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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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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머스 골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천문학자, 지구물리학자, 생물리학자로, 펄서의 회전하는 중성자별 가설, 달 표면의 먼지 가설, 석유의 무기 기원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정상 우주론을 제시하고, NASA의 달 탐사 계획에 참여했으며, 심해 열권 생물권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골드는 학문적 업적 외에도 NASA와의 갈등, 주류 과학계와의 논쟁 등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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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골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토마스 골드
토마스 골드
이름토마스 골드
명예로운 접미사FRS
출생과 사망
출생일1920년 5월 22일
출생지오스트리아
사망일2004년 6월 22일
사망지뉴욕 주 이타카
국적
국적오스트리아
영국
미국
학문 분야
분야천체 물리학
천문학
생물 물리학
우주론
지구 물리학
항공 우주 공학
소속
소속 기관케임브리지 대학교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
하버드 대학교
코넬 대학교
학력
출신 대학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박사 지도 교수R. J. 펌프리
박사 제자스탠턴 J. 필
피터 골드라이히
업적
주요 업적정상 우주론
펄서 연구
비생물 기원 석유론
심층 고온 생물권
이음향 방사
나노 플레어
골드 효과
수상
수상 내역영국 왕립 학회 회원 (1964년)
존 프레더릭 루이스 상 (1972년)
훔볼트상 (1979년)
왕립 천문학회 골드 메달 (1985년)

2. 생애

출신인 토머스 골드는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은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학업을 이어갔다.[1] 그는 처음에 기계 공학을 전공했으나, 곧 물리학으로 전향했다.[2]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적성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억류되기도 했는데, 이때 헤르만 본디를 만났다.[3][4] 석방 후 골드는 프레드 호일, 본디와 함께 해군에서 레이더 연구에 참여했고,[5] 이들은 여가 시간에 우주론에 대한 토론을 하며[6] 골드는 우주론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7]

이후, 골드는 1950년대에 정상 우주론을 발표하였고, 그리니치 천문대하버드 대학교를 거쳐 1959년부터 코넬 대학교의 우주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1964년에는 왕립 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골드는 자기권과 우주를 연구했으며, 본디와 함께 정상 우주론을 발전시켰다. 1968년 펄서가 발견되자, 골드는 펄서가 강한 자기장을 가진 중성자별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천체임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골드는 표면의 암석이 열 사이클의 작용으로 먼지 상태가 되어 두껍게 달 표면을 덮고 있다는 가설을 오랫동안 주장하여 미국의 달 비행 위성 계획에 영향을 미쳤으나, 실제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04년, 토머스 골드는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8]

2. 1. 초기 생애

토머스 골드는 1920년 5월 22일 오스트리아 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막스 골드는 오스트리아 최대의 광업 및 금속 가공 회사를 운영하던 부유한 유대인 사업가였고(전쟁 전), 어머니 요제피네 마틴은 독일 출신의 전직 배우였다.[5] 1920년대 말 유럽 광업 산업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막스 골드는 금속 무역 회사 이사로 일자리를 얻어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이주했다.[5]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운동이 시작되자, 골드와 그의 가족은 아버지의 유산 때문에 독일을 떠났다. 그 후 몇 년 동안 가족은 유럽을 여행했다. 골드는 스위스 주오츠에 있는 리체움 알피눔 주오츠 기숙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그곳에서 그는 영리하고 경쟁적이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공격적인 인물임을 빠르게 증명했다.[6] 1938년 주오츠에서 학업을 마친 골드는, 1938년 초 독일의 오스트리아 침공 이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피난했다. 골드는 193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기계 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7]

1940년 5월, 히틀러가 벨기에프랑스에서 진격을 시작했을 때, 골드는 영국 정부에 의해 적국인으로 억류되었다. 버리 세인트 에드먼즈의 육군 막사에서 억류 첫날 밤, 그는 훗날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가 되는 헤르만 본디를 만났다.[8][9] 골드는 15개월에 가까운 억류 기간 대부분을 캐나다의 수용소에서 보냈고, 이후 영국으로 돌아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다시 입학하여 기계 공학 대신 물리학을 공부했다.[8] 1942년 6월 합격 (일반) 학위로 졸업한 후, 골드는 잠시 농업 노동자와 벌목꾼으로 일하다가, 본디 및 프레드 호일과 함께 서리 던스폴드 근처에서 레이더 지상 잡음 연구에 참여했다. 세 사람은 "우주론", 수학천체물리학과 같은 주제에 대해 "강렬하고 광범위한 과학적 토론"을 하며 여가 시간을 보냈다.[10]

몇 달 안에 골드는 새로운 레이더 시스템 구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골드는 상륙정이 D-Day에 적절한 상륙 지점으로 항해하기 위해 레이더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결정했으며, 독일 해군이 스노클을 유보트에 장착하여 수면 위에서 공기를 흡입하면서 수중에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5]

전쟁 직후 호일과 본디는 케임브리지로 돌아갔지만, 골드는 1947년까지 해군 연구에 종사했다. 그 후 그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마그네트론을 제작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교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마그네트론은 1940년 두 명의 영국 과학자가 발명한 장치로, 레이더용 고강도 마이크로파를 생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드는 전쟁 중 레이더 해군 연구 부국장을 지낸 케임브리지 동물학 연구소의 동물학자 R. J. 펌프리와 합류하여 공명이 인간의 귀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2. 2. 케임브리지 대학교

에서 태어난 골드는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학업을 이어갔다.[1] 처음에는 기계 공학을 전공했지만, 곧 물리학으로 전향했다.[2]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그는 적성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잠시 억류되기도 했는데, 이때 헤르만 본디를 처음 만났다.[3][4]

석방된 후, 골드는 프레드 호일, 본디와 함께 해군에서 레이더 연구에 참여했다.[5] 이들은 여가 시간에 함께 우주론에 대한 토론을 즐겼으며,[6]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골드는 우주론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7]

2. 3. 미국에서의 활동

1956년 골드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천문학 교수(1957-1958)와 응용 천문학 로버트 휠러 윌슨 교수(1958-1959)를 역임했다.[22] 1959년 초, 코넬 대학교로부터 방사선 물리학과 우주 연구를 위한 학제간 부서를 설립하고 천문학과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26] 당시 이 학과에는 다른 교수가 한 명뿐이었다. 골드는 1981년까지 방사선 물리학 및 우주 연구 센터의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코넬 대학교를 과학 연구의 선도적인 중심지로 이끌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칼 세이건, 프랭크 드레이크 등 유명한 천문학자들을 영입했으며, 푸에르토리코의 아레시보 천문대에 세계 최대의 전파 망원경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고, 해리 메셀과 함께 코넬-시드니 대학교 천문학 센터를 설립했다. 또한 골드는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연구 부총장 보좌관을 역임했고, 1971년부터 1986년 은퇴할 때까지 존 L. 웨더릴 천문학 교수로 재직했다.[81][27][28]

3. 학문적 업적

토머스 골드는 출신으로 스위스에서 교육받고, 케임브리지 대학교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해 적국 출신으로 구금되었을 때 허먼 본디를 만났고, 석방 후에는 프레드 호일, 본디와 함께 레이더 개발에 참여하며 우주물리학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1950년대에는 정상 우주론을 발표했으며, 그리니치 천문대, 하버드 대학교를 거쳐 1959년부터 코넬 대학교의 우주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1964년 왕립 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골드는 자기권과 우주를 연구했다. 그는 본디와 함께 정상 우주론을 발전시켰으며, 1968년 펄서가 발견되자, 펄서가 강한 자기장을 가진 중성자별이 빠르게 회전하는 천체라고 설명했다.

골드는 오랫동안 달 표면의 암석이 열 순환 작용으로 먼지 상태가 되어 두껍게 달 표면을 덮고 있다는 가설을 주장했고, 이는 미국의 달 탐사 계획에 영향을 주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1948년에는 청각 이론에 관한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이론은 귀가 탐지하려는 주파수에서 에너지를 더함으로써 "재생 라디오 수신기"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었다.[12]

1959년, 골드는 태양 플레어가 자기 구름 형태로 물질을 방출하여 지구에 자기 폭풍을 일으키는 충격 전선을 형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또한 "자기권"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29]

3. 1. 정상 우주론

골드는 프레드 호일, 허먼 본디와 함께 적색편이와 허블의 법칙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조르주 르메트르가 처음 제안하고 조지 가모프가 발전시킨 빅뱅 이론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1978년 물리학자이자 역사가인 스펜서 R. 위어트와의 인터뷰에서 골드는 물질이 항상 생성되며, 새로운 물질이 생성되어 새로운 은하로 응축되는 속도만큼 팽창이 일어나는 정상 상태일 수 있다고 믿었다.[14]

1948년, 골드와 본디는 빅뱅 이론에 대한 대안으로 정상 우주론을 제시하는 논문을 발표했다.[15] 이들은 완전 우주론적 원리를 바탕으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모습이 변하지 않으며, 시작도 끝도 없다고 주장했다.[14][17] 이들은 우주가 공간과 시간에서 균일하고 등방성을 가지며, 대규모로 볼 때 우주의 어떤 장소도 특별한 것이 없다고 보았다.[18] 또한, 우주가 진화하지 않고 특징적인 특징이나 시간 방향이 없으므로, 대규모 운동이 존재해야 한다고 가정하고, 대규모 팽창과 수축이라는 두 가지 가능한 운동 유형을 제시했다.[19]

골드와 본디는 팽창하는 우주 내에서 수소 원자가 진공에서 109년당 입방 미터당 1개의 원자 비율로 생성되고 있다고 추정했다.[20] 이러한 물질 생성은 팽창함에 따라 우주의 밀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또한, 허블이 계산한 우주의 나이와 지상 암석의 방사성 붕괴 연대 측정 사이의 불일치와 같은 시간 척도 문제도 정상 우주론에는 없다고 주장했다.[21]

그러나 1960년대에 퀘이사와 전파 은하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만 발견되고 가까운 은하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관측 결과가 나오면서 정상 우주론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이는 우주가 실제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17] 또한, 정상 우주론 지지자들은 수소 원자 외에 반물질도 생성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양성자반양성자의 소멸로 인한 우주 감마선 감마선 배경과 중성자 생성으로 인한 X선 방출 가스 등은 관측되지 않았다.[17]

결정적으로 1965년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가 발견되면서 정상 우주론은 대부분의 우주론자들에게 반박되었다. 이는 빅뱅 이론에 의해 예측된 결과였다.[22] 스티븐 호킹은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의 발견이 "정상 우주론의 관에 마지막 못을 박는 것"이라고 언급했다.[23] 본디는 이론이 반증되었음을 인정했지만, 골드는 호일의 수정된 정상 우주론을 지지하는 등 수년 동안 이 이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1998년에 이르러서야 이 이론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했지만, 결함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기원에 대한 이해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했다.[9]

한편, 1951년 왕립 천문학회 회의에서 골드는 최근 우주에서 감지된 전파 신호의 근원이 은하수 은하 외부에 있다고 제안했지만, 마틴 라일을 비롯한 다른 과학자들은 이를 비웃었다. 그러나 1년 후, 멀리 떨어진 근원이 확인되었고, 골드는 국제 천문 연맹 로마 회의에서 자신의 이론이 증명되었다고 발표했다. 라일은 후에 골드의 주장을 외부 은하 진화의 증거로 받아들여 정상 우주론의 타당성을 부정했다.[24]

3. 2. 펄서 연구

1968년 펄서가 발견되자, 골드는 펄서가 강한 자기장을 가진 중성자별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천체임을 제시했다.

3. 3. 달 표면 연구

1950년대부터 골드는 NASA의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며, 당시 과학자들은 달 표면의 물리적 특성에 관해 논쟁을 벌였다. 1955년, 골드는 달이 "태양계의 파편이 끊임없이 표면에 충돌"하여 생긴 미세한 암석 가루 층으로 덮여 있다고 예측했다.[26] 이 먼지는 "골드 먼지" 또는 "골드의 먼지"라고 불렸다.[37][38] 골드는 처음에는 우주 비행사들이 먼지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후 분석 결과 우주 비행사의 부츠는 달 표면으로 3cm만 가라앉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NASA는 서베이어 계획을 통해 달 표면의 상태를 분석했다. 골드는 그의 가설뿐만 아니라 NASA의 우려를 미국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식 때문에 동료 과학자들에게 조롱받았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달의 레골리스를 지칭하는 데 "달 먼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 분노했다.[39]

1969년 아폴로 11호 승무원이 달에 착륙하여 최초의 달 암석 샘플을 가져왔을 때, 연구자들은 달 토양이 실제로 가루 형태임을 발견했다. 골드는 그 결과가 그의 가설과 일치한다며 "어떤 지역에서는 걸어가면서 5~8인치 정도 가라앉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골드는 그의 예측에 대한 공로를 거의 인정받지 못했고, 깊은 달 먼지 층에 대한 그의 원래 예측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았다.[26] 골드는 아폴로 11, 12, 14호 임무에 사용된 스테레오 카메라인 아폴로 달 표면 클로즈업 카메라(ALSCC)를 설계하여 아폴로 프로그램에 기여했다.[26][40]

달 표면에 남은 버즈 올드린의 부츠 자국. 올드린은 1969년 7월 20일 달 표면의 토양 역학을 조사하기 위해 이 부츠 자국을 촬영했다.


골드는 오랫동안 달 표면의 암석이 열 순환 작용으로 먼지 상태가 되어 두껍게 달 표면을 덮고 있다는 가설을 주장하여, 미국의 달 비행 위성 계획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 문제는 큰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3. 4. 청각 이론

1946년 골드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달팽이관에서 관찰되는 공명 정도가 내이를 채우는 액체의 점성으로부터 예상되는 감쇠비 수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골드가 실험을 했던 케임브리지의 동료 학생 중 한 명인 프리먼 다이슨의 설명에 따르면, 그 절차는 "단순하고 우아하며 독창적"이었다.[11] 골드는 전쟁 물자인 해군 전자 장비와 헤드폰으로 실험 장치를 제작했다. 이는 골드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해군의 레이더 및 통신 전문가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사용했던 장비였다.[11]

1948년 그는 자신의 결과에 대한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하나는 이론을 설명하고 다른 하나는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11] 그의 이론은 귀가 탐지하려는 것과 같은 주파수에서 에너지를 더함으로써 "재생 라디오 수신기"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었다.[12] (이후 이것은 이음향 방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골드는 이 제안된 청각 메커니즘에 대한 논문으로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상을 받았고,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강사직을 얻었지만, 그의 이론은 1961년 노벨상 수상자인 게오르크 폰 베케시와 같은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생리학자들에게 광범위하게 무시되었는데, 그들은 달팽이관이 피드백 시스템으로 작동한다고 믿지 않았다.[13] 그러나 나중에 연구자들은 골드의 가설이 옳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2004년에 골드에 대해 출판된 과학 부고 중 하나에 따르면, "30년 넘게 무시되었던 그의 연구는 1970년대에 생리학자들이 내이에서 증폭기 역할을 하는 작은 유모 세포를 발견했을 때 재발견되었다."[12]

3. 5. 지구 자기권

1959년, 골드는 이전에 예측했던 무충돌 충격파 이론을 확장하여, 태양 플레어가 자기 구름 형태로 물질을 방출하고, 이것이 지구에 자기 폭풍을 일으키는 충격 전선을 형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29] 그는 또한 "지구의 자기권 내 운동"이라는 논문에서 "자기권"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자기권은 "지구 자기장이 가스와 빠른 하전 입자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전리층 위의 영역... [으로] 지구 반지름의 약 10배까지 확장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29] 2015년 논문 "활동 영역에서 나노 플레어 모델링과 코로나 가열 메커니즘에 대한 함의"는 지구 위 자기 폭풍의 원인에 대한 초기 아이디어를 골드에게 돌렸다.[30]

4. 석유의 무기 기원설

토머스 골드는 석유가 지구 깊은 곳에서 생성되는 탄화수소지각의 틈을 통해 위로 이동하며 만들어진다는 석유의 무기 기원설을 주장했다. 그는 이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학원생 스티븐 소터와 함께 지진과 메탄 가스 방출의 연관성을 연구했다.[46][47]

골드와 소터는 지진 발생 시 나타나는 땅에서 솟아오르는 불꽃, 지진광, 물에서 격렬한 기포 발생, 유황 냄새, 동물의 이상 행동 등의 현상을 조사했다.[48] 그들은 주요 석유 생산 지역과 역사적인 지진 활동 지역을 비교하여, 알래스카, 텍사스, 카리브해, 멕시코, 페르시아 만, 우랄 산맥, 시베리아, 동남아시아 등 여러 석유 매장 지역이 주요 지진대에 위치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러한 지진대가 깊은 곳에서 기원하는 가스의 상승 이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48][49]

골드는 석유 및 천연 가스 매장량에 헬륨이 풍부하다는 점과, 고갈된 것으로 여겨졌던 일부 유전에서 갑자기 많은 양의 원유가 생성되는 현상을 근거로, 지구가 거의 무한한 화석 연료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최소 5억 년 치의 가스"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50][51][52][53] 그는 일부 지역에서 석유 생산 과정 중 솟아오르는 엄청난 양의 헬륨 가스가 태양계 탄생 시 우주 잔해들이 지구로 합쳐진 이후 상당량의 경량 가스가 지구 깊은 곳에 존재해 왔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54]

골드는 성간 물질에 대량으로 포함된 탄화수소를 석유의 기원으로 보았으며, 그의 저서 『지구 심층 가스』[82], 『미지의 지하 고열 생물권』[83] 등은 일본에서도 번역되었다.

4. 1. 이론의 배경

토머스 골드는 1950년대에 석유의 기원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고, 화석 연료의 비생물적 형성에 대한 이론을 제시했다. 골드는 프레드 호일과 이 문제에 대해 철저한 토론을 벌였으며, 호일은 1955년 저서 ''천문학의 프론티어''에 "골드의 기공 이론"이라는 장을 포함시키기도 했다.[43]

관벌레가 블랙 스모커 열수 분출공 기저에서 먹이를 먹고 있다


러시아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석유의 가능한 비생물적 기원을 설명하는 연구를 해왔지만, 냉전으로 인해 1990년대까지 그들의 출판물에 대한 지식이 차단되었다.[43] 1973년에 시작된 휘발유 부족에 대한 우려가 경제를 괴롭히고 있던 1977년 2월, 심해에서 심해 열수 분출공이 발견되었다. 이는 화학 에너지에 의존하여 사는 생명체가 밀집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러한 생태계가 광합성이 아닌 화학 합성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미생물 생명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44]

폴 데이비스는 골드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통념에 따르면 석유와 석탄은 고대 지표 생물이 매몰되어 극한의 온도와 압력을 받게 된 잔재이다. 골드는 이러한 퇴적물이 일반적인 의미의 화석 연료가 아니라 지구 형성 시대부터 존재해 온 원시 탄화수소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45]

골드는 태양계 내의 비생물적 탄화수소의 보편성에 대해, "다른 행성에는 분명히 어떤 식물도 없는데도, 지구에서는 생물학적 기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항상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44]

석유는 아주 오래전 생물의 사체가 지하에 묻혀 압력과 온도 하에서 분해되어 생성된 것으로 하는 유기 기원설이 일반적이지만, 유기 기원설로는 존재를 설명할 수 없는 지층에서도 석유·천연가스의 저장층이 발견되고 있다. 골드는 성간 물질에 대량으로 포함된 탄화수소를 석유의 기원으로 하는 석유의 무기 기원설을 주장했다.

4. 2. 실얀 링 시추 실험

토머스 골드는 1986년에 비생물적 석유 기원 이론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바텐팔(Vattenfall)과 가스 연구소(Gas Research Institute) 등 투자자 그룹의 지원을 받아 스웨덴 실랸 호 근처의 기반암에 시추공인 그라브베르그-1(Gravberg-1) 시추가 시작되었다.[55] 이곳은 거대한 운석 구덩이가 있던 곳으로, "메탄이 위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깊은 채널을 열어" 표면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덮개암에 매장층을 형성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55][56] 골드는 실랸 호 근처의 균열이 지구 속으로 거의 40km까지 뻗어 있다고 추정했다.[57] 실랸 호는 약 3억 7천만 년 전에 운석 충돌로 형성된 실랸 링이라고 불리는 침식된 충돌구에서 생성된 큰 호수인데, 골드는 이 호수에서 석유 기원에 대한 가설을 시험하기에 가장 유력한 장소로 제안했다. 그 이유는 세계에서 화강암 기반암이 충분히 갈라져 깊은 곳에서 석유가 스며 나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54]

1987년에는 약 의 시추 윤활유가 거의 나 땅 속으로 사라졌고, 골드는 윤활유가 메탄 저장소로 떨어진 것으로 믿었다.[58] 얼마 지나지 않아, 팀은 거의 100리터의 검은 유성 슬러지를 표면으로 가져왔다. 골드는 슬러지에 석유와 고세균의 잔해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은 우리가 이전에 알았던 것보다 더 깊은 땅 속에서 엄청난 생명체, 생물학적 존재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하며, 이 증거가 "석유가 생물학적 분자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석유 매장량이 생물학적 물질에서 파생되어야 한다는 정설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골드의 연구 결과 발표는 "격렬한 불신"에서 "깊은 회의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59] 지구화학자 제프리 P. 글래스비는 슬러지가 피셔-트롭쉬 공정으로 형성되었을 수 있다고 추측했는데, 이는 일산화 탄소수소의 혼합물인 합성 가스를 액체 탄화수소로 변환하는 촉매 화학 반응이다.[49] 비평가들은 또한 골드의 고세균 발견을 일축하며 "미생물은 그런 깊이에서 생존할 수 없으므로, 세균은 시추공이 표면으로부터 오염되었음을 증명한다"고 말했다.[64] 지구화학자 폴 필립은 슬러지를 분석한 결과, 슬러지와 표면 근처의 퇴적 셰일 암석에서 발견된 석유 누출 샘플을 구별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석유가 셰일에서 땅 속 깊은 곳의 화강암으로 이동했다고 추론했다.[60] 골드는 필립의 발견에 대해 "그들은 우리가 그곳에서 발견한 석유와 가스가 맨 위에 있는 5피트의 퇴적물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 6킬로미터나 되는 화강암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터무니없는 일이죠. 5피트의 토양과 그 아래 6킬로미터의 밀도가 높은 화강암이 있고, 그곳에서 생성된 메탄이 물보다 먼저 기어 내려왔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절대 말도 안 됩니다."라며 이의를 제기했다.[64]

슬러지를 둘러싼 논란과 시추 오염 가능성을 감안하여 골드는 그라브베르그-1 프로젝트를 "완전한 실패"라고 부르며 포기하고, 석유 기반 시추 윤활유를 수성 윤활유로 교체하여 실험을 재설계했다.[64]

1989년 봄에 시추공에서 석유가 발견되었지만, 약 만 채취되었다. 골드는 "판매할 수 있는 속도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석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 후 시추공은 기술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6.8킬로미터 깊이에서 중단되었다. 구멍은 막혔지만, "퇴적암이 훨씬 적은 충돌 고리의 중심"에 더 가깝게 시추하기 위해 두 번째 구멍이 뚫렸다. 1991년 10월까지 시추공은 3.8킬로미터 깊이에서 석유를 발견했지만, 많은 회의론자들은 이 부지의 전망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57][61] 지질학자 존 R. 카스타노는 탄화수소원이 맨틀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없고, 실얀 부지가 상업용 가스전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낮다고 결론 내렸다.[62] 2019년, 가스와 2차 탄산염 광물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장기간의 미생물 메탄 생성 작용이 충돌구의 균열 시스템 내에서 (최소 8천만 년 동안) 현장에서 발생했으며, 표면 퇴적 기원의 누출 오일과 뚜렷한 공간적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63] 이는 골드의 깊은 무생물 가스 이동 이론과 상반된다.

4. 3. 심해 열권 생물권

토머스 골드는 1950년대에 석유의 기원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고, 화석 연료의 비생물적 형성에 대한 이론을 제시했다. 골드는 프레드 호일과 이 문제에 대해 철저한 토론을 벌였으며, 호일은 1955년 저서 ''천문학의 프론티어''에 "골드의 기공 이론"이라는 장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러시아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석유의 가능한 비생물적 기원을 설명하는 연구를 해왔지만,[43] 냉전으로 인해 1990년대까지 그들의 출판물에 대한 지식이 차단되었다. 따라서 토머스 골드는 1977년 6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석유와 가스의 기원 재고"라는 제목의 의견 기사를 제출하게 되면서 미국에서 이 아이디어의 공로를 인정받았다.[44] 1973년에 시작된 휘발유 부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경제를 괴롭히고 있었다. 불과 4개월 전(1977년 2월) 심해에서 놀라운 발견이 또 다른 자극제가 되었다. 심해 열수 분출공의 탐사와 사진 촬영을 통해 화학 에너지에 의존하여 사는 생명체가 밀집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분출구 유출에 의존하는 고정 생물체에는 표면 해양 생태계에서 볼 수 없었던 것보다 큰 알비노 조개와 관벌레가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러한 생태계가 에너지 포착과 생물 세포 구축에 화학 합성 방식이 아닌 광합성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미생물 생명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폴 데이비스는 골드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통념에 따르면 석유와 석탄은 고대 지표 생물이 매몰되어 극한의 온도와 압력을 받게 된 잔재이다. 골드는 이러한 퇴적물이 일반적인 의미의 화석 연료가 아니라 지구 형성 시대부터 존재해 온 원시 탄화수소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휘발성 가스가 지각의 틈을 통해 표면으로 이동하여 메탄으로 대기 중으로 누출되거나 지하 가스전에 갇히거나 수소를 빼앗겨 석유, 타르 또는 석탄과 같은 탄소질 물질이 된다고 주장한다."[45]

태양계 내의 비생물적 탄화수소의 보편성에 대해, 1999년 ''워싱턴 포스트''의 골드에 대한 프로필은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인용했다. "다른 행성에는 분명히 어떤 식물도 없는데도, 지구에서는 생물학적 기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항상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992년 논문 "심해 열권 생물권"(The Deep, Hot Biosphere)[67]에서 골드는 처음으로 미생물 생명체가 지구 지각의 다공성 공간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온도가 상승하여 한계에 도달하는 수 킬로미터 깊이까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지하 생명체는 광합성이 아닌 지각을 통해 위로 이동하는 유체 내의 화학적 에너지원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심해 생물권의 질량은 지표 생물권의 질량과 비슷할 수 있다. 지하 생명체는 다른 태양계 천체와 우주 전역, 심지어 다른 별을 동반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광범위하게 존재할 수 있다.

1993년 윌리엄 브로드 기자가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기사, [https://www.nytimes.com/1993/12/28/science/strange-new-microbes-hint-at-a-vast-subterranean-world.html "미지의 새로운 미생물이 광대한 지하 세계를 암시한다"]는 골드의 주장을 대중에게 알렸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새로운 형태의 미생물 생명체가 지구 내부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에 수 마일까지 뻗어 있고 전체 질량이 지표 생명체의 질량과 비슷하거나 초과할 수 있는 숨겨진 생물권이 존재한다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심해 생물권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과학자들은 이 발견이 교과서를 다시 쓰게 할 것이며, 생명의 기원에 대한 수수께끼에 새로운 빛을 비출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회의론자들조차 이 주장이 지하 영역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정당화할 만큼 흥미롭다고 말한다."[68]

1993년 기사는 또한 골드의 주장이 천체 생물학 연구의 가능성을 어떻게 확장하는지를 보여준다. "코넬 대학교의 천체물리학자 토머스 골드 박사는 대담한 이론화로 알려져 있으며, 지하 생명체가 행성 및 위성 표면 아래에 숨겨져 있고, 인근 별의 따뜻한 방사선 없이 지질학적 과정에 의해 에너지를 얻으며 우주를 점점이 수놓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작년에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태양계가 최소 10개의 심해 생물권을 품고 있을 수 있다고 썼다. '그러한 생명체는 우주에서 널리 퍼져 있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지구와 유사한 지하 조건을 가진 행성형 천체가 우주에 고독한 물체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다른 태양형 시스템에서도 흔할 수 있기 때문이다.'"[68]

골드는 1999년에 동일한 제목의 책 ''심해 열권 생물권''(The Deep Hot Biosphere)[69]을 출판하여 1992년 논문의 주장을 확장하고, 생명의 기원과 수평 유전자 전달에 대한 추측을 포함했다. 골드에 따르면, 기름을 먹는 박테리아는 탄화수소 연료에 생물학적 잔해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후자의 기원에 대한 생물 기원 이론을 사용할 필요성을 없앤다. 지하 탄화수소의 흐름은 다른 광물 퇴적물의 농도에서 나타나는 특이점을 설명할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골드는 천연 탄화수소(석유 및 천연 가스)의 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탄화수소는 지질학에 의해 재작업된 생물학이 아니라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생물학에 의해 재작업된 지질학이다.''[70]

프리먼 다이슨은 골드의 1999년 책 서문에서 "골드의 이론은 항상 독창적이고, 항상 중요하며, 대개 논란의 여지가 있고, 대개 옳다. 골드를 친구이자 동료로 50년간 지켜본 나의 믿음에 따르면, 심해 열권 생물권은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즉, 독창적이고, 중요하며, 논란의 여지가 있고, 옳다."라고 썼다.[69]

골드가 사망한 후 과학적 발견은 심해 열권 생물권에 대한 이해를 증폭시키고 변화시켰으며, 현재 일반적으로 심해 생물권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지구화학 과정은 강렬한 열과 압력에 의해 유도되어 독창적인 생명체의 신진대사(특히 원시적인 고세균)가 진화할 수 있는 원소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생성하는 것은 아주 깊은 곳에서만 일어난다. 골드의 1992년 논문과 동일한 저널에 게재된 회고 논문은 골드의 논문이 영감을 준 심층부 생명체의 대사 및 유전적 발견을 다루었다. "심해 열권 생물권: 25년간의 회고"(The Deep, Hot Biosphere: Twenty-five years of retrospection)[72]라는 제목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 토머스 골드가 제안한 선구적인 아이디어는 지구생물학 분야의 한 세대 연구자들에게 지하 생명의 가능성을 더 깊이 탐구하도록 영감을 주어 수백 건의 관련 출판물을 낳았다.... 화성, 타이탄 및 그 너머의 세계에 있는 심해 탄화수소 퇴적물은 지구 자체의 지각에 있는 것과 유사한 생명체의 서식지가 될 수 있다. 지구의 심해 열권 생물권을 더 잘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은 다음 세기의 과학적 발견으로 나아가면서 로봇을 사용하여 심우주에서 표적을 탐사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 기술은 골드의 심해 열권 생물권이 사실일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 흔하다는 것을 알게 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66]

골드가 1999년 저서에서 만들어낸 용어는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73] 그가 옹호한 세계관의 변화를 상기시켜준다.[66] 이 용어는 "지표 쇼비니즘"이다. 골드는 다음과 같이 썼다. "돌이켜보면, 과학계가 일반적으로 천국에서 오직 '지표' 생명만을 찾으려 했던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과학자들은 일종의 '지표 쇼비니즘'에 의해 방해를 받아왔다."[69] 2024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골드가 심해 생명체의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외계 행성의 위성 중 하나 (유로파, 목성)가 탄소 기반 생명체에 필수적인 물리적, 화학적 조건을 실제로 품고 있는지 연구하고 표본을 채취하기 위한 첫 번째 우주선 유로파 클리퍼(Europa Clipper)를 발사했다.[74]

5. 비판과 논쟁

토머스 골드는 독창적인 이론과 주장으로 학계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허먼 본디, 프레드 호일과 함께 정상 우주론을 주장하여 우주론 논쟁에 참여했고,[80] 펄서가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이라는 이론을 제시하여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81]

골드는 달 표면이 먼지로 덮여 있다는 주장을 펼쳐 미국의 달 탐사 계획에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탐사 결과 그의 예측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석유의 기원에 대해서도 기존의 유기 기원설과는 다른 무기 기원설을 주장하여 논쟁을 일으켰다. 그의 저서 『지구 심층 가스[82]』, 『미지의 지하 고열 생물권[83]』 등은 일본에서도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5. 1. 주류 과학계와의 갈등

토머스 골드는 정상 우주론뿐만 아니라 석유의 기원에 대해서도 주류 과학계와 다른 주장을 펼쳤다. 1970년대 후반부터 골드는 탄화수소가 생물의 잔해가 아니라 원시적이라는 '무기 기원' 이론을 제시했다.[64] 이는 석유 지질학의 핵심 원리를 문제 삼는 것으로, 격렬한 과학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64]

1996년 학술지 ''사회 과학 연구''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양측이 이해관계, 전문성, 과학적 방법론 등을 동원해 논쟁을 벌였으며, 실얀 시추 결과조차도 이 논쟁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골드의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64] 2024년 현재에도 학계와 외부 모두에서 "화석 연료"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IPCC 보고서와 같은 인위적 기후 변화 관련 소통에서도 마찬가지이다.[65] 골드의 무기 기원 이론은 생물지질학과 석유 지질학 분야에서 심각한 비판을 받았지만, 완전히 무시되지는 않았다. 논쟁은 해결되지 않고 잊혀지고 묻혀가는 경향을 보였다.[66]

골드는 석유가 아주 오래전 생물의 사체가 지하에 묻혀 생성되었다는 유기 기원설이 아닌, 성간 물질에 대량으로 포함된 탄화수소를 석유의 기원으로 하는 석유 무기 기원설을 주장했다. 그의 저서 『지구 심층 가스[82]』, 『미지의 지하 고열 생물권[83]』 등은 일본에서도 번역되었다.

5. 2. NASA와의 갈등

골드는 1970년대 후반부터 탄화수소가 생물의 잔해가 아니라 원시적이라는 '무기 기원' 이론을 주장하며 석유 지질학의 핵심 원리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는 격렬한 과학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64] 1996년 학술지 ''사회 과학 연구''에 실린 논문에서는 양측이 전문성을 다투고, 주변 학문 분야에서 동맹을 모집하고, 과학적 방법론의 권위를 주장하는 등 참신한 수사 전략을 사용했다고 평가했다.[64]

실얀 시추 결과조차도 기원에 대한 오랜 논쟁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지만, 골드의 가설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지지했다.[64] 2024년 현재, "화석 연료"는 학계와 외부 모두에서 석유 자원을 지칭하는 데 널리 사용되는 용어로 남아 있으며, 2023년 IPCC 보고서와 같이 인위적 기후 변화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소통에도 사용된다.[65] 생물지질학과 석유 지질학 분야에서 골드의 무기 기원 이론에 대한 비판은 심각했지만, 논쟁은 해결되기보다는 잊혀지고 묻혀가는 경향을 보였다.[66]

6. 평가와 유산

토머스 골드는 오스트리아 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교육받았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학부 과정을 마쳤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적성국 국민으로 분류되어 억류되기도 했으나, 석방 후 프레드 호일, 헤르만 본디와 함께 레이더 개발에 참여하며 우주물리학 연구를 병행했다. 1950년대 정상 우주론을 공동 제안했으며, 그리니치 천문대하버드 대학교를 거쳐 1959년 코넬 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 1964년 왕립 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4]

골드는 자기권과 우주 연구에 기여했다. 특히 본디와 함께 정상 우주론을 발전시켰고, 1968년 펄서 발견 직후에는 펄서가 강한 자기장을 띤 채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또한 골드는 표면 암석이 열 순환 작용으로 먼지화되어 두꺼운 층을 이룬다는 이론을 오랫동안 주장했다. 이 가설은 미국의 달 탐사 계획에 영향을 주었으나, 실제 탐사 결과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4년 토머스 골드는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6. 1. 학계의 평가

토머스 골드는 생전에 여러 영예와 칭호를 받았다. 그는 왕립 천문학회(1948), 왕립 학회(1964),[4] 미국 지구물리학 연합(1962),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1974), 미국 우주 항공 학회의 회원이었다. 또한 미국 철학회(1972),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1974), 국제 우주 항공 아카데미의 회원이었으며,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명예 펠로우(1986)였다.[76] 1981년부터 1986년까지 뉴욕 천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81]

1972년 미국 철학회에서 "달 표면의 본질: 최근 증거" 논문으로 존 프레데릭 루이스 상을 수상했고,[75] 1979년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에서 훔볼트 상을 수상했다.[76] 1985년에는 왕립 천문학회 금메달을 수상했는데, 이 상은 프레드 호일, 헤르만 본디, 마틴 라일, 에드윈 허블, 제임스 밴 앨런, 프리츠 츠비키, 한네스 알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저명한 과학자들이 수상한 권위 있는 상이다.[77] 골드는 박사 학위가 없었지만, 196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명예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78]

2004년 골드가 사망한 후, 그의 과학적 업적과 탐구 정신을 기리는 부고가 여러 과학 저널에 게재되었다. 네이처 저널에서 헤르만 본디는 골드를 "간과되고 있는 옵션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분야에 뛰어든 독특한 과학자"로 평가하며, "주로 이론적으로 작업했지만 수학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신 물리학에 대한 그의 심오한 직관적 이해에 의존했다"고 회고했다.[79] 피직스 투데이는 부고에서 골드가 연구한 다양한 주제들을 열거했는데, 여기에는 "은하 먼지의 정렬, 지구 자전축의 불안정성, 먼지가 많은 달 표면, 태양의 우주선, 태양계의 플라스마 및 자기장... 태양 플레어의 기원, 시간의 본질, 성간 매질의 분자와 메이저, 회전하는 중성자별과 펄서의 본질, 탄화수소의 지구 기원, 그리고 깊은 지구 생물권"이 포함되었다.[80]

골드의 대담한 접근 방식은 그의 유산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미국 천문학회 회보는 그를 "논쟁을 즐기는 과학적 이단아"로 묘사하며, "사실, 그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이론의 기반이 되는 가정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을 통해 강점을 발휘한 파괴적인 사람이었다.... 천문학과 행성 과학에 대한 토미의 패러다임 변화 아이디어는 독창적이고 대담했지만 매우 논란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골드가 "생물 물리학, 천체 물리학, 우주 공학 또는 지구 물리학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영역으로 뛰어들 것"이라고 언급하며, "그는 어디든 논쟁을 따랐다. 심오한 과학적 직관과 열린 마음의 엄격함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가정을 비판했고, 과학계의 당혹감에 종종 그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위상과 영향력은 국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칼 세이건은 1968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종신 재직을 거부당한 후 골드에게 고용되었다.

6. 2. 사회적 영향

토머스 골드는 기존 과학계의 통념에 도전하는 독창적인 주장을 펼쳐 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주장들은 때로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과학계의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비판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펄서의 정체를 밝혀낸 것이나, 달 표면 먼지층에 대한 가설은 당시 과학계의 주류 이론과는 다른 독창적인 발상이었다.[1]

그의 삶과 업적은 사회 자유주의적 가치와도 연결된다. 그는 기존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탐구를 통해 과학적 진보를 추구했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중시하는 사회 자유주의적 가치와 부합한다. 또한, 그는 과학적 지식을 대중과 소통하려 노력했으며, 이는 지식의 공유와 개방성을 강조하는 사회 자유주의적 가치와도 연결된다.

7. 주요 수상 경력


  • 1962년 리히트마이어 기념상
  • 1979년 훔볼트 상
  • 1985년 영국 왕립 천문학회 금메달

8. 참고 문헌


  • Adam Bernstein|애덤 번스타인영어, Theoretical Astrophysicist Thomas Gold Dies at 84|토머스 골드 이론 천체물리학자 84세로 사망영어, 워싱턴 포스트, 2004년 6월 24일.[1]
  • Hermann Bondi|헤르만 본디영어, Obituary: Thomas Gold (1920–2004)|토머스 골드 부고 (1920-2004)영어, 네이처, 제430권 6998호, 415쪽, 2004년 7월 22일.[2]
  • Hermann Bondi|헤르만 본디영어, Professor Thomas Gold: Astronomer of brilliant ideas and wide interests|토머스 골드 교수: 뛰어난 아이디어와 폭넓은 관심을 가진 천문학자영어, 인디펜던트, 2004년 6월 29일.[3]
  • Geoffrey Burbidge|제프리 버비지영어, Margaret Burbidge|마거릿 버비지영어, Thomas Gold, 1920–2004|토머스 골드, 1920-2004영어, Biographical Memoirs|전기 회고록영어, 제88권, 1-15쪽, 2006년.[4]
  • Simon A. Cole|사이먼 A. 콜영어, Which Came First, the Fossil or the Fuel?|화석과 연료 중 어느 것이 먼저 왔는가?영어, Social Studies of Science|과학의 사회 연구영어, 제26권 4호, 733-766쪽, 1996년.[5]
  • Stanley F. Dermott|스탠리 F. 더못영어, Obituary: Thomas Gold, 1920–2004|토머스 골드 부고, 1920-2004영어, Bulletin of the American Astronomical Society|미국 천문학회 회보영어, 제36권 5호, 1673-1675쪽, 2004년.[6]
  • Geoffrey B. Glasby|제프리 B. 글래스비영어, Abiogenic Origin of Hydrocarbons: An Historical Overview|탄화수소의 무생물 기원: 역사적 개요영어, Resource Geology|자원 지질학영어, 제56권 1호, 85-98쪽, 2006년.[7]
  • T. Gold|T. 골드영어, The Deep Hot Biosphere|깊고 뜨거운 생물권영어,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 제89권 13호, 6045-9쪽, 스프링거, 뉴욕, 1999년.[8]
  • Simon Mitton|사이먼 미턴영어, Gold, Thomas (Tommy) (1920–2004)|골드, 토머스 (토미) (1920-2004)영어, 옥스퍼드 தேசிய 인명 사전, 2004년.[9]
  • Jeremy Pearce|제레미 피어스영어, Thomas Gold, Astrophysicist And Innovator, Is Dead at 84|천체물리학자이자 혁신가 토머스 골드, 84세로 사망영어, 뉴욕 타임스, 2004년 6월 24일.[10]
  • Ken Ringle|켄 링글영어, A Scientific Heretic Delves Beneath the Surface|과학 이단자가 표면 아래를 파고들다영어, 워싱턴 포스트, 1999년 11월 1일.[11]
  • Yervant Terzian|예반트 테르지안영어, Edwin E. Salpeter|에드윈 E. 살피터영어, Obituary: Thomas Gold|토머스 골드 부고영어, Physics Today|오늘의 물리학영어, 제58권 2호, 82쪽, 2005년.[12]
  • The Telegraph|더 텔레그래프영어, Thomas Gold|토머스 골드영어, 더 텔레그래프, 2004년 6월 25일.[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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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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