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항공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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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1항공함대는 1941년 1월 일본 해군에 의해 창설된 기지 항공 부대 통합 지휘를 위한 항공 함대이다.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여 필리핀, 말레이, 자바 등지에서 항공전을 수행했으며, 과달카날 전투에도 참여했다. 1942년 남동방면함대에 배속되어 솔로몬 제도 전역에서 활동했으나, 이후 전력 약화로 인해 자급자족하며 종전을 맞이했다. 1945년 9월 라바울에서 호주에 항복하며 해체되었다. 초대 사령장관은 가타기리 에이키치 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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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항공함대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 |
---|---|
부대 정보 | |
부대 명칭 | 제11항공함대 |
원어 명칭 | (다이쥬이치코쿠칸타이) |
영문 명칭 | 11th Air Fleet |
활동 기간 | 1941년 1월 15일 ~ 1945년 9월 6일 |
국가 | 일본 제국 |
소속 | 일본 제국 해군 |
병과 | 해군 항공대 |
종류 | 항공함대 |
역할 | (정보 없음) |
규모 | (정보 없음) |
명령 체계 | (정보 없음) |
본부 | (정보 없음) |
별명 | (정보 없음) |
표어 | (정보 없음) |
색 | (정보 없음) |
군가 | (정보 없음) |
마스코트 | (정보 없음) |
장비 | (정보 없음) |
참전 |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 |
훈장 | (정보 없음) |
주요 지휘관 | (정보 없음) |
지휘관 | |
지휘관 | (정보 없음) |
관련 | |
소속 | 남동방면함대 |
2. 역사
1930년대 후반, 일본 해군은 기지 항공 부대의 통합 운용 필요성을 인식했다. 1938년 9월 6일 재가된 '1938년(쇼와 13년)도 제국 해군 작전 계획'에 따라, 일본 열도 동쪽 해역을 담당하는 제5함대가 신편됨과 동시에, 동쪽 전면에 배치되는 육상 공격기와 비행정 부대를 연합 함대 사령장관이 직접 지휘하게 되었다. 이는 기지 항공 함대 편성의 맹아로 여겨진다. 이후, 통일 지휘나 훈련의 정합성 등의 관점에서 기지 항공 부대를 통합한 "함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종래의 함대령이 개정되어 "항공 함대" 편성이 진행되었다.
1940년 11월 5일에 재가된 '1941년(쇼와 16년)도 제국 해군 작전 계획'에서 일본 해군은 모함 항공 함대(제1항공함대)와 기지 항공 부대(제11항공함대)를 편성하게 되었다.
1941년 1월 15일, 연합 함대에 부속되어 있던 제1연합항공대, 제2연합항공대, 제4연합항공대가 각각 그 숫자에 "이십"이 더해져 항공전대로 개칭되었고, 이것들을 통합하여 제11항공함대가 신편되었다.[2] 사령장관은 가타기리 에이키치 중장이었다.
제11항공함대의 신편으로 기지 항공 부대의 지휘 계통이 정리되어 대규모 항공 작전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기지 항공 부대의 전략적 용법에 길을 열었다. 기지 항공 부대를 통일 지휘함으로써, 그 이동력과 장대한 공격 거리를 이용하여 적시 소요 방면에 대병력을 집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광정면의 통제된 비행 초계를 실시할 수 있는 등의 이점이 있었다. 또한 함대의 편성에 의해 관리, 교육 훈련, 보급 등의 능률, 항공 함대의 독립에 의한 기지 항공 부대의 사기 고양의 효과도 있었다.[3]
1941년 4월 10일, 일본 해군은 가노야 해군기지에서 제1항공대(옛 제21항공전대), 다카오 해군기지에서 제23항공대(옛 제23항공전대)를 편성하여 제11항공함대의 전력을 증강하였다.[4] 제22항공전대는 지나방면함대에 배속되었다.[4]
5월, 제11항공함대는 충칭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고, 육군 항공대와의 합동 작전인 102호 작전을 수행하였다.[4] 이 작전에는 96식 육상 공격기를 대신하는 신형 1식 육상 공격기가 투입되었다.[4] 가오슝 기지에 1식 육상 공격기 30기가 배치되어 7월 27일에 첫 출격했다.[4]
7월 30일, 가노야 항공대의 육상 공격기가 충칭에 정박 중이던 미국 군함 투투이라호를 오폭하는 사건(투투이라호 사건)이 발생했다.[4] 이로 인해 근접탄이 발생했고, 조지프 G. 그루 주일 미국 대사는 "미일전은 8야드까지 접근했다"고 경고했다.[4]
8월 11일, 1식 육상 공격기는 제로센의 유도를 받는 항공 기습 작전(오호 작전)을 실시했다.[4] 같은 시기에 실시된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진주와 투투이라호 사건의 영향으로 102호 작전은 8월 말에 종료되었다.[4] 9월 2일, 제11항공함대 등 중국에 주둔하던 대부분의 항공 병력은 일본 내지로 철수했다.[4]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제11항공함대는 필리핀, 말레이, 자바 등 남방 작전에 참전하여 항공전을 하였다. 과달카날 전투가 시작되자, 사령부를 테니안 섬에서 라바울로 이동하여 동남 방면 항공 작전에 참여했다.
1942년 12월 24일, 남동방면함대가 창설되면서 제11항공함대는 남동방면함대 예하로 편입되었다. 이후 라바울에서 종전까지 자급자족하며 부대를 유지했다.
솔로몬 제도 전역에서 패배하고, 트럭섬에서 철수한 후에는 제해권과 제공권을 모두 잃었고, 본토와 라바울에서의 보급선이 끊겨 항복할 때까지 어떠한 작전도 하지 못한 채 자급자족하였다.
1945년 9월 6일, 라바울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국방군에게 항복하였다.[1]
2. 1. 편성 배경
1930년대 후반, 일본 해군은 기지 항공 부대의 통합 운용 필요성을 인식했다. 1938년 9월 6일 재가된 1938년(쇼와 13년)도 제국 해군 작전 계획에 따라, 일본 열도 동쪽 해역을 담당하는 제5함대가 신편됨과 동시에, 동쪽 전면에 배치되는 육상 공격기와 비행정 부대를 연합 함대 사령장관이 직솔하게 되었다. 이는 기지 항공 함대 편성의 맹아로 여겨진다. 이후, 통일 지휘나 훈련의 정합성 등의 관점에서, 기지 항공 부대를 통합한 "함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종래의 함대령이 개정되어 "항공 함대" 편성이 진행되었다.1940년(쇼와 15년) 11월 5일에 재가된 1941년(쇼와 16년)도 제국 해군 작전 계획에서, 일본 해군은 모함 항공 함대(제1항공함대)와 기지 항공 부대(제11항공함대)를 편성하게 되었다.
1941년 1월 15일, 연합 함대에 부속되어 있던 제1연합항공대, 제2연합항공대, 제4연합항공대가 각각 그 숫자에 "이십"이 더해져 항공전대로 개칭되었고, 이것들을 통합하여 제11항공함대가 신편되었다.[2] 사령장관은 가타기리 에이키치 중장이었다.
제11항공함대의 신편에 의해 기지 항공 부대의 지휘 계통은 정리되어, 대규모 항공 작전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기지 항공 부대의 전략적 용법에 길을 열었다. 기지 항공 부대를 통일 지휘함으로써, 그 이동력과 장대한 공격 거리를 이용하여, 적시 소요 방면에 대병력을 집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광정면의 통제된 비행 초계를 실시할 수 있는 등의 이점이 있었으며, 또한 함대의 편성에 의해, 관리, 교육 훈련, 보급 등의 능률, 항공 함대의 독립에 의한 기지 항공 부대의 사기 고양의 효과도 있었다.[3]
2. 2. 중일 전쟁
1941년 4월 10일, 일본 해군은 가노야 해군기지에서 제1항공대(옛 제21항공전대), 다카오 해군기지에서 제23항공대(옛 제23항공전대)를 편성하여 제11항공함대의 전력을 증강하였다.[4] 제22항공전대는 지나방면함대에 배속되었다.[4]5월, 제11항공함대는 충칭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고, 육군 항공대와의 합동 작전인 102호 작전을 수행하였다.[4] 이 작전에는 96식 육상 공격기를 대신하는 신형 1식 육상 공격기가 투입되었다.[4] 가오슝 기지에 1식 육상 공격기 30기가 배치되어 7월 27일에 첫 출격했다.[4]
7월 30일, 가노야 항공대의 육상 공격기가 충칭에 정박 중이던 미국 군함 투투이라호를 오폭하는 사건(투투이라호 사건)이 발생했다.[4] 이로 인해 근접탄이 발생했고, 조지프 G. 그루 주일 미국 대사는 "미일전은 8야드까지 접근했다"고 경고했다.[4]
8월 11일, 1식 육상 공격기는 제로센의 유도를 받는 항공 기습 작전(오호 작전)을 실시했다.[4] 같은 시기에 실시된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진주와 투투이라호 사건의 영향으로 102호 작전은 8월 말에 종료되었다.[4] 9월 2일, 제11항공함대 등 중국에 주둔하던 대부분의 항공 병력은 일본 내지로 철수했다.[4]
2. 3. 태평양 전쟁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제11항공함대는 필리핀, 말레이, 자바 등 남방 작전에 참전하여 항공전을 하였다. 과달카날 전투가 시작되자, 사령부를 테니안 섬에서 라바울로 이동하여 동남 방면 항공 작전에 참여했다.1942년 12월 24일, 남동방면함대가 창설되면서 제11항공함대는 남동방면함대 예하로 편입되었다. 이후 라바울에서 종전까지 자급자족하며 부대를 유지했다.
솔로몬 제도 전역에서 패배하고, 트럭섬에서 철수한 후에는 제해권과 제공권을 모두 잃었고, 본토와 라바울에서의 보급선이 끊겨 항복할 때까지 어떠한 작전도 하지 못한 채 자급자족하였다.
1945년 9월 6일, 라바울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국방군에게 항복하였다.[1]
3. 지휘부
제11항공함대의 지휘부는 사령장관과 참모장으로 구성되었다. 사령장관은 함대 지휘를, 참모장은 사령관 보좌 및 작전 계획, 실행을 지원했다.
역대 사령장관은 가타기리 에이키치 중장, 쓰카하라 니시조 중장[1], 구사카 지니치 중장 등이다.
역대 참모장은 오니시 타키지로 소장, 사카마키 무네타카 소장, 나카하라 요시마사 소장/중장,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 토미오카 사다토시 소장, 이리후네 나오사부로 중장 등이며, 이들은 남동방면함대 참모장 등을 겸임하기도 했다.
3. 1. 사령장관
계급 | 성명 | 취임일 | 이임일 | 겸임 |
---|---|---|---|---|
중장 | 가타기리 이키치 | 1944년 1월 15일 | | | |
중장 | 쓰카하라 니시조 | 1941년 9월 10일 | | | |
중장 | 구사카 진이치 | 1942년 10월 24일 | 1945년 9월 6일 |
3. 2. 참모장
계급 | 성명 | 취임일 | 이임일 | 겸임 |
---|---|---|---|---|
소장 | 오니시 다키지로 | 1941년 1월 15일 | ||
소장 | 사카마키 무네타카 | 1942년 2월 10일 | ||
소장 중장 | 나카하라 요시마사 | 1942년 12월 24일 1943년 11월 1일 | 남동방면함대 참모장 | |
소장 | 구사카 류노스케 | 1943년 11월 29일 | 남동방면함대 참모장 | |
소장 | 도미오카 사다토시 | 1944년 4월 6일 | 남동방면함대 참모장 | |
중장 | 이리후네 나오사부로 | 1944년 11월 7일 | 남동방면함대 참모장 제8근거지부대 사령관 | |
1944년 12월 1일 | 남동방면함대 참모장 |
3. 3. 주요 참전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제11항공함대는 필리핀, 말레이, 자바 해전 등에서 항공전을 수행했다.[4] 1942년 12월 24일 남동방면함대가 창설되면서 제11항공함대는 남동방면함대 예하로 들어갔고, 사령장관 구사카 진이치 중장이 남동방면함대 사령장관을 겸임하였다.[4]솔로몬 제도 전역에서 패배하고 트럭섬에서 철수한 이후에는 제해권과 제공권을 모두 잃었고, 본토와 라바울에서의 보급선이 끊겨 항복할 때까지 자급자족하며 어떠한 작전도 수행하지 못했다.[4]
라바울에 주둔하던 중, 1945년 9월 6일 오스트레일리아 국방군에게 항복하였다.[4]
3. 4. 구성
제11항공함대의 구성은 시기에 따라 변동되었다. 주로 항공전대와 해군항공대, 구축함 등으로 구성되었다.[2]날짜 | 하위 부대 |
---|---|
1941년 1월 15일 (창설) | 제21항공전대, 제22항공전대, 제24항공전대 |
1941년 12월 10일 | 제21항공전대, 제22항공전대, 제23항공전대, 제34구축대 (아키카제, 하카제, 타치카제), 보조 항공기 수송함 게이요 마루, 라이온스 마루, 가모가와 마루, 아마기산 마루, 닛코쿠 마루, 타츠가미 마루, 히노 마루 5호, 나나 마루, 제1/제2 요코스카 특별육전대 |
1942년 7월 14일 | 제22항공전대, 제24항공전대, 제25항공전대, 제26항공전대, 제34구축대, 보조 항공기 수송함 라이온스 마루, 게이요 마루, 나고야 마루 |
1942년 12월 24일 | 제22항공전대, 제24항공전대, 제25항공전대, 제26항공전대, 아쓰기 해군항공대, 도요하시 해군항공대, 제802해군항공대, 수상기 모함 아키츠시마, 구축함 아키카제, 타치카제, 보조 항공기 수송함 라이온스 마루, 게이요 마루, 나고야 마루, 고슈 마루, 모가미가와 마루, 후지카와 마루 |
1944년 1월 1일 | 제25항공전대, 제26항공전대, 제151해군항공대, 수상기 모함 아키츠시마, 구축함 아키카제, 타치카제 |
1944년 8월 15일 | 제958해군항공대, 제105항공기지대 |
1945년 9월 6일 | (라바울에서 호주에 항복) |
4. 평가
필리핀, 말레이, 자바 해전 등에서 일본 제국 해군의 주력 항공 부대로 활약하며, 전쟁 초기 일본군의 진격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솔로몬 제도 전역에서 패배하고 트럭섬에서 철수하면서 제해권과 제공권을 모두 잃었다. 이후 본토와 라바울에서의 보급선이 끊기면서 종전까지 자급자족하며 버텼다.
참조
[1]
웹사이트
Vice-Admiral Nishio Tsukahara
https://warfare.gq/d[...]
1999-01-01 # 날짜 정보가 연도만 제공되므로 1월 1일로 설정합니다.
[2]
서적
比島・マレー方面海軍進攻作戦
[3]
서적
比島・マレー方面海軍進攻作戦
[4]
서적
比島・マレー方面海軍進攻作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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