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나로 가투소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이다. 선수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AC 밀란에서 2002-03, 2006-07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하여 여러 차례 우승을 경험했다.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2006년 FIFA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2006년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하여 파르마, 피사, AC 밀란, 나폴리, 발렌시아 등을 지휘했으며, 2019-20 시즌에는 SSC 나폴리를 이끌고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는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의 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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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 FIFA 월드컵 우승 2000 슬로바키아 UEFA 유럽 U-21 선수권 대회 우승
훈장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
Ufficiale OMRI
2. 클럽 경력
2. 1. 초창기
젠나로 가투소는 이탈리아 코리글리아노칼라브로에서 태어났다.[12][13] 그는 움브리아 지역의 페루자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12][13] 1997년 7월, 19세의 나이로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레인저스로 이적했다.[12][13] 페루자는 레인저스가 가투소를 불법적으로 영입했다고 주장하며 FIFA에 제소했지만 실패했다.[14] 가투소는 처음에는 레인저스 이적을 거부했지만, 아버지의 설득으로 이적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15]
가투소는 시즌 개막전에서 하트와의 경기에서 81분에 교체 출전하며 레인저스 데뷔전을 치렀고, 레인저스는 3-1로 승리했다.[16] 그는 스트라스부르와의 UEFA컵 1라운드 경기에서 첫 골을 넣었지만, 레인저스는 합계 4-2로 패했다.[17] 1997년 12월 20일 하트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레드 카드를 받았다.[18] 1998년 4월 25일 하트와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19] 데이비드 머레이 구단 회장은 "19세의 나이에 그렇게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며 그를 "무명의 영웅"으로 묘사했다.[20] 스코틀랜드컵 결승전에서 가투소는 전 경기에 출전했지만, 레인저스는 하트에 2-1로 패했다.[21]
가투소를 글래스고로 데려온 월터 스미스는 1998년에 구단을 떠났다.[22] 그의 후임인 딕 아드보카트는 가투소를 선호하지 않았고, 그를 오른쪽 풀백으로 기용했다.[23] 그는 1998년 10월 당시 승격한 세리에 A 클럽 살레르니타나로 400만 파운드에 이적했다.[84][25]
2. 2. AC 밀란
젠나로 가투소는 1999년 8백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AC 밀란에 합류했다.[27] 1999년 9월 15일 UEFA 챔피언스리그 첼시 FC와의 원정 경기(0-0 무승부)에서 데뷔전을 치렀고,[28] 곧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1999년 10월 24일 첫 번째 밀란 더비 경기에서 당시 세계 최고 선수로 널리 인정받던 인터 밀란의 공격수 호나우두를 상대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29]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체제에서 가투소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안드레아 피를로를 지원하며, 이 미드필더 듀오는 AC 밀란의 국내외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의 업적에는 2002-03 코파 이탈리아, 2002-03 UEFA 챔피언스리그, 2003 UEFA 슈퍼컵, 2003-04 세리에 A 우승, 2004 슈퍼코파 이탈리아나 등이 포함된다.[7][30] 가투소는 2003년 6월[31]과 2004년 10월[32]에 AC 밀란과 재계약을 맺었다.
2007년 5월 가투소
가투소는 2006년 9월 26일 릴 OSC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AC 밀란 소속으로 300경기를 출전했고,[35] 2007년 2월 1일 계약을 2011년까지 연장했다.[35] 2007년 5월 23일, AC 밀란이 리버풀 FC를 2-1로 꺾은 2007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36][37]
2008년 12월, 칼초 카타니아전에서 전방십자인대를 손상하여 장기간 결장했다.[158] 2009년 8월 22일, 2009-10 세리에 A 시즌 개막전 시에나와의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AC 밀란 소속으로 400번째 경기에 출전했다.[28] 2009년 12월 14일, AC 밀란은 가투소와의 계약을 2012년 6월 30일까지 1년 더 연장했다고 발표했다.[38]
2010-11 세리에 A 시즌, 가투소는 3년 만에 득점을 기록했는데, 2011년 3월 5일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왼발 슛으로 결승골을 터트렸다.[39] 가투소는 5월 7일 AS 로마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며 AC 밀란의 18번째 스쿠데토 우승을 자축했다.[40]
2011년 9월, 시즌 개막 며칠 전부터 시력 문제를 겪었다.[41] 2011년 9월 9일, SS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동료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충돌하여 왼쪽 외전 신경 마비 진단을 받고 복시 증상을 겪었다.[42]
2012년 5월 11일, 가투소는 시즌 종료 후 AC 밀란을 떠날 것이라고 확인했다.[43]
2. 3. FC 시옹
2012년 6월 15일, AC 밀란에서 방출된 가투소는 스위스 클럽 지옹에 합류했다.[44] 그는 스코틀랜드의 전 소속팀 레인저스와의 계약이 유력했으나, 클럽의 재정난으로 인해 무산되었다.[44] 2013년 2월 25일, 가투소는 스위스 슈퍼리그에서 툰에게 0-4로 패한 후 감독 빅토르 무뇨스가 스카우트 역할로 강등되면서 지옹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45] 5월에 경질되었다.[162]
가투소는 1995년 UEFA U-18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이탈리아 U-18 대표팀 소속으로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스페인에 1-4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52] 2000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이탈리아 U-21 대표팀 소속으로 결승전에서 체코를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53]
가투소는 2000년 2월 23일, 디노 초프 감독 아래에서 스웨덴과의 친선 경기(1-0 홈 승리)에 데뷔하며 성인 대표팀 경력을 시작했다.[57] 같은 해 11월 15일,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아래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A매치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58][59]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첫 경기인 에콰도르전(2-0 승리)[60]과 16강전 대한민국전(연장전 끝 1-2 패배)[61] 에 교체 출전했다. UEFA 유로 2004에서는 조별리그 첫 두 경기인 덴마크전(0-0)[62]과 스웨덴전(1-1)[63] 에 출전했으나, 두 경기에서 경고를 받아 불가리아와의 최종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63]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가투소는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핵심 선수로서, 안드레아 피를로와 함께 중원에서 강력한 조합을 이루었다.[7][30] 가투소는 뛰어난 활동량과 태클 능력으로 피를로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지원했으며,[7][30] 대회 동안 가장 많은 태클(47회)을 성공시켰다.[67][68] 조별 리그 체코전에서는 필리포 인자기의 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다.[69] 프랑스와의 결승전 승리 후에는 팬티만 입고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다.[70] 가투소는 대회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71]
UEFA 유로 2008에서는 조별 리그 네덜란드전(0-3 패배)[72]과 프랑스전(2-0 승리)[73] 에 출전했지만, 스페인과의 8강전에는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했고, 이탈리아는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74][75][76] 2008년 11월 19일, 그리스와의 친선 경기에서는 파비오 칸나바로와 교체되어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임했다.[77]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참가했지만,[78] 이탈리아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79] 2010년 6월, 가투소는 2010년 FIFA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81] 그의 마지막 경기는 슬로바키아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3-2 패배)이었다.[82]
젠나로 가투소는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83] 주로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지만, 다재다능함 덕분에 측면, 풀백, 윙백, 윙어, 중앙 수비수로도 기용되었다.[5]
2007년 가투소
가투소는 신체적으로 강하고 꾸준하며 공격적이고, 강력한 태클을 하는 미드필더였으며,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했다.[8][9][85] 또한 강력한 슈팅 능력, 빠른 반응 속도, 뛰어난 위치 선정 능력과 예측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6][7] 그의 경기 방식은 거친 태클과 엄청난 활동량으로 요약할 수 있다. 수비 상황에서 깊숙이 수비에 가담하며, 종종 전방으로 나가 공을 뺏은 후 공격수에게 연결하고 수비를 위해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곤 한다.
마우로 타소티 감독 밑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개선했고,[84][6] 전성기에는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았다.[6] 그의 에너지 넘치고 투쟁적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스타일, 속도, 전술적 인식, 그리고 볼 획득 능력은 안드레아 피를로와 성공적인 미드필드 짝을 이루도록 했다. 가투소의 수비적인 위치는 피를로와 다른 동료들을 수비적으로 지원하여 상대팀의 공격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종종 볼을 가로채고 더 창의적이거나 공격적인 동료에게 패스한 후, 다시 수비적인 미드필더 역할로 돌아왔다. 그의 치열한 태클과 지구력으로 보여주는 투지 덕분에 "링히오"(Ringhio, 으르렁거림)라는 별명을 얻었다.[7][30]
카를로 안첼로티는 "제가 공격적인 축구를 지향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덕분입니다. 그가 더러운 일을 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른바 불균형적인 시스템을 채택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155] 축구 실력 외에도 경쟁심, 결단력, 리더십으로도 두각을 나타냈다.[10][11]
5. 감독 경력
2013년 6월, 세리에 B로 강등된 파르마의 감독에 취임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단 6경기 만에 경질되었다.[163]
2014년 6월, 그리스 수페르리그의 OFI 크레타 감독에 취임했다.[164] 10월 26일, 일단 사임을 표명했지만,[165] 다음 날 철회했다.[166] 그러나 12월, 급여 미지급 등을 이유로 다시 사임했다.[167]
2015년 8월, 레가 프로(이탈리아 3부 리그)의 피사 감독에 취임했다. 2015-16 시즌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세리에 B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 포자와의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합계 4-2로 승리하여 팀을 7년 만에 세리에 B로 승격시켰다.[168] 하지만 기쁨도 잠시, 시즌 종료 후 계약을 둘러싸고 파비오 페트로니 회장과 갈등을 빚어 2016년 7월 31일 사임을 발표했다. 그러나 다음 달 피사는 중동 투자 회사에 인수되었고, 새로운 구단주가 된 투자 회사는 가투소의 복귀를 추진하여 2016년 9월 2일 복귀했다.[169] 극적인 복귀로 맞이한 2016-17 시즌은 리그 최소 실점인 36점을 기록했지만, 득점은 23점에 그치며 공격진이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40라운드에서 AS 치타델라에 패하며 단 1년 만에 레가 프로 강등이 확정되었고, 시즌 종료 후 가투소도 팀을 떠났다.[170]
2017년 5월 26일, 친정팀 AC 밀란의 프리마베라 감독 취임이 발표되었다.[171] 계약 기간은 2년이었다.
2018-19 시즌 4위 인테르에 승점 1점 차로 밀려 UCL 출전권을 놓쳤고, 2019년 5월 28일, 사임이 발표되었다.[173]
2019년 12월 11일, SSC 나폴리 감독 취임이 발표되었다.[174]코파 이탈리아에서는 결승에서 유벤투스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우승을 이끌었고,[175] 지도자로서의 커리어 이후 첫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리그에서는 부진하여 2019-20 시즌 7위로 마무리했다. 2020-21 시즌에도 5위에 그치며 시즌 종료 후 경질되었다.
2021년 5월 25일, ACF 피오렌티나 감독 취임이 발표되었다.[176][177] 그러나 선수 영입을 둘러싸고 구단 측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단 한 경기도 지휘하지 못하고 6월 17일 상호 합의 하에 사임이 발표되었다.[178]
2022년 6월 9일, 발렌시아 CF 감독에 취임했다는 것이 발표되었다.[179][180] 계약 기간은 2024년 6월까지 2년이었지만, 성적 부진으로 불과 6개월 만에 계약이 해지되었다.[181]
2023년 9월 27일, 올림피크 드 마르세이유 감독 취임이 발표되었다.[182] 그러나 2024년에 접어들면서 공식전 7경기 무승 등 결과를 내지 못하고, 불과 5개월 만에 경질되었다.[183]
2024년 6월 13일, 2026년까지의 계약으로 하이두크 스플리트 감독에 취임했다는 것이 발표되었다.[184]
5. 1. 시옹
가투소는 2011년 AC 밀란에서 선수로 활동하던 중 UEFA A 라이선스 과정에 참여하며 감독 경력을 시작했고, 7월에 시험에 합격했다.[86]
2013년 2월 25일, 가투소는 스위스 슈퍼리그에서 툰에게 0-4로 패한 후 감독 빅토르 무뇨스가 스카우팅 역할로 강등되면서 시옹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45] 가투소는 2012-13 시즌에 클럽의 다섯 번째 감독이었다.[45] 2013년 2월 27일, 가투소는 로잔을 원정에서 2-0으로 이기며 감독으로서 첫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 경기는 스위스컵(Swiss Cup) 경기였다.[87] 가투소는 2013년 5월 13일에 해임되었다.[88]
5. 2. 팔레르모
2013년 5월 말, 시칠리아 팀이 세리에 B로 강등된 후 팔레르모 감독직과 강하게 연결되었다. 2013년 6월 3일, 마우리치오 잠파리니는 당시 감독인 주세페 산니노와의 계약 해지 조건으로 가투소와 구두 합의를 했다고 확인했다.[89] 가투소가 시옹과의 계약을 해지한 후 6월 19일에 공식적으로 임명되었다.[89] 가투소는 시옹에서 함께 일했던 루이지 리치오를 수석 코치로 임명했다.[89]
하지만 그의 ''로사네로''(팔레르모의 별칭) 감독으로서의 경험은 짧았다. 리그 시즌 초 6경기에서 2승 1무에 그친 후 2013년 9월 25일에 해임되었다.[90]
2013-14 시즌 동안 그는 UEFA 프로 라이선스 과정을 수강했고, 2014년 9월 시험에 합격했다.[91]
5. 3. OFI 크레테
2014년 6월 5일, 가투소는 그리스 수페르리가의 OFI 크레테 감독으로 임명되었다.[92] OFI 크레테 감독으로 재직하는 동안 구단의 열악한 재정 상황으로 인해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가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가투소는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93][94]
2014년 10월 26일, 아스테라스 트리폴리스와의 홈 경기에서 2-3으로 패한 후 가투소는 OFI 크레테 감독직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95] 구단 팬들과 이사진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꿔 감독직을 유지하기로 했다.[96] 그러나 2014년 12월 30일, 가투소는 구단의 재정 문제로 인해 OFI 크레테 감독직에서 공식적으로 사임했다.[97]
이후 2015년 1월, 그는 알렉스 닐의 퇴임 후 스코틀랜드 클럽 해밀턴 아카데미컬 감독직에 지원했다.[98]
5. 4. 피사
가투소는 2015년 8월 20일 당시 레가 프로 소속이었던 피사(A.C. Pisa 1909)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99] 2016년 6월 12일, 그는 포지아를 합계 5-3으로 누르고 레가 프로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승리하여 피사를 세리에 B로 승격시켰다.[100] 그러나 7월 31일, 그는 "심각하고 지속적이며 용납할 수 없는" 클럽 내 문제를 언급하며 갑자기 피사를 떠났다.[101] 클럽을 떠난 지 한 달 후, 그는 피사의 감독으로 다시 합류했다.[102] 그러나 다음 시즌 피사는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고, 최고 수준의 수비력을 갖췄지만 공격력이 최악이었으며, 가투소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완전히 사임했다.
5. 5. AC 밀란
2017년 5월, 가투소는 AC 밀란 프리마베라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103] 그는 2007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자인 전 선수 중 프리마베라 팀 감독을 맡은 세 번째 인물이었다. 필리포 인자기(2013-14)와 크리스티안 브로키(2014-2016)가 그 전에 프리마베라 팀 감독을 역임했다. 이들은 클라렌스 세이도르프(역시 전 밀란 선수이자 2007년 챔피언스리그 우승자)와 시니사 미하일로비치의 경질 이후 1군 팀 감독직을 맡기도 했다.[104] 캄피오나토 나치오날레 프리마베라 10라운드(11월 26일 종료) 기준으로, 밀란 프리마베라 팀은 리그 1부(총 16개 팀)에서 3위를 기록했다.[105]
2017년 11월 27일, 빈첸초 몬텔라가 AC 밀란에서 경질되었다. 이후 AC 밀란은 19세 이하 팀 감독직을 맡았던 가투소를 1군 감독으로 임명했다.[106] 그는 12월 10일 세리에 A에서 볼로냐를 상대로 2-1 홈 승리를 거두며 첫 승리를 기록했다.[107] 밀란은 그 시즌을 6위로 마쳤다.
2018년 4월, 가투소의 계약은 2021년까지 연장되었다.[108][109][110] 감독으로서 첫 시즌을 치른 가투소는 밀란을 68점으로 5위에 올려놓았지만, 챔피언스리그 진출에는 1점 차이로 실패했다.[111] 2019년 5월 28일, 그는 상호 합의 하에 밀란을 떠났다.[112]
5. 6. 나폴리
2019년12월 11일, 가투소는 전날 카를로 안첼로티가 경질된 후 나폴리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113]2020년6월 13일에는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 2차전에서 인터 밀란과 홈에서 1대1 무승부를 거두어 합계 2대1로 2020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 진출을 확정지었고, 가투소는 이 업적을 최근 사망한 여동생에게 헌정했다.[114]6월 17일에는 결승에서 유벤투스를 승부차기 끝에 4대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115]
2021년5월 23일, 리그 마지막 날 베로나와의 홈 경기에서 1대1 무승부를 거두며 나폴리는 리그 5위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다.[116] 구단 회장인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는 1년 반 만에 가투소의 나폴리 감독직을 끝냈다.[117]
5. 7. 피오렌티나
2021년5월 25일, 피오렌티나는 가투소를 7월 1일부터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118] 그러나 계약 시작 2주 전인 6월 17일, 가투소와 피오렌티나는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다.[119][120]
5. 8. 발렌시아
2022년 6월 9일, 가투소는 스페인 라리가의 발렌시아 CF의 새로운 감독으로 발표되었으며, 2년 계약을 맺었다.[121] 이로써 그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와 체사레 프란델리에 이어 발렌시아를 이끈 세 번째 이탈리아인 감독이 되었다.[122] 2023년 1월 30일, 그는 발렌시아와 상호 합의 하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123]
5. 9. 마르세유
2023년 9월 27일, 가투소는 프랑스 리그 1의 마르세유의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했다.[124] 2024년 2월 19일, 그는 5개월 만에 해임되었다.[125]
전술적으로 가투소는 감독으로서 4-3-3 포메이션(4–3–3 포메이션)을 자주 사용하지만,[127] 3-4-3(3–4–3)과 4-2-3-1(4–2–3–1) 포메이션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28][129] 자신의 수비적인 선수 시절 스타일과는 달리, 그의 팀들은 후방에서 플레이를 구축하고 패스와 기술에 기반한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팀들은 또한 볼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의 강한 압박과 팀워크로 유명하며, 빠르게 볼을 탈취하기 위해 강한 압박을 사용한다.[127][130] 따라서 그의 스타일은 이탈리아 언론에서 나폴리의 전 감독인 마우리치오 사리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127][130] 가투소는 또한 유머를 통해 긍정적인 팀 분위기를 조성하고, 팀이 투쟁심을 갖는 것을 중요시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130][131][132]
7. 논란
2011년2월 15일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후반 31분경 주심에게 두 번째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2차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된 이후에, 토트넘의 조 조던 코치와 언쟁을 벌이다가 그의 목을 조르고 경기가 끝난 뒤에 박치기를 하였다.[47][48] 이에 가투소의 에이전트는 조 조던 코치가 가투소에게 빌어먹을 이탈리아 잡종/Fucking Italian bastard영어라는 모욕적인 말을 하였다고 밝혔다.[49]
2003년 9월,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서 아약스와의 경기에서 가투소는 후반 추가 시간에 아약스의 스트라이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얼굴을 손등으로 때린 후 퇴장당했다.[46]
그의 격한 성격은 2005년 12월, 밀란이 샬케 04를 3-2로 이긴 챔피언스리그 경기 종료 휘슬 후에도 문제를 일으켰다. 가투소는 샬케의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폴센을 찾아 조롱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46] 이는 폴센이 1차전에서 카카를 거칠게 마크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가투소는 언론이 이 사건의 중요성을 과장했다고 주장했다.
2011년 2월 15일, 밀란의 토트넘 홋스퍼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가투소는 벤치에서 토트넘 코치 조 조던을 목을 잡고 밀쳤다. 조 조던은 허용된 기술 지역 밖에서 가투소와 설전을 벌였는데, 이는 상당히 거친 경기 양상과 관련이 있었다.[47] 경기 후, 가투소가 토트넘 선수들과 악수를 나눈 후, 영상에 따르면 그는 조 조던과 다시 말다툼을 벌인 후 머리로 들이받았고, 동료 선수들과 상대 선수들에게 제지당했다. 33세의 가투소는 "제가 제어력을 잃었습니다. 제가 한 일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조 조던이 경기 내내 자신을 자극했지만 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47][48] 그러나 신문들은 조 조던이 경기 내내 벤치에서 가투소를 향해 "빌어먹을 이탈리아 잡종"이라고 부르는 등 인종차별적인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49] 다음 날, UEFA는 전날 조던에 대한 가투소의 행동에 대한 추가 제재 또는 징계를 검토하고 있으며 "심각한 비스포츠맨십 행위"로 기소되었다고 발표했다.[50] 가투소는 챔피언스리그 5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한 경기는 누적 경고, 나머지 네 경기는 조던과의 사건 때문이었다.[50] 토트넘 코치도 이 사건에 대한 연루로 UEFA로부터 터치라인 출입 금지 처분을 받았다.[51]
2006년에 발각된 칼초 스캔들(Calcioscommesse)에서 유벤투스, 피오렌티나, AC밀란, 라치오, 레지나에 소속되어 있던 선수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안첼로티의 AC밀란에서의 마지막 경기 후, 작별을 아쉬워하며 소리를 내어 울었다.[186]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잔니 리베라와 같은 선수로 키우고 싶어했던 것 같지만, 그는 "옛날부터 그런 선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155]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했을 때, 감독 마르첼로 리피에게 "대표로 남겠다고 맹세해. 남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알겠지"라며 협박을 섞어 기뻐했다.
7. 1. 조 조던 코치와의 충돌
2011년2월 15일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가투소는 후반 31분경 주심에게 두 번째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2차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46] 이후 토트넘의 조 조던 코치와 언쟁을 벌이다가 그의 목을 조르고 경기가 끝난 뒤에 박치기를 하였다.[47][48] 가투소의 에이전트는 조 조던 코치가 가투소에게 "Fucking Italian bastard"(빌어먹을 이탈리아 잡종/Fucking Italian bastard영어)라는 모욕적인 말을 하였다고 밝혔다.[49]
가투소는 "제가 제어력을 잃었습니다. 제가 한 일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조 조던이 경기 내내 자신을 자극했지만 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47][48]
다음 날, UEFA는 전날 조던에 대한 가투소의 행동에 대해 "심각한 비스포츠맨십 행위"로 기소하고 추가 제재 또는 징계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50] 가투소는 챔피언스리그 5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한 경기는 누적 경고, 나머지 네 경기는 조던과의 사건 때문이었다.[50] 토트넘 코치도 이 사건에 대한 연루로 UEFA로부터 터치라인 출입 금지 처분을 받았다.[51]
7. 2.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의 충돌
2003년 9월,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서 아약스와의 경기에서 가투소는 후반 추가 시간에 아약스의 스트라이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얼굴을 손등으로 때린 후 퇴장당했다.[46] 2011년 2월 15일, 밀란의 토트넘 홋스퍼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가투소는 벤치에서 토트넘 코치 조 조던을 목을 잡고 밀쳤다.[47] 경기 후, 가투소가 토트넘 선수들과 악수를 나눈 후, 영상에 따르면 그는 조 조던과 다시 말다툼을 벌인 후 머리로 들이받았고, 동료 선수들과 상대 선수들에게 제지당했다.[47][48] 가투소는 "제가 제어력을 잃었습니다. 제가 한 일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조 조던이 경기 내내 자신을 자극했지만 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47][48] 다음 날, UEFA는 전날 조던에 대한 가투소의 행동에 대한 추가 제재 또는 징계를 검토하고 있으며 "심각한 비스포츠맨십 행위"로 기소되었다고 발표했다.[50] 가투소는 챔피언스리그 5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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