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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피시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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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캣피시 헌터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활약한 미국의 메이저 리그 야구 투수였다. 캔자스시티/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뉴욕 양키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5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1968년 아메리칸 리그에서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으며, 1974년에는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1987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1999년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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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피시 헌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선수명캣피시 헌터
원어명Catfish Hunter
소속 구단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27 (영구 결번)
캣피시 헌터
국적미국
출생일1946년 4월 8일
출생지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허트퍼드
사망일1999년 9월 9일
사망지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허트퍼드
수비 위치투수
투구
타석
프로 입단 연도1964년
첫 출장1965년 5월 13일
마지막 경기1979년 9월 17일
경력
선수 경력캔자스시티/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65 - 74)
뉴욕 양키스 (1975 - 79)
명예의 전당
선출 국가미국
선출 연도1987년
득표율76.27%
선출 방법BBWAA 선출

2. 경력

1964년 시즌을 수술로 놓친 헌터는 1965년 7월 27일 펜웨이 파크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첫 승을 거두었다. 헌터는 1977년까지 단 한 번도 선발 등판을 거르지 않은, 야구 역사상 가장 꾸준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6년1967년 헌터는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1968년 찰스 O. 핀리가 애슬레틱스를 오클랜드로 옮긴 후, 5월 8일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1922년 이후 아메리칸 리그에서 46년 만의 첫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1971년부터 1973년까지 3년 연속 21승을 거두었고, 1972년1973년에는 아메리칸 리그 승률 1위를 기록했다. 1974년 사이 영 상스포팅 뉴스 선정 "올해의 투수"로 뽑혔다.

애슬레틱스 시절 헌터는 4년 연속 20승 이상, 무패로 3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 1974년 리그 평균자책점 2.49로 1위를 달성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에디 플랭크(267선발승), 치프 벤더(168선발승), 레프티 그로브(167선발승)에 이어 애슬레틱스 통산 선발승 4위(161승)를 기록했으며, 선발 등판(340경기), 투구 이닝(2456이닝), 완봉 (31회), 탈삼진 (1520개) 부문에서 애슬레틱스 구단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74년 시즌 후 계약 문제로 자유 계약 선수(FA)가 된 헌터는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다. 1975년 23승 14패를 기록하며 7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3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우승, 1977년1978년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팔 부상과 당뇨병으로 구위가 저하되어 1979년 시즌 후 33세의 나이로 은퇴하였다.

1979년 서먼 먼슨의 사망 후 (왼쪽부터 헌터, 빌리 마틴 감독, 브래드 굴덴)

2. 1. 초기 생애와 아마추어 경력

짐 헌터는 노스캐롤라이나주 허트퍼드에서 애벗과 밀리 헌터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8명의 자식들 중 막내였다. 헌터는 퍼퀴먼스 고등학교 시절 야구에서 유격수, 강타자, 투수를 맡았고, 미식축구에서는 라인배커와 오펜스 엔드로 활약하는 등 다양한 스포츠에 뛰어났다. 특히 투수로서 그의 실력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팀 스카우트들의 이목을 끌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사냥 사고로 발가락을 잃는 부상을 입어 절름거리게 되면서 많은 스카우트들이 그의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가졌지만, 헌터는 고등학교 시절 5번의 무안타 경기를 포함하여 26승 2패라는 뛰어난 기록으로 잠재력을 증명하였다.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는 이러한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와 계약을 맺었다.

2. 2. 캔자스시티/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65-1974)

1964년 시즌을 수술로 놓친 후, 헌터의 첫 메이저 리그 승리는 1965년 7월 27일 펜웨이 파크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한 경기였다. 헌터는 자신의 첫 시즌부터 1977년까지 단 한 번도 선발 등판을 거르지 않아, 야구 역사상 가장 꾸준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6년 헌터는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이듬해 다시 올스타에 뽑혔다. 1968년 찰스 O. 핀리가 애슬레틱스를 오클랜드로 연고지를 옮긴 후, 5월 8일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헌터는 1922년 이래 아메리칸 리그에서 46년 만의 첫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1971년부터 1973년까지 3년 연속으로 21승을 거두었으며, 1972년1973년에는 아메리칸 리그 승률 1위를 기록했다. 그는 꾸준한 활약으로 1974년 사이 영 상을 수상했고, 스포팅 뉴스 선정 "올해의 투수"로도 뽑혔다.

애슬레틱스 시절 헌터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4년 연속 20승 이상, 무패로 3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 그리고 1974년 리그 평균자책점 2.49로 1위를 달성했다. 그는 통산 승리(161승, 에디 플랭크(267선발승), 치프 벤더(168선발승), 레프티 그로브(167선발승)에 이어 애슬레틱스 통산 선발승 4위), 선발 등판(340경기), 투구 이닝(2456이닝), 완봉 (31회), 탈삼진 (1520개) 부문에서 애슬레틱스 구단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 3. 뉴욕 양키스 (1975-1979)

1974년 시즌 후 헌터는 계약 문제로 자유 계약 선수(FA) 자격을 얻어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다. 1975년 23승 14패를 기록하며 7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양키스 소속으로 1976년부터 1978년까지 3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77년1978년에는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팔 부상과 당뇨병으로 구위가 저하되었고, 1979년 시즌 후 33세의 나이로 은퇴하였다.

3. 투구 스타일

헌터는 투수판에서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총기 사고의 영향으로 패스트볼 구속은 빠르지 않았지만, 정밀한 제구력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활용하여 타자들을 좌절시켰다. 그의 투구는 특히 강속구 투수들과 비교하면 평범해 보였지만, 교활함과 제구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을 선보였다.

4. 은퇴 이후

은퇴 후, 헌터는 고향으로 돌아와 야구를 하는 동안 놓친 취미들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1999년 9월 9일 53세의 나이에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루게릭병)으로 사망하였다.

1991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의하여 영구 결번된 헌터의 등번호 27

5. 수상 및 영예

수상 및 영예
1966-1967, 1970-1976년 8번 올스타 선정
1972-1974, 1977-1978년 5번 월드 시리즈 우승
1974년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수상
1974년 스포팅 뉴스 선정 "올해의 투수"
1987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1991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등번호 27번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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