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뱅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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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질 뱅슈아는 1400년경 벨기에 몽에서 태어난 작곡가이다. 그는 15세기 초 유럽의 주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르 봉의 궁정 예배당에서 30여 년간 활동하며 종교 음악과 세속 샹송을 작곡했다. 뱅슈아는 15세기 후반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샹송 "Tristre plaisir et douleureuse joye" 등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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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뱅슈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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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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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질 드 뱅슈아 |
출생 | 1400년경, 몽스 근교 |
사망 | 1460년 9월 20일, 소와니에 |
직업 | 르네상스 시대 프랑코-플랑드르 작곡가 |
2. 생애
질 뱅슈아(Gilles de Bins dit Binchois프랑스어)는 1400년경 벨기에 몽(Mons, Belgium)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아버지 장 드 뱅슈(Jean de Binch)는 빌헬름 4세 에노 백작과 자클린 에노 백작부인의 고문이었으며, 몽의 성 沃德루(Ste Waudru) 교회와 생제르맹(St Germain) 교회를 위해서도 일했다. 뱅슈아는 어린 시절 몽의 법원 근처에서, 아마도 생제르맹에서 성가대원으로 훈련받으며 음악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1419년 12월 8일, 뱅슈아는 몽의 성 沃德루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다. 1423년경 그는 릴로 이주했다. 이 시기에 그는 군 복무를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요하네스 오케겜이 그를 추모하며 작곡한 장례 모테트 ''Deploration for Binchois''의 한 구절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뱅슈아는 백년 전쟁 당시 프랑스에 있었던 서퍽 백작윌리엄 드 라 폴 휘하에서 복무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426년 문서에는 서퍽 공작이 뱅슈아에게 롱델(Rondel (poem)) ''Ainsi que a la foiz m’y souvient''의 작곡을 의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같은 시대의 존 던스터블, 기욤 뒤파이와 동시대 인물로, 그의 작품은 다른 작곡가들이 자주 차용하거나 인용할 정도로 당대 영향력이 컸다.
2. 1. 초기 생애 (1400년경 ~ 1420년대)
질 뱅슈아(1425/Gilles de Bins dit Binchois}})는 1400년경 벨기에 몽(Mons, Belgium)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아버지 장 드 뱅슈(Jean de Binch, {{Died in프랑스어?)는 빌헬름 4세 에노 백작과 자클린 에노 백작부인의 고문이었으며, 몽의 성 沃德루(Ste Waudru) 교회와 생제르맹(St Germain) 교회를 위해서도 일했다. 뱅슈아는 어린 시절 몽의 법원 근처에서, 아마도 생제르맹에서 성가대원으로 훈련받으며 음악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1419년 12월 8일, 뱅슈아는 몽의 성 沃德루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다. 1423년경 그는 릴로 이주했다. 이 시기에 그는 군 복무를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요하네스 오케겜이 그를 추모하며 작곡한 장례 모테트 ''Deploration for Binchois''의 한 구절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뱅슈아는 백년 전쟁 당시 프랑스에 있었던 서퍽 백작윌리엄 드 라 폴 휘하에서 복무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426년 문서에는 서퍽 공작이 뱅슈아에게 롱델(Rondel (poem)) ''Ainsi que a la foiz m’y souvient''의 작곡을 의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뱅슈아는 존 던스터블, 기욤 뒤파이와 동시대 인물로, 그의 작품은 다른 작곡가들이 자주 차용하거나 인용할 정도로 당대 영향력이 컸다.
2. 2. 부르고뉴 궁정에서의 활동 (1420년대 후반 ~ 1453년)

1420년대 후반, 뱅슈아는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르 봉의 궁정 예배당 합창단에 합류하여 약 30년간 활동했다. 1419년부터 1436년까지 예배당의 고용 기록이 유실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1431년 1월 18일에 뱅슈아가 부르고뉴의 사생아 안토니(Anthony, bastard of Burgundy)의 세례식을 위해 작곡한 모테트 ''Nove cantum melodie''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이 시기에는 이미 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음악학자 데이비드 팰로우스(David Fallows)는 "1436년 명단에서 그가 합창단 내에서 5번째 차례의 선임 사제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는 몇 년 전에 합창단에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부르고뉴 궁정은 가장 활기차고 저명한 궁정 중 하나였으며, 그 구성원들은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의 궁정에 비유하기도 했다. 궁정에는 화가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가 있었는데, 미술사가 어윈 파놉스키(Erwin Panofsky)는 그의 ''충실한 기념(Léal Souvenir)'' 초상화가 뱅슈아를 묘사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지만, 널리 받아들여지는 의견은 아니다. 뱅슈아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꼽히는 기욤 뒤파이(Guillaume Du Fay)와도 교류했다. 두 작곡가는 1434년 2월 부르고뉴와 사보이 궁정의 샹베리 회의에서, 그리고 1449년 3월 몽스(Mons)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르탱 르 프랑(Martin le Franc)은 샹베리 회의에서 두 작곡가와 시각 장애가 있는 부르고뉴의 비엘(vielle) 연주자들을 묘사한 시 ''여성들의 옹호자(Le champion des dames)''를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욤 뒤파이 외에도 이 지역의 중요한 동시대 작곡가로는 위고 드 랑탱(Hugo de Lantins)과 아놀드 드 랑탱(Arnold de Lantins)이 있다.
부르고뉴 예배당 합창단은 사제 서품을 받지 않고도 단원이 성직자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한 독특한 곳이었다. 1437년, 뱅슈아는 부제(subdeacon)가 되었으며, 필리프의 총애 덕분에 생도나시앵 성당(St Donatian, Bruges), 생토드뤼 성당(Ste Waudru, Mons), 생뱅상 성당(St Vincent, Soignies), 생피에르 성당(St Pierre, Cassel) 등 적어도 네 개의 교회에서 성직록을 받았다. 그는 1437년 필리프에 의해 명예 궁정 서기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438년 5월 29일에는 필리프가 뱅슈아의 작품 ''새로운 방식의 수난(Passions en nouvelle maniere)'' (현재는 유실됨)의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다. 뱅슈아는 1437년 7월에 여공작의 치통을 치료한 기록이 있어 의학적 경험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시대의 존 던스터블이나 기욤 뒤파이에 가려지기 쉬운 반면, 뱅슈아의 작품은 다른 작곡가들에 의해 작곡 소재로 차용되거나 인용된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당대 누구보다도 영향력이 큰 작곡가였을 것이다.
2. 3. 수아니에서의 만년 (1453년 ~ 1460년)
1453년, 뱅슈아는 부르고뉴 궁정에서 은퇴하여 수아니로 돌아왔다. 그는 수아니의 성 빈센트 참사회원으로 임명되었다. 이 무렵 수아니는 기욤 말베크와 요하네스 레지스가 활동하면서 음악적 우수성으로 명성을 얻었다. 뱅슈아는 릴에서 열린 1454년 꿩의 향연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가 작곡했을 가능성이 있는 모테트 "콘스탄티노플 성모교회의 애가"가 연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곡은 일반적으로 뒤파이가 작곡한 것으로 여겨진다.뱅슈아는 1460년 9월 20일 수아니에서 사망하여 성 빈센트 교회에 안치되었다. 그의 사후 오케겜은 뱅슈아의 미지의 샹송을 음악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애가 "죽음이여, 당신의 화살로 상처 입히다"를 작곡했다. 뒤파이는 동료의 죽음을 위해 1460년에 론도 "승리하여"를 작곡했다고 추측되며, 이 곡은 뱅슈아의 두 곡을 언급하고 있다. 동료 작곡가를 위한 애가를 작곡하는 것은 중세 음악과 르네상스 음악에서 오랜 전통이었다.
3. 음악
질 뱅슈아의 작품은 28개의 미사곡 악장, 32개의 시편, 28개의 소규모 성악곡, 다양한 모테트, 그리고 54개의 샹송을 포함한다. 대부분은 세 목소리를 위해 작곡되었지만, 네 목소리를 위한 곡도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뱅슈아는 영국 동시대 작곡가들의 부드럽고 미묘한 리듬, 우아하고 매끄러운 선율, 그리고 불협화음의 매끄러운 처리를 발전시켰다"고 언급했다. 특히 선율 작곡가로서 뱅슈아는 15세기 최고의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해설가들은 뱅슈아가 진보적인 작곡가는 아니었다는 데 동의한다. 음악학자 라인하르트 슈트롬은 뱅슈아가 "작곡가로서 뛰어났던 한 장르에서 막대한 명성을 얻었지만 [...] 이 선율의 거장이자 궁정 연주가는 예술의 심오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결론짓는다. 그는 제한된 기법을 사용하여 12세기의 ''궁정 연애''(courtly love프랑스어) 전통을 불러일으키는 더 오래된 선율 양식을 선호했다. 그의 장르 선호도 또한 보수적이어서 순환 미사곡과 세속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한 ''칸투스 피르무스'' 미사곡과 같은 새로운 유행하는 형식을 피하고 소규모 작품을 선호했다.
뱅슈아의 카덴차의 진보적인 사용은 예외이다. 우세음 음계와 주요음은 때때로 후기 공통 관행 시대의 조성적 접근법으로 처리된다. 그의 불협화음의 사용 또한 미래 지향적이었고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뱅슈아는 종종 "쉽게 피할 수 있었던" 경우에도 불협화음적인 파트 작법의 순간들을 받아들였다.
뒤파이와 마찬가지로 뱅슈아는 존 던스터블과 라이오넬 파워의 ''앙글루아즈 컨터넌스'' 양식의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 양식은 3도와 6도 간격을 독특하게 강조하고 더 큰 질감 내에서 이중창을 종종 강조했다. 뱅슈아는 아마 영국을 방문한 적이 없을 것이다.
뱅슈아는 15세기 최고의 선율 작곡가로 여겨져 왔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선율은 부르기 쉽고 매우 기억하기 쉽다. 그의 세속 가곡의 대부분은 롱도(rondeaux)로 구성되어 있다. 뱅슈아는 궁정을 위해 연애나 기사도를 노래한 세속 가곡을 작곡했다.
{{외부 미디어
| 주제 = 솔라조 앙상블(Sollazzo Ensemble)이 연주하는 ''Triste plaisir et douleureuse joye''
| 비디오1 = [https://www.youtube.com/watch?v=jCmHd5QZlJE ''Triste plaisir et douleureuse joye'']
}}
3. 1. 개요
3. 2. 세속 샹송
질 뱅슈아는 세속 샹송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샹송은 대부분 론도(rondeaux) 형식이다. 뱅슈아 시대에 론도는 세 가지 고정 형식(formes fixes) 중 가장 지배적인 샹송 유형이었다. 그의 54곡의 샹송 중 대다수(47곡)가 론도이며, 7곡은 발라드(ballades)이다.그의 노래는 론도 "Seule esgaree"가 2박자를 제외하고 거의 전적으로 3박자이다. 다른 스타일상의 특징으로는 언더써드 캐던스(Landini cadences)의 사용, 짧은 악구(Phrase (music))의 선호, 그리고 악절 반복(Repetition (music))이 포함된다. 그의 선율은 단순성, 악절의 경제성, 그리고 코다(coda)를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리듬 활동을 중시한다. 그의 음악은 민속 음악과 유사한 단순성과 선율적 특징을 보인다. 팔로우스는 "De plus en plus"의 "잊을 수 없는 우아함", "Mon cuer chante"의 "절제된 우아함"을 언급하며 뱅슈아 샹송의 특징을 설명한다.
뱅슈아가 작곡한 가사는 종종 샤를 오를레앙 공작, 알랭 샤르티에, 크리스틴 드 피잔과 같은 저명한 프랑스 동시대 시인들의 작품이었다. 그는 동시대 작곡가들이 풍자적인 노래나 축하 노래를 작곡한 것과 달리 주로 진지한 궁정 주제를 우선시했다. 샹송 "Filles a marier/Se tu t’en marias"는 결혼에 대한 경고를 담은 예외적인 곡이다.
뱅슈아의 음절 설정(Prosody (music)) 방법은 종종 그의 동료들과 달랐다. 그의 선율은 일반적으로 시의 운율 구성(rhyme scheme)과는 독립적이다. 학자들은 그가 시적 형식보다 음악적 형식(Musical form)을 선호하는 경향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 두 형식의 조합이 예측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시적 구조를 우선시하지 않는 것 외에도, 뱅슈아는 음악적 대칭(symmetry)을 매우 강조했다. 음악학자 볼프강 레흠(Wolfgang Rehm)은 특히 초기 작품에서 많은 뱅슈아의 노래가 길이와 중간 캐던스의 위치에서 대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지적했다. "Amours et souvenir" 론도와 같은 작품에서 abba 시는 abab 음악 구절에 의해 상쇄된다.
그의 대표적인 샹송으로는 "De plus en plus", "Adieu m'amour", "Tristre plaisir" 등이 있다. 뱅슈아의 샹송은 대부분 사랑, 기사도, 이별의 슬픔 등 궁정 생활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세련되고 우아한 선율과 정교한 가사 설정이 돋보인다.
뱅슈아의 샹송은 다음과 같다.
- 안녕, 안녕 나의 기쁜 추억 (Adieu, adieu mon joieulx souvenir)
- 안녕, 내가 다시 당신을 만날 때까지 (Adieu jusques je vous revoye)
- 안녕, 나의 사랑이자 나의 여주인 (Adieu m’amour et ma maitresse)
- 안녕, 나의 달콤한 사랑 (Adieu ma doulce)
- 안녕, 나의 아름다운 사랑들 (Adieu mes tres belle amours)
- 안녕, 나의 사랑스러운 기쁨 (발라드) (Adieu, mon amoureuse joye (Ballade))
- 마치 한때 내가 기억했던 것처럼 (실종) (Ainsi que a la foiz m’y souvient (verschollen))
- 나는 사랑에 빠졌고 모든 기쁨이 나에게 온다 (Amoureux suy et me vient toute joye)
- 사랑이여, 당신은 무엇을 생각했나요? (Amours et qu’as tu en pensé)
- 사랑과 그녀의 기억 (Amours et souvenir de celle)
- 사랑이여, 내 모든 힘을 다해 감사합니다 (발라드) (Amours merchi de trestout mon pooir (Ballade))
- 아, 고통스러운 슬픔을 말하며 (Ay douloureux disant helas)
-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Bien puist …)
- 슬픔으로 죽기에 충분하다 (C’est assez pour morir de dueil)
- 위로받지 못한 여인처럼 (Comme femme desconfortée)
- 점점 더 새로워진다 (De plus en plus se renouvelle)
- 고통스러운 슬픔, 극심한 분노 (발라드) (Dueil angoisseus, rage demeseurée (Ballade))
- 내가 작별 인사를 한 이후로 (Depuis le congé que je pris)
- 당신의 매우 달콤한 자태를 바라보며 (En regardent votre tres doulx maintiens)
- 당신의 마음에 더 나아질까요? (En sera il mieulx a voustre cuer)
- 노예가 될 수 있을까 (Esclave puist yl devenir)
- 결혼할 처녀들 / [당신이 결혼한다면] (Filles a marier / [Se tu t’en marias])
- 아아, 내가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Helas, que poray je plus faire)
- 내가 당신을 다시 만날 때까지는 결코 (Jamais tant que je vous revoye)
- 나는 어떤 사람도 가질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있다 (발라드) (J’ay tant de deul que nul homs peut avoir (Ballade))
- 나는 사랑과 나의 여인에게 감사드립니다 (발라드) (Je loe amours et ma dame mercye (Ballade))
- 나는 겸손하게 추천합니다 (Je me recommande humblement)
- 나는 항상 생각만 한다 (Je ne fai tousjours que penser)
- 나는 기뻐할 수 없다 (Je ne pouroye estre joyeux)
- 나는 결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Je ne vis onques le pareille)
- 기쁜 생각과 기억 (Joyeux penser et souvenir)
- 나의 여인과 사랑에게 감사합니다 (La merchi ma dame et amours)
- 나의 여인의 친구가 왔다 (L’ami de ma dame ist venu)
- 나의 여인의 매우 달콤한 게임 (Les tres doulx jeux du viaire ma dame)
- 기쁨이 나에게 구원을 가져왔다 (Liesse m’a mandé salut)
- 내가 사랑하고 믿는 나의 여인 (발라드) (Ma dame que j’ayme et croy (Ballade))
- 나의 기쁨은 이름을 바꿨다 (Ma léesse a changié son nom)
- 마거릿, 귀중한 꽃 (Marguerite, fleur de valeur)
- 중상자들이 나를 파괴하려고 했다 (발라드) (Mesdians m’ont cuidié desfaire (Ballade))
- 나의 눈은 나의 마음을 이끌었다 (Mes yeulx ont fait mon cuer porter)
- 나의 마음은 기쁘게 노래한다 (Mon cuer chante joyseusement)
- 나의 달콤한 희망, 매우 갈망하는 슬픔 […] (Mon doulx espoir tres desireux las […] )
- 나의 유일하고 최고의 소망 (Mon seul et souverain desir)
- 죽음이여, 감사합니다 (Mort en merchy)
- 우리는 당신을 잘 볼 것입니다, 말레부슈 (Nous vous verens bien, Malebouche)
- 눈물과 신음으로 가득 차서 (Plains de plours et gemissements)
- 감옥이나 병 때문에 (Pour prison ne pour maladie)
- 비방하려는 자는 비방하라 (Qui veut mesdire si mesdie)
- 위험, 말레부슈, 그리고 그들의 무리들이 무엇을 하든 (Quoy que Dangier, Malebouche et leur gent)
- 내 생명을 구원하여 당신께 돌아오겠습니다 (Rendre me vieng a vous sauve la vie)
- 내가 한숨 쉬고, 울고, 운다면 (Se je souspire, plains et pleure)
- 내가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었다면 (Se j’eusse un seul peu d’esperanche)
- 아름다운 여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Se la belle n’a le voloir)
- 모든 기쁨에서 길을 잃은 채 홀로 (Seule esgarée de tout joyeulx plaisir)
-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사랑받지 못한다 (Tant plus ayme, tant plus suy mal amé)
-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게 나 혼자서 (Tout a par moy afin qu’on ne me voie)
- 나의 모든 기쁨은 사라졌다 (Toutes mes joyes sont estaintes)
- 슬픈 기쁨과 고통스러운 기쁨 (Tristre plaisir et douleureuse joye)
- 당신의 떠남은 나를 너무나 괴롭게 한다 (Vostre alée me desplait tant)
- 당신의 매우 달콤하고 즐거운 시선 (Vostre tres douls regart plaisant)
3. 3. 종교 음악
질 뱅슈아는 여러 미사곡 악장들과 시편 및 성가(특히 마니피카트) 작품들, 그리고 다양한 소규모 성악곡들을 작곡했다. 그의 성악곡 대부분은 여러 미사곡 악장들과 시편 및 성가 작품들, 그리고 다양한 소규모 성악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완전한 순환 미사곡은 전하지 않으며, 몇몇 학자들이 여러 악장들을 결합하여 완성된 작품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다른 르네상스 시대 미사곡들의 일관성에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몇몇 악장 쌍이 알려져 있지만, 이들의 통합은 특정 음악적 요소가 아니라 전반적인 스타일상의 유사성에서 비롯된다.일반적으로 뱅슈아의 총 성악곡 중 세속 음악보다 훨씬 많은 양이 전해져 내려온다는 점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는 세속 음악으로 더 잘 알려진 작곡가에 대한 "역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의 세속 음악은 스타일적으로나 연대기적으로 쉽게 분석할 수 있지만, 성악곡에서는 그렇지 않다. 다양한 교회 형식들은 종종 스타일상의 유사성 없이 독립적으로 다뤄진다. 또한 뱅슈아의 세속 음악 특징과 다른 점도 있다. 매우 적은 수의 부르고뉴 종지(옥타브 도약 종지), 적은 주요 프로라시옹(prolation), 더 선택적인 ''템푸스 퍼펙툼 디미누툼(tempus perfectum diminutum)'', 그리고 덜 규칙적인 대칭성 등이 그 예이다.
대위법은 뱅슈아에게 우선순위가 아니었으며, 그는 대신 텍스트 낭송과 음악적 윤곽을 강조했다. 그의 성악곡은 종종 비교적 영감이 부족하고 평범한 것으로 간주되며, "매우 실용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다. 작품의 성가 원곡은 종종 기본적인 "음표 대 음표" 방식으로 화성이 처리되며, 당시 대륙 표준과 유사하게 최상성부에 그러한 화성이 사용된다. 그의 성악곡에서 선택된 음형은 일반적으로 포부르동(fauxbourdon) 양식의 동음 연주이며, 당시 부르고뉴에서 유행했던 파리 전례에 기반한 선율을 사용한다.
3. 4. 영향
질 뱅슈아는 15세기 초 유럽의 주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특히 15세기 후반에 그의 작품들이 차용, 인용, 패러디되는 등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선율은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워 오랫동안 모방되었으며, 후대 작곡가들의 미사곡에서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뱅슈아의 작풍은 이전 시대의 아르스 수브틸리오르 양식의 복잡성과는 대조적으로 단순 명쾌하며, 때로는 금욕적이기까지 하다. 뱅슈아는 궁정을 위한 연애나 기사도 노래를 작곡했으며, 이러한 세속 가곡들은 부르고뉴 궁정에서 사랑받았다.빅토르 위고는 그의 소설 ''웃는 사나이''에서 주인공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대목에서 뱅슈아를 오르페우스와 함께 언급하며, "그리스의 음악가 오르페우스! 피카르디의 음악가 뱅슈아!"라고 묘사했다.
현대에 이르러 앙상블 질 뱅슈아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이는 뱅슈아가 고음악계에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4. 주요 작품 목록
질 뱅슈아는 여러 개의 독립적인 미사 통상문 악장들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상투스, 아뉴스 데이)을 작곡했다.
- 키리에 ‘안젤로룸’
- 키리에 ‘아포스톨로룸’ / ‘데 마르티부스’ / ‘브레비오리스 퍼펙타’
- 키리에 [쿤크티포텐스]
- 키리에 ‘데 도미니카’ / ‘데 베아타 마리아’
- 키리에 ‘페리아레’
- 키리에 ‘브레베 인 심플리치 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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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도] ‘파트렘 오므니포텐템’
- [크레도] ‘아베르시’ / ‘아우텐티 트리티 이레굴라리스’
- 산투스 및 아뉴스 데이
- 깊은 음성을 위한 산투스 및 아뉴스 데이
- 산투스 및 아뉴스 데이 [페리아리에]
- 산투스 및 아뉴스 데이
- 산투스
- 아뉴스 데이
질 뱅슈아의 종교 음악에는 마니피카트(Magnificat), 모테트(Motets), 시편가(Psalms) 등이 있다. 그의 성악곡과 세속 음악의 표준 판본은 각각 1957년 볼프강 렘(Wolfgang Rehm)의 ''Die Chansons von Gilles Binchois (1400–1460)''과 1991년 필립 R. 케이(Philip R. Kaye)의 ''The Sacred Music of Gilles Binchois''이다.
질 뱅슈아는 론도(Rondeaux)와 발라드(Ballades) 형식의 세속 샹송을 다수 작곡했다. 그의 세속 샹송은 사랑, 슬픔, 이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대표적인 곡으로는 "Adieu, adieu mon joieulx souvenir" (안녕, 안녕 나의 기쁜 추억), "Dueil angoisseus, rage demeseurée" (고통스러운 슬픔, 극심한 분노), "Tristre plaisir et douleureuse joye" (슬픈 기쁨과 고통스러운 기쁨) 등이 있다.
4. 1. 미사곡
질 뱅슈아는 여러 개의 독립적인 미사 통상문 악장들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상투스, 아뉴스 데이)을 작곡했다.- 키리에 ‘안젤로룸’
- 키리에 ‘아포스톨로룸’ / ‘데 마르티부스’ / ‘브레비오리스 퍼펙타’
- 키리에 [쿤크티포텐스]
- 키리에 ‘데 도미니카’ / ‘데 베아타 마리아’
- 키리에 ‘페리아레’
- 키리에 ‘브레베 인 심플리치 디에’
- [글로리아] ‘에트 인 테라 팍스’ 및 [크레도] ‘파트렘 오므니포텐템’
- [글로리아] ‘에트 인 테라 팍스’ 및 [크레도] ‘브레비오리스 임퍼펙타 퍼 메디움’
- [글로리아] ‘에트 인 테라 팍스 호미니부스’ 및 [크레도] ‘파트렘 오므니포텐템 팍토렘’
- [글로리아] ‘에트 인 테라 팍스’
- [글로리아] ‘에트 인 테라 팍스’
- [글로리아] ‘에트 인 테라 팍스’
- [크레도] ‘파트렘 오므니포텐템’
- [크레도] ‘아베르시’ / ‘아우텐티 트리티 이레굴라리스’
- 산투스 및 아뉴스 데이
- 깊은 음성을 위한 산투스 및 아뉴스 데이
- 산투스 및 아뉴스 데이 [페리아리에]
- 산투스 및 아뉴스 데이
- 산투스
- 아뉴스 데이
4. 2. 종교 음악
질 뱅슈아의 종교 음악에는 마니피카트(Magnificat), 모테트(Motets), 시편가(Psalms) 등이 있다. 그의 성악곡과 세속 음악의 표준 판본은 각각 1957년 볼프강 렘(Wolfgang Rehm)의 ''Die Chansons von Gilles Binchois (1400–1460)''과 1991년 필립 R. 케이(Philip R. Kaye)의 ''The Sacred Music of Gilles Binchois''이다.4. 3. 세속 샹송
질 뱅슈아는 론도(Rondeaux)와 발라드(Ballades) 형식의 세속 샹송을 다수 작곡했다. 그의 세속 샹송은 사랑, 슬픔, 이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대표적인 곡으로는 "Adieu, adieu mon joieulx souvenir" (안녕, 안녕 나의 기쁜 추억), "Dueil angoisseus, rage demeseurée" (고통스러운 슬픔, 극심한 분노), "Tristre plaisir et douleureuse joye" (슬픈 기쁨과 고통스러운 기쁨) 등이 있다.5. 한국에서의 수용
참조
[1]
서적
Encyklopedia muzyki
PWN
1995
[2]
서적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MGG), Personenteil Band 2
Bärenreiter Verlag
1999
[3]
서적
Das grosse Lexikon der Musik, Band 1
Herder Verlag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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