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역미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탁발역미는 174년에 태어나 277년에 사망한 탁발부의 수장이다. 그는 220년 외적의 침입으로 부족이 흩어진 후, 두빈을 따라 세력을 키웠으며, 두빈의 딸과 결혼하여 세력을 확장했다. 이후 흩어진 부족들을 통합하고 248년에는 두빈의 세력을 흡수하여 20만 명 이상의 병력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는 위나라와 화친하고 아들을 태자로 보내는 등 외교에도 힘썼으나, 아들 탁발사막한이 모반 혐의로 죽임을 당한 후 사망했다. 탁발역미는 104세, 58년간 통치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277년 사망 - 탁발사막한
탁발사막한은 3세기 후반 탁발부 태자로서 위나라에 인질로 보내져 한족 문화를 접했으나, 위관의 이간계와 부족 내 반발로 아버지에게 살해당하며 위나라와 탁발부의 관계 및 권력 암투를 드러낸다. - 174년 출생 - 제갈근
제갈근은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장으로 손권의 신임을 받았으며, 촉한의 제갈량과 조위의 제갈탄과 함께 삼국시대에 걸쳐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 174년 출생 - 조순 (후한)
후한 말 조조의 사촌 동생이자 호표기를 이끌었던 무장 조순은 황문시랑을 거쳐 조조 휘하에서 남피 전투, 백랑산 전투 등 공을 세웠으며 사후 조비에 의해 위후로 추증되었다. - 북위의 추존황제 - 탁발십익건
탁발십익건은 오호십육국 시대 대나라의 군주로서, 국가 체제 정비와 영토 확장으로 대나라의 세력을 크게 일으켰으나, 말년에 내분으로 인해 살해당했으며, 사후 소성황제로 추존되었다. - 북위의 추존황제 - 탁발울률
탁발울률은 탁발부의 수령 탁발의로의 아들로, 316년 대나라의 대왕으로 옹립되어 유능한 군사 지도자로서 세력을 확장했지만, 321년 백모 유씨에게 살해당했다.
탁발역미 | |
---|---|
탁발력미 | |
성 | 탁발(拓跋, Tuòbá) |
휘 | 력미(力微, Lìwēi) |
시호 | 선목황제(宣穆皇帝, Xuānmù Huángdì) |
묘호 | 시조(始祖, Shǐzǔ) |
존호 | 개국황제(開國皇帝, Kāiguó Huángdì) |
생애 | |
출생 | 174년 |
사망 | 277년 |
재위 기간 | 219년 ~ 277년 |
자녀 | 탁발사막한 탁발실록 탁발작 탁발녹관 탁발의 탁발불 탁발수근 탁발건 탁발보라 탁발욱율 탁발추인 탁발맹 탁발사 탁발우 탁발개 |
기타 | |
아버지 | 탁발걸근 |
종교 | 샤머니즘 |
2. 생애
탁발역미는 174년에 탁발질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아버지가 죽은 뒤 부족의 어른이 되었다. 그는 영웅호걸의 기질을 지녔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짐작하기 어려웠다고 한다.[1]
220년 서부에서 외적이 침입하여 부족이 흩어지자 탁발역미는 몰록회부의 어른 두빈을 따랐다. 이후 탁발역미는 두빈과 함께 서쪽 부족을 공격했지만 패배했다. 탁발역미는 도망치는 과정에서 두빈이 말을 잃자, 자신이 타고 있던 준마를 두빈에게 주었다. 두빈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탁발역미에게 크게 감탄하여 보답으로 국토의 절반을 주려 했으나, 탁발역미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 두빈의 딸과 혼인했다. 또한 두빈은 탁발역미에게 부족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장하에 근거지를 세우기를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었다.[1]
10여 년 후, 탁발역미는 각지에 교화를 행하여 널리 인덕을 쌓았다. 흩어졌던 부족들이 모두 탁발역미에게 귀순하였다.[1]
248년, 두빈이 중병에 걸려 두 아들에게 탁발역미를 섬기도록 유언을 남겼으나, 두빈의 아들들은 따르지 않고 탁발역미를 제거하려 했다. 이 음모를 알아챈 탁발역미는 선수를 쳐서 두빈의 아내와 아들들을 죽이고 두빈이 관할하던 모든 부락을 병합했다. 이로 인해 여러 부의 어른들이 탁발역미에게 복종하게 되었고, 그의 병사는 20만 명이 넘게 되었다.[2]
258년, 탁발역미는 정양군의 성락으로 옮겨갔다. 같은 해 4월, 하늘에 제사를 지낼때, 백부 어른 관망만이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탁발역미는 관망을 정벌하여 복속시켰다.[1]
탁발역미는 흉노의 답돈이 재물을 탐하고 약탈을 일삼아 원한을 사는 것은 장기적인 책략이 아니라고 말하며, 위나라와 수교를 깊게 할 것을 결정하고 사신을 보냈다.[1]
261년, 위와 화친을 맺은 탁발력미는 아들 탁발사막한을 위나라에 보냈다. 탁발사막한은 태자로서 낙양에 머물면서 탁발부와 위의 융화에 힘썼다.
265년, 사마염이 선양을 받아 진나라를 건국했으나, 탁발부와의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었다.
267년, 탁발사막한이 진나라로부터 귀국했다.
275년 6월, 탁발력미는 다시 탁발사막한에게 명하여 헌상품을 가지고 진나라에 가게 했다. 진나라의 위관은 탁발부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탁발사막한을 낙양에 머물게 하고, 여러 어른들에게 뇌물을 보내 이간책을 썼다.
277년, 진나라는 탁발사막한을 귀국시켰다. 탁발력미는 크게 기뻐하며 각 부의 어른들을 파견하여 맞이하게 했다. 그러나 위관의 이간책에 넘어간 어른들은 탁발사막한에게 모반 의혹을 씌웠고, 탁발역미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탁발사막한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어른들은 탁발사막한에게 가서 탁발역미의 명령이라고 속여 사막한을 주살했다. 그 후, 탁발역미는 이 일을 매우 후회했다고 한다.
같은 해, 탁발역미는 병을 앓아 오환 왕 고현에게 군을 맡겼다. 그러나 고현은 위관에게 뇌물을 받고 나라를 어지럽히려 했다. 고현은 여러 어른들에게 탁발역미가 그들의 참언으로 태자를 죽인 것을 후회하여 장남들을 죽이려 한다고 거짓말을 했고, 이에 어른들은 흩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탁발역미는 향년 104세, 58년간의 통치를 끝으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와 부족 통합
탁발역미는 174년에 탁발질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부터 총명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탁발질분이 사망한 후 부족의 어른이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웅호걸의 그릇을 갖추었다고 한다.[1]220년, 서쪽에서 외적이 침입하여 부족이 흩어지자 탁발역미는 몰록회부의 어른 두빈을 따랐다. 이후 두빈과 함께 서쪽 부족을 공격했다가 패주하였는데, 도망치는 도중 두빈이 말을 잃고 걸어서 도망가자 탁발역미는 자신이 타고 있던 준마를 두빈에게 주었다. 두빈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탁발역미에게 보답하고자 국토의 절반을 주려 했으나 탁발역미는 거절하였고, 대신 두빈은 자신이 총애하던 딸을 탁발역미에게 시집보냈다. 두빈은 탁발역미에게 부족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장하에 근거지를 세우기를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었다.[1]
10여 년 후, 탁발역미는 각지에 교화를 행하여 널리 인덕을 미치게 되었다. 이전에 흩어졌던 부족들은 모두 탁발역미에게 귀순하였다.[1]
248년, 두빈이 중병에 걸려 자신의 아들들에게 탁발역미를 섬기도록 유언을 남겼으나, 두빈의 아들들은 따르지 않고 탁발역미를 제거하려 하였다. 하지만 음모가 새어 나가 탁발역미는 먼저 두빈의 아내를 죽이고, 뒤이어 두빈의 아들들까지 처형하였다. 이로써 두빈이 관할하던 모든 부락을 병합하였고, 여러 부의 어른들은 탁발역미에게 마음으로 복종하게 되어 병사가 20만 명이 넘게 되었다.[1]
258년, 탁발역미는 정양군 성락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같은 해 4월,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백부 어른 관망이 참석하지 않자, 탁발역미는 관망을 정벌하였다. 이로써 멀리 있는 자와 가까이 있는 자 모두 탁발역미에게 복종하게 되었다.[1]
2. 2. 두빈 세력 흡수와 세력 확장
220년 서부에서 외적의 침입으로 부족이 흩어지자, 탁발력미는 몰록회부의 어른 두빈을 따랐다. 이후 탁발력미는 두빈과 함께 서쪽 부족을 공격했지만 패배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두빈이 말을 잃고 걸어서 도망가자, 탁발력미는 자신이 타고 있던 준마를 두빈에게 주어 그가 무사히 도망칠 수 있게 도왔다. 두빈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탁발력미에게 크게 감탄하여 보답으로 국토의 절반을 주려 했으나, 탁발력미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 두빈의 딸과 혼인했다.10여 년 후, 탁발력미는 각지에 교화를 행하여 널리 인덕을 쌓았다. 흩어졌던 부족들이 모두 탁발력미에게 귀순하였다.[1]
248년, 두빈이 중병에 걸려 두 아들에게 탁발력미를 섬기도록 유언을 남겼으나, 두빈의 아들들은 따르지 않고 탁발력미를 제거하려 했다. 이 음모를 알아챈 탁발력미는 선수를 쳐서 두빈의 아내와 아들들을 죽이고 두빈이 관할하던 모든 부락을 병합했다. 이로 인해 여러 부의 어른들이 탁발력미에게 복종하게 되었고, 그의 병사는 20만 명이 넘게 되었다.[2]
2. 3. 위, 진과의 외교 관계
261년, 위와 화친을 맺은 탁발력미는 아들 탁발사막한을 위나라에 보냈다. 탁발사막한은 태자로서 낙양에 머물면서 탁발부와 위의 융화에 힘썼다.265년, 사마염이 선양을 받아 진나라를 건국했으나, 탁발부와의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었다.
267년, 탁발사막한이 진나라로부터 귀국했다.
275년 6월, 탁발력미는 다시 탁발사막한에게 명하여 헌상품을 가지고 진나라에 가게 했다. 진나라의 위관은 탁발부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탁발사막한을 낙양에 머물게 하고, 여러 어른들에게 뇌물을 보내 이간책을 썼다.
277년, 진나라는 탁발사막한을 귀국시켰다. 탁발력미는 크게 기뻐하며 각 부의 어른들을 파견하여 맞이하게 했다. 그러나 위관의 이간책에 넘어간 어른들은 탁발사막한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 탁발력미가 여러 어른들에게 "내 아들이 진나라에서 돌아왔는데, 어떻게 변했는가"라고 묻자, 어른들은 "태자는 재능이 뛰어나 하늘에 활을 쏘아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립니다. 이는 진나라 사람의 요망한 술법이며,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해치는 조짐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탁발사막한에게 모반 의혹을 씌웠다. 탁발사막한이 오랫동안 진나라에 있는 동안, 탁발력미는 탁발사막한의 동생들에게 총애를 쏟게 되었고, 이미 100세를 넘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어른들의 말을 들을수록 의심을 품게 된 탁발력미는 "그 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 바로 이것을 배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어른들은 즉시 탁발사막한에게 가서 탁발력미의 명령이라고 속여 사막한을 주살했다. 그 후, 탁발력미는 이 일을 매우 후회했다고 한다.
2. 4. 탁발사막한의 죽음과 최후
261년, 위와 화친을 맺은 탁발력미는 아들 탁발사막한을 위나라에 보냈다. 탁발사막한은 태자로서 낙양에 머물면서, 탁발부와 위의 융화에 힘썼다.265년, 사마염이 선양을 받아 진나라를 건국했으나, 탁발부와의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었다.
267년, 탁발사막한이 진나라로부터 귀국했다.
275년 6월, 탁발력미는 다시 탁발사막한에게 명하여 헌상품을 가지고 진나라에 가게 했다. 진나라의 위관은 탁발부의 세력을 깎기 위해 탁발사막한을 낙양에 머물게 하고, 여러 어른들에게 뇌물을 보내 이간책을 썼다.
277년, 진나라는 탁발사막한을 귀국시켰다. 탁발력미는 크게 기뻐하며 각 부의 어른들을 파견하여 맞이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위관의 이간책으로 탁발사막한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 탁발력미가 여러 어른들에게 "내 아들이 진나라에서 돌아왔는데, 어떻게 변했는가?"라고 묻자, 그들은 "태자는 재능이 뛰어나 하늘에 활을 쏘아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립니다. 이는 진나라 사람의 요망한 술법이며,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해치는 조짐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탁발사막한에게 모반의 의혹을 씌웠다. 탁발사막한이 오랫동안 진나라에 머무는 동안, 탁발력미는 탁발사막한의 동생들에게 총애를 쏟게 되었다. 또한, 탁발력미는 이미 100세를 넘었기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어른들의 말을 들을수록 점점 의심을 품고 "그 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 바로 이것을 배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어른들은 즉시 탁발사막한에게 가서 탁발력미의 명령이라고 속여 사막한을 주살했다. 그 후, 탁발력미는 이 일을 매우 후회했다고 한다.
같은 해, 탁발력미는 병을 앓아 오환 왕 고현에게 군을 맡겼다. 그러나 고현도 위관에게 뇌물을 받았고, 고현은 나라를 크게 어지럽혀 부락을 흩뜨리려 했다. 그가 뜰에서 도끼를 갈고 있자, 여러 어른들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주상께서는 당신들의 참언을 믿고 태자를 죽인 것을 깊이 원망하고 있습니다. 지금 모든 어른들의 장남을 체포하여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여러 어른들은 그의 말을 믿고 놀라 흩어져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탁발력미는 사망했다. 향년 104세, 58년간의 통치였다.
3. 일화
탁발질분이 수만의 기병을 이끌고 산과 늪에서 사냥하던 중, 하늘에서 내려온 수레에서 아름다운 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자신이 천녀이며, 탁발질분과 혼인하라는 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날 밤을 함께 보낸 후, 천녀는 내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풍우처럼 엄청난 속도로 사라졌다.[1]
1년 후, 탁발질분은 같은 장소에서 천녀와 재회했고, 천녀는 갓 태어난 아이를 탁발질분에게 맡기며 "이 아이는 당신의 아들이며, 잘 교육하여 훌륭한 아이로 키우세요. 자손은 대대로 왕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떠났다. 이 아이가 탁발역미이다. 당시 사람들은 "질분에게는 부가(아내의 가문)가 없고, 력미에게는 구가(어머니 쪽 가문)가 없다"라는 노래와 속담을 만들었다.[1]
4. 가족
참조
[1]
서적
China's Northern Wei Dynasty, 386-535: The Struggle for Legitimacy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20-12-21
[2]
서적
Fire over Luoyang: A History of the Later Han Dynasty 23-220 AD
https://books.google[...]
BRILL
2016-10-18
[3]
서적
Chinese Architecture in an Age of Turmoil, 200-600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4-12-31
[4]
서적
新唐書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