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유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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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케빈 유킬리스는 1979년생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에서 10시즌, 일본 프로 야구(NPB)에서 1시즌을 뛰었던 유대계 미국인 야구 선수이다. 3루수와 1루수를 주로 맡았으며, 뛰어난 선구안과 출루율을 바탕으로 '볼넷의 그리스 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2004년부터 2012년까지 활약하며 2007년 골드글러브상, 2008년 행크 아론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2014년에는 일본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고, 2014년 은퇴 후에는 시카고 컵스 스카우트,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 헌액, 방송 해설가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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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유킬리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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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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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케빈 에드먼드 유킬리스 |
영어 이름 | Kevin Edmund Youkilis |
출생일 | 1979년 3월 15일 |
출생지 |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
키 | 185 cm |
몸무게 | 100 kg |
포지션 | 1루수, 3루수 |
타격 | 우 |
투구 | 우 |
선수 경력 | |
프로 입단 | 2001년 MLB 드래프트 8라운드 (전체 243위) 보스턴 레드삭스 지명 |
첫 출장 (MLB) | 2004년 5월 15일 |
마지막 출장 (MLB) | 2013년 6월 13일 |
첫 출장 (NPB) | 2014년 3월 28일 |
마지막 출장 (NPB) | 2014년 4월 26일 |
소속 팀 | 보스턴 레드삭스 (2004년–2012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2012년) 뉴욕 양키스 (2013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4년) |
수상 내역 | |
올스타 | 3회 (2008년, 2009년, 2011년) |
월드 시리즈 우승 | 2회 (2004년, 2007년) |
골드 글러브 | 2007년 |
행크 애런 상 | 2008년 |
주요 기록 (MLB) | |
타율 | .281 |
홈런 | 150 |
타점 | 618 |
주요 기록 (NPB) | |
타율 | .215 |
홈런 | 1 |
타점 | 11 |
국가대표 | |
대표팀 | 미국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9년 |
기타 | |
발음 (영어) | /ˈjuːkəlɪs/ |
발음 (짧게) | /ˈjuːk/ |
관련 기사 | 케빈 유킬리스, 새로운 NESN 직책에 대해 '매우 기쁘다'고 언급 |
2. 어린 시절 및 학창 시절
케빈 유킬리스는 신시내티에서 도매 보석상인 마이크 유킬리스와 캐롤린 사이에서 태어났다.[9][10][11]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으로 결혼 후 유대교로 개종했다.[9] 유킬리스는 아버지를 "유대인 커뮤니티 센터 패스트피치 소프트볼 리그에서 잘 알려진 3루수"라고 묘사했다.[5][12] 유킬리스는 유대교 신자이며 성인식을 개혁파 회당에서 치렀다.[9][13]
유킬리스의 유대교 신앙을 가진 증조할아버지는 19세기 루마니아 출신으로, 반유대주의적 코사크의 징병을 피하기 위해 16세에 그리스로 이주했다.[3][8] 그러나 고향이 그리워 몇 년 후 루마니아로 돌아왔고, 징병과 투옥을 피하기 위해 성을 "와이너(Weiner)"에서 "유킬리스(Youkilis)"로 바꾸었다.[8]
15세 때 로맨틱 코미디 영화 ''밀크 머니''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다.[14] 그는 신시내티 북동부 교외에 있는 시카모어 고등학교(1997년 졸업)[15]에 다녔으며, 학교 팀(에비에이터스)에서 3루수, 유격수, 1루수, 외야수로 활동했고, 1994년에는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16] 그는 4년 동안 레터 윈너였고, 두 번의 올-그레이터 마이애미 컨퍼런스(1996년과 1997년)와 올-시티(1996년과 1997년) 선수였으며, 고등학교 졸업반 시즌에는 올-스테이트로 팀 타율 .475를 기록하며 홈런 부문에서 역대 2위를 기록했다.[16] 시카모어 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는 미래의 레드삭스 동료 애런 쿡에게 홈런을 친 유일한 선수였다.[6][17]
유킬리스는 2008년 시카모어 운동 경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6] 2017년, 학교는 그의 등번호 13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여 그를 기렸다.[16] 유대계인 그는 시카모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전미 야구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211] 그 후 고향의 신시내티 대학교에 진학하여 2001년까지 53개의 홈런, 206개의 볼넷, 장타율 .627, 출루율 .499를 기록하며 학교 신기록을 세웠다.[212]
2. 1. 유년기
케빈 유킬리스는 신시내티에서 도매 보석상인 마이크 유킬리스와 캐롤린 사이에서 태어났다.[9][10][11]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으로 결혼 후 유대교로 개종했다.[9] 유킬리스는 아버지를 "유대인 커뮤니티 센터 패스트피치 소프트볼 리그에서 잘 알려진 3루수"라고 묘사했다.[5][12] 유킬리스는 유대교 신자이며 성인식을 개혁파 회당에서 치렀다.[9][13]유킬리스의 유대교 신앙을 가진 증조할아버지는 19세기 루마니아 출신으로, 반유대주의적 코사크의 징병을 피하기 위해 16세에 그리스로 이주했다.[3][8] 그러나 고향이 그리워 몇 년 후 루마니아로 돌아왔고, 징병과 투옥을 피하기 위해 성을 "와이너(Weiner)"에서 "유킬리스(Youkilis)"로 바꾸었다.[8]
15세 때 로맨틱 코미디 영화 ''밀크 머니''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다.[14] 그는 신시내티 북동부 교외에 있는 시카모어 고등학교(1997년 졸업)[15]에 다녔으며, 1994년에는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4년 동안 레터 윈너였고, 두 번의 올-그레이터 마이애미 컨퍼런스(1996년과 1997년)와 올-시티(1996년과 1997년) 선수였으며, 고등학교 졸업반 시즌에는 올-스테이트로 팀 타율 .475를 기록하며 홈런 부문에서 역대 2위를 기록했다.[16] 레드삭스 동료 애런 쿡에게 홈런을 친 유일한 선수였다.[6][17]
유킬리스는 2008년 시카모어 운동 경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6] 2017년, 학교는 그의 등번호 13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여 그를 기렸다.[16]
2. 2. 고교 시절
유대계인 그는 시카모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전미 야구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211] 그 후 고향의 신시내티 대학교에 진학하여 2001년까지 53개의 홈런, 206개의 볼넷, 장타율 .627, 출루율 .499를 기록하며 학교 신기록을 세웠다.[212]2. 3. 대학 시절
신시내티 대학교에 진학한 케빈 유킬리스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신시내티 베어캣츠 선수로 뛰었다.[15] 신시내티 대학교 감독 브라이언 클레어리는 유킬리스가 스스로 코치를 하며, 자신의 스윙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18]2000년 주니어 시절, 유킬리스는 한 경기에서 홈런 3개와 시즌 19개를 기록하고 60경기에서 63개의 볼넷을 얻으며 학교 기록을 세웠다.[19][5] 그 결과 2군 올 아메리칸과 1군 컨퍼런스 USA에 선정되었지만, 드래프트에는 지명되지 않았다.[20][21] 클레어리 감독은 유킬리스가 유니폼을 입었을 때 통통해 보였지만 뚱뚱한 것은 아니었고, 강했다고 회상했다.[17]
주니어와 시니어 시즌 사이에는 케이프 코드 리그의 번 브레이브스에서 뛰었고, 리그 올스타로 선정되었으며,[22][23][24] 리그 타율 6위를 기록했다. 2001년 시니어 시즌에는 2군 올 아메리칸에 다시 선정되었다.[5] 유킬리스는 신시내티 대학교의 통산 기록으로 홈런(56개), 볼넷(206개), 장타율(.627), 출루율(.499)을 기록했으며 타율은 .366이었다.[5][25] 신시내티 대학교의 부감독인 브래드 미더는 유킬리스가 훌륭한 눈을 가지고 있어 거의 삼진을 당하지 않았으며, 삼진을 당했을 때는 심판이 잘못 판정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15]
보스턴의 전 스카우트 맷 하스는 유킬리스에 대해 처음에는 별로였지만, 극단적인 웅크리는 자세에도 불구하고 그를 더 많이 볼수록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8] 2001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드래프트 8라운드(전체 243순위)에서 유킬리스를 지명했다.[8] ESPN은 수비와 나무 배트를 사용한 파워에 대한 의문점 때문에 유킬리스가 드래프트 상위 순위에서 탈락했다고 보도했다.[26] 유킬리스는 1만 2천 달러의 계약금에 사인했다.[17]
2007년, 유킬리스는 신시내티 대학교 제임스 P. 켈리 경기장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7] 2015년, 신시내티 대학교는 그의 등번호 36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16] 2018년, 유킬리스는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신시내티 대학교를 경영학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28][29] 2019년에는 초대 컨퍼런스 US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30]
3. 프로 선수 경력
3. 1. 마이너 리그 (2001–2004)
2001년 MLB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한 유킬리스는 뉴욕-펜 리그의 쇼트 시즌 A 클래스 프랜차이즈인 로웰 스피너스에서 3루수로 프로 데뷔했다.[25][31][32] 59경기에서 타율 .317(리그 3위)을 기록, 출루율 .512, 52득점, 70볼넷(삼진 28개)으로 리그를 이끌었으며,[25][31][32] 46경기 연속 안타 또는 볼넷으로 출루하는 기록(마이너 리그 역사상 세 번째로 긴 기록)을 세웠다.[31] 시즌 막바지에는 로웰에서 승격되어 저A 클래스 리그인 사우스 애틀랜틱 리그의 오거스타 그린재킷스에서 5경기를 뛰었고, 레드삭스 마이너 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35]2002년에는 오거스타에서 15경기, 사라소타 삭스에서 76경기(그중 40경기는 1루수),[36] 트렌턴 썬더에서 44경기를 뛰었다.[37] 그 해 홈런 8개와 80타점을 기록하며 타율 .310을 기록했고, 트렌턴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25] 그의 .436 출루율은 2002년 마이너 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높았고, 80볼넷은 일곱 번째로 많았다.[25][38] 보스턴 레드삭스는 유킬리스를 2002년 마이너 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했다.[39] 시즌 후, 테오 엡스타인은 유킬리스를 애리조나주 템피에 있는 애슬릿츠 퍼포먼스 인스티튜트로 보냈고, 6주간의 집중 훈련을 받았다.[8][17]
2003년, 유킬리스는 포틀랜드 시 독스에서 시즌을 시작, 94경기에서 출루율 .487(2007년까지 팀 역대 최고 기록)으로 이스턴 리그를 이끌었고, 타율 .327(2007년까지 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기록)으로 리그 3위를 차지했다.[25][40][41] 86볼넷(삼진 40개), OPS .953을 기록했고, 16번의 몸에 맞는 볼로 3위에 올랐다.[25][40][41] 이스턴 리그 올스타 팀, 베이스볼 아메리카 AA 올스타 팀, 그리고 2003 올스타 퓨처스 게임 미국 대표팀에 선발되었다.[32][42]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의 트리플A 프랜차이즈인 포터킷 레드삭스로 승격, 포틀랜드에서 시작한 연속 출루 기록을 달성했다. 71경기 연속 출루하며 미래의 동료인 케빈 밀러의 마이너 리그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25][43] 그의 104볼넷은 2003년 마이너 리그에서 세 번째로 높았다.[44]
2003년-2004년 겨울을 멕시코의 멕시칸 퍼시픽 리그 나보호아에서 보냈다.[45] 2004년, 포터킷에서 3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8, 홈런 3개, 출루율 .347을 기록한 후 5월 15일에 레드삭스로 승격되었다.[46] 2005년까지 그의 마이너 리그 통산 성적은 340경기 3루수, 59경기 1루수, 2경기 2루수로 출전하여 타율 .299, 출루율 .442였다.
3. 2. 보스턴 레드삭스 (2004–2012)
"때로는 이것이 단순한 게임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보스턴에서는 삶과 같습니다."[47]—유킬리스, 레드삭스 팬들의 헌신에 대해
2004년 5월 15일, 레드삭스의 정규 3루수 빌 뮬러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유킬리스가 처음으로 콜업되었다.[15] 그의 부모님이 더그아웃 뒤 두 번째 줄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토론토에서 열린 그의 첫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두 번째 타석에서 유킬리스는 1996 사이 영상상 수상자인 팻 헨젠을 상대로 홈런을 쳤고, 데뷔전 홈런을 친 팀 역사상 일곱 번째 선수가 되었다.[15][25][48] 팀은 장난으로 홈런 후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유킬리스에게 처음에 침묵 대우를 했다.[49] 유킬리스는 13경기에서 7타점, 15득점에 .318의 타율을 기록하며 AL 신인 중 9개의 볼넷과 .446의 출루율로 1위를 차지한 후 5월 AL 신인상을 수상했다.[25][54] 9월 24일, 욤 키푸르였던 날 유킬리스는 유니폼을 입고 더그아웃에 나타났지만 종교적 명절을 존중하여 경기에 참가하지 않았다.[58] 유킬리스는 보스턴 지부 미국 야구 기자 협회에서 선정한 팀 신인왕으로 선정되었다.[35] 시즌 동안 44경기에서 타석당 평균 4.67개의 투구를 받았는데, 이는 90타석 이상의 메이저리거 중 1위였다.[59] 그는 (ALDS) 레드삭스 명단에 포함되어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2차전에 단 한 번 출전했다.[60] 그는 다음 라운드인 (ALCS)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월드 시리즈 명단에는 포함되었지만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2005년 처음으로 레드삭스 개막전 명단에 이름을 올린 유킬리스는 팀이 커트 실링을 활성화해야 했기 때문에 4월 13일 다시 포터켓으로 내려가게 되었다.[62] 9월 18일, 그는 그라운드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른손 약지 끝부분을 골절했고, 정규 시즌 마지막 날인 10월 2일까지 다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25] 2005년 보스턴에서 유킬리스는 44경기에서 79타석에 서서 타율 .278, 출루율 .400을 기록했다. 그는 3루수로 23경기, 1루수로 9경기, 2루수로 2경기에 출전했고, 타순 9번까지 모든 자리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2006년, 메이저리그에서의 첫 시즌을 맞아 유킬리스는 1루수로서 주전 자리를 꿰찼다 (1루수로 127경기 출전).[64] 또한 2006년에는 프로 선수 생활 최초로 외야수로 출전하여 좌익수 자리에서 18경기를 소화했다.[64] 유킬리스는 메이저리그 희생 플라이 부문에서 11개로 공동 1위를 차지했고, 타석당 투구수(4.43개) 부문에서 AL 1위를 기록했으며, 타구 중 라인 드라이브 비율이 24%에 달했다.[25][65] 그는 100득점을 올렸고, 득점권 타율 .325를 기록했으며, 1회초 선두타자 홈런을 4개나 기록했다.[68]
유킬리스는 2007년 5월 5일부터 6월 2일까지 23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는데, 이 기간 동안 타율 .426(101타수 43안타), 13개의 2루타, 6개의 홈런, 21타점, 출루율 .468을 기록했다.[70] 6월 1일, 양키스 투수 스콧 프로크터가 유킬리스의 머리를 향해 공을 던졌고, 프로크터는 퇴장당했다.[73] 8월 30일에는 양키스 투수 조바 체임벌린이 유킬리스의 머리 위로 시속 98마일의 공을 두 개 던졌고, 체임벌린은 퇴장당했으며, 나중에 "부적절한 행동"으로 2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74] 2007년 6월 25일, 유킬리스는 1루수로 120경기 연속 무실책 경기를 기록하며 1921년 스터피 맥이니스가 세운 레드삭스 기존 기록을 깼다.[76] 9월 7일에는 1루수로 179경기 연속 무실책 경기를 기록하며 1973년 마이크 히건이 세운 기존 아메리칸리그 기록을 경신했다.[77] 1.000의 완벽한 수비율과 1루수로 AL 기록인 1,079개의 무실책 기회를 기록하며 유킬리스는 2007년 AL 골드글러브 1루수 부문 상을 수상했다.[81] 그는 시즌 타율 .288을 기록했지만, 주자 있는 상황에서는 타율 .340, 출루율 .435를 기록했다.

2008년 2월, 그는 연봉 조정을 피하기 위해 300만 달러에 1년 계약을 체결했다.[89] 2008년 4월 2일, 오클랜드 A's와의 경기에서 무보조로 경기를 종료시키는 플레이를 하며 유킬리스는 스티브 가비가 기록했던 194경기의 기록을 깨고 1루수 최다 연속 무실책 경기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세웠다.[91] 4월 27일, 무실책 205번째 경기에서 유킬리스는 1921년부터 1922년까지 스타피 맥이니스가 세운 1700개의 기록을 넘어 1701번째 연속으로 실책 없이 처리하며 1루수 최다 연속 무실책 기회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세웠다.[92] 2006년 7월 4일부터 시작된 그의 연속 무실책 기록은 238경기(2002번의 수비 시도) 동안 이어지다 2008년 6월 7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깨졌다.[93] 그는 팬 투표에서 2,858,130표를 얻어 첫해에 2008 AL 올스타팀의 1루수로 출전했으며,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79번째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했다.[96][97] 2008년 시즌에 유킬리스는 AL 타점당 타석(4.7) 부문에서 1위, 장타율(.569)과 희생플라이(9) 부문에서 3위, 타점(115), 추가루타(76), OPS(.958) 부문에서 4위, 사구(12) 부문에서 5위, 타율(.312)과 출루율(.390) 부문에서 6위를 기록했다. 유킬리스는 2008년 AL MVP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103][104] 2008 월드 시리즈 4차전 전에 그는 2008년 시즌 최고의 공격력을 보여준 선수에게 수여되는 AL 행크 아론 상을 수상했다.[106]
2009년 1월 15일, 유킬리스는 레드삭스와 4년, 4125만 달러의 계약에 서명했습니다. 이 계약에는 2013년 팀 옵션(1400만 달러, 바이아웃 125만 달러바이아웃)도 포함되었다.[107]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의 미국 대표팀에 선출되었다. 대회에서 4번 타자 겸 1루수를 맡았지만, 2차 리그 도중 발목 부상으로 이탈했다.[216]

유킬리스는 팬 투표에서 2위를 한 후, 탬파베이와 AL 감독 조 매든(Joe Maddon)에 의해 2009 AL 올스타 팀 예비 선수로 선발되었다.[113][114] 2009년 8월 1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투수 릭 포셀로(Rick Porcello)가 시속 89마일의 공으로 그의 등을 맞힌 후, 유킬리스는 즉시 마운드 위의 포셀로에게 돌진했다. 유킬리스는 그의 헬멧을 빠르게 뒤로 물러나는 포셀로에게 던졌고, 포셀로는 유킬리스를 덮쳤고, 둘 다 쓰러졌고, 양 팀 벤치가 모두 비워졌다.[118][119][120][121] 두 선수 모두 퇴장당했고, 각각 5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122][123] 2009년 유킬리스는 AL 출루율(.413)과 OPS(.961)에서 2위, 몸에 맞는 공(16개)에서 4위, 장타율(.548)에서 5위를 차지했고, 전체 타율은 .305, 득점권 타율은 .362였다.[126][127] 유킬리스는 2009 AL MVP 투표에서 6위를 차지했다.[132]
2010년 5월 18일, 유킬리스는 CC 사바시아(CC Sabathia)를 상대로 통산 100호 홈런을 기록했다.[134] 8월 2일, 유킬리스는 오른쪽 엄지 손가락 외전근 파열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었다.[135] 그는 8월 6일 파열된 근육 수술을 받았다.[135][137]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그의 OPS는 .964로 앨버트 푸홀스(Albert Pujols) (1.074) 다음으로 메이저리그 2위였다.[139]
2011년, 유킬리스는 82회 올스타전의 예비 선수로 선정되었다.[141] 시즌 전체로는 AL 3루수 중에서 .967의 수비율로 1위를 차지했다.[143] 하지만 타율은 .258로, 그의 메이저리그 커리어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126]

2012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감독 바비 발렌타인은 유킬리스의 동기 부여와 성공을 위한 체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신인 윌 미들브룩스를 더 뛰어난 3루수로 여긴 발렌타인은 유킬리스 대신 미들브룩스를 기용하기 시작했다.[144] 레드삭스는 6월 24일, 투수 잭 스튜어트와 유틸리티 플레이어 브렌트 릴리브리지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유킬리스를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보냈다.[145][146]
3. 3. 시카고 화이트삭스 (2012)
2012년 4월 15일, 보스턴 레드삭스의 감독 바비 발렌타인은 케빈 유킬리스의 동기 부여와 성공을 위한 체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신인 윌 미들브룩스를 더 뛰어난 3루수로 여긴 발렌타인은 유킬리스 대신 미들브룩스를 기용하기 시작했다.[144]결국 레드삭스는 6월 24일, 투수 잭 스튜어트와 유틸리티 플레이어 브렌트 릴리브리지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유킬리스를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보냈다.[145][146] 레드삭스는 거래 성사를 위해 유킬리스 연봉 55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145][146] 같은 날 7회, 레드삭스 단장 벤 체링턴은 발렌타인에게 거래가 임박했음을 알렸다. 유킬리스는 마지막 타석에서 3루타를 치고, 대주자 닉 푼토로 교체되면서 관중석에 모자를 벗어 인사하며 기립 박수를 받았다.[147][148]

다음 날, 유킬리스는 화이트삭스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 4타수 1안타(단타)를 기록하며 4대 1로 패배했다.[149] 7월 3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로이 오스왈트를 상대로 화이트삭스 선수로서 첫 홈런을 기록했고, 이 경기에서 6타수 3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 2012년 7월 9일, 유킬리스는 화이트삭스에서 5경기 동안 타율 0.478, 3홈런, 10타점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주간 MVP로 선정되었다.[150] 화이트삭스 감독인 로빈 벤투라는 유킬리스가 "근성 있는" 경쟁자이며 화이트삭스 동료들과 잘 어울린다고 전했다.[144]
7월 16일, 유킬리스는 화이트삭스 소속으로 보스턴에 돌아왔다. 첫 타석에서 펜웨이 파크 관중들은 그에게 큰 환호를 보냈고, 유킬리스는 타석에서 나와 팬들에게 인사했다. 그는 이 경기에서 4타수 3안타, 2루타 2개를 기록했다.[151][152]
시즌 성적은 타율 0.235, 출루율 0.336, 장타율 0.409, 19홈런, 60타점이었으며, 메이저리그에서 몸에 맞는 공 부문 공동 1위(17개)를 기록했다.[142] 그는 2012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 4. 뉴욕 양키스 (2013)
12월 11일, 유킬리스는 뉴욕 양키스에서 3루수로 뛰기 위해 1,200만 달러의 1년 계약을 수락했다. 유킬리스가 양키스 선수들과 팬들에게 인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빈슨 카노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공개적으로 이 계약을 지지했으며,[153] 조바 체임벌린은 과거의 불화를 해소하기 위해 유킬리스에게 연락했다.[154] 이 계약은 12월 14일에 공식화되었다.[155]2013년, 유킬리스는 요통을 안고 개막전에 4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전했다.[224] 시즌이 시작되면서 유킬리스는 요추 염좌 진단을 받고 4월 30일 15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156] 그는 5월 30일에 복귀했지만,[157] 허리를 다시 다친 후 6월 14일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158] 유킬리스는 6월 20일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10~12주 동안 결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159] 그러나 그는 시즌 잔여 경기를 모두 결장했다. 28경기 출전에 그친 유킬리스는 타율 0.219로 커리어 최저 기록을 세웠고, 홈런 2개와 타점 8개를 기록했다.[142] 10월 31일 FA가 되었다.
3. 5.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4)

유킬리스는 2014년 시즌을 위해 일본 프로 야구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1년 계약, 400만 달러에 계약했다.[160][161][162][163] 2013년 12월 21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1년 계약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226] 개막전부터 5번 타자 1루수로 출전하여, 개막 2번째 경기인 3월 29일 세이부 돔에서 열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 6회초 키쿠치 유세이로부터 NPB 첫 홈런을 기록했다.[227]
그는 족저근막염으로 인해 시즌 일부를 결장했다.[160][164] 오른손목에 사구를 맞는 등 몇 경기를 결장했고,[228] 4월 26일 오릭스 버팔로스전(고베 종합운동공원 야구장) 출전 중 왼쪽 발꿈치 통증을 호소하여, 다음날 27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229] 말소 후 진찰 결과 왼발바닥 근육건염이 발병한 것으로 밝혀져, 5월 7일 부상 부위 재검사와 치료를 목적으로 구단의 승낙을 얻어 미국으로 귀국했고,[230] 이후 출전하지 못한 채 10월 30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231] 2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15, 홈런 1개, 11타점을 기록했다.[165]
참고로 2014년 8월,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하는 모습을 동영상 사이트에 게시하여 "전선 이탈 중에 놀고 있다"며 논란이 되었다.[232]
4. 은퇴 이후
케빈 유킬리스는 2014년 10월 30일 야구 은퇴를 발표했다.[165] 2015년 2월, 전 구단 사장 테오 엡스타인에 의해 시카고 컵스의 스카우트 겸 개발 컨설턴트로 고용되었다.[168] 2018년에는 친정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71] 2022년에는 뉴잉글랜드 스포츠 네트워크에서 레드삭스 중계 방송 해설가로 일하기 시작했다.[172]
그는 이스라엘 야구 국가대표팀의 타격 코치를 맡아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이안 킨슬러 감독 아래 참가했다.[167] 2016년 8월에는 형제 스콧과 함께 로스 가토스 브루잉 컴퍼니를 인수하여 캘리포니아주 로스 가토스에 있는 수제맥주 양조장인 로마 브루잉 컴퍼니로 재개장했다.[169][170] 이 양조장은 이후 2017년 캘리포니아 상업용 맥주 양조장으로 선정되었다.[170]
5. 플레이 스타일
케빈 유킬리스는 타율이나 홈런 같은 수치는 평범하지만, 뛰어난 선구안과 높은 출루율을 가진 선수이다.[233] 2006년에는 1타석당 투구 수 4.42개로 아메리칸 리그 최다를 기록했다.[233]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여, 주자가 없을 때는 .243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주자가 있을 때는 .340의 타율을 기록하여 팀에 크게 기여했다.[234] 2007년에는 높은 출루율을 바탕으로 주로 2번 타자로 출전했으며, 빠른 발은 아니지만 능숙한 베이스 러닝 덕분에 1번 타자로 나서기도 했다.
활기 넘치는 플레이가 돋보이며,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동료 더스틴 페드로이아와 함께 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2007년 정규 시즌에는 1루 수비에서 실책을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고, 9월 7일에는 아메리칸 리그 기록인 179경기 연속 무실책 기록을 달성했다. 이후 2008년 6월 7일까지 238경기 연속 무실책 기록을 이어갔으며, 이는 케이시 코치먼이 274경기로 경신하기 전까지 아메리칸 리그 기록이었다. 이러한 견실한 플레이를 바탕으로 골드글러브상을 수상했다.[234]
유킬리스를 응원할 때 "유크!"라고 외치는 "유킹"이라는 응원가가 있는데, 이는 경기장에서 들으면 야유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유크!"라고 외치는 것이다.
2003년 발간된 마이클 루이스의 저서 "머니볼"에서 유킬리스는 "'''볼넷의 그리스 신''' (The Greek God of Walks)"으로 묘사되며 유명해졌다.[211][235]
6. 사회 활동
케빈 유킬리스는 2007년에 자선 단체인 케빈 유킬리스 히츠 포 키즈(Kevin Youkilis Hits For Kids)를 설립했다.[197] 이 재단은 매사추세츠주, 그의 고향인 신시내티를 비롯한 전국 어린이의 건강, 옹호, 안전 및 의료 치료에 대한 지원과 인식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197] 케빈 유킬리스 히츠 포 키즈는 충분한 자금과 인식이 부족한 기존의 지역 사회 기반 아동 자선 단체와 의학 연구 노력과 협력하며, 조슬린 당뇨병 센터(Joslin Diabetes Center)의 소아 건강 서비스와 협력하는 단체 중 하나이다.[197] 그는 대학 시절 친한 친구이자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했던 룸메이트가 2학년 때 추수감사절에 자살하는 것을 목격하고 청소년 자살에 대해 특별한 감수성을 가지게 되었으며,[198] "밤에 앉아서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198]
유킬리스는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라 자선을 베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웃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199]
ALDS 첫 경기 후, 유킬리스는 암 환자와의 연대의 표시로 머리를 깎았고,[197] 2007년 월드 시리즈(2007 World Series)에서 팀이 우승한 후에는 질레트가 그의 재단에 5,000달러를 기부하도록 수염을 깎았다.[200] 2008년에 출시된 그의 자선 와인 "소비뇨우욱 블랑(SauvignYoouuk Blanc)"의 모든 수익은 히츠 포 키즈를 지원한다.[201]
케빈 유킬리스는 유대인계 미국인으로, 그의 성은 그리스계이지만, 루마니아의 유대인이었던 조상들이 포그롬을 피해 그리스로 이주하면서 유대인임을 숨기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234] 그는 유대교 신앙에 대한 의식이 높아, 매년 9월~10월의 속죄일에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211] 2009년에는 당시 유대계 하원의원이었던 앤서니 위너가 유대교 신자 선수와 팬들을 위해 속죄일 경기 시간을 앞당겨 달라는 요청서를 ESPN과 당시 MLB 커미셔너였던 버드 셀릭에게 제출하기도 했다.[211]
2010년 다큐멘터리 영화 ''유대인과 야구: 미국식 러브 스토리''에서 더스틴 호프만의 내레이션과 함께 유킬리스는 자신이 많은 유대인들을 대표하고 유대인 유산과 그 민족이 겪어온 고난을 대표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응원한다고 말했다.[187] 그는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이스라엘 대표로 뛰는 것에 관심을 표명했지만,[188] 예선이 정규 시즌 중이었기 때문에 참가할 수 없었다.[189]
2007년, Baseball-Reference.com과 Baseball Prospectus와 같은 야구 웹사이트가 유킬리스 관련 웹페이지의 URL에 "youkike"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190][191] 이는 선수의 성의 앞 다섯 글자와 이름의 앞 두 글자를 결합하는 자동 URL 생성 알고리즘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190][191]
신시내티 대학교는 유킬리스의 이름을 따서 마지 쇼트 스타디움의 이름을 변경하려 했으나, 유킬리스는 마지 쇼트의 반유대주의적 발언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192][193][194] 유킬리스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우리 가족 이름을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사람 옆에 두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192]
아내 줄리Julie영어는 미식축구 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소속으로 시즌 MVP와 슈퍼볼 MVP를 여러 차례 수상한 역사상 두 번째 선수인 톰 브레이디Tom Brady영어의 누나이다.
라쿠텐 시절 부진으로 "YOU는 무엇 하러 일본에?"를 비틀어 "유크(ユーク)는 무엇 하러 일본에 왔나?"라고 조롱당했다.[236]
6. 1. 자선 활동
케빈 유킬리스는 2007년에 자선 단체인 케빈 유킬리스 히츠 포 키즈(Kevin Youkilis Hits For Kids)(http://www.youkskids.org/)를 설립했다.[197] 이 재단은 매사추세츠주, 그의 고향인 신시내티를 비롯한 전국 어린이의 건강, 옹호, 안전 및 의료 치료에 대한 지원과 인식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197] 케빈 유킬리스 히츠 포 키즈는 충분한 자금과 인식이 부족한 기존의 지역 사회 기반 아동 자선 단체와 의학 연구 노력과 협력하며, 조슬린 당뇨병 센터(Joslin Diabetes Center)의 소아 건강 서비스와 협력하는 단체 중 하나이다.[197] 그는 대학 시절 친한 친구이자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했던 룸메이트가 2학년 때 추수감사절에 자살하는 것을 목격하고 청소년 자살에 대해 특별한 감수성을 가지게 되었으며,[198] "밤에 앉아서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198]유킬리스는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라 자선을 베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웃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199]
ALDS 첫 경기 후, 유킬리스는 암 환자와의 연대의 표시로 머리를 깎았고,[197] 2007년 월드 시리즈(2007 World Series)에서 팀이 우승한 후에는 질레트가 그의 재단에 5,000달러를 기부하도록 수염을 깎았다.[200] 2008년에 출시된 그의 자선 와인 "소비뇨우욱 블랑(SauvignYoouuk Blanc)"의 모든 수익은 히츠 포 키즈를 지원한다.[201]
6. 2. 종교 활동
케빈 유킬리스는 유대인계 미국인으로, 그의 성은 그리스계이지만, 루마니아의 유대인이었던 조상들이 포그롬을 피해 그리스로 이주하면서 유대인임을 숨기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234] 그는 유대교 신앙에 대한 의식이 높아, 매년 9월~10월의 속죄일에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211] 2009년에는 당시 유대계 하원의원이었던 앤서니 위너가 유대교 신자 선수와 팬들을 위해 속죄일 경기 시간을 앞당겨 달라는 요청서를 ESPN과 당시 MLB 커미셔너였던 버드 셀릭에게 제출하기도 했다.[211]2005년 8월 8일, 유킬리스는 레드삭스 소속으로 아담 스턴, 게이브 캡러와 함께 9회 수비에 나서 AL 역사상 한 경기에 가장 많은 유대인 선수가 동시에 출전한 기록을 세웠다.[179] 1941년 뉴욕 자이언츠(NL) 경기에서 네 명의 유대인 선수가 동시에 출전한 이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다 기록이기도 하다.[179] 그는 플리어 트레이딩 카드(Fleer Trading Cards)와 미국 유대인 역사협회(American Jewish Historical Society)와 공동으로 발행된 2008년 행크 그린버그 75주년 기념판 유대인 메이저리거 야구 카드에 등장했다.[180] 2008년 올스타전에서 라이언 브론, 이안 킨슬러와 함께 세 명의 유대인 선수 중 한 명이었고,[181]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미국 대표팀에서도 브론, 존 그래보와 함께 세 명의 유대인 선수 중 한 명이었다.[182] 킨슬러는 "유킬리스는 항상 주자로 나가면 저에게 무언가를 말합니다. '해피 패스오버'라든가, 뭔가를 던지곤 하죠."라고 말했다.[183]
2008년 유대인 MVP로 선정되었고,[184] 2000~09년 10년간 최고의 유대인 야구 선수로도 선정되었다.[185] 2018 시즌까지 그의 출루율 .382는 역대 유대인 메이저리거 순위에서 5위, 장타율 .478은 6위, 2루타 254개와 타점 618개는 7위, 홈런 150개는 공동 7위, 볼넷 539개는 8위였다.[186]
2010년 다큐멘터리 영화 ''유대인과 야구: 미국식 러브 스토리''에서 더스틴 호프만의 내레이션과 함께 유킬리스는 자신이 많은 유대인들을 대표하고 유대인 유산과 그 민족이 겪어온 고난을 대표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응원한다고 말했다.[187] 그는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이스라엘 대표로 뛰는 것에 관심을 표명했지만,[188] 예선이 정규 시즌 중이었기 때문에 참가할 수 없었다.[189]
2007년, Baseball-Reference.com과 Baseball Prospectus와 같은 야구 웹사이트가 유킬리스 관련 웹페이지의 URL에 "youkike"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190][191] 이는 선수의 성의 앞 다섯 글자와 이름의 앞 두 글자를 결합하는 자동 URL 생성 알고리즘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190][191]
신시내티 대학교는 유킬리스의 이름을 따서 마지 쇼트 스타디움의 이름을 변경하려 했으나, 유킬리스는 마지 쇼트의 반유대주의적 발언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192][193][194] 유킬리스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우리 가족 이름을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사람 옆에 두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192]
7. 개인 생활
케빈 유킬리스는 그리스계 성을 가지고 있지만, 루마니아계 유대인 혈통이다.[211] 그의 조상들은 포그롬을 피해 그리스로 이주하면서 유대인임을 숨기기 위해 그리스식 성을 사용했다.[234] 유대교 신앙심이 깊어 속죄일에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며, 유월절에는 동료 유대인 선수들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2010년에는 유대인과 야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했고,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이스라엘 대표팀으로 출전하기를 희망했다.
2008년 11월, 유킬리스는 엔자 삼바타로와 멕시코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나, 법적으로 혼인하지는 않았다.[202][203] 이 결혼식에는 마이크 로웰, 데이비드 오티즈, 더스틴 페드로이아 등 레드삭스 동료들이 참석했다. 삼바타로는 유킬리스의 자선 단체인 Hits for Kids의 CEO였으나, 2010년 결별과 함께 그만두었다.[204]
2012년 2월, ''보스턴 헤럴드''는 유킬리스가 미국프로풋볼(NFL) 쿼터백 톰 브래디의 누나인 줄리 브래디와 약혼했다고 보도했다.[205] 두 달 뒤, 두 사람은 뉴욕시에서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206] 현재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로스 가토스에 거주하고 있다.[170] 아내 줄리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소속으로 시즌 MVP와 슈퍼볼 MVP를 여러 차례 수상한 톰 브래디의 누나이다.
2007년부터 "Kevin Youkilis Hits For Kids"라는 자선 기금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7. 1. 가족 관계
케빈 유킬리스는 그리스계 성을 가지고 있지만, 루마니아계 유대인 혈통이다.[211] 그의 조상들은 포그롬을 피해 그리스로 이주하면서 유대인임을 숨기기 위해 그리스식 성을 사용했다.[234] 유대교 신앙심이 깊어 속죄일에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며, 유월절에는 동료 유대인 선수들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2010년에는 유대인과 야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했고,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이스라엘 대표팀으로 출전하기를 희망했다.2008년 11월, 유킬리스는 엔자 삼바타로와 멕시코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나, 법적으로 혼인하지는 않았다.[202][203] 이 결혼식에는 마이크 로웰, 데이비드 오티즈, 더스틴 페드로이아 등 레드삭스 동료들이 참석했다. 삼바타로는 유킬리스의 자선 단체인 Hits for Kids의 CEO였으나, 2010년 결별과 함께 그만두었다.[204]
2012년 2월, ''보스턴 헤럴드''는 유킬리스가 미국프로풋볼(NFL) 쿼터백 톰 브래디의 누나인 줄리 브래디와 약혼했다고 보도했다.[205] 두 달 뒤, 두 사람은 뉴욕시에서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206] 현재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로스 가토스에 거주하고 있다.[170] 아내 줄리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소속으로 시즌 MVP와 슈퍼볼 MVP를 여러 차례 수상한 톰 브래디의 누나이다.
2007년부터 "Kevin Youkilis Hits For Kids"라는 자선 기금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8. 수상 경력
케빈 유킬리스는 2008년 아메리칸리그 행크 아론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에는 아메리칸리그 골드글러브 1루수 부문상을 받았다.[209] 1999년에는 올-아메리칸 대학 선수로 선정되었고, 2000년과 2001년에는 컨퍼런스 USA 올스타(내야수)에 이름을 올렸다. 2001년에는 2군 올 아메리칸(3루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2001년과 2002년에는 레드삭스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로 뽑혔으며, 2002년에는 트렌턴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2003년에는 퓨처스 게임 올스타, 이스턴 리그 올스타(유틸리티), ''베이스볼 아메리카'' AA 올스타 팀, 인터내셔널 리그 포스트시즌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2004년 5월에는 AL 신인왕을 수상했고, 2007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신시내티 대학교 제임스 P. 켈리 경기장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09]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1루수 최다 연속 무실책 경기(238경기) 기록을 세웠다.
2008년에는 AL 올스타(1루수)에 선발되었고, 시카모어 경기장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09년에는 AL 올스타 후보(1루수)에 올랐으며, 레드삭스 MVP로 선정되었다. 2011년에도 AL 올스타 후보(3루수)에 이름을 올렸다.
2015년에는 신시내티 대학교에서 그의 36번 유니폼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고,[209] 2017년에는 시카모어 고등학교에서 13번 유니폼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2018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209] 2019년에는 컨퍼런스 US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10]
골드 글러브상은 1회(2007년), 행크 아론상은 1회(2008년) 수상했으며, 이달의 신인상은 1회(2004년 5월) 수상했다. MLB 올스타전에는 3회(2008년, 2009년, 2011년) 선출되었다.
일본 프로 야구(NPB)에서는 2014년 3월 28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에서 첫 출전 및 첫 선발 출전을 기록했다. 같은 날 6회초 키시 코우스케로부터 좌전 안타를 기록하며 첫 안타를 신고했고, 3월 29일 경기 6회초 키쿠치 유세이에게서 좌월 솔로 홈런을 뽑아내며 첫 홈런과 첫 타점을 기록했다.
9. 연도별 타격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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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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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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