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로버즈는 1922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미국의 배우이다. 그는 해군 복무 이후 연극 배우로 경력을 시작하여, 유진 오닐의 작품들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1950년대 후반 브로드웨이와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1959년 영화 《여정》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는 영화 《밤으로의 긴 여로》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줄리아》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2회 수상하는 등 영화와 텔레비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로버즈는 1997년 미국 국가 예술 훈장을 받았으며, 1999년 케네디 센터 명예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0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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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 비평가 위원회상 남우주연상 1962년 『밤으로의 긴 여로』 남우조연상 1976년 『대통령의 음모』 캐스트상 1999년 『매그놀리아』
주요 작품
2. 초기 생애
일리노이주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제이슨 로버즈 시니어도 배우였다.[92]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진주만 공격 당시 현장에 있었지만 무사히 살아남았다. 1945년에 제대한 후 배우를 목표로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주하여 작은 극단과 라디오, TV에 출연하며 아메리카 연극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2. 1. 가족
로버즈는 1922년 7월 26일 일리노이주시카고에서 배우 제이슨 로버즈 시니어와 호프 맥신 로버즈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1] 그는 독일계, 잉글랜드계, 웨일스계, 아일랜드계, 스웨덴계 혈통이었다.[2][3]
제이슨 로버즈 시니어 1915년경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는데, 이는 그의 성격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2. 2. 해군 복무
1940년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해군에 입대했다.[92] 훈련소와 무선 학교를 마친 후, 1941년 중순양함에 무선병 3등병으로 배치되었다.[4]진주만 공격 당시 노샘프턴은 하와이에서 약 약 160.93km 떨어진 태평양에서 항해 중이었고, 이틀 후에 진주만으로 돌아올 때까지 일본의 하와이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보지 못했다.[5]
노샘프턴은 나중에 과달카날 전투가 벌어진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선에서 산타크루즈 제도 해전에 참여했다.[4] 1942년 11월 30일 밤, 과달카날 북쪽 해역에서 벌어진 타사파롱가 해전에서 노샘프턴은 일본군 어뢰 2발에 맞아 침몰했고, 로버즈는 날이 밝을 무렵까지 물 위에서 버티다가 미 해군 구축함에 의해 구조되었다.
2년 후인 1944년 11월, 로버즈는 경순양함 내슈빌에 무선병으로 탑승하여 필리핀 북부의 민도로 섬 상륙 작전의 기함 역할을 했다. 12월 13일, 필리핀의 네그로스 섬 인근에서 가미카제 항공기의 공격을 받았다. 항공기는 함선의 포트 5인치 포좌 중 하나를 강타했고, 비행기에서 떨어진 폭탄 2발로 함선 중앙부가 화염에 휩싸였다. 이 피해와 223명의 사상자를 낸 내슈빌은 진주만으로 돌아와 워싱턴주 브레머턴의 퓨젯 사운드 해군 조선소 및 중간 유지 보수 시설에서 수리를 받아야 했다.
내슈빌에서 로버즈는 함선 도서관에서 유진 오닐의 희곡 ''이상한 막간극''을 처음 접하고,[9][10] 배우가 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진주만에서 해군 밴드의 사회자를 맡아 몇 번의 웃음을 자아냈고,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9][11]
로버즈는 1946년 1등 하사관으로 해군을 떠났다. 그는 해군 모범 훈장, 미국 방위 복무 훈장, 미국 전역 훈장, 아시아-태평양 전역 훈장,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훈장을 받았다.
3. 경력
로버즈와 모린 스태플턴은 ''창고의 장난감''(브로드웨이, 1960)에 출연했다.
로버즈는 일리노이주시카고 출신으로, 아버지 제이슨 로버즈 시니어도 배우였다.[92] 고등학교 졸업 후 해군에 입대하여 진주만 공격 당시 현장에 있었지만, 무사히 살아남아 1945년에 제대했다. 그 후 배우를 목표로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주하여 작은 극단과 라디오, TV에 출연하며 아메리카 연극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1956년 연극에서 절찬을 받아 브로드웨이에 진출, 여러 연극상을 수상하며 1960년대 연극 무대에서 활약했다. 1958년 '여정'으로 영화 데뷔를 했고, '성 발렌타인의 학살/머신건 시티'에서는 알 카포네를, '묘비와 결투'에서는 닥 할리데이를 연기했다. 이후 영화에 비중을 두기 시작, '대통령의 음모', '줄리아'로 2년 연속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TV 영화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백만장자 가족'과 '필라델피아' 등에서 관록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3. 1. 1947-1961: 연극 데뷔와 성공
로버즈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라디오와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56년,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의 오프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서 '히키' 역을 맡아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오비상을 수상했다.[19] 그는 또한 《밤으로의 긴 여로》의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서 '제이미 타이론 주니어' 역을 맡아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19]
로버즈는 1980년에 F.D.R.: The Last Year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역을 연기했다.[18]
4. 개인 생활
제이슨 로버즈는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으며,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했다. 1972년에는 교통사고로 큰 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알코올 중독 극복과 인식 개선을 위한 공개 캠페인을 벌였다.[38][39] 2000년 12월 26일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에서 폐암으로 사망했으며, 유해는 오크 론 묘지에 안장되었다.[42]
4. 1. 결혼과 가족
로버즈는 네 번 결혼하여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 번째 부인 엘리너 피트먼과의 사이에서 제이슨 3세를 포함한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1959년 4월부터 1961년 5월까지 배우 레이첼 테일러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1961년부터 1969년까지 배우 로렌 바콜과 세 번째 결혼 생활을 했으며, 이 사이에서 배우 샘 로버즈를 낳았다. 로버즈와 바콜은 그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이혼했다.[37] 로버즈는 네 번째 부인 로이스 오코너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를 더 낳았고, 그들은 그가 사망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4. 2. 건강 문제와 사망
1972년, 로버즈는 굽이진 캘리포니아 도로에서 차를 몰다 산 측면에 부딪히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해 대규모 수술과 안면 재건술을 받아야 했다. 이 사고는 그의 오랜 알코올 중독과의 싸움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9][10] 로버즈는 중독을 극복하고 알코올 중독 인식 개선을 위한 공개적인 캠페인을 벌였다.[38][39]
2000년 12월 26일,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41] 그의 유해는 페어필드에 있는 오크 론 묘지에 묻혔다.[42]
5. 출연 작품
원제
배역
비고
1959
《여행》 The Journey
폴
1961
《사랑하기 때문에》 By Love Possessed
줄리어스
1962
《밤은 다시 오지 않는다》 Tender Is the Night
딕
《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제이미 타이론
1965
《천재의 사랑》 A Thousand Clowns
머레이
1966
텍사스의 5인의 친구 A Big Hand for the Little Lady
헨리
《수요일엔 괜찮아》 Any Wednesday
존
1967
성 바렌타인의 학살/머신건 시티 'The St. Valentines Day Massacre''
로버즈는 8번의 토니상 후보에 올랐으며, 이는 2020년 현재 다른 남성 배우보다 많은 기록이다.[66] 1959년 연극 ''The Disenchanted''에서 열연하여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영화 ''워싱턴의 사람들''(1976)에서 워싱턴 포스트 편집장 벤 브래들리 역으로, ''줄리아''(1977)에서 작가 대실 해미엇 역으로 출연하여 2년 연속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67]
로버즈는 텔레비전 영화 ''풍선''(1988)에서 열연하여 프라임타임 에미상 리미티드 시리즈 또는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68] 1997년 로버즈는 미국 국민을 대표하여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영예인 미국 국가 예술 훈장을 받았다. 1999년에는 미국 문화에 평생 기여한 공연 예술가들에게 수여되는 연례 명예상인 케네디 센터 명예상 수상자 중 한 명이었다.[69]
로버즈는 리히텐슈타인 크리에이티브 미디어가 제작한 공영 라디오 다큐멘터리 ''정신 분열증: 질병의 목소리''의 내레이션을 맡았으며, 이 작품은 1994년 방송 우수상을 위한 조지 포스터 피바디 상을 수상했다. 로버즈는 1979년에 미국 극장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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