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시모노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콘스탄틴 시모노프는 러시아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종군 기자, 공공 인물이었다. 그는 1915년 페트로그라드에서 태어나 1979년 사망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종군 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시모노프는 다양한 문학 작품을 통해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시 "날 기다려 줘"는 널리 알려졌다. 그는 여러 문학 잡지의 편집장을 역임하고 소련 작가 연맹의 서기를 지냈으며,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를 비롯한 다양한 훈장과 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소련의 시인 - 이오시프 스탈린
이오시프 스탈린은 소비에트 연방의 독재자이자 소련 공산당 지도자로서, 소련의 산업화와 2차 세계 대전 승리를 이끌었지만 대숙청과 공포 정치로 수백만 명의 희생을 초래했으며, 그의 통치와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논쟁의 대상이다. - 소련의 시인 - 라술 감자토프
다게스탄 공화국 출신 아바르인 시인 라술 감자토프는 캅카스 산맥의 자연과 풍속, 사랑, 우정을 소재로 시를 썼으며, 소련과 러시아에서 여러 훈장을 받으며 문학적 업적과 사회적 공로를 인정받았다. - 소련의 극작가 - 막심 고리키
막심 고리키는 '쓰다'라는 뜻의 필명을 사용한 러시아의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밑바닥 인생을 묘사한 작품과 《어머니》, 《밑바닥에서》 등의 대표작을 남겨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 소련의 극작가 - 세르게이 미할코프
세르게이 미할코프는 소련 및 러시아 국가 가사를 작사하고 아동 문학 작가와 종군 기자로도 활동한 러시아의 시인이자 작가이며, 풍자극 제작과 영화 각본 집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 러시아의 시인 - 이오시프 스탈린
이오시프 스탈린은 소비에트 연방의 독재자이자 소련 공산당 지도자로서, 소련의 산업화와 2차 세계 대전 승리를 이끌었지만 대숙청과 공포 정치로 수백만 명의 희생을 초래했으며, 그의 통치와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논쟁의 대상이다. - 러시아의 시인 - 라술 감자토프
다게스탄 공화국 출신 아바르인 시인 라술 감자토프는 캅카스 산맥의 자연과 풍속, 사랑, 우정을 소재로 시를 썼으며, 소련과 러시아에서 여러 훈장을 받으며 문학적 업적과 사회적 공로를 인정받았다.
콘스탄틴 시모노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본명 | 콘스탄틴 미하일로비치 시모노프 |
출생일 | 1915년 11월 28일 (구 11월 15일) |
출생지 | 러시아 제국, 페트로그라드 |
사망일 | 1979년 8월 28일 |
사망지 | 소련, 모스크바 |
직업 | 전쟁 시인, 소설가, 극작가, 종군 기자 |
국적 | 러시아 |
배우자 | 발렌티나 세로바 (1943년–1957년) |
![]() | |
대표 작품 | |
시 | 기다려줘 |
소설 |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
![]() |
2. 초기 생애
콘스탄틴은 양아버지가 지역 군사 학교에서 교관으로 일하는 동안 랴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후 사라토프로 이사했고, 콘스탄틴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나머지 기간을 보냈다. 1930년 사라토프에서 7년제 교육을 마친 후, 공장 부설 학교(Fabrichno-Zavodskoe Uchilishche-FZU)에 들어가 선반 제작자가 되었다. 1931년 가족은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정밀 공학 과정을 마친 후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1935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귀족적인 발음 때문에 "r" 소리를 발음할 수 없어 본명인 키릴에서 콘스탄틴으로 개명했다.[5]
2. 1. 출생과 가계
콘스탄틴 시모노프는 1915년 페트로그라드에서 태어났다.[3] 그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레오니도브나 오볼렌스카야 공주는 류리크 왕조 오볼렌스키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 미하일 아가판겔로비치 시모노프는 차르의 군대 장교였으며,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를 떠나 1921년 이후 폴란드에서 사망했다.[4] 콘스탄틴의 어머니 알렉산드라는 콘스탄틴과 함께 러시아에 남았다. 1919년 그의 어머니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이자 붉은 군대 장교인 알렉산더 이바니셰프와 결혼했다.2. 2. 아버지의 망명과 어머니의 재혼
시모노프는 1915년 페트로그라드에서 태어났다.[3] 그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레오니도브나 오볼렌스카야 공주는 류리크 왕조 오볼렌스키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 미하일 아가판겔로비치 시모노프는 차르의 군대 장교였으며,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를 떠나 1921년 이후 폴란드에서 사망했다.[4] 콘스탄틴의 어머니 알렉산드라는 콘스탄틴과 함께 러시아에 남았다. 1919년 그의 어머니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이자 붉은 군대 장교인 알렉산더 이바니셰프와 결혼했다.2. 3. 성장 과정
시모노프는 1915년 페트로그라드에서 태어났다.[3] 그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레오니도브나 오볼렌스카야 공주는 류리크 왕조 오볼렌스키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 미하일 아가판겔로비치 시모노프는 차르의 군대 장교였으며,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를 떠나 1921년 이후 폴란드에서 사망했다.[4] 콘스탄틴의 어머니 알렉산드라는 콘스탄틴과 함께 러시아에 남았다. 1919년 그의 어머니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이자 붉은 군대 장교인 알렉산더 이바니셰프와 결혼했다.콘스탄틴은 양아버지가 지역 군사 학교에서 교관으로 일하는 동안 랴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들은 나중에 사라토프로 이사했고, 콘스탄틴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나머지 기간을 보냈다. 1930년 사라토프에서 7년제 교육을 마친 후, 그는 선반 제작자가 되기 위해 공장 부설 학교(Fabrichno-Zavodskoe Uchilishche-FZU)에 들어갔다. 1931년 그의 가족은 모스크바로 이사했다. 정밀 공학 과정을 마친 후 시모노프는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1935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귀족적인 발음 때문에 "r" 소리를 발음할 수 없어 본명인 키릴에서 콘스탄틴으로 개명했다.[5]
시모노프의 첫 번째 시는 1936년 잡지 ''영 가드''와 ''10월''에 게재되었다. 1938년 막심 고리키 문학 연구소에서 학교를 마친 후, 시모노프는 모스크바 역사·철학·문학 연구소에 입학했다. 1939년 5월부터 9월까지 몽골에서 진행된 할힌골 전투를 취재하기 위해 종군 기자가 되면서 그의 학업은 중단되었다. 시모노프는 1939년 연구소로 돌아왔다.
2. 4. 문학 수업
시모노프는 1936년 잡지 《영 가드》와 《10월》에 자신의 첫 시를 발표했다.[5] 1938년 막심 고리키 문학 연구소를 졸업한 후, 모스크바 역사·철학·문학 연구소에 입학했다. 1939년 5월부터 9월까지 할힌골 전투를 취재하기 위해 종군 기자로 파견되면서 학업이 중단되었다. 시모노프는 1939년에 연구소로 돌아가지 않았다.[5]3. 제2차 세계 대전 종군기자 활동
레닌 군사-정치 아카데미에서 종군 기자 과정을 밟은 시모노프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본격적인 종군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소련군 공식 신문인 《크라스나야 즈베즈다》 소속으로, 전쟁 기간 동안 군 계급을 꾸준히 높여 종전 후에는 대령까지 진급했다.
시모노프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독일 등 동유럽 각지를 누비며 베를린 전투를 포함한 주요 격전지에 참전했다. 그의 종군 경험은 종전 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온 편지》, 《슬라브 우정》, 《유고슬라비아 수첩》, 《흑해에서 바렌츠 해까지: 종군 기자의 기록》 등의 보고서로 출간되었다.
이 시기 시모노프는 종군 활동 외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희곡 《러시아 사람들》, 《날 기다려 줘》, 《그렇게 될 것이다》, 단편 소설 《낮과 밤》, 시집 《너와 함께 그리고 너 없이》, 《전쟁》 등을 발표했다. 특히, 그의 시 "날 기다려 줘"는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는 메시지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러시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3. 1. 군 입대와 초기 활동
레닌 군사-정치 아카데미에서 종군 기자로 공부한 시모노프는 2급 군수참모의 계급을 받았다.[8]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무렵, 공식 군 신문인 《크라스나야 즈베즈다》에서 일했다. 이후 시모노프는 군 계급을 올려 1942년에 연대급 정치 장교, 1943년에 중령, 종전 후에는 대령이 되었다.[8]3. 2. 주요 참전 지역
종군 기자로서 시모노프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독일 등지에서 복무했으며, 베를린 전투에 참여했다.[8] 종전 후 그의 보고서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온 편지》, 《슬라브 우정》, 《유고슬라비아 수첩》, 《흑해에서 바렌츠 해까지: 종군 기자의 기록》에 실렸다.[7]3. 3. 전시 작품 활동
시모노프의 첫 희곡 《어느 사랑의 역사》는 1940년에 쓰여 레닌 콤소몰 기념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1941년에는 두 번째 희곡 《우리 고장의 청년》을 썼다. 같은 해, 그는 소련군의 저항에 깊은 인상을 받아 하루에 독일 전차 39대가 파괴된 에피소드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3부작에 묘사했다.[7]레닌 군사-정치 아카데미에서 종군 기자를 공부한 시모노프는 2급 군수참모 계급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공식 군 신문 《크라스나야 즈베즈다》에서 일하며 군 계급을 올려, 1942년 연대급 정치 장교, 1943년 중령, 종전 후 대령이 되었다.[7]
전쟁 기간 동안 희곡 《러시아 사람들》, 《날 기다려 줘》, 《그렇게 될 것이다》, 단편 소설 《낮과 밤》, 시집 《너와 함께 그리고 너 없이》와 《전쟁》을 썼다. 특히, 전쟁 중인 병사가 사랑하는 이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는 시 "날 기다려 줘"는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 중 하나이다. 이 시는 미래의 아내인 배우 발렌티나 세로바에게 헌정되었으며, 그녀를 위한 많은 시가 《너와 함께 그리고 너 없이》에 포함되었다.[7]
종군 기자로서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독일에서 복무했으며, 베를린 전투에도 참여했다. 종전 후, 그의 보고서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온 편지》, 《슬라브 우정》, 《유고슬라비아 수첩》, 《흑해에서 바렌츠 해까지: 종군 기자의 기록》에 실렸다.[7]
4. 전후 활동
시모노프는 종전 후 작가, 언론인, 공산당원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일본, 미국, 중국에서 외교 임무를 수행했고, 1958년부터 1960년까지 타슈켄트에서 프라우다의 중앙아시아 특파원으로 활동했다.[6] 1952년 소설 《무기의 동지들》, 1959년 장편 소설 《산 자와 죽은 자》, 1961년 희곡 《넷째》, 1963~64년 소설 《병사들은 태어나지 않는다》, 1970~71년에는 속편 《마지막 여름》을 발표했다.
1946~50년과 1954~58년에는 잡지 《노비 미르》의 편집장을, 1950년부터 1953년까지는 《문학 가제타》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또한 1946년부터 1959년까지, 그리고 1967년부터 1979년까지 소련 작가 연맹의 서기였다.[6]
전쟁 중 소설 『낮과 밤』, 희곡 『러시아 사람들』등을 발표 했고, 전후 희곡 『프라하의 밤나무 아래에서』, 희곡 『러시아 문제』, 에세이 『유고슬라비아 수첩』을 집필했다.[8]
사회주의 노동 영웅, 적기 훈장, 조국 전쟁 훈장, 레닌상, 레닌 훈장, 스탈린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8]
사망 전 해에 모스크바주 포돌스크에 있는 국방부 기록 보관소에 군인들의 기억을 담은 특별 기록 보관소를 만들려고 했지만, 군 수뇌부가 이 아이디어를 막았다.[6] 시모노프는 1979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화장 후 모길료프 근처 부이니치 들판에 유해가 뿌려졌다.[8]
4. 1. 해외 특파원 활동
전쟁이 끝난 후 3년 동안 시모노프는 일본, 미국, 중국에서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는 타슈켄트에서 프라우다의 중앙아시아 특파원으로 활동했다.[6]4. 2. 창작 활동
전쟁 후, 시모노프는 3년 동안 일본, 미국, 중국에서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타슈켄트에서 프라우다의 중앙 아시아 특파원으로 활동했다.[6] 1952년 소설 《무기의 동지들》(Comrades in Arms)이 출판되었고, 1959년 장편 소설 《산 자와 죽은 자》(The Living and the Dead)가 출판되었다. 1961년에는 소브레메니크 극장에서 그의 희곡 《넷째》(The Fourth)가 공연되었다. 1963~64년에는 "병사는 만들어지는 것이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로 번역될 수 있는 소설 《병사들은 태어나지 않는다》(Soldatami ne rozhdaiutsia)를 썼고, 1970~71년에는 속편 《마지막 여름》(The Last Summer)을 썼다.[6]1946~50년과 1954~58년, 두 차례에 걸쳐 시모노프는 잡지 《노비 미르》의 편집장을 지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는 《문학 가제타》의 편집장이었고, 1946년부터 1959년까지, 그리고 1967년부터 1979년까지 소련 작가 연맹의 서기였다.[6]
전쟁 중에는 소설 『낮과 밤』, 희곡 『러시아 사람들』 등을 발표하여 절찬을 받았다. 전후에도 창작 의욕이 왕성하여 희곡 『프라하의 밤나무 아래에서』, 희곡 『러시아 문제』를 발표했고, 에세이 『유고슬라비아 수첩』을 집필했다.[8]
4. 3. 문단 내 주요 직책
시모노프는 1946년부터 1950년까지, 그리고 1954년부터 195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잡지 《노비 미르》의 편집장을 역임했다.[6] 1950년부터 1953년까지는 《문학 가제타》의 편집장을 맡았고,[6] 1946년부터 1959년까지, 그리고 1967년부터 1979년까지는 소련 작가 연맹의 서기였다.[6]4. 4. 기록 보관소 설립 시도와 사망
사망 전 해에 시모노프는 모스크바주 포돌스크에 있는 국방부 기록 보관소에 군인들의 기억을 담은 특별 기록 보관소를 만들려고 했지만, 군 수뇌부가 이 아이디어를 막았다.[6] 시모노프는 1979년 8월 28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되었고, 그의 유해는 모길료프 근처 부이니치 들판에 뿌려졌다.[8]5. 작품 목록
시모노프는 1940년에 첫 희곡 《어느 사랑의 역사》를 썼으며, 레닌 콤소몰 기념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1941년에는 두 번째 희곡 《우리 고장의 청년》을 썼다. 같은 해, 벨라루스 마힐료우 부근에서 독일군에 맞서 싸운 소련군의 저항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하루에 독일 전차 39대가 파괴된 전투를 자신의 3부작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 묘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희곡 《러시아 사람들》, 《날 기다려 줘》, 《그렇게 될 것이다》, 단편 소설 《낮과 밤》, 시집 《너와 함께 그리고 너 없이》와 《전쟁》을 썼다. 특히, 전쟁 중인 병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을 담은 시 "날 기다려 줘"는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시는 그의 미래의 아내인 배우 발렌티나 세로바에게 바친 것이다.
종군 기자로서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독일에서 복무했으며, 베를린 전투에도 참전했다. 종전 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온 편지》, 《슬라브 우정》, 《유고슬라비아 수첩》, 《흑해에서 바렌츠 해까지: 종군 기자의 기록》 등을 출간했다.
다음은 시모노프의 작품 중 일부를 번역, 출판한 목록이다.
번역서 제목 | 번역자 | 출판사 | 출판 연도 |
---|---|---|---|
『유고슬라비아 수첩』 | 구로다 타츠오 | 시지통신사 | 1946년 |
『프라하 밤나무 가로수 아래에서』 | 히지카타 케이타 | 쇼신사 | 1946년 |
『러시아 사람들』 | 야스미 토시오 | 협동출판사 | 1946년 |
『러시아 문제』 | 히지카타 요시 | 하야카와 쇼보 | 1953년 |
『낮이나 밤이나』 | 오노 슌이치 | 칸토샤(1951년), 카도카와 문고(1953년) | |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길』 | 알렉산드르 파데예프 공저, 카시마 야스오·에가와 타쿠 공역 | 미래사 | 1954년 |
5. 1. 소설
시모노프는 1952년에 소설 《무기의 동지들》(Comrades in Arms)을 출판했고, 1959년에 더 긴 소설 《산 자와 죽은 자》(The Living and the Dead)를 출판했다. 1963~64년에는 "병사는 만들어지는 것이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로 번역될 수 있는 소설 《병사들은 태어나지 않는다》(Soldatami ne rozhdaiutsia)를 썼고, 1970~71년에는 속편 《마지막 여름》(The Last Summer)을 썼다.[6]5. 2. 희곡
시모노프의 첫 희곡은 《어느 사랑의 역사》로, 1940년에 쓰여져 레닌 콤소몰 기념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1941년에는 두 번째 희곡 《우리 고장의 청년》을 썼다. 전쟁 기간 동안 그는 희곡 《러시아 사람들》, 《날 기다려 줘》, 《그렇게 될 것이다》를 썼다. 1961년에는 그의 희곡 《넷째》가 소브레메니크 극장에서 공연되었다.[6]5. 3. 시
전쟁 기간 동안 시모노프는 희곡 《러시아 사람들》, 《날 기다려 줘》, 《그렇게 될 것이다》, 단편 소설 《낮과 밤》, 그리고 두 권의 시집 《너와 함께 그리고 너 없이》와 《전쟁》을 썼다. 전쟁 중의 병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는 시인 "날 기다려 줘"는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 중 하나로 남아 있다.[6] 이 시는 그의 미래의 아내인 배우 발렌티나 세로바에게 헌정되었다. 발렌티나를 위한 그의 시 중 많은 수가 《너와 함께 그리고 너 없이》라는 책에 포함되었다.5. 4. 르포르타주
종군 기자로 활동한 시모노프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독일 등지를 방문했고, 베를린 전투에도 참전했다.[1] 종전 후,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온 편지》, 《슬라브 우정》, 《유고슬라비아 수첩》, 《흑해에서 바렌츠 해까지: 종군 기자의 기록》 등의 르포르타주를 발표했다.[1]다음은 시모노프의 르포르타주 작품 중 일부를 번역, 출판한 목록이다.
원제 | 번역서 제목 | 번역자 | 출판사 | 출판 연도 |
---|---|---|---|---|
『유고슬라비아 수첩』 | 구로다 타츠오 | 시지통신사 | 1946년 | |
『프라하 밤나무 가로수 아래에서』 | 히지카타 케이타 | 쇼신사 | 1946년 |
6. 수상 내역
종류 | 수여 국가 | 시기 |
---|---|---|
사회주의 노동 영웅 | 소비에트 연방 | 1974년 9월 |
레닌 훈장 | 소비에트 연방 | |
적기 훈장 | 소비에트 연방 | 1942년 5월 |
조국전쟁 훈장 1급 | 소비에트 연방 | |
명예 훈장 | 소비에트 연방 | 1939년 1월 |
독일과의 대조국전쟁 승리 기념 메달 1941–1945 | 소비에트 연방 | |
오데사 방어 기념 메달 | 소비에트 연방 | |
스탈린그라드 방어 기념 메달 | 소비에트 연방 | |
레닌상 | 소비에트 연방 | 1974년 |
소련 국가상 | 소비에트 연방 | 1942년, 1943년, 1946년, 1947년, 1949년, 1950년 |
백사자 훈장 |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 |
체코슬로바키아 전쟁 십자 1939–1945 |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 |
수흐바타르 훈장 | 몽골 인민 공화국 | |
바실리예프 형제 RSFSR 국가상 | RSFSR | 1966년 |
7. 시모노프 원작/시나리오 영화
제목 | 연도 | 감독 | 비고 |
---|---|---|---|
우리 동네의 사나이 | 1942 | 알렉산드르 스톨페르 | |
나를 기다려 줘 | 1943 | 알렉산드르 스톨페르 | |
조국의 이름으로 | 1943 | 브세볼로트 푸도프킨, 드미트리 바실리예프 | 극 러시아 사람들 |
낮과 밤 | 1945 | 알렉산드르 스톨페르 | |
러시아의 질문 | 1947 | 미하일 롬 | |
불멸의 수비대 | 1956 | ||
노르망디 - 네만 | 1960 | 소련-프랑스 합작, 샤를 스파크, 엘자 트리오레와 공동 제작 | |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 1964 | 알렉산드르 스톨페르 | 주연: 키릴 라브로프, 아나톨리 파파노프, 올레그 예프레모프 |
그라나다, 그라나다, 나의 그라나다... | 1967 | 다큐멘터리, 로만 카르멘과 공동 연출, 스페인 내전에 관한 내용 | |
보복 | 1969 | 알렉산드르 스톨페르 | |
폴리닌의 사건 | 1970 | 알렉세이 사하로프 | |
넷째 | 1972 | 알렉산드르 스톨페르 | |
전쟁 없는 20일 | 1976 | 알렉세이 게르만 | 주연: 유리 니쿨린, 류드밀라 구르첸코 |
로파틴의 노트에서 | 1977 | 이오시프 라이헬가우스, 올레그 타바코프 |
참조
[1]
백과사전
Симонов Константин Михайлович
https://dic.academic[...]
[2]
웹사이트
Konstantin Mihajlovič Simonov (1915–1979)
https://data.bnf.fr/[...]
[3]
뉴스
Константин Михайлович Симонов
Литературная газета
1979-09-05
[4]
서적
The Whisperers: Private Life in Stalin's Russia
Vintage Books
2007
[5]
서적
Moscow, 1941
Vintage Books
2006
[6]
논문
О попытке К. Симонова создать архив военных мемуаров
https://books.google[...]
[7]
웹사이트
СИМОНОВ, КОНСТАНТИН (КИРИЛЛ) МИХАЙЛОВИЧ
http://www.krugosvet[...]
2016-08-09
[8]
웹사이트
Encyclopedia of Soviet Writers
http://www.sovlit.ne[...]
2016-08-09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