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포 (동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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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포는 오나라 손휴 시대의 인물로, 손휴의 신임을 받아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손휴를 보좌하여 손침 제거에 기여하고, 손휴 사후에는 손호를 옹립했으나, 손호의 폭정으로 인해 유배되어 살해되었다. 권력을 잡은 후에는 거만한 행동을 보였으며, 손호는 장포를 몹시 미워하여 그의 가족들까지 몰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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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포 (동오)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장포 |
원어 이름 | 張布 |
직책 | 표기장군 |
임기 시작 | 264년 9월 |
임기 종료 | 264년 12월 |
군주 | 손호 |
이전 직책 | 좌장군 |
임기 시작 | 258년 |
임기 종료 | 264년 9월 |
군주 | 손량 / 손휴 |
사망 추정 시기 | 264년 12월 경 |
자녀 | 딸 둘 (손호의 후궁) |
직업 | 장군 |
2. 생애
손휴는 손휴가 왕이었던 시대부터 친밀하여 좌우의 장독 직책을 맡아 신뢰를 받았다. 손침이 손량을 폐위하고 손휴를 황제로 세웠을 때, 장포는 장수 교위 지위에 있었으나 손휴 보좌에 공을 세웠다.[2] 이후 손침 제거, 권력 장악과 몰락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고하라.
2. 1. 손침 제거
손침이 손량을 폐위시키고 손휴를 세웠으나, 실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손휴는 손침을 꺼렸다. 손침이 술과 고기를 바쳤음에도 받지 않았다. 손침은 당시 좌장군이었던 장포의 집으로 찾아가 손휴를 원망하는 말을 늘어놓았는데, 장포는 이 일을 손휴에게 고했다. 두려움을 느낀 손휴는 장포와 함께 손침을 제거할 계획을 꾸몄다.[2]장포는 손휴에게 정봉을 추천해 거사에 가담시켰으며, 정봉은 연말에 신들에게 제사지내는 납회(臘會) 때 손침을 불러들여 죽일 것을 제안했다. 이 계책을 실행한 결과 손침은 간단히 붙잡혀 그날로 처형당했다.[3][4] 거사가 성공하고 손침 일당을 제압한 공으로 장포는 보의장군(輔義將軍)에 임명되고 영강후(永康侯)에 봉해졌으며, 그의 두 동생 장돈(張惇)과 장순(張恂)에게도 벼슬이 내려졌다.[3][4]
2. 2. 권력 장악과 몰락
258년 손휴의 보좌에 대한 공적으로 보의장군으로 승진하여 영강후에 봉해졌고, 이후 좌장군이 되었다. 손침이 손휴에게 우주를 헌상하려다 거절당하고 장포에게 찾아와 술에 취해 원망하며 손휴 폐위를 언급하자, 장포는 이 일을 손휴에게 알렸다. 손휴는 손침의 쿠데타 계획을 듣고 장포와 함께 손침 타도 계획을 세웠고, 정봉을 협력자로 추천받았다. 같은 해 12월, 장포는 정봉과 함께 손휴의 명령으로 손침을 체포하여 처형했다. 이 공으로 중군독이 더해졌고, 동생 장돈은 도정후 작위와 병사 300명을 받았으며, 장순도 교위로 임명되었다.[2]262년 10월, 복양흥이 승상이 되자, 손휴는 복양흥과 장포에게 국정을 맡기고 학문에 몰두했다. 복양흥은 군사와 행정을, 장포는 궁중을 관장했다.[2]
장포는 권력을 장악한 후 예의에 벗어난 행동이 많아졌다. 박사 제주 위소와 성충의 등용에 반대하며 자신의 과실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했으나, 손휴는 이미 장포의 행위를 알고 있었고, 장포는 손휴에게 옛날의 손침과 같다는 비판을 받았다. 장포는 사과했지만, 학문이 정치의 방해가 된다는 반대는 굽히지 않았다. 손휴는 장포의 마음을 헤아려 위소 등의 등용을 그만두었다.[2]
264년 손휴가 죽자, 장포는 만욱의 권고에 따라 복양흥과 함께 손호를 옹립했고, 표기장군 겸 시중이 되었다. 그러나 손호의 폭정에 장포와 복양흥은 손호를 옹립한 것을 후회했고, 이를 안 만욱이 손호에게 고했다. 같은 해 11월, 손호는 장포와 복양흥을 광주로 귀양보내고, 도중에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2][3] 손호는 장포를 미워하여 총신 하정의 이름을 하포로 고치게 했다.[2]
3.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비고 |
---|---|---|
차녀 | 장미인 | 후궁에 들어가 미인이 되어 손호의 총애를 받았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말해 손호에게 살해당했다. |
장녀 | 장부인 | 풍순에게 시집갔으나 손호가 강제로 후궁에 들여 좌부인으로 삼았다. 손호의 극진한 총애를 받았다. |
[1] 손호는 장미인의 미모를 아쉬워하며 나무로 조각상을 만들어 곁에 두었고, 장부인이 죽은 후에는 호화롭게 장례를 치르고 슬픔에 잠겨 반년이나 후궁에 틀어박혔다.
4. 평가
(요약 없음)
(참조할 원문 소스 없음)
4. 1.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제119회와 제120회에 등장한다. 제119회에서는 손침 암살 장면에 나오며 역사 기록과 거의 비슷하게 활약한다. 제120회에서는 복양흥과 함께 포학해지고 주색을 탐하는 손호에게 간하다가 참수당하고 삼족이 멸해진다.[5]참조
[1]
서적
Sanguozhi
[2]
서적
삼국지
[3]
서적
삼국지
[4]
서적
삼국지
[5]
서적
삼국지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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