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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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리농악은 예능 보유자 김형순이 1952년 부안에서 익산으로 이주한 후, 1953년부터 풍물계를 조직하여 시작되었다. 1959년 '농악단'이라는 이름을 붙여 활동했으며, 1983년 전국 농악경연대회 최우수상, 1985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 같은 해 12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다른 지역 농악에 비해 느린 가락과 설장고 가락 및 춤이 발달했으며, 쇠꾼과 장고잽이를 중심으로 가락을 구사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리농악은 악기잽이, 기수, 잡색으로 구성되며, 다스름굿, 오채질굿, 오방진, 호호굿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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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농악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이리농악 정보 | |
이름 | 이리농악 |
로마자 표기 | Iri Nongak |
유형 | 국가무형문화재 |
지정 번호 | 11-3 |
지정일 | 1985년 12월 1일 |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
관리자 | 이리농악보존회 |
전승자 | 김형순(설장고) |
문화재청 ID | 17,00110300,35 |
2. 역사
(내용 없음)
2. 1. 형성과정
이리농악의 예능 보유자였던 김형순이 1952년 부안에서 당시 이리시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953년부터 풍물계를 조직하여 배산(盃山) 중턱에 모여 연습한 것이 그 시초이다. 1959년 4월 초파일부터 '농악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1983년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어 1985년에는 제2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같은 해 12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3. 특징
이리농악은 다른 지역 농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가락을 많이 사용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영남농악과 달리 북보다는 쇠꾼과 장고잽이를 중심으로 가락을 치밀하게 엮어 나가며, 시작과 끝맺음이 분명하다. 특히 설장고 가락과 춤사위가 뛰어나고, 상쇠의 부포놀이와 소고춤의 기법 또한 다채롭게 발달하였다. 이는 초기부터 이리 지역의 마을 농악이 아닌 전라북도 우도농악 전문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전문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농악대의 짜임새 있는 진법 구성과 다양한 가락, 마당놀이 구성 역시 이리농악의 중요한 특징이다.
3. 1. 음악적 특징
이리농악은 다른 지역 농악에 비해 느린 가락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영남농악과는 달리 북의 역할보다는 쇠꾼과 장고잽이를 중심으로 가락을 이끌어 나간다. 가락 하나하나를 매우 세밀하게 다루며, 동작의 변화를 미리 알리고 시작과 끝맺음을 분명하게 하는 점도 두드러진다.또한, 설장고의 가락과 춤이 특별히 발달했으며, 진법 구성, 상쇠의 부포놀이, 소고춤의 기법이 다채롭다는 점도 이리농악만의 특징이다. 이는 초기부터 지역 마을 농악 형태가 아닌, 전북 지역 우도농악의 전문 연주자들을 초빙하여 기량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전문적인 농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3. 2. 형태적 특징
이리농악은 다른 지역 농악에 비해 느린 가락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설장고의 가락과 춤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진법과 상쇠의 부포놀이, 소고춤의 기법이 다채롭다. 영남농악과는 달리 북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쇠꾼(꽹과리 연주자)과 장고잽이(장구 연주자)를 중심으로 가락을 이끌어 나간다. 가락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다루며, 동작의 변화를 미리 알리고 시작과 끝맺음을 분명하게 하는 점도 특징이다. 이리농악은 초기부터 이리 지역 마을 농악의 형태가 아니라, 전라북도 우도농악 전문 연주자들을 초빙하여 기량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전문적인 농악의 성격이 강하다.농악대는 크게 악기를 연주하는 악기잽이, 깃발을 드는 기수, 그리고 다양한 역할을 맡는 잡색으로 구성된다.
구분 | 역할 | 인원 구성 |
---|---|---|
악기잽이 | 꽹과리 | 4명 |
징 | 2명 | |
장구 | 5~6명 | |
북 | 2명 | |
소고 | 상당수 | |
나발 (쇠로 된 긴 나발) | 1명 | |
쇄납 | 1명 | |
기수 | 농기 | 1명 |
용기 | 1~2명 | |
영기 | 2명 | |
잡색 | 대포수 | 1명 |
조리중 | 1명 | |
창부 | 1명 | |
양반 | 1명 | |
각시 | 1명 | |
무동 | 2명 (두기도 함) |
3. 3. 구성 및 내용
이리농악의 주된 구성은 첫째 마당(오채질굿), 둘째 마당(오방진), 셋째 마당(호호굿)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마당 입장 전에는 준비 과정으로 다스름굿을 치며, 셋째 마당이 끝난 후에는 뒷굿을 놀고 퇴장한다. 이 외에도 마을 간 걸립을 나갈 때 치는 걸립굿이 있는데, 이는 문굿, 들당산굿, 샘굿, 마당밟이 고사굿 등으로 구성된다. 농사 과정에서는 보매기굿과 논매기 풍장굿을 치기도 한다.농악대의 구성원은 악기를 연주하는 악기잽이, 깃발을 드는 기수, 그리고 흥을 돋우는 잡색으로 나뉜다.
구분 | 역할 | 인원 |
---|---|---|
악기잽이 | 꽹쇠 | 4인 |
징수 | 2인 | |
장고수 | 5~6인 | |
북 | 2인 | |
소고 | 상당수 | |
나발수 | 1인 (쇠로 된 긴 나발) | |
쇄납수 | 1인 | |
기수 | 농기수 | 1인 |
용기수 | 1~2인 | |
영기수 | 2인 | |
잡색 | 대포수, 조리중, 창부, 양반, 각시 | 각 1인 |
무동 | 2인 (두기도 함) |
이리농악의 기본 가락은 다양한 박자 구조를 가진다.
박자 | 해당 가락 예시 |
---|---|
3분박 4박 | 인사굿, 좌질굿 제 4~5마디, 질굿 제 2마디, 이음굿, 긴 삼채, 짧은 삼채, 변형 삼채, 긴 매도지 제 2·5·6마디, 짧은 매도지 제 3·4마디, 이리 매도지 제 4·6·7마디, 달어치기 |
4분의 6박 | 좌질굿 제 1~3마디, 우질굿 제 2~4마디, 질굿 제 1마디, 긴 매도지 제 1·3마디, 짧은 매도지 제 1마디, 이리매도지 제 1·2·5마디 |
8분의 10박 | 오채질굿 일부, 우질굿 제 1마디 |
4분의 4박 | 첫째마당 입장굿, 이채, 오방진, 진오방진, 묘기 |
3분박 3박 | 양산도, 셋째마당 낸드래미 |
이리농악은 다른 지역 농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가락을 많이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설장고의 가락과 춤이 특히 발달했으며, 진법 구성과 상쇠의 부포놀이, 소고춤의 기법이 다채롭다. 영남농악과 달리 북의 역할보다는 쇠꾼(꽹과리 연주자)과 장고잽이를 중심으로 가락을 이끌어간다. 각 가락을 매우 세밀하게 다루며, 동작의 변화를 미리 알리고 시작과 끝맺음을 명확하게 하는 점도 특징이다. 초창기부터 이리 지역의 마을 농악 형태가 아니라, 전라북도 우도농악의 전문 연주자들을 초빙하여 기량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전문 농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4. 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된 이리농악의 전승과 보존을 위해 여러 예능 보유자들이 인정받아 왔다. 1985년 12월 1일에는 상쇠 김문달과 설장고 김형순이 최초로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역대 보유자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역대 보유자'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1. 역대 보유자
wikitext성명 | 성별 | 생년월일 | 기.예능 | 주소 | 지정일자 | 해제일자 | 해제사유 |
---|---|---|---|---|---|---|---|
김문달 | 남 | 1908.4.7 | 상쇠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부용리 206 | 1985.12.01 | ||
김형순 | 남 | 1933.9.7 | 설장고 | 전라북도 익산시 남중1가동 154 | 1985.12.01 |
5. 익산농악과 한국 문화
익산농악은 호남 좌도 농악의 특징을 잘 간직한 대표적인 농악으로, 한국 전통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지역 공동체의 축제와 노동 현장에서 함께하며 민중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왔다. 특히 힘든 농사일의 고단함을 덜고 공동체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단순한 놀이를 넘어선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다.
익산농악은 꽹과리, 징, 장구, 북 등 다양한 타악기의 조화로운 연주와 함께 상모놀이, 열두발 상모놀이 등 다채로운 춤사위가 어우러져 신명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는 한국인의 흥과 역동성을 잘 보여주는 예술 형태로 평가받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익산농악의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존 및 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을 중요한 정책 과제로 삼고 있으며, 익산농악과 같은 무형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문화 보존을 넘어 지역 문화 활성화와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과도 연결된다.
익산농악은 한국 농경문화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며, 공동체 정신과 예술적 흥취를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자산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통해 그 가치를 이어나가는 것은 한국 문화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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