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코 카바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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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코 카바구티는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5세에 스케이트를 시작하여 여자 싱글 선수로 활동하다가 1998년 엘레나 베레즈나야의 연기를 보고 페어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타마라 모스크비나 코치의 지도를 받아 1999년 미국에서 알렉산드르 마르쿤초프와 페어를 결성하여 일본 대표로 활동하며, 2001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데빈 패트릭, 알렉산드르 스미르노프와 차례로 페어를 이루어 러시아 대표로 활동하며, 2010년 유럽 선수권 우승,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4위를 기록했다. 2017년 은퇴했으며, 세계 선수권 동메달 2회, 유럽 선수권 우승 2회 등의 주요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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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코 카바구티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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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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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카와구치 유코 / 카바구티 유코 |
다른 이름 | 가와구치 유코 / 카바구티 유코 |
국적 | 러시아 |
이전 국적 | 일본 미국 |
출생일 | 1981년 11월 20일 |
출생지 | 지바현후나바시시 |
거주지 |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
키 | 1.57 m |
은퇴일 | 2017년 9월 22일 |
시작 | 1986년 |
스케이팅 클럽 | 유빌레이니 스포츠 클럽 |
파트너 | 알렉산드르 스미르노프 |
이전 파트너 | 알렉산드르 마르쿤초프 (일본) 데빈 패트릭 (미국) |
코치 | 타마라 모스크비나 |
이전 코치 | 니콜라이 벨리코프 이고르 모스크빈 |
안무가 | 피터 체르니셰프 |
이전 안무가 | 알렉산드르 마트베예프 나탈리아 베스테미아노바 타티아나 드루치니나 이고르 보브린 이반 코즐로프 |
랭킹 | |
세계 랭킹 | 5 (2015년 2월 3일 기준) |
개인 최고 랭킹 | 7 (2012–2013) 4 (2011–2012) 4 (2010–2011) 3 (2009–2010) 4 (2008–2009) |
개인 최고 기록 | |
총점 | 216.00 |
총점 기록일 | 2015 중국 컵 |
쇼트 프로그램 점수 | 76.02 |
쇼트 프로그램 기록일 | 2015 모르도비안 오너먼트 |
프리 스케이팅 점수 | 143.55 |
프리 스케이팅 기록일 | 2015 중국 컵 |
주요 대회 메달 | |
세계 선수권 대회 | 동메달, 2009 로스앤젤레스, 페어 동메달, 2010 토리노, 페어 |
그랑프리 파이널 | 동메달, 2011–12 퀘벡, 페어 동메달, 2015–16 바르셀로나, 페어 |
월드 팀 트로피 | 은메달, 2015 도쿄, 팀 |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 은메달, 2001 소피아, 페어 |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 동메달, 2000–01 에어, 페어 |
기타 정보 | |
취미 | 독서, 영화, 쇼핑, 음악 |
학력 | 후나바시 시립 후나바시 고등학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
사이트 | ISU 프로필 |
2. 선수 경력
카바구티는 5세 때 스케이트를 시작하여 처음에는 여자 싱글 선수로 활동했다. 1997년 전일본 주니어 선수권에서 3위를 차지했고, 1998-1999 시즌 ISU 주니어 그랑프리에 출전하여 JGP 멕시코 컵에서 우승하는 등 성과를 냈다.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서 엘레나 베레즈나야의 연기를 보고 감명을 받아 페어 스케이팅으로 전향을 결심했다. 그녀는 유명 코치 타마라 모스크비나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지도를 간청했고, 테스트를 거쳐 1999년 모스크비나 코치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훈련을 시작했다.
1999년 알렉산드르 마르쿤초프와 페어를 결성하여 일본 대표로 활동했다. 이들은 2001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서 일본 페어 사상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하고 전일본 선수권 2연패를 달성했지만, 마르쿤초프의 일본 국적 취득 문제로 올림픽 출전이 어려워지자 2003년 5월 페어를 해체했다.
이후 2004년 여름, 미국 선수 데빈 패트릭과 잠시 페어를 이루어 활동했으나, 훈련 환경 및 코치 문제 등으로 2005-2006 시즌 후 다시 페어를 해체했다.
2006년 4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스미르노프와 새로운 페어를 결성하고 러시아 소속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타마라 모스크비나의 지도 아래 2010년과 2015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고, 2009년과 2010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밴쿠버 올림픽 출전을 위해 카바구티는 2008년 12월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일본은 복수 국적을 허용하지 않아 일본 국적을 포기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성의 로마자 표기가 'Kawaguchi'에서 'Kavaguti'로 변경되었다. 카바구티는 국적 변경에 대해 "중대한 결단이었으며, 올림픽 메달을 따고 싶다"고 밝혔다.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쇼트 프로그램 3위로 출발했으나 최종 4위를 기록했다.
스미르노프와의 파트너십 동안 두 선수는 여러 차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카바구티는 2010년 어깨 수술과 2016년 아킬레스건 파열, 스미르노프는 사타구니, 무릎 인대 부상, 맹장염 등으로 여러 시즌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특히 2013-2014 시즌은 스미르노프의 무릎 부상으로 모든 경기에 불참했으며, 시즌 후 은퇴를 고려했으나 평창 올림픽을 목표로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2014-2015 시즌 복귀하여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우승하며 ISU 그랑프리 시리즈 6개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고, 2015년 유럽 선수권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면서 2016-2017 시즌에는 그랑프리 시리즈와 러시아 선수권 모두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2017년 9월 22일,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은퇴 후에는 프로 스케이터로 아이스 쇼에 출연하는 한편, 주니어 선수 육성 및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NHK배 해설을 맡기도 했다. 2021년 인터뷰에 따르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용 살롱에서 페이셜 마사지사로도 일하고 있다.
선수 생활과 병행하여 카바구티는 2003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국제 관계학을 공부해 2007년 학위를 취득했으며,[2] 모국어인 일본어 외에 러시아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녀는 선수 생활 이후 국제 외교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3]
2. 1. 초기 경력
카바구티는 아이스 댄싱 팬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5세에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본 대표로 싱글 스케이터로 활동했다. 싱글 선수 시절 주요 성적은 다음과 같다.국제 대회 (싱글) | |||
---|---|---|---|
대회 | 1996–97 | 1997–98 | 1998–99 |
주니어 그랑프리 헝가리 | 8위 | ||
주니어 그랑프리 멕시코 | 1위 | ||
국내 대회 (싱글) | |||
일본 주니어 선수권 | 10위 | 3위 | 10위 |
1998년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1998년 동계 올림픽에서 러시아 페어 스케이터 엘레나 베레즈나야의 연기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페어 스케이팅으로 전향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당시 유명 코치였던 타마라 모스크비나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지도를 간청했다. 모스크비나 코치는 처음에는 러시아의 치안 문제 등을 이유로 거절했으나, 카바구티의 끈질긴 요청과 잠재력을 확인하는 테스트를 거쳐 결국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카바구티는 모스크비나 코치가 있는 미국 뉴저지 해켄색으로 이주하여 훈련을 시작했다.
1999년 3월, 카바구티는 알렉산드르 마르쿤초프와 팀을 이루어 일본 대표로 페어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스크비나와 이고르 모스크빈의 지도를 받았으며, 1999년 전일본 주니어 선수권에서 우승했다. 2000-2001 시즌에는 ISU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하여 멕시코 컵 우승, 하얼빈 대회 3위를 기록했고,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3위에 올라 일본 페어 사상 최초로 파이널 메달을 획득했다. 이듬해 2001년 세계 주니어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따내며, ISU 선수권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일본 페어 팀이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카바구티와 마르쿤초프는 2001-2002 시즌부터 시니어 무대에서 활동하며 ISU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했고, 전일본 선수권과 그 다음해 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파트너인 마르쿤초프가 일본 국적을 취득하기 어려워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해지자, 두 사람은 2003년 5월에 파트너십을 해소했다. 같은 해, 카바구티는 모스크비나 코치를 따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훈련을 계속하는 동시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 입학했다.
2. 2. 알렉산드르 마르쿤초프와의 페어 (일본)
1999년 3월, 카바구티는 알렉산드르 마르쿤초프와 팀을 이루어 일본 대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타마라 모스크비나와 이고르 모스크빈의 지도를 받았으며, 주로 미국 뉴저지주 해켄색에서 훈련했다.카바구티와 마르쿤초프 조는 2000-2001 시즌 ISU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하여 멕시코 대회에서 우승하고 중국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으며, 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시즌 일본 주니어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특히 2001년 세계 주니어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는데, 이는 일본 페어 스케이팅 역사상 최초의 ISU 선수권 대회 메달이었다.
2001-2002 시즌부터 시니어 무대에 데뷔하여 일본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2회 연속 우승(2001-2002, 2002-2003 시즌)을 차지했다.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는 세 차례 출전하여 각각 15위(2001년), 13위(2002년), 14위(2003년)를 기록했고, 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는 8위(2001년), 9위(2002년), 7위(2003년)에 올랐다.
하지만 2003년에 두 사람은 페어를 해체했다. 카바구티는 해체 이유에 대해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알렉산드르가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고, 따라서 올림픽에서 일본을 대표할 수 없었기에 얼마 후 헤어지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주요 대회 결과'''
국제 대회 | |||
---|---|---|---|
대회 | 2000–01 | 2001–02 | 2002–03 |
세계 선수권 대회 | 15위 | 13위 | 14위 |
4대륙 선수권 대회 | 8위 | 9위 | 7위 |
GP NHK 트로피 | 기권 | 5위 | |
GP 스케이트 아메리카 | 6위 | 5위 | |
GP 트로피 라리크 | 6위 | ||
국제 대회: 주니어 | |||
주니어 세계 선수권 대회 | 2위 | ||
JGP 파이널 | 3위 | ||
JGP 중국 | 3위 | ||
JGP 멕시코 | 1위 | ||
국내 대회 | |||
일본 선수권 대회 | 1위 | 1위 | |
일본 주니어 선수권 대회 | 1위 | ||
GP = 그랑프리; JGP = 주니어 그랑프리; WD = 기권 |
2. 3. 데빈 패트릭과의 페어 (일본, 미국)
미국 스케이터 조쉬 마틴과 잠시 스케이팅을 했으나, 2004년 5월 마틴이 부상으로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카바구티는 또 다른 미국 선수인 데빈 패트릭과 새로운 페어를 결성했다. 카바구티는 패트릭에 대해 "그는 나에게 쿼드 스로(살코)를 가르쳐주었다. 그는 정말 훌륭한 스로를 했지만, 다른 요소들은 잘 안 됐다"고 말했다.카바구티와 패트릭 조는 일본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와 미국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미국 선수권에서는 15위를 기록했다. 시즌 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카바구티는 결별 이유에 대해 "그는 미국에서 살고 싶어했지만, 저는 타마라 모스크비나 코치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저는 학업을 포기하고, 코치를 떠나, 미국으로 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다른 파트너를 찾지 못할까 봐 걱정했지만, 적어도 학위는 마치기로 결심했다.
2. 4. 알렉산더 스미르노프와의 페어 (러시아)
알렉산드르 스미르노프와 2006년 4월 페어를 결성하여, 2006-2007 시즌부터 러시아 대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타마라 모스크비나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여러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밴쿠버 동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2009년 1월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으며, 올림픽에서는 최종 4위를 기록했다. 스미르노프와의 파트너십 동안 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3회 우승(2008-2010), 유럽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2회 우승(2010, 2015),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동메달 2회(2009, 2010) 등의 주요 성과를 달성했다.
대회/연도 | 2006-07 | 2007-08 | 2008-09 | 2009-10 | 2010-11 | 2011-12 | 2012-13 | 2014-15 | 2015-16 | 2016-17 |
---|---|---|---|---|---|---|---|---|---|---|
동계 올림픽 | 4 | |||||||||
세계 선수권 대회 | 9 | 4 | 3 | 3 | 4 | 7 | 6 | 5 | ||
유럽 선수권 대회 | 3 | 2 | 1 | 2 | 기권 | 5 | 1 | 기권 | ||
세계 국별 대항전 | 2 (개인 2위) | 2 (개인 3위) | ||||||||
러시아 선수권 대회 | 기권 | 1 | 1 | 1 | 2 | 기권 | 2 | 3 | 2 | 5 |
그랑프리 파이널 | 5 | 5 | 5 | 3 | 6 | 6 | 3 | |||
그랑프리 중국 컵 | 1 | 2 | 1 | 6 | ||||||
그랑프리 스케이트 캐나다 | 3 | 1 | 기권 | 기권 | 5 | |||||
그랑프리 로스텔레콤 컵 | 3 | 3 | 2 | 2 | 1 | 2 | 2 | |||
그랑프리 NHK 트로피 | 2 | 1 | 기권 | 2 | ||||||
그랑프리 스케이트 아메리카 | 1 | |||||||||
그랑프리 에릭 봉파르 트로피 | 1 | |||||||||
챌린저 시리즈 네펠라 메모리얼 | 2 | |||||||||
챌린저 시리즈 모르도비안 오너먼트 | 1 | |||||||||
챌린저 시리즈 네벨혼 트로피 | 1 | |||||||||
니스컵 | 1 | 1 | 1 |
2. 4. 1. 2006-2007 시즌
알렉산드르 스미르노프와 함께 러시아 대표로 활동하기 시작한 첫 시즌이다. 2006년 11월,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니스 국제컵에서 우승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같은 달 모스크바에서 열린 로스텔레콤 컵(러시아 컵)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선수권 대회에는 기권(WD)했다. 2007년 3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세계 선수권 대회에 처음 출전하여 최종 9위를 기록했다.2. 4. 2. 2007-2008 시즌
카바구티/스미르노프 조는 2007-2008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하여 스케이트 캐나다와 러시아 컵에서 모두 3위를 차지했다. 이를 통해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여 5위를 기록했다. 이 시즌에 카바구티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어, 영어, 러시아어 3개 국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이후 러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유럽 선수권 대회에는 처음 출전하여 3위에 오르며 메달을 획득했다. 시즌 마지막 대회인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4위를 기록했다.2. 4. 3. 2008-2009 시즌
2008-2009 시즌에 카바구티/스미르노프 조는 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하여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1위를 차지했고, 로스텔레콤 컵에서는 2위에 올랐다. 이 성적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5위에 머물렀다. 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 챔피언 자리에 올랐고, 유럽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2009년 1월, 카바구티는 밴쿠버 동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시즌 마지막 주요 대회인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는 쇼트 프로그램 2위, 프리 스케이팅 3위를 기록하며 최종 3위에 올라 처음으로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외에도 니스 국제컵에서 우승했으며, 시즌 종료 후 열린 세계 팀 트로피에서는 러시아 팀 소속으로 출전하여 팀 순위 5위, 페어 부문 개인 순위 2위를 기록했다.
2. 4. 4. 2009-2010 시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요한 슈트라우스 2세
블루스
게리 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