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 바디스 (1951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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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오 바디스》는 1951년에 개봉한 머빈 르로이 감독의 영화로, 로마 제국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로마군 지휘관 마르쿠스 비니키우스가 인질로 잡혀온 기독교인 리지아에게 반하면서 겪는 갈등과, 네로 황제의 폭정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겪는 박해를 그린다. 로버트 테일러, 데보라 카, 피터 유스티노프 등이 출연했으며,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영화는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을 거두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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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 바디스 (1951년 영화)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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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 |
제목 | 쿠오 바디스 |
원제 | Quo Vad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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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머빈 르로이 |
각본 | 소냐 레비엔 |
원작 |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소설 쿠오 바디스 |
나레이터 | 월터 피전 |
출연 | 로버트 테일러 데보라 커 피터 유스티노프 |
음악 | 미클로스 로자 |
촬영 | 로버트 서티스 윌리엄 V. 스칼 |
편집 | 랄프 E. 윈터스 |
제작사 | MGM |
배급사 | 로우즈 MGM 일본 지사 |
개봉일 | 1951년 11월 8일 1953년 9월 15일 |
상영 시간 | 171분 |
언어 | 영어 |
제작비 | 700만 달러 |
흥행 수입 | 3002만 8983달러 1억 5251만 엔 |
2. 줄거리
게미나 제14군단의 군단장(레가투스) 마르쿠스는 브리튼과 갈리아에서의 전쟁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와 퇴역 장군 플라우티우스의 집에 머물게 된다. 이곳에서 마르쿠스는 플라우티우스의 양녀 리지아에게 반한다. 하지만 리지아와 플라우티우스 가족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마르쿠스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르쿠스의 외삼촌 페트로니우스는 네로 황제에게 리지아를 마르쿠스에게 보상으로 줄 것을 설득한다. 리지아는 마르쿠스에게 넘겨지지만, 자신을 소유물처럼 대하는 태도에 저항감을 느낀다. 한편, 점점 더 광기에 휩싸이는 네로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로마에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들에게 누명을 씌운다. 마르쿠스는 리지아를 구하려다 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 붙잡혀 원형 경기장 안 감옥에 갇힌다.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처형하려 하지만, 페트로니우스는 이런 행위가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 뿐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네로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네로의 광기에 지친 페트로니우스는 황제를 조롱하는 편지를 보내고 손목 동맥을 끊어 자살하고, 페트로니우스를 사랑하던 노예 유니스도 함께 자살한다. 한편, 베드로는 주님의 표징에 응하여 로마로 돌아와 마르쿠스와 리지아의 결혼을 주례하고,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한다.
마르쿠스를 탐했던 포파이아 황후는 복수를 위해 리지아가 황소에게 찔려 죽도록 계획하지만, 리지아의 경호원 우르수스가 황소의 목을 부러뜨려 실패한다. 마르쿠스는 경기장으로 뛰어들어 리지아에게 다가가고, 우르수스의 승리에 감명받은 군중은 네로에게 두 사람을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세네카 등 네 명의 신하가 군중의 요구를 지지했지만, 네로는 이를 거부한다. 군중이 격노하자 마르쿠스의 부대원들이 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달려온다. 마르쿠스는 네로가 로마를 불태웠다고 비난하며, 갈바 장군을 새로운 황제로 추대한다고 선포한다.
로마 방화의 주범이 네로임을 알게 된 군중은 폭동을 일으키고, 황궁으로 도망간 네로는 포파이아를 목졸라 죽인다. 버림받았음에도 네로를 사랑한 악테는 네로에게 자결을 권하고, 네로가 주저하자 네로가 단검을 가슴에 꽂는 것을 돕는다.
자유의 몸이 된 마르쿠스, 리지아, 우르수스는 로마를 떠나 시칠리아에 있는 마르쿠스의 영지로 향한다. 길가에는 베드로가 로마로 돌아갈 때 두고 온 지팡이에 꽃이 피어 있고, 빛이 나타나며 합창단이 예수가 말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4:6)를 노래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2. 1. 주요 등장인물
로버트 테일러가 마르쿠스 역을, 데보라 카가 리지아 역을, 레오 겐이 페트로니우스 역을, 피터 유스티노프가 네로 황제 역을 맡았다.[4] 패트리시아 라판이 포파에아 역, 핀레이 커리가 베드로 역, 에이브러햄 소퍼가 바오로 역, 마리나 베르티가 유니스 역, 버디 베어가 우르수스 역, 펠릭스 에일머가 플라우티우스 역, 노라 스윈번이 폼포니아 역을 연기했다.그 외에도, 티겔리누스, 네르바, 나자리우스, 테르프노스, 세네카, 파온, 악테, 킬로, 크로톤, 미르얌, 루피아, 루카누스, 플라비우스, 아낙산더, 갈바 등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소피아 로렌이 단역(크레딧 없음)으로 출연했다.[4][5] 월터 피전이 내레이션을 맡았지만 크레딧에는 포함되지 않았다.[5]
2. 1. 1. 마르쿠스 비니시우스
로버트 테일러가 연기한 마르쿠스 비니시우스는 로마 제국의 군 지휘관이다. 그는 리지아에게 반해 사랑을 이루려 하지만, 리지아가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에 갈등한다. 3년간의 원정을 마치고 로마로 개선한 그는 리지아를 아내로 맞이하려 하지만, 리지아는 구애를 거절하고 자취를 감춘다. 마르쿠스는 리지아가 기독교 신자임을 알고 비밀 집회에 잠입하여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다. 리지아를 데려가려다 시종 우르수스에게 저지당해 부상을 입지만, 리지아의 간호를 받으며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리지아와 헤어진다.네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탄압하자, 마르쿠스는 리지아를 구하려다 포파에아의 계략에 빠져 체포된다. 그는 감옥에서 베드로의 축복을 받고 리지아와 결혼하지만,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며 고통받는다. 결국 마르쿠스는 네로의 악행을 고발하고, 갈바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하면서 자유를 얻는다.
2. 1. 2. 리지아
데보라 카가 연기한 리지아는 기독교인으로, 마르쿠스와의 사랑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마르쿠스의 구애를 거절하고 종적을 감추지만, 마르쿠스는 점술가를 통해 그녀가 기독교 신자임을 알게 된다. 리지아는 마르쿠스를 간호하며 호감을 느끼지만, 마르쿠스가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못하자 헤어진다. 이후 로마 대화재 사건으로 기독교인들이 탄압받을 때 체포되지만, 마르쿠스가 개종하고 옥중에서 베드로의 축복을 받아 결혼식을 올린다. 투기장에서 맹수에게 공격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우르수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마르쿠스가 네로의 악행을 고발하고 새 황제가 즉위하자, 리지아는 마르쿠스, 우르수스, 나자리아스와 함께 시칠리아로 떠난다.[4]
2. 1. 3. 네로
피터 유스티노프가 네로 황제를 연기했다.[4] 네로 황제는 로마 제국의 황제[5]로, 자신의 시 창작 소재를 찾고 네로폴리스라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할 목적으로 로마에 불을 질렀다.[5] 민중 반란을 두려워한 네로는 포파에아의 꾐에 빠져 방화 주모자를 기독교인으로 위장해 탄압한다.[5] 궁지에 몰린 네로는 자신을 꾀었던 포파에아를 목졸라 죽이고, 전 애인이자 지금은 기독교인이 된 해방 노예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5]일본어 더빙 성우는 다음과 같다.
2. 1. 4. 페트로니우스
레오 겐이 연기한 페트로니우스는 네로 황제의 측근이자 마르쿠스 비니키우스의 삼촌으로,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페트로니우스는 네로를 감언이설로 꾀어 시 짓기와 방탕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네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들을 탄압하자, 페트로니우스는 이에 반대하며 네로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편지를 남기고 독약을 마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1. 5. 기타 등장인물
- 포파에아: 네로 황제의 아내로, 마르쿠스를 짝사랑하여 간계를 부린다.[5]
- 베드로: 기독교 사도로, 로마에서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이끌며, 십자가형을 당한다.[5]
- 우르수스: 리기아 공주의 시종으로,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이다. 리기아를 보호하며, 맹수와 싸워 이긴다.[5]
- 바오로: 기독교의 사도로 등장한다.
- 유니스: 페트로니우스의 노예이다.
- 플라우티우스: 리기아의 양아버지이자 전직 장군으로, 네로의 방화가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화형당한다.[5]
- 폼포니아: 플라우티우스의 아내이다.
- 티겔리누스: 로마의 장군이다.
- 네르바: 로마의 귀족이다.
- 나자리우스: 베드로를 따르는 고아 소년이다.
- 테르프노스:
- 세네카: 네로의 스승이자 철학자이다.
- 파온:
- 악테: 네로의 전 애인이자 해방 노예였으나, 기독교인이 된다. 네로에게 자결을 권유한다.[5]
- 킬로:
- 크로톤:
- 미르얌:
- 루피아:
- 루카누스:
- 플라비우스:
- 아낙산더:
- 갈바: 로마의 장군, 이후 황제가 된다.[5]
그 외에도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소피아 로렌이 단역(크레딧 없음)으로 출연했다.[4][5] 월터 피전이 내레이션을 맡았지만 크레딧에는 포함되지 않았다.[5]
3. 제작
1930년대 후반, MGM은 헨리크 시엔키에비츠의 소설 《쿠오 바디스》의 영화화 권리를 매입하고 이탈리아에서 제작을 진행하려 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연기되었다.[54] 전쟁 이후 제작이 재개되면서 로마 인근 치네치타 스튜디오를 임대했다.[54] 1948년부터 미술 감독, 의상 디자이너 등이 로마에 도착해 네로 황제의 원형 경기장, 네로 궁전 외부, 고대 로마, 다리, 플라우티우스 빌라 등의 세트 건설을 시작했다. 엑스트라를 위한 수천 벌의 의상과 전차 10대도 제작되었으며, 아피아 가도 일부가 보수되었다. 또한, 유럽 전역에서 사자, 말, 황소 등 동물들이 조달되었다.[16]
1950년 5월 22일, 제작이 시작되었다.[16] 당시 제작비는 700만달러로, 역대 최고 제작비였다.[55] 이 영화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건설한 치네치타에서 촬영되었는데,[55] 전후 이탈리아의 저렴한 시설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치네치타는 '티베르 강의 할리우드'로 불리며 헬렌 오브 트로이 (1956), 벤허 (1959) 등 대규모 영화 촬영지가 되었다.[56] 치네치타 외에도 이탈리아 내 열 군데에서 촬영되었으며, 리보르노도 지역의 비알레 데이 치프레시에서 전차 추격전 장면이 촬영되었다. 1950년 여름 로마의 폭염으로 사자들이 경기장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어려움도 있었다.[57]
장비 부족으로 인해 MGM은 컬버시티에서 발전기, 조명 등 200톤에 달하는 장비를 수입해야 했다.[58] 32,000개의 의상이 사용되어, 사용된 의상의 수가 가장 많은 영화로 기록되었다.[59]
3. 1. 기획 및 각색
1930년대 후반,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MGM)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상속자들로부터 1896년 소설 《쿠오 바디스》의 유성 영화 판권을 구매했다. (동시에 1924년 무성 영화 버전도 구매해야 했다.)[54] MGM은 원래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제작하려 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해 연기되었다. 전쟁 후 제작이 재개되었다. 로마 외곽 8마일에 위치한 148에이커 부지에 9개의 사운드 스테이지를 갖춘 거대한 치네치타 스튜디오가 임대되었다.[54][16]수개월의 준비 끝에 미술 감독, 의상 디자이너, 세트 장식가가 1948년 로마에 도착했다. 야외 세트 건설이 즉시 시작되었다. 거대한 네로 황제의 원형 경기장과 네로 황제의 궁전 외관, 고대 로마의 전체 구역, 거대한 다리, 플라우티우스 별장 등이 건설되었다. 엑스트라를 위한 수천 벌의 의상 제작이 시작되었고, 휘장, 카펫, 금속 및 유리 잔, 10대의 전차도 만들어졌다. 아피아 가도의 일부를 개조하는 데 대한 공식적인 허가가 주어졌다. 할리우드의 저명한 동물 전문가 중 한 명이 유럽 전역에서 사자, 말, 황소 및 기타 동물들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영화 촬영에 앞서 프로듀서, 감독, 수석 촬영 감독, 캐스팅 디렉터가 로마에 도착했다. 영화는 마침내 1950년 5월 22일 월요일에 제작에 들어갔다.[16]
이 영화는 원래 1949년에 캐스팅되었으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리지아 역을, 그레고리 펙이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역을 맡을 예정이었다. 다음 해에 제작사가 바뀌면서 이 배역은 데보라 카와 로버트 테일러에게 돌아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서커스 감옥의 기독교인으로 크레딧에 오르지 않는 카메오 역할을 맡았다.[6]
클라크 게이블은 영화 제작 초기에 로마 의상을 입고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역을 거절했다.[6]
오드리 헵번은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리지아 역으로 고려되었다. 감독 머빈 르로이는 그녀를 캐스팅하고 싶어했지만,[7] 이 역할은 이미 MGM과 계약을 맺은 스타 데보라 카에게 돌아갔다. 영화 의상을 입은 그녀의 사진이 아직 남아있다.[8][9]
패트리샤 래판은 영화 속 작은 배역을 위해 오디션을 본 후, 프로듀서와 감독에 의해 포페아의 중요한 역할로 선택되었다.[10]
3. 2. 촬영
Quo Vadis영어는 1937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계획으로 건설된 치네치타 촬영소에서 촬영되었다.[55] 전후 이탈리아에서 촬영한 덕분에 미국에 비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시설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었다.[56] 치네치타는 이후 '티베르 강의 할리우드'로 불리며, 트로이의 헬렌(1956), 벤허(1959), 클레오파트라(1963) 등 대작 영화들이 촬영되었다.[56]






치네치타 외에도 아피아 가도를 비롯한 이탈리아 내 열 군데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16] 전차 추격전 마지막 장면은 리보르노도 지역의 비알레 데이 치프레시에서 촬영되었다. 1950년 여름 로마는 폭염으로 인해 사자들이 경기장에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57]
MGM은 장비 부족으로 인해 컬버 시티에서 200톤에 달하는 발전기, 조명 등을 수입해야 했다.[58] 32,000개의 의상이 사용되어, 사용된 의상 수가 가장 많은 영화로 기록되었다.[59]
원래 1949년에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그레고리 펙이 주연으로 캐스팅될 예정이었으나, 제작사가 바뀌면서 데보라 카와 로버트 테일러에게 배역이 돌아갔다. 클라크 게이블은 로마 의상이 우스꽝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해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역을 거절했다. 오드리 헵번도 리지아 역으로 고려되었으나, 결국 데보라 카가 캐스팅되었다.[7]
소피아 로렌과 부드 스펜서는 단역으로 출연했다.
3. 3. 미술 및 의상
이 영화는 1949년에 제작이 기획되었으며, 원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작사가 바뀌면서 데보라 카와 로버트 테일러로 주연 배우가 변경되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단역으로 출연했다.출연진은 대부분 영국인이었고, 일부 이탈리아 배우도 있었지만, 주연 중에서는 로버트 테일러가 유일한 미국인이었다. 클라크 게이블은 로마 의상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주연을 거절했다. 오드리 헵번도 리지아 역으로 고려되었으나, 결국 데보라 카에게 배역이 돌아갔다. 패트리샤 래판은 오디션을 통해 포페아 역에 캐스팅되었다.
영화 제작비는 700만달러로, 당시 역대 최고 제작비였다. 촬영은 베니토 무솔리니가 설립한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이는 전후 이탈리아의 저렴한 노동력과 시설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치네치타 스튜디오는 "테베레강의 할리우드"라고 불리며, 《트로이의 헬렌》(1956), 《벤허》(1959) 등 많은 할리우드 대작 영화 촬영지로 사용되었다.
영화에는 32,000벌의 의상이 사용되어 당시 영화 의상 수 기록을 세웠다. 영화 속 로마 모형은 로마 문명 박물관의 모형이 아니라, 영화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었다.
3. 4. 음악
Miklós Rózsa영어는 이 영화가 이탈리아에서 촬영되는 동안 캘버 시티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악보를 썼다고 회고했다. 그는 수석 편집자 마가렛 부스와 함께 작업하며, 로마에서 현상된 필름이 할리우드로 보내져 편집되는 즉시 악보 작업을 시작했다. 덕분에 로마 팀이 돌아왔을 때 큰 문제 없이 3주 만에 모든 음악을 준비할 수 있었다.[13]4. 역사적 배경
서기 1세기 초, 황제네로가 통치하던 로마 제국은 영화의 배경이다. 당시 로마는 네로의 사치와 방탕으로 혼란스러웠고, 네로는 시 짓기와 쾌락에 빠져 있었다. 그의 아내 포파에아는 궁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네로는 자신의 시에 대한 영감을 얻고 새로운 수도인 '네로폴리스'를 건설하겠다는 야망으로 로마에 불을 질렀다. 대화재로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되자 분노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했고, 네로는 이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포파에아의 계략에 넘어가 기독교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영화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로마 장군 마르쿠스 비니시우스와 기독교인 리지아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4. 1. 네로와 로마 대화재
서기 1세기 초, 황제네로가 다스리던 로마 제국은 네로의 사치와 방탕으로 혼란스러웠다. 네로는 시 짓기와 쾌락에 빠져 있었고, 그의 아내 포파에아는 궁정에서 권력을 휘둘렀다.네로는 자신의 시에 영감을 얻고 새로운 수도 '네로폴리스'를 건설하겠다는 야망으로 로마에 불을 지른다. 대화재로 도시가 잿더미가 되자 분노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하고, 네로는 포파에아의 꾐에 빠져 기독교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탄압한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네로는 로마를 네로폴리스라는 새로운 도시로 재건하려는 계획을 보여주는 축척 모형을 자신의 궁정에 보여준다. 스튜디오 홍보에서는 이것이 로마 문명 박물관에 소장된 고대 로마의 모형이며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빌린 것이라고 주장했다.[16] 그러나 이 모형은 서기 64년 대화재 이후 재건되었을 때의 1세기 로마가 아닌, 4세기 로마의 모형으로, 영화 속 모형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17][18]
앤서니 만은 영화에서 크레딧에 기재되지 않은 제2유닛 감독으로 일했다.[19] 그는 로마 화재 장면 촬영을 위해 치네치타 야외 세트장에서 24일 밤(4주)을 보냈으나, 영화의 공동 감독은 아니었다.[20] 같은 시퀀스의 사운드 스테이지 장면은 머빈 르로이가 연출했다.[6]
4. 2. 초기 기독교 박해
서기 1세기 초,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는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고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다.[1] 포파에아의 꾐에 빠진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탄압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어 투기장에서 굶주린 사자에게 희생되거나 십자가형을 당했다.[1] 성인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형에 처해졌고,[1] 리지아의 양아버지이자 전 장군이었던 플라우티우스는 "방화는 네로의 소행"이라고 호소하다 화형에 처해졌다.[1]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희생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은 오히려 네로와 로마 시민들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다.[1]4. 3. 관련 인물 및 사건
- 네로: 로마 제국의 황제로, 영화에서는 시 짓기와 방탕에 빠져 지내며 로마 대화재를 일으키는 등 폭군으로 묘사된다. 결국 시민들의 봉기로 궁지에 몰려 자결한다.[1]
- 페트로니우스: 네로의 측근으로, 영화에서는 네로에게 감언이설을 일삼는 인물로 등장한다. 네로의 방화와 기독교 탄압에 반대하다가 결국 자살한다.[1]
- 포파에아: 네로의 아내로, 영화에서는 권력을 휘두르며 마르쿠스를 짝사랑하여 계략을 꾸미는 인물로 묘사된다. 네로에게 기독교도를 방화범으로 몰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결국 네로에게 살해당한다.[1]
- 베드로: 기독교의 사도로, 영화에서는 로마에서 기독교 비밀 집회를 열고, 기독교인들을 이끄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로마를 떠나려다 그리스도의 환영을 보고 돌아와 순교한다.[1]
- Quo vadis?la: 베드로가 로마를 떠나려 할 때 그리스도에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던 질문으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1]
5. 평가 및 영향
《쿠오 바디스》는 비평가들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여러 시상식에서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을 하는 영예를 안았다.
- 비평가들은 웅장한 스케일과 화려한 볼거리에 대해 호평했지만, 일부는 진부한 로맨스와 느린 전개를 지적했다. (비평 참조)
-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6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1951년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흥행 참조)
- 제24회 아카데미상 8개 부문 후보, 제9회 골든 글로브상 남우조연상 및 촬영상을 수상했다. (수상 참조)
5. 1. 비평
《뉴욕 타임스》의 보슬리 크라우더는 "영화적 탁월함과 순전한 진부함, 시각적 흥미와 언어적 지루함, 역사적 허세와 성적인 요소가 뒤섞인 놀라운 조합"이라며 복합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세실 B. 드밀의 《사인 오브 더 크로스》조차도 머빈 르로이 감독이 보여준 잔혹하고 병적인 장면에 필적하지 못한다고 평했지만, "뛰어난 영상 사이에 진부한 로맨스가 지루하게 얽혀 있어 이를 참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61]《버라이어티》는 "흥행 성과 면에서 국가의 탄생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견줄 만하다"고 말하며, "크기, 스케일, 화려함, 역동성을 모두 갖추었으며, 오랜만에 '초대형'이라는 진부한 용어에 신빙성을 부여한 작품"이라며 칭찬했다.[62]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에드윈 샬러트는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영화 중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영화"라고 선언하며, "화려함에 있어 이 작품을 따라올 제작은 없다"고 극찬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리처드 L. 코는 이를 "엄청나게 재미있는 영화"라고 부르며, "이 유명한 소설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 고비용의 영화가 상영 시간이 3시간이 넘지만 그 시간이 그렇게 길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63] ''해리슨스 리포트''는 "화려함, 세트의 웅장함, 캐스트 규모, 테크니컬러 촬영의 아름다움 면에서 ''쿼 바디스''와 맞먹는 영화는 없다. 이 영화는 모든 면에서 초대형 스펙터클이며, 그 점만으로도 많은 돈을 내고 볼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먼슬리 필름 불레틴은 "이 영화는 규모와 스펙터클이 취향, 감성, 그리고 창의적 재능과 분리되었을 때 얼마나 지루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상상력이 부족한 연출에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며, 기술적 완성도 역시 인상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로튼 토마토에 따르면, 17건의 평론 중 긍정적인 평가는 88%에 해당하며,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 중 6.4점이다.[50]

5. 2. 흥행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6주 연속[60][21] 1위를 차지했고, 통산 11주 동안 1위를 기록했다. MGM의 기록에 따르면, 처음 극장 개봉했을 때 미국과 캐나다에서 1114.3000000000002만달러, 기타 지역에서는 989.4만달러의 수익을 올려 1951년 최고 수익 영화이며, 스튜디오는 544만달러의 수익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