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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 체육 및 문화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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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 체육 및 문화축전'은 1995년 4월 북한 평양에서 열린 프로레슬링 행사이다. 일본의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으며, 김정일 정권은 정치적 효과를, WCW는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 참여했다. 릭 플레어, 헐크 호건 등 유명 레슬러들이 참가했으며, 2일간 35만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했다. 하지만, 북한의 선전 활용과 WWE의 외면으로 인해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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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 체육 및 문화축전
행사 개요
명칭평양 국제 스포츠 및 문화 축전
다른 명칭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 체육·문화 축전
로마자 표기Pyeonghwareul wihan Pyeongyang Gukje Cheyuk·Munhwa Chukjeon
태그라인두 전설, 하나의 나라
날짜1995년 4월 28일 ~ 29일
방송 날짜1995년 8월 4일
장소릉라도 5월 1일 경기장
도시평양직할시
총 관중315,000명
1일차 관중150,000명
2일차 관중165,000명
관련 단체
프로모션신일본 프로레슬링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
이벤트신일본 프로 레슬링 이벤트
평화 축제
이벤트 연대기
이전 이벤트 (WCW)배시 앳 더 비치
다음 이벤트 (WCW)폴 브롤
이전 이벤트 (신일본 프로레슬링)배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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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벤트 (평화 축제)월드 레슬링 평화 축제
출연진 및 주요 경기
주요 출연진안토니오 이노키
릭 플레어
경제적 영향
이노키 지불 금액미화 750만 달러
플레어 지불 금액미화 850만 달러
기타
관련 정보뉴스위크 기사

2. 배경

1995년 4월 28일과 2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의 릉라도5월1일경기장에서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 체육 및 문화축전'이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프로레슬러인 안토니오 이노키가 북한에서 프로레슬링 행사를 개최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시작되었다.[1]

당시 이노키는 정치 경력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이 행사를 일본과 북한 간의 외교 관계를 개선할 기회로 여겼다.[1] 1994년 아버지 김일성의 사망 이후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된 김정일은 일부 외국인 관광객의 행사 참가를 허용했는데, ''뉴욕 타임스''는 이를 그의 국가 지도력을 과시하려는 시도로 보았다.[1]

이 행사를 위해 이노키는 미국의 프로레슬링 단체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WCW)과 협력했다.[1] WCW는 당시 월드 레슬링 연맹(WWF, 현 WWE)과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WCW 사장 에릭 비숍은 이 행사를 통해 WCW의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이고자 했다.[1]

WCW 컨설턴트 소니 오노는 일본 대사관에 이들의 계획을 알렸지만, 대사관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1] 레슬러들은 일본에서 군용 수송기를 타고 북한으로 이동했고, 착륙 후 여권을 압수당하고 두 그룹으로 나뉘어 북한 투어를 했다.[1] 그들은 김일성 동상에 헌화했다.[1]

2. 1. 안토니오 이노키의 역할



북한에서 프로레슬링 행사를 개최하자는 아이디어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프로레슬러이며, 프로레슬링 단체 신일본 프로레슬링(NJPW)의 수장이었던 안토니오 이노키에게서 나왔다.[1] 이노키는 당시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 행사를 통해 일본과 북한 간의 외교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1]

이노키는 북한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1] 그는 재일 한국인 레슬러인 리키도잔에게서 프로레슬링 훈련을 받았는데, 리키도잔은 1963년 사망 이후 북한에서 그의 이미지를 선전용으로 자주 사용했다.[1]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최고 지도자가 된 후, 북한은 일부 외국인 관광객의 행사 참가를 허용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를 김정일이 자신의 국가 지도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1]

이노키는 이 행사에 미국 레슬러들을 참가시키고 싶었고, NJPW와 협력 관계였던 미국의 프로레슬링 단체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WCW)의 사장 에릭 비숍에게 연락했다.[1] 비숍은 이 행사에 적극적이었고, 은퇴한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를 초청하기도 했다.[1] 당시 WCW는 먼데이 나이트 워즈에서 월드 레슬링 연맹(WWF, 현재 WWE)과 시청률 경쟁 중이었고, 비숍은 이 대규모 국제 행사가 WCW의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1]

이러한 협력의 결과로, 이노키는 WCW의 유명 미국 레슬러와 메인 이벤트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1] 비숍은 처음에 헐크 호건에게 참가를 제안했지만, 호건은 거절했다.[1] 비숍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마치 호건에게 명왕성까지 배를 저어 가 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같았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1] 결국 비숍은 릭 플레어에게 요청했고, 플레어는 이를 수락했다.[1]

2. 2. WCW와의 협력

안토니오 이노키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프로레슬러였으며, 프로레슬링 단체 신일본 프로레슬링(NJPW)의 수장이었다. 그는 북한에서 프로레슬링 행사를 개최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를 위해 미국 프로모션인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WCW)의 사장 에릭 비숍에게 연락했다.[1] 당시 이노키는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 행사를 통해 일본과 북한의 외교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1] 그는 북한 정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재일 한국인 레슬러 리키도잔에게 훈련을 받았는데, 북한은 리키도잔의 이미지를 선전에 활용하기도 했다.[1]

비숍은 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은퇴한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를 설득하여 행사에 참석시키기도 했다.[1] 당시 WCW는 월드 레슬링 연맹(WWF, 현재 WWE)과 먼데이 나이트 워즈라는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비숍은 이 국제 행사를 통해 WCW의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이고자 했다.[1] 이노키는 메인 이벤트에서 WCW의 유명 레슬러와 경기할 예정이었다.[1] 비숍은 처음에 헐크 호건에게 참가를 요청했지만, 호건은 거절했다.[1] 비숍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그에게 명왕성까지 배를 젓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같았을 겁니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죠"라고 말했다.[1] 결국 비숍은 릭 플레어에게 요청했고, 플레어는 이를 수락했다.[1]

플레어 외에도 2 콜드 스콜피오, 크리스 베노이트(와일드 페가수스라는 기믹으로), 로드 워리어 호크, 스콧 노튼, 스타이너 형제 등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1] 기자 마이크 치노이도 CNN에서 이 행사를 취재했다.[1]

2. 3. 북한의 입장

김정일|김정일일본어은 1994년 아버지 김일성의 사망 이후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으며, 일부 외국인 관광객이 행사에 참석하도록 허용했는데, ''뉴욕 타임스''는 이를 그의 국가 지도력을 과시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1] 즉,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 행사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3. 행사 준비


  • 대회 첫날, 북한 측은 "일본의 곡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통보하여, 통상적인 입장곡과는 다른 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둘째 날에는 신일본 측이 "평소대로의 곡을 사용한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안토니오 이노키의 입장곡인 『불꽃의 파이터 〜INOKI BOM-BA-YE〜』가 평소대로 흘러나왔다.[4]
  • 둘째 날 메인 이벤트 후, 이노키는 "하나, 둘, 셋, 평화(ピョンファー)!"를 외치며 흥행을 마무리했다.[5]
  • 안토니오 이노키릭 플레어의 시합에서는, 무하마드 알리가 입회인을 맡았다. 당초 북한 측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마이클 조던의 방북을 의뢰했지만, 조던 본인이 방북에 적극적이지 않아, 이노키와 친분이 있는 알리로 결정되었다.[6]
  • 이 대회에서 사사키 켄스케는 함께 참여했던 호쿠토 아키라에게 첫눈에 반해, 일본으로 귀국 후 결혼을 신청했고 호쿠토도 쾌히 승낙하여 이례적인 속도로 결혼했다.
  • 북한은 이 "평화를 위한 스포츠 제전"에 대해 기념 우표 세트를 발행했다.[7][8]
  • 이 대회에서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이 제공하는 경기가 열렸는데, 이 경기는 특히 흥미로웠다. 그전까지 여자 프로레슬링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노키가 여자 프로레슬링을 평가하게 되었으며, 이후 조니 로러의 신일본 참전으로 이어졌다.[9]
  • 이 흥행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막대한 채무를 안게 되었고, 이 채무 변제를 위해 큰 수익이 나는 빅 매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당시 자금 부족으로 단체 존폐의 위기에 놓여있던 UWF 인터내셔널과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신일본과 U 인터는 갑작스럽게 급접근하여, "격돌!! 신일본 프로레슬링 대 UWF 인터내셔널 전면 전쟁" 등의 대항전이 열리게 되었다.[10]
  • 둘째 날 관객 동원 수는 19만 명으로 프로레슬링 사상 최다 기록을 세웠다 (단, 현지인 관중 대다수는 문자 그대로 동원되었다).

3. 1. 참가 선수 및 관계자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WCW)에서는 릭 플레어 외에도 2 콜드 스콜피오, 크리스 베노이트(와일드 페가수스라는 기믹으로), 로드 워리어 호크, 스콧 노튼, 스타이너 형제 등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1] CNN의 기자 마이크 치노이도 이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1] WCW 컨설턴트였던 소니 오노는 일본 대사관에 행사 계획을 알렸지만, 대사관은 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1] 레슬러들은 일본에서 군용 수송기를 타고 북한으로 이동했으며, 착륙 후 여권을 압수당하고 두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담당자가 배정되었다.[1] 그들은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는 등 북한 투어를 했다.[1]

3. 2. 북한 방문 과정

선수단은 일본에서 군용 수송기를 타고 북한으로 이동했다.[1] 도착 후 선수단은 여권을 압수당하고, 각자 담당자가 배정된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1] 이후 김일성 동상이 있는 만수대 대 기념비를 방문하여 동상 발치에 꽃을 바치는 등 북한 측의 안내를 받으며 북한 투어를 진행했다.[1]

4. 경기 결과

1995년 4월 28일4월 29일, 이틀에 걸쳐 릉라도5월1일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렸다.

날짜관중수메인이벤트
1995년 4월 28일150,000명해당 사항 없음
1995년 4월 29일190,000명안토니오 이노키 vs. 릭 플레어



각 경기 결과는 하위 문단을 참고하면 된다.

4. 1. 1일차

1995년 4월 28일, 릉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린 첫째 날 경기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일차 경기 결과 (1995년 4월 28일, 릉라도 5.1 경기장, 관중 15만 명)
순서경기 종류경기 내용시간
1싱글 매치나가타 유지가 이시자와 토키미츠를 서브미션으로 제압
(크로스페이스/가위형 암바를 사용한 나가타 락 III로 항복)
4:28
2태그팀 매치호쿠토 아키라 & 불 나카노가 토요타 마나미 & 요시다 마리코를 핀폴로 제압
(나카노가 다이빙 레그 드롭으로 요시다를 핀폴)
8:34
3싱글 매치하세 히로시와일드 페가수스를 핀폴로 제압10:10
4태그팀 매치오오카미 군단(히로 사이토 & 쵸노 마사히로)이 엘 사무라이 & 야스다 타다오를 핀폴로 제압
(초노가 다이빙 숄더 블록으로 엘 사무라이를 핀폴)
8:06
5싱글 매치플라잉 스콜피오가 오타니 신지로를 레프리 판정으로 제압
(오타니가 코 부상으로 출혈이 심해 심판 경기 중단)
2:37
6싱글 매치사사키 겐스케가 사이토 마사를 핀폴로 제압8:34
7IWGP 헤비급 챔피언십 싱글 매치하시모토 신야(c) vs. 스콧 노턴은 시간 제한 무승부로 종료20:00


4. 2. 2일차

순서경기 종류선수시간비고
1싱글 매치사이토 히로시 vs 나가타 유지5분 29초사이토 히로시 핀폴승
2CMLL 월드 여성 챔피언십 싱글 매치호쿠토 아키라 vs 불 나카노8분 4초호쿠토 아키라 핀폴승, 챔피언 등극
3싱글 매치블랙 캣 vs 엘 사무라이4분 58초블랙 캣 핀폴승
4싱글 매치와일드 페가수스 vs 플라잉 스콜피오6분 2초와일드 페가수스 핀폴승 (스완 다이브 헤드벗 사용)
5태그팀 매치초노 마사히로 & 스콧 노턴 vs 노가미 아키라 & 이즈카 타카유키8분 40초초노 마사히로 & 스콧 노턴 핀폴승
6싱글 매치호크 워리어 vs 야스다 타다오2분 21초호크 워리어 핀폴승 (다이빙 클로스라인 사용)
7태그팀 매치스타이너 형제 (스콧 스타이너 & 릭 스타이너) vs 하세 히로시 & 사사키 켄스케11분 51초스타이너 형제 핀폴승 (스콧 스타이너하세 히로시에게 스타이너 스크루 드라이버 사용)
8싱글 매치안토니오 이노키 vs 릭 플레어14분 52초안토니오 이노키 핀폴승 (엔즈이가리 사용)



이날 경기는 1995년 4월 29일 릉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렸으며, 19만 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5. 에피소드


  • 1995년 4월 28일과 2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의 릉라도5월1일경기장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이틀 동안 각각 16만 5천 명과 19만 명의 관중이 모였다.[4][5] 메인 이벤트는 안토니오 이노키릭 플레어의 경기였다.
  • 이 대회에서는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의 경기도 열렸는데, 이 경기는 특히 흥미로워 이전까지 여자 프로레슬링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노키가 여자 프로레슬링을 평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9]
  • 둘째 날 관객 19만 명은 프로레슬링 사상 최다 기록이지만, 현지 관중 대다수는 동원된 것이었다.

5. 1. 경기 외적인 이야기


  • 대회 첫날, 북한 측은 "일본의 곡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통보하여, 선수들의 입장곡이 평소와는 다른 곡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둘째 날에는 신일본 측이 "평소대로의 곡을 사용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여, 안토니오 이노키의 입장곡인 『불꽃의 파이터 〜INOKI BOM-BA-YE〜』가 정상적으로 나올 수 있었다.[4]
  • 둘째 날 메인 이벤트가 끝난 후, 이노키는 "하나, 둘, 셋, 평화(ピョンファー)!"를 외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5]
  • 둘째 날 관객 동원 수는 19만 명으로, 이는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다 관중 기록이다. 그러나 현지 관중 대다수는 자발적인 참여가 아닌 동원된 인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이 대회에서 사사키 겐스케는 함께 참가했던 호쿠토 아키라에게 첫눈에 반했고, 일본으로 돌아온 후 결혼을 신청했다. 호쿠토 아키라도 흔쾌히 승낙하여 두 사람은 빠르게 결혼에 성공했다.
  • 안토니오 이노키릭 플레어의 경기에는 무하마드 알리가 입회인으로 참여했다. 당초 북한 측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마이클 조던의 방북을 요청했으나, 조던 본인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이노키와 친분이 있는 알리가 대신 참여하게 되었다.[6]
  • 북한은 이 "평화를 위한 스포츠 제전"을 기념하는 기념 우표 세트를 발행했다.[7][8]
  • 이 대회에서는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의 경기도 열렸는데, 이 경기들은 큰 호응을 얻었다. 이전까지 여자 프로레슬링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노키는 이 경기를 계기로 여자 프로레슬링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이후 조니 로러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참가하는 계기가 되었다.[9]
  • 이 대회로 인해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이 빚을 갚기 위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경기가 필요했고, 당시 자금난으로 단체 존폐 위기에 놓여있던 UWF 인터내셔널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그 결과 신일본과 U 인터는 급격히 가까워졌고, "격돌!! 신일본 프로레슬링 대 UWF 인터내셔널 전면 전쟁"과 같은 대항전이 열리게 되었다.[10]

5. 2.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재정 악화

이 흥행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막대한 채무를 안게 되었고, 이 채무를 갚기 위해 큰 수익이 나는 빅 매치가 필요하게 되었다.[10] 당시 자금 부족으로 단체 존폐 위기에 놓여있던 UWF 인터내셔널과 이해관계가 일치했다.[10] 신일본과 UWF 인터내셔널은 갑작스럽게 급격히 가까워져, "격돌!! 신일본 프로레슬링 대 UWF 인터내셔널 전면 전쟁" 등의 대항전이 열리게 되었다.[10]

6. 반응 및 평가

이 행사는 미국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았고, 페이퍼뷰 판매량도 저조했다. 북한은 이 행사의 사진을 서울에 살포한 선전 팜플렛에 활용하기도 했다.[1]

WWE는 이 행사가 자사의 레슬매니아 III 관람객 수 기록(93,173명)을 깼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WWE 네트워크에도 출시하지 않았다. 스포츠 저널리스트 데이브 멜처와 에릭 비숍은 WWE가 자사 이미지와 역사 왜곡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 행사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1]

6. 1. 언론 보도

미국에서는 이 행사에 대한 뉴스 보도가 거의 없었다. 그해 늦게 이 행사가 페이퍼뷰로 출시되었지만, 약 3만 건만 판매되어 회사의 다른 페이퍼뷰에 비해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1] 1995년 말, 안토니오 이노키에게 피를 흘리며 맞는 릭 플레어의 모습이 담긴 행사 사진이 북한 정부가 서울에 살포한 선전 팜플렛에 실리기도 했다.[1]

6. 2. WWE의 외면

WWE는 1987년 레슬매니아 III의 관람객 수를 93,173명으로 발표하며, 이를 프로레슬링 행사 최대 규모 중 하나라고 주장해왔다.[1] 그러나 이 행사는 그보다 훨씬 많은 관중을 동원했다. 스포츠 저널리스트 데이브 멜처는 경쟁사가 그 기록을 깼다는 것을 WWE가 인정하면 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WWE가 이 행사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1]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WCW)과 그 자산을 2001년 WWE가 인수했지만, WWE는 이 행사를 거의 모든 다른 WCW 녹화 행사를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WWE 네트워크에 출시하지 않았다.[1] 에릭 비숍 역시 멜처와 비슷한 분석을 제시하며, WWE가 자사의 역사 왜곡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 행사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1]

참조

[1] 웹사이트 When Ric Flair Traveled to North Korea for the Biggest Wrestling Show of All Time https://www.mentalfl[...] 2022-05-09
[2] 웹사이트 NJPW International Shows https://prowrestling[...] 2023-01-29
[3] 웹사이트 Newsgeek: 'Dark Side of the Ring' Season 3 Release Date and More Topics Revealed https://www.newsweek[...] 2021-04-09
[4] 웹사이트 "アントニオ猪木が当局の反対を押し切って叫んだ「1、2、3、平和!」1995年北朝鮮興行に込めていた思いとは?「ガウンは平壌に脱いできた」(長谷川晶一)" https://number.bunsh[...] 2023-08-31
[5] 웹사이트 "アントニオ猪木が当局の反対を押し切って叫んだ「1、2、3、平和!」1995年北朝鮮興行に込めていた思いとは?「ガウンは平壌に脱いできた」(長谷川晶一)" https://number.bunsh[...] 2023-08-31
[6] 뉴스 モハメッド・アリの知られざる平壌訪問 https://news.yahoo.c[...] 2021-06-13
[7] 웹사이트 アントニオ猪木の「訪朝」がバカにできない理由 https://diamond.jp/a[...] 2022-02-11
[8] 웹사이트 1995年北朝鮮「平和のためのスポーツ祭典」記念切手セット 北朝鮮発行 http://www.kennedyst[...] 2022-02-11
[9] 웹사이트 猪木さんの〝女子プロレス観〟を一変させた平和の祭典「北朝鮮は女子プロレスがメインだったな」 https://www.tokyo-sp[...] 2023-08-31
[10] 뉴스 長州力が極秘会談で「ドームを押さえろ!」 新日本vsUインター、“日本プロレス史上最大の団体対抗戦”が電撃開催された“本当の理由” https://number.bunsh[...] Number Web 202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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