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키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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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키키센은 일본 시마네현 오키 제도를 운항하는 해운 회사이다. 오키 제도와 본토를 연결하는 페리와 고속선을 운영하며, 주요 항로는 시치루이항, 사이고항, 벳푸항 등을 포함한다. 페리 시라시마, 페리 구니가, 페리 오키, 레인보우 제트 등의 선박을 운용하며, 과거에는 마린 스타, 레인보우, 레인보우2 등의 선박도 운항했다. 현재는 오키 광역 연합이 오키 기선의 경영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페리 오키를 매입하여 지정 관리자로 위탁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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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키센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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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회사 이름 | 隠岐汽船株式会社 (오키키센 주식회사) |
영문 회사 이름 | Oki Kisen Co., Ltd. |
종류 | 주식회사 |
우편 번호 | 685-0013 |
본사 위치 | 시마네현오키군오키노시마정 중정 목관의 사 |
설립일 | 1895년7월 8일 |
업종 코드 | 5100 |
사업 내용 | 일반 여객 정기 항로 사업 일반 구역 화물 자동차 운송 사업 국내 여행업 |
대표자 | 이사 사장 키노시타 노리히사 |
자본금 | 4억 7,975만 엔 (헤이세이 26년 6월 29일) |
종업원 수 | 146명 |
외부 링크 | 오키 기선 공식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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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883년 마쓰우라 아야시가 증기선 구매를 제안하면서 오키키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오키 섬과 본토 간의 왕래는 돛단배에 의존하여 날씨에 큰 영향을 받았고, 조난 사고도 빈번했다. 이에 마쓰우라 아야시는 증기선 도입을 통해 안정적인 항로를 확보하고자 했다.
이후 증기선 구매와 항로 개설을 둘러싸고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쓰우라 아야시와 다카시마 시슌 등의 노력으로 1885년 히시우라-우라사토-사카이항 간 운항을 시작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운영이 저조했지만, 1895년 오키 기선 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항로 확장과 운영 개선이 이루어졌다.
최성기에는 아지로항, 쓰이 산항, 쓰루가항 등 여러 항구에 취항했으며, 1910년부터 1917년까지는 한반도 북한 항로를 개설하여 국제 항로를 운항하기도 했다.
1949년 해상 운송법 시행에 따라 '일반 여객 정기 항로 사업' 허가를 받았고, 1970년대부터는 페리 운항을 시작했다. 1984년에는 고속 여객선 '마린 스타', 1993년에는 초고속 여객선 '레인보우'를 취항시켜 오키-본토 간 항해 시간을 대폭 단축했다.
1995년 창립 100주년을 맞았으나, 인구 감소와 관광객 감소, 연료비 폭등 등으로 경영난을 겪었다. 2006년부터 경영 재생 계획을 수립하고 시마네현 및 오키 광역 연합의 지원을 받아 경영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1. 설립 배경
1883년 4월, 니시노시마 정 야키히 신사의 신관이자 오키 섬 의회 의원이었던 마쓰우라 아야시가 증기선 구매를 의회에 제안했다. 당시 오키키센과 본토 간의 왕래는 돛단배에 의존했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 항해가 좌우되었고, 악천후로 인한 조난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항로 개설을 계획했던 개인 기업들이 잇따라 사업에 실패했고, 고액의 증기선 도입에 다른 의원들은 반대했다. 또한 사업이 경합하는 회선업자와 오징어 어업에 방해가 된다는 어부들의 반발도 있었다.섬 내에서 고립무원 상태가 된 아야시는 당시 군수였던 다카시마 시슌의 협력을 얻어 1884년 4월, 다카시마가 대표가 되어 증기선 구매를 의회에서 발의했다. 다른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아야시가 구매 비용의 절반을 출자하고 의회와 절반씩 부담하는 조건을 제시하여 합의를 얻었다. 아야시는 선조 대대로 소유한 야키야마 산림의 삼나무 및 소나무 약 1만 9,000 그루를 벌채, 매각하여 구매 자금에 충당하고, 오사카 상선으로부터 영국제 목조 증기선 '''소료마루''' (132총톤)를 16000JPY[1]에 구매, '''오키마루'''로 개명하여 1884년 말에 오키로 회항했다.
1885년, 히시우라 - 우라사토 - 사카이항 간 운항을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연간 약 30항해 운항에 그쳐 이용자가 늘지 않아 저조했다. 1890년 1월에 아야시가 병사하고, 오키 섬 4군 연합회에 의해 운항은 계속되었다. 1895년, 항로 유지를 위해 섬 주민의 출자에 의해, '''오키 기선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최대 주주였던 나카노시마아마 정의 와타나베 신타로가 초대 사장에 취임, 나카노시마 히시우라에 본사가 설치되었다.
2. 2. 초기 운영 및 확장
1883년 4월, 니시노시마 정 야키히 신사의 신관이자 오키 섬 의회 의원을 지낸 마쓰우라 아야시가 증기선 구매를 의회에 제안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항로 개설을 계획한 개인 기업이 잇따라 사업에 실패했고, 고액의 증기선 도입에 다른 의원들은 반대 입장을 보였다. 사업이 경합하는 회선업자는 맹렬히 반대했으며, 오징어 어업에 방해가 된다며 어부들에게도 반발을 샀다.。섬 내에서 고립무원 상태가 된 아야시는 당시 군수였던 다카시마 시슌의 협력을 얻어 1884년 4월, 다카시마를 대표로 하여 증기선 구매를 의회에서 발의했다. 다른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아야시가 구매 비용의 절반을 출자하고 의회와 절반씩 부담하는 조건을 제시하여 합의를 얻었다. 아야시는 선조 대대로 소유한 야키야마 산림의 삼나무 및 소나무 약 1만 9,000 그루를 벌채, 매각하여 구매 자금에 충당하고, 오사카 상선으로부터 영국제 목조 증기선 '''소료마루''' (132총톤)를 16000JPY[1]에 구매, '''오키마루'''로 개명하여 1884년 말에 오키로 회항했다.。
1885년, 히시우라 - 우라사토 - 사카이항 간 운항을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연간 약 30항해 운항에 그쳐 이용자가 늘지 않아 저조했다. 1890년 1월 아야시가 병사하고, 오키 섬 4군 연합회가 운항을 계속했다. 1895년, 항로 유지를 위해 섬 주민의 출자로 '''오키 기선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최대 주주였던 나카노시마아마 정의 와타나베 신타로가 초대 사장에 취임, 나카노시마 히시우라에 본사가 설치되었다.。
그 후, 마이즈루 항로가 개설되어 한카쿠 철도와 연락한 것을 시작으로 신규 항로 개설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고, 최성기에는 아지로항, 쓰이 산항, 쓰루가항, 유노쓰항, 하마다항, 시모노세키항에 취항했다. 1933년 4월에는 마쓰에항 축항에 맞춰 사카이항에서 마쓰에항까지 항로를 연장, 제1 오키마루와 제2 오키마루가 교대로 매일 운항되었다.。 1910년부터 1917년까지 단기간 동안 한반도로의 북한 항로가 개설되어 국제 항로를 운항했다.。
2. 3. 현대화 및 위기
1883년 4월, 니시노시마 정 야키히 신사의 신관이자 오키 섬 의회 의원을 지낸 마쓰우라 아야시가 증기선 구매를 의회에 제안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항로 개설을 계획한 개인 기업이 잇따라 사업에 실패했고, 고액의 증기선 도입에 다른 의원들은 반대했다. 사업이 경합하는 회선업자는 맹렬히 반대, 오징어 어업에 방해가 된다며 어부들로부터도 반발을 받았다.섬 내에서 고립무원 상태였던 아야시는 당시 군수였던 다카시마 시슌의 협력을 얻어 1884년 4월, 다카시마가 대표가 되어 증기선 구매를 의회에서 발의했다. 다른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아야시가 구매 비용의 절반을 출자하고 의회와 절반씩 부담하는 조건을 제시하여 합의를 얻었다. 아야시는 선조 대대로 소유한 야키야마 산림의 삼나무 및 소나무 약 1만 9,000 그루를 벌채, 매각하여 구매 자금에 충당하고, 오사카 상선으로부터 영국제 목조 증기선 '''소료마루''' (132총톤)를 16000JPY[1]에 구매, '''오키마루'''로 개명하여 1884년 말에 오키로 회항했다.
1885년, 히시우라 - 우라사토 - 사카이항 간 운항을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연간 약 30항해 운항에 그쳐 이용자는 늘지 않아 저조했다. 1890년 1월 아야시가 병사하고, 오키 섬 4군 연합회에 의해 운항은 계속되었다. 1895년, 항로 유지를 위해 섬 주민의 출자로 '''오키 기선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최대 주주였던 나카노시마아마 정의 와타나베 신타로가 초대 사장에 취임, 나카노시마 히시우라에 본사가 설치되었다.
그 후, 마이즈루 항로가 개설되어 한카쿠 철도와 연락한 것을 시작으로 신규 항로 개설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고, 최성기에는 아지로항, 쓰이 산항, 쓰루가항, 유노쓰항, 하마다항, 시모노세키항에 취항했다. 1933년 4월에는 마쓰에항 축항에 맞춰 사카이항에서 마쓰에항까지 항로를 연장, 제1 오키마루와 제2 오키마루가 교대로 매일 운항되었다. 1910년부터 1917년까지 단기간 한반도로의 북한 항로가 개설되어 국제 항로를 운항했다.
1949년, 해상 운송법 시행에 따라 '일반 여객 정기 항로 사업' 허가를 받았다. 1970년대에는 항로의 페리화가 진행되었다. 1972년 페리화 제1선이 되는 쿠니가가 취항, 대형화된 제2선 페리 오키 (초대), 제3선 페리 오키지의 취항으로 1980년에는 카 페리 3척으로 운항했다. 또한, 고속선 취항으로 소요 시간 단축도 진행되었다. 오키 - 본토 간 항해 시간은 1984년 첫 고속 여객선 "마린 스타" 취항으로 약 100분, 1993년 초고속 여객선 "레인보우" 취항으로 약 60분이 되어 대폭 단축되었다.
1995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지만, 낙도 인구 감소, 관광객 감소로 경영이 악화되어 2002년 이후 적자가 되었고, 연료비 폭등의 영향으로 2005년에는 실질적으로 채무 초과가 되는 위기적 상황에 빠졌다. 2006년 경영 재생 계획을 수립, 경비 절감 및 운임 인상, 감선과 기항지 집약 등 수지 개선을 위한 대책을 실시, 시마네현 및 오키 광역 연합의 지원을 받아 경영 재건에 힘쓰고 있다.
2. 4. 경영 회생 노력
1883년 4월, 니시노시마 정 야키히 신사의 신관이자 오키 섬 의회 의원을 지낸 마쓰우라 아야시가 증기선 구매를 의회에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항로 개설을 계획했던 개인 기업들이 잇따라 사업에 실패했고, 고액의 증기선 도입에 다른 의원들은 반대했다. 사업이 경합하는 회선업자와 어부들도 반대했다.섬 내에서 고립무원 상태였던 아야시는 당시 군수였던 다카시마 시슌의 협력을 얻어 1884년 4월, 다카시마가 대표가 되어 증기선 구매를 의회에서 발의했다. 다른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아야시가 구매 비용의 절반을 출자하고 의회와 절반씩 부담하는 조건을 제시하여 합의를 얻었다. 아야시는 선조 대대로 소유한 야키야마 산림의 삼나무 및 소나무 약 1만 9,000 그루를 벌채, 매각하여 구매 자금에 충당하고, 오사카 상선으로부터 영국제 목조 증기선 '''소료마루''' (132총톤)를 16000JPY[1]에 구매, '''오키마루'''로 개명하여, 1884년 말에 오키로 회항했다.
1885년, 히시우라 - 우라사토 - 사카이항 간 운항을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연간 약 30항해 운항에 그쳐 이용자는 늘지 않아 저조했다. 1890년 1월에 아야시가 병사하고, 오키 섬 4군 연합회에 의해 운항은 계속되었다. 1895년, 항로 유지를 위해 섬 주민의 출자에 의해, '''오키 기선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최대 주주였던 나카노시마아마 정의 와타나베 신타로가 초대 사장에 취임, 나카노시마 히시우라에 본사가 설치되었다.
그 후, 마이즈루 항로가 개설되어 한카쿠 철도와 연락한 것을 시작으로 신규 항로 개설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고, 최성기에는 아지로항, 쓰이 산항, 쓰루가항, 유노쓰항, 하마다항, 시모노세키항에 취항했다. 1933년 4월에는 마쓰에항의 축항에 맞춰 사카이항에서 마쓰에항까지 항로를 연장, 제1 오키마루와 제2 오키마루가 교대로 매일 운항되었다. 1910년부터 1917년까지 단기간 동안 한반도로의 북한 항로가 개설되어 국제 항로를 운항했다.
1949년, 해상 운송법 시행에 따라 '일반 여객 정기 항로 사업' 허가를 받았다. 1970년대에는 항로의 페리화가 진행되었다. 1972년에 페리화 제1선이 되는 쿠니가가 취항, 대형화된 제2선 페리 오키 (초대), 제3선 페리 오키지의 취항으로, 1980년에는 카 페리 3척에 의한 운항이 되었다. 또한, 고속선의 취항에 의한 소요 시간 단축도 진행되었다. 오키 - 본토 간의 항해 시간은 1984년, 첫 고속 여객선 "마린 스타"의 취항으로 약 100분, 1993년의 초고속 여객선 "레인보우"의 취항으로 약 60분이 되어, 대폭 단축되었다.
1995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지만, 낙도 인구 감소, 관광객 감소로 경영이 악화되어 2002년 이후 적자가 되었고, 연료비 폭등의 영향도 받아 2005년에는 실질적으로 채무 초과가 되는 위기적 상황에 빠졌다. 2006년에 경영 재생 계획을 수립, 경비 절감 및 운임 인상, 감선과 기항지 집약 등 수지 개선을 위한 대책을 실시, 시마네현 및 오키 광역 연합의 지원을 받아 경영 재건에 힘쓰고 있다.
3. 항로
시치루이항 - 사이고항 - 벳푸항 구간은 국도 제485호선의 해상 구간으로 지정되어 있다. 각 선박은 육지부 본토와 오키 제도를 하루 1회 왕복 운항하는 계획으로 짜여 있다.
3. 1. 페리
- 사이고항 - 히시우라항 - 벳푸항 - 구리이항 - 사카이항 - 벳푸항 - 사이고항 (페리 시라시마)
- 시치루이항 - 구리이항 - 히시우라항 - 사이고항 - ''히시우라항'' - ''벳푸항'' - 사카이항 (페리 구니가)
- 시치루이항 - 사이고항 - 히시우라항 - 벳푸항 - 사이고항 - 시치루이항 (페리 오키)
기울임 글씨로 표기된 구간은 계절에 따라 운항하는 특별편이다. 도고의 경우 운항 시간이 변경될 수 있다. 부두에 정박하는 기간 동안에는 페리 구니가, 페리 오키, 페리 시라시마의 시간표로 운항한다.
3. 2. 고속선
- 벳푸항 - 히시우라항 - 사이고항 - ''사카이항'' - ''사이고항'' - ''벳푸항'' - 시치루이항 - 사이고항 - 히시우라항 - 구리이항 (레인보우 제트)[1]
- 벳푸항 - 히시우라항 - 사이고항 - 사카이항 - 사이고항 - 벳푸항 - 칠류항 - 사이고항 - 히시우라항 - 벳푸항 (레인보우 제트)[2]
- 벳푸항 - 히시우라항 - 사이고항 - 칠류항 - 사이고항 - 히시우라항 - 벳푸항 (레인보우 제트)[2]
:: 이탤릭체 표기 구간은 계절편으로 운항하며, 도고에서의 운항 시간 변경 가능성이 있다. 12월 하순부터 익년 2월 중순까지는 도크 기간으로 동계 운휴한다.[1][2] 2월 중순부터 4월 상순, 11월부터 12월 하순까지는 2번 시간표로 운항된다.[2]
4. 주요 선박
오키키센은 현재 운항하는 선박들을 위주로 운항하며, 전부 미쓰비시 중공업 시모노세키 조선소에서 건조한다.
- '''페리 시라시마'''(フェリーしらしま): 1995년 3월 취항. 2343ton, 전장 99.5m, 전폭 16m
- '''페리 구니가'''(フェリーくにが): 1999년 4월 취항. 2375ton, 전장 99.5m, 전폭 16m. 현재 2세대째 운항.
- '''페리 오키'''(フェリーおき): 2004년 4월 취항. 2366ton, 전장 99.5m, 전폭 16m. 현재 2세대째 운항.
- '''레인보우 제트'''(レインボージェット): 2014년 3월 1일 취항. 173톤, 전장(날개 업) 30.33m, 전장(날개 다운) 27.36m, 전폭(형폭) 8.53m, 최대 폭 9.14m, 정원 256명, 전 좌석 금연.
4. 1. 현재 운항 선박
오키키센은 현재 운항하고 있는 선박들을 위주로 운항하며, 전부 미쓰비시 중공업 시모노세키 조선소에서 건조한다.- '''페리 시라시마'''(フェリーしらしま): 1995년 3월 취항.
- '''페리 구니가'''(フェリーくにが): 1999년 4월 취항. 현재 2세대째 운항 중이다.
- '''페리 오키'''(フェリーおき): 2004년 4월 취항. 현재 2세대째 운항 중이다.
고속선으로는 레인보우 제트(レインボージェット)가 유일하며, 2014년 3월 1일 취항하였다.
4. 1. 1. 페리
현재 운항 중인 페리는 모두 미쓰비시 중공업시모노세키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페리 시라시마'''
1995년 3월 취항하였다. 총톤수는 2343ton이며, 전장 99.5m, 폭 16m이다. 키타로 페리가 되어, 미즈키 시게루와 마찬가지로 외팔이지만, 니시노시마정에서 간판업을 운영하며 상공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마사키 카츠미'''에 의해 선체 측면에 게게게의 키타로 캐릭터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 '''페리 쿠니가'''(2대)
1999년 4월 취항하였다. 총톤수는 2375ton, 전장 99.5m, 폭 16m이다.
- '''페리 오키'''(2대)
2004년 4월 취항하였다. 총톤수는 2366ton, 전장 99.5m, 폭 16m이다. 경영 부실에 빠진 오키 기선의 경영 재생 계획에 따라 오키군의 4개 읍면으로 구성된 오키 광역 연합이 매입하여, 2007년 4월 1일부터 오키 기선을 지정 관리자로 무상 위탁하여 운항하고 있다.
4. 1. 2. 고속선

현재 운항 중인 고속선은 레인보우 제트가 유일하다. 미쓰비시 중공업 시모노세키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2014년 3월 1일에 취항하였으며, 주요 제원은 다음과 같다.
레인보우 제트는 오키 광역 연합이 노후화된 레인보우 2호를 대체하기 위해 중고 제트포일 "토피 5호"(전 타네야쿠 고속선)를 구입하여, 가와사키 중공업 선박 해양 컴퍼니 고베 공장에서 개조한 선박이다.[2] 취항 당시부터 오키 기선이 지정 관리자로 운항을 위탁받고 있다.[2]
4. 2. 과거 운항 선박
오키키센은 과거에 다음 선박들을 운항했다.- '''오키마루'''
- '''다이2 오키마루'''
- '''오키지마루'''
- '''시마지마루'''
- '''쿠니가'''
이 외에도 카페리인 '''페리 오키 (초대)''', '''페리 오키지''', '''페리 쿠니가 (초대)'''와 고속선인 '''마린 스타''', '''레인보우''', '''레인보우2''' 등이 있었다. 각 선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조하면 된다.
4. 2. 1. 카페리
: 1976년 5월 31일에 준공되었으며, 우스키 철공소에서 건조, 선박 정비 공단 공유선, 시치루이 - 사이고 항로에 취항하였다. 2104ton 총톤, 683ton 중량톤, 전장 85.9m, 수선간장 78m, 폭 15m, 깊이 5.6m, 만재 흘수 4.3m, 다이하츠 디젤 6DSM-32(L) 4기 2축, 연속 최대 출력 8,400마력, 최고 속력 19.6노트, 항해 속력 18.0노트, 여객 정원 928명, 대형 트럭 17대와 승용차 17대를 적재할 수 있다.
- '''페리 오키지'''
: 현재는 모레타의 선사 (모레타 시핑 라인즈)에 매각되었다.
: 1987년 3월 25일에 준공되었으며, 하야시카네 조선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하였다. 2939ton 총톤, 여객 정원 750명, 8톤 트럭 5대·승용차 25대 또는 승용차만 50대를 적재할 수 있다. 은퇴 후에는 대만의 선사에 매각되어 허푸 콰이룬이 되었다.[5]
4. 2. 2. 고속선

- '''마린 스타'''
: 1993년 4월 레인보우 취항으로 홍콩의 선박 회사에 매각되었다.
- '''레인보우'''
: 1993년 4월에 취항한 수중익선(슈퍼 셔틀 400)으로, 미쓰비시중공업 시모노세키 조선소(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와 다카사고 제작소(효고현 다카사고시)에서 건조되었다. 이전 고속선 "마린 스타"를 대신하여 취항하였으며, 오키키센에서는 처음으로 워터 제트 추진 방식의 여객선이었다. 순수 국산 쌍두 부상식 워터 제트(2기)를 탑재하였다. 보잉・가와사키 중공업제 수중익선(제트 포일)의 가스터빈 구동에 비해, 정음성과 연비에서 유리한 디젤 터보 엔진(1축 2기 엔진) 구동 방식이었다. 건조 당시, 디젤 엔진을 탑재한 동급 영업 여객선 중에서는 세계 최고 속도였다. 2006년 5월과 6월에 어떤 물체(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지만 불명)와 충돌했을 때 폐선도 검토되었지만, 2개월여의 수리를 거쳐 부활하였다. 또한, 리프레시 및 연명 공사도 이루어졌으나, 오키키센이 경영 위기에 놓이면서 2006년 12월 15일 고속선 가을, 겨울 다이어 운항 종료와 동시에 휴선 상태가 되었다. 2007년 4월, 일본 국외(대한민국)에 매각되었다.
- '''레인보우2'''
: 1998년 7월에 취항하였으며, 총톤수 304ton, 전장 33.43m, 폭 13m이고, 전 좌석이 금연이었다. 2013년 11월 30일에 퇴역하였다.[6]
5. 영업소
오키키센은 도고 섬(오키노시마정)의 사이고항, 니시노 섬(니시노시마정)의 벳푸항, 나카노 섬(아마정)의 히시우라항, 지부리 섬(지부촌)의 라이항, 그리고 본토의 시치루이항과 사카이항에 영업소를 두고 있다.
5. 1. 도고 섬 (오키노시마정)
사이고항 - 사이고 영업소 (시마네현오키군오키노시마정 나카마치메누키 461번지)5. 2. 니시노 섬 (니시노시마정)
니시노시마정에 있는 니시노 섬에는 벳푸항이 있으며, 니시노시마 영업소가 있다. 니시노시마 영업소의 주소는 시마네현 오키군 니시노시마정 미타 야하타노마에 4386번지 3이다.5. 3. 나카노 섬 (아마정)
- 히시우라항 - 아마 영업소 (시마네현 오키군 아마정 후쿠이 1465번지 5)
5. 4. 지부리 섬 (지부촌)
시마네현오키군지부촌 1730번지 6에 위치한 라이항에는 라이 취급점(업무 위탁)이 있다.5. 5. 본토
참조
[1]
기타
現在の貨幣価値に換算して約9,400万円相当
[2]
뉴스
レインボージェットあす就航 隠岐諸島と本土を70分 島根
https://web.archive.[...]
2014-04-16
[3]
서적
世界の艦船
1976-10
[4]
웹사이트
昭和62年 WHEEL HOUSE, CONTROL ROOM
https://www.jasnaoe.[...]
日本船舶海洋工学会関西支部 造船資料保存委員会
2018-05-13
[5]
Youtube
【蘇花中斷】啟動船運備援!將退役的馬祖合富快輪成為車輛疏運主力! 交通部蘇花公路坍方中斷替代疏運專案 合富快輪 花蓮港-蘇澳港 搭乘記錄
https://www.youtube.[...]
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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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高速船レインボー2 16年の航海に幕
http://www.sanin-chu[...]
201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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