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호미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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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의령 호미산성은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죽전리에 위치한 테뫼식 산성이다. 약 200m 길이의 토성 흔적이 남아 있으며, 정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가야 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이곳에서 유격전을 펼쳐 일본군의 경상남도 서부 진출을 막는 데 기여했다. 호미산은 산의 형태가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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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호미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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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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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의령 호미산성 (宜寧 虎尾山城) |
분류 | 경상남도 기념물 |
지정 번호 | 101 |
지정일 | 1990년 12월 20일 |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죽전리 51-1, 51-2 |
면적 | 5,752m² |
2. 위치 및 형태
의령군 정곡면 죽전리에 있는 호미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호미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형태가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2]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죽전리에 있는 호미산 정상부에는 약 200m 가량의 흙으로 쌓은 토성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주변의 잡석을 이용하고 남강 강변의 깎아지른 자연 절벽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테두리처럼 둥글게 쌓은 이른바 테뫼식 산성이다.[2] 현재는 성 안팎이 개간되어 밭으로 사용되면서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2]
이 산성은 호미산 정상의 9부 능선을 따라 주변의 잡석을 이용해 쌓은 것이다. 남강 강변의 깎아지른 듯한 자연 절벽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테두리처럼 둥글게 쌓은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이다.[2] 현재는 약 200m에 이르는 토성의 흔적만이 정상 부근에 남아 있으며, 성 안팎이 밭으로 개간되면서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2]
산성을 쌓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의령읍 하리 벽화산성과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남강 변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고, 주변에 삼국 시대의 고분군이 널리 분포하고 있어 가야 시대부터 성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2] 특히 이 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1552년~1617년) 장군이 유격전을 펼쳐 일본군의 서부 경남 진출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전적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2]
3. 역사
정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의령읍 하리 벽화산에 있는 벽화산성과 비슷한 시기에 쌓였거나 가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2] 또한, 이 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주요 전적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2] 호미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형태가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2]
3. 1. 축성 시기
이 산성을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2] 그러나 이 지역은 남강 강변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가야 시대부터 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2] 주변에 삼국시대의 고분군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2] 또한,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유격전을 펼쳐 일본군의 서부 경남 진출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전해진다.[2]
3. 2. 임진왜란과 곽재우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망우당 곽재우(1552∼1617) 장군의 주요 활동 무대 중 하나였다. 곽재우 장군은 이곳 호미산성 일대에서 유격전을 효과적으로 펼쳐, 남강을 따라 서쪽으로 진격하려던 일본군의 서부 경남 지역 진출을 막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2] 호미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형태가 호랑이 꼬리처럼 생긴 데서 유래했다.[2]
4. 현황
호미산(虎尾山|호미산중국어) 정상의 9부 능선을 따라 주변의 잡석을 이용해 쌓은 산성이다. 남강 강변의 깎아지른 자연 절벽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서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테두리처럼 둥글게 쌓은 이른바 테뫼식 산성이다. 현재는 약 200m에 이르는 토성의 흔적만이 정상 부근에 남아 있으며, 성 안팎이 밭으로 개간되면서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산성을 쌓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 지역이 남강 강변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고 주변에 삼국 시대의 고분군이 널리 분포하는 점으로 미루어 가야 시대부터 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이곳을 거점으로 유격전을 펼쳐 일본군의 서부 경남 진출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호미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형태가 호랑이 꼬리처럼 생긴 데서 유래했다.[2]
5. 명칭 유래
호미산은 산의 형태가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2] 이 산의 정상부에 위치한 성이기에 의령 호미산성이라 불린다.
참조
[1]
간행물
경상남도 고시 제2018-485호,《경상남도 지정문화재(문화재자료) 명칭변경 고시》
http://210.104.249.3[...]
경상남도지사
2018-12-20
[2]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3]
보고서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1185번지 일원 내 梁山 架山里遺蹟 Ⅴ. 고찰
https://www.cha.go.k[...]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15-09-01
[3]
보고서
대한주택공사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양산석산지구 文化遺蹟 地表調査 報告書
http://www.feaci.or.[...]
대한주택공사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0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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