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현민의 노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오키나와 현민의 노래는 오키나와현의 현민 긍지와 향토애를 고취하고, 신생 오키나와현의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제정된 노래이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 이후 미국의 통치를 받다가 1969년 일본에 반환되기로 결정된 후, 현의 재건을 준비하기 위해 가사를 공모하여 류큐 대학 교수 시로마 시게루가 작곡했다. 1972년 5월 15일 반환일에 제정되었으며, 매년 5월 15일 복귀 기념식에서 연주되고 라디오 방송 배경 음악으로도 사용된다. 2011년에는 새로운 현민 애창가 제정이 검토되었으나, 현민 설문 조사 결과에 따라 기존의 "틴사구누하나"가 애창가로 지정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본의 도도부현 민가 - 시나노노쿠니 (노래)
시나노노쿠니는 나가노현의 자연, 역사, 현민의 자긍심을 담아 1900년에 작사된 이토 치카와 작곡가 다키 렌타로의 현가로, 현민가 공모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1968년 공식적으로 나가노현의 노래가 되었으며 문화 행사와 스포츠 응원가로 활용되고 우주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나가노현을 대표한다. - 오키나와현의 문화 - 오모로소시
오모로소시는 류큐 왕국 시대의 가요집으로, 류큐 문화의 전신인 '오모로'를 담아 왕, 영웅 등을 찬양하고 풍경, 신화 등을 노래하며 류큐 왕국의 민속 연구에 필수적인 1급 사료로 평가받는다. - 오키나와현의 문화 - 류카
류카는 오키나와의 정형시로, 팔음을 중심으로 오음, 육음, 칠음을 표준으로 하며, 8-8-8-6조의 형식을 가지고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가진다. - 1972년 노래 - 교토의 소나기
코야나기 루미코가 1972년에 발표한 "교토의 소나기"는 나카니시 레이 작사, 히라오 마사아키 작곡, 모리오카 켄이치로 편곡으로 교토의 분위기를 담아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한 곡이며, "도쿄 동요"가 함께 수록된 싱글 음반의 타이틀곡이다. - 1972년 노래 - 돌아와요 부산항에
1971년 김해일의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원곡으로 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황선우 작곡, 김성술 작사의 부산과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로, 조용필 리메이크와 일본 번안을 통해 큰 인기를 얻었으며, 가사 내용 차이 및 저작권 표절 소송 등의 이슈도 있다.
오키나와 현민의 노래 | |
---|---|
노래 정보 | |
제목 | 오키나와 현민의 노래 |
로마자 표기 | Okinawa Kenmin no Uta |
구분 | 현가 |
대상 | 현민 |
작사자 | 미야자토 세이코 |
보작 | 오키나와 현민의 노래 선정 위원회 |
작곡가 | 시로마 시게루 |
채택일 | 1972년 5월 15일 |
추가 정보 | |
관련항목 | 현가 |
관련항목 | 틴사구누하나 |
2. 제정 배경 및 역사
오키나와현은 1945년 오키나와 전투 이후 미국의 통치 아래에 있다가 1969년 미일 정상 회담을 통해 일본으로의 반환이 결정되었다. 현의 재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키나와 현민의 긍지와 향토애를 기르고, 새롭게 출발하는 오키나와현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하는 취지로 현민의 노래 제정이 추진되었다.[1]
가사는 공모를 통해 선정되었고, 작곡은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완성되었다.[2] 노래는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된 1972년 5월 15일에 공식 제정되었다. 현재는 매년 반환 기념식 등에서 연주되고 있으며[1], 2011년에는 새로운 현민 애창가 제정이 논의되었으나 현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전통 민요인 "틴사구누하나"가 애창가로 지정되었다.[3][4]
2. 1. 제정 배경
오키나와현은 1945년 오키나와 전투 이후 미국의 통치 아래에 놓여 있었다. 1969년 미일 정상 회담에서 일본으로의 반환이 결정되면서, 현의 재건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키나와 현민의 긍지와 향토애를 기르고, 새롭게 출발하는 오키나와현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하는 취지로 현민의 노래 제정이 추진되었고, 가사를 공모했다[1].작사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미야자토 세이코의 작품을 바탕으로 '오키나와 현민의 노래 선정 위원회'가 보완했으며, 작곡은 류큐 대학 교수이자 성악가인 시로마 시게루에게 의뢰하여 완성되었다[2]. 노래는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된 1972년 5월 15일에 공식 제정되었다. 빅터 레코드에서 이 노래를 담은 EP를 제작하기도 했다.
현재 이 노래는 매년 5월 15일에 현 주최로 열리는 복귀 기념식에서 연주되고 있으며[1], 현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인 라디오 현민실에서는 기악 버전이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1년에는 오키나와 반환 4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현민 애창가 '우치나 카나사우타' 제정이 검토되었으나[3], 현민 대상 설문 조사에서 전통 민요인 "틴사구누하나"를 애창가로 지지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아 새로운 애창가 제작은 보류되었다. 대신 설문 조사 결과를 반영하여 "틴사구누하나"가 현민 애창가로 지정되었다[4].
2. 2. 가사 공모 및 작곡
오키나와현은 1945년 오키나와 전투 이후 미국의 시정권 아래에 있었으나, 1969년 미일 정상 회담에서 일본으로의 반환이 결정되었다. 이에 현의 재건 준비 과정에서 현의 깃발과 함께 "오키나와 현민의 긍지와 향토애를 기르고, 신생 오키나와현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현민을 대상으로 가사를 공모했다.[1] 작곡은 류큐 대학 교수이자 성악가인 시로마 시게루에게 의뢰하여 이루어졌으며[2], 노래는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당일인 1972년 5월 15일에 공식 제정되었다. 빅터 레코드에서 싱글 레코드를 제작하여 보급했다.2. 3. 제정 및 보급
오키나와현은 1945년의 오키나와 전투 이후 미국의 통치 아래 있었으나, 1969년 미일 정상 회담에서 일본으로의 반환이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현의 재건 준비 과정에서 현기와 함께 "오키나와 현민의 긍지와 향토애를 기르고, 새롭게 출발하는 오키나와현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노래 가사를 공모했다.[1] 작곡은 의뢰를 받아 당시 류큐 대학 교수이자 성악가였던 시로마 시게루가 담당했다.[2] 노래는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1972년 5월 15일에 맞춰 제정되었다. 빅터 레코드(현재의 JVC 켄우드 빅터 엔터테인먼트)에서 싱글 레코드를 제작하여 보급했다.현재 이 노래는 매년 5월 15일 현 주최로 열리는 복귀 기념식에서 연주되며[1], 라디오 현민실에서는 기악 버전이 배경 음악(BGM)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1년에는 오키나와 반환 40주년을 맞아 새로운 현민 애창가 '우치나 카나사우타' 제정이 검토되기도 했으나[3], 현민 대상 설문 조사에서 전통 민요인 "틴사구누하나"를 애창가로 지지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아 새로운 애창가 제작은 보류되었다. 대신 설문 조사 결과에 따라 "틴사구누하나"가 애창가로 지정되었다.[4]
3. 활용 및 현황
현재는 매년 5월 15일에 현의 주최로 열리는 복귀 기념식에서 연주된다.[1] 또한, 라디오 현민실에서는 기악 버전이 배경 음악(BGM)으로 사용되고 있다.
3. 1. 새로운 현민 애창가 제정 논의
2011년에는 복귀 4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현민 애창가 "우치나 카나사우타"의 제정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3] 그러나 현민 설문 조사에서는 "틴사구누하나"를 애창가로 지지하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애창가 제작은 보류되었고, 설문 조사 결과에 따라 "틴사구누하나"가 애창가로 지정되었다.[4]4. 음반 정보
(슈리 고등학교 취주악부)
(PRA-10035)
(보작: 오키나와 현민의 노래 선정 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