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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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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주교도소는 1908년 광주감옥 전주분감으로 시작하여, 전주형무소, 전주교도소로 개칭되어 현재 전주시에 위치한 교정 시설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정치범이 수감되었고, 한국 전쟁 중에는 집단 피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61년 전주교도소로 개칭되었으며, 1972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주요 사건으로 2005년 수감자 탈옥 사건과 2015년 귀휴 후 미복귀 사건이 있었으며, 수용자 심신 치유실 설치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현재는 총무과, 보안관리과 등 8개 과로 조직되어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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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도소
기본 정보
이름전주교도소
설치년도1908년
국가대한민국
주소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상급기관광주지방교정청
웹사이트전주교도소 웹사이트

2. 역사

1908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직전에 광주감옥 전주분감으로 전주에 설립되었다.[1] 1920년 전주감옥으로 승격되었다.[1] 1923년 전주형무소로 개칭되었다.[1] 신건설사 사건으로 체포된 좌익 문예인들이 수감되는 등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혼란기 속에 많은 정치범들이 수감되었다.[1] 특히 대한민국 건국 무렵 제주 4·3 사건으로 체포된 좌익수들이 수감되어, 전주형무소의 정원이 900여명일 때 정원의 두 배가 넘는 1,900여명이 갇혀 있었다.[1] 한국 전쟁 중 정치범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이 이 곳에서 집단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2]

1961년에 전주교도소로 개칭되었다.[1] 1972년에는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3가의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1]

2. 1.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

1908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직전에 광주감옥 전주분감으로 전주에 설립되었다.[1] 1920년 전주감옥으로 승격되었다.[1] 1923년 전주형무소로 개칭되었다.[1] 신건설사 사건으로 체포된 좌익 문예인들이 수감되는 등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혼란기 속에 많은 정치범들이 수감되었다.[1] 특히 대한민국 건국 무렵 제주 4·3 사건으로 체포된 좌익수들이 수감되어, 전주형무소의 정원이 900여명일 때 정원의 두 배가 넘는 1,900여명이 갇혀 있었다.[1] 한국 전쟁 중 정치범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이 이 곳에서 집단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2]

2. 2.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61년에 전주교도소로 개칭되었다.[1] 1972년에는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3가의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1]

3. 사건 및 논란

2005년 7월 11일, 절도 및 강도 등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수감자 최병국(29)이 운동 시간에 탈옥했다가 51시간 만인 7월 13일에 검거되었다.[3][4] 최병국은 "딸이 보고 싶어 탈옥을 결심했다"고 진술했으며, 교도소 측의 재소자 처우에 불만이 있었다고 밝혔다.[3][4] 이 사건으로 최병국에게는 도주죄, 납치강도, 절도 등의 혐의가 추가 적용되었다.[3][4]

1988년 강도 살인 미수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1995년 출소후 4개월만에 살인, 절도, 사체손괴 등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1996년 3월부터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어 복역중이던 홍승만(47)은 2015년 4월 17일 4박5일의 귀휴를 나간 뒤, 2015년 4월 21일 연락이 두절되었다. 전주교도소는 "평소 수감 생활이 워낙 모범적이었기 때문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복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가 경찰 등 관계 기관과 협력해 홍승만의 위치를 파악하는 등 소재를 파악 중이며 전국에 현상금 1000만원으로 공개수배를 하였다.[6][7]

전주교도소는 수용자 스트레스 해소와 심신 안정을 통한 교정 교화와 건전한 사회복귀를 위해 ‘심신 치유실’을 개관했다. 심신 치유실엔 노래방과 두더지 잡기 게임기 2대가 설치됐다. 노래방은 1명이 이용할 수 있는 6.6㎡ 규모의 방과 2명이 이용할 수 있는 9.9㎡ 규모의 방 등 3개실이 있다. 사용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로 모든 수용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전주교도소는 교정협의회 도움을 받아 2020년초부터 5000만원을 들여 설치했으나,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되었다.

3. 1. 주요 사건

2005년 7월 11일, 절도 및 강도 등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수감자 최병국(29)이 운동 시간에 탈옥했다가 51시간 만인 7월 13일에 검거되었다.[3][4] 최병국은 "딸이 보고 싶어 탈옥을 결심했다"고 진술했으며, 교도소 측의 재소자 처우에 불만이 있었다고 밝혔다.[3][4] 이 사건으로 최병국에게는 도주죄, 납치강도, 절도 등의 혐의가 추가 적용되었다.[3][4]

2015년 4월 17일에는 강도 살인 미수 및 살인, 절도 등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홍승만(47)이 귀휴를 나갔다가 복귀하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6][7] 홍승만은 귀휴 기간 중 교도소 복귀를 보증하는 조건으로 가족과 시간을 보냈으나, 4월 21일 오전 11시부터 연락이 두절되었다. 전주교도소는 홍승만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경찰 등 관계 기관과 협력하는 한편, 전국에 현상금 1000만원을 걸고 공개수배했다.[6][7]

3. 2. 논란

2004년 8월 절도, 강도 등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2005년 1월부터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어 복역중이던 최병국(29)이 2005년 7월 11일 오전 11시40분경 운동시간에 탈옥하여 51시간만인 7월 13일 오후 1시50분경 검거되었다.[3][4] 최병국은 "수감후 아내와 딸이 면회를 오지 않아 딸이 보고 싶어 탈옥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3]

1988년 강도 살인 미수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1995년 출소후 4개월만에 살인, 절도, 사체손괴 등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1996년 3월부터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어 복역중이던 홍승만(47)은 2015년 4월 17일 4박5일의 귀휴를 나간 뒤, 2015년 4월 21일 연락이 두절되었다. 전주교도소는 "평소 수감 생활이 워낙 모범적이었기 때문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복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가 경찰 등 관계 기관과 협력해 홍승만의 위치를 파악하는 등 소재를 파악 중이며 전국에 현상금 1000만원으로 공개수배를 하였다.[6][7]

전주교도소는 수용자 스트레스 해소와 심신 안정을 통한 교정 교화와 건전한 사회복귀를 위해 ‘심신 치유실’을 개관했다. 심신 치유실엔 노래방과 두더지 잡기 게임기 2대가 설치됐다. 노래방은 1명이 이용할 수 있는 6.6㎡ 규모의 방과 2명이 이용할 수 있는 9.9㎡ 규모의 방 등 3개실이 있다. 사용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로 모든 수용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전주교도소는 교정협의회 도움을 받아 2020년초부터 5000만원을 들여 설치했으나,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되었다.

4. 조직

조직은 총무과, 보안관리과, 직업훈련과, 복지지원과, 교육교화과, 분류심사과, 보건의료과, 출정사무과로 이루어져 있다. 출정사무과는 2001년에 구치업무 병행 8개 대형교도소에 법무부령으로 신설되었다. 교도소 구호는 "사랑과 봉사의 생활화"이다.

참조

[1] 뉴스 "난 쌀 한 되 준 것밖에 죄가 없다" http://www.jejusori.[...] 제주의소리 2007-10-17
[2] 뉴스 '북한 종군실화' 속 민간인 학살사건 추적 - 경상대 신경득 교수, <로동신문> 등 자료 훑어 책 펴내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2-07-04
[3] 뉴스 전주교도소에서 재소자 탈옥 https://news.naver.c[...]
[4] 뉴스 탈옥수 최병국 대전서 검거(종합2보) https://news.naver.c[...]
[5] 뉴스 전주교도소 잠적 무기수 펜팔 애인도 만나 http://www.yonhapnew[...]
[6] 뉴스 전주교도소 무기징역 수감자 귀휴 뒤 잠적 http://www.yonhapnew[...]
[7] 뉴스 무기수 홍승만, 행방묘연...공개수배 현상금 1000만원 http://o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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