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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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피와 땅'(Blut und Boden)은 19세기 말 독일에서 인종주의와 낭만적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처음 사용된 표현으로, 나치 독일 시대에 리하르트 발터 다레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이 이념은 독일의 땅과 독일인의 혈통을 신비롭게 연결하며, 농민을 독일 민족과 보수주의의 기초로 이상화했다. 나치는 이 사상을 바탕으로 우생학적 정책을 추진하고, 도시 문화를 비판하며 농촌적 가치를 강조했다. '피와 땅'은 예술, 특히 문학, 미술, 영화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에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에서 사용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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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땅 | |
---|---|
개요 | |
독일어 | Blut und Boden (블루트 운트 보덴) |
영어 | Blood and Soil (블러드 앤드 소일) |
설명 | "피와 흙"은 민족주의적 슬로건이자 이데올로기로, 혈연에 따른 민족과 그들이 차지하는 영토의 관계를 강조한다. |
역사적 맥락 | |
기원 | 19세기 후반 독일의 낭만주의 운동과 민족주의에서 유래 |
발전 | 농촌 공동체 이상화 도시화와 산업화에 대한 반발 |
주요 사상가 | 빌헬름 하인리히 리을 게오르크 아그리콜라 |
나치즘과의 연관성 | |
채택 | 20세기 초 나치즘 이데올로기의 핵심 요소로 채택됨 |
의미 확장 | "아리아 인종"의 순수성 강조 독일 민족의 "생존 공간" 확보 정당화 |
주요 슬로건 | "피와 흙"은 나치 선전에서 널리 사용됨 |
이데올로기적 함의 | |
핵심 내용 | 민족은 혈통으로 정의됨 민족의 정체성은 특정 영토와 연결됨 농업과 농촌 생활의 중요성 강조 도시와 산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 |
비판 | 인종주의적, 배타적 성격 역사적, 과학적 근거 부족 |
현대적 사용 | |
극우 운동 | 일부 극우 및 백인 우월주의 단체에서 여전히 사용됨 |
환경 운동 | 생태주의적 맥락에서 토지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사용되기도 함 (비판적 시각 존재) |
같이 보기 | |
관련 개념 | 민족주의 파시즘 인종주의 생태주의 |
2. 역사적 배경
"피와 땅"이라는 표어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아우구스트 비니히가 처음 주장했으며, 인종차별주의나 민족 낭만주의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지방주의 문학을 탄생시켰고, 일부 사회적 비판을 받기도 했다.[43] 이러한 낭만적인 경향은 나치 등장 이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44]
2. 1. 19세기 독일의 낭만적 민족주의와 농본주의
19세기 말 독일에서는 인종주의 및 낭만적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논문에서 '피와 땅'이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되었다. 이는 일부 사회 비판을 담은 지역주의 문학을 낳았다.[29] 이러한 낭만적 애착은 나치 부상 이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1] 에른스트 모리츠 아른트와 빌헬름 하인리히 리엘은 19세기 독일 농본주의 낭만주의의 주요 인물로, 농민이 독일 민족과 보수주의의 기초를 대표한다고 주장했다.[2]초민족주의자들은 도시 생활보다 시골 생활이 더 건강하다고 주장하며 시골 생활을 지지했고, 아르타만 동맹은 도시 아이들을 시골로 보내 노동을 시켜 그들이 Wehrbauer(군인 농부)로 변모하길 바랐다.[3]
2. 2. 나치즘 이전의 초민족주의
"피와 땅"이라는 표어 자체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아우구스트 비니히가 주장한 것이 시작이며, 인종차별주의나 민족 낭만주의를 지지하는 부분이 있었다. 지방주의 문학이 생겨났고, 몇몇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43] 이 낭만적인 집착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대두 이전에 널리 퍼졌다.[44]3. 나치 이데올로기
"피와 땅"(Blut und Bodende) 교리는 "농촌으로 돌아가자"는 단순한 주장을 넘어, 독일인의 피와 독일 땅이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21] 이 이념은 나치 독일에서 리하르트 발터 다레에 의해 널리 퍼졌다.
1933년 라이히 세습 농지법(:de:Reichserbhofgesetz)은 "피와 흙" 사상을 반영하여, 선정된 토지를 장남에게 상속하고 저당이나 양도를 금지했다. 이 법에 따라 해당 토지에서 농사짓는 농민만을 "농부"(Bauen)라고 부르며 다른 농민과 차별화했다.[47] 농촌은 산업 도시의 "민족 카오스"와 달리 독일 민족공동체(:de:Volksgemeinschaft)의 기반이자 보병의 공급원으로 간주되었다.[48]
3. 1. 리하르트 발터 다레의 역할
리하르트 발터 다레는 '피와 땅' 이념을 나치 독일에 도입하고 대중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1930년, 그는 Neuadel aus Blut und Bodende(피와 땅에서 나온 새로운 귀족)이라는 저서를 출간하여 독일 민족을 정화하기 위한 선택적 번식을 주장했다.[4] 그는 우생학 프로그램을 통해 국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4] 다레는 북유럽 인종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농민을 독일 민족의 혈통을 보존하는 핵심 계층으로 보았다.[5] 그는 나치당의 영향력 있는 이론가로서, 과학적 인종주의를 바탕으로 농촌 지역에서 나치당의 지지를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6]3. 2. 농민의 이상화와 도시 문화 비판
나치는 농민을 독일의 인종적 혈통과 역사를 책임지는 문화 영웅으로 묘사했다. 리하르트 발터 다레는 1937년 12월 13일 고슬라에서 열린 농민 집회에서 제국 독수리와 칼과 밀 이삭이 교차된 깃발 앞에 서서 연설하며, 중세 농민 봉기를 독일 역사의 힘이자 정화자라고 칭찬했다.[7] 농업주의는 "자연 질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주장되었다.[8]
반면 도시 문화는 나약함으로 비난받았고 "아스팔트 문화"로 낙인 찍혔다. 이는 유대인의 영향으로 인한 퇴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총통의 의지만이 제거할 수 있는 약점으로 묘사되었다.[21]
3. 3. 여성의 역할
나치는 땅을 일구고 튼튼한 아이를 낳는 건강한 농촌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제시했다.[9] 농촌 여성들이 도시 여성들보다 더 많은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10]3. 4. 카를 슈미트의 법 이론
카를 슈미트는 민족의 진정한 정체성은 추상적인 보편성이 아닌 '피와 흙'에 대한 충성에서 비롯되므로, 민족은 그들의 "피와 흙"에 대해 적절히 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9]3. 5. 반유대주의와의 연관
나치 정권의 선전물인 노이에스 폴크de는 반유대주의 인구 통계 차트를 전시하여 아리아인 가족의 농지 파괴를 비난하고, 유대인이 전통적인 독일 농민을 근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 포스터는 시골에서 도시로의 사람들의 이동을 묘사했다.[11] 학교에서 널리 사용된 독일 선전물인 ''독일 국민 교리문답''은 농부들이 조상 땅을 잃고 도시로 이주해야 했던 상황과 그로 인한 악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12] 도시 문화는 "아스팔트 문화"라고 비판받으며 유대인의 영향으로 인한 나약함으로 묘사되었고, 오직 총통의 의지만이 이를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되었다.4. 나치의 정책 시행
나치는 '피와 땅' 이념을 바탕으로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1933년 국가 세습 농장법(Reichserbhofgesetz) 제정을 통해 농민 공동체를 보존하고자 선택된 토지를 세습지로 선언하고, 저당이나 양도를 금지했다. 이 농민들만이 스스로를 농민(Bauernde)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19] 농촌은 보병 양성에 가장 적합하며, 토지 소유주와 농민 사이의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여겨졌다. 유대인이 농사에 참여하는 것은 금지되었다.[18][19]
히틀러 유겐트와 독일 소녀 연맹 회원에게는 1년간 토지 봉사 의무가 부과되었다. 기본 교육을 마친 학생들은 이 의무를 이행해야 했으며, 이는 젊은이들을 농촌에 머물게 하려는 목적이었다.[20] 1942년 60만 명의 소년과 140만 명의 소녀가 수확을 돕기 위해 파견되기도 했다.
'피와 땅'은 레벤스라움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21] 나치는 동유럽을 독일 민족의 생존 공간으로 보았고, 슬라브족을 몰아내고 독일 농민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1] 알프레트 로젠베르크는 슬라브족에 적대적이지 않았지만, 독일인이 한때 살았던 땅에서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피와 땅의 통일성에 필요하다고 보았다.[1] 히틀러는 우크라이나를 "곡창 지대"로, "러시아" 도시들을 공산주의 온상으로 간주하여 적대시했다.[24]
이 지역에 정착할 국방농부(Wehrbauer)는 도시 여성이 아닌 농촌 여성과만 결혼해야 했고, 이는 대가족 장려를 위한 것이었다.[29][27]
4. 1. 국가 세습 농장법 (Reichserbhofgesetz)
1933년 Reichserbhofgesetzde(국가 세습 농장법)은 "독일 민족의 혈액원으로서 농민 공동체를 보존한다"는 목표로 '피와 땅' 이념을 시행했다.[18] 선택된 토지는 세습지로 선언되어 저당이나 양도가 불가능했고, 이 농민들만이 스스로를 Bauernde(농민)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이는 나치가 중립적이거나 경멸적인 용어를 긍정적인 용어로 재정비하려 했던 것이다.[19] 지역 관습에 따라 장남 또는 막내아들이 상속자가 되었지만, 특별한 관습이 없는 지역에서는 막내아들이 상속자가 되었다.[13][14][15][16] 나치 시대에는 대부분 장남이 농장을 상속했다.[17] 부계 혈통에 우선순위가 주어져 아들이 없을 경우, 사망한 농민의 형제와 형제의 아들이 농민의 딸보다 우선했다. 농촌은 보병 양성에 가장 좋은 곳으로 여겨졌으며, 산업 도시의 "인종적 혼란"과 달리 토지 소유주와 농민 사이의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여겨졌다.[18] 유대인이 농사를 짓는 것은 금지되었다.[19]4. 2. 토지 봉사 의무
나치는 히틀러 유겐트와 독일 소녀 연맹 회원들에게 1년간의 토지 봉사 의무를 부과했다. 이 의무 봉사 기간은 학생들이 기본 교육을 마치고 고급 학업을 하거나 취업하기 전에 필요했다. 농장에서 일하는 것이 유일한 봉사 형태는 아니었지만 일반적이었으며, 그 목표는 젊은이들을 도시에서 다시 데려와 "토지"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었다.[20] 1942년에는 60만 명의 소년과 140만 명의 소녀가 수확을 돕기 위해 파견되었다.4. 3. 레벤스라움 (Lebensraum)과의 연관
'피와 땅' 이념은 동유럽으로의 영토 확장 정책인 레벤스라움(생활권)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21] 나치는 동유럽을 독일 민족의 생존 공간으로 간주하고, 슬라브족을 몰아내고 독일 농민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1]알프레트 로젠베르크는 슬라브족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지만, 독일인이 한때 살았던 땅에서 슬라브족을 제거하는 것을 피와 땅의 통일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았다.[1] 나의 투쟁de에서는 독일 민족을 위한 토지 확보가 외교 정책의 변함없는 목표라고 명시했다.[23] 히틀러는 우크라이나를 "곡창 지대"로 구상했고, "러시아" 도시들을 공산주의의 온상으로 간주하여 적대감을 표하며, 독일인들이 그곳에 사는 것을 금지하고 전쟁에서 파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24] 심지어 전쟁 중에도 레닌그라드를 파괴하고 주민들의 생존과 식량 공급을 고려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25]
이러한 지역에 정착할 국방농부(Wehrbauer)는 도시 여성이 아닌, 도시에 살지 않은 농촌 여성과만 결혼해야 했다.[29] 이는 대가족을 장려하기 위함이었다.[27] 또한, "강인한 농민 종족"이 점유한 이 땅은 아시아로부터의 공격에 대한 방벽 역할을 할 것이었다.[28]
5. 예술에 미친 영향
나치 독일 시대 예술은 '피와 땅' 이념을 반영하여 풍경화와 농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32] 예술가들은 비정치적인 그림에도 "독일 땅" 또는 "독일 떡갈나무"와 같은 제목을 붙여 '피와 땅'과의 연관성을 강조했다.[32] 대독일 미술 전시회에서 풍경화가 가장 많이 전시되었으며,[33] 농촌 테마가 그림에서 매우 선호되었다.[32] 독일 낭만주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그려진 풍경은 종교적 뉘앙스 없이 실제 풍경, 즉 독일인의 Lebensraum|생활권de에 확고히 기반을 두어야 했다.[32] 농민 또한 인기 있는 이미지였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단순한 삶을 장려했고, 농부는 노력과 투쟁을 통해 손으로 노동했다.[32]
5. 1. 문학
나치 집권 이전부터 '향토 소설'(Heimat-Roman)과 '토지 소설'(Schollen-Roman, Blut-und-Boden)은 농촌 생활과 민족 정체성을 찬양하는 인기 있는 장르였다.[29] 이 문학은 "Blu-Bo"로 축약되어 그 수가 크게 증가했고, 통일의 신비주의를 발전시켰으며, 전쟁 문학과 도시의 오염으로부터 벗어난 군인-농부의 모습을 결합했다.[29] 이러한 책들은 일반적으로 과거를 배경으로 했지만, 계절의 변화를 묘사하여 종종 시대를 초월한 느낌을 주었다.[29] "피와 땅" 소설과 연극은 농부의 삶과 그들의 다산을 찬양하며, 종종 이 둘을 신비롭게 연결시켰다.5. 2. 미술
나치 독일 시대 미술은 '피와 땅' 이념을 반영하여 풍경화와 농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32] 예술가들은 비정치적인 그림에도 "독일 땅" 또는 "독일 떡갈나무"와 같은 제목을 붙여 '피와 땅'과의 연관성을 강조했다.[32] 농촌 테마는 그림에서 매우 선호되었다.[32] 대독일 미술 전시회에서 풍경화가 가장 많이 전시되었다.[33] 독일 낭만주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그려진 풍경은 종교적 뉘앙스 없이 실제 풍경, 즉 독일인의 Lebensraum|생활권de에 확고히 기반을 두어야 했다.[32] 농민 또한 인기 있는 이미지였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단순한 삶을 장려했다.[32] 이 예술은 농업의 기계화 징후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32] 농부는 노력과 투쟁을 통해 손으로 노동했다.[32]5. 3. 영화
나치는 '피와 땅'을 주제로 한 선전 영화를 제작하여 농촌 생활을 이상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도시 문화를 퇴폐적인 것으로 대비시켰다.[35] 이러한 영화들은 게르만 민족성과 시골의 공통점을 강조했다.[35]리하르트 발터 다레의 지휘 아래 제작된 단편 선전 영화 《피와 땅》(Blut und Boden)은 나치 당 회의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의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다.[35]
《황금 도시(Die goldene Stadt)》는 여주인공이 도시로 도망쳐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녀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가 그녀가 시골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35]
《영원한 숲(Ewiger Wald)》은 숲을 역사를 초월하는 존재로, 독일 민족을 숲에 뿌리를 둔 존재로 묘사했다. 영화는 고대 아리아인, 아르미니우스, 튜턴 기사단을 품고, 농민 전쟁에 직면하고, 전쟁과 산업으로 파괴되고, 흑인 병사들의 점령에 굴욕을 당하지만, 결국 신이교주의 5월제 축제로 절정을 이룬다.[35]
《틸지트 가는 길(The Journey to Tilsit)》에서 폴란드 출신의 유혹적인 여성은 타락한 "아스팔트 문화"(도시성)의 산물로 묘사되는 반면, 덕망 있는 독일인 아내는 전통 의상을 입은 시골 거주자로 묘사된다.[35]
나치 시대의 많은 상업 영화들은 독일의 풍경과 이상화된 '아리아인' 커플을 오랫동안 비추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36]
6. 일본에서의 수용
1943년에 일본 후생성이 작성한 《대화민족을 중핵으로 하는 세계 정책의 검토》에는 나치 독일의 국가 사회주의 용어 및 개념으로부터의 인용 및 영향이 많이 발견된다.[50]
7. 현대적 사용
북미의 백인 우월주의자, 백인 민족주의자, 신나치, 얼트-라이트 구성원들이 이 구호를 채택했다. 2017년 8월 유나이트 더 라이트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횃불을 들고 버지니아 대학교 캠퍼스를 행진하며 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기록되면서 널리 알려졌다.[38] 이 집회는 로버트 E. 리 동상 철거에 항의하기 위해 조직되었다.[39] 2018년 12월까지 백인 우월주의자 제임스 알렉스 필즈의 재판이 전국적인 뉴스로 다루어졌는데, 그는 의도적으로 차량으로 반대 시위 군중을 덮쳐 32세의 법률 보조원 헤더 헤이어를 사망하게 했다.[40] 2017년 10월 테네시주 셸비빌에서 열린 "백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집회에서도 이 구호가 들렸다.[41]
2018년 작별 서한에서 미국 상원의원 존 매케인은 미국은 "피와 땅의 나라가 아닌 이상(ideals)의 국가"라고 언급하며, 이러한 개념을 명확히 거부했다.[42]
8. 비판
'피와 땅' 이념은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정당화하고, 폭력적인 영토 확장 정책을 옹호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북미의 백인 우월주의자, 백인 민족주의자, 신나치와 얼트-라이트 구성원들이 이 구호를 채택했다. 2017년 8월 유나이트 더 라이트 집회의 결과로 널리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당시 참가자들이 횃불을 들고 2017년 8월 11일 밤 버지니아 대학교 캠퍼스를 행진하며 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기록되었다.[38] 이 집회는 로버트 E. 리 동상 철거에 항의하기 위해 조직되었다.[39] 이 집회는 백인 우월주의자인 제임스 알렉스 필즈의 재판으로 인해 2018년 12월까지 전국적인 뉴스로 다루어졌는데, 그는 의도적으로 차량으로 반대 시위 군중을 덮쳐 32세의 법률 보조원 헤더 헤이어를 사망하게 했다.[40] 2017년 10월 테네시주 셸비빌에서 열린 "백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집회에서도 이 구호가 들렸다.[41]
2018년 작별 서한에서 미국 상원의원 존 매케인은 미국은 "피와 땅의 나라가 아닌 이상(ideals)의 국가"라고 언급하며, 이러한 개념을 명확히 거부했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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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The 12-Year Reich
[48]
서적
The Myth of the Master Race: Alfred Rosenberg and Nazi Ideology
[49]
서적
The Nazi Conscience
[50]
서적
War Without Mercy: Race & Power in the Pacific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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