabia)라고 말했다.[1] 《분노와 자존심》과 《이성의 힘》(The Force of Reason)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전자는 이탈리아에서 100만 부 이상,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22] 이 책들은 "유라비아 장르"의 일부로 간주된다.[23] 같은 맥락의 세 번째 책인 《오리아나 팔라치 자기 인터뷰 – 묵시록》(Oriana Fallaci intervista sé stessa – L'Apocalisse)은 전 세계적으로 약 200만 부가 판매되었고,[24] 세 권의 책을 합쳐 이탈리아에서 400만 부가 판매되었다.[25]

그녀의 저술은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우르두어, 그리스어, 스웨덴어, 폴란드어, 헝가리어, 히브리어, 루마니아어, 세르보크로아트어, 페르시아어, 슬로베니아어, 덴마크어, 불가리아어를 포함한 21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3. 논란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슬람과 유럽의 무슬림에 대한 논란이 많은 글과 발언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녀는 이슬람교도들이 유럽으로 이민을 오고, 아이를 많이 낳아 유럽을 식민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유라비아 개념과 비슷하다.[36] 팔라치의 책은 이탈리아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리며 비판과 지지를 동시에 받았다.[37][38]

2005년 6월 3일, 팔라치는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우리 식인종들과 메데이아의 자식들" (“Noi Cannibali e i figli di Medea”)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하여 여성들에게 인공수정 국민투표에 투표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48]

2004년 저서 《오리아나 팔라치 자기 인터뷰 – 묵시록》에서 팔라치는 동성 결혼에 반대하며, 이것이 "가족의 생물학적 개념을 전복시킨다"고 주장하고 "유행하는 변덕, 일종의 과시욕"이라고 불렀다. 동성 부부의 양육에 대해서도 "삶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라고 선언했으며, "동성애자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는" "동성애 로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49]

3. 1. 이슬람에 대한 비판과 소송

2001년 9월 11일 테러 이후, 팔라치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이슬람 전반을 비판하는 세 권의 책을 썼다. 글과 인터뷰를 통해 유럽이 "무슬림들에게 너무 관대하다"고 경고했다. 첫 번째 책은 《분노와 자존심》(The Rage and the Pride)으로, 주요 이탈리아 일간지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에 처음 게재된 4페이지짜리 기사였다. 이 책에서 그녀는 현재 이슬람이라고 불리는 것을 파괴할 것을 촉구했다.[21]

그녀는 "알라의 아들들은 쥐처럼 번식한다"고 썼으며, 2005년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은 더 이상 유럽이 아니라 "유라비아"(Eurabia)라고 말했다.[1] 《분노와 자존심》과 《이성의 힘》(The Force of Reason)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전자는 이탈리아에서 100만 부 이상,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22] 이 책들은 "유라비아 장르"의 일부로 간주된다.[23] 같은 맥락의 세 번째 책인 《오리아나 팔라치 자기 인터뷰 – 묵시록》(Oriana Fallaci intervista sé stessa – L'Apocalisse)은 전 세계적으로 약 200만 부가 판매되었고,[24] 세 권을 합쳐 이탈리아에서 400만 부가 판매되었다.[25]

그녀의 저술은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우르두어, 그리스어, 스웨덴어, 폴란드어, 헝가리어, 히브리어, 루마니아어, 세르보크로아트어, 페르시아어, 슬로베니아어, 덴마크어, 불가리아어를 포함한 21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팔라치는 이슬람과 유럽의 무슬림에 대한 논란이 많은 글과 발언으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녀는 이슬람교도들이 유럽으로의 이민과 높은 출산율을 통해 유럽을 식민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유라비아 개념과 일맥상통한다.[36]

팔라치는 이탈리아에서 책이 100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비판과 지지를 동시에 받았다.[37][38] 2002년 11월 피렌체에서 열린 첫 유럽 사회 포럼에서 팔라치는 피렌체 시민들에게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집에 머물 것을 촉구했다. 더 나아가 그녀는 ESF를 나치의 피렌체 점령에 비유했다. 시위 주최자들은 "우리는 오리아나를 위해 이 일을 했다. 그녀는 지난 12년 동안 공개적으로 연설한 적이 없고 지난 50년 동안 웃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했다.[39]

2002년 스위스에서 이슬람 센터와 제네바 소말리아 협회, 로잔의 SOS 인종차별주의 단체 그리고 한 민간 시민이 《분노와 자랑》의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이유로 팔라치를 고소했다.[40][41] 2002년 11월 스위스 판사는 스위스 형법 제261조와 제261조 비스 위반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하고 이탈리아 정부에 그녀를 기소하거나 인도할 것을 요청했다. 이탈리아 법무부 장관 로베르토 카스텔리는 이탈리아 헌법이 언론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이 요청을 거부했다.[42]

2005년 5월 이탈리아 무슬림 연합 회장 아델 스미스는 팔라치를 상대로 "그녀가 《이성의 힘》에서 말한 일부 내용이 이슬람을 모독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스미스의 변호사는 18개의 구절을 인용했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슬람을 "결코 정화되지 않는 못"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43][44]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판사는 팔라치에게 베르가모에서 "이슬람을 모독" 혐의로 재판에 서도록 명령했다. 예비 재판은 6월 12일에 시작되었고, 6월 25일 비아트리체 시카르디 판사는 12월 18일부터 팔라치가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45] 팔라치는 판사가 스미스가 그녀의 살해를 촉구하고 기독교를 모독한 사실을 무시했다고 비난했다.[46]

프랑스에서는 MRAP와 인권연맹(Ligue des Droits de l'Homme)과 같은 일부 아랍계 무슬림 단체와 명예훼손 방지 단체가 《분노와 자랑》과 《이성의 힘》(프랑스어 번역본은 《La Rage et l'Orgueil》과 《La Force de la Raison》)이 "이슬람을 모독하고" "인종차별적"이라고 주장하며 오리아나 팔라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44] 그녀의 변호사인 질 윌리엄 골드나델[47](프랑스-이스라엘 기구 회장)은 델 발레에 대한 유사한 소송에서 알렉상드르 델 발레의 변호사이기도 했다.

2005년 6월 3일 팔라치는 《코리에레 델라 세라》 1면에 "우리 식인종들과 메데이아의 자식들"(“Noi Cannibali e i figli di Medea”)이라는 제목의 매우 논란이 많은 기사를 발표하여 여성들에게 2006년 6월 12일과 13일에 실시된 인공수정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투표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48]

2004년 저서 《오리아나 팔라치 자기 인터뷰 – 묵시록》(Oriana Fallaci intervista sé stessa – L'Apocalisse)에서 팔라치는 동성 결혼에 반대하며, 이것이 "가족의 생물학적 개념을 전복시킨다"고 주장하고 "유행하는 변덕, 일종의 과시욕"이라고 부르며 동성 부부의 양육에 대해서도 "삶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그녀는 "동성애자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는" "동성애 로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49]

2006년 6월호 《리즌》에서 미국 자유지상주의 작가 캐시 영은 "오리아나 팔라치의 2002년 저서 《분노와 자랑》은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 모퉁이에서 소변을 본다고 추정되는 소말리아 노점상과 급진적인 이슬람 테러리스트 사이에 거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라고 썼다. 《애틀랜틱》에 글을 쓴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이 책을 "이슬람에 대해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입문서"라고 부르며 "이슬람교도 전반과 유럽의 이슬람 이민자들에게 특히 적용되는 배설물, 질병, 성적 광기, 곤충과 같은 번식에 대한 집착적인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고 묘사했다.[50]

3. 2. 동성애에 대한 비판

2004년 저서 《오리아나 팔라치 자기 인터뷰 – 묵시록》(Oriana Fallaci intervista sé stessa – L'Apocalisse)에서 팔라치는 동성 결혼에 반대하며, 이것이 "가족의 생물학적 개념을 전복시킨다"고 주장하고 "유행하는 변덕, 일종의 과시욕"이라고 불렀다. 동성 부부의 양육에 대해서도 "삶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그녀는 "동성애자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는" "동성애 로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49]

4. 개인적인 삶과 죽음

2005년 8월 27일, 팔라치는 카스텔 간돌포에 있는 교황궁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알현했다. 무신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26] 팔라치는 교황에 대한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2004년에 발표된 그의 에세이 "만약 유럽이 스스로를 증오한다면"에 대한 감탄을 표현했다고 한다.[27][28] 비록 무신론자였지만, 그녀는 저서 『이성의 힘』에서 자신을 "기독교적 무신론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29][30] 팔라치는 특히 이란 혁명9·11 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시에나시에 이슬람 센터 건설 소문이 확산되자, 팔라치는 『뉴요커』지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무슬림들이 이 이슬람 센터를 짓는다면, 나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폭파할 것이다"라고 말했다.[31]

팔라치는 2006년 9월 15일, 고향인 피렌체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피렌체 남부 교외 갈루초에 있는 알로리 복음주의 묘지(Cimitero Evangelico degli Allori)에 가족들과 함께 묻혔으며, 고인이 된 동반자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를 기리는 묘비도 함께 세워졌다.

알로리 묘지(Cimitero degli Allori), 오리아나 팔라치

5. 수상 경력

오리아나 팔라치는 언론인 및 작가로서 여러 상을 받으며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 주요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다.

상 이름수상 연도작품명비고
산 빈첸초 상(St. Vincent Prize)1967년, 1971년(저널리즘 분야)두 차례 수상
반카렐라 상1970년《아무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럴 것이다》(Nothing, and So Be It)
비아레조 상1979년《한 남자: 소설》(Un uomo: Romanzo)
앙티브 상(Prix Antibes)1993년《인샬라》(Inshallah)
명예 문학 박사(D.Litt.)시카고 컬럼비아 대학교 수여
애니 테일러 상2005년데이비드 호로위츠 자유센터 수여, "이슬람 파시즘에 맞선 투쟁의 상징"으로 칭송[33]
암브로지노 도로(Ambrogino d'Oro)2005년밀라노 시 최고 영예[33]
얀 카르스키 독수리 상(Jan Karski Eagle Award)
문화 공헌 금메달(Benemerita della Cultura)2005년이탈리아 대통령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Carlo Azeglio Ciampi) 수여[34]
토스카나 의회 금메달2006년토스카나 주지사 리카르도 넨치니(Riccardo Nencini) 수여
아메리카 상2010년이탈리아-미국 재단(Italy–USA Foundation)에서 사후 수여[35]


6. 유산

2018년 기준으로 피사, 아레초, 제노아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거리나 광장이 있다.[32] 밀라노 근교의 공업 도시 세스토산조반니에도 그녀를 기리는 공원이 조성되었다.[32]

2019년 7월, 이탈리아 의회 하원은 유로화와 병행하여 사실상의 평행 통화로도 사용될 수 있는 저액권 국채 발행을 승인했다. 이 계획의 주요 제안자인 북부연맹 의원 클라우디오 보르기(Claudio Borghi)는 20유로 지폐에 팔라치의 초상이 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32]

그녀의 삶을 다룬 이탈리아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 《미스 팔라치》(2024)가 제작되었다.

2024년에는 작가 아나스타샤 루비스(Anastasia Rubis)가 팔라치의 경력과 개인적인 삶을 바탕으로 한 전기 소설 『오리아나: 오리아나 팔라치 소설(Oriana: A Novel of Oriana Fallaci)』을 출판했다.

7. 저서 목록


  • I sette peccati di Hollywood|할리우드의 일곱 가지 죄악it, 오슨 웰스 서문, 밀라노: 롱가네시, 1958; 베스트 BUR, 2014 (디지털 에디션).[49]
  • Il sesso inutile, viaggio intorno alla donna|쓸모없는 섹스: 여성을 둘러싼 여정it, 리촐리(Rizzoli), 밀라노, 1961; 베스트 BUR, 2014 (디지털 에디션); 영어 번역 (Pamela Swinglehurst 역): ''The Useless Sex: Voyage around the Woman'', 뉴욕: 호라이즌 프레스(Horizon Press), 1964.[50]
  • Penelope alla guerra|페넬로페, 전쟁터에 서다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1962; 베스트 BUR, 2014 (디지털 에디션); 영어 번역, ''Penelope at War'', 런던: 마이클 조셉(Michael Joseph), 1966, Pamela Swinglehurst 역.[49]
  • Gli antipatici|반감을 사는 사람들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1963; 베스트 BUR, 2014 (디지털 에디션); 영어 번역 (Pamela Swinglehurst 역): ''Limelighters'', 런던: 마이클 조셉(Michael Joseph), 1967, 및 ''아카이브(archive.org/details/egotistssixteens00fall) ''The Egotists: Sixteen Surprising Interviews'' (''자만하는 사람들: 놀라운 16개의 인터뷰'')'', 시카고: 레그너리(Regnery), 1968.[49] 노먼 메일러, 숀 코네리, 잉그리드 버그만, 응웬까오끼, H. 랩 브라운, 제럴딘 채플린, 휴 헤프너, 페데리코 펠리니,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안나 마냐니, 잔느 모로, 딘 마티나, 알바 공작부인(Cayetana Fitz-James Stuart, 18th Duchess of Alba), 알프레드 히치콕, 메리 헤밍웨이, 엘 코르도베스와의 인터뷰.[49]
  • Se il Sole muore|만약 태양이 죽는다면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1965; 베스트 BUR, 2010 (디지털 에디션); 영어 번역 (Pamela Swinglehurst 역): 아카이브(archive.org/details/ifsundies00fall) ''If the Sun Dies'', 뉴욕, 아테네움(Atheneum), 1966, 및 런던: 콜린스(Collins), 1967.[49] 미국 우주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49]
  • Niente, e cosí sia|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그러하리라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1969; 베스트 BUR, 2010 (디지털 에디션); 영어 번역 (Isabel Quigly 역): ''Nothing, And So Be It: A Personal Search for Meaning in War''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그러하리라: 전쟁 속에서 의미를 찾는 개인적인 탐구''), 뉴욕: 더블데이(Doubleday), 1972,[51] 및 ''Nothing and Amen'', 런던: 마이클 조셉(Michael Joseph), 1972. 베트남 전쟁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보고서.[52]
  • Quel giorno sulla Luna|달 위의 그날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1972; 베스트 BUR, 2010 (디지털 에디션).[49]
  • Intervista con la storia|역사와의 인터뷰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1974; 베스트 BR, 2008 (디지털 에디션); 영어 번역 (John Shepley 역): ''역사와의 인터뷰'', 뉴욕: 리버라이트 출판사(Liveright Publishing Corporation), 1976; 런던: 마이클 조셉(Michael Joseph), 1976; 보스턴: 허튼 미플린 컴퍼니(Houghton Mifflin Company), 1977.[49] 16명의 정치인들과의 인터뷰 모음.[49]
  • Lettera a un bambino mai nato|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1975; 베스트 BUR, 2014 (디지털 에디션); 영어 번역 (John Shepley 역):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뉴욕: 사이먼 앤 슈스터, 1976, 및 런던: 앨링턴 북스(Arlington Books), 1976. 어머니와 결국 유산된 아이 사이의 대화.[49]
  • Un uomo: Romanzo|한 남자: 소설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1979; 베스트 BUR, 2010 (디지털 에디션); 영어 번역 (William Weaver 역): ''한 남자'', 뉴욕: 사이먼 앤 슈스터(Simon & Schuster), 1980. 자유와 진리를 위해 홀로 싸우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리스 혁명 영웅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에 대한 소설.[49]
  • Insciallah|인샬라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1990; 베스트 BUR, 2014 (디지털 에디션); 영어 번역 (오리아나 팔라치, 제임스 마커스 번역을 바탕으로 작업): ''Inshallah'', 뉴욕: 더블데이(Doubleday), 1992, 및 런던: 챗토 앤 윈더스(Chatto & Windus), 1992. 1983년 레바논에 주둔한 이탈리아 군대에 대한 허구적인 이야기.[49]
  • La Rabbia e l'orgoglio|분노와 자존심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2001; 영어 번역: ''분노와 자존심'', 뉴욕: 리촐리(Rizzoli), 2002. 9.11 테러 이후의 선언문.[49]
  • La Forza della ragione|이성의 힘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2004; 베스트 BUR, 2014 (디지털 에디션); 영어 번역: 아카이브(archive.org/details/forceofreasonlaf00fall) ''The Force of Reason'', 뉴욕: 리촐리 인터내셔널(Rizzoli International), 2004. ''La Rabbia e l'orgoglio'' (''분노와 자존심'')의 속편.[49]
  • Oriana Fallaci intervista Oriana Fallaci|오리아나 팔라치가 오리아나 팔라치를 인터뷰하다it, 밀라노: ''코리에레 델라 세라'', 2004년 8월; 영어로 번역되지 않음.[53] 팔라치가 "유라비아"와 "이슬람파시즘"에 대해 자기 자신을 인터뷰함.[53]
  • Oriana Fallaci intervista sé stessa – L'Apocalisse|오리아나 팔라치가 스스로를 인터뷰하다 – 종말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2004. 자기 자신과의 인터뷰 업데이트 (이탈리아어). 새로운 긴 에필로그 추가.[49]
  • Un cappello pieno di ciliege|체리로 가득 찬 모자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2008; BURbig, 2010 (디지털 에디션); 영어로 번역되지 않음.[53] 그녀의 조상들에 대한 소설로, 사망 후 2년 뒤 출판됨. 팔라치는 9.11 테러와 그 테러에서 영감을 받은 책들까지 10년 동안 이 작품을 작업했다.[53]
  • Intervista con il mito|신화와의 인터뷰it, 밀라노: 리촐리(Rizzoli), 2010; 베스트 BUR, 2010 (디지털 에디션).[49]
  • Le radici dell'odio: La mia verità sull'Islam|증오의 뿌리: 이슬람에 대한 나의 진실it, 밀라노: 리촐리 빈티지(Rizzoli Vintage), 2015; BUR 리촐리(BUR Rizzoli), 2016 (디지털 에디션).[49]
  • 사랑과 죽음의 전장 베트남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일본어, 아사히신문사 1974년
  •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일본어, 고단샤 1977년
  • 한 남자일본어, 고단샤 1982년
  • 전쟁과 달과일본어, 인간사 2015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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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The Interview that Became Henry Kissinger's "Most Disastrous Decision": How Oriana Fallaci Became the Most Feared Political Interviewer in the World https://lithub.com/t[...] 2018-11-26
[3] 뉴스 https://www.theguard[...] The Guardian
[4] 웹사이트 Oriana Fallaci Official site http://www.oriana-fa[...] Oriana-fallaci.com 2013-04-24
[5] 서적 The New Yorker https://books.google[...] F-R Publishing Corporation
[6] 웹사이트 Stylos: Agenzia di comunicazione giornalistica, letteraria, editoriale - Roma http://www.stylos.it[...] 2019-07-11
[7] 서적 Oriana Fallaci: The Woman and the Myth https://archive.org/[...]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8] 잡지 The Agitator: Oriana Fallaci directs her fury toward Islam https://www.newyorke[...] The New Yorker 2006-06-05
[9] 뉴스 Speak ill of everyone https://www.the-tls.[...] The Times Literary Supplement 2017-12-22
[10] 뉴스 Oriana Fallaci https://www.thetimes[...] The Times 200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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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서적 Interview with History Liveright Press
[13] 뉴스 Reporter-Provocateur Oriana Fallaci https://www.washingt[...] The Washington Post 200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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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뉴스 Oriana Fallaci, intervista a Khomeini http://www.oriana-fa[...] Corriere della Sera 197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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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뉴스 Deng: Cleaning up Mao's mistakes http://digitalcollec[...] The Washington Post 1980-08-31
[19] 뉴스 Oriana Fallaci https://www.theguard[...] The Guardian 2006-09-19
[20] 서적 Fighting Suicide Bombing: A Worldwide Campaign for Life https://books.google[...] Greenwood
[21] 뉴스 Oriana Fallaci, Incisive Italian Journalist, Is Dead at 77 http://www.nytimes.c[...] The New York Times 2006-09-16
[22] 뉴스 The Rage of Oriana Fallaci https://observer.com[...] Observer 2003-01-27
[23] 학술지 Eurabia Comes to Norway https://www.research[...] Islam and Christian-Muslim Relations 2013-07
[24] 뉴스 Obituary: Oriana Fallaci https://www.theguard[...] The Guardian 2006-09-16
[25] 잡지 The Agitator https://www.newyorke[...] The New Yorker 2006-05-28
[26] 서적 I naturali sentieri della tranquillità Rubbettino Editore
[27] 웹사이트 Phi Beta Cons on National Review Online http://phibetacons.n[...] 2008-06-08
[28] 뉴스 Prophet of Decline http://www.opinionjo[...] The Wall Street Journal 2005-06-23
[29] 웹사이트 Oriana Fallaci (1929–2006), Italian journalist, atheist and feminist, who was anti-Islam, also said she was a Christian atheist http://www.antishari[...] Anti-Sharia 2011-11-13
[30] 잡지 She Said What She Thought https://www.theatlan[...] The Atlantic 2006-12
[31] 뉴스 Oriana Fallaci, Incisive Italian Journalist, Is Dead at 77 http://www.nytimes.c[...] The New York Times 2006-09-16
[32] 웹사이트 The resurgence of Oriana Fallaci's anti-Islam message in Italy https://www.aljazeer[...]
[33] 뉴스 Per oriana Fallaci un ambrogino d' oro rovente https://ricerca.repu[...] La Repubblica 200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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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웹사이트 America Award http://www.italiausa[...]
[36] 웹사이트 How Oriana Fallaci's Writings on Islamism Are Remembered—and Reviled https://www.theatlan[...] 2017-12-15
[37] 뉴스 Italy has a racist culture, says French editor https://www.theguard[...] 2004-08-08
[38] 웹사이트 Oriana in Exile https://web.archive.[...] 2005-07-18
[39] 뉴스 Sabina Guzzanti became Fallaci http://www.repubblic[...] 2002-11-08
[40] 간행물 Country Reports on Human Rights Practices for Switzerland 2002 https://2001-2009.st[...] 2003-03-31
[41] 뉴스 Swiss Muslims File Suit Over "Racist" Fallaci Book http://www.milligaze[...] 2002-07-01
[42] 웹사이트 The force of Reason https://web.archive.[...] 2013-04-24
[43] 웹사이트 Oriana Fallaci Trial Begins in Italy http://neveryetmelte[...] 2006-06-12
[44] 웹사이트 French Court Throws Out Lawsuit on Anti-Islam Book https://web.archive.[...] Icare 201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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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웹사이트 Il nemico che trattiamo da amico http://www.corriere.[...] 2006-09-15
[47] 웹사이트 The Fallaci Affair https://www.commenta[...] Commentary Magazine 2002-10-01
[48] 문서 "We cannibals and Medea's offspring" https://web.archive.[...] 2005-06
[49] 서적 Oriana Fallaci intervista sé stessa – L'Apocalisse Rizzoli
[50] 뉴스 Holy Writ https://www.theatlan[...] 2006-06
[51] 웹사이트 Nothing and so be it: A personal search for meaning in war https://web.archive.[...] 2020-04-07
[52] 웹사이트 Review: ''Nothing, And So Be It: A Personal Search for Meaning in War'' https://www.kirkusre[...] 2020-04-07
[53] 웹사이트 Brava: The fearless life of Oriana Fallaci https://web.archive.[...] 2020-04-08
[54] 서적 Oriana Fallaci: The Woman and the Myth https://archive.org/[...]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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