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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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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레드 호일은 잉글랜드 출신의 천문학자이자 과학 저술가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핵합성 이론, 정상 우주론, 범생물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헬륨이 탄소로 변환되는 삼중 알파 과정을 최초로 설명하고, 별의 핵반응을 통해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가 생성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또한, 정상 우주론을 옹호하며 빅뱅 이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범생물설을 통해 지구 생명체의 기원이 우주에 있다는 가설을 주장했다. 호일은 대중 과학 저술 활동과 SF 소설 창작에도 힘썼으며, 여러 논쟁적인 주장으로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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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호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프레드 호일
프레드 호일
이름프레드 호일
원어 이름Fred Hoyle
출생일1915년 6월 24일
출생지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주 빙글리 길스테드
사망일2001년 8월 20일
사망지잉글랜드 본머스
자녀제프리 호일
엘리자베스 버틀러
연구 분야
분야천문학
근무지세인트 존스 칼리지, 케임브리지
케임브리지 천문학 연구소
모교엠마누엘 칼리지, 케임브리지
박사 지도교수루돌프 파이얼스
모리스 프라이스
필립 워슬리 우드
박사과정 학생존 모팻
찬드라 위크라마싱게
시릴 돔
자얀트 날리카르
레온 메스텔
피터 앨런 스위트
스베레 아르세트
주목할 만한 학생폴 C. W. 데이비스
더글러스 고프
주요 업적빅뱅 (용어 창시)
정상우주론
별 내부 핵합성 이론
삼중 알파 과정
정신범죄설
호일 상태
호일의 오류
호일의 모델
B2FH 논문
호일-날리카르 이론
본디-호일-리틀턴 강착
수상
수상 내역메이휴 상 (1936년)
스미스 상 (1938년)
FRS (1957년)
리텐하우스 메달 (1960년)
칼링가 상 (1967년)
베이커리언 메달 (1968년)
왕립 천문학회 금메달 (1968년)
얀스키 강연 (1969년)
브루스 메달 (1970년)
헨리 노리스 러셀 강연 (1971년)
로열 메달 (1974년)
발잔 상 (1994년)
클룸프케-로버츠 상 (1977년)
크라푸르드 상 (1997년)
기타
서훈기사 작위 수여

2. 생애

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주 빙글리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40년 영국군에 입대하여 레이더 연구에 참여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해 핵반응을 처음 배웠다. 전쟁이 끝난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돌아와 별에서 진행되는 핵반응 연구에 몰입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천문학 연구소(Institute of Astronomy, Cambridge영어) 초대 연구소장을 지냈다.

2. 1. 어린 시절과 교육

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주 빙글리(Bingley, West Yorkshire영어)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프레드 호일은 웨스트요크셔주 길스테드 근처 빙리에서 태어났다.[6] 아버지 벤 호일은 브래드퍼드에서 양모 무역에 종사하는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제1차 세계 대전기관총 사수로 참전했다.[7] 어머니 메이블 피카드는 런던 로열 음악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했으며 나중에 영화관 피아니스트로 일했다.[7] 호일은 빙리 문법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엠마누엘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8] 젊은 시절 지역 성공회 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다.[9][10]

1936년 조지 스탠리 러쉬브룩과 함께 메이휴 상을 공동 수상했다.

2. 2. 제2차 세계 대전과 맨해튼 프로젝트

1940년, 호일은 포츠머스로 가 해군성에서 레이더 연구를 했다. 그는 날아오는 비행기의 고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으며, 그라프 슈페가 플라타 강에서 자침한 후에는 함선에 탑재된 레이더 유도 포에 대한 대응책을 맡았다.[11] 이 연구에는 허먼 본디와 토마스 골드가 함께 참여했으며, 이들은 우주론에 대한 많은 논의를 했다.

호일은 레이더 연구를 위해 북미를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천문학자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와 마운트 팔로마 천문대에서 초신성에 대해 배웠고, 캐나다에서는 플루토늄 임계점 및 폭발에 대한 핵물리학을 배웠다. 이 과정에서 초신성 핵합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1954년에 선견지명이 있는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했다.[12] 또한 케임브리지에서 일반 별에서의 별 핵합성을 연구하는 그룹을 조직했으며, 호일 상태를 발견하는 데 기여했다.[12]

2. 3. 케임브리지 대학교 시절

1940년 스물다섯 살 때 영국군에 입대하여 레이더 연구에 참여했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해 핵반응을 처음 배웠다. 전쟁이 끝난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돌아온 호일은 10년 동안 별에서 진행되는 핵반응 연구에 몰입했다.[12]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세인트 존스 칼리지 (케임브리지) 강사로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돌아왔다(1939년부터 펠로우였다).[13] 케임브리지 시절(1945–1973)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놀라운 독창성을 바탕으로 세계 천체 물리학 이론의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였다. 1958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플루미안 천문학 및 실험 철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1967년 이론 천문학 연구소(이후 케임브리지 천문 연구소로 개명)의 창립 이사가 되었고, 그의 혁신적인 리더십은 이 연구소를 이론 천체 물리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그룹 중 하나로 빠르게 만들었다. 1971년 스코틀랜드 엔지니어 및 조선업 협회에 맥밀란 기념 강연을 하도록 초청받았으며, "천문학적 기구와 그 건설"이라는 주제를 선택했다.[14]

1972년까지 케임브리지에서의 삶에 불만을 느끼게 되었다. 교수직 선출을 둘러싼 분쟁으로 1972년에 플루미안 교수직을 사임했고, 다음 해에는 연구소의 이사직도 사임했다. 그는 훗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장에서 계속 교전을 벌이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케임브리지 시스템은 효과적으로 누군가가 지시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방지하도록 설계되었다. 주요 결정은 무지하고 정치적으로 동기 부여된 위원회에 의해 뒤집힐 수 있다. 이 시스템에서 효과적이 되려면 끊임없이 동료들을 감시해야 한다. 마치 로베스피에르의 스파이 시스템과 같다. 그렇게 한다면 물론 실제 과학을 할 시간은 거의 남지 않는다."[15]

2. 4. 케임브리지 이후와 죽음

호일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사임한 후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이주하여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여행, 저서 집필, 전 세계 연구 센터 방문, 그리고 과학적 아이디어 연구(대체로 거부됨)로 시간을 보냈다. 1997년 11월 24일, 길스테드에 있는 어린 시절의 집 근처인 웨스트 요크셔의 황무지를 가로질러 하이킹을 하던 중, Shipley Glen이라는 가파른 협곡으로 떨어졌다. 약 12시간 후 수색견을 사용한 수색대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어깨뼈 골절, 폐렴, 신장 문제(둘 다 저체온증으로 인한)로 두 달 동안 입원했다. 그 후 기억력과 정신적 민첩성 문제로 고통받으며 뚜렷한 쇠퇴를 겪었다. 2001년 일련의 뇌졸중을 겪었고, 그해 8월 20일 본머스에서 사망했다.

3. 주요 연구 업적

1954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 강사로 재직할 때, 삼중 알파 과정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헬륨탄소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을 처음으로 상세히 설명하여 별 핵합성이론의 기초를 다졌다.[74]

케임브리지 대학교 천문학 연구소에 있는 프레드 호일 동상


정상우주론을 옹호하며 빅뱅 이론에 반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빅뱅'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 바로 호일이었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의 발견으로 정상우주론이 폐기된 후에는 핵합성 이론 연구에 몰두했다.

기존 이론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지구 생명체가 우주에서 비롯되었다는 범종설을 옹호하고, 혜성에서 온 바이러스가 생명의 시초라고 주장했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지구 맨틀 깊숙한 곳에서 비생물적 과정을 통해 생겼다는 가설도 강하게 고집했다.

1983년 윌리엄 폰러가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지만, 호일의 공헌은 간과되었다. 폰러는 노벨상 수상 약력에서 호일의 선구적인 작업을 인정한 바 있다.

만년에는 생명의 기원을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하는 '''화학 진화''' 이론을 비판하며, 찬드라 비크라마싱과 함께 생명이 우주에서 진화하여 배종가설(배종 광포설)을 통해 우주 전체로 퍼져나갔다고 주장했다. 지구 생명 진화가 혜성에 의한 바이러스 유입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3. 1. 별 핵합성 이론

1954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 강사로 재직할 때, 삼중 알파 과정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헬륨탄소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을 처음으로 상세히 설명했다.[74]

오래된 별의 중심에서 헬륨-4(알파입자)가 농축되고, 충돌하는 두 알파입자는 융합해 베릴륨-8을 형성한다. 베릴륨-8에 알파입자 하나를 추가하면 탄소-12가 된다. 그러나 베릴륨-8은 극도로 불안정하여 1000조 분의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더 작은 조각으로 분해된다. 따라서 본래 탄소-12는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러 과학자들의 측정에 따르면 우주에서 탄소는 4번째로 풍부한 원소이다. 이러한 모순은 탄소-12의 핵이 7.68메가볼트의 에너지량에 공명하는 특성이 있어 베릴륨-8이 붕괴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알파입자를 낚아챌 수 있기 때문에 해결된다. 호일은 적당한 조건 아래에서 삼중 알파 과정이 일어나 탄소-12 생성 속도가 약 10억 배 증가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러한 조건을 호일 상태라 하는데, 나중에 호일 상태의 존재가 실제로 확인되면서 호일은 천체 물리학의 총아로 떠올랐다.[74]

프레드 호일은 별의 핵반응에 의해 헬륨보다 무거운 화학 원소들이 생성되는 것에 관한 최초의 두 편의 연구 논문을 저술했다. 1946년에 발표된 첫 번째 논문[16]은 별의 중심부가 수십억 도의 온도로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주계열성에서 별의 에너지 기원으로 여겨지는 핵융합 반응 온도보다 훨씬 높았다. 호일은 이러한 고온에서 철이 핵 입자 간의 열적 평형으로 인해 다른 무거운 원소보다 훨씬 더 풍부해질 수 있으며, 이는 철의 높은 자연 존재량을 설명한다고 밝혔다. 이 아이디어는 나중에 ''e'' 과정[17]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954년에 발표된 호일의 두 번째 핵합성 연구[18]는 탄소와 철 사이의 원소들은 이러한 평형 과정으로는 합성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러한 원소들을 진화한 질량 큰 초신성 전 단계의 별의 동심원 껍질 내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구성 요소들 간의 특정 핵융합 반응으로 돌렸다. 이 현대적인 그림은 오늘날 이러한 주요 원소의 초신성 핵합성에 대한 받아들여지는 패러다임이다.

1950년대 중반, 호일은 윌리엄 앨프레드 파울러, 마가렛 버비지, 제프리 버비지와 같이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재능 있는 실험 및 이론 물리학자 그룹의 리더가 되었다. 이 그룹은 우리 우주의 모든 화학 원소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체계화했으며, 이는 현재 핵합성이라고 불리는 분야가 되었다. 1957년, 이 그룹은 B2FH 논문 (네 명의 저자의 머리글자로 알려짐)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에서 핵합성 분야는 상호 보완적인 핵 과정으로 정리되었다. 그들은 중성자 포획 반응에 의한 무거운 원소의 합성에 대한 새로운 자료, 이른바 s 과정과 r 과정을 추가했다. B2FH 논문은 매우 영향력이 커서 20세기 나머지 기간 동안 핵합성 이론의 인정된 기원을 인용하려는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기본적으로 인용하는 논문이 되었고, 그 결과 획기적인 호일의 1954년 논문은 잊혀졌다. 21세기의 역사 연구[19][20]는 호일의 1954년 논문을 과학적 중요성으로 되돌렸다.

호일의 두 번째 핵합성 논문은 인류 원리를 흥미롭게 사용했다. 별 핵합성의 단계를 연구하면서, 호일은 헬륨으로부터 탄소를 생성하는 삼중알파 과정이라는 특정 핵반응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탄소 핵이 매우 특정적인 공명 에너지와 스핀을 가져야 한다고 계산했다. 우주에 있는 탄소의 많은 양은 어떤 종류의 탄소 기반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이는 호일에게 이 핵반응이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개념을 바탕으로 호일은 세 개의 알파 입자(헬륨 핵)에 의해 형성된 탄소 핵의 화합 상태의 에너지, 핵 스핀 및 패리티 값을 예측했으며, 이는 나중에 실험으로 증명되었다.[23]

이 에너지 준위는 탄소를 대량으로 생성하는 데 필요하지만, 탄소 에너지 준위의 체계에서 통계적으로 매우 발생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그의 동료 윌리엄 앨프레드 파울러는 결국 198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지만(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와 함께), 호일의 독창적인 공헌은 심사위원들에 의해 간과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저명한 천문학자가 수상에서 제외된 것에 놀라움을 표했다.[25] 파울러 자신은 자서전적인 스케치에서 호일의 선구적인 노력을 확언했다.

3. 2. 삼중 알파 과정과 호일 상태

1954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 강사로 재직하던 호일은 삼중 알파 과정이라는 핵융합 반응을 통해 헬륨탄소로 변환되는 과정을 처음으로 상세히 설명했다.[74]

오래된 별의 중심부에서는 헬륨-4(알파 입자)가 농축되고, 충돌하는 두 알파 입자는 융합하여 베릴륨-8을 형성한다. 베릴륨-8에 알파 입자가 추가되면 탄소-12가 되는데, 베릴륨-8은 매우 불안정하여 극히 짧은 시간 안에 붕괴된다. 따라서 탄소-12는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기 어렵지만, 과학자들의 측정에 따르면 탄소는 우주에서 풍부한 원소 중 하나이다. 이러한 모순은 탄소-12의 핵이 특정 에너지 준위에서 공명하는 특성 덕분에 베릴륨-8이 붕괴하기 전에 알파 입자를 빠르게 포획할 수 있기 때문에 해결된다. 호일은 특정 조건 하에서 삼중 알파 과정이 일어나 탄소-12 생성 속도가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추정했고, 이러한 조건을 호일 상태라고 명명했다. 이후 호일 상태의 존재가 실제로 확인되었다.[74]

호일은 1954년에 발표한 두 번째 핵합성 연구에서, 탄소와 철 사이의 원소들은 평형 과정으로는 합성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러한 원소들이 진화한 질량 큰 초신성 전 단계의 별의 동심원 껍질 내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구성 요소들 간의 특정 핵융합 반응으로 생성된다고 설명했다.[18]

항성 내부에서의 원소 합성 경로를 밝히는 과정에서, 호일은 헬륨 원자핵 3개로부터 탄소를 생성하는 삼중 알파 반응에 주목했다. 이 반응이 일어나려면 탄소 원자핵이 특정 에너지 준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주에 다량의 탄소가 존재하고, 이 탄소를 재료로 지구상의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삼중 알파 반응이 실제로 제대로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호일은 탄소 원자핵의 에너지 준위를 예측했고, 이는 나중에 실험으로 뒷받침되었다. 이 상태는 호일 상태라고 불린다.

3. 3. 정상 우주론

르메트르의 이론(이후 에드윈 허블의 관측으로 확인됨)과 마찬가지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호일은 그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생각은 사이비 과학이며, 창조주를 옹호하는 주장과 유사하며 "비이성적인 과정이며 과학적 용어로 설명할 수 없다"(칼람 우주론적 논증)고 생각했다.[27] 대신, 호일은 토머스 골드, 헤르만 본디와 함께(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레이더 연구를 함께 했다) 1948년에 우주가 "정상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정상 우주론을 공식화했다. 이 이론은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면서도 우주가 영원하고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상태로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려고 했다. 이 이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은하 사이에 물질이 생성된다는 데에 기반을 두었다. 그래서 은하들이 멀어지더라도 그 사이에 새로운 은하들이 생겨나서 빈 공간을 채운다. 그 결과로 생성된 우주는 흐르는 강과 마찬가지로 "정상 상태"에 있다. 개별 물 분자는 멀어지고 있지만 전체 강은 동일하게 유지된다.

이 이론은 빅뱅에 대한 대안 중 하나였으며, 빅뱅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주요 관측, 즉 허블의 적색 편이 관측과 일치했다. 호일은 빅뱅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1949년 3월 28일 BBC 라디오의 ''Third Programme'' 방송에서 "빅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28] 조지 가모프와 그의 반대자들은 호일이 비하하는 의도로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그가 읽은 대본은 그의 반대자들에게 "허영심이 많고, 일방적이며, 모욕적이며, BBC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석되었다.[29] 호일은 자신이 모욕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라디오 청취자들을 위해 두 이론의 차이점을 강조하기 위한 인상적인 이미지였을 뿐이라고 명시적으로 부인했다.[30] 또 다른 BBC 인터뷰에서 그는 "과학자들이 '빅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창세기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의 정신 깊숙이에는 창세기 첫 페이지를 믿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31]

호일은 케번디시 전파 천문학 그룹의 마틴 라일과 호일의 정상 우주론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이는 1960년대에 케번디시 그룹과 케임브리지 천문 연구소 간의 협력을 다소 제한했다.[32]

호일은 골드와 본디와 달리, 에너지 보존 법칙과 일치하고 우주의 팽창을 유도하기 위해 음의 압력을 가진 "창조장", 또는 줄여서 "C-field"라고 명명한 새로운 물질의 출현에 대한 설명을 제시했다. 이 C-field는 나중에 우주 인플레이션에 대한 "드 시터 해"와 동일하지만, C-field 모델은 드 시터 인플레이션 모델보다 훨씬 느리게 작용한다.[33] 그들은 연속적인 창조가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전체 우주가 나타나는 것만큼이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없다고 함께 주장했지만, 그것은 규칙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결국, 증가하는 관측 증거는 대부분의 우주론자들이 정상 상태 모델이 틀렸고 빅뱅 이론이 관측과 더 잘 일치한다는 것을 확신시켰지만, 호일은 자신의 이론을 계속 지지하고 발전시켰다. 1993년, 정상 상태 이론에 반하는 몇몇 증거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준 정상 상태 우주론(QSS)"이라는 수정된 버전을 제시했지만, 이 이론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빅뱅이 정상 상태 모델을 이기게 된 증거에는 1960년대의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의 발견과 1980년대에 걸쳐 우주에 걸쳐 "어린 은하"와 퀘이사의 분포가 있으며, 이는 우주의 일관된 나이 추정치를 나타낸다. 호일은 2001년에 사망했으며, 빅뱅 이론의 타당성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34]

나르리카와 함께 호일은 1960년대에 입자 이론인 호일-나르리카 중력 이론을 개발했다. 이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거의 동일한 예측을 했지만, 아인슈타인이 시도했지만 그의 이론에 통합하지 못했던 마흐의 원리를 포함했다. 호일-나르리카 이론은 마이크로파 배경과의 일관성을 포함하여 여러 검증에서 실패했다. 이 이론은 그들이 믿었던 우주의 정상 상태 모형에 의해 동기 부여되었다.

3. 4. 범생물설

프레드 호일은 만년에 지구에서 생명 기원을 설명하는 생물 기원설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호일은 찬드라 위크라마싱게와 함께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우주에서 시작되어 범생물설을 통해 우주로 퍼져나갔으며, 지구의 진화혜성을 통해 유입되는 꾸준한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가설을 옹호했다.[36] 혜성이 상당한 비율의 유기 화합물을 함유하고 있다는 그의 믿음은 당시 시대를 앞선 것이었는데,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혜성이 주로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기 화합물의 존재는 매우 논란이 많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였다.

호일과 위크라마싱게는 1918년 인플루엔자 대유행, 특정 소아마비 및 광우병 발병을 포함하여 지구에서 발생하는 질병 발병이 외계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몇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1918년 인플루엔자 대유행에 대해 그들은 혜성 먼지가 여러 위치에서 동시에 바이러스를 지구로 가져왔다는 가설을 세웠는데, 이 가설은 이 대유행 전문가들에게 거의 보편적으로 일축되었다.

1982/1984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우주로부터의 진화''(찬드라 위크라마싱게와 공동 저술)에서 호일은 범생물설 없이 가장 단순한 생명체조차도 필요한 효소 세트를 얻을 확률이 1040,000분의 1이라고 계산했다. 알려진 우주에 있는 원자의 수는 그에 비해 무한히 작기 때문에(1080), 그는 생명체의 기원지로서의 지구는 배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호일은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선언했지만,[38] 범생물설 없이 가장 단순한 세포가 무작위로 나타나는 것을 "쓰레기장을 휩쓸고 지나가는 토네이도가 그 안에 있는 물질로 보잉 747을 조립할 가능성"에 비유했으며,[40] 아미노산의 우연한 조합으로 단일 기능적 단백질을 얻을 가능성을 태양계 전체에 있는 장님들이 동시에 루빅 큐브를 푸는 것에 비유했다.[72]

4. 기타 논쟁

호일은 기존 이론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자였다. 그는 지구상의 생명체가 우주에서 비롯했다는 범종설을 옹호했고, 이를 확장하여 혜성에서 온 바이러스가 생명의 시초라고 주장했다. 또한 전 세계적인 바이러스 전염병의 주범이 우주에서 온 바이러스라고 주장했다. 호일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지구 맨틀 깊숙한 곳에서 비생물적 과정을 통해 생겼다는 가설을 강하게 고집하기도 했다. 기존 학설에 대한 도전에 대해 묻자, 호일은 "옳지만 지루한 것보다 틀렸어도 흥미로운 것이 낫다."라고 답했다.[75]

호일은 핵합성 및 과학 대중화에 대한 업적으로 널리 존경받았지만, 과학계의 지배적인 이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광범위한 과학적 문제에 대한 입장을 고수했다.[3] 폴 데이비스는 호일이 "그의 괴짜적인 성격과 정통에 대한 경멸을 사랑했다"고 묘사하며, 호일이 적색 편이에 대한 그의 이론에 대해 "나는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고 "재미있고 틀린 것이 지루하고 옳은 것보다 낫다"고 인용했다.[42]

호일은 정상 상태 우주론과 범종설 외에도 다음과 같은 논란이 많은 가설과 추측을 지지했다.


  • 독감 유행병과 흑점 주기의 상관관계, 주기의 최소점에서 유행병 발생. 이 아이디어는 독감 전염이 성간 매질에 흩어져 있고, 태양풍이 최소의 힘을 가질 때만 지구에 도달한다는 것이다.[44][45][46][47]
  • 두 개의 화석 ''시조새''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짜였다.[48]
  • 비생물 기원 석유 이론은 호일과 토마스 골드가 주장했는데, 천연 탄화수소(석유와 천연 가스)가 화석화된 유기 물질이 아닌 심층 탄소 퇴적물의 결과로 설명된다. 이 이론은 주류 석유 지구화학계에서 기각되었다.[49]
  • 1977년 저서 ''스톤헨지에 관하여(On Stonehenge)''에서 호일은 스톤헨지의 56개의 오브리 홀이 신석기 시대 영국인들이 일식을 예측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를 사용하여 표지석의 일일 위치를 정했다는 제럴드 호킨스의 제안을 지지했다. 달 일식을 예측하기 위해 오브리 홀을 사용하는 것은 원래 제럴드 호킨스가 이 주제에 관한 그의 저서 ''스톤헨지 해독(Stonehenge Decoded)''(1965)에서 제안했다.
  • 호일은 시조새 화석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호일은 리처드 오웬이 다윈에 대항하기 위해 시조새를 위조품임을 알면서도 대영 박물관에 구입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문제를 조사한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 이야기는 호일의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공격하는 좋은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 전파 간섭계의 개발과 펄서의 발견에 대해 1974년에 노벨상이 수여되었을 때, 조슬린 벨 버넬이 수상자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비난했다. 호일 자신도 펄서로부터의 펄스 전파 신호의 정체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호일도 노벨상 수상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 호일은 또한, 정상 우주론을 둘러싸고 캐번디시 연구소 전파 천문학 그룹의 마틴 라일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이 영향으로, 1960년대에는 캐번디시 전파 천문학 그룹과 천문학 연구소 사이의 공동 연구가 제한되었다.

5. 수상 및 서훈


  • 1968년 왕립 천문학회 골드 메달[68]
  • 1968년 베이커 강연 선정 및 베이커리안 메달 수상[68]
  • 1970년 브루스 메달[70]
  • 1971년 헨리 노리스 러셀 강연 선정[71]
  • 1972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 서임[76]
  • 1974년 로열 메달[74]
  • 1977년 태평양 천문학회 클럼프케-로버츠 상
  • 1997년 에드윈 살피터와 함께 크라포르드상 공동 수상

6. 저술 활동

호일은 과학 논문 외에도 대중 과학 서적과 SF 소설을 집필했다. 1950년대 BBC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천문학 강연을 했는데, 이 내용은 『우주의 본성』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호일은 전문적인 과학 학술 서적 또한 집필했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제목출판사출판 연도ISBN
우주의 본성 - 방송 강연 시리즈바질 블랙웰1950
천문학의 최전선하이네만 교육 도서 주식회사, 런던 / 하퍼콜린스1955
천문학, 인류의 우주 탐구 역사크레센트 북스, 주식회사1962
인간과 은하에 관하여시애틀 워싱턴 대학교1964
은하, 핵, 그리고 퀘이사하퍼 & 로우, 퍼블리셔스1965
에너지인가 소멸인가? 핵에너지의 경우하이네만 교육 도서 유한회사1977
우주의 열 가지 얼굴W.H. 프리먼 앤 컴퍼니 (샌프란시스코)1977
생명구름 - 우주에서의 생명의 기원J.M. 덴트 & 선즈1978
핵에너지의 상식하이네만 교육 도서 주식회사1980
천문학에서의 빅뱅뉴 사이언티스트 92(1280)1981년 11월 19일
얼음, 궁극적인 인간 재앙1981[66]
입자에서 박테리아까지카디프 대학교 출판부1984
우주로부터의 진화 (옴니 강의) 그리고 생명의 기원에 관한 다른 논문1982
우주에서 온 바이러스1986
진화의 수학카디프 대학교 출판부 / 아콘 엔터프라이즈 LLC.1987 / 1999
우주의 기원과 종교의 기원1993[67]
고향은 바람이 부는 곳: 우주론자의 삶의 챕터 (자서전)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1994



또한, 버비지, E. M., 버비지, G. R., 파울러, W. A. 그리고 호일, F.는 [https://www.pmf.unizg.hr/_download/repository/burbidge_RMP_29_547_1957.pdf "별에서의 원소 합성"] , ''리뷰 오브 모던 피직스'' '''29:'''547–650, 1957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전문 우주론 학자들 사이에서 호일이 가장 유명하게 된 이유인 B²FH 논문이다.[65]

자얀트 나를리카 및 찬드라 위크라마싱게와 함께, 은하 외부 우주: 대안적인 관점, ''네이처'' '''346:'''807–812, 1990년 8월 30일 논문을 발표했다.

G. 버비지와 나를리카 J. V. 와 함께 ''우주론에 대한 다른 접근법''을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를 통해 2000년에 출판했다.

보리스 안레프가 제작한 모자이크로, 내셔널 갤러리 (런던)에 있으며, 프레드 호일이 책을 팔에 끼고 별을 향해 오르는 높은 굴뚝 작업자로 묘사되어 있다.

6. 1. 대중 과학서

호일은 1950년대에 BBC에서 천문학에 관한 일련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 내용은 『''The Nature of the Universe''』라는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다.[73]

또한 호일은 수많은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 서적을 집필했다. SF 소설도 집필했으며, 과학자로서의 경험과 지식을 살린 작품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도 썼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암흑 성운 (''The Black Cloud'')』이나 『안드로메다의 A (''A for Andromeda'')』(1961년에 텔레비전 시리즈화, 2006년에 텔레비전 영화화되어 DVD 제목은 『스피시즈 NEO』), 시간에 관한 자신의 설을 담았다고 하는 하드 SF 『10월 1일은 너무 늦다 (''October the first is too late'')』 등이 있다.[73]

그가 저술한 대중 과학 서적은 다음과 같다.

제목출판사출판 연도ISBN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Heinemann Educational Books Ltd.1973
천문학 및 우주론: 현대 강좌 (Astronomy and Cosmology: A Modern Course)1975ISBN 0716703513
지적인 우주 (The Intelligent Universe)1983
우주로부터의 진화: 우주 창조론 이론 (Evolution from Space: A Theory of Cosmic Creationism)1984ISBN 0671492632
스톤헨지 천문학과 고고학미스즈 서방1983년
생명은 우주에서 왔다 다윈 진화론, 여기에서 오류이다코분샤1983년
시조새 화석의 수수께끼지진칸1988년
우주 물리학의 최전선미스즈 서방1991년
생명(DNA)은 우주를 흐른다토쿠마 서점1998년


6. 2. SF 소설

호일은 SF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의 첫 소설인 ''검은 구름''에서 우주의 대부분의 지적 생명체는 성간 가스 구름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들은 지적 생명체가 행성에서도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텔레비전 시리즈인 ''A for Andromeda''를 썼으며, 이 작품은 소설로도 출판되었다. 그의 희곡 ''큰곰자리 로켓''은 1962년 머메이드 극장에서 전문적으로 제작되었다.[65]

''더 텔레그래프''(영국)는 그를 "뛰어난" SF 작가라고 칭했다.[66]

다음은 호일이 집필한 SF 소설 목록이다.

제목출판 연도비고
검은 구름1957
오시안의 질주1959
A for Andromeda1962존 엘리엇과 공저
다섯 번째 행성1963제프리 호일과 공저
안드로메다 돌파구1965존 엘리엇과 공저, A for Andromeda의 속편
10월 1일은 너무 늦다1966
원소 791967단편 소설집
큰곰자리 로켓1969제프리 호일과 공저
태양까지의 일곱 걸음1970제프리 호일과 공저
지옥1973제프리 호일과 공저
분자 인간과 로흐 네스 괴물1973제프리 호일과 공저
가장 깊은 우주 속으로1974제프리 호일과 공저, 큰곰자리 로켓의 속편
타오르는 자들1977제프리 호일과 공저
웨스트민스터 재앙1978제프리 호일, 바바라 호일과 공저
아주론의 얼어붙은 행성1982레이디버드 북스, 제프리 호일과 공저
에너지 해적1982레이디버드 북스, 제프리 호일과 공저
죽음의 행성1982레이디버드 북스, 제프리 호일과 공저
유니버설 파크의 거인들1982레이디버드 북스, 제프리 호일과 공저
핼리 혜성1985



이들 작품 대부분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몇몇 작품은 연관성을 가진다. ''안드로메다 돌파구''는 ''A for Andromeda''의 속편이며, ''가장 깊은 우주 속으로''는 ''큰곰자리 로켓''의 속편이다. 레이디버드 북스에서 출판된 4권은 아동용으로 제작되었다.

단편 소설집 ''원소 79''의 일부 이야기는 판타지이며, 특히 "슬리피지 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와 "아프로디테의 심판"이 그렇다. 두 작품 모두 신화 속 인물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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